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속으로 안심했지만, 짐짓 분노한 척하며 도유준의 등을 내리쳤다.“누나에게 고맙다고 해야지!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 누나에게 잘해. 누나가 보살펴 주지 않았으면 오늘의 너는 없었을 거야!”도유준은 아직 어려서 눈에 감춰진 불만과 원망을 숨기지 못했다.그는 속으로 도씨 가문의 재산은 다 자기 거라고 생각했고 도아린은 도씨 가문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 길을 닦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등짝을 또 한 대 맞고 나서야 도유준은 억지로 고개를 숙였다.“고마워, 누나.”“고맙긴.”도아린은 웃는 얼굴이었지만, 말투는 차가웠다.“잘할 수 있을지는 네 능력에 달렸어.”도아린이 떠난 후 도정국은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그는 다시 한번 상황을 되짚어 보았지만,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도유준의 얼굴이 부어있었다.“간호사한테 가서 약 발라. 방금 같은 상황에서 내가 널 때리지 않았으면 아린이가 끝까지 물고 늘어졌을 거다.”백 교수가 보내준 장비는 공항 수송되어 벌써 병원에 도착했고 도지현은 3일간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뚜렷한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도아린이 도지현의 병실에 도착했을 때 안혜진이 간호하고 있었다.안혜진은 이전보다 상태가 많이 좋아져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는 도아린에게 의자를 가져다주고 차를 따라 주며 이틀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이야기했다.도아린은 조용히 이야기를 다 듣고는 동생을 잘 돌봐 달라고 당부하고 일어섰다. 30분 후, 도유준이 병실에 와서 안혜진에게 2만 원을 쥐여 주며 예전처럼 말했다.“담배 한 갑 사다 줘요.”안혜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도유준의 재촉에 못 이겨 나갔다.도유준은 병상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도지현의 머리맡을 짚고 몸을 낮춰 말했다.“도아린처럼 음흉하고 교활한 애가 어떻게 너 같이 멍청한 동생을 두고 있냐!”그는 도지현의 뺨을 짝짝 때렸다.도지현의 창백한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움푹 들어간 이목구비는 마치 부서진 것처럼 보였다.“네
“당신은 누구야?”도유준은 도아린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육하경은 그의 손을 잡고 도아린을 향해 돌아서며 부드럽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다치진 않았어요?”도아린은 고개를 저었다.누군가 막지 않았다면 도유준의 주먹은 분명 자신의 얼굴에 닿았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그녀도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 “유준아, 손 필요 없는 거지.”도아린은 차갑게 말했다. 도유준의 눈에는 증오와 조롱이 가득했다. “감히 나한테 손대기만 해봐. 아빠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손 하나에 2조라고 하면 아빠가 기꺼이 허락하지 않을까?”“감히!!”육하경은 잡고 있던 도유준의 주먹을 옆으로 꺾었다.뚝하는 소리와 함께 손목이 탈구되었다.육하경은 한 걸음 다가가 도유준의 손가락을 잡고 위로 꺾었다.연이어 두 번 소리가 나더니 도유준이 돼지 멱 따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도아린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도정국에게 전화를 걸었다.“내가 유준의 손을 부러뜨렸으니 2조를 보상금으로 드리죠. 불만 있으면 고소하세요.”도유준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고통스러워했고 문 앞의 안혜진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도아린은 그들 앞에서 항상 온화하고 관대한 모습이었기에 동생을 위해 이렇게까지 단호하고 냉정하게 행동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삐삐! 도지현은 도유준의 비명 소리에 놀랐는지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안혜진은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의사 불렀다.도아린은 바닥에 쓰러진 도유준을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꺼져. 발목까지 분질러 놓기 전에.”도유준은 고통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일어나 병실을 뛰쳐나가다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도정국에게 부딪혔다.그는 곧바로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아빠! 아린이가 사람을 시켜서 내 손을 부러뜨렸어요!”도정국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못마땅했다.“왜 하필 이런 중요한 시기에 누나를 건드리느냐!”도유준은 아파서 온몸을 덜덜 떨며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도정
주차장에서 육하경은 좀 미안한 듯이 도아린에게 사실대로 말했다.도아린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맑고 깨끗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난 그가 찾아왔으면 해요.”육하경은 도아린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 말을 멈칫했다.“지난번에 말해주기로 한 건 이제 얘기 안 해도 될 것 같아요.”그는 진범준 부부가 도아린과 친자 확인을 하려 한다는 것을 예상하고 검사 결과까지 확인했지만, 혈액형조차 일치하지 않았다.“말할 필요 없으면 안 하셔도 돼요. 천사 보육원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도아린은 보육원 폐쇄의 진상에 더 관심이 있었다.육민재에게 들은 바로는 영업정지 상태였고 보육원 리모델링은 잠정 중단되었지만 율이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어제 율이 보러 갔었는데 아린 씨를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저도 율이를 보러 갈 생각이었어요.”“그럼 같이 가요. 이따가 다시 데려다줄게요.”...뮤직 서바이벌 프로그램 이후 손보미는 배건후를 만나지 못했다.전화를 걸면 그는 비행기를 막 탔거나 보안 검색 중이었다.배건후가 연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그녀는 율이가 그를 보고 싶어 한다는 핑계로 병실로 불렀다.손보미는 율이의 나이에 맞지 않는 조립 모형을 사서 포장을 뜯고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너무 어려워요.”율이는 두 개의 부품을 들고 쩔쩔맸다.보육원에서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어른들 일까지 도와야 했기에 이런 조립식 장난감은 본 적도 없었다.손보미는 설명서를 보는 척하며 율이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훈남 아저씨한테 도와달라고 해 봐. 아저씨는 모형 조립을 엄청 잘하셔. 대학교 때 전국 1등도 했어.”율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아저씨 정말 멋지다!”“당연하지. 아저씨는 월반도 하고 특례 입학도 한 연성대학교 수재야.”“보미 언니랑 훈남 아저씨는 대학교에서 만났어요?”손보미는 자신의 학력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내세울 만한 것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녀는 허영심에 가득 차서 말했다.“난 외국에서 공부했어.”말
“아린 언니!”율이는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달려가서 도아린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도아린은 소파에 앉아 서로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비웃음을 지었다.“제가 때를 잘못 맞춰 왔네요.”그녀는 율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계속하세요. 저는 율이랑 밖에 나가서 놀게요.”배건후는 꼭 둘이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손보미를 밀치고 일어섰다.그 바람에 손보미는 티 테이블에 등을 부딪쳤다. 전에 다쳤던 곳이라 그녀는 아파서 눈물이 핑 돌았다.“아...”배건후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도아린에게 다가갔다.가까이 다가가서야 그는 도아린의 뒤에 서 있는 육하경을 발견했다. 그들은 또 함께 있었다.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그는 반사적으로 도아린을 끌어안으려 했다.하지만 그녀는 팔꿈치로 그의 갈비뼈를 밀어내고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행동거지 조심하세요. 당신의 하니가 율이 앞에서 망신당하게 하지 말고.”배건후는 콧방귀 뀌면서 도아린을 억지로 품에 안았다.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율이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보미 언니는 아린 언니가 자신의 약혼자를 빼앗으려 한다고 했는데 지금 보면 아린 언니는 가만히 있는데 훈남 아저씨가 와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도아린은 어리둥절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배건후는 약이라도 잘못 먹었나?육하경이 옆에 있어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일까?그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탐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건가?손보미는 아픔을 참고 일어섰다. 두 사람이 딱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참지 못하고 종이를 찢어 버렸다.그녀는 어깨를 감싸 쥐고 문가로 다가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건후 씨, 나 상처가 다시 터진 것 같아.”배건후는 도아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흰색 바탕에 반소매 정장 재킷을 입은 도아린은 활기차고 멋있어 보였다. 다만 옷깃이 다소 낮았다.도아린은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지만 손보미가 쩔쩔매는 모습을
도아린은 냉소했다.손보미의 연기력이 많이 는 것 같았다. 그 억울한 표정에 자신도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으니까.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에 머뭇거림이 느껴지자, 도아린은 갑자기 힘을 주어 빠져나왔다.거의 동시에 맞은편 모퉁이에서 뭔가 번쩍했다.“거기 누구야!”고함 소리와 함께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허둥대는 발소리가 들렸다.육하경은 곧바로 달려가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 돌아왔다손보미의 창백한 얼굴은 더욱 하얗게 질렸다. 배건후의 시선이 느껴지자,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채 눈에 띄게 불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도아린은 그 남자가 어디서 본 듯했지만, 어디에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육하경은 그의 몸에서 휴대폰 두 대와 보조 배터리 하나를 찾아냈다. 그중 한 대는 방송 중이었고, 시청자는 3만 명이 넘었다. 그들이 채팅창의 욕설을 보기도 전에 휴대폰의 배터리가 나갔다.추궁 끝에 남자는 모든 것을 자백했다. 그는 뮤직 서바이벌 프로그램 녹화 당시, 임진희의 분장실에 몰래 들어가 방송을 하다가 손보미에게 들켜 방송국에서 쫓겨난 BJ였다.그 방송으로 그는 엄청난 조회 수를 얻었고, 그의 독특한 해설 덕분에 5~6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손보미를 몰래 따라다니며 방송을 계속했다.최근 손보미는 드라마 촬영과 병원 방문 외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방송 시청자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그래서 오늘 좀 늦게 왔는데, 우연히 엄청난 싸움 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그는 즉시 방송을 시작했다.처음에는 사람들은 도아린이 다른 사람의 약혼자를 유혹한다고 욕했다. 하지만 배건후가 도아린을 억지로 끌어안자 사람들은 이번에는 배건후를 쓰레기이고 바람둥이라고 욕하기 시작했다.그 후 손보미가 나타나 배건후를 차지하려 하자 시청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다들 누가 이 남자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는 발각되고 말았다.물론 그는 사람들이 배건후를 바람둥이라고 욕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봤어?”손보미는 즉시 부인했다.그녀는 율이가 드레스를 만질까 봐 옆방에 보관해 두었기 때문이다.율이는 억울해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너무 자주 의심을 받아온 탓에 슬펐지만 용감하게 말했다.“정말 봤어요. 선생님은 내가 몰래 과자를 먹을까 봐 선물 상자를 옆방에 뒀거든요. 그날 나는 배가 고파서 과자를 찾으러 갔는데 마침 매니저 언니가 들어오는 바람에 옷장에 숨었어요.”BJ는 완전히 신났다. 손보미의 약점을 또 하나 잡았기 때문이다.그는 손보미의 파렴치한 행동에 여러 번 놀랐고, 도아린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몰래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육하경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손 빼.”“...”BJ는 마지못해 녹음 펜을 꺼냈다.육하경은 녹음 펜을 티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배건후의 동의 없이는 손보미에 대한 어떤 불리한 정보도 외부에 공개할 수 없었다.손보미는 불안한 듯 배건후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손을 꼼지락거렸다.“난 그런 내막이 있는 줄 몰랐어. 지민에게 당장 전화해 볼게.”사실 율이는 정확히 보지 못했다.옷장에 숨어 틈 사이로 김지민의 외투를 보았을 뿐, 실제로 외투를 입고 있던 사람은 손보미였다.하지만 이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김지민 탓으로 돌려야 했다.전화를 받자마자 김지민은 아무 말도 할 틈 없이 손보미의 질책을 들어야 했다.“전에 기회를 줬잖아. 근데 또 이렇게 잘못을 반복했으니 내 스튜디오에서 나가.”전화를 끊은 손보미는 미안한 표정으로 도아린을 바라보았다.“미안해. 내가 관리 잘못해서 오해가 생긴 거야. 아린 씨는 돈은 필요 없을 테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 해줄게. 보상이라고 생각해.”배건후의 얼굴은 계속 굳어 있었고 날카로운 눈빛은 차가운 기운을 담고 있었다.그는 천천히 품속에 있는 도아린을 바라보았다.도아린은 그와 눈을 마주치며 약 올리는 듯 쳐다봤다.배건후는 눈살을 찌푸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생각보다 먼저 말이 튀어나왔다.“아린아, 너 너무 심한 거 아니
물론 이것은 나중의 이야기였다.배건후가 있는 한 육하경은 도아린을 데려다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대신 달갑지 않은 손보미를 데려갔다....어느덧 주현정의 생일이 되었다.배건후는 격식을 차리기 위해 도아린을 데려가 드레스를 입히고, 메이크업도 시켜 주었다.“이거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예전에는 주현정의 생일이면 가족끼리 간단한 식사를 했었다. 올해 진범준 부부가 온다고 해도 굳이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배건후는 고급스러운 정장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서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도아린을 바라보았다.도아린은 타고난 미모에 약간의 치장만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녀에게서는 속물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고상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풍겼다.“엄마는 아빠랑 해외로 나가실 수도 있으니, 많은 친구를 초대하고 싶으신가 봐.”도아린은 주현정의 마음을 이해했다.자녀들을 돌보느라 남편과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았고, 이제 건강도 점점 안 좋아지니 당연히 남편과 함께 있고 싶어 할 것이다.하지만 그녀와 배건후의 관계는 애매했다.예전에는 비밀 결혼이었고 지금은 곧 이혼해야 하는 상황이니 친척이나 친구들이 물어보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건후 씨, 사람들이 저보고 누구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요?”주현정은 분명 손님들을 맞이하는 자리에 자신을 동행시킬 것이고 몇몇 가까운 사모님들은 이미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으니 신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배건후의 아내라고 소개했다가는 이혼 후에 곤란해질 게 뻔했다.배건후는 불쾌한 듯 눈빛이 어두워졌다.“알아서 해.”“정말요?”도아린은 웃으며 잔머리를 쓸어 넘겼다.“우리가 곧 이혼한다고 말해도 되나요?”결혼 생활은 3년 동안 비밀로 해왔지만, 이혼은 온 세상이 다 알게 생겼다.도아린은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그녀는 곧 닥칠 곤란한 상황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배건후를 놀렸다.“아니면 어머니께 제가 스승님과 출장을 갔다고 말씀드리는 건 어떠세요
손보미는 불안한 마음으로 배건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건후가 도아린과 함께 다정하게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그녀는 놀라서 표정이 일그러졌다. 주현정의 생일이니 도아린이 오는 것은 당연했다.그러나 배건후는 그녀의 신분을 인정한 적이 없었기에 아마 구석에서 일을 돕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배건후와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손보미는 기껏해야 배건후의 팔짱을 끼는 정도였지만 배건후는 도아린을 품에 안고 손님들에게 인사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상류층에는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아까 손보미를 본 사람들은 그녀와 배건후의 관계를 궁금해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주현정이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여는 이유가 두 사람의 결혼을 발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배건후는 다른 여자를 끌어안고 당당하게 등장했다.사람들의 시선은 손보미와 도아린을 오가며 두 사람을 유심히 살폈다. 손보미는 긴장한 채 와인 잔을 움켜쥐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녀가 배건후의 부인이 되면 잘 봐달라고 인사까지 했다. 그런데 이젠 그들을 어떻게 마주 한단 말인가.바로 그때, 누군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그는 공손하게 악수를 청하며 도아린을 흘끗 쳐다보았다.“이분은...”배건후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주현정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도아린의 손을 잡았다.주변 사람들이 다 궁금해하는 걸 보며 그녀는 큰 소리로 말했다.“제 며느리 도아린이에요.”시끌벅적하던 연회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멀리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만이 우아하게 울려 퍼졌다.사모님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배 대표님이 결혼하셨다고요?”“초대장 받으셨어요? 저는 못 받았는데...”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져갔다. 손보미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지만, 날카로운 시선들이 그녀를 따갑게 찔렀다.그녀는 오늘 몰래 이곳에 온 것을 후회했다.주현정은 손을 들어 분위기를 진정시켰
도아린은 변슬기를 데리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배지유가 자신을 일부러 모욕하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이곳에 유명 스타들이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스크린에서만 보던 유명인들을 실제로 보니 변슬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두 눈으로는 전부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다소 어색하게 셔츠를 만지작거렸다.아버지가 친구를 만나러 가니 단정하게 차려입으라고 당부했지만, 변슬기는 또 소개팅 자리일 거로 생각하며 일부러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왔다.그녀는 상대가 아버지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한 모습을 좋아하길 바랐다.그러나 여기에서 음료를 나르는 여직원들조차 자신보다 더 격식 있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당황했다.“도 선생님, 저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볼품없는 거 아니에요?”도아린은 그녀의 셔츠 뒷면에 약간의 땀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제가 여분의 드레스를 준비해 놨어요. 갈아입어도 좋아요.”변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일단 아빠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각할게요.”멀리서 변우빈이 그녀를 보고 약간의 타박 섞인 눈빛을 보였지만, 곧 미안하다는 듯 설명했다.“우리 딸은 성격이 참 고집스러워.”그는 변슬기에게 손짓했고 딸이 곁에 앉자 말했다.“내가 단정하게 입고 오라고 했잖아. 그런데 일하는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하니.”변슬기는 당황스러워 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주현정이 보이자 긴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큰일 났다!’문 앞에서 배지유와 다툰 것도 모자라 이번엔 배지유의 엄마까지 만나게 됐다.지난번처럼 자신에게 온화하게 대해줄 리가 없을 것이다.“...네 딸이구나?”주현정은 마치 이해했다는 듯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지난번에 봤을 때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변슬기는 몰래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분 배지유 엄마예요.”변우빈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웃으며 소개했다.“이분은 주현정
배지유가 휠체어를 돌리자마자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배지유?”“변슬기?” 배지유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이 시간에 오다니, 연회가 거의 끝나가잖아.”변슬기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온몸에 땀범벅이었고 앞머리가 하얀 이마에 붙어 있었다.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며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감 있게 말했다.“아니야, 난 사람을 찾으러 온 거야.”이어지는 장면이 바로 도아린이 목격한 것이다.배지유는 휠체어를 움직여 변슬기의 주위를 맴돌면서 눈에 비웃음이 가득했다.“너희 집은 이번 생은 물론이고, 전생에도 이런 호화로운 사람들을 본 적 없을걸? 여기를 시장으로 착각한 거야? 아무나 데려와서 ‘내 삼촌, 내 이모’라고 하면 통할 것 같아? 여기는 모두 톱스타들이야! 너 콘서트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어?”배지유는 입을 가리며 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생활비 벌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주제에 무슨 돈으로 콘서트를 본다는 거야!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기숙사로 돌아가서 기다려. 누굴 보고 싶은지 댓글 남기면 내가 대신 사진 찍어줄게.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돈을 안 받아. 대신 너는 우리 기숙사의 1년 치 청소를 맡고 내 빨래도 다 해야 해. 속옷과 양말도 손빨래로!”변슬기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연예인 보러 온 게 아니야.”“올해 최고의 억지상은 바로 너네!” 배지유는 엄지를 세우며 비웃었다.“여긴 다 연예인들뿐이야. 네가 누굴 찾는다고 하면, 내가 직원한테 말해서 불러줄게.”변슬기는 그녀를 무시하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러자 배지유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해지며 휠체어를 몰아 변슬기에게 돌진했다.거의 부딪힐 뻔한 순간, 휠체어가 갑자기 멈췄다.화가 난 배지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도아린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네가 왜...” 도아린은 왜 자신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건가?
주현정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에 그저 화났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니 그녀의 기분만 풀어주면 도아린이 그 자리를 넘보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현정아, 사람은 성인이 아니니 누군들 실수하지 않겠어?” 배석준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내가 증명해 보일게. 나와 지유야말로 네 뒤를 든든히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그는 배지유를 찾아 그녀를 데리고 주현정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세 식구가 언론 앞에 함께 나타나기만 하면 이혼 소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배씨 가문의 재산에 끼어들 수 없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배지유가 사라진 후였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도아린이 다정하게 위로했다.“배 대표님은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못할 거예요.”“차라리 저 사람이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네.”주현정은 도아린과 함께 인파를 지나갔다.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다소 어색하게 무릎을 문지르며 이따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주현정을 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가 방해되지는 않았어?”“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내 연회에 와줘서 고마워.”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고 다가갔다. 세 사람은 원형 소파에 앉았다.“이쪽은 내 딸 도아린이야. 이분은 변우빈이라고 하고 내 가장 친한 친구야. 아저씨라고 불러.”“아저씨, 안녕하세요.” 도아린은 무심코 상대방을 살펴봤다.변우빈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배석준와 비슷한 체격이었지만 조금 말랐다. 그의 얼굴과 손에는 노동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진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변우빈은 계속 주현정의 눈을 바라봤고 주현정의 미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겨있었다.“네 딸도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주현정이 뒤를 돌아보며 묻
석 대표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앞에 휠체어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요란하게 치장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이분은...”그는 주현정이 이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첫 반응은 배석준이 다른 여자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배석준의 새로운 연인은 주현정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석 대표님, 짓궂으십니다. 방금까지도 저희 딸을 카메오로 요청한다고 하셨으면서...”배석준은 말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그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배지유를 보고 있었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배지유는 엄청 민감해서 의식적으로 치마를 잡았는데 그들이 자신의 얼굴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제야 천천히 손을 떼었다.“배 대표님 따님이 몇 명이세요?”석 대표가 물었다.“... 한 명입니다.”석 대표는 웃어 보이고는 볼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고 그가 떠나자 다른 사람들도 흩어졌다.“아빠! 저 사람들 무슨 뜻이에요?”“...”배석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영문을 알게 되었다.배지유는 휠체어에 앉아있어 시선이 막혔지만, 배석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도아린을 데리고 인사를 나누는 주현정을 보았다.그들이 칭찬하는 사람은 배지유가 아니라 도아린이었다.“지유야, 여기서 아빠를 기대려. 아빠가 가서 엄마를 찾아볼게.”그는 배지유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하고는 빠르게 걸어갔다.“주현정! 당신 지금 지유는 병원에 내버려 두고 도아린을 데리고 연회에 참가하고 있어? 당신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손님들은 배석준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자리를 피했고 주현정의 얼굴에 있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대답했다.“지유는 당신 같은 아빠만 있으면 돼요.”배석준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앞서 당신은 외부인 하나 때문에 나랑 이혼하려고 했고 이제는 이혼 얘기를 하지 않으니 각종 방법으로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고 있어. 당신이 다시 JS 픽처스를 운영하게 되었는데도 나한테 얘기
JS 픽처스의 고위인사는 배석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 또 해외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현정이의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머물다가 가려고 합니다.”배석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평소에 연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주현정이 JS 픽처스에서 지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각종 이유를 찾아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를 거부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카메라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그들은 모두 주현정 덕분에 잘 되었기에 체면은 반드시 살려주어야 했다.“크흠.”배지유는 배석준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헛기침을 했다.“아, 우리 딸이 마침 해남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배석준을 둘러싼 고위인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주현정은 배지유가 연예계의 나쁜 물을 먹을까 봐 현역일 적에 절대 배지유를 데리고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위인사들도 그저 주현정에게 딸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본 적은 없었다.반응이 빠른 누군가가 술잔을 들며 공손하게 말했다.“따님은 주 대표님과 배 대표님의 우수한 점을 다 닮으셔서 단정하고 청초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새로 영입한 신인보다 예쁘신 것 같습니다.”“맞아요. 해남대학교의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시니 예쁘시고 학식도 많으시네요. 지금 업계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인재를 제일 좋아합니다!”배지유는 칭찬을 듣고 얼굴이 발그레해졌고 그녀는 두 손으로 팔걸이를 잡고 살짝 몸을 앞으로 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삐끗해서 일어서서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네요.”“별말씀을요. 발을 삐끗하면 잘 치료해야 해요. 젊고 예쁘신데 후유증을 남기면 안 되죠.”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배지유의 마음속에서는 저주로 들렸다.그녀는 발 한쪽을 다친 게 아니라 다리 하나를 잃었다. 나머지 생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배석준은 배지유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가 난리를 피울까 봐 얼른 다른 곳으로
주현정은 말투가 가라앉았고 표정이 엄숙했다.“남자의 내연녀로 이십몇 년을 있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어른이 화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나. 도아린의 양아버지는 양어머니의 혼수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했어.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딸의 효도를 받을 자격 없어!”현장에는 여자 연예인들도 많았다.같은 딸의 마음으로 이렇게 심란한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그들은 도아린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아린이 양어머니를 위해 복수를 했다고 여겼다.강홍련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아린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방금 자신의 말이 강씨 가문에게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웠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도아린은 단호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강씨 어르신은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씨 어르신께서 좋은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주었는데 당신은 밖에서 어르신의 명성이나 흐리고 다니면 안 되죠. 농부와 뱀의 이야기를 재희 씨도 들어봤을 거로 생각해요.”도아린은 강씨 어르신의 편에 섰는데 강재희는 반박할 수 없었다.여론에서 아버지의 대회에 흑막이 있다는 일로 들끓던 것이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강홍련 저 멍청이 때문에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주현정은 도아린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제 딸이고 JS 픽처스의 후계자예요. 강씨 가문에서 이렇게 제 딸을 치욕스럽게 하다니, 저희 협력은 앞으로 계속하지 않을 생각입니까?”강재희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녀는 도아린이 연회에 참가한 것은 단지 주현정과 예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주현정이 도아린을 딸로 삼고 JS 픽처스의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만약 도아린과 모순이 격화된다면 앞으로의 협력에는 장애가 생길 것이다.“강홍련 씨, 사과해요!”강홍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재희는 지금 자신을
도아린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진열대에 있는 다이아몬드의 빛이 꺾이어 그녀의 눈동자를 비춰 유독 눈부셨다.강홍련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강홍련은 도아린보다 머리 하나쯤 작아서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바라보았는데 도도한 척하는 모습이 광대 같았다.“네가 JS 픽처스에게 ‘봉황의 시대’를 광고하도록 넘겼는데 강씨 가문의 고급 주얼리들은 모두 JS 픽처스의 연예인들이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어. ‘봉황의 시대’와 JS 픽처스의 연예인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봉황의 시대’가 강씨 가문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테지.”이게 바로 연예인을 찾아 광고하는 이유였다.예를 들어 어떤 톱스타가 운동화의 모델이 되었다면 그가 나타났을 때 팬들은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알게 된다. 따로 브랜드를 찾아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도아린은 도덕과 재능을 겸비한다는 말로 강씨 가문에게 치욕을 안겨주었지만 결국은 강씨 가문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강씨 가문에서 이득을 보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도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는 강씨 가문의 사촌이야!”강홍련은 불쑥 얘기했다.“강씨 가문에서 손보미를 밀어준다면 배건후와 결혼할 수 있어. 강씨 가문에서 안씨 가문을 지지한다면 내 아들은 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거야!”“그래서요.”강홍련은 도아린이 모른 척할 줄 몰랐고 그녀의 코에 대고 얘기했다.“그래서 나한테 잘하라고. 그러면 강씨 가문에서는 네가 해남에서 살아나갈 기회라도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대회 성적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너를 디자인 업계에서 쫓아내는 것도 일이 아니지. 내 삼촌 강태식은 이 바닥을 꽉 잡고 있어. 내 삼촌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야. 너의 ‘봉황의 시대’도 잘난 척할 거 없어. 언론에서 만들어준 것뿐이야. 만약 삼촌의 학생들이 다 그게 별로라고 얘기한다면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거야!”많은 손님이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강홍련의 지나친 말에 시선을 두
“아빠가 방법을 대서 가볼게. 너는 오지 마.”배석준은 배지유가 걱정되었다. 지난번에 배지유가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도 돌아와서 다리가 아파 잠이 들지 못했다.배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애원했다.“제 친구들은 제가 아직 안에 갇혀있는 줄 알아요! 아빠랑 제가 함께 엄마의 연회에 간다면 매체에서는 저희 세 식구의 화목한 모습을 찍게 될 것이고 소문들은 자연스레 사그라질 거예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딸의 명성은 도아린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돌이킬 방법을 계속 찾지 않는다면 배지유가 해남대학교로 돌아갔을 때 반드시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당할 것이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메이크업과 코디를 해줄게.”배석준이 데리고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지민이었다.김지민은 연예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 참석하는 연예인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알아냈다. 배지유는 똑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됐고 다리의 흉터를 가릴 수 있으면서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했다.이 부분에서 김지민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배지유는 만족스럽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그녀의 치마를 들지 않는 이상 그녀가 다리 하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발을 삐끗해서 휠체어를 탔다고 하면 될 것이다.이런 장소에 김지민은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므로 부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연회장의 중심에는 도아린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고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는 현장에 있는 연예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여자의 아름다움이 너무 지나쳤다.연예계의 스타들은 자주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에 참가하므로 어떻게 분위기를 휘어잡는지를 잘 알고 자신이 어느 각도에서 가장 예쁘게 찍히는지도 알고 있었다.도아린은 처음 보는 얼굴이고 업계에 대해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 자신감이 넘쳤다.그녀가 스크린 앞으로 가서 사인할 때 스크린에는 ‘봉황의 시대’의
도아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녀의 덤덤한 눈빛은 ‘라윤주’의 이름을 듣고 초점을 잃었다.“뭐라고요?”“...”육하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가 육하경이 말을 이었다.“향 주머니로 화를 면한 것은 우연이에요. 정말 저를 도왔던 것은 세인트존스 호텔의 책임자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죠.”육하경은 입꼬리를 올려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어르신들을 3일이나 괴롭혀서야 알아냈어요. LY에서 저를 후임자로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육하경의 학업은 각 부분에서 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육씨 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빽빽이 필요했다.육민재를 예로 들어보면 능력은 가장 뛰어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맏아들의 장손 혈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최고로 좋은 자원과 경험을 쌓을 기회들을 누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그는 육씨 가문의 후계자일 것이다.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려면 모든 게 알맞게 부합되어야 한다.육하경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었고 육씨 가문의 산업에 기대를 두지 않아 오랜 시간 밖에서 떠돌며 공부를 했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세인트존스 호텔의 관리 권한이 그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놀란 마음으로 육하경은 전임자를 찾아갔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야 LY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육씨 가문 뿐만 아니라 많은 명문가가 LY와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인재를 추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었기에 자연스레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육하경은 그때 손에 향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전임자가 이상해하며 무늬를 찍어서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추천서’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경 씨가 말하는 그 이야기에도 관심 없습니다.”도아린은 책을 육하경에게 돌려주고는 차 문을 열었다.“도아린 씨!”육하경은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손을 허공에 멈추고 결국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육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