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의 말이 믿어진다문이가 원경릉 엄마가 격동하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며, “예, 그렇게 얘기했어요.”원경릉 엄마가 아픔으로 소리 없이 울부짖으며 원교수에게, “아직 기억해요? 어느 날 당신이 퇴근하고 왔는데 제가 딸이 돌아온 걸 봤다고 했잖아요. 걔가 술이 취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나한테 얘기도 했다고, 당신은 내가 환각을 봤다고 했지만 난 환각이 아닌 걸 알았어요. 정말 이었어요. 걔가 정말 돌아왔었던 거예요……”원교수는 생각이 났다. 경아가 시집을 갔고, 아이를 낳았다고도 했었다. 그때는 아내의 병이 심각해 졌다고, 아내는 중증 우울증으로 이 기간에는 환각을 볼 수 있고 딸의 죽음에 항상 마음을 두고 있어서 낮에 생각한 게 밤에 꿈으로 나오는 거라고, 딸을 보는 환각도 정상이라고 생각했다.당시 원교수는 그렇게 결론 내리고 다음날 계속 아내를 데리고 정신과 의사와 상담했는데, 정신과 의사도 환각이 나타났다고 하니 결국 마지막엔 그녀 자신조차 환각이었다고 믿기 시작했다.환각이 나타났으므로 약을 바꿨더니 더욱 적응을 못하고 결국 정말 많은 환각이 나타나 정서가 갈수록 불안정해지더니 서너 번의 자살 미수를 일으키고 어젯밤은 나가서 한동안 찾아다니다 겨우 발견했는데,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에 돌아갔는데, 그 학교가 철거되려고 하자 근처에서 밤새 울고 있었다고 했다.데리고 온 뒤 약을 먹이고 재워서 안정을 되찾은 줄 알았으나 오늘 목숨을 끊으려고 할 줄 몰랐다.이제서야 원씨 집안 세 식구는 비로소 문이의 말이 믿어졌다.하지만 원경릉 오빠가 바로 문제를 제기하며, “당신이 말하는 왕조는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갔다는 거죠? 당신은 시공을 왕래할 수 있는 겁니까? 정말 타임머신이 있나요?”문이가, “타임머신이 아니고, 말하자면 상당히 심오한데, 방금 제가 여동생이 수술을 받았다고 했잖아요, 동생이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혼수상태에 빠졌어요, 제가 절망에 빠졌을 때 누군가가 찾아와서는 ‘어디로 가서 그들이 희귀 금속으로 무기를 만드는 것을
원경릉 할머니와 희상궁의 한센병잔인하다, 하지만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은 인간에겐 늘 있는 일로 아무리 잔인하다고 해도 결국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 받아들이고 내려 놓는 것이다.문이는 자신이 가지고 온 편지와 선물로 어느정도 원경릉 집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문이가 돌아가겠다고 인사할 때 원교수가 그녀에게 돈을 주었으나 문이는 비행기표 값만 가져갔다. 그녀는 상당히 긴축재정인 상태로 동생이 퇴원한 뒤 재활치료를 받아야 해서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원교수는 문이의 휴대전화 번호를 저장하고 만약 또 기회가 돼서 그쪽으로 가게 될 때 반드시 알려 달라고 했다.문의가 알았다고 답했으나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인생의 기묘한 기회는 일생에 어쩌면 딱 그 한번 뿐이었을지도 모른다.원교수는 아내를 달래고 병원으로 갔다.원교수의 어머니 소옥의(蘇玉義)는 광원시 한의대 부속 병원 종양내과 노교수로 퇴직 후에 다시 원직에 복직했는데 원경릉 사건이후 상심이 커서 병이 생기는 바람에 사직했다.여러차례 발병하는 바람에 병원 요양재활과에 입원해 있으며 가족이 마주하면 눈물만 나니 본인도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이 주된 이유다.노인이 젊은 사람을 먼저 보내는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어쩌다가 생각이 나면 가슴을 칼로 저미 듯 아프니 소교수 나이에 어떻게 견딜 수가 있을까?며느리가 투신 자살을 기도했다는 일이 인터넷으로 거의 라이브에 가깝게 올라와서 광원시 SNS권역의 사람들은 다 퍼 날랐고, 소교수 본인만 모르고 병원안의 의사와 간호사는 모두 알고 개인적으로 이 일에 대해 얘기했다.소교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동정의 눈빛을 받자 의심이 들기 시작해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간호사가 SNS의 라이브방송을 보여주었다. 소교수는 영상을 보다가 돌발적으로 심근경색을 일으켰다.원교수가 도착했을 때 소교수는 이미 응급처치 중이었다.북당, 초왕부탕양과 구사가 연합해서 한차례 조사해 보니 궁중엔 한센병이 들어온
희상궁 보기 작전원경릉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해보더니, “그럴 리 없다는 말씀이시죠, 결국 재상께서 최근 희상궁의 심기를 건드린 일도 없으니 재상에게 화를 낼 리 없다.”“말하자면 초왕부 사람들 중 누가 희야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모르겠지만.” 주재상이 진지하게 말했다.원경릉이 웃으며, “그건 더 불가능 합니다. 초왕부에서 심지어 저도 희상궁의 말을 듣는데 누가 감히 희상궁에게 잘못할 수 있겠어요?”주재상이 이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걸 것이, 곰곰 생각하더니 미심쩍어 하며, “아픈 거 아닙니까? 감기에 걸렸었는데 나았나요?”원경릉이, “벌써 좋아졌어요, 나은 뒤에 저와 같이 국공부에도 갔었는 걸요.”“국공부에?” 주재상이 생각해보더니 더는 말하지 않고 뒷짐을 지고 나갔다.주재상은 국공부에 가서 주국공과 이것저것 되는 대로 주워섬기다가 비로소 본론에 들어가 그날 태자비가 희상궁을 데리고 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주국공은 주재상이 올때부터 그의 심중을 꿰뚫고 있었지만 와서 부인의 병세를 묻는데 감동해서 주재상이 묻는 말에 솔직하게, “태자비가 처음 왔을 때는 아내에게 진통제를 줬으나 당시 나와 가족들이 태자비를 믿지 않아 쫓아 보냈지.”주재상이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쫓아냈다고? 가시라고 배웅한 건가 아니면 나가라고 쫓아낸 건가? 불쾌해 하진 않고?”주국공이 웃으며, “당연히 좀 불쾌해 했지.”주재상이 순간 얼굴이 싹 변하며 탁자를 내리치며 이를 갈더니, “원인을 찾아냈어, 이 늙은이 때문이군!”주국공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뭐 늙은이라고?”주재상이 눈을 부릅뜨고, “늙은이를 늙은이라고 부르는 게 뭐, 이 사리에 어두운 늙다리야, 내가 널 가만 둘 것 같으냐?”주재상이 저녁때 다시 초왕부에 왔는데 원경릉이 보니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고 눈가에 검게 멍이 들었는 게 누군가에게 쥐어 터진 것 같다. 걸어가는 폼도 다리를 절름거리는 것이 예전에 구사와 싸웠을 때 우문호와 똑같다.얼굴엔 멍이 들었고 이를 갈고 있는 모습
희상궁은 창문만 빼꼼 열었다. 마스크를 쓴 희상궁이 창문 밖에서 달려오는 주수보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주수보는 창문이 닫히기 전에 재빠르게 손을 뻗어 희상궁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는 생각보다 많이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눈 밑이 시커멓고 달려오는 자세도 이상했다. 희상궁은 그런 주수보를 보고 깜짝 놀라서 몸을 뒤로 뺐다. “재상! 나이가 하나 둘도 아닌데, 싸우긴 뭘 싸우고 그래요?” 희상궁이 말했다.주수보는 희상궁을 바라보며 “누구든 당신을 괴롭히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라고 말했다.“세상에 이 상처들 좀 봐!” 희상궁은 눈을 질끈 감으며 탄식했다.“걱정 마. 그 어린놈이 나보다 더 크게 다쳤어.”희상궁은 자랑스럽다는 듯 웃는 주수보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이렇게 얻어맞았으니 앞으로는 절대 그 사람을 찾아가지 마세요!”주수보는 창문의 양쪽을 잡고 올라가려는 자세를 취했다. “근데 왜 여기 숨어있는 거야? 그리고 얼굴에 그건 뭐야? 결핵에 걸린 사람들이 쓰는 걸 왜 네가 하고 있어?”“그……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희상궁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디가 안 좋아?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이야?” 주수보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전과 달라진 희상궁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는 희상궁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 그녀의 얼굴에 쓴 마스크를 잡아당기려고 했다.“이제 그만 가세요! 지금 제 흉악한 몰골을 당신께 보여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희상궁이 고개를 돌렸다.주수보는 얼굴이 붉어진 희상궁을 보고 웃었다. “바보같이 굴지 마. 지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얼굴에 신경을 쓰는 거야? 나는 네 얼굴이 어떻든 신경 안 쓴다. 걱정 말고 이 문 좀 열어보거라. 네가 지금 태자비도 보려고 하지 않는 걸 보니 보통 아픈 게 아니야. 내가 네 상태를 좀 봐야겠다.”희상궁은 코맹맹이 소리로 주수보에게 “그나저나 주국공을 찾아가 싸운 겁니까?”라고 물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빙빙 돌리지 말고 할 말 있으면 해.” 원경릉이 말했다. 우문호는 밖으로 나가는 원경릉의 뒤를 쫓았다. “무슨 소리야. 난 그저…… 저녁만 되면 내가 그렇게 애원하는데 너는 항상 이런저런 핑계를 대잖아.”“내가 언제 핑계를 댔어? 핑계가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거절을 했지.” 원경릉이 말했다.“그럼 넌 네 행동이 잘 했다는 거야?” 원경릉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우문호를 노려보았다. “너는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인 거야?”“내가 뭐 거창한 거 바랬어?” 우문호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살다 살다 너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 나도 밤에 잠 좀 편하게 자자고!”“뭐? 생각해 봐. 이 혈기왕성한 나이에 너만 보면 벌떡벌떡 일어나는 게 정상이지. 늙은이처럼 밤마다 골골대는 게 정상이야? 나같은 남자가 어딨어? 너 복받은 거야! 다른 여자들은 다 부러워할걸?”“어휴, 됐거든!” 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웃음이 터질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아이고, 아무리 네가 이래도 네 마음 다 안다. 그럼 이 얘기는 그만하고, 내일 네 부친을 배웅해 드리자.”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는 그녀를 달랬다. “그래. 근데, 정후 혼자 갈까? 아니면 누군가를 데리고 떠날까?”“장모께서 기어코 따라가려 하시고, 첩 주씨는 경중에 남아 노부인을 모시겠다며 장인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더라고. 아마 오지에 가서 고생하는 것보다 여기에 남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선 모양이야.”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경릉의 어머니인 황씨는 지아비를 섬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으로 남자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그를 어르고 달래는 그런 여성이었다. 그녀는 정후가 밖에서 불미스러운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정후가 그간 힘들어서 참지 못하고 분출한 것이라며 불쌍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정후를 원망하지 않고 그를 용서했다. 원경릉의 모친인 황씨는 대외적으로 정후가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여인들이 정후를 이용한 것이고 정후는 강요
우문호는 즉시 탕양을 혜민서로 보내 다섯 달 내 문둥병 환자의 기록을 찾아보라고 했다. “문둥병 환자가 길거리를 마음대로 다니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데……” 주수보가 말했다.“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병에 걸렸지만 가난해서 병원에 가지 못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환자가 자신이 문둥병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심한 두드러기 정도로 여겼을 겁니다.” 원경릉이 말했다.“아니 그럴 가능성은 적어. 문둥병은 혜민서에서 엄격하게 관리를 하기에 일 년에 적어도 세 번은 각 가구를 돌며 문둥병 환자가 있는지 순찰을 하거든 그때 발각되면 즉시 격리시켜 전염을 예방해.” 우문호가 말했다. ‘그 부인은 손에 문둥병이 번질 정도로 심각했는데 혜민서 순찰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병세가 심각했으니 한눈에 문둥병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원경릉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북당의 혜민서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어? 매년 문둥병 때문에 세 번의 순찰을 하려면 인력 낭비가 심할 텐데? 이렇게 인력낭비가 심한 국가사업을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혹시 경중에는 문둥병 발병률이 높아?” “5년 전 한번 크게 문둥병이 돌았어. 그때 백성 수천 명이 걸렸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 그 이후로 북당은 문둥산을 만들어 환자를 격리하기 시작했고, 매년 세 번의 순찰을 하기로 했지. 문둥병은 너도 알다시피 걸리자마자 바로 발병하는 병이 아니라 잠복기가 있으니 추적 조사가 필요해.” 우문호가 대답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왜 순찰을 세 번씩 하는지 이해가 됐다.“그럼 문둥병 환자들은 지금 모두 문둥산에 있는 거야?”“응. 아마 삼백 명 정도가 문둥산에 있을 거야.” 우문호가 말했다. 본래는 수천 명의 환자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다 죽고 삼백여 명이 남아있다. 문둥병은 걸리자마자 바로 죽는 병이 아니기에 병을 안고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원경릉은 문둥산에서 죽을 날만 기다릴 환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두 사람의
“희상궁을 내가 치료해도 된다는 거야?” 원경릉의 눈빛이 반짝였다. 우문호는 원경릉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반대를 해도 그렇게 할 거잖아. 나는 가끔 네가 다른 사람보다 너 자신을 먼저 돌보고 아꼈으면 좋겠어. 내 기억 속의 문둥병은 정말 끔찍한 병이거든. 내가 이렇게 허락을 해도 아마 부황을 포함해 조정의 문무백관들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너는 그냥 왕비가 아니라 태자비니까. 다들 이 병이 불치병이라고 여기고 있고, 병에 걸린 사람은 무조건 격리해야 한다고 믿고 있어. 지금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게 쉽지는 않을 거야.”원경릉은 그 말을 듣고 화를 버럭 냈다. “환자들이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렸겠어? 환자들을 가엽게 여겨도 모자랄 판에 격리해야 마땅하다고 여긴다니! 환자들과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 하루아침에 몹쓸 병에 걸렸다고 핍박을 받고 격리까지 당해. 그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겠어?”우문호는 그녀를 잡아당겨 의자에 앉혔다. “네 말 뜻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지금 시대가 그래. 사람들이 문둥병이라고 하면 얼마나 칠색 팔색 하는데! 사람들은 5년 전에 겪은 대규모의 감염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너는 이 많은 사람들의 편견을 깰 자신이 있어? 그리고 부황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들을 치료하러 간다는 건 반역이고 대역 죄야.”“첫 번째, 지금 시대가 어떻든 사람들의 편견이 뭐든. 문둥병은 고칠 수 있는 병이야. 치료가 가능한 환자를 그냥 두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너는 희상궁이 죽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있어?”그가 아무리 그녀를 설득하려고 해도 설득이 되지 않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가끔은 말이야. 나도 날 모르겠어. 머리로는 네 고집을 꺾어야 한다는 걸 아는데, 네 당찬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너를 지지하게 돼.”“참나, 뭐라는 거야 갑자기.” 원경릉이 웃었다. 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의 머리를 쓸었다. “그래 나도 모르겠다. 뭐…… 부황께 욕 몇 마디 먹겠지.”“부황께 욕을 먹더라도 수백 명의 인명을 구하
“문둥산에 있는 환자들은 이미 그곳에 적응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그들을 자극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입니다. 태자비께서 약이 있다면 추후에 새로운 환자가 생겼을 때 사용하는 게 어떻습니까? 5년 전에 감염이 됐지만 아직 잠복기인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탕양은 우문호를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탕양, 눈앞에 있는 사람도 구하지 않는데 아직 아프지도 않은 사람을 구하겠다니. 참으로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문둥병에 걸렸다고는 하나 그 사람들도 북당의 귀한 백성이네. 본왕도 태자비가 문둥산의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했을 때 탕양과 같은 반응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이 맞아. 수백 명의 백성을 구하는 게 그게 맞다.”탕양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하마터면 설득당할 뻔했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수백의 사람을 구하는 것 좋죠. 하지만 겨우 백관들의 마음을 사셨는데, 이번 일로 또 눈밖에 나실까 전 그게 걱정입니다.”“본왕이 백관들의 마음을 얻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나?”“당연히 이후 북당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백관들하고 좋은 관계를 갖는 게 좋죠.”“탕양, 네 생각엔 현 북당의 책임자는 누구냐?”“황상이시죠.”우문호는 웃었다. “그럼 앞으로 그 책임자가 얼마나 더 북당을 다스릴 것 같으냐?”탕양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전하, 그런 건 함부로 입 밖에 내셔서는 안됩니다!”“말을 해보래도?”“부황께서는 마흔이 좀 넘으셨으니, 아마…… 한참 남으셨습니다.”“그렇지? 부황께서 아직 북당의 책임자를 나에게 물려주실 기미가 없는데, 내가 지금부터 백관들의 눈치를 볼 이유가 뭐 있겠느냐? 나 이 일로 태자 직위를 잃어도 금세 되찾을 자신이 있다. 먼 미래를 걱정하느라 눈앞에 문제를 보지 못하는 것보다 멍청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탕양은 우문호의 말이 일리는 있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우문호가 태자가 아닌 초왕이었다면 그가 무슨 일을 해도 탕양은 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이미 결정한 우문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