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동안 온갖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유혜린도 저렇게 막무가내로 날뛰는 성격으로 자라지 않았을 거야. 그랬다면 내 동생한테도 그렇게 악랄한 짓을 하지 않았겠지!”서현우가 고함을 질렀다.“유상혁 당신은 못된 짓을 일삼고 이 중연시에서 제멋대로 날뛰고 설쳤어. 당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는지 알아? 그들이 애원할 때 당신은 측은하게 여긴 적 있어? 당신은 죽어 마땅해!”“아니!”유상혁이 벌떡 일어섰고 총구가 다시 한번 서현우에게 향했다.“유상혁!”천우성이 고함을 질렀다.호위들이 즉시 무기를 들어 일제히 유상혁에게 시커먼 총구를 겨눴다.천우성이 명령만 내린다면 유상혁의 몸에는 수많은 구멍이 생길 것이다.하지만 천우성은 감히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식은땀이 그의 이마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유상혁은 궁지에 몰린 야수처럼 마지막까지 발버둥 치려 했다.천우성이 명령을 내린다면 유상혁은 곧바로 방아쇠를 당겨 서현우와 함께 죽으려 할 것이다.천우성은 그런 모험을 할 수 없었다.사실 유상혁도 그럴 생각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유상혁이었다. 삼중문과 막대한 부를 소유한 지하 세계의 왕이자 중연시의 하늘이었다.그러나 지금의 그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그리고 서현우가 자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오늘 반드시 죽게 될 터였다.살 방법이 전혀 없다면 상대가 어떤 신분이든 무슨 의미가 있을까?남강 총사령관은 물론이고 설사 상대방이 국주라고 해도 그는 상대와 함께 죽을 것이다!“난 어차피 죽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나랑 같이 죽어야 해! 하하하...”유상혁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어댔다. 두 눈에 핏발이 선 그는 마치 모든 것을 걸었다가 전부 잃어버린 도박꾼처럼 소리를 질렀다.“서현우! 네가 뭔데? 6년 전 넌 그냥 탈주범이었어. 변변찮은 놈이었다고! 그런데 네가 뭐가 그리 잘나서 갑자기 남강의 총사령관이 된 거야? 네가 뭐가 그리 잘났냐고?
“걱정하지 마. 내가 남강에 없어도 적국이 다시 쳐들어오지 않을 거야. 너희들이 남강을 지킨다면 나도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현우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남강에서 지낸 6년 동안 난 이 세상, 우리나라와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았어. 하지만 내 가족에겐 너무 미안해. 난 내 여동생을 보호하지 못했고 이건 내 남은 생으로 메워야 할 일이야.”무력감과 막연함이 깃든 그들의 눈빛에 서현우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약속할게. 혹시나 적국이 다시 남강에 쳐들어온다면 돌아갈게. 신병의 신분으로 남강을 지키고 용국을 지킬 거야. 이만 돌아가. 난 병원에 가서 내 동생을 볼 거니까 아무도 방해하지 마.”서현우가 떠났다.“조심히 가세요!”안정산은 안타까운 얼굴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조심히 가세요!”구양 장로가 낙담한 표정으로 엎드려 절을 했다.“조심히 가세요!”천우성이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허리를 숙여 예를 갖췄다.“조심히 가세요...”이천용의 눈동자에 비친, 햇빛을 받은 서현우의 뒷모습은 유독 쓸쓸했다.이천용은 괴로운 얼굴로 손을 들어 서현우의 뒷모습에 대고 경례했다.오늘부터 남강은 총사령관이 없다.천우성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감찰사님...”이천용이 낙담한 얼굴로 말했다.“행동개시해요.”“네.”천우성이 떠났다.잠시 뒤 중연시 곳곳에서 사람들이 잡혔다.누군가의 수하들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전부 잡혔다.그중에는 유혜린과 함께 서나영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본 두 부잣집 도련님도 있었다.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가장 잔혹한 심판이었다.중주의 한 호화로운 펜션 안, 누군가 득의양양해서 웃음을 터뜨렸다.“별 쓸모없는 도구들을 잃는 것으로 남강 총사령관을 퇴위하게 만들 수 있을 줄은 몰랐네. 값져! 충분히 값진 일이야! 하하하하...”...중연시는 1급 전투태세에 돌입했지만 반나절만에 해제됐다.총독 천우성은 언론 앞에서 모든 적국의 스파이들을 처리했다고 선포했다.사람들은 기뻐하면서 연신 칭찬했다.하지만 권력 있는
서현우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의 마음속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이 정도로 책임감이 없는 아버지도 고통이라는 것을 느낄까? 나와 동생을 걱정하기나 할까?’한줄기의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서현우의 눈동자가 눈물에 가려져 흐릿해졌다.그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줄곧 서태훈으로부터 병다리라는 욕을 듣고 살았다. 서태훈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종일 바깥일에만 집중했다.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서태훈은 알코올 중독으로 세월을 보내며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수없이 많았다.엄마를 잃은 두 남매는 아버지마저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환경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목숨을 연명했다.서현우는 그가 미웠다.얼마 후, 서태훈은 여자 한 명을 데려왔는데 여자에겐 그와 비슷한 나이의 아들이 있었다.그들이 바로 주지현과 주민식이었다.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아버지는 새장가를 갔다. 그것도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자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과부에게 말이다!서현우는 서태훈이 더더욱 미웠다.주민식은 틈만 나면 서나영을 괴롭혔다. 서현우가 나서서 혼내주면 그는 곧장 부모님에게 고자질을 했다. 그럴 때마다 서태훈은 자초지종도 모른 채 다짜고짜 서현우에게만 벌을 줬다. 무릎을 꿇고 잘못을 뉘우치라는 것이었다. 뉘우치지 않는다면 그날은 밥도 주지 않았다.하지만 서현우는 단 한 번도 굴복한 적이 없었다. 밤새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다고 해도, 배가 고파 정신까지 잃을 정도가 돼도 말이다.그때마다 서나영은 몰래 서현우에게 음식과 물을 가져다주었다. 서태훈은 서현우에게 단 한 번도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서현우는 자신이 왜 하필 서태훈의 아들로 태어났는지 분통하고 또 분통했다!그는 자애로운 아버지가 필요했다! 아버지가 대단한 서씨 가문의 가주가 아닌 일개 노동자, 농민, 심지어 거지라도 상관없었다. 아버지가 그의 생일을 기억하고, 생일날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아들, 아빠가 많이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만 해줄
“깨어나셨으면 이만 가세요.”돌연 서현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깜짝 놀란 서태훈이 눈을 뜨자 아무런 표정도 없는 경직된 아들의 모습이 들어왔다.그 눈빛은 낯선 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서태훈이 입술을 떨며 말했다.“현... 현우야...”“가세요. 상처는 거의 회복됐어요. 이곳은 당신을 환영하지 않아요.”서태훈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현우야, 내가 정말...”“듣고 싶지 않아요.”서현우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 뿐이에요. 가세요. 이제 더이상 나영이가 당신의 짐이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그의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서태훈의 가슴에 박혔다. 하지만 그에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서태훈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너희들에게 지은 죄가 많다. 이만 가마.”서태훈은 허리를 부여잡고 힘겹게 발걸음을 뗐다. 그 순간 서태훈의 얼굴엔 고독과 비통함으로 가득했다.서현우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지만 여전히 용서 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니 말이다. 문밖에서 홍성이 음식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서태훈을 마주친 그녀는 몸을 옆으로 기울이고는 고개를 숙이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그때 서태훈이 돌연 걸음을 멈추고 간절한 눈빛으로 홍성을 바라보았다.“아가씨.”홍성이 고개를 들어 서태훈을 쳐다보았다. 서태훈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엔 간곡함이 담겨 있었다.그 모습에 홍성은 깜짝 놀랐다.“아... 아가씨가 우리 현우의 여자친구인가요?”서태훈이 물었다.홍성이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저었다.“제가 어찌 감히...”서태훈이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말씀하세요.”“제발... 현우를 잘 보살펴주세요... 현우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사랑도 못 받으며 자란 아이예요...”홍성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저릿함을 느꼈다.“부탁할게요...”서태훈이 떠났다.병원을 채 나서기도 전에
서현우는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그는 더욱 지체하다가는 할머니는 목숨을 잃게 될 거라는 사실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할머니의 옆엔 5, 6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는데 아이가 입은 옷은 여기저기 꿰맨 자국이 있고 낡아 보였으나 아주 깔끔하고 청결했다. 아이는 새하얗고 백옥같은 피부를 갖고 있었는데 그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아이를 본 순간 서현우에게는 당황스러움이 몰려왔다. 아이가 한 사람과 너무나도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바로 서현우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빚을 진 사람이자 가장 잊기 어려운 사람인 진아람이었다.“아저씨, 아줌마, 제발 부탁드릴게요. 할머니를 살려주세요... 제발이요... 엉엉엉...”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의 커다란 눈동자엔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서현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에게로 향했다.거기엔 아이가 그 여자와 닮았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이유 또한 있었다. 그에게 살릴 능력이 있다면 시도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그는 남강의 총사령관으로서 천하를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었다. 이제 그 지위가 없다고 해도 사람 한 명의 목숨은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잠시 물러서 주세요.”서현우는 인파를 뚫고 할머니의 곁으로 다가가 앉아 그녀의 맥을 짚어보았다.서현우는 섬세하게 할머니를 살폈다. 병이 무엇인지 보아낼 수 있다고 해도 자만하지 않고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내 제대로 치료할 수 있다.“아저씨, 할머니를 살려주세요... 제발요...”아이는 급기야 일어나 서현우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아이야, 걱정하지 마. 할머니는 괜찮으실 거야.”서현우가 아이를 일으켰다.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이 여자아이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저렸다.아마 진아람과 닮았기 때문이겠지.그때 구경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젊은이, 속임수에 당하지 말아요. 요즘은 좋은 일을 한 게 도리어 화가
할머니는 사회의 최하층에 머무르며 갖은 풍상고초를 겪었고 그 결과 사람들의 매정함에 습관이 되어있었다.수많은 멸시와 박대를 받았고 거기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까지 동반했다.할머니는 이미 오랫동안 누군가의 따뜻한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할머니, 우리 오늘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어요. 솔이도 크면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살 거예요.”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솔이 착하네.”할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바닥을 집고 천천히 일어나 아이에게 돈을 주며 길옆 편의점에 가 생수 한 병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할머니는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손수건을 꺼내 물에 적셔 조금 전 자신이 토해냈던 토설 물을 깨끗이 치운 뒤에야 아이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할머니 한 분을 살린 건 서현우에게 있어서는 그저 지나가는 작은 일에 불과했기에 크게 마음에 담지 않았다.서현우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병원에 돌아왔을 땐 간호사가 이미 서나영의 몸을 깨끗이 닦아준 뒤였다. 서나영의 얼굴엔 여전히 군데군데 멍든 자국이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많이 호전되었다.서현우가 늘 그랬던던 것처럼 침대 옆에 걸터앉아 서나영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던 그때, 돌연 핸드폰이 울렸다.이천용이었다.서현우가 전화를 받자 이천용이 먼저 입을 열었다.“총사령관님...”“난 이제 총사령관이 아니야.”서현우가 덤덤히 말했다.이천용은 잠시 침묵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항복한 적국과의 담판이 순조롭지 않아요. 낭연을 피운 일이 어떻게 그들의 귀에 들어갔는지 태도가 확연히 바뀌었어요.”서현우의 이마가 찌푸려졌고 눈빛은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알았어.”단 세 글자만 대답한 뒤 서현우는 전화를 끊었다. 이어 그는 단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뚜... 뚜...통화연결음이 몇 번이나 울려서야 전화가 통했다. 핸드폰 너머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총사령관님?”서현우가 입꼬리를 슥 올리며 말했다.“첼스, 난 이제 총사령관
“그 일은 이제 끝났어.”중앙에 자리 잡고 앉아있던 남자가 말했다.“용국은 서현우의 공로를 잊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라엔 지엄한 국법이 있어. 낭연을 피운 건 서현우가 자체적으로 남강 총사령관의 자리를 내려놓았다는 걸 의미해. 이제 더이상 거론할 필요 없어. 감찰사는 수고했어. 이제 돌아가서 쉬어.”이천용은 고통스럽게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떠났다.그 시각 남경에 있는 남경 무생군 십이장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서현우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성과는 절대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평소 침착함을 잃지 않던 남강 책사도 울음을 터뜨렸다. 서현우가 없었다면 그는 이미 전장에서 가루가 되어 죽었을 것이다.남강은 조용히 가라앉았고 더는 환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그 이유는 남강 군사들이 이번 전쟁으로 인해 비록 용국은 승리했지만 그들은 가장 존경하는 총사령관님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사자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공을 세운 군사들에게 훈장을 내리러 남강의 모든 장군들을 소집시켰다.홍성이 돌연 자리에서 한 발자국 나서며 입을 열었다.“상은 필요 없습니다. 총사령관님을 불러주십시오!”“상은 필요 없습니다. 총사령관님을 불러주십시오!”십이장이 일제히 일어나 소리쳤다.사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때 누군가 돌연 회의실 문을 열었다. 남강의 병사 몇 명이었다.그들은 퉁퉁 부은 얼굴로 씩씩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백 미터나 되는 천을 펼쳤다.그 위엔 군사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피로 적혀있었다.“보고드립니다! 남강 무생군 12단, 전략지휘부, 보급부, 척후군단... 도합 122만 3963명의 병사들이 피로 간청드립니다. 저희들은 상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총사령관님께서 남강에 돌아오게 해주십시오!”사자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군사들의 기대감과 비통함이 가득 담긴 두 눈이 그를 향해 반짝이고 있었다.그들은 모두 가무잡잡한 남강의 사내들이다. 그들은 무식하거나 또는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객기
“제가... 더 도와줄 건 없을까요?”이천용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서현우는 용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쳤다. 적국을 때려잡아 항복시키는 것으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지켰다.이러한 호국 공신은 그에 걸맞은 상을 받지 못했을뿐더러 자리에서까지 물러나게 되었다.“네가 날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건 바로...”서현우가 덤덤히 말했다.“지금 이 순간부터 나와 연락을 끊는 거야. 아니면 네 금용 감찰사의 위치도 위험해 질 거야. 그건 날 절벽 끝으로 미는 것이나 다름없어. 나 서현우는 이미 용국에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했어. 남은 여생은 중연시에서 평안하게 머물 수 있게 해줘. 내 가족의 곁을 지키면서 말이야. 이건 내 여동생과의 약속이기도 해.”그 말을 한순간 서현우의 머릿속에 또다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침대 커버를 가슴에 껴안고 자신을 쳐다보던 그 아이 말이다.서현우의 가슴이 저릿해 왔다.“몸조심해요.”무거운 몇 글자를 내뱉은 후 이천용은 전화를 끊었다. 서현우의 말이 정확하다는 걸 그는 똑똑히 알 수 있었기에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병실 안, 서현우는 전화를 끊은 후 십몇 초짜리 영상을 다시 한번 재생시켰다.남강 군사들이 천지가 떠나갈 듯 목놓아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치열했던 6년 총사령관으로서의 시간이 이 순간 종지부를 찍었다.서현우는 선봉에 서서 누비던 피와 불이 어우러져 기승을 부리던 전장이, 결연한 의지로 목숨을 걸고 싸우던 군사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안녕, 전우여. 안녕, 남강이여.서나영은 여전히 기약 없이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병실은 침 하나 떨어지면 그 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서현우는 과거의 기억 속에 빠져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돌연 들려온 초인종 소리가 그를 현실로 복귀시켰다.간호사가 서나영의 약병을 바꿔주러 온 것이었다.서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에서 나설 때 텅 비어있는 옆방 병실에 시선을 돌렸다. 얼마
서현우와 진아람은 빛줄기가 되어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번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종적을 감췄다.다음 순간, 번산이 서현우의 머리로 돌아왔다.“무슨 일이 일어났어?”“내 여동생이 잡혔어.”“누구한테?”“몰라, 하지만 상대방이 단서를 남겼어...”반나절이 지난 후 번산이 갑자기 말했다.“이 방향은... 큰일이야, 수라곡이야!”“수라곡?”“그곳은 진정한 수라가 존재하는 곳이야, 수라 선조가 뼈를 묻은 땅이지!”“나는 수라 혈맥이고, 극락도 수라 혈맥인데, 설마 우리가 진정한 수라가 아닌 거야?”“우리 모두가 수라 선조의 혈맥을 전승하고 있잖아!”“설마 수라 선조가 죽지 않았단 말이야?”“죽었어, 하지만...”번산의 표정이 변화무쌍하게 바뀌면서 말했다.“알겠다. 너는 제물이야.”“제물?”서현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자신이 노복의 힘에 침식된 후에 느꼈던 그 모든 것을 생각했다.“네 여동생은 너를 대신해서 제물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너는 지금 정말 가려는 거야? 아마도 우리 모두는 그곳에서 죽어야 할 거야!”“당연히 네가 수라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여야 하지 않아?”“하지만 그건 수라 선조야... 수라 선조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단을 남겼는지는 아무도 몰라. 나는 고사하고 역사상의 모든 수라를 포함해서 진짜 극락조차도, 수라곡에 접근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현우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절망감이 생겨났다.‘설마 해결할 방법이 없단 말이야?’‘나영이나 내가 반드시 제물이 되야 하는 건가?’쾅!바로 그때, 멀리서 귀청이 터질 듯한 폭발 소리가 울렸다.하늘에는 핏빛 빛줄기가 미친 듯이 퍼져나갔다.끝없는 핏빛은 하늘을 찌를 듯한 거인의 모습을 구축했다.몹시 화가 난 듯이 손을 뻗어서 전방의 허공을 움켜쥐었다.그리고 그 방향에서 핏빛의 형상이 허공을 갈랐다.눈 깜짝할 사이에 서현우 등과는 이미 백 리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나영아!”핏빛의 형상이 혼수상태에 빠진 나영이를 바로 품에 안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야!”혈하신존의 부릅뜬 눈이 터질 듯했다.‘이렇게 많은 중견 역량들이 뜻밖에도 동시에 죽다니!’‘누가 이렇게 할 수 있어?’그리고 그 허황된 모습을 정확하게 보았을 때, 혈하신존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극락 선조?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극락 선조?”수많은 눈빛이 번산의 몸에 집중되었다.싸움도 멈추었다.몇 초가 지난 뒤...“극락 선조님을 뵙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이 노도 같은 기세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이 장면은 너무나 충격적이다!극락이라는 이름은 수만 년 동안 더없이 놀라운 이름으로, 전대미문의 인물이다!그와 같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극도 등 세 사람은 흥분해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위풍당당하신 선조님이시여!”이미 혈하신존 앞에 나타난 번산이 입을 열었다.“혈하성궁은 제명됐어.”“아니야!”혈하신존은 미친 듯이 소리쳤다.“네가 극락 선조일 리가 없어! 어떻게 천지의 규칙을 피할 수 있어? 그럴 리 없어!”“중요하지 않아.”번산이 큰 손으로 잡았다.혈하신존은 피하려고 했지만, 온 천지가 억지로 벗겨져서 피할 공간이 전혀 없다는 걸 발견했다.“안 돼!”혈하신존은 다시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극락 선조님,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람을 내놓겠습니다!”“너무 늦었어.”번산이 뻗었던 손을 꽉 쥐었다.피식...신의 경지 중기로 최강 전력으로 일컬어지던 혈하신존은 이렇게 허무하게 핏빛 안개로 사라졌다.모든 혈하성궁 소속 사람들은 멍하니 이 장면을 보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이 느꼈다.혈도는 그 자리에 선 채 벌벌 떨면서,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천수 랭킹 1위?’‘이런 강자 앞에서는 여전히 한낱 벌레와 다르지 않아!’“노부는 살육을 많이 하고 싶지 않다. 항복한 사람은 죽이지 않겠다.”번산이 입을 열었다.응답하는 사람이 없었다.그러나 아무도 감히 반대하지 않았다.곧이어 혈하성궁 소속 무자들이 무릎을 꿇고 투항했다.남은 네 명의
“싸우면 싸우는 거야. 극락산은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데, 마침 이 기회를 틈타 일거에 극락산을 멸망시켜야겠어. 극락이 수만 년의 신화를 이어왔는데, 오늘 끝내는 거야!”“그래, 싸우자! 극락산을 멸망시키면 마침 자원을 좀 더 차지할 수 있어!”혈하성궁 소속 사람들은 분분히 전쟁 준비를 했다.경사스러운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멀찌감치 달아난 손님들은 긴장한 채 주목했다.‘이 싸움은 정말 시작될까?’‘극락산은 도대체 무슨 미친 짓이야?’“왔다, 왔어! 극락산이 진짜 왔어!”“맙소사... 정말 전쟁 보루야! 극락산 저 자들이 혈하성궁과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게 분명해!”결혼식에 참석했는데 전쟁을 목격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긴장과 격동 속에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존재한다.‘도대체 왜?’사람들이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도무지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그리고 이 스산한 긴장 속에서, 극락산의 전쟁 보루가 혈하성궁 밖에 도착했다.혈하성궁은 이미 방어진법으로 뒤덮여 있었다.혈하신존을 비롯한 혈하성궁의 고수들은 모두 대진 밖에 선 채 음산하고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극도! 오늘 네가 극락산에서 우리 혈하성궁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끝장을 보겠어. 나 혈하가 너희 극락산을 멸망시킬 것을 맹세하겠어!” 혈하신존이 크게 외쳤다.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설명? 무슨 설명을 해? 우리 극락산 직계 후손의 아내를 빼앗은 너희 혈하성궁에서 해명을 해야지!” 극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와...”떠들썩한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모두가 경악했다.‘혈도의 신부가 뜻밖에도 극락산 직계 후계자의 아내야? 이건 너무 엄청난데?’“X자식! 극도 네가 감히 이렇게 우리 혈하성궁을 욕보이다니, 정말 끝장을 보겠다는 거야?”혈하신존은 크게 노했다.혈도의 안색도 아주 좋지 않았다.자신은 영문도 모른 채 남의 아내를 뺏은 간악한 도적이 된 것이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사람을 내놓든지 전쟁을 시작하든지 결정해!”“그럼 싸우자! 혈
모든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명령은 이미 하달되었으니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모두 돌아가서 전쟁 준비를 했다.극락산의 분위기는 금세 무거워졌다.그리고 극락산에서 영혼의 수정석을 고가로 사들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혈도의 혼례는 큰 행사다.56개 구역의 무수한 사람들이 이 성대한 혼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전송진을 타고 왔다. 그 중에는 영혼의 수정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든 극락산에 아부하기 위해서든 영혼의 수정석을 잇달아 보냈다.하나씩 잇달아 들어왔다.날이 밝기 전까지 모두 800여 개의 영혼의 수정석을 수집했다.성과는 만족스러웠다.물론 극락산에서 지불한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앞으로 5년간의 자원을 모두 썼다고 할 수 있다.하나라도 잘못된다면, 극락산은 무너질 것이다.그러나 극도 등 세 신존은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신의 경지 후기인 극락 선조님이 계셔.’‘모든 노력은 가치가 있어.’이 영혼의 수정석이라면 번산이 4, 5 번 손을 쓰기에 충분했다.신의 경지에 이르면, 전기 경지의 10명이 반드시 중기 경지의 한 명을 이길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중기 경지 10명이 후기 경지의 한 명을 이길수 있는 것도 아니다.‘혈하성궁이 아무리 강해도, 신의 경지 후기 한 명과 중기 3사람을 동시에 대처할 수는 없어!’‘이 실력이면 모든 걸 깔아뭉갤 수 있어!’해가 떴다.극락산에 모든 사람이 모이자 스산한 기운이 가득했다.호기심이 가득한 사람들을 향해서 극도가 손을 휘저었다.“오늘 이후, 더 이상 혈하성궁은 없다! 우리 극락산이 수라계 1위가 되는 거야! 극락 선조님의 눈부신 무적의 영광을 이어가자!”“무적! 무적!”많은 사람들이 분분히 맞장구를 쳤다.비록 이 늙은이가 술을 마시고 정신이 나갔는지 뭘 잘못 먹고 갑자기 이렇게 자신감이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들은 이미 극락산과 생사를 같이 하는 처지이기에 전혀 관여
세 사람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그리고 급히 대전 뒤쪽의 벽에 걸려 있는 한 폭의 그림을 보았다.그림 속에는 천하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독보적인 패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그... 극... 극락 선조님?”세 사람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자신에게 환각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그게 어떻게 가능해?’‘극락 선조는 수만 년의 인물이야.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규칙의 제한을 벗어날 수는 없어. 절대 지금까지 살 수 없어!’“노부는 바로 극락이다. 육신을 버리고 영혼체로 존재하지. 시간의 규칙이 없는 곳에서 수만 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이 아이에 의해 깨어나게 되었다.”위엄 있게 입을 연 번산의 모습은 완전히 극락과 똑같았다.그 자체가 극락의 악념의 화신이니, 이 세상에 번산보다 극락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극락 선조님을 뵙습니다!”삼대 신존이 잇달아 무릎을 꿇었다.“너희들이 아직도 나를 조상으로 여기는 거야?”“선조님, 화를 가라앉히시지요. 저희 못난 후손들 어떤 점 때문에 선조님께서 이렇게 화가 나셨는지 모르겠습니다.”세 사람은 안절부절 못하면서 물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또 미친 듯이 기뻐했다.‘극락 선조님이 여전히 계신다면, 육신이 없더라도 신의 경지 후기인 영혼체는 현재 수라계의 모든 신의 경지 강자들을 쉽게 이길 수 있어.’‘혈하성궁은 개뿔!’‘극락산이 당연히 1위야!’“예전에 노부는 천하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천하무적이었어. 너희 못난 후손들은 오히려 극락산을 이렇게 쇠락한 모습으로 만들었고, 혈하성궁을 두려워하고 있지. 노부가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어?”“선조님, 노여움을 푸세요!” 세 사람은 얼른 머리를 조아렸다.자신들은 억울했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필경 예전의 극락 선조는 정말 무적의 존재였다.한 시대를 짓눌러 버린 것이다그러나 후손들은 극락 선조의 휘황찬란했던 업적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이 아이는 우리 극락산 사람이야. 이 아이의 아내 역시 우리 극락
계속해서 전송진을 통과하면서 반나절도 안 돼 수라계의 핵심 구역인 수라역에 도착했다.다른 곳과 다를 바 없이 핏빛이 천지를 뒤덮고 있었다.하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번화한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다.어떤 도시에도 큰 짐승이 대지 위에 포복하는 것과 같다. 왕래하는 무자는 가장 약한 자도 모두 생사경의 경지였다.생사경 이하의 사람들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서현우는 깊은 시름에 빠진 채 극무 등을 따라 극락산으로 돌아왔다.극락산은 하나의 산맥으로, 주위의 네 개의 약간 낮은 산봉우리가 중간에 있는 아주 높은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네 개의 낮은 산은 극락산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제자, 내외문 제자들, 고위 지도층과 장로들, 그리고 극락산과 관계가 있거나 종속된 크고 작은 가문의 거주지이다.중간의 아주 높은 산봉우리는 직계 후계자만 거주할 수 있다.극락노조의 혈맥을 품고 있는 적통만 극락산에 장기 거주할 수 있는 것이다.다른 사람들도 극락산에 올라갈 수는 있지만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서현우의 출현은 극락산을 들끓게 했다.거의 모든 직계 자제들이 서현우를 보러 달려왔고, 궁금해하거나 불만을 내비치면서 서현우와 겨루면서 실력을 한 번 보고 싶어했다.특히 극상 등이 서현우에게 한 수만에 졌다는 소식을 듣자, 손이 근질거리면서 서현우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넘치게 되었다.그러나 극무는 서현우를 데리고 다른 두 신급 강자들을 만나러 갔다.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은 극도라고 하고, 또 체구가 크고 우람한 남자는, 극전이라고 한다.서현우를 훑어보는 두 사람의 시선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극락노조의 혈맥은 밖에서는 거의 전해지지 않았는데, 네가 혈맥을 이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구나. 앞으로 극락산에서 편히 살면서 잘 수련하도록 해라.” 두 사람은 서현우에게 매우 친절했다.아무래도 직계 혈맥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서현우는 예를 갖추면서 물었다.“감히 두 신존에게 여쭙겠습니다. 혈도가 곧 결혼할 상대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극무는 갑자기 흥미를 느꼈
“일이 좀 늦어졌어요. 수확은 그런대로 괜찮았어요.”서현우가 얼버무리며 말했다.“그럼 됐어요.”홍세령은 고개를 끄덕였다.“곧 나갈 거예요. 준비하세요.”서현우도 알았다고 말했다.홍세령이 말한 준비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지금은 갱도 세계의 통로가 닫히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걸 바라지 않았다. 만약 나가는 시간이 지체되어 이 안에서 말살된다면 너무 가치가 없는 일이다.하지만, 나간 뒤에는 확실하지가 않았다.아주 혼란스러운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예로부터 이처럼 재물 때문에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였다.윙...곧 문이 열렸다.거의 백만 명에 가까운 무자들이 몰려나왔다.서현우가 뒤를 돌아보니 빛줄기들이 잇달아 스쳐 지나갔다.그것은 신급의 강자들이다.그들의 눈빛에서 분노와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이 드러났다.11층과 12층을 왔다갔다하면서 찾았다.거의 물샐틈없는 수색이었다.그러나 결국 만령광모의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어떻게 그들이 실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서현우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핥았다.‘만령광모가 내게 있다는 이 비밀을 끝까지 지켜야 해.’이번 갱도 세계로의 여정에서 최대 승자가 된 서현우가 환고광맥의 중심부로 돌아왔다.짧은 침묵 끝에 싸움이 시작되었다.신급의 강자들은 이에 대해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최고 세력의 대열에서도 감히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주화입마된 자들이 예외적으로 이들을 건드렸지만, 모두 빨리 죽게 되었다.모두들 공중으로 솟아올라서 전쟁처럼 미친 듯이 싸우는 지면을 바라보며 무표정한 표정을 지었다.“가자, 이제 떠나야지.”극무가 담담하게 말했다.홍세령은 서현우를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시간이 있으면 다시 함께 탐험하도록 해요.”“그래요.” 서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지내세요.”“잘 지내세요, 아마도 곧 극락산에 갈 거예요. 그때 다시 이야기하죠.”“안녕히 계세요.”서현우를 보고 또 홍세령을 보
“무슨 뜻이야?” 서현우의 안색이 변했다.“흥분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번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육신이 없어. 일단 손을 써서 공간의 장벽을 열면 령혼체는 순식간에 공간의 역량에 의해 없어지게 돼.”“나한테 빙의하면 안 돼? 그때 극무를 속인 것처럼?” 서현우가 다급하게 말했다.번산이 말했다.“그때는 내 영혼의 힘이 약해서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안 돼. 너의 육신의 강도가 이미 내 영혼의 부착을 지탱하기에 부족해.”서현우의 얼굴은 더없이 일그러졌다.“설마 다른 방법이 없단 말이야?”“내가 한 신급의 강자에게 공간의 장벽을 열도록 강요할 수는 있어. 그러나 지구의 좌표를 확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게다가 그 신급 강자가 너에게 열어준 것이 바로 지구의 공간 장벽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어. 만약 어떤 험악한 곳으로 전송되면, 다시 지구의 좌표점을 찾는 것이 더없이 어려워질 거야.”‘사실 번산은 아주 보수적으로 말한 거야.’‘완전히 낯선 세상에서 길을 잃는다면, 지구의 좌표를 알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게다가 그곳에 신급의 강자가 있는지, 수라계의 공간 장벽을 다시 뚫을 수 있는지도 확실치 않아.’‘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아.’‘억지로 강행한다면 목숨을 가지고 농담을 하는 거야.’“방법이 또 있어?” 침묵하던 서현우가 물었다.“그리고.”번산이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강제로 내가 신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은 깨달음을 너에게 주입할 수 있지만, 반드시 네가 나의 깨달음을 복제해서 신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야. 너는 사람마다 길이 다르고 깨달음이 다르며 신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는 방향도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해.”“게다가, 너의 바탕과 축적된 실력은 신급 경지와 비교해서, 아직 일정한 차이가 있어. 일단 실패하면, 결과는 네가 잘 알 거야.”서현우는 이를 악물었다.비록 가슴이 설렜지만,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나도 내 영혼의 힘을 없애
만령에게 감격한 번산이 웃었다.“고마워, 만령. 만약 네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오래 걸려야 이 정도로 회복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아빠 말을 들은 거예요.” 서현우의 곁으로 달려간 만령은 한 손을 안고서 의지하는 표정을 지었다.서현우는 만령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이 새로 얻은 딸에 대해서도 보호의 정이 더 많아졌다.번산은 활짝 웃으면서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얼마나 남았어?” 서현우가 번산에게 물었다.번산과 공생 계약이 있기에 서현우도 번산의 영혼체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이 사실에 서현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영혼의 수정석은 아주 드물고 얻기 어려워. 정말 밖에서 찾는다면 수라계 전체를 다 찾아도 천 개를 찾을 수 없을 거야.’‘이렇게 많은 양으로도 번산의 영혼체를 완전히 회복시키지 못했으니 정말 엄청난 거야.’‘그리고 신경 후기인 강자의 영혼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어.’“지금 내 실력은 신의 경지에 막 들어갔다고 할 수 있어. 2천 개만 더 있으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아.”번산이 기대하는 말투로 말했다.서현우는 혀를 내둘렀다.‘말은 편하게 하네.’‘만약 만령이라는 만령광모의 존재가 없었다면, 번산은 평생 영혼체를 복구할 수 없었을 거야.’“완전히 복구되면 신의 경지 후기에 도달할 수 있어?”서현우가 물었다.“그래.”번산은 아주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그러나 내가 손을 대면 영혼의 힘을 소모하게 돼. 영혼의 수정석만 이를 보충할 수 있어.”서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음을 표시했다.‘육신을 가지고 있는 무자는, 흡수하는 것이 정기든 혈악의 힘이든 모두 천지 사이에서 보충할 수 있어.’‘육신이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거지.‘그러나 번산은 영혼체야. 그에게 가장 적합한 악의 몸은 이미 부패하고 소멸되었어. 이 세상에는 아마도 누구의 몸도 지금의 번산을 수용할 수 없을 거야.’‘번산은 영혼체의 상태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야.’‘육신이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