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그녀를 알아본 게 아니라, 배건후를 알아본 것이었다.게다가 아주 잘 알고 있었다.육하경도 매우 놀라며 말했다.“이 말, 경주마인가 보네. 상도 많이 탔을 것 같은데?”도아린은 문득 그때 부잣집 사모님들과 경마했던 일이 생각났다.그녀가 마지막에 역전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말 덕분이었는데, 이름이 번개'였던 것 같다.당시 그녀는 번개가 예쁘긴 했지만 어리고 경험이 부족할 거라 생각해서 번개보다 덩치가 큰 다른 말을 고르려고 했었다.하지만 그때 배건후는 그녀에게 자신의 눈을 믿으라고 했고 그래서야 겨우 국면을 전환할 수 있었다.그러니까 배건후는 그냥 아무렇게나 조언한 게 아니라, 말의 습성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연성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승마를 배우며 경쟁이 치열했다. 그러니 재벌가 도련님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혈통 좋은 말 몇 필씩은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그중에서도 큰 대회에 나갈 수 있는 말은 극소수였다.“만져봐도 돼요?”도아린은 배건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배건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허공에 들어 올렸다.번개는 움직이지 않고 큰 눈으로 배건후를 빤히 쳐다보며 마치 거절하는 듯했다.“번개야.”남자는 나지막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번개는 발을 몇 번 구르더니 천천히 걸어와서 도아린의 손에 머리를 살짝 스치듯 댔다가 물러섰다.도아린: “얘 암컷인가 봐요.”“왜 그렇게 생각해요?”육하경이 가볍게 웃었다.“건후 씨는 암컷한테 인기가 많잖아요.”배건후: “...”남자는 선천적으로 승부욕이 있는 법이다.“오랜만에 말이나 탈까? 두 바퀴 돌지?”육하경은 배건후처럼 전문 훈련을 받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티베트 지역을 누비고 다녀서 승마 실력만큼은 수준급이었다.도아린은 원래 같이 가서 말을 고르려고 했지만, 도정국의 전화가 재촉하듯이 들어왔다.그녀가 돌아서려는 찰나, 배건후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남자는 외투를 그녀에게 던져주며 몸을 숙여 그녀의 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하경이가 나한테 질까 봐 걱정돼?
“아린아, 제발, 제발 내 아들을 살려줘!”강홍련은 휴대폰을 빼앗아 흐느끼며 울부짖었다.“유준은 이미 재산 상속 포기 각서를 썼어. 처음부터 도씨 가문의 재산은 한 푼도 원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이번에 다친 건 정말 너 때문인데 네가 모른 척하면 안 되잖아!”도아린은 엠파이어 빌딩에서 도유준을 봤던 일을 떠올렸다.그녀가 잘못 본 게 아니라 도유준은 정말 거기서 간판을 달고 있었다.다만, 도유준이 어떻게 가게를 얻었는지가 의문이었다.“어떻게 나 때문이라고 확신하는 거죠?”“도울 디저트 때문에...”이때 도정국은 전화를 빼앗아 강홍련의 입을 막으며 다급하게 말했다.“아린아, 전화로는 설명하기 힘들어. 당장 병원으로 와.”“일 끝나면 갈게요.”도아린이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어보니 진범준 부부가 울타리 옆에서 꽃을 감상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마치 연인처럼 얼굴을 맞대고 속삭이며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윤명희는 진범준의 손을 뿌리치고 얼굴을 닦았고 진범준은 그녀를 껴안으려고 했지만 거부당했다. 뭔가 이상했다. 두 사람은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이에 도아린은 상황을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우연히 뒤돌아본 윤명희는 그녀를 발견하자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아린아, 이리 와.”“어머니.”윤명희는 눈물을 머금고 도아린에게 손을 뻗어 안았다.그녀는 진범준과 함께 병원에 왔는데 오늘은 감정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그녀는 이 좋은 소식을 도아린에게 가장 먼저 전하고 싶었지만 방금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윤명희는 도아린이 자신의 친딸이라고 확신했지만, 감정 결과는 또다시 그녀를 깊은 절망에 빠뜨렸다.도아린은 그녀의 딸이 아니었고 혈액형마저 부부와 달랐다. 윤명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진범준이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았다.그녀는 병원이 실수했다고 확신하며 해남으로 돌아가 다시 검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진범준은 그녀를 거역할 수 없었고 감정을 자극할 용기가 없어 눈빛으로만 타협을 표시했다.도아린은 윤명희의 슬픔을 느끼며
“네 오빠가 하늘의 별을 따다 준다고 해도 아까울 것 없지. 아린이는 네 새언니니까.”주현정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물었다.“첫 출근인데 어땠어?”배지유는 육하경이 도아린을 감싸는 모습을 떠올리자 화가 치밀었다.“엄마, 주소 좀 보내줘요. 기회가 되면 나도 그 경주마 보러 갈래요.”“보는 건 괜찮지만, 뺏지는 마.”주현정은 위치를 보내줬다.모두 바쁜 탓에 도아린은 혼자 밖으로 산책하러 나갔다.경마는 이미 끝났다. 그녀는 승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대충 배건후가 이겼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는 탁월한 승마 실력뿐만 아니라 상황 분석 능력도 뛰어나 지금까지 패배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주현정은 그 경주마가 배건후가 그녀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했지만 그건 말이 안 되었다.아마 윤명희에게 둘이 사이가 좋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연출일 것이다.최고급 경주마는 단순히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배씨 가문이 진 씨 가문과 협력하려는 프로젝트가 작은 규모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도아린은 울타리를 따라 무작정 걷다가 우연히 육하경이 울타리에 기대어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육하경이 고개를 돌렸다.“왜 혼자에요?”“하경 씨도 마찬가지잖아요.”육하경은 항상 부드럽고 젠틀한 옆집 오빠 같은 이미지였는데 갑자기 멍하니 있는 걸 보니 분명 무언가 고민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천사 보육원에 관해서...”도아린은 배건후가 그에게 압력을 가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경 씨는 신경 쓰지 말아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육하경은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건후에게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도아린은 입술을 깨물었다.배건후는 당연히 조사할 수 있었다. 단지 손보미를 위해 보육원을 없애버릴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였다.“아린 씨 친구가 영상을 찍었죠?”육하경은 몸을 일으켰다.“나에게 보내주라고 하세요. 증거를 모아서 경찰에 함께 넘겨줄게요.”도아린은 휴대폰을 꺼내
육하경은 손을 울타리에 걸치고 꽉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그는 조금 전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다행히 피우지 않았다.비록 남자가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건 일상이고 도아린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육하경은 뒤를 돌아보며 부드럽고 맑은 미소를 지었다.“오늘 유정과 친구를 도와줘서 고마워요. 작은 선물인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봉투가 아까보다 좀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육하경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아주 옅은 실망감이 뒤섞여 있었지만 금세 사라졌다.“그냥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육하경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앞으로도 계속 조사를 이어갈 거죠...”도아린은 쇼핑백을 조금 더 내밀며 말했다“나쁜 놈을 없앤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안 받으면, 다음에 일이 생겨도 말 안 해줄 거예요.”육하경은 그제야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받기에 좀 미안하네요.”“대신, 한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죠.”육하경은 이쪽으로 걸어오는 배건후를 보고 목소리를 약간 낮췄다.“하지만 내가 확신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도아린은 보육원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때 강한 팔뚝이 허리를 감쌌다.“엄마가 찾으셔.”배건후는 갑자기 힘을 주며 도아린을 끌어안았다.“네 형수 데리고 갈게.”그렇게 말하고 육하경을 혼자 남겨둔 채 도아린을 데리고 갔다.그녀는 거의 강제로 끌려가는 듯했다.“건후 씨, 내 말 아직 안 끝났어요.”“엄마가 보고 있어...”배건후는 말하며, 바람에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도아린은 어쩔 수 없이 연기하며 고개를 돌리며 작게 말했다.“건후 씨, 번개 말인데 진짜 샀어요?”“좋아?”“나한테 사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나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진씨 가문과 협력하고 싶은 거지.”배건후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알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도아린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소유정에게 선택을 맡겼다.“차는 어디 있지?”배건후가 갑자기 물었다.도아린은 열심히 글을 쓰느라 건성으로 대답했다.“바닥에 있잖아요.”배건후는 갑자기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고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어디에 있냐고?”도아린은 고개를 숙여 살폈다.배건후는 거의 좌석의 절반을 차지하고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었고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도아린 역시 다리를 모아 차 문에 기대고 있었고 발 아래는 텅 비어 있었다.“...엥?”도아린은 목을 긁적이며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수현 씨, 혹시 물건을 트렁크에 넣어두셨어요?”“사모님 짐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아까 분명히 발판에 놓아두었는데.”도아린은 좌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목을 만지며 조심스럽게 기억을 더듬었다.잠시후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배건후를 쳐다보았다.“아마도... 차와 지갑을 함께 넣어 하경 씨에게 준 것 같아요.”배건후의 눈빛이 위험하게 변했고 입가의 미소는 활시위처럼 날카로웠다.“내 물건을 남에게 주다니.”그의 주변의 차가운 기운이 갑자기 더 강해져서 도아린은 등 뒤가 오싹해졌다.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자리에 제대로 앉았다.“차 한통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차가 문제가 아니잖아.”“이미 다 선물했는데요 뭐.”“내 물건을 네가 왜 마음대로 처분해?”도아린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옛날에 자신이 좋아하는 산삼을 손보미에게 줄때 그가 뭐라고 했더라?아, 그녀에게 철이 좀 들라고 했었지.그냥 산삼 한뿌리일 뿐이니 다른 걸로 보상해 주면 된다고.“건후 씨, 그깟 싸구려 차 한 통때문에 이렇게까지 따질거예요?”그녀의 말투는 가볍고 무심했다.배건후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고 그녀의 억지에 더 화가 났다.“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잖아.”그가 더 화를 낼수록 도아린의 마음은 더욱 후련했다.“내가 뭘요? 난 일부러 점원에게 차를 달라고
멀어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배건후는 가슴이 답답했다.그는 손에 든 담배를 부숴버리고 빨갛게 달아오른 담뱃불이 고급스러운 구두 위에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마이바흐가 떠난 직후, 도아린은 다시 아파트 단지를 나섰다. 집에 과일과 간식이 없다는 것을 떠올리고 근처 마트에 가려던 참이었다.“잘 생각했어?”그녀는 소유정과 통화하며 걸었다.“결정했어. 난 진혁을 데리고 은신처로 갈거야. 그는 내 파트너니까 그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지.”이때 봉고차 한대가 도아린의 옆에 멈춰 섰다.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그녀는 피하려 했지만 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길을 막아섰다.“너희는... 으읍!”누군가가 도아린의 뒤에서 입을 막았다. 수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냄새에 도아린은 금세 정신을 잃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도아린은 서서히 의식을 되찾았다.그녀는 팔과 다리가 묶인 채로 바닥에 누워있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이쁘장하게 생긴 아가씨야. 몸매도 장난 아니잖아.”“십만 원은 너무 싸. 좀 가지고 놀다가 넘기자.”“보스가 먼저 해요. 우리는 밖에서 지키고 있을게요.”발소리가 멀어졌다.촤악!차가운 물이 얼굴에 쏟아지면서 도아린은 어쩔수 없이 눈을 떴다.낡고 허름한 창고 안이었다. 창문은 빛이 새지 않는 비닐로 덧대있었고 유일한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누구세요?”그녀는 멍하니 물었다.“넌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렸어.”남자는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말했다.“어차피 시골 외딴집 노인네한테 팔려가서 고생할 건데 오늘 이 오빠가 맛좀 보자.”남자는 허리띠를 풀며 더러운 웃음을 지었다.도아린은 머리카락이 곤두섰고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그녀는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했다.침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주방장이 당신들 두목인가요? 부탁드리지만 그에게 전해주세요. 오늘 제가 흥분해서 실수했어요. 시키는대로 다 하고요. 원하는건 다 들어줄게요.”도아린은 아첨하는 웃음을 지
그래서 그녀는 나무 몽둥이를 집어 들고 남자의 머리를 가격하는 수밖에 없었다.퍽!나무 몽둥이는 남자의 등을 가격하며 반으로 부러졌다.“형님!”그제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소리치며 안으로 달려왔다.그녀는 손에 남은 반쪽 몽둥이로 다시 한번 내리쳤고 남자는 신음하며 쓰러져 꼼짝하지 않았다.그녀는 재빨리 빈 나무 상자 안으로 숨어들었다.이때 달려들어 온 두 명의 부하들은 이 장면을 보고 멍해졌다.두목은 피투성이가 되어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겨우 십만 원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두 남자는 공포에 질렸다.그들은 허둥지둥 두목을 밖으로 옮기고 문을 잠근 뒤 병원으로 갔다.도아린은 휴대폰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기절해 있는 동안 그들이 가져간 모양이었다.창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창문을 뜯기 시작했다.온몸에 땀을 흘리며 두 개의 나무판자를 간신히 뜯어내서야 겨우 한 사람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만들었다.이때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고 문이 다시 열렸다.피부가 검고 누렇게 뜬 여자였다. 그녀는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입고 있었고 누렇고 숱이 적은 머리카락을 뒤통수에 동그랗게 말아 붙였다.“바로 네 이년이 내 사위를 꼬셨지!”하춘녀는 문을 막는 데 쓰는 막대를 들고 한 걸음씩 다가왔다.“네년의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산골짜기에 팔아넘겨 버릴 거야! 그럼 남자를 어떻게 꾀나 보자!”“아줌마, 분명히 오해가 있으세요.”도아린은 어색하게 손사래를 쳤다.“저는 이미 결혼했어요.”하춘녀는 남들이 자기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게 제일 싫었다.도시 사람들은 다들 '사모님', '부인'이라고 부르지 않는가?“너야말로 아줌마야. 너희 집안 전체가 다 아줌마들이야!” 하춘녀는 두말없이 몽둥이를 휘둘렀다.무거운 몽둥이가 옆에 있던 상자를 때리자 먼지가 풀썩 일어났다.도아린은 화급하게 피하며 말했다.“이모, 아가씨, 언니... 흥분하지 마시고 얘기 좀 해
도아린의 전화가 갑자기 끊기자 소유정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그녀는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중 배건후에게 연락했다.“건후 씨, 도아린이 보육원 사람들에게 납치당한 것 같아요. 얼른 손보미한테 연락해 보세요.”배건후는 여전히 그 찻잎 때문에 도아린에게 화가 나 있었다. 게다가 그는 도아린이 맨션으로 들어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까지 했다.고양이나 강아지도 맨션에서 길을 잃을 리 없는데 하물며 다 큰 어른이야.“유정 씨, 도아린의 체면을 봐서 이번만은 넘어가겠지만 다음에 또 그러시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겁니다.”“상황이 너무 급해서 건후 씨한테 전화한 거예요. 지금 보니 우리 아린이가 아깝네요.”소유정은 전화를 끊고 다시 육하경에게 연락했다.배건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는 어느새 분노가 번졌다. 아무리 천사 보육원에 문제가 있다 해도 도아린이 친구들과 작당하여 손보미를 비방하는 것 또한 고상한 일이 아니었다.전화는 이미 끊긴 지 오래였다. 배건후는 핸드폰을 빤히 내려다보더니 뭔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몇 분 후, 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어 도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연결된 후에는 통화료가 부과됩니다.”그는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피어올랐다.“맨션으로 돌아가죠.” 배건후는 차갑게 말했다.마이바흐는 서서히 단지에 들어섰고 에이트 맨션은 불이 꺼져 있었다. 배건후는 단지의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도아린이 두 명의 덩치 큰 남자에게 끌려가 밴에 실린 장면을 보더니 온몸에서 살기를 내뿜었다.도아린이 사용하는 핸드폰은 배건후의 친구가 맞춤 제작한 것으로 전원이 꺼져 있어도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백그라운드 데이터를 활성화하고 폐창고로 향했다.창고로 들어가는 길이 심하게 좁다 보니 마이바흐와 밴이 거의 스치듯 지나쳤다.“당신은 저 밴을 쫓아가세요. 전 들어가서 사람부터 찾을게요.” 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