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상궁을 내가 치료해도 된다는 거야?” 원경릉의 눈빛이 반짝였다. 우문호는 원경릉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반대를 해도 그렇게 할 거잖아. 나는 가끔 네가 다른 사람보다 너 자신을 먼저 돌보고 아꼈으면 좋겠어. 내 기억 속의 문둥병은 정말 끔찍한 병이거든. 내가 이렇게 허락을 해도 아마 부황을 포함해 조정의 문무백관들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너는 그냥 왕비가 아니라 태자비니까. 다들 이 병이 불치병이라고 여기고 있고, 병에 걸린 사람은 무조건 격리해야 한다고 믿고 있어. 지금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게 쉽지는 않을 거야.”원경릉은 그 말을 듣고 화를 버럭 냈다. “환자들이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렸겠어? 환자들을 가엽게 여겨도 모자랄 판에 격리해야 마땅하다고 여긴다니! 환자들과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 하루아침에 몹쓸 병에 걸렸다고 핍박을 받고 격리까지 당해. 그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겠어?”우문호는 그녀를 잡아당겨 의자에 앉혔다. “네 말 뜻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지금 시대가 그래. 사람들이 문둥병이라고 하면 얼마나 칠색 팔색 하는데! 사람들은 5년 전에 겪은 대규모의 감염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너는 이 많은 사람들의 편견을 깰 자신이 있어? 그리고 부황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들을 치료하러 간다는 건 반역이고 대역 죄야.”“첫 번째, 지금 시대가 어떻든 사람들의 편견이 뭐든. 문둥병은 고칠 수 있는 병이야. 치료가 가능한 환자를 그냥 두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너는 희상궁이 죽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있어?”그가 아무리 그녀를 설득하려고 해도 설득이 되지 않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가끔은 말이야. 나도 날 모르겠어. 머리로는 네 고집을 꺾어야 한다는 걸 아는데, 네 당찬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너를 지지하게 돼.”“참나, 뭐라는 거야 갑자기.” 원경릉이 웃었다. 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의 머리를 쓸었다. “그래 나도 모르겠다. 뭐…… 부황께 욕 몇 마디 먹겠지.”“부황께 욕을 먹더라도 수백 명의 인명을 구하
“문둥산에 있는 환자들은 이미 그곳에 적응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그들을 자극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입니다. 태자비께서 약이 있다면 추후에 새로운 환자가 생겼을 때 사용하는 게 어떻습니까? 5년 전에 감염이 됐지만 아직 잠복기인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탕양은 우문호를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탕양, 눈앞에 있는 사람도 구하지 않는데 아직 아프지도 않은 사람을 구하겠다니. 참으로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문둥병에 걸렸다고는 하나 그 사람들도 북당의 귀한 백성이네. 본왕도 태자비가 문둥산의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했을 때 탕양과 같은 반응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이 맞아. 수백 명의 백성을 구하는 게 그게 맞다.”탕양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하마터면 설득당할 뻔했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수백의 사람을 구하는 것 좋죠. 하지만 겨우 백관들의 마음을 사셨는데, 이번 일로 또 눈밖에 나실까 전 그게 걱정입니다.”“본왕이 백관들의 마음을 얻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나?”“당연히 이후 북당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백관들하고 좋은 관계를 갖는 게 좋죠.”“탕양, 네 생각엔 현 북당의 책임자는 누구냐?”“황상이시죠.”우문호는 웃었다. “그럼 앞으로 그 책임자가 얼마나 더 북당을 다스릴 것 같으냐?”탕양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전하, 그런 건 함부로 입 밖에 내셔서는 안됩니다!”“말을 해보래도?”“부황께서는 마흔이 좀 넘으셨으니, 아마…… 한참 남으셨습니다.”“그렇지? 부황께서 아직 북당의 책임자를 나에게 물려주실 기미가 없는데, 내가 지금부터 백관들의 눈치를 볼 이유가 뭐 있겠느냐? 나 이 일로 태자 직위를 잃어도 금세 되찾을 자신이 있다. 먼 미래를 걱정하느라 눈앞에 문제를 보지 못하는 것보다 멍청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탕양은 우문호의 말이 일리는 있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우문호가 태자가 아닌 초왕이었다면 그가 무슨 일을 해도 탕양은 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이미 결정한 우문
정후는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억울하다 억울해! 너희들이 여기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동안 나는 타향에서 비렁뱅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겠네……”원경릉은 그의 말을 딱 잘랐다.“부친, 진짜 비렁뱅이처럼 살게 해줘요? 원한다면 지금 당장 내가 탕양에게 말해서 준비된 거처를 팔아버리라고 할 테니 모친하고 둘이 비렁뱅이처럼 살아보세요. 구걸하기 편하게 바가지 하나씩은 제가 마련해 드릴 테니!” 그제야 정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원경릉은 그를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 조모를 보았다. 그녀는 손씨 아주머니에게 밖에 나갔다 오라고 한 후 조모의 옆에 앉았다. 조모는 검은 비단옷을 입고 있었고 새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이 햇빛에 반짝였다. 조모는 원경릉을 보며 미소를 지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이 늙은이는 신경 쓸 것 없다.” 노부인이 원경릉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방금까지 정후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원경릉도 조모의 말에 금방 숙연해졌다. 원경릉은 문득 정후가 멀리 떠난 후 조모가 돌아가시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삼둥이를 낳은 후로부터는 가끔 생사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원경릉은 슬퍼하는 조모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조모, 나중에 제가 삼둥이들을 데리고 찾아오겠습니다.”’원경릉은 고개를 들어 조모를 보았다. “데리고 오면 너무 소란스러울까요? 아니면 조모께서 왕부로 오셔서 지내시는 것도 좋습니다.”노부인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 “그래, 이참에 왕부로 가자.” 원경릉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있는 손씨 아주머니에게 짐을 싸라고 했다.노부인은 정후 내외가 보기 싫은 듯 대문이 아닌 뒷마당에 딸린 작은 문으로 나왔다. 마차에 올라탄 노부인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왕부로 향했다. 왕부로 가는 내내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후는 자신의 모친이 원경릉을 따라 왕부로 갔다는 말을 듣고 대성통곡을 하며 황씨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초왕부에 도착한 노부인은 방금까지의 근심은 어디 갔는지 삼둥이에게 돌진했다. 삼둥이들은 마치 할머니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방긋방긋 웃으며 그녀와 즐겁게 놀았다. 조그마한 손과 발로 침상의 이불을 힘껏 차는 모습을 보니 노부인은 잠시나마 정후를 잊을 수 있었다.노부인의 진심 어린 미소를 보자 원경릉은 안심이 되었다. ‘삼둥이가 복덩이야 복덩이!’희상궁의 감염 경로는 아직까지도 파악되지 않았다. 당시 너무 경황도 없었을뿐더러 만아의 증언만 듣고 여성을 특정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탕양은 답답한 마음에 문둥산을 지키는 수위를 사적으로 연락해 만나 술을 마셨다. 탕양은 수위가 술에 많이 취한 것 같자 조용히 본심을 드러냈다.“어이 형씨, 혹시 전에 문둥병 환자가 실종되거나 도망을 갔던 적이 있었나?”“음…… 있었지요! 몇 달 전에 병자가 실종됐는데, 시체도 못 찾았어요.”“그래? 생긴 거나 체구는 어떤가?”“여자였는데 그냥 보통 체격이었던 것 같은데…… 딸국!”탕양은 그에게 꼬치꼬치 캐물었고 수위는 곧잘 대답했다. ‘실종됐다는 그 여자가 만아가 말한 여자의 특징과 부합한데?’“근데 탕대인, 그 여자는 왜요?”“아닐세.”“그 제가 듣자 하니 북쪽 절벽에서 뛰어내렸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가족들도 못 보고 맨날 병자들끼리 모여있지…… 나 같아도 살아있는 게 죽는 것만 못할 것 같아 정말!” 수위가 술을 들이켜며 말했다.‘계략을 실행한 후에는 여자가 필요 없어지니 절벽으로 던진 건가?’ 탕양은 술을 마시면서도 수위의 말을 모두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희상궁은 주수보의 끈질긴 설득 끝에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기로 했다. 원경릉은 희상궁을 치료한 후 곧장 나와 샤워를 하고 옷도 뜨거운 물에 삶았다. 9월 중순이 되자, 궁에 좋은 소식이 들렸다. “호비(扈妃)가 임신을 했답니다!”호비는 임신 소식을 알자마자 궁 전체에 이를 알리고 그 후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진북후는 딸의 임신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사
원경릉은 호비에게 본래 신체 조건도 좋고 젊고 건강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호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배를 만졌다. “태자비는 임신 사실을 알고 기분이 어땠습니까? 저는 말입니다. 너무 기뻐서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습니다. 꿈인가 생시인가 몰라 잠도 몇 날을 설쳤다고요!”“음…… 전 사실을 알고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몸도 마음도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상태에서 애가 생겼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엔 받아들였습니다.”“그래요? 아무튼 전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호비는 자신의 배를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빛이 어찌나 따듯한지 마치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근데 태자비 당시에 내가 혼인 때문에 궁에 들어왔을 때 말입니다. 태자비께서는 많이 긴장을 하셨지요?”“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에이, 태자비는 처음에 내가 초왕에게 시집을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호비가 원경릉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 일이라면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태자비.” 호비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태자비, 비록 우리 사이에 서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난 황실에 친구가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궁중의 다른 왕비님들하고 친해지려고 노력해도 나를 애 취급하며 친해지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말인데…… 나는 태자비가 마음에 듭니다. 나와 친구가 되어 주겠습니까?” 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진실한 호비의 표정을 보고 웃으며 “예, 그래요. 적보다는 친구가 많은 게 좋죠!” 라고 말했다.“태자비 걱정 마세요. 나는 절대로 당신과 적이 되지 않을 겁니다!”원경릉은 감정에 솔직하고 당찬 호비를 보고 내심 부러움에 미소를 지었다. 호비는 그런 원경릉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글거리며 웃었다.원경릉은 호비를 떠나 건곤전에 가 태상황의 상태를 살폈다. 태상황은 며칠 내내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그가 며칠 동안 참다가 담배를 꺼내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원경
“말이라도 못 하면! 넌 아주 여우구나 여우!” 태상황이 말했다. 원경릉은 태상황이 돌계단에 앉는 것을 보고 문득 자신의 조모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이렇게 나를 걱정하고 보살펴주는 두 분이 있으니 든든하네. 그나저나 두 분 다 오래오래 사셔야 할 텐데…… 맞다, 현대에 내 진짜 할머니는 어떻게 되셨으려나?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원경릉은 슬픔을 형용할 수도 없었고, 현대의 자신의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만약 하늘이 허락해 그녀가 다시 현대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자신의 가족들 생각에 원경릉의 눈가가 붉어졌다. 태상황은 줄곧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자 놀라서 그녀에게 말했다. “됐다! 알겠어! 과인이 담배를 적게 피겠다! 이게 뭐라고 울 것까지 없잖느냐!”원경릉은 눈물을 닦으며 “예! 말씀하신 것 꼭 지키십시오!” 라고 말했다.“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했다! 남자가 뱉은 말은 꼭 지켜야지!”상선은 태상황의 말을 듣고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젊었을 때보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가끔 눈을 찡그리거나 고개를 계속 갸우뚱갸우뚱하기도 하고, 손을 떨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태상황은 사납게 상선을 노려보았고, 상선은 그제야 바짝 긴장하고 자세를 고쳤다. 원경릉은 두 사람의 관계가 불 보듯 뻔한 사이이기에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티격태격하지만 두 사람은 주종 관계를 뛰어넘어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태상황은 원경릉에게 희상궁의 안부와 의학원 진행이 얼마나 됐는지 물었다.원경릉은 희상궁의 병세를 사실대로 고했다. 태상황은 의외로 놀라는 기색 없이 희상궁을 잘 돌보라고 말하며 그녀가 운이 좋지 않았다며 불쌍히 여겼다. 원경릉도 희상궁이 운이 없었다며 태상황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길에서 사람을 부축해 주다가 문둥병을 옮는 사람이 있겠냐는 말이다.
원경릉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태상황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돼!”“왜 안됩니까? 이것은 백성들을 위한 일이잖습니까?”원경릉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과인의 나이가 몇인데 내가 그거까지 신경 써야 해? 그리고 세상 어느 어의가 네가 차린 의료관에 선생이 되려고 하겠는가? 게다가 앞으로 의학원 학생들이 나오면 혜민서도 더 많아질 것이고 그럼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어의들이 가만있겠는가? 의학원은 모든 어의들이 반대할 일이야.”“저도 그 문제를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북당에는 환자에 비해 혜민서가 너무 적습니다. 혜민서를 제외한 의원들은 일반 백성들은 꿈도 꾸지 못할 금액을 요구하고 있고요. 어의가 많아지면 백성들이 삶의 질이 올라갈 것입니다. 현재 백성들은 질병에 걸려도 의원에 못 가니 병을 키우고 있습니다. 제가 의학원을 짓겠다는 것은 민생을 위해서입니다.”태상황은 손을 저었다. “민생을 위함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느냐? 민생을 위한다면 해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야.”“예, 그러니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죠.” 원경릉이 말했다.“그럼 네가 해!” 태상황이 이 일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원경릉은 태상황에게 이 일을 부탁하면 그가 해결해 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태상황이 두 손을 들어버렸고, 원경릉은 앞길이 막막했다. 그녀는 문득 지금까지 태상황에게 너무 많이 의지했다고 생각했다.원경릉은 문둥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은 나중에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궁을 나온 원경릉은 왕부로 가는 마차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왕부가 아닌 기왕부로 가주시게.”그녀는 하인에게 마차를 돌려 기왕부로 가라고 했다. 그냐가 막 기왕부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저 멀리서 주명양이 보였다. 주명양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주와 비취로 아주 화려하게 치장을 했다. 입술은 불이 난 듯 빨갛고 높게 쪽 진 머리가 반짝였다. 반면 원경릉은 피곤으로 눈 밑이 시커멓고 피부도 푸석하고 까무잡잡했
원경릉은 주명양의 태도에서 이상함을 감지했다. ‘예전의 주명양은 있는 그대로 매력이 넘치는 그런 여자였는데 어찌 이리 한순간에 피해 망상과 겉치레에 신경을 쓰는 여자가 되었던가…… 사람이 궁핍한 상황에 놓이면 본성이 드러난다더니 그 말이 맞구나.’원경릉은 주명양을 보며 삶의 이치를 깨달았다. 어떤 때는 자신이 직접 손을 쓰지 않아도 망할 사람은 알아서 망한다.“주후궁, 괜찮나? 정신이 멀쩡한 것 같지 않은데, 본비가 괜찮은 어의를 소개해 줄까?”“자만은 금물이네요. 내가 말한 것을 허투루 듣지 마세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고 사람일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그래, 오지 않은 미래에 매달려봐.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지금 내 꼴이 우스우면 마음껏 웃어! 겉으로 착한 척 고귀한 척하는 네 모습 꼴 같지도 않으니까! 두고 봐! 내가 네 코를 납작하게 해줄 테니까! 나는 너랑 출신부터가 다르다고!”원경릉은 주명양의 눈빛에서 질투를 느꼈다. “주후궁, 그래.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공짜니까. 마음껏 해.”원경릉이 차를 따라 마시려고 하자 주명양이 탁자를 손으로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네가 감히 나를 비웃어?”원경릉은 깜짝 놀라서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내가 언제 너를 비웃었다고 그래?”“네 눈빛이 나를 비웃고 있어! 내가 모를 것 같아?”원경릉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하고는 상종하지 말자는 표정으로 조용히 일어났다. ‘기왕비는 도대체 어딜 간 거야?’그순간 다행스럽게도 기왕비의 발소리가 들렸다. “주씨 집안에서 사람이 왔으니 주후궁은 거기로 가보게.”주명양은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씩씩거리며 원경릉을 노려보았다. “기왕이 어찌 됐든 나는 주씨 집안의 사람이야! 네가 태자비가 되었다고 해도 너의 미천한 집안은 영원히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테니!”말을 마친 후 주명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원경릉은 놀란 표정으로 주명양의 뒷모습을 보았다. “주명양 쟤 왜 저럽니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정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