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상궁 보기 작전원경릉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해보더니, “그럴 리 없다는 말씀이시죠, 결국 재상께서 최근 희상궁의 심기를 건드린 일도 없으니 재상에게 화를 낼 리 없다.”“말하자면 초왕부 사람들 중 누가 희야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모르겠지만.” 주재상이 진지하게 말했다.원경릉이 웃으며, “그건 더 불가능 합니다. 초왕부에서 심지어 저도 희상궁의 말을 듣는데 누가 감히 희상궁에게 잘못할 수 있겠어요?”주재상이 이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걸 것이, 곰곰 생각하더니 미심쩍어 하며, “아픈 거 아닙니까? 감기에 걸렸었는데 나았나요?”원경릉이, “벌써 좋아졌어요, 나은 뒤에 저와 같이 국공부에도 갔었는 걸요.”“국공부에?” 주재상이 생각해보더니 더는 말하지 않고 뒷짐을 지고 나갔다.주재상은 국공부에 가서 주국공과 이것저것 되는 대로 주워섬기다가 비로소 본론에 들어가 그날 태자비가 희상궁을 데리고 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주국공은 주재상이 올때부터 그의 심중을 꿰뚫고 있었지만 와서 부인의 병세를 묻는데 감동해서 주재상이 묻는 말에 솔직하게, “태자비가 처음 왔을 때는 아내에게 진통제를 줬으나 당시 나와 가족들이 태자비를 믿지 않아 쫓아 보냈지.”주재상이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쫓아냈다고? 가시라고 배웅한 건가 아니면 나가라고 쫓아낸 건가? 불쾌해 하진 않고?”주국공이 웃으며, “당연히 좀 불쾌해 했지.”주재상이 순간 얼굴이 싹 변하며 탁자를 내리치며 이를 갈더니, “원인을 찾아냈어, 이 늙은이 때문이군!”주국공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뭐 늙은이라고?”주재상이 눈을 부릅뜨고, “늙은이를 늙은이라고 부르는 게 뭐, 이 사리에 어두운 늙다리야, 내가 널 가만 둘 것 같으냐?”주재상이 저녁때 다시 초왕부에 왔는데 원경릉이 보니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고 눈가에 검게 멍이 들었는 게 누군가에게 쥐어 터진 것 같다. 걸어가는 폼도 다리를 절름거리는 것이 예전에 구사와 싸웠을 때 우문호와 똑같다.얼굴엔 멍이 들었고 이를 갈고 있는 모습
희상궁은 창문만 빼꼼 열었다. 마스크를 쓴 희상궁이 창문 밖에서 달려오는 주수보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주수보는 창문이 닫히기 전에 재빠르게 손을 뻗어 희상궁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는 생각보다 많이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눈 밑이 시커멓고 달려오는 자세도 이상했다. 희상궁은 그런 주수보를 보고 깜짝 놀라서 몸을 뒤로 뺐다. “재상! 나이가 하나 둘도 아닌데, 싸우긴 뭘 싸우고 그래요?” 희상궁이 말했다.주수보는 희상궁을 바라보며 “누구든 당신을 괴롭히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라고 말했다.“세상에 이 상처들 좀 봐!” 희상궁은 눈을 질끈 감으며 탄식했다.“걱정 마. 그 어린놈이 나보다 더 크게 다쳤어.”희상궁은 자랑스럽다는 듯 웃는 주수보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이렇게 얻어맞았으니 앞으로는 절대 그 사람을 찾아가지 마세요!”주수보는 창문의 양쪽을 잡고 올라가려는 자세를 취했다. “근데 왜 여기 숨어있는 거야? 그리고 얼굴에 그건 뭐야? 결핵에 걸린 사람들이 쓰는 걸 왜 네가 하고 있어?”“그……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희상궁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디가 안 좋아?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이야?” 주수보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전과 달라진 희상궁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는 희상궁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 그녀의 얼굴에 쓴 마스크를 잡아당기려고 했다.“이제 그만 가세요! 지금 제 흉악한 몰골을 당신께 보여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희상궁이 고개를 돌렸다.주수보는 얼굴이 붉어진 희상궁을 보고 웃었다. “바보같이 굴지 마. 지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얼굴에 신경을 쓰는 거야? 나는 네 얼굴이 어떻든 신경 안 쓴다. 걱정 말고 이 문 좀 열어보거라. 네가 지금 태자비도 보려고 하지 않는 걸 보니 보통 아픈 게 아니야. 내가 네 상태를 좀 봐야겠다.”희상궁은 코맹맹이 소리로 주수보에게 “그나저나 주국공을 찾아가 싸운 겁니까?”라고 물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빙빙 돌리지 말고 할 말 있으면 해.” 원경릉이 말했다. 우문호는 밖으로 나가는 원경릉의 뒤를 쫓았다. “무슨 소리야. 난 그저…… 저녁만 되면 내가 그렇게 애원하는데 너는 항상 이런저런 핑계를 대잖아.”“내가 언제 핑계를 댔어? 핑계가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거절을 했지.” 원경릉이 말했다.“그럼 넌 네 행동이 잘 했다는 거야?” 원경릉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우문호를 노려보았다. “너는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인 거야?”“내가 뭐 거창한 거 바랬어?” 우문호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살다 살다 너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 나도 밤에 잠 좀 편하게 자자고!”“뭐? 생각해 봐. 이 혈기왕성한 나이에 너만 보면 벌떡벌떡 일어나는 게 정상이지. 늙은이처럼 밤마다 골골대는 게 정상이야? 나같은 남자가 어딨어? 너 복받은 거야! 다른 여자들은 다 부러워할걸?”“어휴, 됐거든!” 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웃음이 터질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아이고, 아무리 네가 이래도 네 마음 다 안다. 그럼 이 얘기는 그만하고, 내일 네 부친을 배웅해 드리자.”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는 그녀를 달랬다. “그래. 근데, 정후 혼자 갈까? 아니면 누군가를 데리고 떠날까?”“장모께서 기어코 따라가려 하시고, 첩 주씨는 경중에 남아 노부인을 모시겠다며 장인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더라고. 아마 오지에 가서 고생하는 것보다 여기에 남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선 모양이야.”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경릉의 어머니인 황씨는 지아비를 섬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으로 남자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그를 어르고 달래는 그런 여성이었다. 그녀는 정후가 밖에서 불미스러운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정후가 그간 힘들어서 참지 못하고 분출한 것이라며 불쌍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정후를 원망하지 않고 그를 용서했다. 원경릉의 모친인 황씨는 대외적으로 정후가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여인들이 정후를 이용한 것이고 정후는 강요
우문호는 즉시 탕양을 혜민서로 보내 다섯 달 내 문둥병 환자의 기록을 찾아보라고 했다. “문둥병 환자가 길거리를 마음대로 다니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데……” 주수보가 말했다.“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병에 걸렸지만 가난해서 병원에 가지 못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환자가 자신이 문둥병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심한 두드러기 정도로 여겼을 겁니다.” 원경릉이 말했다.“아니 그럴 가능성은 적어. 문둥병은 혜민서에서 엄격하게 관리를 하기에 일 년에 적어도 세 번은 각 가구를 돌며 문둥병 환자가 있는지 순찰을 하거든 그때 발각되면 즉시 격리시켜 전염을 예방해.” 우문호가 말했다. ‘그 부인은 손에 문둥병이 번질 정도로 심각했는데 혜민서 순찰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병세가 심각했으니 한눈에 문둥병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원경릉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북당의 혜민서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어? 매년 문둥병 때문에 세 번의 순찰을 하려면 인력 낭비가 심할 텐데? 이렇게 인력낭비가 심한 국가사업을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혹시 경중에는 문둥병 발병률이 높아?” “5년 전 한번 크게 문둥병이 돌았어. 그때 백성 수천 명이 걸렸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 그 이후로 북당은 문둥산을 만들어 환자를 격리하기 시작했고, 매년 세 번의 순찰을 하기로 했지. 문둥병은 너도 알다시피 걸리자마자 바로 발병하는 병이 아니라 잠복기가 있으니 추적 조사가 필요해.” 우문호가 대답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왜 순찰을 세 번씩 하는지 이해가 됐다.“그럼 문둥병 환자들은 지금 모두 문둥산에 있는 거야?”“응. 아마 삼백 명 정도가 문둥산에 있을 거야.” 우문호가 말했다. 본래는 수천 명의 환자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다 죽고 삼백여 명이 남아있다. 문둥병은 걸리자마자 바로 죽는 병이 아니기에 병을 안고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원경릉은 문둥산에서 죽을 날만 기다릴 환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두 사람의
“희상궁을 내가 치료해도 된다는 거야?” 원경릉의 눈빛이 반짝였다. 우문호는 원경릉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반대를 해도 그렇게 할 거잖아. 나는 가끔 네가 다른 사람보다 너 자신을 먼저 돌보고 아꼈으면 좋겠어. 내 기억 속의 문둥병은 정말 끔찍한 병이거든. 내가 이렇게 허락을 해도 아마 부황을 포함해 조정의 문무백관들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너는 그냥 왕비가 아니라 태자비니까. 다들 이 병이 불치병이라고 여기고 있고, 병에 걸린 사람은 무조건 격리해야 한다고 믿고 있어. 지금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게 쉽지는 않을 거야.”원경릉은 그 말을 듣고 화를 버럭 냈다. “환자들이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렸겠어? 환자들을 가엽게 여겨도 모자랄 판에 격리해야 마땅하다고 여긴다니! 환자들과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 하루아침에 몹쓸 병에 걸렸다고 핍박을 받고 격리까지 당해. 그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겠어?”우문호는 그녀를 잡아당겨 의자에 앉혔다. “네 말 뜻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지금 시대가 그래. 사람들이 문둥병이라고 하면 얼마나 칠색 팔색 하는데! 사람들은 5년 전에 겪은 대규모의 감염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너는 이 많은 사람들의 편견을 깰 자신이 있어? 그리고 부황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들을 치료하러 간다는 건 반역이고 대역 죄야.”“첫 번째, 지금 시대가 어떻든 사람들의 편견이 뭐든. 문둥병은 고칠 수 있는 병이야. 치료가 가능한 환자를 그냥 두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너는 희상궁이 죽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있어?”그가 아무리 그녀를 설득하려고 해도 설득이 되지 않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가끔은 말이야. 나도 날 모르겠어. 머리로는 네 고집을 꺾어야 한다는 걸 아는데, 네 당찬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너를 지지하게 돼.”“참나, 뭐라는 거야 갑자기.” 원경릉이 웃었다. 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의 머리를 쓸었다. “그래 나도 모르겠다. 뭐…… 부황께 욕 몇 마디 먹겠지.”“부황께 욕을 먹더라도 수백 명의 인명을 구하
“문둥산에 있는 환자들은 이미 그곳에 적응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그들을 자극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입니다. 태자비께서 약이 있다면 추후에 새로운 환자가 생겼을 때 사용하는 게 어떻습니까? 5년 전에 감염이 됐지만 아직 잠복기인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탕양은 우문호를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탕양, 눈앞에 있는 사람도 구하지 않는데 아직 아프지도 않은 사람을 구하겠다니. 참으로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문둥병에 걸렸다고는 하나 그 사람들도 북당의 귀한 백성이네. 본왕도 태자비가 문둥산의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했을 때 탕양과 같은 반응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이 맞아. 수백 명의 백성을 구하는 게 그게 맞다.”탕양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하마터면 설득당할 뻔했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수백의 사람을 구하는 것 좋죠. 하지만 겨우 백관들의 마음을 사셨는데, 이번 일로 또 눈밖에 나실까 전 그게 걱정입니다.”“본왕이 백관들의 마음을 얻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나?”“당연히 이후 북당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백관들하고 좋은 관계를 갖는 게 좋죠.”“탕양, 네 생각엔 현 북당의 책임자는 누구냐?”“황상이시죠.”우문호는 웃었다. “그럼 앞으로 그 책임자가 얼마나 더 북당을 다스릴 것 같으냐?”탕양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전하, 그런 건 함부로 입 밖에 내셔서는 안됩니다!”“말을 해보래도?”“부황께서는 마흔이 좀 넘으셨으니, 아마…… 한참 남으셨습니다.”“그렇지? 부황께서 아직 북당의 책임자를 나에게 물려주실 기미가 없는데, 내가 지금부터 백관들의 눈치를 볼 이유가 뭐 있겠느냐? 나 이 일로 태자 직위를 잃어도 금세 되찾을 자신이 있다. 먼 미래를 걱정하느라 눈앞에 문제를 보지 못하는 것보다 멍청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탕양은 우문호의 말이 일리는 있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우문호가 태자가 아닌 초왕이었다면 그가 무슨 일을 해도 탕양은 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이미 결정한 우문
정후는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억울하다 억울해! 너희들이 여기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동안 나는 타향에서 비렁뱅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겠네……”원경릉은 그의 말을 딱 잘랐다.“부친, 진짜 비렁뱅이처럼 살게 해줘요? 원한다면 지금 당장 내가 탕양에게 말해서 준비된 거처를 팔아버리라고 할 테니 모친하고 둘이 비렁뱅이처럼 살아보세요. 구걸하기 편하게 바가지 하나씩은 제가 마련해 드릴 테니!” 그제야 정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원경릉은 그를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 조모를 보았다. 그녀는 손씨 아주머니에게 밖에 나갔다 오라고 한 후 조모의 옆에 앉았다. 조모는 검은 비단옷을 입고 있었고 새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이 햇빛에 반짝였다. 조모는 원경릉을 보며 미소를 지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이 늙은이는 신경 쓸 것 없다.” 노부인이 원경릉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방금까지 정후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원경릉도 조모의 말에 금방 숙연해졌다. 원경릉은 문득 정후가 멀리 떠난 후 조모가 돌아가시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삼둥이를 낳은 후로부터는 가끔 생사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원경릉은 슬퍼하는 조모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조모, 나중에 제가 삼둥이들을 데리고 찾아오겠습니다.”’원경릉은 고개를 들어 조모를 보았다. “데리고 오면 너무 소란스러울까요? 아니면 조모께서 왕부로 오셔서 지내시는 것도 좋습니다.”노부인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 “그래, 이참에 왕부로 가자.” 원경릉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있는 손씨 아주머니에게 짐을 싸라고 했다.노부인은 정후 내외가 보기 싫은 듯 대문이 아닌 뒷마당에 딸린 작은 문으로 나왔다. 마차에 올라탄 노부인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왕부로 향했다. 왕부로 가는 내내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후는 자신의 모친이 원경릉을 따라 왕부로 갔다는 말을 듣고 대성통곡을 하며 황씨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초왕부에 도착한 노부인은 방금까지의 근심은 어디 갔는지 삼둥이에게 돌진했다. 삼둥이들은 마치 할머니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방긋방긋 웃으며 그녀와 즐겁게 놀았다. 조그마한 손과 발로 침상의 이불을 힘껏 차는 모습을 보니 노부인은 잠시나마 정후를 잊을 수 있었다.노부인의 진심 어린 미소를 보자 원경릉은 안심이 되었다. ‘삼둥이가 복덩이야 복덩이!’희상궁의 감염 경로는 아직까지도 파악되지 않았다. 당시 너무 경황도 없었을뿐더러 만아의 증언만 듣고 여성을 특정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탕양은 답답한 마음에 문둥산을 지키는 수위를 사적으로 연락해 만나 술을 마셨다. 탕양은 수위가 술에 많이 취한 것 같자 조용히 본심을 드러냈다.“어이 형씨, 혹시 전에 문둥병 환자가 실종되거나 도망을 갔던 적이 있었나?”“음…… 있었지요! 몇 달 전에 병자가 실종됐는데, 시체도 못 찾았어요.”“그래? 생긴 거나 체구는 어떤가?”“여자였는데 그냥 보통 체격이었던 것 같은데…… 딸국!”탕양은 그에게 꼬치꼬치 캐물었고 수위는 곧잘 대답했다. ‘실종됐다는 그 여자가 만아가 말한 여자의 특징과 부합한데?’“근데 탕대인, 그 여자는 왜요?”“아닐세.”“그 제가 듣자 하니 북쪽 절벽에서 뛰어내렸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가족들도 못 보고 맨날 병자들끼리 모여있지…… 나 같아도 살아있는 게 죽는 것만 못할 것 같아 정말!” 수위가 술을 들이켜며 말했다.‘계략을 실행한 후에는 여자가 필요 없어지니 절벽으로 던진 건가?’ 탕양은 술을 마시면서도 수위의 말을 모두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희상궁은 주수보의 끈질긴 설득 끝에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기로 했다. 원경릉은 희상궁을 치료한 후 곧장 나와 샤워를 하고 옷도 뜨거운 물에 삶았다. 9월 중순이 되자, 궁에 좋은 소식이 들렸다. “호비(扈妃)가 임신을 했답니다!”호비는 임신 소식을 알자마자 궁 전체에 이를 알리고 그 후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진북후는 딸의 임신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사
사식이는 다들 일곱째 고모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의아해하며 물었다.“일곱째 고모께서 편지를 보내신 겁니까?”그러자 셋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편지가 왔단다. 며칠 놀다가 곧 경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구나.”사식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일곱째 고모께서 돌아오고 나서 혼담을 꺼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곱째 고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이 난감해질 텐데요.”노태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미 모든 일을 저질렀느넫 이제 와서 동의하지 않는다니? 감히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목을 매겠다!”노태군은 일곱째 고모가 열여덟 살이 되던 때부터 그녀의 혼사를 기다려 왔다. 계속 기다리다가 이미 머리카락이 다 하얘져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혼인 기약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혼사를 정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았다.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일곱째 아가씨가 빨리 시집가기를 바라고 이씩 때문에, 이 일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했다.“사식아, 네 고모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거의 죽게 생겼다고 전해라!”노태군이 단호히 명령했다.딸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저주까지 불사하는 그녀는 정말 독한 늙은이었다.서일은 탕양을 데리고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중매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바로 황후를 찾아가야 했다.소월궁에서 우문호 부부는 탕양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우문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짐이 보기엔, 일찍 일곱째 아가씨에게 네 마음을 고백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리 일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탕양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고,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불안에 휩싸여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폐하,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제발 사람을 보내 그녀가 어디 있는지
오래전의 악몽이 마음속에서 되살아나, 탕양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녀가 혹시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스스로 뺨을 몇 대 때리고는 다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를 따라잡으려 죽자고 달려도, 끝내 그녀를 볼 수 없었다.그렇게나 빨리 도망간 건가?그렇게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쉬지도 않고 곧장 원가로 달려갔다.마침 서일과 사식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와 있던 참이었는데, 대문 앞에 도착하니, 탕 대인이 거지처럼 문지기 앞에 쓰러지다시피 주저앉아 먼지투성이의 얼굴에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문지기의 옷깃을 움켜쥔 채 다급히 묻고 있었다. “일곱째 아가씨는? 너희 일곱째 아가씨는 대체… 어디 있느냐?”그러자 문지기는 놀라 얼어붙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나 사나운 탕 대인을 본 적이 없어 더듬거리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일곱... 일곱째 아가씨께서... 탕 대인과 함께 약도성에 가신 거 아니셨습니까…?”“그럼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탕양이 소리쳤다.“아직... 아직 못 뵈었습니다…!”바로 그때, 서일이 다가와 문지기한테서 탕 대인을 떼어놓으며 말했다.“무슨 일이십니까?! 우선 손부터 놓으십시오. 옷이 다 찢어지겠습니다.”탕 대인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며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큰일이야… 내가 그녀를 망쳐 버렸네! 죽어도 이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네…!”“무슨 일입니까? 저희 고모께서 지금 어디 계십니까?”사식이가 다급히 물었다.“그녀는...“탕 대인은 비참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 투성이가 된 얼굴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네… 나는 돌아온 줄 알고 있었네...”바로 그때,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지팡이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원가의 노태군이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탕양이 고개를 들자, 노태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탕
냉정언은 자기도 모르게 죄책잠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 정말 큰일을 저지른 것인가?’그는 그저 탕양에게 술을 먹여 일곱째 아가씨에게 진심 어린 말을 꺼낼 용기를 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탕양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황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고, 다들 그를 안타까워했었다.탕양은 다섯째가 초왕이었을 때부터 초왕부와 다섯째,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그렇게 반평생을 북당을 위해 헌신했으나, 그를 진정으로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과거에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탓에 평생을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한채, 조정을 위해 뛰어난 공을 세우고도 관직이나 봉록을 거절하며 죄를 속죄하듯 살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실수를 범할 수 있는 법이니까. 탕양은 이미 그 누구보다 훌륭히 잘해왔고, 게다가 정과 의리에 발목 잡힌 것은 많은 영웅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였다.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결코 그 혼자만이 저지른 행동이 아니었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와 벗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술에 취하지 않은 이상, 맑은 정신으로는 절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을 것이기에, 술에 취하게 하면, 경성이 아닌 변방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몇 마디 속마음 정도는 털어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예상외로, 탕 대인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쌓였던 건지... 만취 상태에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대체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품었던 것일까?상황이 아주 복잡해졌다.‘탕 대인 아주 못 쓰겠구먼! 이를 어찌 마무리 짓는단 말이냐…?!’원가의 상대하기 쉽지 않은 여장군들을 떠올리니, 냉정언은 순간 뒷골이 땡겨 머리를 쥐어뜯었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냉명여가 눈 앞에 서 있었다. 냉명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버지, 탕 대인은 어찌 일곱째 아가씨와 그런 일을 벌인
탕양은 지금까지 살면서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이 단 하나뿐이었다. 비록 그 일도 나중에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지만, 그 일로 그는 술에 취하면 정말로 이성과 기억을 잃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렇기에 그 후로 술을 마시더라도 되도록이면 취하지 않게 애썼다. 하지만 어젯밤은 예외였다. 그는 이곳 사람 모두를 믿고 있었기에 경계를 풀었던 것이다.남녀 간의 일도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가 되어서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의부님! 의부님!"바로 그때, 문밖에서 호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탕양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호통쳤다."일단 들어오지 말거라!"그는 급히 이불을 걷어내고, 바닥에서 옷을 찾아 황급히 입은 후, 이마를 문지르며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야 문을 열어 주었다.문밖에서 호명이 물었다."이제 막 일어나신 겁니까? 아직도 취기로 힘드십니까?"탕양은 머릿속이 어지럽고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괜찮다. 무슨 일이더냐?""식사하시라고 부르러 왔습니다. 아! 일곱째 아가씨께서 경성으로 돌아간 것을 알고 계십니까? 같이 가실 줄 알았는데 먼저 떠나셨더군요.""… 돌아갔다고?!"탕양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예!"호명이 그의 얼굴을 보다가 잠시 멈칫하며 말했다."의부님… 혹시 어젯밤 누구에게 맞으셨습니까?"탕양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만져 보았는데, 그제야 얼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황급히 동경을 찾아 얼굴을 비춰보았는데, 왼쪽 뺨에 여러 개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것 같았다.그러자 어렴풋이 한 여인이 세게 뺨을 때리며 욕설을 퍼붓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떠올랐다.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이 텅 비어 있어 창백해진 안색으로 생각에 잠겼다.‘설마 내가 취기를 빌어... 그래서 떠난 것이었구나...’이번 사건은 목숨을 내놓고 속죄해도 부족할 정도였다."말을 준비하거라! 어서!"탕양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소리
연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냉정언은 술잔을 들고 계속 탕양에게 술을 권했다. 잔을 몇 번이나 주고 받자, 탕양은 머리가 머리가 어지러워져 말조차 똑바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냉정언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말했다."술을 꽤 마셨다 보니, 탕양이 좀 취한 것 같네. 정원에 나가 산책을 조금 하면서 술기운을 가시는 것이 어떻소?"일곱째 아가씨도 약간 취한 상태였기에, 바람을 쐬며 땀을 내면 술이 깰 것 같다며 동의했다."예. 그럼 다들 돌아가서 쉬시지요. 제가 호명과 함께 탕 대인을 돌보겠습니다.""좋소. 수고하시게나!"냉정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자, 어서 돌아가시게!"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새가 흩어지는 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일곱째 아가씨는 호명과도 함께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어이가 없는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탕양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물었다."괜찮습니까? 걸을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탕양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는데, 술에 많이 취한듯 몸을 심하게 휘청거렸다."어찌 못 걷겠습니까? 취하지 않았습니다!""예. 그럼, 몇 걸음 더 걸어보시지요. 정말 못 걸으시겠으면 방으로 돌아가 쉬시고요. 취기를 덜어줄 탕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그러자 탕양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곧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는 뒤돌아 일곱째 아가씨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보시지요. 얼마나 똑바로 걷는지! 안 취했습니다. 이제 믿을 수 있습니까?"일곱째 아가씨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하하하. 예, 안 취하셨네요. 그럼 이만 나가서 함께 산책하시지요."그녀는 그가 오래 걷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기로 했다.역시나 문을 나서자마자 탕양은 난간을 붙잡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하도 휘청거리는 탓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기에, 일곱째 아가씨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를 부축했다.그러자
"탕 대인이 저를 예쁘다고 말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니 일곱째 아가씨께도 예쁘다고 말해 보십시오. 분명히 기뻐하실 것입니다!"하지만 탕 대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를 겁니다. 일곱째 아가씨는 이제 그런거에 좋아할 나이를 지났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예쁘다고 말하면, 그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어찌 그럴 리 있습니까? 누구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탕 대인, 대인께서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탕 대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예? 하하하. 그렇습니까?""예! 모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탕 대인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과찬입니다.""기분 좋으십니까?"택란이 묻자 탕 대인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 멈칫하며 말했다."이 녀석!"택란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탕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꼭 사랑받으시길 바랍니다."탕 대인은 이 말에 크게 감동해서 택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 고맙습니다."저녁엔 계약이 성공한 기념으로 연회가 열렸다.소박한 술자리긴 했지만, 커다란 술통들이 준비되어 있어 모두 마음껏 마시며 즐길수 있었다.택란은 술을 마시지 않기에, 주 아가씨가 매실청을 대신 준비해 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택란의 마음에 쏙 들었다.술잔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모두 패기 있게 약도성을 북당에서 제일가는 도성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벌써 독산을 어떻게 개발할지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독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다.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이 경치를 개발하자는 내용이었다.반면, 택란은 새로운 생각을 제안했다. 독산에 온천이 있으니 오두막을 지어 온천을 끌어들여 돈을 받고 여러 개의 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온천수가 몸에 좋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자고 제의하였다.택란의 생각은 이 시절
탕양은 자신이 여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했었다. 특히 일곱째 아가씨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기에 굳이 자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큰 착각이었다.여인의 마음은 늘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가씨는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내왔는데, 중년에 접어들며 그 외로움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누군가 곁에 있다면,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된 연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다.원가의 가훈은 항상 군주에게 충실하며, 엄청난 용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원가에서 키운 닭조차 남의 집의 닭보다 더욱 용감할 정도였다.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과연 용기있는 행동 일까?물론 그녀가 반드시 탕양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탕양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한다면, 그녀 역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오직 탕양뿐이었다.그리고 어쩌면 시도해 봐야만 서로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탕양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경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탕양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구혼에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택란이 주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탕 대인이 왜 나쁜 사람인 것이오?""여인을 훔쳐봤습니다.""탕 대인이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소? 어찌 못 보는 것이오?"주 아가씨는 택란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공주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가 여인을 사모하면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탕 대인은 일곱째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그녀는 탕양을 힐긋 바라보는데, 예전의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 없이 뜨겁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버틴다 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탕 대인, 지금 어디를 보는 것이오?"그때, 냉정언이 물었다."예? 무슨 말이십니까?"탕양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냉정언을 바라보자, 냉정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께서 계속 일곱째 아가씨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술렁이며 이상한 시선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주 아가씨가 급히 택란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보지도, 듣지도 마십시오!"탕양은 크게 당황하며 두 손을 마구흔들었다."아닙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냉 대인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아니오. 분명 아가씨의 옷깃과 가슴을 보고 있었소!"말을 마치자마자 냉 대인은 숭이를 안고 단호하게 밖으로 나갔고, 탕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 일곱째 아가씨를 쳐다봤다. 그러자 일곱째 아가씨는 기침을 하며 옷깃을 정리한 뒤 소리쳤다. "흥. 변태!"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도 돌아서 나가버렸다.탕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얼굴로 주 아가씨와 홍엽을 보며 말했다."다들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는..."홍엽이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눈이 자네 얼굴에 달려 있는데, 자네가 누굴 보고 어디를 보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주 아가씨는 택란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마마, 이제 탕 대인 같은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십시오. 인품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탕양은 여전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냉정언의 한마디에 그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져 버렸다.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명여야..."냉명여 또한 귀를 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탕 대인께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십니다!"탕양은 그만 머리를 감싼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