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75화

작가: 온유
주차장에서 육하경은 좀 미안한 듯이 도아린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도아린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맑고 깨끗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난 그가 찾아왔으면 해요.”

육하경은 도아린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 말을 멈칫했다.

“지난번에 말해주기로 한 건 이제 얘기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는 진범준 부부가 도아린과 친자 확인을 하려 한다는 것을 예상하고 검사 결과까지 확인했지만, 혈액형조차 일치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 없으면 안 하셔도 돼요. 천사 보육원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도아린은 보육원 폐쇄의 진상에 더 관심이 있었다.

육민재에게 들은 바로는 영업정지 상태였고 보육원 리모델링은 잠정 중단되었지만 율이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어제 율이 보러 갔었는데 아린 씨를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저도 율이를 보러 갈 생각이었어요.”

“그럼 같이 가요. 이따가 다시 데려다줄게요.”

...

뮤직 서바이벌 프로그램 이후 손보미는 배건후를 만나지 못했다.

전화를 걸면 그는 비행기를 막 탔거나 보안 검색 중이었다.

배건후가 연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그녀는 율이가 그를 보고 싶어 한다는 핑계로 병실로 불렀다.

손보미는 율이의 나이에 맞지 않는 조립 모형을 사서 포장을 뜯고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

“너무 어려워요.”

율이는 두 개의 부품을 들고 쩔쩔맸다.

보육원에서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어른들 일까지 도와야 했기에 이런 조립식 장난감은 본 적도 없었다.

손보미는 설명서를 보는 척하며 율이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훈남 아저씨한테 도와달라고 해 봐. 아저씨는 모형 조립을 엄청 잘하셔. 대학교 때 전국 1등도 했어.”

율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저씨 정말 멋지다!”

“당연하지. 아저씨는 월반도 하고 특례 입학도 한 연성대학교 수재야.”

“보미 언니랑 훈남 아저씨는 대학교에서 만났어요?”

손보미는 자신의 학력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내세울 만한 것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허영심에 가득 차서 말했다.

“난 외국에서 공부했어.”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또 한 번의 거절   제276화

    “아린 언니!”율이는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달려가서 도아린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도아린은 소파에 앉아 서로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비웃음을 지었다.“제가 때를 잘못 맞춰 왔네요.”그녀는 율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계속하세요. 저는 율이랑 밖에 나가서 놀게요.”배건후는 꼭 둘이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손보미를 밀치고 일어섰다.그 바람에 손보미는 티 테이블에 등을 부딪쳤다. 전에 다쳤던 곳이라 그녀는 아파서 눈물이 핑 돌았다.“아...”배건후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도아린에게 다가갔다.가까이 다가가서야 그는 도아린의 뒤에 서 있는 육하경을 발견했다. 그들은 또 함께 있었다.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그는 반사적으로 도아린을 끌어안으려 했다.하지만 그녀는 팔꿈치로 그의 갈비뼈를 밀어내고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행동거지 조심하세요. 당신의 하니가 율이 앞에서 망신당하게 하지 말고.”배건후는 콧방귀 뀌면서 도아린을 억지로 품에 안았다.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율이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보미 언니는 아린 언니가 자신의 약혼자를 빼앗으려 한다고 했는데 지금 보면 아린 언니는 가만히 있는데 훈남 아저씨가 와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도아린은 어리둥절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배건후는 약이라도 잘못 먹었나?육하경이 옆에 있어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일까?그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탐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건가?손보미는 아픔을 참고 일어섰다. 두 사람이 딱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참지 못하고 종이를 찢어 버렸다.그녀는 어깨를 감싸 쥐고 문가로 다가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건후 씨, 나 상처가 다시 터진 것 같아.”배건후는 도아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흰색 바탕에 반소매 정장 재킷을 입은 도아린은 활기차고 멋있어 보였다. 다만 옷깃이 다소 낮았다.도아린은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지만 손보미가 쩔쩔매는 모습을

  • 또 한 번의 거절   제277화

    도아린은 냉소했다.손보미의 연기력이 많이 는 것 같았다. 그 억울한 표정에 자신도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으니까.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에 머뭇거림이 느껴지자, 도아린은 갑자기 힘을 주어 빠져나왔다.거의 동시에 맞은편 모퉁이에서 뭔가 번쩍했다.“거기 누구야!”고함 소리와 함께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허둥대는 발소리가 들렸다.육하경은 곧바로 달려가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 돌아왔다손보미의 창백한 얼굴은 더욱 하얗게 질렸다. 배건후의 시선이 느껴지자,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채 눈에 띄게 불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도아린은 그 남자가 어디서 본 듯했지만, 어디에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육하경은 그의 몸에서 휴대폰 두 대와 보조 배터리 하나를 찾아냈다. 그중 한 대는 방송 중이었고, 시청자는 3만 명이 넘었다. 그들이 채팅창의 욕설을 보기도 전에 휴대폰의 배터리가 나갔다.추궁 끝에 남자는 모든 것을 자백했다. 그는 뮤직 서바이벌 프로그램 녹화 당시, 임진희의 분장실에 몰래 들어가 방송을 하다가 손보미에게 들켜 방송국에서 쫓겨난 BJ였다.그 방송으로 그는 엄청난 조회 수를 얻었고, 그의 독특한 해설 덕분에 5~6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손보미를 몰래 따라다니며 방송을 계속했다.최근 손보미는 드라마 촬영과 병원 방문 외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방송 시청자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그래서 오늘 좀 늦게 왔는데, 우연히 엄청난 싸움 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그는 즉시 방송을 시작했다.처음에는 사람들은 도아린이 다른 사람의 약혼자를 유혹한다고 욕했다. 하지만 배건후가 도아린을 억지로 끌어안자 사람들은 이번에는 배건후를 쓰레기이고 바람둥이라고 욕하기 시작했다.그 후 손보미가 나타나 배건후를 차지하려 하자 시청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다들 누가 이 남자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는 발각되고 말았다.물론 그는 사람들이 배건후를 바람둥이라고 욕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 또 한 번의 거절   제278화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봤어?”손보미는 즉시 부인했다.그녀는 율이가 드레스를 만질까 봐 옆방에 보관해 두었기 때문이다.율이는 억울해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너무 자주 의심을 받아온 탓에 슬펐지만 용감하게 말했다.“정말 봤어요. 선생님은 내가 몰래 과자를 먹을까 봐 선물 상자를 옆방에 뒀거든요. 그날 나는 배가 고파서 과자를 찾으러 갔는데 마침 매니저 언니가 들어오는 바람에 옷장에 숨었어요.”BJ는 완전히 신났다. 손보미의 약점을 또 하나 잡았기 때문이다.그는 손보미의 파렴치한 행동에 여러 번 놀랐고, 도아린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몰래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육하경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손 빼.”“...”BJ는 마지못해 녹음 펜을 꺼냈다.육하경은 녹음 펜을 티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배건후의 동의 없이는 손보미에 대한 어떤 불리한 정보도 외부에 공개할 수 없었다.손보미는 불안한 듯 배건후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손을 꼼지락거렸다.“난 그런 내막이 있는 줄 몰랐어. 지민에게 당장 전화해 볼게.”사실 율이는 정확히 보지 못했다.옷장에 숨어 틈 사이로 김지민의 외투를 보았을 뿐, 실제로 외투를 입고 있던 사람은 손보미였다.하지만 이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김지민 탓으로 돌려야 했다.전화를 받자마자 김지민은 아무 말도 할 틈 없이 손보미의 질책을 들어야 했다.“전에 기회를 줬잖아. 근데 또 이렇게 잘못을 반복했으니 내 스튜디오에서 나가.”전화를 끊은 손보미는 미안한 표정으로 도아린을 바라보았다.“미안해. 내가 관리 잘못해서 오해가 생긴 거야. 아린 씨는 돈은 필요 없을 테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 해줄게. 보상이라고 생각해.”배건후의 얼굴은 계속 굳어 있었고 날카로운 눈빛은 차가운 기운을 담고 있었다.그는 천천히 품속에 있는 도아린을 바라보았다.도아린은 그와 눈을 마주치며 약 올리는 듯 쳐다봤다.배건후는 눈살을 찌푸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생각보다 먼저 말이 튀어나왔다.“아린아, 너 너무 심한 거 아니

  • 또 한 번의 거절   제279화

    물론 이것은 나중의 이야기였다.배건후가 있는 한 육하경은 도아린을 데려다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대신 달갑지 않은 손보미를 데려갔다....어느덧 주현정의 생일이 되었다.배건후는 격식을 차리기 위해 도아린을 데려가 드레스를 입히고, 메이크업도 시켜 주었다.“이거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예전에는 주현정의 생일이면 가족끼리 간단한 식사를 했었다. 올해 진범준 부부가 온다고 해도 굳이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배건후는 고급스러운 정장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서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도아린을 바라보았다.도아린은 타고난 미모에 약간의 치장만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녀에게서는 속물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고상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풍겼다.“엄마는 아빠랑 해외로 나가실 수도 있으니, 많은 친구를 초대하고 싶으신가 봐.”도아린은 주현정의 마음을 이해했다.자녀들을 돌보느라 남편과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았고, 이제 건강도 점점 안 좋아지니 당연히 남편과 함께 있고 싶어 할 것이다.하지만 그녀와 배건후의 관계는 애매했다.예전에는 비밀 결혼이었고 지금은 곧 이혼해야 하는 상황이니 친척이나 친구들이 물어보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건후 씨, 사람들이 저보고 누구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요?”주현정은 분명 손님들을 맞이하는 자리에 자신을 동행시킬 것이고 몇몇 가까운 사모님들은 이미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으니 신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배건후의 아내라고 소개했다가는 이혼 후에 곤란해질 게 뻔했다.배건후는 불쾌한 듯 눈빛이 어두워졌다.“알아서 해.”“정말요?”도아린은 웃으며 잔머리를 쓸어 넘겼다.“우리가 곧 이혼한다고 말해도 되나요?”결혼 생활은 3년 동안 비밀로 해왔지만, 이혼은 온 세상이 다 알게 생겼다.도아린은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그녀는 곧 닥칠 곤란한 상황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배건후를 놀렸다.“아니면 어머니께 제가 스승님과 출장을 갔다고 말씀드리는 건 어떠세요

  • 또 한 번의 거절   제280화

    손보미는 불안한 마음으로 배건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건후가 도아린과 함께 다정하게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그녀는 놀라서 표정이 일그러졌다. 주현정의 생일이니 도아린이 오는 것은 당연했다.그러나 배건후는 그녀의 신분을 인정한 적이 없었기에 아마 구석에서 일을 돕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배건후와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손보미는 기껏해야 배건후의 팔짱을 끼는 정도였지만 배건후는 도아린을 품에 안고 손님들에게 인사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상류층에는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아까 손보미를 본 사람들은 그녀와 배건후의 관계를 궁금해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주현정이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여는 이유가 두 사람의 결혼을 발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배건후는 다른 여자를 끌어안고 당당하게 등장했다.사람들의 시선은 손보미와 도아린을 오가며 두 사람을 유심히 살폈다. 손보미는 긴장한 채 와인 잔을 움켜쥐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녀가 배건후의 부인이 되면 잘 봐달라고 인사까지 했다. 그런데 이젠 그들을 어떻게 마주 한단 말인가.바로 그때, 누군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그는 공손하게 악수를 청하며 도아린을 흘끗 쳐다보았다.“이분은...”배건후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주현정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도아린의 손을 잡았다.주변 사람들이 다 궁금해하는 걸 보며 그녀는 큰 소리로 말했다.“제 며느리 도아린이에요.”시끌벅적하던 연회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멀리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만이 우아하게 울려 퍼졌다.사모님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배 대표님이 결혼하셨다고요?”“초대장 받으셨어요? 저는 못 받았는데...”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져갔다. 손보미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지만, 날카로운 시선들이 그녀를 따갑게 찔렀다.그녀는 오늘 몰래 이곳에 온 것을 후회했다.주현정은 손을 들어 분위기를 진정시켰

  • 또 한 번의 거절   제281화

    도아린의 왕관은 심플하면서도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반면, 손보미의 왕관은 자잘한 다이아몬드가 빽빽하게 박혀 답답하고 옹졸해 보였다.보석의 가치만 비교해도 손보미는 도아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도아린은 백옥 같은 피부와 차가운 아우라로 마치 타고난 여왕처럼 왕관을 완벽하게 소화했지만 창백한 안색에 병약해 보이는 손보미는 마치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오른 첩실처럼 어색하기만 했다.“어라?”주변의 수군거림을 들은 도아린은 코웃음을 쳤다.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남자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무슨 뜻이야?”“헤어핀이 같네요.”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우아하게 인사를 건넸다. 배건후는 그 말에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완전 다른데.”사람들의 시선과 대화가 견디기 힘들었던 손보미는 결국 드레스 자락을 쥐어 잡으며 다가왔다.“건후 씨... 아린 씨.”배건후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마치 남보다도 못한 낯선 사람을 대하듯 차가웠다.도아린은 비웃음을 머금고 그를 흘깃 보았다.오스카상이라도 줘야 할 연기력이었다.그의 연기는 오히려 손보미보다 잘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둘이 아는 사이가 아닌 줄 알 것이다.그녀는 쓰레기 같은 남자와 여자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곧 손보미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아린 씨, 여기 예비 장신구 세트가 있는데, 오늘 그쪽 드레스에 잘 어울릴 것 같아... 이걸로 바꿔 착용해 줄래?”손보미는 장신구 상자를 도아린에게 건네며 말했다.“내 작은 성의야. 전에 오해해서 미안했던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받아줘.”그녀는 말하는 동안 시선을 도아린의 머리에 고정했다.의도가 너무나 분명했다.도아린은 가식적인 미소조차 짓지 않고 말했다.“싫어.”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는 손보미는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였다.“아린 씨, 오늘은 아린 씨가 주인공이니, 내가 손님인 걸 생각해서 조금 양보해 주면 안 될까...”“보미 씨, 요구가 너무 지나친 거

  • 또 한 번의 거절   제282화

    “우리 가족끼리 이야기 나누는 중이니 보미 씨는 이 자리에 모시지 않을게요.”주현정의 말은 겉보기엔 정중했지만, 그녀에게 얼른 사라지라는 뜻이었다.손보미는 그 말뜻을 이해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녀는 억울한 눈빛으로 배건후를 바라봤으나 그는 진범준 부부에게 차를 따라주는 한편, 도아린의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질투심에 손보미의 심장이 욱신거렸다. 그녀는 선물 상자를 꽉 움켜쥐었다.어떻게든 주현정에게 선물을 보여줘야 했다. 큰돈을 들여 어렵게 구한 물건인데 자신의 성의를 보여주지 못하면 나중에 배씨 가문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그녀는 일부러 배지유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탁자 위의 상자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신호를 보냈다. 배지유는 선물 상자를 집어 주현정에게 건넸다.“엄마, 보미 언니는 엄마가 비취를 좋아하신다는 걸 알고, 특별히 오래된 광산에서 나온 최상급 얼음 느낌의 옥불을 구해 왔대요. 게다가 엄마의 안녕을 기원하며 스님께 부탁해서 복을 비는 의식까지 했다잖아요.”배지유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주현정이 끝까지 외면하면, 배씨 가문이 손님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주현정은 딸이 손보미와 한통속이 된 모습에 속으로는 불쾌했지만, 가문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손을 내밀어 상자를 받았다.“내가 비취를 좋아하는 건 내 며느리가 좋아하기 때문이야.”주현정은 상자를 열며 말했다.“아린아, 너 옥불을 모시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이게 마음에 들어?”그러고는 상자를 윤명희에게 건네며, 자신의 마음속엔 오직 도아린뿐임을 보여주려 했다.손보미는 손톱이 부러질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녀를 모욕하다니, 정말 배건후와 결혼하게 된다면, 저 할망구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그녀의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 배지유는 재빨리 상자를 빼앗았다.“엄마, 이건 보미 언니가 엄마를 위해 모신 거란 말이에요. 새언니에게 주고 싶으시면 따로 준비하셔야죠. 그래야 성의가

  • 또 한 번의 거절   제283화

    손보미가 이 자리에 온 것 자체가 배건후의 잘못인데, 감히 자신의 딸과 함께 앉게 하다니.도아린에게 뒷배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진씨 가문 사람들이 호락호락하다고 생각하는 건가.배지유는 진 씨 사모님이 화났다는 것을 알았지만 오늘은 그녀 엄마의 생일잔치였다. 아무리 진씨 가문이라도 그건 해남에서 통하는 이야기였다.오늘 이 자리에는 연성의 유력 인사들이 많이 참석했으니 진씨 가문이라고 해도 함부로 난동을 부릴 수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어떤 말은 자신이 하는 것보다 배건후가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오빠...”배건후는 차가운 눈으로 여동생의 애원하는 눈빛과 손보미의 억울한 표정을 번갈아 보았다.“네 친구니까 네가 알아서 챙겨.”배지유는 의기양양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미소가 채 만개하기도 전에 배건후의 말이 이어졌다.“지배인에게 가서 자리를 따로 마련해 달라고 해.”“...”따로 마련해?따로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그녀는 배씨 가문의 천금으로 당연히 주빈석에 앉아야 했다.배지유가 손보미와 눈빛을 교환하기도 전에 배건후는 이미 지배인을 불렀다.“이 두 사람 자리 안내해 줘요.”“싫어요!”배지유는 즉시 얼굴을 붉혔다.“나는 배씨 가문 사람인데 왜 손님 석에 가야 해요?”손보미 역시 당황하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배지유의 손을 잡고 말했다.“아린 씨가 진 씨 가문 사람들이랑 같이 있잖아. 우리가 모두 있으면 자리가 너무 좁으니까 내가 너랑 같이 밖에 나가 앉을게.”갈등의 화살은 도아린을 향했다.며느리라는 작자는 외부인인 진범준 부부와 함께 주빈석에 떡하니 앉아 있는데, 정작 배씨 가문의 천금인 그녀는 친구 하나 데려오지도 못하고 쫓겨나야 한단 말인가.과연 배지유는 도아린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배석준의 팔을 붙잡았다.“아빠... 일 년 만에 겨우 만났는데 같이 식사도 못 해요?”배석주는 얼굴을 굳히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도아린을 쏘아보았다.“네가 보미와 사이가

최신 챕터

  • 또 한 번의 거절   제764화

    서대은은 문에 기대어 서서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손을 들었다.사람의 그림자가 언뜻거리는 순간, 그는 재빨리 상대방의 얼굴을 막으려 했지만 오히려 상대방에게 제압당했다.남자는 잔근육을 가진 몸에 얼굴에는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눈빛은 매서운 독수리처럼 날카로웠다.‘이 사람은 육청아 일당이 아니야!’서대은이 물어보려던 찰나, 상대는 마취약이 묻힌 거즈로 그의 입을 막았다.거의 순식간에 서대은은 의식을 잃고 무너졌다.“함정이야! 빨리 돌아가!”사람들과 빠르게 다시 돌아온 육청아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서대은을 발로 툭툭 찼고 그제야 서대은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물건은요?”서대은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다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그 두 의사가 수상하다더니, 그들이 물건을 가져갔어요!”육청아가 이를 갈며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반드시 찾아내야 해!”사람들은 곧바로 나뉘어 각자 찾아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하의 전화가 걸려 왔다.“주변에 없습니다!”논리상으로 그들은 차도 없고 몸을 가누지 못한 사람을 데리고 멀리 갈 수는 없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주위에서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누군가가 도와주고 있는 게 틀림없어!”서대은이 단언했다.“방금 일어난 소동은 그들에게 신호를 보낸 거예요!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어!”육청아의 눈빛이 변하더니 천천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스캔했다.“아가씨, 우리는 아가씨의 사람입니다! 그러니 배신자는 이놈밖에 없어요!”바깥쪽을 맡고 있던 왕눈이 서대은을 지목하자 서대은은 코웃음 치며 받아쳤다.“난 오늘 처음이라고. 주소도 너희가 급하게 알려준 거고 내가 어떻게 정보를 넘겼다는 거야?!”왕눈은 말문이 막혔지만 여전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우리는 아가씨를 따른 지 오래되었다고! 너만 외부인이야!”“외부인이라고 해서 나를 의심한다고?”서대은도 질세라 육청아를 향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내가 들어오는 게 싫으면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요. 나한테 뒤집어씌우려

  • 또 한 번의 거절   제763화

    서대은이 서둘러 다가갔다.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그의 눈에는 거센 파도가 일렁였다.수술칼을 사용해 한 번에 그들의 목을 치는 데 자신이 있었지만,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다.게다가 만약 그들이 소리라도 낸다면 그 소년과 함께 도망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유일한 방법은 지원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군,’그는 겁먹은 척하며 수술대로 천천히 다가갔다.두 남자는 그저 눈앞의 소년이 가져올 이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전에 유 선생이 몰래 각막을 떼서 팔았잖아. 그러고는 손 씻고 고향에 내려가 별장 짓고 산대.”“손을 씻은 건 알고 있어. 근데 그것도 누릴 복이 있어야 누리지...”“무슨 뜻이야? 혹시 유 선생이...”키 작은 남자가 목을 따는 제스처를 했다.키 큰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서대은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게 아니라면 왜 저거 보고 감시하라고 했겠어? 문지기가 말하길, 유 선생을 청아 누나가 직접 손본 거래!”쭈뼛쭈뼛 다가온 서대은의 눈빛이 잠시 날카로워졌지만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시간을 낭비하게 해서 미안해. 손이 계속 떨려서...”키 큰 남자가 다시 메스칼을 서대은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내가 도와줄게!”메스칼이 소년의 배로 향했다. 서대은의 손이 심하게 떨렸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칼끝이 피부에 닿는 순간, 갑자기 밖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났다.누군가가 창문을 뚫고 빠르게 지나가며 약병을 터뜨렸고 코를 찌르는 냄새가 순식간에 퍼졌다.“안 돼!”키 큰 남자가 급히 물러섰다.서대은도 물러서며 빠르게 메스칼을 몸에 숨겼다.“마취약은 아니겠지?”다른 사람들이 입과 코를 막고 있는 모습을 보며 서대은도 급히 옷으로 입을 가렸다.밖에서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려온 후 혼란이 일기 시작했다.“여기도 경찰한테 들킨 거야?”서대은이 놀란 척하며 눈을 크게 떴다.“연성 경찰들이 계속 잠입 수사를 하고 있다던데, 여기도 들킨 거 보면 정말인

  • 또 한 번의 거절   제762화

    경호원이 미간을 찡그리며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자 도아린은 손을 흔들며 그를 안심시켰다.“선생님의 임무는 제 안전을 보호하는 거잖아요?”그리고 자신의 차 키를 그에게 던지며 말했다.“대신 차를 운전해 주세요. 가까이서 보호하는 게 더 안전할 거예요!”경호원은 운전기사와 눈짓을 주고받은 뒤, 도아린의 차로 향했고 운전기사는 돌아가서 보고하도록 했다.“성함이 어떻게 되시죠?”도아린이 조수석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며 물었다.“주호민입니다. 주 실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네. 주 실장님, 엠파이어 빌딩에 가 주세요. 육 대표님한테 감사의 뜻으로 뭔가 선물하고 싶어서요.”도아린이 손을 흔들며 그에게 차를 몰라고 했다.주호민은 차를 몰고 엠파이어 빌딩으로 향했고 도아린은 그동안 일북과 연락을 주고받기에 편했다.이전 경험 덕분에 그녀는 그들이 매우 위험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일북에게는 반드시 의심되는 장소를 찾으면 먼저 경찰에 신고하라고 전했다.[사람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안전도 꼭 지켜야 해!]황금연휴가 다가오자 쇼핑몰에는 사람들이 북적였고 주호민은 도아린의 옆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계속 따라갔다.한 명품 매장에 들어간 도아린은 사이즈를 참고하려 주호민에게 대신 입어보라고 했지만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자 도아린은 육하경과 체형이 비슷한 아무 남자에게 다가가 부탁했고 그녀의 미모에 반한 남자가 관심을 보이며 흔쾌히 승낙했다.결국, 이 광경을 지켜본 주호민은 어쩔 수 없이 마네킹 역할을 했다.“이 색은 좀 어두워요. 다른 걸로 한 번 더 입어보세요.”“이 디자인은 너무 화려해요. 육 대표님한테는 잘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주 실장님 생각은요?”“이건 너무 올드한 것 같고...”과연 도아린이 진지하게 선물할 옷을 고르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드는 순간,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이걸로 할게요!”도아린이 손가락을 튕기며 직원에게 말했다.“이거 작은 사이즈로 주세요. 선물 받을 사람이 저 친구와 키는 비슷하지만 어깨

  • 또 한 번의 거절   제761화

    서대은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없이 서 있었다.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 다시 구역질을 참으며 간신히 말을 꺼냈다.“방금 그 사람도 LY의 사람인가요?”“서은 씨 생각에는요?”“그런 것 같은데, 누구인가요? 청룡, 아니면 백호?”육청아가 말을 하려다 멈췄다.“오늘 거래가 무사히 끝나면 그때 알려줄게요.”서대은이 문 앞에서 움직이지 않자, 육청아가 그를 살짝 밀며 재촉했다.그제야 그는 한 걸음 내디디며 창고로 향했다.창고 문 앞에 누군가가 지키고 있었다.“휴대폰 내놔.”서대은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원을 끄기 전에 메시지가 성공적으로 전송된 걸 확인한 후 문지기에게 핸드폰을 건넸다.한편, 도아린은 육하경의 차가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거의 연성 주변을 한 바퀴 다 돌았지만 그 차는 계속해서 일정 거리만큼 따라오고 있었다.육하경에게 전화를 하려던 그 순간, 도아린의 휴대폰이 진동했다.앱 화면에는 메시지 알림은 없었지만 그녀는 직감으로 알았다.도아린은 급히 카페의 게시판을 열었다.[갓 태어난 지 16일 되는 송아지, 관심 있는 분은 연락해 주세요.]도아린의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튀어 올랐다.‘역시 그런 거야. 잘못을 했다고 그냥 도망갈 서대은이 아니지.’그는 분명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내부로 침투했을 것이다!‘송아지'는 남자를 뜻하고‘16일’은 아마도 피해자의 나이 16세를 뜻했다.전화번호는 일반적인 번호가 아니었고 규칙 없이 나열된 숫자들이었지만 도아린은 단번에 그 숫자가 위도와 경도를 나타내는 위치 정보라는 걸 알아챘다.차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는 아직 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일북에게 전화를 걸 수 없었다.대신 급히 메시지를 복사해서 보냈다. 빠르게 연락할 수 있는 단축어를 설정해 두었지만 서대은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할 방법은 없었다.그녀가 고민하던 중, 일북이 이해하고 바로 답장을 보냈다.[곧 사람을 데리고 갈게요. 기다려 주세요.]하지만 도아린은 긴장을 놓을 수 없었고 차를 급히

  • 또 한 번의 거절   제760화

    “보스!”육청아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묻어 있었고 온몸이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오랫동안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왜... 서대은이 들어오자 직접 온 것일 거야. 만약 오는 거래를 완수하지 못하면 나도 끝장날 텐데.’보스라는 남자는 키가 크고 흰색 롱코트를 걸치고 안에는 검은색 터틀넥을 받쳐 입고 있었다.적갈색의 살짝 웨이브 진 짧은 머리에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서대은에게로 향했고 마치 감마선처럼 그의 내면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서대은은 저도 모르게 등에 소름이 돋았다.눈앞의 남자는 외형만 보면 강재민과 닮아 있었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피비린내 나는 살기와 냉혹함은 강재민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보스.”서대은도 따라서 불렀다.남자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육청아를 향해 물었다.“물건은?”“창고에 있습니다!”육청아가 공손하게 대답했다.“부하가 지키고 있어서 절대로...”짝!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의 손이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육청아는 얼굴을 감싸 쥐고 두려움과 억울함이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네 말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남자는 차가운 냉소를 흘렸다.“앞장서.”“예.”육청아가 남자를 데리고 수술실로 향했다.그들은 ‘물건’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출고 전에 살균 소독 과정이 필요했다.이미 마른 체형의 그 소년이 깨끗이 씻긴 채 수술대 위에 인사불성으로 누워 있었다.남자는 천천히 다가가 곧 판매될 신선한 장기를 내려다보며 입가에 기이한 미소가 떠올랐다.“성의를 보이기 위해 오늘의 물건은 네가 직접 진행해.”보스라는 남자의 시선이 갑자기 서대은에게로 향했다.그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최대한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제가 경험이 없어서요. 물건을 망칠까 봐 걱정됩니다.”“직접 꺼내라는 게 아니야. 옆에서 전 과정을 지켜보라는 거지.”남자는 짧게 말한 뒤돌아서 나갔다.서대은은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숨긴 채 따라 나갔다.그러다 문 앞에서 다시 한번 돌아

  • 또 한 번의 거절   제759화

    일북의 음성 메시지였다.“대신 확인해 줄까요?”육하경이 물었다.“아니요, 괜찮아요!”도아린은 손가락을 스쳐 화면을 꺼버렸다.의사는 육하경의 팔을 맞춘 뒤, 앞으로 이틀 동안 무거운 물건을 들지 말 것과 강한 충격을 피할 것을 당부했다.병원을 나서자 도아린이 간단히 작별을 고했다.“볼 일이 있어 먼저 가볼게요.”육하경의 운전기사는 줄곧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이미 병원 앞에 차를 세워 둔 상태였다.육하경은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멀어져 가는 도아린을 바라보았다.그러나 차에 올라탄 순간, 그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따라가.”한편, 오늘은 서대은과 육청아가 처음으로 함께 움직이는 날이었다.지정된 장소에서 대기하던 서대은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주작팀의 대원들이 계속해서 그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그는 도아린을 볼 면목이 없었다.“오른쪽 3시 방향, 목표 인물 확인!”이어폰에서 실시간 보고가 흘러나왔다.“확인 완료!”누군가 응답했다.서대은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3시 방향을 바라보았다.그곳은 작은 문구 방이었다.오늘은 학생들의 개학일이라 학생들이 문구를 사러 몰려들고 있었다.그중, 마르고 키 큰 남학생이 책가방을 메고 문구점을 나섰다.다른 학생들에 비해 그의 가방은 비어 보였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운이 없어 보였다.한 남자가 다가가 길을 물었고 남학생은 조심스럽게 방향을 가리켰다.그러자 그 남자는 감사의 의미로 생수 한 병을 건넸고 남학생은 경계하는 듯했지만병뚜껑이 새것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안심하고 물을 마셨다.2분 후.남학생은 갑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며 쓰러지자 남학생을 부축하던 남자는 그를 서대은이 탄 차량으로 데려갔다.“대상 확보! 바로 이동하겠다.”그 남자는 무전기를 눌러 보고한 뒤 서대은한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출발하지.”서대은은 담배를 귀에 꽂은 채 차량을 서서히 출발시켰다.“상태는 어떻지?”서대은이 백미러로 뒷좌석을 힐끗 보며 묻자 뒤쪽에 앉아 있

  • 또 한 번의 거절   제758화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닐까요?”도아린이 고개를 돌리며 육하경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그러나 육하경은 몸을 살짝 기울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이 일은 건후도 알고 있어요. 건후가 전에 아린 씨를 찾아와 강재민과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경고했던 걸 기억하죠? 하지만 아린 씨는 듣지 않았죠. 잘 생각해 보세요. 건후가 당한 그 교통사고, 과연 강재민과 무관하다고 확신할 수 있어요?”쾅쾅쾅!갑자기 차 문이 세게 두드려졌고 도아린이 반사적으로 움찔하며 놀랐다.뒤를 돌아보니 지희가 차 문 옆에 서 있었다.그녀는 허리를 숙여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건 돌아가서 다시 얘기하죠.”도아린이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감정을 정리한 뒤, 문을 열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하경 씨도 너 보러 왔어.”지희가 육하경을 흘끔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젠 하경 씨라고 부르는 건가? 역시 내가 밀고 있는 커플이라 다르네!’지희는 싱긋 웃으며 도아린의 팔짱을 끼었다.“앞으로 도 선생님은 육 대표님과 함께 자주 와주셔야 해요!”육하경은 그런 그녀를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봤다.“두 사람 얘기 나누세요. 저는 보일러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러 갈게요. 올해는 꼭 난방 공급을 추진하려고요.”그가 떠나자, 지희는 도아린을 향해 여전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뭘 그렇게 자꾸 웃는 거야?”그러자 지희는 더욱 활짝 웃으며 말했다.“육 대표님이 우리한테 해준 모든 지원들, 전부 도 선생님 이름으로 하신 거예요! 그러니 당연히 그분이 바라는 일이 성사되길 기도해야죠!”도아린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지희와 함께 보육원의 아이들을 보러 갔다.보육원의 아이들 대부분은 유기된 아이들이었다. 특히 선천적 장애가 있는 경우가 많아 일상적인 돌봄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의료 지원도 필요했다.“육 대표님이 아이들을 위해 건강검진을 주선하셨어요. 모든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신다고요.”지희의 말에,

  • 또 한 번의 거절   제757화

    육하경이 고개를 살짝 돌려 도아린을 보더니 다시 앞을 응시했다.“아린 씨 생각엔 그 사람이 수상해요?”“건후 씨가 해남에 있을 때, 늘 우정윤도 옆에 있었어요. 배지유한테 모함당했을 때도요. 그런데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직전 그는 갑자기 자취를 감췄죠.”도아린이 느긋하게 좌석에 기대었으나 육하경의 미세한 반응을 놓치지 않고 살폈다.“아린 씨 말대로라면, 우 비서가 건후의 일정을 그쪽에 넘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요?”육하경이 자연스럽게 되물었고 운전대를 쥔 손가락이 가볍게 두 번 튕겨졌다.그건 분명한 만족감의 표현이었고 이 상황을 반기는 듯한 은연중의 반응일 수도 있었다.“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죠.”도아린이 턱을 괴고 신중하게 생각에 잠겼다.그러다 육하경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마치 그의 의견을 묻는 듯 혼잣말처럼 말했다.“모건 그룹의 전속 변호사 남궁유민, 건후 씨와 막연한 사이였던 성대호 그 둘조차 등을 돌려 건후 씨를 궁지로 몰았어요. 그렇다면 건후 씨의 가장 가까운 사람, 늘 함께했던 특별 보좌관인 우정윤의 가치는 더 크지 않을까요?”육하경이 한동안 말이 없었다.그러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자 그도 도아린을 바라보았다.둘의 시선이 맞닿았다.도아린의 눈빛은 마치 맑고 투명한 개울물 같았다. 하지만 너무 투명해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그는 피식 웃으며 자조적으로 말했다.“나도 건후와 꽤 친했잖아요. 그런데 나만 그를 배신하지 않은 것 같네요. 이러면 너무 눈에 띄는 건가?”도아린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이 정도까지 말을 꺼낸 상태에서 육하경이 숨기고 싶다면 끝까지 입을 닫을 것이고, 그녀와 더 깊이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솔직할 순간이었다.보육원으로 가는 길에 두 사람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도아린은 침묵 속에서 생각에 잠겼고 육하경은 이득과 손해를 저울질하는 듯했다.차가 보육원의 대문을 지나 서서히 멈춰 섰다.육하경이 차를 세우고 길게 한숨을 내쉬

  • 또 한 번의 거절   제756화

    도아린이 막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일북의 전화가 걸려 왔다.“아가씨, 우정윤을 찾았습니다.”“어디야?”도아린이 막 자리에 앉으려다 번쩍 일어서며 물었다.“어제 우리가 갔던 그 묘지 근처입니다.”일북의 차 내부에서는 방향 지시등이 켜지는 딸깍딸깍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잠시 후, 그는 덧붙였다.“방금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우정윤이 하얀 승용차에 올라탔습니다. 지금 뒤따라가는 중입니다.”“눈치채지 않게 따라가서 그의 은신처를 확인해. 만약 도망칠 기미가 보이면 그냥 붙잡아!”도아린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이때 비서가 노크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도 대표님, 30분 후에 회의가 있습니다.”도아린이 냉랭하게 되물었다.“그 프로젝트 원래 신 대표님 담당이 아닌가요?”“이미 온천 문제까지 해결해 줬는데 더 개입하면 고위층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어요. 게다가 신 대표님 능력도 뛰어난데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네, 알겠습니다.”비서는 신지훈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그는 가볍게 혀를 찼다.“도움 줄 땐 아주 적극적이더니 이젠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네. 진짜 뒤끝 작렬이군.”그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배건후는 왜 이런 변덕스러운 여자를 건드려서...”신지훈은 직접 도아린을 찾아가 회의 참석을 요청했다.그러나 도아린은 이미 가방을 챙겨 나가려던 참이었다.“도 대표님, 어디 가십니까?”“제가 그래도 신 대표님의 상급자인 걸로 알고 있는데 내 행선지까지 보고해야 하나요?”“그런 뜻은 아닙니다.”“다만 요즘 시국이 어수선해서 도 대표님의 안전이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도아린이 냉정하게 대꾸했다.“병원에 가려고요. 그리고 신 대표님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잘 챙깁니다.”그 말투는 마치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신지훈의 짓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한 듯했다.신지훈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유지한 채 그녀가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곧이어 한유미가 다가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