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 기왕비와 현대로 돌아간 문이돌아가는 길에 기왕비가, “부처님 앞에서 소원을 빌었어요.”원경릉이, “무슨 소원을 빌었는데요? 군주를 위해서?”“군주는 저라는 엄마가 보호하고 있으니 잠깐 동안은 부처님을 수고스럽게 하지 않을 겁니다.”“어? 그럼 누구를 위해서?” 원경릉이 물었다.기왕비가 몇 초간 침묵하더니, “기왕을 위해서요, 풀려난 뒤 분수에 만족하고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해 군주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현모양처군요.” 원경릉이 말했다.기황비가 웃으며, “그럼요, 현모양처의 첫번째 조건이 기왕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매일 비위를 맞춰주며 웃음으로 대하는 거지요.”“너무해!” 원경릉이 진심으로 탄식했다.기왕비가 원경릉에게, “너무한 지는 두고 봐야죠. 어쨌든 부모가 너 죽고 나 죽자 치고 받는 환경에서 군주를 살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기왕비가 어깨를 으쓱하며, “만약 진짜 너무하다고 느끼면 태자비를 찾아가서 하소연 할 건데, 날 내치는 건 아니겠죠? 좌우간 저도 이렇게 많이 태자비를 돕고 있으니까.”“내칠 걸요, 내칠 거예요. 난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에요, 기왕비의 모든 부정적 정서를 나한테 주면 안되요. 그럼 제가 기왕 전하한테 전부 복수하고 어쩌면 참지 못하고 없애 버릴 지도 몰라요.”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기왕비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만약 태자비가 기왕을 귀신도 모르게 없애 버릴 수 있으면 평생 감사하며 살게요.”원경릉이 일부러 깜짝 놀라는 척을 하고, “맙소사, 남편을 죽일 마음을 품다니, 이 여자는 속내가 얼마나 악독한 거야!”원경릉은 기왕비가 자신과 손을 맞잡고 있는 것을 보며, 둘은 처음으로 이렇게 친밀함을 느꼈다.하지만 의외로 털끝만치도 닭살 돋는 말 없이, 마치 예전부터 단짝이었던 것처럼, 자매였던 것처럼.한편 문이가 대주로 돌아간 뒤 그녀를 불러온 시대에 속한 임무를 모두 완수하고 진근영 부부와 이별한 뒤 다른 몇몇의 파트너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문이가 시공을 한번 넘
원경릉 엄마의 자실을 말리는 문이문이는 우연히 다른 사람의 인생 절망의 순간을 마주한 건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원교수란 말에 온몸이 굳어지며 아주머니의 손목을 휘어잡고, “아주머니, 그러니까 위에서 자살하겠다는 사람이 원경릉 엄마라고요?”아주머니는 마치 오랫동안 원경릉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 없다는 듯 듣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그렇다니까.”문이의 심장이 펄떡펄떡 뛰며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나!문이의 자기 따귀를 힘껏 때리고, 어쩌자고 이제서야 왔어? 일찍 왔어야지,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태자비한테 뭐라고 할 거냐고?문이는 죽을 힘을 다해 앞으로 비집고 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그런 생각하지 마시고 내려오세요, 말씀 드릴 중요한 일이 있어요. 어서 내려오세요.”건물이 이십 몇 층이라 땅에서 문이의 목청이 터져라 외친 말은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문이는 마음이 급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위에 있는 사람의 주의를 끌 방법이 없었다.문이는 누군가 로비 안쪽에서 내려오고 또 누군가 올라가는 걸 보고 위쪽에 누가 설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얼른 입구로 달려갔다. 여경이 문이의 손목을 끌고, “아가씨, 올라가실 수 없어요.”문이가 급하게, “저 올라가야 돼요, 전 저분을 내려오라고 설득할 수 있어요.”여경이 문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저분과 어떤 관계죠?”문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제가 저분과 아는 관계가 아니라, 저분 따님을 알아요, 믿어주세요. 제가 정말 저분을 설득할 수 있어요.”여경이 엄숙하게, “저분의 가족이 아니면 죄송하지만 올라가시게 할 수 없습니다. 어서 가세요, 소방대원이 구조하는데 방해하지 마시고. 다들 위로 올라갔어요.”문이가 몹시 초조해서, “아뇨, 절 가게 해주세요, 이러다 늦어요, 정말 사람이 죽는다고요, 아니면 원교수님께 내려와서 절 만나달라고 하세요,. 제가 그분께 말씀드리고 물건 전해드릴 게요. 여기 물건 있어요. 저분을 내려오게 할 수 있는.”“무슨 물건이요?” 여경이 물었다.“저
원경릉의 편지 현대에 전해지다원경릉 엄마는 홱 고개를 돌려 문이를 보고 문이 손에 편지를 보더니 슬픔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두 손을 난간에서 놓고 몸을 움직였다.이 움직임으로 모든 사람들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으며 소방대원은 뛸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덮칠 뻔 했다. 하지만 원경릉 엄마는 앉은 자세를 고쳤을 뿐 뛰어내리지는 않았다.그러나 원교수는 놀라서 기절했다.여경도 화들짝 놀라 문이를 끌고, “내려가요, 여기서 소리지르지 말고.”문이도 놀라서 울며 몸부림을 치는데, “어머니, 절 믿어주세요, 원경릉이 저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줬어요, 원경릉은 안 죽었어요, 정말 안 죽었다고요, 왜 절 믿지 않으세요? 만약 뛰어내리시면 전 죽을 죄를 짓는 거예요. 원래 한달전에 와서 편지를 드렸 어야 하는데 여동생이 수술을 받아서 계속 병원에서 간병했어요, 내려와서 보시는 게 뭐가 무서우셔요, 보시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잖아요, 그녀 필적을 아시잖아요.”문이는 계속 편지를 흔들었으나 여겅이 그녀를 내려가도록 끌어내자 어쩔 수 없이 젊은 남자에게 소리치며, “원경릉 오빠시죠? 이 편지 보세요, 그리고 제 백팩에 그녀 초상화 있어요, 그녀의 지금 모습이요, 그녀가 가족에게 보내는 선물도 제 백팩에 다 있어요.”문이는 이 말을 하며 가방을 떨어뜨리더니 더이상 여경을 버티지 못하고 엘리베이터로 끌려 내려갔다.원경릉 오빠는 바닥에 꿇어앉아 있다가 문이의 말을 듣고 바닥에 편지와 가방을 보더니 편지를 집어 들었다. 편지를 읽고 경악하며, “맙소사, 경아 필적이야, 엄마, 경아 필적이라고, 경아야.”오빠는 미친듯이 읽어 내려가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더니 다 읽고 나서 가방을 열자 안에 작은 비단 주머니 몇개와 그림이 있어 천천히 펼쳤다.한사코 터트리지 않던 눈물이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주르륵 흘러내렸다.원경릉 엄마가 마침내 감화되어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정말이니?”원경릉 오빠가 울면서, “엄마, 정말이야, 봐!”오빠가 엄마에게 초
원경릉의 선물원교수가 휴대폰을 꺼내 받지 않은 전화가 많은 것을 보고 미안해 하며, “어제 아내가 나가서 우리가 전부 걱정하며 찾는 중이었고 찾은 뒤엔 이미 심야라 다시 전화 못 드렸습니다.”원경릉 엄마도 휴대폰을 꺼내 원교수와 번호를 맞춰보고 확실히 문이가 말한 게 사실로, 정말 문이가 자신들에게 전화를 했었다.“편지에 적힌 말이 전부 사실인가요? 경아가 지금 북당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태자비로 있고 세쌍둥이를 낳았다는?” 원경릉 오빠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다.문이가 흐느끼며, “정말 사실이에요, 만약 제가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하는 거면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질 겁니다. 그녀가 보낸 선물을 다시 한번만 봐주세요, 전 일개 엔지니어에 불과해서 살 수 없는 거예요, 게다가 저와 여러분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이고 설마 제가 사비를 털어서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사서 여러분께 드리겠어요?”테이블 위에 4개의 비단주머니가 놓여 있고 원경릉 오빠가 하나씩 열었다.품질이 뛰어난 비취 팔찌 한 쌍으로 얼음처럼 맑고 투명한데 원경릉 엄마가 비취라는 것을 알아봤는데, 재료만 척 봐도 팔찌 한 쌍이 4000만원은 호가할 듯 싶다.비단 주머니 아래 메모가 한 장 깔려 있는데 위에는 원경릉의 필적으로 ‘엄마의 55세 생신을 축하해요!’라고 써 있다.원경릉 엄마가 우는데 56세 생일이 막 지났는데 경아가 떠날 때 분명 55세 생일을 지나기 전이었다.두번째 비단 주머니에는 거북이 부절(符節:일종의 신표로 활용) 한 쌍이 있는데 새로 만든 것이 분명한 게 조각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거북이 부절은 고대에서는 일종의 신분의 상징으로 3품이상이나 황제의 친척만이 찰 수 있는 일종의 신표다. 이 거북이 부절 아래도 메모 한 장이 깔려 있는데 아빠에게 쓴 것이다.원교수가 천천히 꺼내 손가락으로 순금으로 조각된 것을 매만지며 깊이 숨을 내쉬었다. 눈물을 머금은 한숨이었다.세번째 비단 주머니에 든 것은 금으로 만든 작은 유엽도(柳葉刀)로 외과용 수술 나이프의 축
문이의 말이 믿어진다문이가 원경릉 엄마가 격동하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며, “예, 그렇게 얘기했어요.”원경릉 엄마가 아픔으로 소리 없이 울부짖으며 원교수에게, “아직 기억해요? 어느 날 당신이 퇴근하고 왔는데 제가 딸이 돌아온 걸 봤다고 했잖아요. 걔가 술이 취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나한테 얘기도 했다고, 당신은 내가 환각을 봤다고 했지만 난 환각이 아닌 걸 알았어요. 정말 이었어요. 걔가 정말 돌아왔었던 거예요……”원교수는 생각이 났다. 경아가 시집을 갔고, 아이를 낳았다고도 했었다. 그때는 아내의 병이 심각해 졌다고, 아내는 중증 우울증으로 이 기간에는 환각을 볼 수 있고 딸의 죽음에 항상 마음을 두고 있어서 낮에 생각한 게 밤에 꿈으로 나오는 거라고, 딸을 보는 환각도 정상이라고 생각했다.당시 원교수는 그렇게 결론 내리고 다음날 계속 아내를 데리고 정신과 의사와 상담했는데, 정신과 의사도 환각이 나타났다고 하니 결국 마지막엔 그녀 자신조차 환각이었다고 믿기 시작했다.환각이 나타났으므로 약을 바꿨더니 더욱 적응을 못하고 결국 정말 많은 환각이 나타나 정서가 갈수록 불안정해지더니 서너 번의 자살 미수를 일으키고 어젯밤은 나가서 한동안 찾아다니다 겨우 발견했는데,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에 돌아갔는데, 그 학교가 철거되려고 하자 근처에서 밤새 울고 있었다고 했다.데리고 온 뒤 약을 먹이고 재워서 안정을 되찾은 줄 알았으나 오늘 목숨을 끊으려고 할 줄 몰랐다.이제서야 원씨 집안 세 식구는 비로소 문이의 말이 믿어졌다.하지만 원경릉 오빠가 바로 문제를 제기하며, “당신이 말하는 왕조는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갔다는 거죠? 당신은 시공을 왕래할 수 있는 겁니까? 정말 타임머신이 있나요?”문이가, “타임머신이 아니고, 말하자면 상당히 심오한데, 방금 제가 여동생이 수술을 받았다고 했잖아요, 동생이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혼수상태에 빠졌어요, 제가 절망에 빠졌을 때 누군가가 찾아와서는 ‘어디로 가서 그들이 희귀 금속으로 무기를 만드는 것을
원경릉 할머니와 희상궁의 한센병잔인하다, 하지만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은 인간에겐 늘 있는 일로 아무리 잔인하다고 해도 결국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 받아들이고 내려 놓는 것이다.문이는 자신이 가지고 온 편지와 선물로 어느정도 원경릉 집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문이가 돌아가겠다고 인사할 때 원교수가 그녀에게 돈을 주었으나 문이는 비행기표 값만 가져갔다. 그녀는 상당히 긴축재정인 상태로 동생이 퇴원한 뒤 재활치료를 받아야 해서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원교수는 문이의 휴대전화 번호를 저장하고 만약 또 기회가 돼서 그쪽으로 가게 될 때 반드시 알려 달라고 했다.문의가 알았다고 답했으나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인생의 기묘한 기회는 일생에 어쩌면 딱 그 한번 뿐이었을지도 모른다.원교수는 아내를 달래고 병원으로 갔다.원교수의 어머니 소옥의(蘇玉義)는 광원시 한의대 부속 병원 종양내과 노교수로 퇴직 후에 다시 원직에 복직했는데 원경릉 사건이후 상심이 커서 병이 생기는 바람에 사직했다.여러차례 발병하는 바람에 병원 요양재활과에 입원해 있으며 가족이 마주하면 눈물만 나니 본인도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이 주된 이유다.노인이 젊은 사람을 먼저 보내는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어쩌다가 생각이 나면 가슴을 칼로 저미 듯 아프니 소교수 나이에 어떻게 견딜 수가 있을까?며느리가 투신 자살을 기도했다는 일이 인터넷으로 거의 라이브에 가깝게 올라와서 광원시 SNS권역의 사람들은 다 퍼 날랐고, 소교수 본인만 모르고 병원안의 의사와 간호사는 모두 알고 개인적으로 이 일에 대해 얘기했다.소교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동정의 눈빛을 받자 의심이 들기 시작해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간호사가 SNS의 라이브방송을 보여주었다. 소교수는 영상을 보다가 돌발적으로 심근경색을 일으켰다.원교수가 도착했을 때 소교수는 이미 응급처치 중이었다.북당, 초왕부탕양과 구사가 연합해서 한차례 조사해 보니 궁중엔 한센병이 들어온
희상궁 보기 작전원경릉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해보더니, “그럴 리 없다는 말씀이시죠, 결국 재상께서 최근 희상궁의 심기를 건드린 일도 없으니 재상에게 화를 낼 리 없다.”“말하자면 초왕부 사람들 중 누가 희야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모르겠지만.” 주재상이 진지하게 말했다.원경릉이 웃으며, “그건 더 불가능 합니다. 초왕부에서 심지어 저도 희상궁의 말을 듣는데 누가 감히 희상궁에게 잘못할 수 있겠어요?”주재상이 이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걸 것이, 곰곰 생각하더니 미심쩍어 하며, “아픈 거 아닙니까? 감기에 걸렸었는데 나았나요?”원경릉이, “벌써 좋아졌어요, 나은 뒤에 저와 같이 국공부에도 갔었는 걸요.”“국공부에?” 주재상이 생각해보더니 더는 말하지 않고 뒷짐을 지고 나갔다.주재상은 국공부에 가서 주국공과 이것저것 되는 대로 주워섬기다가 비로소 본론에 들어가 그날 태자비가 희상궁을 데리고 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주국공은 주재상이 올때부터 그의 심중을 꿰뚫고 있었지만 와서 부인의 병세를 묻는데 감동해서 주재상이 묻는 말에 솔직하게, “태자비가 처음 왔을 때는 아내에게 진통제를 줬으나 당시 나와 가족들이 태자비를 믿지 않아 쫓아 보냈지.”주재상이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쫓아냈다고? 가시라고 배웅한 건가 아니면 나가라고 쫓아낸 건가? 불쾌해 하진 않고?”주국공이 웃으며, “당연히 좀 불쾌해 했지.”주재상이 순간 얼굴이 싹 변하며 탁자를 내리치며 이를 갈더니, “원인을 찾아냈어, 이 늙은이 때문이군!”주국공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뭐 늙은이라고?”주재상이 눈을 부릅뜨고, “늙은이를 늙은이라고 부르는 게 뭐, 이 사리에 어두운 늙다리야, 내가 널 가만 둘 것 같으냐?”주재상이 저녁때 다시 초왕부에 왔는데 원경릉이 보니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고 눈가에 검게 멍이 들었는 게 누군가에게 쥐어 터진 것 같다. 걸어가는 폼도 다리를 절름거리는 것이 예전에 구사와 싸웠을 때 우문호와 똑같다.얼굴엔 멍이 들었고 이를 갈고 있는 모습
희상궁은 창문만 빼꼼 열었다. 마스크를 쓴 희상궁이 창문 밖에서 달려오는 주수보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주수보는 창문이 닫히기 전에 재빠르게 손을 뻗어 희상궁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는 생각보다 많이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눈 밑이 시커멓고 달려오는 자세도 이상했다. 희상궁은 그런 주수보를 보고 깜짝 놀라서 몸을 뒤로 뺐다. “재상! 나이가 하나 둘도 아닌데, 싸우긴 뭘 싸우고 그래요?” 희상궁이 말했다.주수보는 희상궁을 바라보며 “누구든 당신을 괴롭히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라고 말했다.“세상에 이 상처들 좀 봐!” 희상궁은 눈을 질끈 감으며 탄식했다.“걱정 마. 그 어린놈이 나보다 더 크게 다쳤어.”희상궁은 자랑스럽다는 듯 웃는 주수보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이렇게 얻어맞았으니 앞으로는 절대 그 사람을 찾아가지 마세요!”주수보는 창문의 양쪽을 잡고 올라가려는 자세를 취했다. “근데 왜 여기 숨어있는 거야? 그리고 얼굴에 그건 뭐야? 결핵에 걸린 사람들이 쓰는 걸 왜 네가 하고 있어?”“그……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희상궁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디가 안 좋아?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이야?” 주수보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전과 달라진 희상궁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는 희상궁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 그녀의 얼굴에 쓴 마스크를 잡아당기려고 했다.“이제 그만 가세요! 지금 제 흉악한 몰골을 당신께 보여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희상궁이 고개를 돌렸다.주수보는 얼굴이 붉어진 희상궁을 보고 웃었다. “바보같이 굴지 마. 지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얼굴에 신경을 쓰는 거야? 나는 네 얼굴이 어떻든 신경 안 쓴다. 걱정 말고 이 문 좀 열어보거라. 네가 지금 태자비도 보려고 하지 않는 걸 보니 보통 아픈 게 아니야. 내가 네 상태를 좀 봐야겠다.”희상궁은 코맹맹이 소리로 주수보에게 “그나저나 주국공을 찾아가 싸운 겁니까?”라고 물었
사식이는 다들 일곱째 고모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의아해하며 물었다.“일곱째 고모께서 편지를 보내신 겁니까?”그러자 셋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편지가 왔단다. 며칠 놀다가 곧 경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구나.”사식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일곱째 고모께서 돌아오고 나서 혼담을 꺼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곱째 고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이 난감해질 텐데요.”노태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미 모든 일을 저질렀느넫 이제 와서 동의하지 않는다니? 감히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목을 매겠다!”노태군은 일곱째 고모가 열여덟 살이 되던 때부터 그녀의 혼사를 기다려 왔다. 계속 기다리다가 이미 머리카락이 다 하얘져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혼인 기약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혼사를 정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았다.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일곱째 아가씨가 빨리 시집가기를 바라고 이씩 때문에, 이 일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했다.“사식아, 네 고모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거의 죽게 생겼다고 전해라!”노태군이 단호히 명령했다.딸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저주까지 불사하는 그녀는 정말 독한 늙은이었다.서일은 탕양을 데리고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중매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바로 황후를 찾아가야 했다.소월궁에서 우문호 부부는 탕양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우문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짐이 보기엔, 일찍 일곱째 아가씨에게 네 마음을 고백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리 일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탕양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고,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불안에 휩싸여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폐하,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제발 사람을 보내 그녀가 어디 있는지
오래전의 악몽이 마음속에서 되살아나, 탕양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녀가 혹시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스스로 뺨을 몇 대 때리고는 다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를 따라잡으려 죽자고 달려도, 끝내 그녀를 볼 수 없었다.그렇게나 빨리 도망간 건가?그렇게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쉬지도 않고 곧장 원가로 달려갔다.마침 서일과 사식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와 있던 참이었는데, 대문 앞에 도착하니, 탕 대인이 거지처럼 문지기 앞에 쓰러지다시피 주저앉아 먼지투성이의 얼굴에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문지기의 옷깃을 움켜쥔 채 다급히 묻고 있었다. “일곱째 아가씨는? 너희 일곱째 아가씨는 대체… 어디 있느냐?”그러자 문지기는 놀라 얼어붙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나 사나운 탕 대인을 본 적이 없어 더듬거리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일곱... 일곱째 아가씨께서... 탕 대인과 함께 약도성에 가신 거 아니셨습니까…?”“그럼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탕양이 소리쳤다.“아직... 아직 못 뵈었습니다…!”바로 그때, 서일이 다가와 문지기한테서 탕 대인을 떼어놓으며 말했다.“무슨 일이십니까?! 우선 손부터 놓으십시오. 옷이 다 찢어지겠습니다.”탕 대인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며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큰일이야… 내가 그녀를 망쳐 버렸네! 죽어도 이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네…!”“무슨 일입니까? 저희 고모께서 지금 어디 계십니까?”사식이가 다급히 물었다.“그녀는...“탕 대인은 비참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 투성이가 된 얼굴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네… 나는 돌아온 줄 알고 있었네...”바로 그때,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지팡이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원가의 노태군이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탕양이 고개를 들자, 노태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탕
냉정언은 자기도 모르게 죄책잠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 정말 큰일을 저지른 것인가?’그는 그저 탕양에게 술을 먹여 일곱째 아가씨에게 진심 어린 말을 꺼낼 용기를 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탕양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황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고, 다들 그를 안타까워했었다.탕양은 다섯째가 초왕이었을 때부터 초왕부와 다섯째,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그렇게 반평생을 북당을 위해 헌신했으나, 그를 진정으로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과거에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탓에 평생을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한채, 조정을 위해 뛰어난 공을 세우고도 관직이나 봉록을 거절하며 죄를 속죄하듯 살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실수를 범할 수 있는 법이니까. 탕양은 이미 그 누구보다 훌륭히 잘해왔고, 게다가 정과 의리에 발목 잡힌 것은 많은 영웅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였다.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결코 그 혼자만이 저지른 행동이 아니었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와 벗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술에 취하지 않은 이상, 맑은 정신으로는 절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을 것이기에, 술에 취하게 하면, 경성이 아닌 변방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몇 마디 속마음 정도는 털어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예상외로, 탕 대인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쌓였던 건지... 만취 상태에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대체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품었던 것일까?상황이 아주 복잡해졌다.‘탕 대인 아주 못 쓰겠구먼! 이를 어찌 마무리 짓는단 말이냐…?!’원가의 상대하기 쉽지 않은 여장군들을 떠올리니, 냉정언은 순간 뒷골이 땡겨 머리를 쥐어뜯었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냉명여가 눈 앞에 서 있었다. 냉명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버지, 탕 대인은 어찌 일곱째 아가씨와 그런 일을 벌인
탕양은 지금까지 살면서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이 단 하나뿐이었다. 비록 그 일도 나중에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지만, 그 일로 그는 술에 취하면 정말로 이성과 기억을 잃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렇기에 그 후로 술을 마시더라도 되도록이면 취하지 않게 애썼다. 하지만 어젯밤은 예외였다. 그는 이곳 사람 모두를 믿고 있었기에 경계를 풀었던 것이다.남녀 간의 일도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가 되어서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의부님! 의부님!"바로 그때, 문밖에서 호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탕양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호통쳤다."일단 들어오지 말거라!"그는 급히 이불을 걷어내고, 바닥에서 옷을 찾아 황급히 입은 후, 이마를 문지르며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야 문을 열어 주었다.문밖에서 호명이 물었다."이제 막 일어나신 겁니까? 아직도 취기로 힘드십니까?"탕양은 머릿속이 어지럽고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괜찮다. 무슨 일이더냐?""식사하시라고 부르러 왔습니다. 아! 일곱째 아가씨께서 경성으로 돌아간 것을 알고 계십니까? 같이 가실 줄 알았는데 먼저 떠나셨더군요.""… 돌아갔다고?!"탕양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예!"호명이 그의 얼굴을 보다가 잠시 멈칫하며 말했다."의부님… 혹시 어젯밤 누구에게 맞으셨습니까?"탕양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만져 보았는데, 그제야 얼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황급히 동경을 찾아 얼굴을 비춰보았는데, 왼쪽 뺨에 여러 개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것 같았다.그러자 어렴풋이 한 여인이 세게 뺨을 때리며 욕설을 퍼붓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떠올랐다.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이 텅 비어 있어 창백해진 안색으로 생각에 잠겼다.‘설마 내가 취기를 빌어... 그래서 떠난 것이었구나...’이번 사건은 목숨을 내놓고 속죄해도 부족할 정도였다."말을 준비하거라! 어서!"탕양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소리
연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냉정언은 술잔을 들고 계속 탕양에게 술을 권했다. 잔을 몇 번이나 주고 받자, 탕양은 머리가 머리가 어지러워져 말조차 똑바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냉정언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말했다."술을 꽤 마셨다 보니, 탕양이 좀 취한 것 같네. 정원에 나가 산책을 조금 하면서 술기운을 가시는 것이 어떻소?"일곱째 아가씨도 약간 취한 상태였기에, 바람을 쐬며 땀을 내면 술이 깰 것 같다며 동의했다."예. 그럼 다들 돌아가서 쉬시지요. 제가 호명과 함께 탕 대인을 돌보겠습니다.""좋소. 수고하시게나!"냉정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자, 어서 돌아가시게!"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새가 흩어지는 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일곱째 아가씨는 호명과도 함께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어이가 없는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탕양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물었다."괜찮습니까? 걸을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탕양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는데, 술에 많이 취한듯 몸을 심하게 휘청거렸다."어찌 못 걷겠습니까? 취하지 않았습니다!""예. 그럼, 몇 걸음 더 걸어보시지요. 정말 못 걸으시겠으면 방으로 돌아가 쉬시고요. 취기를 덜어줄 탕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그러자 탕양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곧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는 뒤돌아 일곱째 아가씨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보시지요. 얼마나 똑바로 걷는지! 안 취했습니다. 이제 믿을 수 있습니까?"일곱째 아가씨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하하하. 예, 안 취하셨네요. 그럼 이만 나가서 함께 산책하시지요."그녀는 그가 오래 걷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기로 했다.역시나 문을 나서자마자 탕양은 난간을 붙잡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하도 휘청거리는 탓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기에, 일곱째 아가씨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를 부축했다.그러자
"탕 대인이 저를 예쁘다고 말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니 일곱째 아가씨께도 예쁘다고 말해 보십시오. 분명히 기뻐하실 것입니다!"하지만 탕 대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를 겁니다. 일곱째 아가씨는 이제 그런거에 좋아할 나이를 지났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예쁘다고 말하면, 그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어찌 그럴 리 있습니까? 누구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탕 대인, 대인께서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탕 대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예? 하하하. 그렇습니까?""예! 모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탕 대인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과찬입니다.""기분 좋으십니까?"택란이 묻자 탕 대인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 멈칫하며 말했다."이 녀석!"택란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탕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꼭 사랑받으시길 바랍니다."탕 대인은 이 말에 크게 감동해서 택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 고맙습니다."저녁엔 계약이 성공한 기념으로 연회가 열렸다.소박한 술자리긴 했지만, 커다란 술통들이 준비되어 있어 모두 마음껏 마시며 즐길수 있었다.택란은 술을 마시지 않기에, 주 아가씨가 매실청을 대신 준비해 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택란의 마음에 쏙 들었다.술잔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모두 패기 있게 약도성을 북당에서 제일가는 도성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벌써 독산을 어떻게 개발할지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독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다.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이 경치를 개발하자는 내용이었다.반면, 택란은 새로운 생각을 제안했다. 독산에 온천이 있으니 오두막을 지어 온천을 끌어들여 돈을 받고 여러 개의 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온천수가 몸에 좋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자고 제의하였다.택란의 생각은 이 시절
탕양은 자신이 여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했었다. 특히 일곱째 아가씨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기에 굳이 자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큰 착각이었다.여인의 마음은 늘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가씨는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내왔는데, 중년에 접어들며 그 외로움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누군가 곁에 있다면,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된 연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다.원가의 가훈은 항상 군주에게 충실하며, 엄청난 용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원가에서 키운 닭조차 남의 집의 닭보다 더욱 용감할 정도였다.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과연 용기있는 행동 일까?물론 그녀가 반드시 탕양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탕양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한다면, 그녀 역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오직 탕양뿐이었다.그리고 어쩌면 시도해 봐야만 서로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탕양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경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탕양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구혼에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택란이 주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탕 대인이 왜 나쁜 사람인 것이오?""여인을 훔쳐봤습니다.""탕 대인이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소? 어찌 못 보는 것이오?"주 아가씨는 택란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공주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가 여인을 사모하면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탕 대인은 일곱째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그녀는 탕양을 힐긋 바라보는데, 예전의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 없이 뜨겁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버틴다 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탕 대인, 지금 어디를 보는 것이오?"그때, 냉정언이 물었다."예? 무슨 말이십니까?"탕양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냉정언을 바라보자, 냉정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께서 계속 일곱째 아가씨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술렁이며 이상한 시선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주 아가씨가 급히 택란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보지도, 듣지도 마십시오!"탕양은 크게 당황하며 두 손을 마구흔들었다."아닙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냉 대인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아니오. 분명 아가씨의 옷깃과 가슴을 보고 있었소!"말을 마치자마자 냉 대인은 숭이를 안고 단호하게 밖으로 나갔고, 탕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 일곱째 아가씨를 쳐다봤다. 그러자 일곱째 아가씨는 기침을 하며 옷깃을 정리한 뒤 소리쳤다. "흥. 변태!"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도 돌아서 나가버렸다.탕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얼굴로 주 아가씨와 홍엽을 보며 말했다."다들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는..."홍엽이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눈이 자네 얼굴에 달려 있는데, 자네가 누굴 보고 어디를 보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주 아가씨는 택란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마마, 이제 탕 대인 같은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십시오. 인품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탕양은 여전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냉정언의 한마디에 그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져 버렸다.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명여야..."냉명여 또한 귀를 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탕 대인께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십니다!"탕양은 그만 머리를 감싼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