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야?”도유준은 도아린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육하경은 그의 손을 잡고 도아린을 향해 돌아서며 부드럽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다치진 않았어요?”도아린은 고개를 저었다.누군가 막지 않았다면 도유준의 주먹은 분명 자신의 얼굴에 닿았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그녀도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 “유준아, 손 필요 없는 거지.”도아린은 차갑게 말했다. 도유준의 눈에는 증오와 조롱이 가득했다. “감히 나한테 손대기만 해봐. 아빠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손 하나에 2조라고 하면 아빠가 기꺼이 허락하지 않을까?”“감히!!”육하경은 잡고 있던 도유준의 주먹을 옆으로 꺾었다.뚝하는 소리와 함께 손목이 탈구되었다.육하경은 한 걸음 다가가 도유준의 손가락을 잡고 위로 꺾었다.연이어 두 번 소리가 나더니 도유준이 돼지 멱 따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도아린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도정국에게 전화를 걸었다.“내가 유준의 손을 부러뜨렸으니 2조를 보상금으로 드리죠. 불만 있으면 고소하세요.”도유준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고통스러워했고 문 앞의 안혜진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도아린은 그들 앞에서 항상 온화하고 관대한 모습이었기에 동생을 위해 이렇게까지 단호하고 냉정하게 행동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삐삐! 도지현은 도유준의 비명 소리에 놀랐는지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안혜진은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의사 불렀다.도아린은 바닥에 쓰러진 도유준을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꺼져. 발목까지 분질러 놓기 전에.”도유준은 고통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일어나 병실을 뛰쳐나가다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도정국에게 부딪혔다.그는 곧바로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아빠! 아린이가 사람을 시켜서 내 손을 부러뜨렸어요!”도정국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못마땅했다.“왜 하필 이런 중요한 시기에 누나를 건드리느냐!”도유준은 아파서 온몸을 덜덜 떨며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도정
주차장에서 육하경은 좀 미안한 듯이 도아린에게 사실대로 말했다.도아린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맑고 깨끗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난 그가 찾아왔으면 해요.”육하경은 도아린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 말을 멈칫했다.“지난번에 말해주기로 한 건 이제 얘기 안 해도 될 것 같아요.”그는 진범준 부부가 도아린과 친자 확인을 하려 한다는 것을 예상하고 검사 결과까지 확인했지만, 혈액형조차 일치하지 않았다.“말할 필요 없으면 안 하셔도 돼요. 천사 보육원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도아린은 보육원 폐쇄의 진상에 더 관심이 있었다.육민재에게 들은 바로는 영업정지 상태였고 보육원 리모델링은 잠정 중단되었지만 율이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어제 율이 보러 갔었는데 아린 씨를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저도 율이를 보러 갈 생각이었어요.”“그럼 같이 가요. 이따가 다시 데려다줄게요.”...뮤직 서바이벌 프로그램 이후 손보미는 배건후를 만나지 못했다.전화를 걸면 그는 비행기를 막 탔거나 보안 검색 중이었다.배건후가 연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그녀는 율이가 그를 보고 싶어 한다는 핑계로 병실로 불렀다.손보미는 율이의 나이에 맞지 않는 조립 모형을 사서 포장을 뜯고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너무 어려워요.”율이는 두 개의 부품을 들고 쩔쩔맸다.보육원에서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어른들 일까지 도와야 했기에 이런 조립식 장난감은 본 적도 없었다.손보미는 설명서를 보는 척하며 율이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훈남 아저씨한테 도와달라고 해 봐. 아저씨는 모형 조립을 엄청 잘하셔. 대학교 때 전국 1등도 했어.”율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아저씨 정말 멋지다!”“당연하지. 아저씨는 월반도 하고 특례 입학도 한 연성대학교 수재야.”“보미 언니랑 훈남 아저씨는 대학교에서 만났어요?”손보미는 자신의 학력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내세울 만한 것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녀는 허영심에 가득 차서 말했다.“난 외국에서 공부했어.”말
“아린 언니!”율이는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달려가서 도아린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도아린은 소파에 앉아 서로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비웃음을 지었다.“제가 때를 잘못 맞춰 왔네요.”그녀는 율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계속하세요. 저는 율이랑 밖에 나가서 놀게요.”배건후는 꼭 둘이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손보미를 밀치고 일어섰다.그 바람에 손보미는 티 테이블에 등을 부딪쳤다. 전에 다쳤던 곳이라 그녀는 아파서 눈물이 핑 돌았다.“아...”배건후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도아린에게 다가갔다.가까이 다가가서야 그는 도아린의 뒤에 서 있는 육하경을 발견했다. 그들은 또 함께 있었다.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그는 반사적으로 도아린을 끌어안으려 했다.하지만 그녀는 팔꿈치로 그의 갈비뼈를 밀어내고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행동거지 조심하세요. 당신의 하니가 율이 앞에서 망신당하게 하지 말고.”배건후는 콧방귀 뀌면서 도아린을 억지로 품에 안았다.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율이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보미 언니는 아린 언니가 자신의 약혼자를 빼앗으려 한다고 했는데 지금 보면 아린 언니는 가만히 있는데 훈남 아저씨가 와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도아린은 어리둥절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배건후는 약이라도 잘못 먹었나?육하경이 옆에 있어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일까?그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탐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건가?손보미는 아픔을 참고 일어섰다. 두 사람이 딱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참지 못하고 종이를 찢어 버렸다.그녀는 어깨를 감싸 쥐고 문가로 다가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건후 씨, 나 상처가 다시 터진 것 같아.”배건후는 도아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흰색 바탕에 반소매 정장 재킷을 입은 도아린은 활기차고 멋있어 보였다. 다만 옷깃이 다소 낮았다.도아린은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지만 손보미가 쩔쩔매는 모습을
도아린은 냉소했다.손보미의 연기력이 많이 는 것 같았다. 그 억울한 표정에 자신도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으니까.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에 머뭇거림이 느껴지자, 도아린은 갑자기 힘을 주어 빠져나왔다.거의 동시에 맞은편 모퉁이에서 뭔가 번쩍했다.“거기 누구야!”고함 소리와 함께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허둥대는 발소리가 들렸다.육하경은 곧바로 달려가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 돌아왔다손보미의 창백한 얼굴은 더욱 하얗게 질렸다. 배건후의 시선이 느껴지자,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채 눈에 띄게 불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도아린은 그 남자가 어디서 본 듯했지만, 어디에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육하경은 그의 몸에서 휴대폰 두 대와 보조 배터리 하나를 찾아냈다. 그중 한 대는 방송 중이었고, 시청자는 3만 명이 넘었다. 그들이 채팅창의 욕설을 보기도 전에 휴대폰의 배터리가 나갔다.추궁 끝에 남자는 모든 것을 자백했다. 그는 뮤직 서바이벌 프로그램 녹화 당시, 임진희의 분장실에 몰래 들어가 방송을 하다가 손보미에게 들켜 방송국에서 쫓겨난 BJ였다.그 방송으로 그는 엄청난 조회 수를 얻었고, 그의 독특한 해설 덕분에 5~6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손보미를 몰래 따라다니며 방송을 계속했다.최근 손보미는 드라마 촬영과 병원 방문 외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방송 시청자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그래서 오늘 좀 늦게 왔는데, 우연히 엄청난 싸움 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그는 즉시 방송을 시작했다.처음에는 사람들은 도아린이 다른 사람의 약혼자를 유혹한다고 욕했다. 하지만 배건후가 도아린을 억지로 끌어안자 사람들은 이번에는 배건후를 쓰레기이고 바람둥이라고 욕하기 시작했다.그 후 손보미가 나타나 배건후를 차지하려 하자 시청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다들 누가 이 남자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는 발각되고 말았다.물론 그는 사람들이 배건후를 바람둥이라고 욕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봤어?”손보미는 즉시 부인했다.그녀는 율이가 드레스를 만질까 봐 옆방에 보관해 두었기 때문이다.율이는 억울해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너무 자주 의심을 받아온 탓에 슬펐지만 용감하게 말했다.“정말 봤어요. 선생님은 내가 몰래 과자를 먹을까 봐 선물 상자를 옆방에 뒀거든요. 그날 나는 배가 고파서 과자를 찾으러 갔는데 마침 매니저 언니가 들어오는 바람에 옷장에 숨었어요.”BJ는 완전히 신났다. 손보미의 약점을 또 하나 잡았기 때문이다.그는 손보미의 파렴치한 행동에 여러 번 놀랐고, 도아린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몰래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육하경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손 빼.”“...”BJ는 마지못해 녹음 펜을 꺼냈다.육하경은 녹음 펜을 티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배건후의 동의 없이는 손보미에 대한 어떤 불리한 정보도 외부에 공개할 수 없었다.손보미는 불안한 듯 배건후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손을 꼼지락거렸다.“난 그런 내막이 있는 줄 몰랐어. 지민에게 당장 전화해 볼게.”사실 율이는 정확히 보지 못했다.옷장에 숨어 틈 사이로 김지민의 외투를 보았을 뿐, 실제로 외투를 입고 있던 사람은 손보미였다.하지만 이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김지민 탓으로 돌려야 했다.전화를 받자마자 김지민은 아무 말도 할 틈 없이 손보미의 질책을 들어야 했다.“전에 기회를 줬잖아. 근데 또 이렇게 잘못을 반복했으니 내 스튜디오에서 나가.”전화를 끊은 손보미는 미안한 표정으로 도아린을 바라보았다.“미안해. 내가 관리 잘못해서 오해가 생긴 거야. 아린 씨는 돈은 필요 없을 테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 해줄게. 보상이라고 생각해.”배건후의 얼굴은 계속 굳어 있었고 날카로운 눈빛은 차가운 기운을 담고 있었다.그는 천천히 품속에 있는 도아린을 바라보았다.도아린은 그와 눈을 마주치며 약 올리는 듯 쳐다봤다.배건후는 눈살을 찌푸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생각보다 먼저 말이 튀어나왔다.“아린아, 너 너무 심한 거 아니
물론 이것은 나중의 이야기였다.배건후가 있는 한 육하경은 도아린을 데려다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대신 달갑지 않은 손보미를 데려갔다....어느덧 주현정의 생일이 되었다.배건후는 격식을 차리기 위해 도아린을 데려가 드레스를 입히고, 메이크업도 시켜 주었다.“이거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예전에는 주현정의 생일이면 가족끼리 간단한 식사를 했었다. 올해 진범준 부부가 온다고 해도 굳이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배건후는 고급스러운 정장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서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도아린을 바라보았다.도아린은 타고난 미모에 약간의 치장만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녀에게서는 속물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고상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풍겼다.“엄마는 아빠랑 해외로 나가실 수도 있으니, 많은 친구를 초대하고 싶으신가 봐.”도아린은 주현정의 마음을 이해했다.자녀들을 돌보느라 남편과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았고, 이제 건강도 점점 안 좋아지니 당연히 남편과 함께 있고 싶어 할 것이다.하지만 그녀와 배건후의 관계는 애매했다.예전에는 비밀 결혼이었고 지금은 곧 이혼해야 하는 상황이니 친척이나 친구들이 물어보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건후 씨, 사람들이 저보고 누구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요?”주현정은 분명 손님들을 맞이하는 자리에 자신을 동행시킬 것이고 몇몇 가까운 사모님들은 이미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으니 신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배건후의 아내라고 소개했다가는 이혼 후에 곤란해질 게 뻔했다.배건후는 불쾌한 듯 눈빛이 어두워졌다.“알아서 해.”“정말요?”도아린은 웃으며 잔머리를 쓸어 넘겼다.“우리가 곧 이혼한다고 말해도 되나요?”결혼 생활은 3년 동안 비밀로 해왔지만, 이혼은 온 세상이 다 알게 생겼다.도아린은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그녀는 곧 닥칠 곤란한 상황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배건후를 놀렸다.“아니면 어머니께 제가 스승님과 출장을 갔다고 말씀드리는 건 어떠세요
손보미는 불안한 마음으로 배건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건후가 도아린과 함께 다정하게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그녀는 놀라서 표정이 일그러졌다. 주현정의 생일이니 도아린이 오는 것은 당연했다.그러나 배건후는 그녀의 신분을 인정한 적이 없었기에 아마 구석에서 일을 돕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배건후와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손보미는 기껏해야 배건후의 팔짱을 끼는 정도였지만 배건후는 도아린을 품에 안고 손님들에게 인사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상류층에는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아까 손보미를 본 사람들은 그녀와 배건후의 관계를 궁금해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주현정이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여는 이유가 두 사람의 결혼을 발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배건후는 다른 여자를 끌어안고 당당하게 등장했다.사람들의 시선은 손보미와 도아린을 오가며 두 사람을 유심히 살폈다. 손보미는 긴장한 채 와인 잔을 움켜쥐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녀가 배건후의 부인이 되면 잘 봐달라고 인사까지 했다. 그런데 이젠 그들을 어떻게 마주 한단 말인가.바로 그때, 누군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그는 공손하게 악수를 청하며 도아린을 흘끗 쳐다보았다.“이분은...”배건후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주현정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도아린의 손을 잡았다.주변 사람들이 다 궁금해하는 걸 보며 그녀는 큰 소리로 말했다.“제 며느리 도아린이에요.”시끌벅적하던 연회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멀리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만이 우아하게 울려 퍼졌다.사모님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배 대표님이 결혼하셨다고요?”“초대장 받으셨어요? 저는 못 받았는데...”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져갔다. 손보미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지만, 날카로운 시선들이 그녀를 따갑게 찔렀다.그녀는 오늘 몰래 이곳에 온 것을 후회했다.주현정은 손을 들어 분위기를 진정시켰
도아린의 왕관은 심플하면서도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반면, 손보미의 왕관은 자잘한 다이아몬드가 빽빽하게 박혀 답답하고 옹졸해 보였다.보석의 가치만 비교해도 손보미는 도아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도아린은 백옥 같은 피부와 차가운 아우라로 마치 타고난 여왕처럼 왕관을 완벽하게 소화했지만 창백한 안색에 병약해 보이는 손보미는 마치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오른 첩실처럼 어색하기만 했다.“어라?”주변의 수군거림을 들은 도아린은 코웃음을 쳤다.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남자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무슨 뜻이야?”“헤어핀이 같네요.”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우아하게 인사를 건넸다. 배건후는 그 말에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완전 다른데.”사람들의 시선과 대화가 견디기 힘들었던 손보미는 결국 드레스 자락을 쥐어 잡으며 다가왔다.“건후 씨... 아린 씨.”배건후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마치 남보다도 못한 낯선 사람을 대하듯 차가웠다.도아린은 비웃음을 머금고 그를 흘깃 보았다.오스카상이라도 줘야 할 연기력이었다.그의 연기는 오히려 손보미보다 잘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둘이 아는 사이가 아닌 줄 알 것이다.그녀는 쓰레기 같은 남자와 여자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곧 손보미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아린 씨, 여기 예비 장신구 세트가 있는데, 오늘 그쪽 드레스에 잘 어울릴 것 같아... 이걸로 바꿔 착용해 줄래?”손보미는 장신구 상자를 도아린에게 건네며 말했다.“내 작은 성의야. 전에 오해해서 미안했던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받아줘.”그녀는 말하는 동안 시선을 도아린의 머리에 고정했다.의도가 너무나 분명했다.도아린은 가식적인 미소조차 짓지 않고 말했다.“싫어.”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는 손보미는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였다.“아린 씨, 오늘은 아린 씨가 주인공이니, 내가 손님인 걸 생각해서 조금 양보해 주면 안 될까...”“보미 씨, 요구가 너무 지나친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