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린은 소유정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녀는 소유정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는 핑계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오늘 귀한 손님이 오셔서 불편하다는 이유로 경비원은 소유정을 거절했다.소유정도 머리가 좋았다. 그녀는 경비원에게 대단한 점쟁이가 말하기를 자신이 올해 대운이 트려면 생일인 오늘 착한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며 그녀를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면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연성에는 보육원이 많으니까.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경비원은 유은서에게 연락한 후 그녀를 들여보냈고 방문할 범위를 지정해 주었다.도아린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우린 들어와서 아이들을 하나도 못 봤네요.”이제 막 아침을 먹은 시간이라 지금은 아이들이 마당에서 활동해야 할 때였다. 실내에서 놀더라도 소리가 나야 정상이었다.그런데 그들이 들어온 이후로 마당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장애 어린이는 물론이고 선생님조차 보이지 않았다.곧 직원이 등록부를 가져왔다.등록된 아이는 20명이고 자립할 수 없는 아이가 4명, 지능 장애가 있는 아이가 8명, 선천적 병을 가진 아이가 8명이었다.율이는 선천적 질병이 있는 아이 중 가장 어렸고 나머지는 모두 15~16세였으며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만 돌아왔다.육하경은 수입과 지출 내역을 도아린에게 보여주었고 두 사람은 서로의 눈에서 원하는 답을 읽었다.“보육원의 조건은 정말 열악하네요.”육하경은 자료를 직원에게 건네며 말했다.“등록된 아이 중에 이동해야 할 아이가 12명이네요. 방을 준비하라고 할게요.”“아니, 생활 교사도 있어요.”직원이 급히 말했다.“그리고 나와 유 선생님, 경비 그리고 주방장까지 합치면 8개의 방이 더 필요해요.”“보육원을 리모델링 하려면 선생님과 경비원은 당연히 남아서 감독해야겠죠.”도아린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유 선생님은 병원에서 율이를 돌봐야 하고 주방장은 필요 없어요. 호텔에서 음식을 제공하니까요.”“...”직원의 얼굴이 확연히 안 좋아 보였다.그는 눈을 굴리더니 뭔가 생각난
“거기 서!”건장한 남자 둘이 후문에서 쫓아 나왔다.유진혁은 땅에 떨어진 막대기를 집어 들고 휘두르며 소유정에게 얼른 도망치라고 외쳤다.소유정은 다리가 후들거려 두 걸음을 뛰다가 유진혁이 걱정되어 다시 돌아왔다.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연예인이었던 그들은 결국 힘 좋은 남자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키 큰 남자는 유진혁의 휴대폰을 빼앗아 몰래 찍은 영상을 보고 냉소를 지었다.“우리 보육원이 이제 유명해졌나 보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 걸 보니.”그는 유진혁의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너, 무슨 블로거야?”유진혁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난 아직 계정도 없어요. 우린 진짜 아무것도 못 봤으니까 그냥 보내주세요. 바로 갈게요.”“여기가 공원인 줄 아냐?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게?”꺽다리 남자는 보육원 관련 영상을 삭제하고 나서 자신의 휴대폰으로 스캔한 후 다시 휴대폰을 유진혁에게 내밀었다.“입장료는 내야지.”휴대폰 화면에는 600만 원 결제창이 떠 있었다.“저... 저는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요... 돈 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요?”“돈이 없다? 그럼 네 여자친구를 담보로 내놔.”꺽다리 남자는 소유정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난쟁이 남자에게 말했다.“며칠째 손님이 없어서 사장님도 기분이 별로던데.”“빌어먹을!”소유정이 욕설을 퍼붓자 그들은 그녀의 머리를 힘껏 눌렀다.“내 여자친구 건드리지 마! 돈 줄게, 돈 줄게!”유진혁은 남자에게 풀어달라고 요구했지만 남자는 먼저 비밀번호를 말하라고 요구했다.결국, 유진혁은 돈을 지불하고 소유정을 품에 안았다.“빨리 나가자.”소유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브로치로 다 녹화했어. 이놈들, 반드시 폭로해버릴 거야!”그들에게 문을 열어주려던 경비원은 마침 전화를 받더니 눈빛이 순식간에 변했다.그러고는 찰칵 소리와 함께 다시 문을 잠갔다.“두 분 불편하시겠지만, 잠시만 기다렸다가 우리 귀한 손님이 조사를 마치면 가세요.”“무슨 뜻이죠?
건장한 남자는 소유정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소유정은 더듬거리며 말했다.“저, 저는 방금 왔는데 여기 환경이 너무 안 좋아서 그만두려고요.”“보육원은 복지 기관이니 현재 조건이 다소 열악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제 육 대표님이 리모델링하고 나면 많이 좋아질 거예요.”도아린은 일부러 설득하듯 말했다.“천사 보육원은 현재 많은 네티즌의 관심을 받고 있으니 여기서 계속 있으면 미녀 선생님으로 유명해질 수도 있어요.”“하지만 난...”“돌아가서 잘 생각해보세요.”도아린은 건장한 남자를 보며 말했다.“이분을 보내주세요. 제가 보기엔 남을 것 같아요.”건장한 남자는 당연히 쉽게 풀어주고 싶지 않았다.육하경은 도아린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말했다.“아린 씨가 이분을 집에 모셔다드리면서 길에서 잘 설득해주세요. 젊은이라면 멀리 내다봐야죠.”도아린은 그의 의도를 알았지만, 유진혁을 보며 말했다.“두 분 사귀는 사이죠? 그럼 남자친구분이 집에 데려다주는 게 좋겠네요. 이분은 남자친구 의견을 더욱 신경 쓰는 것 같은데.”건장한 남자가 반응하지 않자 육하경의 표정이 굳어졌다.“왜요? 내 말도 안 통하는 건가요?”남자는 마지못해 손을 놓으며 소유정의 귓가에 속삭였다.“네가 가수라는 걸 알고 있어. 찾으러 갈게.”소유정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비틀거렸다. 그러자 유진혁은 이내 그녀를 부축했다.두 사람은 도아린의 시선 아래 보육원을 떠났고 경비는 차량 번호를 적어두었다.도아린이 한숨을 돌리려던 찰나, 배지유가 미친 듯이 뛰어왔다.“도아린! 너 이 뻔뻔한 년! 감히 하경 오빠한테 꼬리 쳐...”배지유가 그녀의 어깨에 걸친 옷을 잡자 도아린은 반대로 배지유의 머리채를 잡았다.“하경 씨는 너를 쳐다보지도 않는데 무슨 자격으로 나랑 싸우겠다는 거야.”“나쁜 년! 오빠한테 다 말해서 혼쭐내 줄 거야!”“어디 한번 해보라지, 오빠가 네 말을 들을지 아니면 내 말을 들을지!”건장한 남자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오늘 한꺼번에 미녀가 셋이나
배건후는 바람을 가르며 다가와 조수석 문을 열더니 도아린을 확 끌어냈다.도아린은 중심을 잃고 배건후의 품에 휘청거리며 쓰러졌다.‘이 남자는 왜 이렇게 화가 난 거야? 손보미가 병원에서 또 무슨 꼼수라도 부린 건가?’그녀가 잠시 생각할 틈도 없이 뒤에서 배지유의 거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도아린, 방금 했던 말 다시 해보시지 그래?”‘얘는 제정신이야?? 내가 아까 농담한 거 몰라? 어떻게 이걸 배건후에게 일러바치겠다는 거지? 그가 아무리 나한테 관심 없다 해도 자기 체면은 중요할 텐데 이렇게 친구 앞에서 망신을 준다면 배지유, 너 오늘 진짜 끝장인 거야.’“오빠! 도아린이 오빠랑 이혼하고 하경 오빠랑 결혼할 거래!”배건후가 머리를 홱 돌렸다.그의 눈빛은 마치 얼어붙은 비수처럼 곧게 날아왔다.배지유는 그 살기에 움츠러들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차 안에 있던 육하경도 그의 위압감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핸들을 꽉 움켜잡았다.아까 도아린은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그런 말을 내뱉었지만, 그는 그녀의 눈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찾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머리를 눌린 채 차 안에 들어가고 있었고 그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도아린은 차 문에 팔꿈치를 부딪쳤다. 배건후는 뒤이어 차에 올라타더니 문을 쾅 닫았다.“출발해.”조수현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지시에 따랐다.소유정의 전화가 걸려오자 도아린은 서둘러 받았다.“아린아, 무사한 거야?”소유정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나 괜찮아.”도아린은 스피커를 가리며 작게 말했다.“너 먼저 친구 집에 가 있어. 내가 연락할게.”“그 보육원이 뭔가 이상해. 그들은...”“알고 있어.”도아린이 대화하기 어려운 걸 알아챈 소유정은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건후 씨, 그 보육원 있잖아...”“너 하경이랑 결혼할 거라고?”“그냥 농담이었어.”“농담?”배건후는 코웃음 쳤다.“생각도 참 야무져.”배건후는 그녀가 인터넷에 떠도는 자신과 손보미의 스캔들을
염치가 없는 사람은 봤지만, 이렇게 염치없는 사람은 처음이었다.도아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배 대표님, 저에 대해 너무 신경 쓰시는 거 아니세요?”남자는 냉소하며 답했다.“내가 너를 배 씨 저택에서 데리고 나왔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는 나한테 책임을 물으실 거잖아. 어떻게 밤새 안 들어오고 전화도 안 받을 수 있어?”“잠들어서 못 들었어요.”이 설명은 꽤 그럴듯했다.하지만 남자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는 더욱 짙어졌고 손에 쥔 담배는 거의 부러질 듯했다.“정말 태평이네.”“그럼요. 안 그러면 어떻게 당신이 상간녀랑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걸 보고만 있겠어요.”“...”배건후는 말이 막혔다.그는 손에 남은 담배를 세게 빨아들인 후, 느긋하게 말했다.“보미의 상처는 꽤 심각해.”하니가 다쳤으니 그의 눈에는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큰일이겠지. 더군다나 어제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렸으니, 엄청 마음이 아플 것이다.도아린은 코웃음 쳤다.“당분간은 안 죽어요.”“아린아, 넌 꼭 가시 돋친 것처럼 말해야겠어?”배건후는 불만스럽게 눈썹을 찌푸렸다.“성형외과에 연락했으니 흉터 하나도 안 남을 거잖아요. 내가 고슴도치라도 보미한테는 소용없죠.”차가 엠파이어 빌딩의 상업 거리에 진입하자 도아린은 도유준이 사람들을 지휘하며 간판을 거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그래서 다시 고개를 돌려 뒷좌석 창문으로 바라보았지만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내가 잘못 본 건가?손보미가 점포를 내주지 않으면 도정국은 새 가게를 열 수 없었다.그녀가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배건후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말투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누구의 전화인지 뻔했다.차가 멈추자 도아린은 차에서 내리며 일부러 차 문을 세게 닫았다.배건후는 도아린의 옆으로 다가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푹 쉬어야지.”‘개자식, 아까는 손보미 때문에 나를 몰아세우더니, 이젠 또 저렇게 살갑게 굴어? 그렇게 걱정되면 병원에서 지키던가.’그는 도아린의 어
손보미는 초조한 나머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그녀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기자가 밖에서 몰래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고아가 아니라 흡혈귀 같은 부모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내가 율이를 치료하는 데 쓴 돈은 모두 건후 씨가 준 거예요. 내가 무슨 돈이 있겠어요.”손보미는 아픔을 참고 일어나며 말했다.“나는 건후 씨한테는 고아라고 했어요. 그런데 내가 거짓말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는 더 이상 나를 도와주지 않을 거예요. 내가 돈이 없으면 두 분도 편하게 살 수 없잖아요.”손강해는 눈을 부릅뜨고 욕을 하려고 했지만 하춘녀가 말렸다.“보미야, 우리도 너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아. 네 동생이 연성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해서 다음 달에 입학하는데 우리도 지낼 곳은 있어야 하잖니?”손보미는 혐오감을 억누르며 곤란한 척했다.“나도 집 살 돈은 마련해 놨었는데, 도아린 그 년에게 드레스 수선비로 6억이나 사기당했어요.”“도아린은 누구야?”“나랑 건후 씨를 빼앗으려는 년이요. 대놓고는 못 하니까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거예요.”손보미는 어젯밤 도아린의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눈빛을 떠올리며 화가 나서 이를 꽉 물었다.“내가 다친 것도 그 여자 때문이에요. 여기서 나를 괴롭힐 시간 있으면, 차라리 가서 그년이나 혼내 주세요.”손강해의 눈빛이 매서워지더니 주먹을 꽉 잡았다.아들 집 마련해 줄 돈이 날아간 생각을 하니 그는 살인 충동까지 느꼈다.“어떻게 생긴 년이야? 어디 사는지 알아?”손보미는 도아린의 사진을 찾아 보냈다.“이 여자는 배경 있는 집안 딸이니 역으로 당하지 않게 조심하세요. 잘못하면 나는 물론이고 동생 인생도 완전히 끝장나니까.”...도아린은 배건후가 산더미같이 원단을 고르는 걸 보고 눈꼬리를 찌푸렸다.그는 아직도 점원에게 원단을 더 가져오라고 지시하고 있었다.배건후의 옷은 모두 디자이너가 맞춤 제작한 것이라 한복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도아린은 처음에는
“저는 대역 안 할 거예요.”도아린이 담담하게 말했다.배건후는 그녀가 영화나 드라마 대역을 말하는 줄 알고 무덤덤하게 대꾸했다.“안 한다면서 촬영장에는 왜 가서 난리를 친 거야.”“그 루비 목걸이 말이에요.”도아린은 말끝을 흐리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배건후의 손이 멈칫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루비 목걸이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여러 곳을 수소문했지만 아무런 소식도 얻지 못했다.배건후가 해명하려는 찰나, 도아린이 말을 이었다.“손보미에게 그 목걸이를 줬으면, 이 원단도 그쪽 주는 게 좋겠네요.”배건후가 정색하며 물었다.“무슨 뜻이야?”도아린은 휴대폰을 꺼내 전자 잡지를 찾았다.표지에는 80% 정도 유사한 루비 목걸이가 있었고 함께 있는 사진 속에는 빨간색 한복이 있었다.“나 손보미의 차에서 이 잡지를 봤거든요. 그 루비 목걸이, 손보미한테 준 거 맞죠?”도아린은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차분하게 말했다.“결국, 돌고 돌아 그 여자 손에 들어갔네요. 그러니 한복도 그냥 그쪽 주세요.”배건후의 눈에 분노가 어렸다.“누가 그 목걸이를 보미에게 줬대?”“고객이 마음에 안 들어 해서 나한테 주는 거라 했잖아요. 당신한테 감히 싫다는 소리를 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다만 목걸이만 주고 한복은 안 주니까 누군가가 삐쳐서 싫다고 했겠죠. 그래서 나한테 던져준 거고요.”“아린아, 내가 그 루비를 찾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배건후는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됐어. 멍청하기는. 마음대로 생각해.”그는 돌아서서 나가버렸다.도아린은 어이없다는 듯 목을 쓸어 만졌다.‘손보미의 마음도 제대로 모르면서 나를 멍청하다고 하는 거야. 갱년기라도 왔나? 왜 갑자기 화를 내고 가는 거야?’배건후가 담배 피우러 간 사이, 도아린은 남자 옷감을 고르기 시작했다.“이거, 그리고 이거. 포장해 주세요.”“난 한복 안 입어.”배건후가 갑자기 도아린의 뒤에서 나타났다.도아린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배건후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가방 매장에서 도아린의 모습을 찾았다.그녀가 자신에게 선물을 사준다고 해서 아까 거리낌 없이 말했던 것을 용서해 줄 생각은 없었다.그가 매장으로 들어서자 점원이 맞이했다. 그는 도아린을 가리키며 일행이라고 했다.도아린이 지갑을 고르는 모습을 보자 배건후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고 답답했던 마음도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도아린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참 고민하다가 그에게 물었다.“어떤 게 좋아요?”배건후는 태연한 척하며 담담하게 말했다.“장지갑이 나아.”도아린은 장지갑을 꺼내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이건 너무 고급스러워서 당신이 쓰면 괜찮겠지만, 그 사람이 쓰기에는 너무 눈에 띄어요.”배건후는 움찔하더니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그 사람이 누군데?”도아린은 다시 반지갑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남자의 차가운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하경 씨요. 오늘 우릴 많이 도와줬으니 고맙다는 뜻으로 지갑을 선물하려고요.”그는 보육원의 비밀을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소유정을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기까지 했다.도아린은 인과응보를 믿는 편이었다. 일단 원인에 개입했으니, 마땅한 결과로 균형을 맞춰야 했다.그녀는 한참 동안 지갑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다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반짝였다. “건후 씨는 하경 씨랑 친하니까 그 사람이 전에 어떤 지갑을 썼는지 알죠?”배건후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몰라.”“그럼 지갑이 필요할까요, 벨트가 필요할까요, 아니면...”“내가 걔 속을 어떻게 알아.”도아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남자는 다 비슷하지 않아요? 당신이라면 뭘 받고 싶어요?”“사람마다 다 달라.”배건후는 비꼬듯 말했다.“진짜 나한테 선물할 때 물어봐. 괜히 나 머리 쓰게 하지 말고.”그는 홱 돌아서서 매장을 나가버렸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래로 내려갔다.잠시라도 더 그 자리에 있었다간 도아린에게 폭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배지유가 보여준 영상은 흔들려서 그들이 다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