원경릉은 이리가 무술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갑자기 무술을 가르쳐 주겠다는 거야?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네?’원경릉은 입에 묻은 떡 고명을 털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러니까 나리께서 저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요? 도대체 무슨 꿍꿍이십니까?”원경릉의 꿍꿍이라는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이리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했다.“나리! 잠깐만 제 말 좀 들어보세요! 혹시 가지고 있는 은화를 기부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부유원 안에 고아와 무연고 노인들이 굶어주게 생겼습니다. 만약 나리께서 은화를 기부하면 황상께서 분명 상을 내리실 겁니다. 그럼 나리께서 명성도 얻게 되시겠지요!”이리는 황상의 상이라는 말과 명성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흠…… 그런 명성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느냐만……” “스승님! 배우겠습니다! 만약 스승님께서 부유원에 기부를 하신다면, 제가 무술을 배우도록 하죠.”원경릉은 이리의 번쩍이는 눈을 보고는 잽싸게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곧바로 이리에게 스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리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정말 배우겠다고? 무술을 배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데?”“이래 보여도 저 고생할 만큼 한 사람입니다.”원경릉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리를 보았다.“근데 지금 보니 태자비 몸이 너무 허약해 보여서 무술을 익힐 재목이 아닌 것 같네요. 그냥 간단하게 태자를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태자비 내가 자리를 비켜줄 테니 좀 더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시지요.”“생각 안 합니다. 무술을 배우겠습니다.”이리는 방금 전 원경릉에게 무술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 자신의 명치를 세게 때리고 싶었다.‘저 몸으로 무슨 무예를 하겠다고……’하지만 이리 나리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한 달 정도 원경릉에게 무술을 가르치고 무술 고수를 데려와 그녀와 결투를 벌이게 할 것이었다.그는 그녀에게 차를 한잔 따르라고 하더니 무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경릉은 그의 말을 듣고 즉시 그의 찻잔에 차를
음주 기부미색의 말을 듣고 이리 나리는 한참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손가락 두개를 목구멍에 넣더니 억지로 차를 다시 토하려고 했다.잠시 후 얼굴이 완전 흙빛이 되었는데 태어나서 제일 최악의 얼굴 상태로 영혼을 고문하듯, “그럼 어떻게 하지?”미색도 슬퍼하며 나리가 요즘 어떻게 되신 걸까? 머리가 이렇게 안 돌아가서야. 살인을 하러 왔는데 결과는 다치고 대접하고 제자를 거두지를 않나, 뭐가 어떻게 된 거야?하지만 미색은 슬퍼하는 것도 잠시, 바로 정신을 차리고 늑대파에겐 좋은 일이 아니지만 자신에게는 좋은 일일 수도 있잖아. 미색과 태자비는 동서지간이니 동서를 해칠 수는 없는 거지.다시 말해 늑대파도 미색에겐 결혼문제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뜻이다.따라서 미색은 비분강개 하는 마음과 암담한 기분에 다시 한번, “나리, 차를 마셨으니 토하셔도 드신 건 드신 거잖아요. 명분상으로 차를 마셨으니 태자비의 사부인 거예요.”이리 나리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리 나리를 사부로 모시고 싶은 사람들이 늑대파에 얼마나 많은데 하나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 지금까지 확실한 무공 자질을 가진 천재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리 나리는 천재가 아니면 제자로 거두지 않았다.인간이란 까다롭게 굴면 벌을 받나 보다. 미색이 남자에 까다롭게 굴다가 스무 살이 되도록 시집을 못 가고 혈혈단신이다.이리 나리는 서른살까지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까다롭게 굴다가 결국 어느 ‘똥멍청이’를 받아들이고 말았다.운명의 장난이여!복잡한 마음으로 반나절을 보내고 저녁에 초두취로 갔다. 원래는 갈 생각이 없었지만 우문호를 따라간 게 이 고뇌를 술을 마셔서 잊어볼까 해서다.이리 나리는 마음 속에 고민이 있고, 좀 많이 마신데 다가 우문호라는 여우가 계속 술을 따라 대니 자리가 파할 때 즈음은 이미 인사불성으로 취했다.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축하고 마차에 올라 가리개를 젖히고 바람을 맞자, 이리 나리도 조금씩 술이 깨며 게슴츠레 눈을 떴다. 우문호가 미소를 머금고 자신을 쳐다보는 것
기부이리 나리는 성지를 받은 후 한참동안 정신이 혼미했다. 어디부터 잘못된 거지. 애초에 뭘 하러 온 거지? 그래 살인이다.이리 나리는 늑대파의 장문인으로 사람 머리를 사고파는 걸 업으로 삼고 소답화에게 은자 20만냥을 받고 태자비의 목을 가져가기로 했다.하지만 지금 이리 나리는 은자 200만냥을 내놔야 하는 데다 태자비를 제자로 거뒀다.제일 중요한 건 이리 나리가 지금 작위를 받아 조정 사람이 된 사실로, 늑대파는 원래 조정에 입각하지 않는데 이리 나리가 이번에 경성에 와서 자신을 팔아버린 꼴이 아닌가? 이리 나리가 냉정을 되찾는데 무려 반 시진(1시간)이나 걸렸다. 한 손으로 미색의 손목을 잡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소답화는 지금 어딨느냐?”“유배당했다고 들었어요!”이리 나리가 이를 갈며, “소답화의 머리에 만 냥을 걸지.”미색이 히히 웃으며, “좋아요, 제가 바로 명령을 전달하지요.”“너 엄청 즐거워 보인다!” 이리 나리가 차갑게 미색을 쳐다봤다.미색은 표정을 거두고, “나리 아시겠지만 소인은 화가 났을 때 항상 웃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옥면나찰(玉面羅剎)이란 별명을 가지겠어요? 나리 이번 결정은 잘 하신 일입니다. 이 일은 전부 소답화때문에 생겼으니까요. 우리 늑대파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이런 진퇴양난의 일이 벌어진 적이 없잖아요. 분명 소답화가 인간과 신에게 두루 분노를 사서 그런 건데, 어쩌다가 우리 늑대파가 연루돼서. 소답화의 목만 따는 게 사실 봐주는 거라고요.”이리 나리가 심호흡을 하더니 소리쳐, “연루되든 말았든 상관없이 중요한 건 모든 일은 책임자의 머리를 가져와야 하는 거라고.”“예, 나리 맞습니다!” 미색이 화가 나서, “원래 머리 하나로 해결 될 일이 아니지요, 소답화가 감히 현 태자비를 암살하려고 하다니, 정말 가증스럽습니다. 게다가 우리 늑대파를 끌어들이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이리 나리는 약간 협심증을 느끼며 가슴을 손으로 꽉 누르고, “됐다, 그만해, 가서 명을 전해라.”이백만 냥 쯤이야
문둥병 치료우문호가 가서 원경릉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자 원경릉이 뛸 듯 기뻐하며 얼른 약상자와 마스크를 챙겨서 내일 산으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반드시 안전에 유의할 것, 만아, 서일, 사식이 등과 같이 올라갈 것, 산꼭대기엔 초왕부 파수병을 배치해 두어 기본적으로 전부 자기 사람들이지만 비밀을 지키는데 유의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이 일은 조용히 진행할 수만 있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이다.그럴 줄 알았지만, 사식이는 입이 싸서 원경릉이 문둥산에 가서 치료한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얼른 가서 원용의에게 얘기하니 원용의가 듣고 호응해서 원경릉과 같이 산에 올라가기로 했다.이렇게 다음날 아침 일찍 원경릉은 사람들을 데리고 출발했다.이리 나리는 오늘부터 원경릉에게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제자든 아니든 신경 안 쓰고 가르쳐서 무공을 할 수 있게 될 경우, 방법을 생각해 원경릉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파문해 버리면 원경릉의 머리를 벨 수 있다.이리 나리가 원경릉을 찾으니 원경릉이 벌써 나갔다는 얘기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사부를 조금도 존중할 줄을 모르다니 무술을 연마하는 게 시간 낭비다.원경릉이 일단 약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 탁자를 놓고 진료를 시작했다.최근 산 위에 급식이 개선 되었으나 병자의 대다수가 절망으로 마비된 상태라 원경릉이 온 것에 대해서도 별반 기뻐하지 않고 일부는 와서 대충대충 하고 가는 게 조정이 또 고기 급식을 끊고 전처럼 옥수수 개떡을 줄까 봐서 였다.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찰받기 싫어했다. 아니, 여자 몇 명이 와서 무슨 치료를 한다는 거야?원경릉의 일은 안 그래도 어렵고도 힘들어서 비록 같은 병이라고 하지만 병의 진행 정도가 다르고 다른 합병증이 있는지 여부를 진찰해야 했다.원용의와 사식이, 만아는 상처를 씻고, 소독하고 상처가 썩어 문드러진 것들 긁어내는 것을 도왔는데 이런 일에 만아는 적응했지만 원용의와 사식이는 겨우 구토를 참으며 마쳤다.저녁이 되어 하산할 때 서일 외에 다른 사람들은
무술은 안 배우고 어디가우문호는 매일 곤죽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원경릉을 보고 산에 가도록 한 게 조금 후회가 됐다. 오늘밤은 모처럼 일찍 들어와서 같이 야식을 먹는데 원경릉 얼굴에 다크 서클이 시커멓게 생긴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파서, “내일은 가지 말고 이틀 쉬어, 계속 이러다 가는 병자들은 좋아지는 대신 네 목숨을 갈아 넣겠어.”원경릉은 너무 피곤해서 몇 입 먹지도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놓고, “안돼, 쉴 수 없어, 할 일이 너무 많아. 삼백명이 넘는데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환자는 15명 수준이야, 만약 쉬면 진도가 더 느려질 거야.”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럼 네 목숨은 없어도 된다 이거야?”“걱정 마, 체력 조절하고 있으니까. 산 위에서 점심때 반 시진 씩 잘 수 있거든. 내 몸은 내가 알아.” 원경릉이 우문호를 다독거리고 나한상에 쓰러지더니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었다.우문호는 이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고 사람을 시켜 자리를 정리하게 한 뒤 원경릉을 안아서 침대에 눕혔다.다음날 원경릉은 새벽같이 일어나 졸려서 연신 하품을 하며 약을 한 보따리 메고 문을 나서는데 막 집을 나서려는 순간 이리 나리가 막아 섰다.이리 나리의 어두운 안색을 보고 원경릉이 애써 놀란 척 하며, “이리 나리,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태자 전하도 아직 안 일어나셨는데.”이리 나리는 원경릉이 또 나가려는 차림을 보고 화가 나서, “요 며칠 계속 외출하는데, 할 일을 기억하고 있느냐?”원경릉의 머리 속은 온통 환자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차서 순간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고, “무슨 할 일을?”이리 나리는 원경릉이 무공을 배우기로 한 것조차 잊어버린 것을 보고 기가 막혀서 소리지르며, “무술 공부, 무술 공부 말이다!”어쩌자고 이런 쓰레기를 제자로 거뒀을까? 천만금 재물을 가져다 바치며 제발 좀 가르쳐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했는데, 지금 땡전 한푼 안 받고 가르쳐 준다는 데도 원경릉은 귀한 줄을 모른다.원경릉이 퍼뜩 기억
이리 나리의 속셈은?이리 나리는 믿기지 않아서, “태자비가 문둥산에 치료하러 간다고? 미친 것도 아니고.”미색이 어깨를 으쓱하며, “따라가보면 알 수 있지 않겠어요?”이리 나리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멀리서 미행하도록 하지, 들켜서는 안돼.”하지만 기술도 고민하지 않고 미행한 게, 여자들 몇명과 천방지축 서일은 알아챌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앞에 일행이 나귀를 타고 산을 오르는데 사식이가 조용히 고개를 옆으로 돌려 원경릉에게, “원언니, 이리 나리와 미색이 아직 따라오는데 어쩌죠? 멈춰서 저들을 기다려야 되는 거 아니 예요?”원경릉이 웃으며, “그럴 필요 없어, 저들은 우리가 모르는 줄 알아, 만약 우리가 멈춰서 기다리면 창피할 걸.”그래도 이리 나리의 은자를 받았으니 원경릉의 마음이 약해져서 저들이 좋으면 그만이란 생각이다.“하지만 우리가 문둥산에 오르는 걸 아는게 걱정되지 않으세요? 저들이 소문을 내면요?” 원용의가 걱정스레 물었다.원경릉이,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저들을 끌어들여서 앞으론 한배를 탄 동지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사식이가 웃으며, “하여간 원언니는 고수라니까.”누구든 자신이 문둥산에 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들의 질시를 받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리 나리는 큰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만약 그가 문둥산에 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누가 감히 그와 접촉하려 들까? 그래서 이리 나리는 분명 발설할 리 없다.원용의는 의심이 많아서, “이리 나리는 뒤 따라와서 뭐 하려는 거죠?”원경릉이 어깨를 으쓱하며, “몰라, 오늘 보니까 엄청 화났던데, 내가 무공수련을 안 했다고.”사식이가 ‘풉’하고 웃으며, “이리 나리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니 까요, 언니가 무공 수련을 해서 뭐 하게요? 진짜 선생님 되는 거 좋아하신다니까, 체격을 봐요, 그렇게 대단한 무공을 알 것 같지도 않고, 상처도 이제 거진 나았는데도 아직 초왕부에 남아서 안 가는게, 설마 진짜 태자 전하를 므흣하게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요.”서일이
문둥병자 치료이리 나리와 미색은 계속 산을 따라 오르다 곧 도착하는가 싶더니, 앞에 몇 명이 갑자기 뒤를 돌아 그들에게 오며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마치 파파라치가 갑자기 들킨 것처럼 이리 나리와 미색은 당황해서 무의식적으로 달아나려고 했다.하지만 사식이가 그들을 부르며, “이리 나리, 미색, 조금만 가면 도착해요.”이리 나리는 태어나서 이렇게 창피한 적은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그들을 한참 보다가 미색에게, “난 수도권으로 돌아가야겠다.”미색은 자기 혼자 미행이란 죄를 뒤집어쓰기 싫어서 이리 나리를 끌고 사람들에게 올라가 자기들은 산에 놀러 왔다고 했다.그들은 과연 문둥 마을로 들어가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려고 했다.이리 나리는 이 모든 게 놀라고 두려웠는데, 원경릉이 병자들을 치료, 소독하고, 상처를 긁어내고, 곪은 상처를 닦아내는 것을 보자 이리 나리도 토할 거 같은데 원경릉은 마스크를 쓰고 아무렇지도 않은 눈으로 앉아서 반복적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손에 비록 얇은 장갑을 끼고 있지만 썩어 문드러진 상처에 닿을 때 분명 느껴질 텐데 말이다.자신의 신분을 알기나 하는 건가? 원경릉은 태자비라고!열 손가락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혜택 받은 존재 태자비로, 황실의 자손이 번창하는 것만 신경 쓰면 되는데 여기 와서 악질에 걸린 병자들을 치료한다고? 미친 거 아니야?이리 나리가 처음 직감적으로 떠올린 건 원경릉이 태자를 위한 쇼를 하는게 아닐까? 태자의 명성을 쌓기 위해서 말이다.하지만 즉시 부정한 것이, 이건 명성을 쌓는 방법으론 꽝인 게, 문둥산에 올라온 적이 있는 태자비는 사람들에게 불길하다며 배척당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이건 태자에겐 악소문이지.이리 나리는 전 문둥산을 통틀어 유일한 난간에 기대에 모두가 바쁘고 심지어 미색까지 뜨거운 물을 끓이고, 상처를 치료하며 나온 쓰레기를 정리하는 걸 돕고 있는 걸 봤다.이리 나리는 가지 않았다. 토할 것 같아 서다.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조용히 사람들이 바쁜 것을 보며 사방을 둘
문둥산의 이리 나리이리 나리가 이 장면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내가 하지!”원경릉이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보니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허리춤에서 휘청거리는 걸 뽑더니 차갑게, “비켜!”원경릉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놓자 중심이 기우뚱하며 한쪽으로 쓰러지는데, 이리 나리가 연검을 휘둘러 노인의 발을 잘라내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치며, “이러면 안돼요, 위치에 주의해야 한다고요.”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리 나리는 이미 칼을 거두고 노인의 발바닥은 둘로 갈라졌는데 딱 썩은 위치 바로 위를 잘라낸 것이 완벽하다.원경릉은 놀랄 틈도 없이 바로 지혈하고 상처를 처치한 뒤 봉합하고 상처를 싸맸다.이 모든 것을 다 끝내고 소매로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고개를 들고 시원한 눈매의 이리 나리를 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리 나리 저 사람을 구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 사람은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이리 나리가 천천히 고개를 떨구고 손수건을 꺼내 자기의 보검을 닦았다. 이 보검이 칼집에서 나온 건 매우 오랜만으로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를 마셨는지 모를 정도로 무수한 살인을 거듭했다.아이러니 하게도 이 검이 사람을 구하는데 사용된 것이다.망측하게도 기분이 꽤 괜찮다.점심때 치료조는 밖에 지은 초가집에서 밥을 먹는데 거기는 병사가 몇 명 있고, 요리사 몇 명이 병자 전문으로 밥을 하고, 지금은 원경릉에게도 같이 밥을 지어주고 있다.그들도 마찬가지로 원경릉의 신분을 모른 채 병자들과 마찬가지로 관청에서 파견된 의녀라고 생각했다.식사는 간단하게 대부분 야채와 건두부 고기 볶음 하나인데 요리사 솜씨가 좋아서 파 마늘 생강을 같이 넣고 볶은 뒤 전분으로 걸쭉하게 국물을 내서 입에 착착 붙는 맛이다.밥 먹을 때 이리 나리와 미색은 말이 없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전부 병세를 얘기한다. 썩어 문드러진 팔다리를 얘기하면서 조금도 식욕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게 이리 나리와 미색은 몇 번이나 서로 마주보고 원경릉과 원용의 두 여인들은 이상한 사람이라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