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습니다.”도아린은 침착하고 진지하게 말했다.“만약 녹화에 참여하지 못하신다면 위약금으로 큰 손해를 보실 뿐만 아니라 방송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위험도 있습니다. 또한, 오염된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르신다면 드레스 디자이너의 심기를 건드려 후폭풍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임진희는 주먹을 꽉 쥐며 눈에 분노의 빛을 띠었다.“그렇다면 내가 널 믿어야 할 이유가 뭐지?” “도아린의 결정을 막아야겠어.”배건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놀란 손보미는 도아린을 노려보며 휴대폰을 꽉 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최대한 시간을 벌 테니 서대은 씨에게서 임진희 선배님께 임시로 빌릴 드레스를 구해줄 수 있어? 브랜드 메인 상품으로.”“사이즈를 알려 줘.”손보미는 전화를 끊고 임진희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실례지만 선배님의 사이즈를 여쭤봐도 될까요? 제 친구가 드레스를 가지러 갔는데 곧 도착할 거예요. 서대은 씨의 디자인이라면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서대은은 디자인계에서 떠오르는 유망주로, 여러 국내외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실력자였다.‘별들이 떠받드는 달’이라 불리는 디자이너만큼은 아니었지만, 서대은의 작품 역시 연예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임진희의 조수가 다가와 치수를 알려주었고 손보미는 이를 배건후에게 전달하며 그를 떠올렸다.손보미와 배건후가 대단히 돈독하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임진희 곁으로 돌아온 손보미는 상황을 낮은 목소리로 전했고 임진희는 이제 손보미를 조금 더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배건후가 손보미 대신 설명하고 보상해 줄 수 있다면 임진희의 분노도 누그러질지 모를 일이었다.한편, 도아린은 손보미가 건 전화를 배건후가 받았음을 짐작하고 있었다.‘하지만 배건후는 어떻게 서대은에게서 드레스를 빌릴 수 있다고 그렇게 자신할 수 있는 걸까?’도아린은 메시지를 하나 보낸 뒤 임진희를 바라보았다.“선배님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제가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만약 제가 신뢰할
사람들은 몰려와 구경하기 시작했고 밖에 있던 한 유명 인플루언서는 그가 몰래 방송에 끼어든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바로 연결을 시도했다. 두 방송은 거의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락거렸다.몇몇 사람들은 손보미의 인스타에 몰려가 해명을 요구했고 생일 축하 영상은 곧바로 삭제되었다.[듣자 하니 도아린 씨는 평범한 수선사가 아니라 사실 아현 씨의 조수라고 하네요.] [죄송한데 아현 씨가 누군지 아시는 분 있나요?][네이버엔 없지만 업계에서는 명망이 높아요.][도아린 씨가 ‘별들이 떠받드는 달’을 정말 잘 복원한다면 진짜 실력자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진짜 실력 있는 사람이 손보미 씨의 대역을 맡아준다면 그건 오히려 손보미 씨에겐 영광 아닌가요? 감독에게 거절당했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여기엔 분명 다른 사정이 있는 게 확실해 보여요.]임진희는 함예진의 지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도아린에게 드레스 수선을 허락했다.스태프들은 빈방 하나를 준비했고 도아린의 요구에 따라 필요한 물건들도 준비했다.도아린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배건후의 전화가 걸려 왔다.“네가 아현 씨에게 배운 미숙한 기술로 여기서 망신이라도 당할 생각이야?”배건후는 비아냥거리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경찰도 이미 납치 사건이 손보미 씨와 무관하다고 확인했어. 너의 행동은 지금 손보미 씨 일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어.”도아린은 냉소를 지었다.“손보미 씨가 아현 씨 옷을 망가뜨렸다고 모함한 건 한마디도 없네.”“손보미 씨가 아현 씨께 사과하도록 만들 테니 당장 그만둬.”“내가 싫다고 하면?”“도아린!”배건후의 목소리가 한층 차가워졌다.“그 드레스 소유자가 누군지 알아? 돈 많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 네가 그 소장품을 망가뜨리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도아린은 가벼운 냉소를 머금고 웃었다.도아린은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으며 눈에 얼음처럼 차가운 조롱의 빛이 어려 있었다.“그래서 손보미 씨에게 주려다 거절당한 거라는 거지.”“헛소리하지 마!”도아린은 깊이 숨을
“Can I help you?”서대은은 과자를 먹으며 어설픈 영어로 대답했다.배건후는 차갑고 검은 눈으로 서대은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얼굴에 물었다.“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서대은.”우정윤은 눈을 크게 떴다. 그는 그들이 들어온 이후로 계속 바 뒤에 앉아 헤드폰을 끼고 과자를 먹으며 가게에 들어온 손님들을 무시하고 있었다.직원이 우정윤 앞에서 서대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가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이건 배건후를 조롱하는 것과 다름없었다.배건후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지만, 그는 여전히 신사답게 명함을 건넸다.“매장에서 ‘브랜드의 메인 상품’ 하나를 빌리고 싶습니다. 가격은 당신이 정해 주세요.”서대은은 명함을 받아 한 번 살펴본 뒤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졌다.배건후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그는 창문에 붙어 있는 공고를 가리켰다....스태프들이 도아린이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왔다.방해를 하지 않기 위해 방에는 그녀 혼자만 남겨두었다.손보미는 인스타에서 공격당했다는 소식과 자신이 방금 한 말과 행동이 거의 50만 명에게 실시간으로 노출된 것을 보고 분노하여 새로 만든 손톱을 부러뜨렸다.“비겁한 것들! 내 돈을 벌면서 나를 비웃다니!”그녀는 김지민에게 자신을 따라다니던 인플루언서를 방송국에서 쫓아내라고 지시하며 공보 문안을 몇 개 준비하라고 했다.손보미는 방문을 끊임없이 쳐다보았지만, 문은 꼭 닫혀 있었고 조용했다. 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아무리 신비롭게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방 안에서 도아린은 드레스의 밑부분을 물에 담그며 비율을 조절했다.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고 도아린은 소유정이 자신을 찾는 줄 알고 받으려다가 발신자를 보고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별들이 떠받들이는 달’이 우주의 별처럼 빛나는 이유는 치마의 원단이 특별히 처리된 섬세하고 부드러운 벨벳이기 때문이다.벨벳이 제자리를 잘 잡도록 겉에는 보호막이 추가로 덧대어졌다.5분 동안 담가두면 벨벳 속의 성분이 분해되어 빠르게 물 위로 떠 오르고 그 뒤에 빨
도아린은 손을 바꾸어 캐리어를 들었다.짝하는 소리와 함께 손보미는 따귀를 맞았다. 손보미는 도아린이 배건후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때릴 줄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나를 때렸어?”“건후 씨한테 보여주고 싶었어. 손뼉이 꼭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건 아니라는 걸.”“...”손보미는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배건후를 바라보았고 배건후의 검은 눈동자는 도아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도아린이 손보미를 때린 것에 대해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고 그녀를 질책하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손보미는 마음속으로 분노가 치밀었지만, 겉으로는 계속 연약한 척을 해서 배건후의 동정을 사야 했다.“도아린, 이렇게 해서 너의 화가 풀린다면 더 때려도 나는 상관없어. 나는 절대 진희 선배님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없어.”도아린은 아무 말도 없이 또 손보미의 따귀를 때렸다.“...”손보미는 순간 눈이 빨개졌다.‘도아린 미친 거 아니야? 그냥 해보는 소리인 거 몰라?’배건후는 도아린의 손을 잡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만해.”“보미 씨가 때리라고 한 거예요. 본인도 괜찮다고 하는데 건후 씨가 마음이 아파하네요.”도아린은 뒤돌아 떠나려고 했지만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옷은 보미한테 주고 너는 나 따라와.”배건후는 서대은의 핸드폰에서 라이브를 봤고 오는 길에 검색을 해봤는데 욕하고 조롱하는 댓글들을 보고 사건의 경과를 알게 되었다.도아린은 이번 일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이미 증명했으니 다시 그 흙탕물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아현을 위해 자신까지도 다시 연루되게 하는 행동은 배건후가 보기에 멍청한 행동이었다.그는 상대한테서 루비를 구매한 적이 있기에 무척 고집이 센 남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망가뜨렸다면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배건후가 자세하게 얘기를 하지 않는다면 도아린은 그저 그가 손보미의 편을 들어서 공을 돌리려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도아린의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차가운 웃음을 띠었다.“옷은 임진희 선생님이 저한
임진희는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어 계단을 내려오다 발목을 삘 뻔했다. 그러다 도아린이 대기실 문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눈빛이 반짝였다.“옷 수선은 다 됐어?”“수선 다 했습니다.” 도아린이 캐리어를 내밀며 말했다. “선생님, 여기서 바로 확인해 보시죠.”두 번째 멘토가 노래를 다 부르고 임진희가 드레스룸에서 나왔다. 그녀의 표정과 걸음걸이는 한층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임진희는 마지막 무대였다. 무대에 오른 그녀는 평범한 듯한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천장에서 조명이 비추자 치맛자락이 연한 파란색 별빛 패턴으로 변했다.시청자들의 채팅창에서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렸고 프로그램의 신기록을 경신할 정도였다.손보미는 긴장한 채로 백스테이지에서 준비하고 있었기에 임진희의 노랫소리만 들었을 뿐 화면은 보지 못했다. 하여 무대 위에서 임진희가 ‘별들이 떠받들이는 달’ 콘셉트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걸 보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노래 실력도 평범한 그녀는 긴장과 혼란으로 인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그리고 도전자였던 소유정은 최고 점수를 받아 최저 점수 참가자를 탈락시키고 정식 참가자로 진출했다.거의 11시가 되어서야 프로그램이 끝났고 도아린은 소유정이 메이크업을 지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집으로 갔다.임진희의 비서가 메이크업 룸으로 들어왔고 손보미는 자신을 찾는 줄 알고 바로 다가가 말했다. “선배님 인터뷰 끝났나요? 제가…”임진희의 조수는 손보미를 지나쳐 도아린에게 다가가 말했다. “도아린 씨, 선생님께서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시간 되세요?”도아린이 잠시 망설이자 비서가 덧붙였다. “친구도 함께 오시죠. 함 선생님도 오실 거예요.”“알겠습니다.”손보미는 임진희의 비서를 따라가서 물었다.“선배님께서 저도 같이 오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비서가 머리를 치며 말했다. “아, 깜빡했네요.”손보미는 활짝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떻게 도아린만 부르고 자기를 부르지 않을 수
“아무 뜻도 아니야. 그저 아현 선생님이 워낙 조용하고 겸손을 유지하는 분이라 내가 여러 사람을 통해 어렵게 그분을 모셔와서 ‘별들이 떠받들이는 달'을 수선하게 했는데 도아린은 이 업계에 들어온 지 고작 보름 만에 그분의 보조가 되고, 그분의 비법까지 배울 수 있다는 게 조금 의아해서.”...임진희가 예약한 식당은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한 번에 한 테이블만 받는 곳이었다.“카톡 추가해도 될까?” 임진희는 함예진과 도아린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도아린은 함예진을 바라봤고 함예진은 요리를 집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도아린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선생님, 번호를 주시면 제가 추가하겠습니다.”임진희는 번호를 누르며 말했다.“선생님이라 부르지 말고 언니라고 해.”“얘는 나를 이모라고 불러.”함예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나이로 따지면 다르게 불러야지. 내가 언니보다 몇 살 어리잖아.” 임진희는 함예진의 목을 끌어안았다.소유정이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선생님, 저도 추가할 수 있을까요... 곤란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그래, 추가하렴. 하지만 말한 대로 지켜야 해.”소유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번호를 받으며 감격했다. 드디어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번호를 받게 된 것이다.임진희는 먼저 소유정의 실력을 칭찬한 뒤 다음번 대회에서는 더 난이도 있는 곡을 선택하기를 바란다고 했다.소유정은 추천해 줄 곡이 있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임진희는 대화 화제를 돌려 도아린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오늘은 정말 네 덕에 살았어.”그녀는 말을 마치고 함예진을 힐끗 보며 덧붙였다.“내가 멘토 의자에 앉자마자 메시지가 와서 보는 순간 정말 정신이 아찔했어.”“표정은 꽤 행복해 보이던데?”“언니 연기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조금은 숨길 수 있어.” 임진희는 도아린을 보며 물었다.“그 사람이 라이브를 볼 거라고 어떻게 알았어? 혹시 그 사람과 친분이 있는 거야?”함예진은 테이블 아래에서 임진희의 다리를 가볍게 건드렸고 임진희는 급히
남자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니 도아린은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미안해요.” 그녀는 차 문 쪽으로 몸을 옮겼다.배건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관계를 정리하려는 행동이 문자 내용보다 더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서대은이랑 안 친해?”“그렇게.. 친하지 않아요.”“관계가 어느 정도길래 같이 어묵을 먹을 수 있는 건데?”“...” 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당신 정말 날 미행했어요?”배건후는 손가락을 살짝 움츠렸다. 예전에는 자신이 도아린에게 미행당했다고 의심했었는데 지금은 도아린에게 의심을 받고 있었다. 인과응보라더니, 도망칠 수 없는 굴레였다.도아린은 비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나보고 서대은한테 가서 바다 진주를 사 오라면서요. 그럼 당연히 친해져야죠. 안 그러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드레스를 고칠 방법이 없잖아요.”“...”배건후는 애꿎은 바지만 매만졌다. 핑계가 너무 어색했다. 누가 어묵을 먹으며 친해지는 거냐 말이다. 그것도 편의점에서.성대호가 그에게 보낸 사진을 여러 번 확대해서 봤었다. 오늘 서대은의 태도까지 봐서는 둘의 관계가 어묵 한 접시로 쌓을 수 있는 단순한 우정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배건후는 속이 울렁거리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그래서 네가 나한테 가져온 어묵은 너희가 먹고 남은 거야?”도아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건 아니지.”배건후는 한숨을 내쉬었다.도아린이 말을 이었다. “당신 어묵을 안 먹어봤어요? 그거 따로 나눠진 국물 통에 들어 있는 거잖아요. 먹고 싶은 거 골라서 먹는 거라고요. 우리가 다 먹은 후에 몇 꼬치를 골라서 가져온 거예요.”‘그게 먹고 남은 걸 가져온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배건후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차는 터널로 들어섰고 양쪽에서 밝게 비추는 조명이 차 안으로 들어와 남자의 냉랭한 얼굴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도아린은 그의 눈빛에 베일 것만 같았다. 서대은
하춘녀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 여자는 정말 독해. 그렇게 수모를 당했으면서도 경찰에 신고하다니. 네 아빠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연락도 안 돼. 우선 나한테 몸을 숨길만 한 장소 하나 마련해줘.”“그 여자가 수모를 당했다고요?”“아마 그럴 거야. 내가 들어갔을 때는 그런 상태였으니까.”손보미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지갑에서 두툼한 돈뭉치를 꺼내 하춘녀에게 건넸다. “위치를 보내줄 테니, 그곳에 며칠 머물러 있어요. 일이 잠잠해지면 다시 나와요.”하춘녀는 돈을 주머니에 넣고 문 쪽으로 향하다가 멈춰 섰다. “엄마는 갈아입을 옷이 없어.”손보미는 입지 않는 옷 몇 벌을 찾아 그녀에게 건넸고 하춘녀가 떠난 후 그녀는 온라인에서 도아린의 납치 사건을 검색해 보았지만 어떤 소식도 찾을 수 없었다.하춘녀는 받은 주소를 따라 싸구려 여관으로 찾아갔다. 요금은 저렴했지만, 환경이 무척 지저분했다. 근처에 더 나은 여관이 있나 둘러보려는데 골목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갑자기 빼앗겼다.“거기 서! 당장 물건을 돌려줘!”하춘녀는 다급히 쫓아서 뛰어갔지만, 오토바이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숨을 헐떡이며 그 오토바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골목을 돌자 오토바이가 멈췄다. 방우진은 헬멧을 백미러에 걸어두고 가방 안에서 이십몇만 원을 찾아냈다. 그 여자가 입고 있던 옷을 보고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형편없는 신세였다.방우진의 마음엔 분노가 가득했다. 경찰이 그를 찾고 있어서 큰 병원에 갈 수도 없었고 성대호가 준 약은 잠시 고통만 덜어줄 뿐 전혀 치료되지 않았다. 성대호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반년 월세를 챙기고 도망치려 했지만, 세입자가 돈을 주지 않는다면서 관리부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방우진은 신분이 드러날까 봐 세입자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그 틈에 도망쳤다.모든 게 배지유 탓이었다. 그녀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깊이 잠들어 있던 배지유는 전화 소리에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