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건후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가방 매장에서 도아린의 모습을 찾았다.그녀가 자신에게 선물을 사준다고 해서 아까 거리낌 없이 말했던 것을 용서해 줄 생각은 없었다.그가 매장으로 들어서자 점원이 맞이했다. 그는 도아린을 가리키며 일행이라고 했다.도아린이 지갑을 고르는 모습을 보자 배건후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고 답답했던 마음도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도아린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참 고민하다가 그에게 물었다.“어떤 게 좋아요?”배건후는 태연한 척하며 담담하게 말했다.“장지갑이 나아.”도아린은 장지갑을 꺼내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이건 너무 고급스러워서 당신이 쓰면 괜찮겠지만, 그 사람이 쓰기에는 너무 눈에 띄어요.”배건후는 움찔하더니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그 사람이 누군데?”도아린은 다시 반지갑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남자의 차가운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하경 씨요. 오늘 우릴 많이 도와줬으니 고맙다는 뜻으로 지갑을 선물하려고요.”그는 보육원의 비밀을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소유정을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기까지 했다.도아린은 인과응보를 믿는 편이었다. 일단 원인에 개입했으니, 마땅한 결과로 균형을 맞춰야 했다.그녀는 한참 동안 지갑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다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반짝였다. “건후 씨는 하경 씨랑 친하니까 그 사람이 전에 어떤 지갑을 썼는지 알죠?”배건후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몰라.”“그럼 지갑이 필요할까요, 벨트가 필요할까요, 아니면...”“내가 걔 속을 어떻게 알아.”도아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남자는 다 비슷하지 않아요? 당신이라면 뭘 받고 싶어요?”“사람마다 다 달라.”배건후는 비꼬듯 말했다.“진짜 나한테 선물할 때 물어봐. 괜히 나 머리 쓰게 하지 말고.”그는 홱 돌아서서 매장을 나가버렸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래로 내려갔다.잠시라도 더 그 자리에 있었다간 도아린에게 폭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배지유가 보여준 영상은 흔들려서 그들이 다정하게
배건후의 얼굴은 점점 더 차갑게 굳어갔다.교차로를 지나는 순간, 그가 갑자기 말했다.“회사로 가.”조수현은 황급히 90도로 차를 돌렸다.관성 때문에 도아린은 배건후의 품으로 넘어졌지만, 그는 곧바로 그녀를 밀어냈다.‘미친 거 아냐? 개자식.’마이바흐가 모건 그룹 빌딩 앞에 멈춰 서자 배건후는 차 문을 세게 닫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서류를 나눠주고 있던 우정윤은 배건후가 굳은 얼굴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그는 얼른 차를 타서 사무실로 가져갔다.“대표님, 지시하실 일이라도 있으신지요?”배건후는 차를 한 모금 마시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하마터면 우정윤의 얼굴에 뿜을 뻔했다.그는 차를 탁 내려놓으며 물었다.“천사 보육원 자료는 다 알아봤어?”“네, 알아봤습니다.”우정윤은 재빨리 파일을 가져와 공손하게 배건후에게 건넸다. 굳은 얼굴로 자료를 한 장씩 넘기는 배건후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다.천사 보육원은 이름을 여섯 번이나 바꿨는데 매번 비리가 적발되어 시정 명령을 받고서야 이름을 바꾼 것이었다.그들은 이중장부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시설도 이중으로 꾸몄다.사람들에게는 허름한 시설을 보여주고 후원금을 받은 후에는 다른 시설을 보여주며 후원금을 횡령했다.마지막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3년 전이었다. 그 후로는 운영자가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크게 돈을 모으지는 않고 조용히 자선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배건후의 예리한 눈빛에 냉소가 스쳤다.자료가 너무 깨끗할수록 더 수상한 법이다.“후원은 일단 보류하고 더 자세히 조사해 봐.”배건후는 서류를 책상 위에 던지고 차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우정윤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어제 세인트존스 호텔에서 천사 보육원 리모델링 비용을 전액 부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배건후는 위험하게 눈을 가늘게 떴다도아린은 차 안에서 기다리다 거의 잠들 뻔했다. 이때 차가 흔들리더니 배건후가 타고 들어왔다.그는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도아린 역시 침묵을 지켰다
배건후는 도아린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피부가 너무 건조해.”도아린: “...”그녀가 만져보니 촉촉하기만 했다.도아린은 웃는 얼굴로 몰래 배건후의 팔을 꼬집었다.그녀가 세게 꼬집을수록 배건후는 더 장난을 쳤다.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에 주현정과 윤명희는 웃음을 터뜨렸다.“남자는 결혼해야 성공한다는 말이 맞나 봐요. 건후도 아린이와 결혼하고 나서 사업이 승승장구했거든요.”주현정은 아들 자랑에 신이 났다.“하경아, 너도 얼른 좋은 짝 만나야지.”육하경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건후만큼 운이 좋을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똑똑하고 현숙한 아내를 만나기가 쉽지 않죠.”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았다. 도아린은 겸손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아니에요. 건후 씨가 워낙 능력이 뛰어나서 그래요.”그러고는 배건후를 흘끗 쳐다보았다.‘봐, 누구든 너보다는 눈썰미가 있어. 다들 나의 좋은 점을 알아보는데 꼭 너만 내 흠을 잡고, 난리잖아.’배건후는 도아린을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너무 복잡한 감정이라 도아린은 알고 싶지 않았다.“아린은 배짱도 두둑하고 꼼꼼하기까지 해서 우리 집 못난 놈들보다 훨씬 나아요.”윤명희도 딸바보였다.“제가 집에서 쓰러졌을 때, 그 녀석들은 어쩔 줄 몰라 쩔쩔매기만 하더라고요. 아린이가 있었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진범준은 그때 일을 떠올리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아내의 어깨를 가볍게 주물렀다.윤명희는 그를 올려다보며 애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육하경 또한 도아린을 정의롭고 용감하며, 남들과 경쟁하지 않으면서도 자존감이 높다고 칭찬했다.오늘의 화제는 온통 도아린의 칭찬이었다.칭찬 세례에 도아린은 몸 둘 바를 몰라 배건후의 팔에 매달려 그의 팔을 문질렀다.그런데 갑자기 화제가 바뀌었다.“얘들이 손주 얼굴 좀 빨리 보여주면 좋을 텐데.”주현정의 말에 발꿈치를 들고 수줍어하던 도아린은 순간 멈칫했다.아이가 없는 것은 배건후의 문제였기에, 이 화제는 그가 마무리해야 했다.하
이 말은 그녀를 알아본 게 아니라, 배건후를 알아본 것이었다.게다가 아주 잘 알고 있었다.육하경도 매우 놀라며 말했다.“이 말, 경주마인가 보네. 상도 많이 탔을 것 같은데?”도아린은 문득 그때 부잣집 사모님들과 경마했던 일이 생각났다.그녀가 마지막에 역전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말 덕분이었는데, 이름이 번개'였던 것 같다.당시 그녀는 번개가 예쁘긴 했지만 어리고 경험이 부족할 거라 생각해서 번개보다 덩치가 큰 다른 말을 고르려고 했었다.하지만 그때 배건후는 그녀에게 자신의 눈을 믿으라고 했고 그래서야 겨우 국면을 전환할 수 있었다.그러니까 배건후는 그냥 아무렇게나 조언한 게 아니라, 말의 습성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연성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승마를 배우며 경쟁이 치열했다. 그러니 재벌가 도련님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혈통 좋은 말 몇 필씩은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그중에서도 큰 대회에 나갈 수 있는 말은 극소수였다.“만져봐도 돼요?”도아린은 배건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배건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허공에 들어 올렸다.번개는 움직이지 않고 큰 눈으로 배건후를 빤히 쳐다보며 마치 거절하는 듯했다.“번개야.”남자는 나지막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번개는 발을 몇 번 구르더니 천천히 걸어와서 도아린의 손에 머리를 살짝 스치듯 댔다가 물러섰다.도아린: “얘 암컷인가 봐요.”“왜 그렇게 생각해요?”육하경이 가볍게 웃었다.“건후 씨는 암컷한테 인기가 많잖아요.”배건후: “...”남자는 선천적으로 승부욕이 있는 법이다.“오랜만에 말이나 탈까? 두 바퀴 돌지?”육하경은 배건후처럼 전문 훈련을 받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티베트 지역을 누비고 다녀서 승마 실력만큼은 수준급이었다.도아린은 원래 같이 가서 말을 고르려고 했지만, 도정국의 전화가 재촉하듯이 들어왔다.그녀가 돌아서려는 찰나, 배건후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남자는 외투를 그녀에게 던져주며 몸을 숙여 그녀의 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하경이가 나한테 질까 봐 걱정돼?
“아린아, 제발, 제발 내 아들을 살려줘!”강홍련은 휴대폰을 빼앗아 흐느끼며 울부짖었다.“유준은 이미 재산 상속 포기 각서를 썼어. 처음부터 도씨 가문의 재산은 한 푼도 원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이번에 다친 건 정말 너 때문인데 네가 모른 척하면 안 되잖아!”도아린은 엠파이어 빌딩에서 도유준을 봤던 일을 떠올렸다.그녀가 잘못 본 게 아니라 도유준은 정말 거기서 간판을 달고 있었다.다만, 도유준이 어떻게 가게를 얻었는지가 의문이었다.“어떻게 나 때문이라고 확신하는 거죠?”“도울 디저트 때문에...”이때 도정국은 전화를 빼앗아 강홍련의 입을 막으며 다급하게 말했다.“아린아, 전화로는 설명하기 힘들어. 당장 병원으로 와.”“일 끝나면 갈게요.”도아린이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어보니 진범준 부부가 울타리 옆에서 꽃을 감상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마치 연인처럼 얼굴을 맞대고 속삭이며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윤명희는 진범준의 손을 뿌리치고 얼굴을 닦았고 진범준은 그녀를 껴안으려고 했지만 거부당했다. 뭔가 이상했다. 두 사람은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이에 도아린은 상황을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우연히 뒤돌아본 윤명희는 그녀를 발견하자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아린아, 이리 와.”“어머니.”윤명희는 눈물을 머금고 도아린에게 손을 뻗어 안았다.그녀는 진범준과 함께 병원에 왔는데 오늘은 감정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그녀는 이 좋은 소식을 도아린에게 가장 먼저 전하고 싶었지만 방금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윤명희는 도아린이 자신의 친딸이라고 확신했지만, 감정 결과는 또다시 그녀를 깊은 절망에 빠뜨렸다.도아린은 그녀의 딸이 아니었고 혈액형마저 부부와 달랐다. 윤명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진범준이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았다.그녀는 병원이 실수했다고 확신하며 해남으로 돌아가 다시 검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진범준은 그녀를 거역할 수 없었고 감정을 자극할 용기가 없어 눈빛으로만 타협을 표시했다.도아린은 윤명희의 슬픔을 느끼며
“네 오빠가 하늘의 별을 따다 준다고 해도 아까울 것 없지. 아린이는 네 새언니니까.”주현정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물었다.“첫 출근인데 어땠어?”배지유는 육하경이 도아린을 감싸는 모습을 떠올리자 화가 치밀었다.“엄마, 주소 좀 보내줘요. 기회가 되면 나도 그 경주마 보러 갈래요.”“보는 건 괜찮지만, 뺏지는 마.”주현정은 위치를 보내줬다.모두 바쁜 탓에 도아린은 혼자 밖으로 산책하러 나갔다.경마는 이미 끝났다. 그녀는 승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대충 배건후가 이겼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는 탁월한 승마 실력뿐만 아니라 상황 분석 능력도 뛰어나 지금까지 패배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주현정은 그 경주마가 배건후가 그녀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했지만 그건 말이 안 되었다.아마 윤명희에게 둘이 사이가 좋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연출일 것이다.최고급 경주마는 단순히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배씨 가문이 진 씨 가문과 협력하려는 프로젝트가 작은 규모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도아린은 울타리를 따라 무작정 걷다가 우연히 육하경이 울타리에 기대어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육하경이 고개를 돌렸다.“왜 혼자에요?”“하경 씨도 마찬가지잖아요.”육하경은 항상 부드럽고 젠틀한 옆집 오빠 같은 이미지였는데 갑자기 멍하니 있는 걸 보니 분명 무언가 고민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천사 보육원에 관해서...”도아린은 배건후가 그에게 압력을 가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경 씨는 신경 쓰지 말아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육하경은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건후에게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도아린은 입술을 깨물었다.배건후는 당연히 조사할 수 있었다. 단지 손보미를 위해 보육원을 없애버릴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였다.“아린 씨 친구가 영상을 찍었죠?”육하경은 몸을 일으켰다.“나에게 보내주라고 하세요. 증거를 모아서 경찰에 함께 넘겨줄게요.”도아린은 휴대폰을 꺼내
육하경은 손을 울타리에 걸치고 꽉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그는 조금 전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다행히 피우지 않았다.비록 남자가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건 일상이고 도아린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육하경은 뒤를 돌아보며 부드럽고 맑은 미소를 지었다.“오늘 유정과 친구를 도와줘서 고마워요. 작은 선물인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봉투가 아까보다 좀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육하경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아주 옅은 실망감이 뒤섞여 있었지만 금세 사라졌다.“그냥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육하경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앞으로도 계속 조사를 이어갈 거죠...”도아린은 쇼핑백을 조금 더 내밀며 말했다“나쁜 놈을 없앤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안 받으면, 다음에 일이 생겨도 말 안 해줄 거예요.”육하경은 그제야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받기에 좀 미안하네요.”“대신, 한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죠.”육하경은 이쪽으로 걸어오는 배건후를 보고 목소리를 약간 낮췄다.“하지만 내가 확신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도아린은 보육원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때 강한 팔뚝이 허리를 감쌌다.“엄마가 찾으셔.”배건후는 갑자기 힘을 주며 도아린을 끌어안았다.“네 형수 데리고 갈게.”그렇게 말하고 육하경을 혼자 남겨둔 채 도아린을 데리고 갔다.그녀는 거의 강제로 끌려가는 듯했다.“건후 씨, 내 말 아직 안 끝났어요.”“엄마가 보고 있어...”배건후는 말하며, 바람에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도아린은 어쩔 수 없이 연기하며 고개를 돌리며 작게 말했다.“건후 씨, 번개 말인데 진짜 샀어요?”“좋아?”“나한테 사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나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진씨 가문과 협력하고 싶은 거지.”배건후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알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도아린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소유정에게 선택을 맡겼다.“차는 어디 있지?”배건후가 갑자기 물었다.도아린은 열심히 글을 쓰느라 건성으로 대답했다.“바닥에 있잖아요.”배건후는 갑자기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고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어디에 있냐고?”도아린은 고개를 숙여 살폈다.배건후는 거의 좌석의 절반을 차지하고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었고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도아린 역시 다리를 모아 차 문에 기대고 있었고 발 아래는 텅 비어 있었다.“...엥?”도아린은 목을 긁적이며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수현 씨, 혹시 물건을 트렁크에 넣어두셨어요?”“사모님 짐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아까 분명히 발판에 놓아두었는데.”도아린은 좌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목을 만지며 조심스럽게 기억을 더듬었다.잠시후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배건후를 쳐다보았다.“아마도... 차와 지갑을 함께 넣어 하경 씨에게 준 것 같아요.”배건후의 눈빛이 위험하게 변했고 입가의 미소는 활시위처럼 날카로웠다.“내 물건을 남에게 주다니.”그의 주변의 차가운 기운이 갑자기 더 강해져서 도아린은 등 뒤가 오싹해졌다.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자리에 제대로 앉았다.“차 한통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차가 문제가 아니잖아.”“이미 다 선물했는데요 뭐.”“내 물건을 네가 왜 마음대로 처분해?”도아린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옛날에 자신이 좋아하는 산삼을 손보미에게 줄때 그가 뭐라고 했더라?아, 그녀에게 철이 좀 들라고 했었지.그냥 산삼 한뿌리일 뿐이니 다른 걸로 보상해 주면 된다고.“건후 씨, 그깟 싸구려 차 한 통때문에 이렇게까지 따질거예요?”그녀의 말투는 가볍고 무심했다.배건후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고 그녀의 억지에 더 화가 났다.“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잖아.”그가 더 화를 낼수록 도아린의 마음은 더욱 후련했다.“내가 뭘요? 난 일부러 점원에게 차를 달라고
도아린은 변슬기를 데리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배지유가 자신을 일부러 모욕하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이곳에 유명 스타들이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스크린에서만 보던 유명인들을 실제로 보니 변슬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두 눈으로는 전부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다소 어색하게 셔츠를 만지작거렸다.아버지가 친구를 만나러 가니 단정하게 차려입으라고 당부했지만, 변슬기는 또 소개팅 자리일 거로 생각하며 일부러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왔다.그녀는 상대가 아버지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한 모습을 좋아하길 바랐다.그러나 여기에서 음료를 나르는 여직원들조차 자신보다 더 격식 있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당황했다.“도 선생님, 저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볼품없는 거 아니에요?”도아린은 그녀의 셔츠 뒷면에 약간의 땀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제가 여분의 드레스를 준비해 놨어요. 갈아입어도 좋아요.”변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일단 아빠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각할게요.”멀리서 변우빈이 그녀를 보고 약간의 타박 섞인 눈빛을 보였지만, 곧 미안하다는 듯 설명했다.“우리 딸은 성격이 참 고집스러워.”그는 변슬기에게 손짓했고 딸이 곁에 앉자 말했다.“내가 단정하게 입고 오라고 했잖아. 그런데 일하는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하니.”변슬기는 당황스러워 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주현정이 보이자 긴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큰일 났다!’문 앞에서 배지유와 다툰 것도 모자라 이번엔 배지유의 엄마까지 만나게 됐다.지난번처럼 자신에게 온화하게 대해줄 리가 없을 것이다.“...네 딸이구나?”주현정은 마치 이해했다는 듯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지난번에 봤을 때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변슬기는 몰래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분 배지유 엄마예요.”변우빈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웃으며 소개했다.“이분은 주현정
배지유가 휠체어를 돌리자마자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배지유?”“변슬기?” 배지유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이 시간에 오다니, 연회가 거의 끝나가잖아.”변슬기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온몸에 땀범벅이었고 앞머리가 하얀 이마에 붙어 있었다.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며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감 있게 말했다.“아니야, 난 사람을 찾으러 온 거야.”이어지는 장면이 바로 도아린이 목격한 것이다.배지유는 휠체어를 움직여 변슬기의 주위를 맴돌면서 눈에 비웃음이 가득했다.“너희 집은 이번 생은 물론이고, 전생에도 이런 호화로운 사람들을 본 적 없을걸? 여기를 시장으로 착각한 거야? 아무나 데려와서 ‘내 삼촌, 내 이모’라고 하면 통할 것 같아? 여기는 모두 톱스타들이야! 너 콘서트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어?”배지유는 입을 가리며 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생활비 벌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주제에 무슨 돈으로 콘서트를 본다는 거야!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기숙사로 돌아가서 기다려. 누굴 보고 싶은지 댓글 남기면 내가 대신 사진 찍어줄게.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돈을 안 받아. 대신 너는 우리 기숙사의 1년 치 청소를 맡고 내 빨래도 다 해야 해. 속옷과 양말도 손빨래로!”변슬기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연예인 보러 온 게 아니야.”“올해 최고의 억지상은 바로 너네!” 배지유는 엄지를 세우며 비웃었다.“여긴 다 연예인들뿐이야. 네가 누굴 찾는다고 하면, 내가 직원한테 말해서 불러줄게.”변슬기는 그녀를 무시하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러자 배지유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해지며 휠체어를 몰아 변슬기에게 돌진했다.거의 부딪힐 뻔한 순간, 휠체어가 갑자기 멈췄다.화가 난 배지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도아린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네가 왜...” 도아린은 왜 자신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건가?
주현정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에 그저 화났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니 그녀의 기분만 풀어주면 도아린이 그 자리를 넘보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현정아, 사람은 성인이 아니니 누군들 실수하지 않겠어?” 배석준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내가 증명해 보일게. 나와 지유야말로 네 뒤를 든든히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그는 배지유를 찾아 그녀를 데리고 주현정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세 식구가 언론 앞에 함께 나타나기만 하면 이혼 소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배씨 가문의 재산에 끼어들 수 없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배지유가 사라진 후였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도아린이 다정하게 위로했다.“배 대표님은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못할 거예요.”“차라리 저 사람이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네.”주현정은 도아린과 함께 인파를 지나갔다.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다소 어색하게 무릎을 문지르며 이따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주현정을 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가 방해되지는 않았어?”“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내 연회에 와줘서 고마워.”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고 다가갔다. 세 사람은 원형 소파에 앉았다.“이쪽은 내 딸 도아린이야. 이분은 변우빈이라고 하고 내 가장 친한 친구야. 아저씨라고 불러.”“아저씨, 안녕하세요.” 도아린은 무심코 상대방을 살펴봤다.변우빈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배석준와 비슷한 체격이었지만 조금 말랐다. 그의 얼굴과 손에는 노동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진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변우빈은 계속 주현정의 눈을 바라봤고 주현정의 미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겨있었다.“네 딸도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주현정이 뒤를 돌아보며 묻
석 대표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앞에 휠체어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요란하게 치장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이분은...”그는 주현정이 이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첫 반응은 배석준이 다른 여자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배석준의 새로운 연인은 주현정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석 대표님, 짓궂으십니다. 방금까지도 저희 딸을 카메오로 요청한다고 하셨으면서...”배석준은 말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그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배지유를 보고 있었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배지유는 엄청 민감해서 의식적으로 치마를 잡았는데 그들이 자신의 얼굴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제야 천천히 손을 떼었다.“배 대표님 따님이 몇 명이세요?”석 대표가 물었다.“... 한 명입니다.”석 대표는 웃어 보이고는 볼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고 그가 떠나자 다른 사람들도 흩어졌다.“아빠! 저 사람들 무슨 뜻이에요?”“...”배석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영문을 알게 되었다.배지유는 휠체어에 앉아있어 시선이 막혔지만, 배석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도아린을 데리고 인사를 나누는 주현정을 보았다.그들이 칭찬하는 사람은 배지유가 아니라 도아린이었다.“지유야, 여기서 아빠를 기대려. 아빠가 가서 엄마를 찾아볼게.”그는 배지유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하고는 빠르게 걸어갔다.“주현정! 당신 지금 지유는 병원에 내버려 두고 도아린을 데리고 연회에 참가하고 있어? 당신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손님들은 배석준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자리를 피했고 주현정의 얼굴에 있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대답했다.“지유는 당신 같은 아빠만 있으면 돼요.”배석준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앞서 당신은 외부인 하나 때문에 나랑 이혼하려고 했고 이제는 이혼 얘기를 하지 않으니 각종 방법으로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고 있어. 당신이 다시 JS 픽처스를 운영하게 되었는데도 나한테 얘기
JS 픽처스의 고위인사는 배석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 또 해외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현정이의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머물다가 가려고 합니다.”배석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평소에 연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주현정이 JS 픽처스에서 지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각종 이유를 찾아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를 거부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카메라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그들은 모두 주현정 덕분에 잘 되었기에 체면은 반드시 살려주어야 했다.“크흠.”배지유는 배석준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헛기침을 했다.“아, 우리 딸이 마침 해남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배석준을 둘러싼 고위인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주현정은 배지유가 연예계의 나쁜 물을 먹을까 봐 현역일 적에 절대 배지유를 데리고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위인사들도 그저 주현정에게 딸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본 적은 없었다.반응이 빠른 누군가가 술잔을 들며 공손하게 말했다.“따님은 주 대표님과 배 대표님의 우수한 점을 다 닮으셔서 단정하고 청초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새로 영입한 신인보다 예쁘신 것 같습니다.”“맞아요. 해남대학교의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시니 예쁘시고 학식도 많으시네요. 지금 업계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인재를 제일 좋아합니다!”배지유는 칭찬을 듣고 얼굴이 발그레해졌고 그녀는 두 손으로 팔걸이를 잡고 살짝 몸을 앞으로 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삐끗해서 일어서서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네요.”“별말씀을요. 발을 삐끗하면 잘 치료해야 해요. 젊고 예쁘신데 후유증을 남기면 안 되죠.”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배지유의 마음속에서는 저주로 들렸다.그녀는 발 한쪽을 다친 게 아니라 다리 하나를 잃었다. 나머지 생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배석준은 배지유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가 난리를 피울까 봐 얼른 다른 곳으로
주현정은 말투가 가라앉았고 표정이 엄숙했다.“남자의 내연녀로 이십몇 년을 있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어른이 화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나. 도아린의 양아버지는 양어머니의 혼수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했어.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딸의 효도를 받을 자격 없어!”현장에는 여자 연예인들도 많았다.같은 딸의 마음으로 이렇게 심란한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그들은 도아린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아린이 양어머니를 위해 복수를 했다고 여겼다.강홍련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아린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방금 자신의 말이 강씨 가문에게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웠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도아린은 단호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강씨 어르신은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씨 어르신께서 좋은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주었는데 당신은 밖에서 어르신의 명성이나 흐리고 다니면 안 되죠. 농부와 뱀의 이야기를 재희 씨도 들어봤을 거로 생각해요.”도아린은 강씨 어르신의 편에 섰는데 강재희는 반박할 수 없었다.여론에서 아버지의 대회에 흑막이 있다는 일로 들끓던 것이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강홍련 저 멍청이 때문에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주현정은 도아린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제 딸이고 JS 픽처스의 후계자예요. 강씨 가문에서 이렇게 제 딸을 치욕스럽게 하다니, 저희 협력은 앞으로 계속하지 않을 생각입니까?”강재희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녀는 도아린이 연회에 참가한 것은 단지 주현정과 예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주현정이 도아린을 딸로 삼고 JS 픽처스의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만약 도아린과 모순이 격화된다면 앞으로의 협력에는 장애가 생길 것이다.“강홍련 씨, 사과해요!”강홍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재희는 지금 자신을
도아린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진열대에 있는 다이아몬드의 빛이 꺾이어 그녀의 눈동자를 비춰 유독 눈부셨다.강홍련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강홍련은 도아린보다 머리 하나쯤 작아서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바라보았는데 도도한 척하는 모습이 광대 같았다.“네가 JS 픽처스에게 ‘봉황의 시대’를 광고하도록 넘겼는데 강씨 가문의 고급 주얼리들은 모두 JS 픽처스의 연예인들이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어. ‘봉황의 시대’와 JS 픽처스의 연예인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봉황의 시대’가 강씨 가문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테지.”이게 바로 연예인을 찾아 광고하는 이유였다.예를 들어 어떤 톱스타가 운동화의 모델이 되었다면 그가 나타났을 때 팬들은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알게 된다. 따로 브랜드를 찾아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도아린은 도덕과 재능을 겸비한다는 말로 강씨 가문에게 치욕을 안겨주었지만 결국은 강씨 가문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강씨 가문에서 이득을 보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도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는 강씨 가문의 사촌이야!”강홍련은 불쑥 얘기했다.“강씨 가문에서 손보미를 밀어준다면 배건후와 결혼할 수 있어. 강씨 가문에서 안씨 가문을 지지한다면 내 아들은 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거야!”“그래서요.”강홍련은 도아린이 모른 척할 줄 몰랐고 그녀의 코에 대고 얘기했다.“그래서 나한테 잘하라고. 그러면 강씨 가문에서는 네가 해남에서 살아나갈 기회라도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대회 성적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너를 디자인 업계에서 쫓아내는 것도 일이 아니지. 내 삼촌 강태식은 이 바닥을 꽉 잡고 있어. 내 삼촌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야. 너의 ‘봉황의 시대’도 잘난 척할 거 없어. 언론에서 만들어준 것뿐이야. 만약 삼촌의 학생들이 다 그게 별로라고 얘기한다면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거야!”많은 손님이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강홍련의 지나친 말에 시선을 두
“아빠가 방법을 대서 가볼게. 너는 오지 마.”배석준은 배지유가 걱정되었다. 지난번에 배지유가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도 돌아와서 다리가 아파 잠이 들지 못했다.배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애원했다.“제 친구들은 제가 아직 안에 갇혀있는 줄 알아요! 아빠랑 제가 함께 엄마의 연회에 간다면 매체에서는 저희 세 식구의 화목한 모습을 찍게 될 것이고 소문들은 자연스레 사그라질 거예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딸의 명성은 도아린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돌이킬 방법을 계속 찾지 않는다면 배지유가 해남대학교로 돌아갔을 때 반드시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당할 것이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메이크업과 코디를 해줄게.”배석준이 데리고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지민이었다.김지민은 연예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 참석하는 연예인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알아냈다. 배지유는 똑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됐고 다리의 흉터를 가릴 수 있으면서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했다.이 부분에서 김지민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배지유는 만족스럽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그녀의 치마를 들지 않는 이상 그녀가 다리 하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발을 삐끗해서 휠체어를 탔다고 하면 될 것이다.이런 장소에 김지민은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므로 부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연회장의 중심에는 도아린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고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는 현장에 있는 연예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여자의 아름다움이 너무 지나쳤다.연예계의 스타들은 자주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에 참가하므로 어떻게 분위기를 휘어잡는지를 잘 알고 자신이 어느 각도에서 가장 예쁘게 찍히는지도 알고 있었다.도아린은 처음 보는 얼굴이고 업계에 대해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 자신감이 넘쳤다.그녀가 스크린 앞으로 가서 사인할 때 스크린에는 ‘봉황의 시대’의
도아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녀의 덤덤한 눈빛은 ‘라윤주’의 이름을 듣고 초점을 잃었다.“뭐라고요?”“...”육하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가 육하경이 말을 이었다.“향 주머니로 화를 면한 것은 우연이에요. 정말 저를 도왔던 것은 세인트존스 호텔의 책임자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죠.”육하경은 입꼬리를 올려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어르신들을 3일이나 괴롭혀서야 알아냈어요. LY에서 저를 후임자로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육하경의 학업은 각 부분에서 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육씨 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빽빽이 필요했다.육민재를 예로 들어보면 능력은 가장 뛰어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맏아들의 장손 혈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최고로 좋은 자원과 경험을 쌓을 기회들을 누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그는 육씨 가문의 후계자일 것이다.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려면 모든 게 알맞게 부합되어야 한다.육하경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었고 육씨 가문의 산업에 기대를 두지 않아 오랜 시간 밖에서 떠돌며 공부를 했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세인트존스 호텔의 관리 권한이 그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놀란 마음으로 육하경은 전임자를 찾아갔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야 LY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육씨 가문 뿐만 아니라 많은 명문가가 LY와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인재를 추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었기에 자연스레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육하경은 그때 손에 향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전임자가 이상해하며 무늬를 찍어서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추천서’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경 씨가 말하는 그 이야기에도 관심 없습니다.”도아린은 책을 육하경에게 돌려주고는 차 문을 열었다.“도아린 씨!”육하경은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손을 허공에 멈추고 결국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육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