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아무도 없느냐? 손님들을 배웅해 드리거라!” 소요공은 우문호와 진정정에게 화가 단단히 난 모습이었다.“아닙니다! 제가 오해를 했습니다!” 우문호가 말했다. 우문호의 말은 묵살됐고, 두 사람은 소요공부의 하인의 안내를 따라 밖으로 쫓겨나듯 나왔다. 그 둘은 소요공부의 대문이 굳게 닫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늙은이 성질 한 번 고약하네, 비위 맞춰주기 여간 힘든 게 아니야……’진정정은 근심이 가득 찬 우문호의 얼굴을 보고 걱정이 됐다. “이제 어쩌지?” “두 사람을 잘 아는 사람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왜 틀어졌는지 물어봐야지.” 우문호가 말했다.“그 사람이 누군데?”“수보, 아니면 태상황님이지. 근데 이런 사소한 일로 태상황님을 찾아가는 건 좀 그러니…… 일단은 재상께 물어봐야겠어.”진정정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내심 기뻐했다. 그는 재상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재상은 성숙한 느낌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우문호는 재상에게 술을 대접하겠다고 했지만, 재상은 바쁜지 술집으로 오지 않았다. 그는 이틀 연달아 재상에게 편지를 보냈고, 재상 쪽에서는 늘 바쁘다고 하며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이틀 내내 재상의 거절을 받은 우문호가 수심에 찬 얼굴로 왕부로 돌아오자 원경릉은 우문호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고, 그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내 생각엔 재상이 너를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은데?” 원경릉이 말했다.“재상은 내 편이니까, 나와 머리를 맞대고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리를 해야 하는 거 아냐?”“아무리 네 편이라고 해도 재상은 주국공과 비슷한 연배잖아. 그런 재상이 대놓고 너와 만나면 주국공이 재상을 뭐라고 생각하겠어? 당연히 재상 입장에서는 주국공이 신경 쓰이지!”우문호는 이제야 주수보가 거절했는지 이해가 갔다.“그럼 이제 어떡해?” “술집으로 모시려고 말고, 네가 직접 주씨 집안으로 찾아가.”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맞다! 최근에 희상궁님께서 몸이
희상궁의 감기원경릉이 그 문제를 물어보려는 순간 사식이가 들어와 말을 멈췄다.사식이가 ”태자비마마, 희상궁이 저한테 가서 약 좀 가져 오래요.”“무슨 약?” 원경릉이 물었다.사식이가 “희상궁이 계속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흘려요, 희상궁 말이 언니 약은 효과가 빠르니 가서 가져오라고.”원경릉이 놀라며, “정말 아프셔?”사식이가 “누가 이런 걸로 거짓말 해요? 오늘 희상궁을 못 보셨죠? 아파서 그런 거예요.”“난 또 다른 일로 바쁘신 줄 알았지. 내가 가서 좀 볼 게.” 원경릉이 일어나 병풍 뒤에서 약상자를 꺼내 사식이, 만아와 같이 희상궁에게 갔다.희상궁은 방에서 침대에 모로 누워 쉬고 있는데 기침 소리가 들렸다.“어머나,” 원경릉을 보고 희상궁이 얼른 땅에 엎드리며, “어찌 태자비 마마께서 직접 오셨습니까?”원경릉이 희상궁을 부축하며, “됐어요, 희상궁은 누워요, 환자가.”희상궁이 웃으며 “괜찮아요, 무슨 대단한 병도 아니고 아마 이틀전에 옷이 젖었을 때 감기가 들었나 봅니다. 하여간 나이가 들면 쓸모 없다니 까요, 별 일 아닙니다.”원경릉이 희상궁의 손바닥과 이마를 만져보더니 꽤 뜨겁다. “열나네요, 콧물이랑 재채기 말고 또 어디가 불편해요?”“전신에 뼈마디가 쑤시고 오한이 들어요.” 희상궁이 말했다.원경릉이 체온을 재어보니 39도라서 “해열제를 지어드릴 게요, 우선 열부터 떨어뜨리도록 해요. 물 많이 드시고, 있다가 좁쌀 죽 끓여드리라고 할 테니 죽 드시고 약 드세요. 만약 그래도 불편하면 저한테 얘기하는 거 잊지 마시고요.”“예, 태자비 마마 걱정 마세요, 괜찮아요.” 희상궁이 오히려 원경릉을 위로했다.원경릉이 희상궁에게 “희상궁, 오늘 태자 전하께서 주재상과 상의할 일이 있으니 오시라고 했는데 재상이 오지 않으셨거든요. 그래서 희상궁이 아프다고 하라고 제가 태자에게 귀띔했어요. 그런데 희상궁이 정말 아플 줄이야. 진짜 이 놈의 입이 방정이예요.”희상궁이 웃으며 “그게 태자비 마마와 무슨 상관이라고요? 나이가 많으면 아프기
주국공과 소요공은 왜 원수가 되었나?주재상은 우문호가 이걸 물을 줄 알았다는 듯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몸을 뒤로 젖히더니 손에 찻잔을 든 채 천천히 찻잔 뚜껑으로 차거품을 걷어내며 기억에 잠겼다. 웃음기 어린 입꼬리로 “이 일은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저 웃어 넘길 수준이지만, 두 사람은 당시에 고집 센 풋내기여서 한 걸음도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 바람에 결국 지금의 화해할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우문호가 “그럼 도대체 어떤 일이었습니까? 듣기론 두 분이 절친이셨다고 하던데, 그 지경에 이르도록 싸운 게 작은 오해 때문일 수 있을까요?”주재상이, “당시 둘은 회안(淮安)에서 비적을 토벌했습니다. 사실 비적 토벌은 원래 주국공의 임무였지요. 그런데 마침 소요공이 그 일대를 지나다가 주국공을 찾아가서 술을 얻어 마시게 되었습니다. 비적토벌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닌데 비적이 숨은 위치가 후미져서 공격이 쉽지 않았지요. 주국공은 산길을 막고 비적들의 군량을 끊어 독 안의 쥐를 만들겠다는 작전이었습니다. 두 사람 술자리에서 이 비적 토벌 건을 얘기하는데, 소요공이 듣기에 비적은 고작 이백 명 뿐으로 주국공의 오백명 군사가 공격은 하지 않고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길 마냥 기다리고 있으니 낭비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요공은 술기운을 빌려 혼자 산에 올라가서 비적을 섬멸하겠다고 했지요, 주국공도 반쯤 취해서 칼을 빼 들고 소요공과 같이 갔습니다. 단 둘이 술기운에 산을 오른 거지요, 병졸 하나 없이 말입니다.”주재상이 여기까지 말하더니 잠시 멈추고 헤벌쭉하게 웃더니 차를 한 모금 마셨다.정정 대장군이 주재상의 얘기를 듣고 상당히 놀라며, “당시 주국공과 소요공은 모두 대장 아니셨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무모하실 수가?”주재상이 “맞습니다, 그 때 두 사람은 이미 명성이 자자했지요. 하지만 술과 놀이에 일생을 탕진하는 소요공은 용맹하고 무공이 강했으며, 책략이 뛰어난 주국공이 합류했으니 두 사람은 전장을 풍미했습니다. 비적을 토벌하던 그때 주국공은 소요공과
주국공 공략법우문호가 눈을 크게 뜨고, “주재상께선 언제부터 이렇게 말수가 많아 지졌습니까? 아주 수다쟁이가 되셨군요. 지금 모습이 재상이란 직분과 맞다고 느끼십니까?”주재상이 우문호에게 눈을 흘기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주국공이 아내를 목숨처럼 사랑한다는 건 들어 알고 계시지요? 그 부인이 3년전 병으로 쓰러졌습니다. 만약 태자비 마마께서 부인의 병을 낫게 하실 수만 있다면 전하께서 주국공을 손자로 대한다고 해도 그러겠다 할 판인데, 전하의 정치적 의견을 지지하는 건 일도 아니지요.”우문호가 이 얘기를 듣고, “주국공의 부인은 무슨 병입니까?”“모릅니다, 폐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어의를 보내신 적이 있는데 낫게 하지 못하고 듣기론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우문호가 낙심해서, “병의 원인도 모르는데 원 선생에게 어떻게 치료해보라고 하겠습니까? 굳이 남의 집을 찾아가서 치료 못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더 사람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게 아닙니까?”“그래도 해보는 수밖에요. 만약 치료를 못해서 사이가 나빠져도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없지 않습니까.” 주재상이 말했다.우문호가 생각해보더니 이것도 기회라면 기회다. 이 일은 우선 원 선생과 상의해 봐야겠다.우문호는 눈늑대와 소요공 사부의 일이 생각나서 묻는 김에 “맞아요, 주재상, 소요공 사부 일 아십니까? 소요공께서 당신 사부님이 무슨 늑대족 사람이라며 우리 떡들에게 눈늑대 세 마리를 보내셨는데 정말 기이한 것이 심지어 주인도 알아본다고 하니 특별한 것이 도리어 걱정 됩니다.”주재상의 안색이 순식간에 공손해 지며, “알지요, 루신(落神)이지 않습니까, 그녀는 늑대족의 젊은 지도자로 그녀가 기른 눈늑대는 충성심이 지극해 주인을 지킵니다. 태자 전하께서는 마음 푹 놓으세요. 이건 큰 예물로 평생을 두고 도움이 될 겁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원해도 구할 수 없는 거지요. 아마 태상황 폐하를 봐서 증손자들에게 주신 걸 겁니다.”“정말 입니까?” 우문호가 주재상의 이 말을 듣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주국공 부인의 병세주재상이 우문호의 반응을 보고 바보랑 말을 섞지 말아야지 마음 먹고 잔을 내려 놓더니 희상궁을 찾아 갔다.우문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진정정을 보고, “내가 잘못 말한 거야?”대장군은 보고 들은 식견이 넓고 대주에는 기인이나 이상한 일도 많은 관계로 조심스레 추측하길, “이 늑대족 젊은 지도자라는 게 사람임에 틀림없어.”“사람이 어떻게 늑대무리를 이끌 수 있지?” 우문호가 믿지 않았다.대장군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어떤 지방에는 새를 부리는 술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거든.”“새를 부리는 술법? 그런 것도 있어?”대장군이 웃으며 “새를 부리는 술법은, 모든 새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새를 자신의 병마로 삼는 거야. 생각해 보니 아마도 이 늑대족 젊은 지도자도 같은 부류가 아닐까 싶어, 늑대족 젊은 지도자가 늑대 무리를 지배하니 늑대는 그의 병마라 할 수 있지. 그런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들이 날 건드리지 않으면 자신도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거든. 그들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그들은 신통력이 있어서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아.”우문호가 놀라며, “그럼 만약 두 나라가 승부를 겨루면 그들은 늑대무리나 새들로 우리 병사들을 대적하거나, 심지어 큰 능력의 소유자가 국가간 전쟁에 참여하면 대적할 자가 없는 거 아닌가?”대장군이 손을 저으며, “아냐, 절대 그럴 리 없어, 큰 능력이 있으면 큰 제약이 따르는 법이니까.”“그건 금시초문인데.” 우문호가 상당히 흥미를 보이며, “그런 큰 능력자를 아는 거 아냐?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나한테도 꼭 소개해줘.”“한 두 명 알아, 소개하고 말고.” 대장군이 말했다.“약속했다!” 우문호가 즐겁게 말했다.우문호가 조어의를 찾아 가서 주국공 부인이 도대체 무슨 병인지 물었다.조어의가 “부인은 원판 대인께서 직접 치료하러 가셨던 건으로, 구체적으로 말씀은 안 하셨지만 소신이 대신 여쭤 볼 수 있습니다.”우문호가 “그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조어의가
주국공 부인이 석림?“원판은 뭐라고 진단했다고 하던가?” 원경릉이 물었다.조어의가 “석림(결석)이 분명하다고 판단해 원판은 기혈을 풀어주고 혈행을 돕는 처방을 내려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저 진통처방에만 의존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국공부인은 신장이 상당히 심각하게 손상되신 상태로 단순하게 진통처방을 써서도 안되는 것이 심장과 신장을 상하게 할 지 모르고 위에 열이 있고 음허(陰虛)한 상태라 더욱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석림은 사실 큰 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석림의 고통으로 죽기 일수지요. 원판 말로 노부인이 또 발병하셔서 오늘 아침 일찍부터 통증이 시작되어 아직도 좋아지지 않으셨다고 합니다.”원경릉이 약간 고개를 끄덕이며, 석림은 신장 결석으로 아프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죽을 정도로 아프다. 하지만 한방에도 신장 결석을 치료하는 처방이 많고, 현대 사람들 중에서도 한약을 복용해 결석의 돌을 빼내기도 하는데 어떻게 원판이 내린 처방이 소용없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석림이라고 진단을 했다고 하니 돌을 빼내는 처방을 써 봤다고 하던가?” 원경릉이 물었다.조어의가 “어찌 안 써봤겠습니까? 여러 번 써봤지요. 하지만 돌을 배출하는 처방은 환자가 뛰어올라서 돌이 떨어지게 하는 것인데 노부인이 연로하시니 어디 뛰실 수가 있나요? 이 처방약을 계속 복용하시면 배출이 위주라 양기가 상하게 되어 갈수록 약해지시지요. 듣기로 어제는 혈뇨를 보셨고 오늘은 배뇨를 하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원판이 아침 일찍 갔으니 아마 지금쯤 돌아왔을 시각입니다.”“고작 석림이 그렇게 심각한가?” 원경릉이 의아해 했다.조어의가 원경릉의 이 말을 듣고 눈이 커지며, “고작 석림이라니요, 태자비 마마, 석림이 큰 병인 것은 아십니까? 석림에 걸리면 사는 게 죽느니만 못합니다. 방금 소신이 아파서 죽고 싶다고 한 것은 고통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소립니다. 오죽하면 벽에 부딪혀 자진하려고 하겠습니까?”원경릉은 약간 놀랐다. 신장 결석은 한의학으로 치료 효과가 꽤 괜찮은데.원경릉
적위명과 원경릉주국공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문지기가 원경릉의 신분을 안 덕분에 들어가서 통보한데다 조어의를 데리고 가서 다소나마 환영을 받았다.주국공부에 들어서니 안은 고요하게 적막에 쌓여 있고 하인들도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걸어 정적만이 감돌았다.원경릉과 조어의가 본관으로 맞아들여 졌다. 본관엔 주씨 집안 사람들이 가득 있고 적위명과 부인도 있어서 원경릉을 보고 두 사람과 다른 사람이 일시에 일어나 예를 취했다.원경릉이 작은 소리로 일어서시라고 하고 좌중을 보니 이상하다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보는데 아마도 원경릉이 무슨 꿍꿍이로 왔나 의심하는 듯 했다.이때 적위명이 “태자비 마마 자상하십니다, 이렇게 직접 병문안 오시 다니요, 이건 태자 전하의 마음이지요? 태자 전하는 참으로 마음씀씀이가 너르십니다.”적위명의 이 말은 비꼬는 말로 원경릉이 태자의 명을 받들고 와서 수작을 부린다는 뜻이다.그래서 적위명의 이 말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그런 거군’ 하는 표정을 드러냈다.이상할 일도 아닌 게 지금 태자가 옹립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안정되지 않은데다 막 정치적 의견을 내고 여기저기서 지지를 끌어 모으는 중인데, 주국공에게 턱 막혔으니 와서 비위를 맞추는 것도 당연하다.자연히 그들이 원경릉을 바라보는 시선이 오만한 게 마치 원경릉이 무슨 부탁이라도 하러 온 것 같다.원경릉은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알아챘다. 북당의 권력이 표면적으론 황제에게 집중되어 있어 보이지만 실실적으로 그렇지 않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북당에는 내각이 있고 내각은 재상이 우두머리다. 이 내각이란 것은 장식이 아니라 황권을 억제해 균형을 잡는 기관으로 많은 국가 대사가 내각에서 상의가 이뤄진 후 황제에게 상소가 올라가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내각은 당연히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 없으며 황제도 마찬가지다.그래서 어떨 때는 황제가 뭔가를 할 때 대신들의 안색을 살피지 않을 수 없고, 태자는 말 할 것도 없다.주국공은 북당의 원로 대신으로 지금까지 군
거절당하는 원경릉적위명은 은근히 까인 것 같아 표정이 굳어졌으나 명성이 자자한 조정 대신이 어디 원경릉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괴롭힐 수 있을까?주씨 집안의 장자 주후덕(朱厚德)은 진통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얼른 나와 예를 표하며, “태자비 마마, 소신 주후덕으로 주씨 집안의 장자입니다. 태자비께서 어머님 병문안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진통제가 있으시다고요? 약효는 어떻습니까?”주후덕은 나이가 대략 오십이 넘었고 체격이 딱 벌어지게 생긴 게 후덕하다는 이름과 들어맞았다.원경릉이 주후덕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약효는 있지만 부인의 상황을 봐야 합니다.”주후덕이 난감하다는 듯이 “그게…… 기왕 약을 가지고 오신 거면 소신에게 주시고 어떻게 복용하는지 알려주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어머님은 지금 병상에서 계시고 통증이 심하셔서 손님을 대하기 어렵습니다.”“하지만 부인을 뵙지 않으면 제가 복용량을 조절할 수 없습니다.” 원경릉이 말했다.이때 비단 옷을 입은 부인이 일어섰는데, 나이는 대략 오십 전후에 생긴 것이 적위명의 부인과 닮은 것으로 보아 부인의 자매임이 분명했다.그녀가 원경릉에게 나와 예를 취하고, “주씨 태자비를 뵙습니다, 우선 어머님께 관심을 쏟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의술에 정통 하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와 주시니 어머니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아버지께서 지금 어머님 곁을 지키고 계시며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니다. 말씀드렸다가 성질이라도 부리시면 태자비 마마께 죄를 짓게 되니 정말 마음이 있으시면 약을 주시고 효과가 있으면 제가 반드시 찾아 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원경릉은 그녀가 자신을 ‘주씨’라 칭하는 것을 듣고 틀림없이 주국공의 딸이며, 다른 사람들을 다시 보니 대부분 아들이나 손자 뻘인데 들어가지 못하고 다들 여기 있는 것이 주국공이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구나 싶다. 곧 준비해온 진통제와 위장약을 꺼내 “이 두 알 중 한 알은 위장약이고 한 알은 진통제입니다. 위장약은 공복에 드시고 복용하신 후 조금 있
자시가 다 되어 갈 때, 그녀는 바로 소월궁으로 돌아갔다.궁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자마자, 다섯째가 돌아왔다. 녹주가 그의 옷을 걸어주고, 목여 태감이 차를 준비한 뒤 물러갔다. 기라는 복도 앞의 불을 하나만 남긴 채 모두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안고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했다."기다리지 말고 피곤하면 먼저 자지 그랬소.""마침 연구를 확인하려 했소. 일부러 기다린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피곤할 텐데 오늘은 씻지 말고 바로 쉬시오."하지만 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화가 너무 나서 잠이 오지 않소. 그건 그렇고, 아이들에 대한 얘기 좀 해주시오."그는 침대에 누워 몸을 뒤로 뉘었다. 약간 피곤해 보였지만, 그보다도 화가 난 것 같았다. 평소 아무리 바빠도 오늘처럼 피곤해 보인 적은 없었다.원경릉은 그의 허리 쪽에 부드러운 베개를 끼워주고, 반쯤 무릎을 꿇은 채 그의 눈썹과 관자놀이를 마사지했다. 우문호는 화를 낼 때면 두통이 자주 생겼다."계란이는 어떤가? 워낙 바쁘다 보니 자세히 듣지도 못했소."그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원경릉을 바라보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마사지하지 못하게 했다.그러고는 팔을 크게 펼쳐 그녀를 품에 안았다."당신도 피곤했을 텐데 그만하시오. 조금 쉬다가, 당신의 어깨를 눌러주겠네."원경릉은 그의 품에 기대며 웃으며 말했다."계란이는 괜찮소.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당신이 좋아하는 자와 하겠다고 했소."다섯째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피곤함이 말끔히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정말? 정말 그렇게 말했소?!""물론이네. 당신은 그녀의 우상이오."그러자 우문호는 곧바로 기운을 차린듯 허리를 곧게 폈다."우상이라. 그렇다면 앞으로 무공을 갈고닦는 것 외에도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을 쌓아야겠군. 우상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네. 실력이 없으면 아이가 실망할 것 아닌가.""실력이라..."원경릉은 그의 품을 떠나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 태자 전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뵙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런데 옷가지를 정리하고 궁으로 오시니, 전하는 이미 군영으로 떠나셨지요. 마침 마마께서도 외출하신 터라, 이곳에서 폐하를 보살피고 계신 것입니다.""그래."원경릉은 직접 어서방에 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로하신 희 상궁에게 밤새도록 지키게 할 수 없었다.어서방에 도착하자, 목여 태감과 희 상궁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황급히 다가왔다."마마,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다섯째가 저녁을 먹었는지 보러 왔네. 무슨 일이 생긴 것이오? 이렇게 늦도록 의논을 한다니."단단히 닫혀 있는 어서방의 문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탕양, 냉 대인, 홍엽, 이리 나리와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목여 태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길주(吉州)에서 과거 시험 부정행위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폐하께서 크게 노하셨습니다."원경릉이 미간이 찌푸렸다. 다섯째는 조정의 인재 등용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고, 재위하는 동안 부정행위에 대해서 엄격하게 처벌해 왔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감히 이런 짓을 벌였단 말인가? 돈에 눈이 멀어도 정도가 있지!길주에서 이런 일이 터졌으므로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조짐이 보일 가능성이 컸기에,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불길 번지듯 확산할 것이었다.다섯째는 문인을 매우 중시하며, 늘 무장은 나라를 지키고, 문인은 나라를 다스린다고 말해왔다. 그런 마음 가짐으로 황제의 자리에 앉았으니, 당연히 문인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졌을 것이다.게다가 그는 백성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방법은 십여 년간의 힘든 공부 끝에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라 말했었다. 그런데 부정행위가 만연하면 실력 있는 자들이 탈락할 테고 그렇게 되면 문인을 중시하는 정책이 무너질 것이다.더 나아가, 억울하게 탈락한 자들은 조정에 대한 불만을 품을 것이고, 문인이 불만을 가지면 나라의 기운은 쇠퇴할 것이다."식사는
아이들과 밤새 각자 도성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원경릉은 다음 날 아침 서둘러 경성으로 돌아가기로 했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경천의 혈액과 호수 에서 채취한 얼음물에 얼음 벌레가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기화가 아직 돌아가지 않았기에, 원경릉은 그를 불러내어 계란에게 그 일을 비밀로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기화는 가슴을 두드리며 절대로 말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하지만 원경릉은 그의 진지한 모습을 보며 더욱 불안해져, 왠지 모르게 그가 말실수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다시 한번 당부하자, 기화는 슬슬 짜증이 나는 듯했다."정말 저를 못 믿는 것입니까? 분명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원경릉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예. 꼭 비밀로 하십시오.""예. 어서 아이들과 인사나 하시지요."기화는 성가신 듯 손을 휘저으며 속으로 투덜거렸다.'나이도 어린 황후가 어쩜 이렇게 잔소리가 많지?'원경릉은 아이들과 작별을 마친 후, 바로 경성으로 떠났다.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그녀는 황궁으로 돌아왔다.그녀는 돌아오자마자 간단히 다섯째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바로 실험실로 향했다.경천의 혈액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니, 역시나 얼음 벌레가 있었다. 비록 과거 다섯째의 혈액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하긴 했으나, 다섯째의 것보다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이어서 호수에서 가져온 얼음물을 현미경으로 확인해 보기도 했지만 얼음 벌레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호수 근처에서 채취한 물도 마찬가지이므로, 호수에서 감염된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얼음 벌레의 감염원을 추적할 수 없게 되자, 원경릉은 꽤 실망스러웠다.하지만 우선 경천의 혈액 속 얼음 벌레를 연구할 수 있기에, 그녀는 벌레를 분리하여 다양한 온도에서 번식력과 생존력을 실험해 보려 했다.이 일을 마무리한 뒤, 원경릉은 드디어 다섯째에게 능력에 대해 알려줄 때가 왔다는 결정을 내렸다.그저 그가 놀라서 기절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소월궁으로
기화가 말했다."형인 경천보다 크게 부족하지는 않지만, 아직 경천만큼의 패기는 없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경천과 대등해질 것입니다!""성격은 어떻습니까?""괜찮습니다."기화는 대부분의 사람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괜찮다"고 했으니, 정말 괜찮은 사람일 것이었다.이후 기화는 원경릉과 함께 다른 도성을 방문했다. 원경릉은 미리 능력으로 소식을 보내 그들을 한곳에 모이게 했다. 한편 기화는 계란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동행했다. 그도 어쩌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소년들은 어머니가 오자 무척 기뻐했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그들은 어머니를 데리고 방으로 향했다. 그들은 그녀가 이유 없이 이렇게 먼 곳까지 올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원경릉은 아이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일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약을 잘못 쓰고, 얼음 벌레에 감염되고 현대에서 사용한 약까지, 모든 것을 알려주었으며, 경천의 저주까지 전부 털어놓았다.경단과 찰떡은 이 말을 듣고 무척 놀랐다. 그들은 위기에 처한 아버지의 상황에 대해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반면, 환타와 칠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원경릉은 이 두 아이가 떡들보다 신비로운 일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이 능력은 정말 타고난 것 같았다.잠시 후, 칠성이 입을 열었다."사실, 경천이 감염된 얼음 벌레가 저주의 일종일 가능성이 큽니다. 비록 기화 스승께서 연관 없다고 하셨지만, 저주도 일정한 형태와 매개체를 가지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형태나 매개체가 있으니, 분명 저주를 풀 방법도 있지요. 큰 공덕을 지닌 자가 필요하다고 했으니, 어쩌면 어마마마일 수도 있습니다. 어마마마가 얼음 벌레의 저주를 없앨 방법을 연구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내가?"원경릉은 깜짝 놀랐다."아니면 아바마마일 수도 있습니다."옆에서 듣고 있던 환타가 말을 보탰다."아바마마 혈액 속 마커가 사라졌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원경릉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기화가 말한 고차원 문명이 아무리 들어도 이상하게만 느껴졌다.인류는 고차원 문명에 대해 단지 추측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심지어 그 존재 여부조차 검증할 수 없다.누군가 고차원 문명이 신계 문명과 동일하다고 주장했지만, 그녀는 신계 문명을 접할 방법조차 갖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신계의 시선으로 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그녀는 점점 자신이 주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원경릉은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화제를 경천 황제에게 돌리려 했다."그를 구할 방법이 없습니까? 아직 젊은데 그냥 죽게 내버려두는 건 너무 아깝잖습니까?"아깝긴. 큰 공덕을 쌓았으니, 그는 죽고 윤회할 것입니다.""윤회라..."원경릉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미간을 문질렀다."아까는 고차원 문명 얘기를 하시더니, 이번엔 윤회라. 사고방식이 너무 빠르게 바뀌시니, 따라가기가 힘듭니다."하지만 기화는 오히려 태연하게 말했다."뭐가 어렵습니까? 과학의 끝엔 결국 신학이라 하지 않습니까? 어찌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십니까?""그럼, 고차원 문명의 관점에서 이 저주에 관해 설명해 주시지요."이렇게 특별한 이유를 과연 그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기화가 답했다."사실 이해하기엔 쉽습니다. 저주라는 건 하나의 힘이고, 그 가문은 힘을 어지럽혀 반작용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주라는 게 바로 그런 것이지요. 하지만 가문의 기운이 달라지며 이 반작용의 힘도 점점 약해지게 되고, 이 세대에서 거의 끝이 보입니다. 그를 큰 공덕을 쌓은 사람이라고 한 이유는, 나라를 다스리고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고, 나라 발전에도 공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가 쌓은 덕이 반작용보다 커지면, 반작용의 힘도 점점 약해질 것이고, 결국 동화될 것입니다. 그럼, 윤회한다 해도 그는 복이 가득한 사람일 것입니다."원경릉은 그의 말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는데, 그때 기화가 한마디 덧붙였다."누군가는 화를 입으려 태어났고, 누군가는 운명을
"생사도 팔자에 달린 것인데 무서울 필요가 뭐 있습니까? 사람은 언젠가 죽는 법입니다. 완안 가문은 저주를 받아, 대대로 한 명씩 열여덟 살 이전에 모두 죽었지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었고, 그래서 사원에 보내졌습니다. 이 저주를 피하려 했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지요.""추측입니까?"원경릉이 물었다."아니요. 안풍친왕의 장인이 알려준 것입니다.""그분도 여기 계십니까?""아니요. 이 대륙의 나라들, 그리고 이 근방의 연안까지, 전부 용인 그들이 관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 온 이유도, 택란이 금나라 어린 황제가 혼사를 이야기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오기 전, 안풍친왕의 장인 라진이 경천을 황제가 되도록 도와주라 했습니다. 금나라의 정권을 안정시킨 후, 그의 동생을 후계자로 키우라고요. 아시다시피, 그들은 모든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국사, 대사, 법사, 그리고 도사들이 갑자기 나타난 장군을 파견하여 권력을 쥐고 하지요. 역사를 공부했으니 아시잖습니까? 시대마다 등장한 엄청난 인물들은 대부분 그가 보낸 자들입니다. 각 나라에 다 있지요."원경릉은 놀라 입을 떡하고 벌렸다."용이라니요? 안풍친왕의 장인이 용이고, 여러 나라를 관장한다고요? 술을 너무 많이 드신 것 아닙니까?""아직 한 잔도 마시지 않았습니다!"기화는 다시 수염을 만지작거렸는데, 그 모습이 원경릉에게는 너무나도 어색하고 위화감이 들게 만들었다.털털하던 사람이 국사 행세를 하고 있으니, 도무지 습관 되지 않았다."어쨌든 상황은 이러합니다. 경천은 열여덟이 되기 전, 죽을 운명이지요. 하지만 죽기 전에 금나라를 안정적으로 발전하게 만들 능력이 있지요. 나라가 안정되면, 그도 죽을 것입니다."원경릉이 숨을 들이쉬었다."그 사실을 본인은 알고 있습니까?"어찌 상황이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되는 걸까?"모르지요. 알고 있다면 택란을 황후로 책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은 백 살까지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기화는 피식 웃었
찾아온 사람은 바로 택란의 스승인 기화였다.하지만 원경릉은 그를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금나라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넉넉한 옷자락에 얼굴도 훨씬 희고 깨끗해졌으며 수염까지 길렀기 때문이다. 그의 날카롭고 빛나는 눈빛이 아니었다면, 정말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스승님, 어찌 이곳에 계십니까?"택란이 기쁘게 묻자, 기화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미소를 지었다."이곳에 온 지 좀 됐다. 금나라에서 국사를 하며, 네 사모를 잠시 피할 겸 말이다. 금나라에 무슨 일로 온 거냐?""금나라에 온 지 오래되셨습니까? 어찌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까?"택란이 물었다."그동안 조금 바빴다."기화는 예전보다 훨씬 더 신중해진 모습이었다. 말투에서 마저도 국사의 위엄이 느껴질 정도였다. 원경릉은 문득 예전에 양여혜가 그를 이상한 사기꾼이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이제 보니 꽤 그럴싸한 평가였다."택란아, 네 어머니와 함께 내 저택으로 가서 이야기하자꾸나."기화가 말을 이었다.택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이제 저택까지 있으세요?"기화는 여전히 태연하게 말했다."국사인데 저택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예. 스승님의 저택도 구경하고, 며칠 머물면서 스승님과 함께 한잔... 과일주 한잔해야겠습니다."택란은 너무 기쁜 나머지 실수로 '술 한잔'이라고 말할 뻔했다.기화는 눈치를 보며 원경릉을 힐끗 보았다. 원경릉에게 택란과 술을 마시는 걸 들키면 안 된다.원경릉은 못 들은 척 넘어갔다. 사실 택란이 어린 나이에 술을 즐기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다. 이 문제는 양여혜에게 전해, 기화의 부인에게 귀띔하라 말하면 된다.기화의 부인 월아는 보수적인 성격이라, 택란이 술 마시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마차를 타고 국사인 기화의 저택으로 향했다.저택은 아주 컸고, 내부는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고급스러운 가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금나라 황제가 기화를 상당히 신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화는 택란에게
하지만 얼음 벌레의 발원지는 금나라 아닌가? 그렇다면 경천이 물을 다루는 능력은 다섯째보다 더 뛰어나야 할 텐데, 어찌 반대일까?원경릉은 옆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그럼 이 잔 속의 물이라면, 넘치게 할 수 있겠느냐?"경천은 고개를 끄덕였다."한 잔이라면, 가능합니다."그가 생각을 집중하자, 찻잔 속의 물이 서서히 넘쳐흘렀다. 일정한 속도로 보아, 그가 통제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그러니 바깥의 호숫물은 마음대로 조종하기 어렵다는 것이냐?"원경릉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다시 물었다."가끔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물을 얼리기가 훨씬 쉽습니다."경천이 솔직히 대답했다.원경릉이 다시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느냐?"경천이 답했다."다섯 살 때부터였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능력을 갖추게 됐는지는 모릅니다. 어릴 때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고요.""혹시 큰 병을 앓은 적이 있거나, 특별한 만남을 겪은 적이 있느냐? 예를 들면, 아주 대단한 인물을 만난다든가."경천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특별한 만남은 없었다만, 병에 걸린 적은 있습니다. 유모의 말로는, 어릴 적에 큰 병을 앓았고, 거의 죽을 뻔했다고 합니다."그러자 원경릉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그럼 그 큰 병을 앓은 이후부터, 이 물을 다루는…… 즉, 물을 얼리는 능력이 생긴 것이더냐?"경천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즈음이었을 것입니다."원경릉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너의 피를 조금 뽑아도 괜찮겠느냐? 많지는 않을 것이다."경천은 그녀의 말에 덤덤히 시중을 불렀다."여봐라, 비수와 사발을 가지고 오거라."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괜찮다. 채혈 도구가 있으니, 네가 동의만 하면 된다."경천은 짧게 대답한 후, 그녀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작은 약상자를 들고 돌아온 후, 경천이 전혀 본 적 없는 물건들을 꺼냈다. 그녀는 가느다
다음 날이 되자마자 모녀는 바로 금나라로 떠났다.택란은 원경릉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황후로서 금나라에 방문한다면, 책봉 문제 때문이라고 오해를 사서 논란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원경릉도 그런 택란의 말에 동의했다. 어차피 그녀의 옷차림이 워낙 소박하여 전혀 북당의 황후처럼 보이지 않기도 했다. 경천이 그녀의 신분을 눈치채더라도, 입 밖에 내지 않게 하면 그만이다.모녀는 초능력을 사용하여 빠르게 량주에 도착했다.택란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고 곧장 황궁으로 가서 황제를 만나겠다고 밝혔다.황궁 호위들은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어, 감히 태만히 할 수 없었기에, 즉시 두 사람을 궁 안으로 안내했다.경천은 택란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정무를 마친 후 그녀를 만나러 광명전으로 향했다.문에 들어설 때, 그의 눈에는 오직 택란만이 담겨 있었다. 그는 흥분한 채로 빠르게 다가와 기쁨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왔느냐?""예. 잠시 할 말이 있습니다."택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리며 말했다."인사드립니다."경천은 그제야 원경릉을 보았다. 그는 서둘러 기쁨 어린 눈빛을 거두고 공손해졌다. 그러고는 즉시 궁인들을 나가라고 명한 뒤, 문을 닫고 원경릉에게 정중히 예를 올렸다."북당의 황후마마를 뵙사옵니다!"그는 택란에 대해 오래전부터 조사해 왔기에, 북당 황제와 황후의 초상화도 이미 알고 있었다. 비록 만나본 적은 없어도 그들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한편, 원경릉은 그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녀는 침착한 태도로 그를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준수한 외모와 온화한 눈매 속에 황제의 위엄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예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 앉아서 이야기하자꾸나.""예!"경천은 잔뜩 긴장이라도 한듯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먼저 앉으시지요."원경릉이 먼저 자리에 앉자, 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으며 택란을 흘깃 바라보았다.그는 황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