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오빠가 하늘의 별을 따다 준다고 해도 아까울 것 없지. 아린이는 네 새언니니까.”주현정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물었다.“첫 출근인데 어땠어?”배지유는 육하경이 도아린을 감싸는 모습을 떠올리자 화가 치밀었다.“엄마, 주소 좀 보내줘요. 기회가 되면 나도 그 경주마 보러 갈래요.”“보는 건 괜찮지만, 뺏지는 마.”주현정은 위치를 보내줬다.모두 바쁜 탓에 도아린은 혼자 밖으로 산책하러 나갔다.경마는 이미 끝났다. 그녀는 승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대충 배건후가 이겼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는 탁월한 승마 실력뿐만 아니라 상황 분석 능력도 뛰어나 지금까지 패배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주현정은 그 경주마가 배건후가 그녀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했지만 그건 말이 안 되었다.아마 윤명희에게 둘이 사이가 좋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연출일 것이다.최고급 경주마는 단순히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배씨 가문이 진 씨 가문과 협력하려는 프로젝트가 작은 규모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도아린은 울타리를 따라 무작정 걷다가 우연히 육하경이 울타리에 기대어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육하경이 고개를 돌렸다.“왜 혼자에요?”“하경 씨도 마찬가지잖아요.”육하경은 항상 부드럽고 젠틀한 옆집 오빠 같은 이미지였는데 갑자기 멍하니 있는 걸 보니 분명 무언가 고민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천사 보육원에 관해서...”도아린은 배건후가 그에게 압력을 가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경 씨는 신경 쓰지 말아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육하경은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건후에게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도아린은 입술을 깨물었다.배건후는 당연히 조사할 수 있었다. 단지 손보미를 위해 보육원을 없애버릴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였다.“아린 씨 친구가 영상을 찍었죠?”육하경은 몸을 일으켰다.“나에게 보내주라고 하세요. 증거를 모아서 경찰에 함께 넘겨줄게요.”도아린은 휴대폰을 꺼내
육하경은 손을 울타리에 걸치고 꽉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그는 조금 전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다행히 피우지 않았다.비록 남자가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건 일상이고 도아린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육하경은 뒤를 돌아보며 부드럽고 맑은 미소를 지었다.“오늘 유정과 친구를 도와줘서 고마워요. 작은 선물인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봉투가 아까보다 좀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육하경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아주 옅은 실망감이 뒤섞여 있었지만 금세 사라졌다.“그냥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육하경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앞으로도 계속 조사를 이어갈 거죠...”도아린은 쇼핑백을 조금 더 내밀며 말했다“나쁜 놈을 없앤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안 받으면, 다음에 일이 생겨도 말 안 해줄 거예요.”육하경은 그제야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받기에 좀 미안하네요.”“대신, 한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죠.”육하경은 이쪽으로 걸어오는 배건후를 보고 목소리를 약간 낮췄다.“하지만 내가 확신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도아린은 보육원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때 강한 팔뚝이 허리를 감쌌다.“엄마가 찾으셔.”배건후는 갑자기 힘을 주며 도아린을 끌어안았다.“네 형수 데리고 갈게.”그렇게 말하고 육하경을 혼자 남겨둔 채 도아린을 데리고 갔다.그녀는 거의 강제로 끌려가는 듯했다.“건후 씨, 내 말 아직 안 끝났어요.”“엄마가 보고 있어...”배건후는 말하며, 바람에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도아린은 어쩔 수 없이 연기하며 고개를 돌리며 작게 말했다.“건후 씨, 번개 말인데 진짜 샀어요?”“좋아?”“나한테 사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나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진씨 가문과 협력하고 싶은 거지.”배건후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알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도아린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소유정에게 선택을 맡겼다.“차는 어디 있지?”배건후가 갑자기 물었다.도아린은 열심히 글을 쓰느라 건성으로 대답했다.“바닥에 있잖아요.”배건후는 갑자기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고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어디에 있냐고?”도아린은 고개를 숙여 살폈다.배건후는 거의 좌석의 절반을 차지하고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었고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도아린 역시 다리를 모아 차 문에 기대고 있었고 발 아래는 텅 비어 있었다.“...엥?”도아린은 목을 긁적이며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수현 씨, 혹시 물건을 트렁크에 넣어두셨어요?”“사모님 짐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아까 분명히 발판에 놓아두었는데.”도아린은 좌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목을 만지며 조심스럽게 기억을 더듬었다.잠시후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배건후를 쳐다보았다.“아마도... 차와 지갑을 함께 넣어 하경 씨에게 준 것 같아요.”배건후의 눈빛이 위험하게 변했고 입가의 미소는 활시위처럼 날카로웠다.“내 물건을 남에게 주다니.”그의 주변의 차가운 기운이 갑자기 더 강해져서 도아린은 등 뒤가 오싹해졌다.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자리에 제대로 앉았다.“차 한통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차가 문제가 아니잖아.”“이미 다 선물했는데요 뭐.”“내 물건을 네가 왜 마음대로 처분해?”도아린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옛날에 자신이 좋아하는 산삼을 손보미에게 줄때 그가 뭐라고 했더라?아, 그녀에게 철이 좀 들라고 했었지.그냥 산삼 한뿌리일 뿐이니 다른 걸로 보상해 주면 된다고.“건후 씨, 그깟 싸구려 차 한 통때문에 이렇게까지 따질거예요?”그녀의 말투는 가볍고 무심했다.배건후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고 그녀의 억지에 더 화가 났다.“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잖아.”그가 더 화를 낼수록 도아린의 마음은 더욱 후련했다.“내가 뭘요? 난 일부러 점원에게 차를 달라고
멀어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배건후는 가슴이 답답했다.그는 손에 든 담배를 부숴버리고 빨갛게 달아오른 담뱃불이 고급스러운 구두 위에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마이바흐가 떠난 직후, 도아린은 다시 아파트 단지를 나섰다. 집에 과일과 간식이 없다는 것을 떠올리고 근처 마트에 가려던 참이었다.“잘 생각했어?”그녀는 소유정과 통화하며 걸었다.“결정했어. 난 진혁을 데리고 은신처로 갈거야. 그는 내 파트너니까 그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지.”이때 봉고차 한대가 도아린의 옆에 멈춰 섰다.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그녀는 피하려 했지만 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길을 막아섰다.“너희는... 으읍!”누군가가 도아린의 뒤에서 입을 막았다. 수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냄새에 도아린은 금세 정신을 잃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도아린은 서서히 의식을 되찾았다.그녀는 팔과 다리가 묶인 채로 바닥에 누워있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이쁘장하게 생긴 아가씨야. 몸매도 장난 아니잖아.”“십만 원은 너무 싸. 좀 가지고 놀다가 넘기자.”“보스가 먼저 해요. 우리는 밖에서 지키고 있을게요.”발소리가 멀어졌다.촤악!차가운 물이 얼굴에 쏟아지면서 도아린은 어쩔수 없이 눈을 떴다.낡고 허름한 창고 안이었다. 창문은 빛이 새지 않는 비닐로 덧대있었고 유일한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누구세요?”그녀는 멍하니 물었다.“넌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렸어.”남자는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말했다.“어차피 시골 외딴집 노인네한테 팔려가서 고생할 건데 오늘 이 오빠가 맛좀 보자.”남자는 허리띠를 풀며 더러운 웃음을 지었다.도아린은 머리카락이 곤두섰고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그녀는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했다.침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주방장이 당신들 두목인가요? 부탁드리지만 그에게 전해주세요. 오늘 제가 흥분해서 실수했어요. 시키는대로 다 하고요. 원하는건 다 들어줄게요.”도아린은 아첨하는 웃음을 지
그래서 그녀는 나무 몽둥이를 집어 들고 남자의 머리를 가격하는 수밖에 없었다.퍽!나무 몽둥이는 남자의 등을 가격하며 반으로 부러졌다.“형님!”그제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소리치며 안으로 달려왔다.그녀는 손에 남은 반쪽 몽둥이로 다시 한번 내리쳤고 남자는 신음하며 쓰러져 꼼짝하지 않았다.그녀는 재빨리 빈 나무 상자 안으로 숨어들었다.이때 달려들어 온 두 명의 부하들은 이 장면을 보고 멍해졌다.두목은 피투성이가 되어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겨우 십만 원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두 남자는 공포에 질렸다.그들은 허둥지둥 두목을 밖으로 옮기고 문을 잠근 뒤 병원으로 갔다.도아린은 휴대폰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기절해 있는 동안 그들이 가져간 모양이었다.창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창문을 뜯기 시작했다.온몸에 땀을 흘리며 두 개의 나무판자를 간신히 뜯어내서야 겨우 한 사람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만들었다.이때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고 문이 다시 열렸다.피부가 검고 누렇게 뜬 여자였다. 그녀는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입고 있었고 누렇고 숱이 적은 머리카락을 뒤통수에 동그랗게 말아 붙였다.“바로 네 이년이 내 사위를 꼬셨지!”하춘녀는 문을 막는 데 쓰는 막대를 들고 한 걸음씩 다가왔다.“네년의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산골짜기에 팔아넘겨 버릴 거야! 그럼 남자를 어떻게 꾀나 보자!”“아줌마, 분명히 오해가 있으세요.”도아린은 어색하게 손사래를 쳤다.“저는 이미 결혼했어요.”하춘녀는 남들이 자기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게 제일 싫었다.도시 사람들은 다들 '사모님', '부인'이라고 부르지 않는가?“너야말로 아줌마야. 너희 집안 전체가 다 아줌마들이야!” 하춘녀는 두말없이 몽둥이를 휘둘렀다.무거운 몽둥이가 옆에 있던 상자를 때리자 먼지가 풀썩 일어났다.도아린은 화급하게 피하며 말했다.“이모, 아가씨, 언니... 흥분하지 마시고 얘기 좀 해
도아린의 전화가 갑자기 끊기자 소유정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그녀는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중 배건후에게 연락했다.“건후 씨, 도아린이 보육원 사람들에게 납치당한 것 같아요. 얼른 손보미한테 연락해 보세요.”배건후는 여전히 그 찻잎 때문에 도아린에게 화가 나 있었다. 게다가 그는 도아린이 맨션으로 들어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까지 했다.고양이나 강아지도 맨션에서 길을 잃을 리 없는데 하물며 다 큰 어른이야.“유정 씨, 도아린의 체면을 봐서 이번만은 넘어가겠지만 다음에 또 그러시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겁니다.”“상황이 너무 급해서 건후 씨한테 전화한 거예요. 지금 보니 우리 아린이가 아깝네요.”소유정은 전화를 끊고 다시 육하경에게 연락했다.배건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는 어느새 분노가 번졌다. 아무리 천사 보육원에 문제가 있다 해도 도아린이 친구들과 작당하여 손보미를 비방하는 것 또한 고상한 일이 아니었다.전화는 이미 끊긴 지 오래였다. 배건후는 핸드폰을 빤히 내려다보더니 뭔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몇 분 후, 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어 도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연결된 후에는 통화료가 부과됩니다.”그는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피어올랐다.“맨션으로 돌아가죠.” 배건후는 차갑게 말했다.마이바흐는 서서히 단지에 들어섰고 에이트 맨션은 불이 꺼져 있었다. 배건후는 단지의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도아린이 두 명의 덩치 큰 남자에게 끌려가 밴에 실린 장면을 보더니 온몸에서 살기를 내뿜었다.도아린이 사용하는 핸드폰은 배건후의 친구가 맞춤 제작한 것으로 전원이 꺼져 있어도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백그라운드 데이터를 활성화하고 폐창고로 향했다.창고로 들어가는 길이 심하게 좁다 보니 마이바흐와 밴이 거의 스치듯 지나쳤다.“당신은 저 밴을 쫓아가세요. 전 들어가서 사람부터 찾을게요.” 배건
‘도아린, 네 머리엔 도대체 뭐가 들어찼어?’‘어떻게 그렇게 멍청할 수 있지?’‘이미 마음이 떠난 남자랑 사랑을 논하다니, 그냥 돈만 따지면 되는 거지.’도아린은 물을 두어 모금 마시고 나서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경찰은 밴이 리조트에서부터 미행했다고 했지만 오늘 그곳에 갈 거라는 걸 그녀도 몰랐는데 그들이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아마 손보미가 배건후의 일정을 알고 미리 사람을 보냈을 가능성이 제일 컸다. 도아린은 쓴웃음을 지으며 되레 소유정을 위로했다.“오늘 당한 건 꼭 배로 갚아줄 거야.”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병실 문이 열렸다. 배건후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들어오더니 침대에 기대있는 도아린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깼네.” 그는 눈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운 채 가까이 다가섰다. “얘기 좀 해.”“아린이가 당신이랑 무슨 얘기를 나눌 게 있죠?”소유정은 겨우 멈췄던 눈물이 다시금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람이 납치당했을 땐 돕지도 않더니 이제 와서 존재감을 과시하러 오는 것도 아니고.’그녀는 배건후를 조금 두려워했다. 그는 겉보기에 다가가기조차 어려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도아린이 심하게 당하면서 그녀는 거의 각오를 다졌다. 연예계를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친구가 괴롭힘 당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도아린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정아, 나 밀크티 마시고 싶어. 토핑 가득 넣어서.”소유정은 자신을 내보내려는 핑계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녀는 도아린과 눈빛을 교환하며 바로 밖에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라고 했다. 그러고는 배건후를 흘겨보며 병실을 나갔다.배건후는 의자를 끌어와 병상 옆에 앉았다.“어제 사모님께서 해남으로 돌아왔어. 너도 함께 배웅하길 바랐는데...” 그는 잠시 멈췄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사모님께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하셔서 네가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는 아직 하지 않았어.”도아린은 비웃음을 흘렸다. “엄마도 모르겠죠?”“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엄마가 알면 병세
그는 손보미의 출생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배건후는 본능적으로 타고난 고고한 자태를 풍기며 도아린을 내려다보았다.“경찰은 결코 범인을 놓치지도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지도 않을 거야.”도아린은 눈을 감은 채 창백한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손보미가 그동안 고생한 게 지금 무슨 상관이지?’그녀는 감독과 밤늦게까지 대본을 논의하다가 평판이 망가지고 여러 곳에서 압박을 받게 되자 어쩔 수 없이 해외로 연수를 나갔다. 가엾은 사람에게는 미워할 점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힘들겠지만 그게 폭력의 이유는 될 수 없다.“그만 가세요. 혼자 쉬고 싶어요.”배건후는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열다 말고는 그대로 꾹 참아 누른 채 돌아섰다.소유정은 병실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당신이 아직도 아린이를 와이프로 여긴다면 아린이가 푹 쉴 수 있도록 귀찮게 하지 말아주세요.”“소유정 씨, 당신 말에 책임질 준비 하세요.” 배건후는 차갑게 경고했다.소유정은 고집스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배건후 씨, 고소하고 싶으면 하세요. 당신이 저지른 일에 후회하지나 말고.”“지금 뭐하는 거야?” 갑자기 들려오는 육하경의 온화한 목소리에 두 사람은 실랑이를 멈추었다.배건후가 고개를 돌리자 손에 밀크티 두 잔을 들고 있는 육하경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가슴속에 쌓여 있던 답답한 감정이 점점 뚜렷해지는 것 같았다. 배건후의 눈빛은 마치 칼처럼 날카로웠다.육하경이 건넨 밀크티에 소유정은 즉시 환하게 웃어 보였다. 배건후를 대하던 태도와는 하늘 땅 차이였다.“아린이가 제일 좋아하는 토핑이 들어간 밀크티네요. 역시 세심한 분이라 그러신지 따뜻한 걸로 사 오셨네요.” 소유정은 일부러 배건후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들어가야겠어요. 아린이가 한참을 기다렸거든요. 하경 씨도 어서 들어와요.”배건후가 날카로운 눈빛을 던졌지만 소유정은 이미 병실로 들어가 버렸다.육하경은 배건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