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린은 건들거리며 자리에 앉아 일부러 면치기를 요란하게 했다.가지 못하게 한다면 그의 비위를 상하게 할 속셈이었다.배건후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불쾌한 게 확실했지만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고 우아하게 식사를 했다.도아린은 면치기도 하고 쩝쩝거리기도 하면서 식사를 마쳤지만, 배건후는 화를 내지 않았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도아린은 먼저 식사를 마치고 포크로 달걀을 건져서 먹었다.“식사는 괜찮아요? 이제 얘기를 나눌 수 있겠어요?”배건후는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검은 눈동자와 긴 속눈썹은 정말 수려했다.껍데기는 이렇게 잘생겼는데 차라리 벙어리였으면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다. 그녀의 시선이 너무 뚫어지게 그에게로 향한 탓인지 저녁 식사가 맛있었던 덕분인지 배건후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우아하게 입을 닦았다.“다 봤어?”도아린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진씨 가문이랑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거예요?”배건후는 시선을 내리고 한참 지나서야 대답했다.“이혼 빼고 다른 요구는 아무거나 해도 돼.”도아린은 손이 떨리며 포크로 집었던 고기 부스러기가 다시 육수로 떨어졌다.“건후 씨, 당신 마음속에는 손보미뿐이잖아요. 왜 나를 당신 사모님 자리에 두지 못해서 안달인 거예요?”“4000억을 갖기 싫은 거야?”배건후가 차갑게 웃었다.“돈을 제일 좋아하는 거 아니야? 지금은 돈이 별로 아쉽지 않은 게 진씨 가문이 있어서 그래? 진씨 가문의 수양딸이 된다고 해서 그 가문의 재산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어서 나와의 관계를 공개하고 이 기회를 빌려 손보미를 망가뜨려 다시는 복귀 못 하게 할 생각인 거야?”도아린은 포크를 그릇에 떨어뜨리고는 비웃으며 말했다.“배건후, 내가 당신과 비밀결혼이라고 해도 이 바닥에서 아는 사람이 있어. 당신과 손보미의 스캔들에 대한 소문이 자자한데 그 사람들이 다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들이 당신을 가지고 뭐라 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손보미 씨한테 태클을 걸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
도아린이 담담하게 말했다.“손보미에게 새 사람이 생겼죠? 그래서 지금 나한테서 당신의 자리를 찾으려는 거죠?”3년 전, 감정과 알코올의 힘에 그녀는 방을 잘못 들었었다.하지만 배건후는 정신이 또렷했다. 그는 분명 오해가 있는 걸 알면서도 강제로 그녀와 관계를 맺었다.그러니 이 남자의 진심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첫사랑한테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와중에 다른 여자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쓰레기 같은 자식!’배건후는 차갑게 웃었다.“내 자리를 찾는다고? 내가 네 생활의 전부잖아? 너는 내가 입고 먹고 이동하는 모든 것을 다 참견하는 데 욕구도 해결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도아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붙어오는 단단한 가슴팍을 느끼며 도아린은 상대방의 눈빛 속에서 이게 농담인 건지 벌을 내리는 건지 분별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두려운 기분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도아린은 빠르게 뒤로 물러서면서 등이 문에 세게 부딪혔다. 그 바람에 문이 갑자기 열렸고 배건후가 그녀의 허리를 잡아준 덕분에 뒤로 넘어지지 않았다.배건후는 그녀를 끌어안고 침대로 다가갔다.“입으로는 싫다고 하면서 몸은 아주 순종적이네.”도아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격렬하게 발버둥을 쳤다.두 사람은 함께 침대에 쓰러졌고 배건후는 그녀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도아린은 무척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배건후의 손을 잡았다.“배건후, 이혼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내가 좋아져서야?”배건후는 행동을 멈추고 비웃듯 대답했다.“진씨 가문과의 합작을 위해서 그런다는 거 너 알고 있잖아. 진씨 가문에서는 부부 사이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 힘을 들여서 스캔들을 무마하는 것보다는 부부 금실이 좋다는 허상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지.”도아린은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배건후를 자극하려는 의도였지만 그의 해명을 들었을 때는 그래도 마음이 아팠다.“진씨 가문은 금방 연성에 왔어. 진씨 가문 이전에는 조씨 가문이 있었어... 명문가에서는 모두 부부 사이가 화목하지 못한
배건후는 또 위통이 시작됐다.도아린은 차갑고 평온한 표정으로 자신의 옷을 정리했다.“손보미가 욕먹은 걸 내 탓으로 돌리고 싶다면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진씨 가문과의 협력은 제가 돕지도 막지도 않을 테니 당신에게 달렸어요. 어머님의 상태는 보셨죠? 언젠가는 약속대로 저에게 20억을 주는 게 좋을 거예요. ”배건후는 거울을 통해 그녀를 보며 차가운 웃음을 띠고 말했다.“아무것도 안 하면서 20억을 원한다고?”“...”도아린은 마음의 파도가 완전히 가라앉은 후에야 말을 이었다.“당신이 진씨 가문과의 합작에 성공했다고 했을 때 설마 나한테 금실 좋은 부부 연기를 계속하게 할 생각은 아니죠?”그렇게 된다면 끝이 없고 이혼은 기약 없이 먼 얘기가 될 것이다.침실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배건후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점점 어두워졌다.한참 후, 그는 턱을 만지며 말했다.“아니.”그날 저녁, 배건후는 또 서재에서 야근했다.도아린은 하는 일마다 순조롭지 못했던 3년 전의 꿈을 꿨다.그녀는 폭설 속에서 몇 시간 동안 서 있었고 두 발은 얼어서 감각을 잃었다.목표물이 나타나자 그녀는 황급히 다가가려고 했지만, 다리가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바람에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 장면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그녀의 목적을 알게 된 남자는 따분한 표정이었다. 마치 그녀의 말을 한마디라도 더 들으면 그녀의 불운이 자신에게 옮겨지기라도 하는 듯 얼른 사람들에게 그녀를 쫓아내라고 명령했다.도아린은 사람들에게 끌려가서 눈더미에 버려졌고 간신히 일어섰다.펑펑 쏟아지는 눈은 그녀의 남은 희망까지 파묻었다. 이토록 절망하고 있을 때, 따뜻한 체온이 남아있는 코트가 그녀의 어깨에 걸쳐졌다.도아린은 고개를 들었고 내리는 눈 속에서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을 보았다.꿈에서 깨어나 도아린은 핸드폰 알람을 껐다. 배건후에 모든 기대를 걸었던 탓에 진실을 알게 된 이후 실망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컸다.만약 처음부터 배건후와 돈으로만 맺어진
도아린은 병원에서 율이를 만날 줄 몰랐다. 율이의 가녀린 몸에는 커다란 병원복을 입고 있었고 듬성듬성했던 긴 머리카락도 짧게 변해있었다.“네가 왜...”율이는 다급하게 그녀의 입을 막고 당황해서 뒤돌아보았다.벽에 붙은 1미터 남짓한 타일에는 사람의 실루엣 두 개가 희미하게 비쳤고 그들의 걸음은 멈추었다가 점점 멀어졌다.율이는 자신을 싫어하던 손보미가 문득 떠올라 빠르게 손을 떼고 어색하게 옷에 손을 문질렀다.“죄송해요.”도아린은 쪼그리고 앉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어제 율이를 데리고 와서 검사해야 했는데 세게 부딪힌 것인지 아닌지 걱정되었다.“아니야. 내가 사과해야지. 네 병원비는 내가 책임질게.”“아니에요.”율이가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사실 저는...”“율이야!”보육원의 선생님이 찾으러 나왔다가 율이를 보고 빠르게 다가오더니 율이의 뒤통수를 때렸다.“너 왜 함부로 돌아다니는 거야.”율이의 가녀린 몸이 휘청거렸지만, 여전히 도아린을 보며 웃고 있었다.“살살 해요. 아직 어린 애잖아요.”도아린이 쌀쌀하게 말했다.유은서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누구세요?”“저는...”“제 친구예요. 저를 보러 왔어요.”율이는 도아린의 말을 끊고 그녀의 손을 잡고는 곁에 있는 사람을 소개했다.“이분은 보육원의 유은서 선생님이세요.”유은서는 도아린의 손에 들린 정교한 상자를 보고 율이한테 주는 선물인 줄 알고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아이고, 진작에 말씀하시지. 무거우실 텐데 제게 주세요.”도아린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급하게 오느라 선물을 준비 못 했네요.”유은서는 표정이 확 굳더니 율이를 힐끔 보고 병실 쪽으로 돌아갔다.“이따가 율이가 인터뷰가 있으니 잠깐 보고 가세요.”율이는 도아린의 손을 꼭 잡았고 눈빛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서려 있었다.보육원에 위문을 오는 사람은 많지만 거의 다들 생활용품을 주고 사진을 찍고 나서는 거의 오지 않았다.율이는 도아린을 한 번만 보았지만, 이 예쁜 언니를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율이야, 이리로 와. 모두 보미 언니가 너한테 사준 간식이야. 뭐 먹고 싶은지 한번 봐봐.”도아린은 그것을 훑어보았다. 과자, 쿠키, 보기에는 예쁘지만, 맛은 없는 간식들, 그리고 간편 밀크티도 있었다.손보미는 전화를 끊고 과자를 하나 꺼냈다.“토마토 맛이야. 좋아해?”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해요.”손보미는 과자 봉투를 뜯어서 아이에게 건넸다.율이는 하나를 꺼내서 손보미와 눈을 마주쳤다.‘절대 주지 마. 네 손이 닿은 걸 먹고 싶지 않아.’율이는 거부하는 손보미의 시선을 읽었고 손에 들린 과자는 천근 무게처럼 느껴졌다.율이는 그 자리에 굳어서 불안하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이는 뒤돌아 도아린을 보았고 그녀는 봄날의 햇살처럼 아이에게 힘을 주었다.“아린 언니, 먹어요.”율이는 도아린에게 주었다. 도아린은 허리를 숙여 절반을 물었다.“너도 먹어.”율이는 남은 절반을 입에 넣었고 환하게 웃었다.아린 언니는 예쁘고 자신을 싫어하지 않았다.손보미의 시선이 점점 차가워졌다. 도아린이 율이의 병실까지 찾아온 걸 보면 절대 좋은 마음이 아니었다.“도아린, 나 율이랑 동영상을 찍어야 해.”율이는 도아린이 떠나는 게 서운했지만 뭐라고 요구할 수 없어 그저 그녀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도아린은 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잘 찍고 있어. 또 보러 올게.”병원을 나와 도아린은 부근의 마트로 가서 율이가 먹고 싶어 하는 과자를 찾았다. 짝퉁 브랜드의 몇천 원도 안 되는 과자도 유은서는 율이에게 주기 아까워했다. 보육원에서 율이는 더 먹지 못할 것이다.도아린은 짝퉁이 아닌 제대로 된 브랜드의 과자와 우유 시리얼을 사서 손보미가 떠난 후 다시 율이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도아린은 두 시간 정도 기다렸지만, 손보미가 가지 않을 줄 몰랐고 심지어 배건후도 왔다.율이는 부담감이 너무 커서 몇 번을 찍었지만, 요구를 만족하지 못했다. 손보미는 부드러운 말투로 아이를 위로하면서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주었고 드디어 율이는
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건후는 도아린의 눈빛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소름이 돋았다.도아린이 배건후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모습은 마치 웃음 속에 칼날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배건후가 막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손보미가 그를 막아섰다.“의사 선생님이 율이의 상태가 좀 복잡하다고 하셨어. 신장 이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데, 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 의사 선생님 만나러 같이 가줘.”배건후는 잠시 망설였지만, 손보미가 거듭 부탁하자 그녀와 함께 의사를 만나러 갔다.율이는 도아린을 병실로 데려갔다. 방 안에는 온갖 신선한 꽃과 산처럼 쌓인 선물상자들이 가득했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걸 도아린이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정말 많은 사람이 병문안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피곤하지? 간식 좀 먹고 기운을 보충해.” 도아린은 자신이 사 온 과자를 꺼내서 유은서가 막을 새도 없이 과자를 개봉했다.“이건 내가 산 거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죠?” 도아린은 비아냥거리며 우유도 열었다.“이 과자를 우유를 적셔서 먹는 거 알아?”율이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도아린은 과자 하나를 꺼내 시범을 보이며 말했다.“이렇게 분리해서 우유에 찍어서 먹어...”그녀는 율이의 입에 과자를 넣어주었다.율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처음 먹어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율이가 웃자, 입가에서 우유가 흘러나왔다.도아린은 웃으며 휴지를 꺼내 율이의 입가를 닦아준 후, 과자를 아이의 손에 쥐여주며 직접 먹어보라고 했다.율이는 도아린이 가르쳐준 대로 과자를 입에 넣고 몸을 배배 꼬면서 말했다.“과자처럼 저도 이렇게 비틀 수 있어요.”도아린은 율이의 모습에 배를 잡고 웃었지만, 유은서는 문 앞에서 어두운 얼굴로 서 있었다.“율이야, 보육원은 아이들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것을 잊지 마. 혼자 독차지하려 하면 안 돼.”유은서가 이렇게 말하자 도아린이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율이가 먹는 약도 나눌까요?”도아린은 간호사에게
도아린이 웃자 율이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남자친구 있어요?” “없어.” 도아린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에게는 쓰레기 같은 남편만 있을 뿐이다.“소원은 입 밖으로 뱉으면 이루어지지 않잖아.”“그럼 어떡해요?” 율이가 눈물을 글썽였다.“다시 마음속으로 조용히 빌면 돼.”“같은 소원을 빌어도 돼요?”“그 소원은 안 비는 게 좋을 것 같네. 나는 그렇게 따뜻함이 하나도 없이 차갑고 항상 자신의 억지 논리를 펼치는 사람은 필요 없거든.” 도아린은 율이의 손을 잡았다.“그럼 보미 언니는…” 율이가 물었다.“보미 언니는 달라. 보미 언니는 운이 좋아서 그 어떤 행동을 해도 그 아저씨는 항상 보미 언니를 소중히 여겨줄 거야.”그때 병실 문이 열렸고 배건후가 차가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어린애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듯한 표정이었다.도아린은 그를 쳐다보지 않고 율이의 손을 잡은 채 향 주머니를 아이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나 먼저 갈게. 내일 또 보러올게.”율이는 주머니를 꾹 누르며 도아린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손보미는 배건후가 도아린을 따라가는 것을 보고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율이에게 물었다.“무슨 얘기 했어?”보미가 너무 큰 소리로 물어오는 탓에 율이는 움츠리며 대답했다.“아무… 아무 말도 안 했어요.”손보미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미안해. 보미 언니가 너무 큰 소리 말했지? 아린 언니가 계속 내 남자친구를 유혹하려고 해. 저 멋진 아저씨는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이 여리단다.”손보미는 율이의 손을 잡고 달래며 말했다.“앞으로 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보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나한테 알려줘야 해.”율이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아린 언니는 멋진 아저씨 같은 남자는 필요 없다고 했지만, 보미 언니는 그녀가 아저씨를 유혹하려고 불쌍한 척한다고 말했다.손보미는 율이의 우상이었지만, 지금은 아린 언니의 말이 더 신뢰가 갔다.손보미는 과자 상자를 집어 들고는 비웃는
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며 비웃는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율이의 병실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마트에서 홍보 영상을 봤기 때문이고 나는 내연녀한테 골탕을 먹일 거라서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자선이든 뭐든 내 눈에는 다 위선적인 홍보로 보일 뿐인 거죠.”도아린은 잠시 멈췄다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렇죠?”배건후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도 한때는 손보미의 의도를 의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율이를 세심하게 돌보는 손보미의 모습을 보고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녀가 의도적인 목적이 있다고 해도 율이와 보육원이 혜택을 받는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도아린의 직설적인 말투에 그는 그녀가 점점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당신 첫사랑의 이미지가 무너지지 않길 원한다면, 내 앞에서 너무 나대지 말라고 전해줘요.”그 말을 남기고 도아린은 돌아서서 떠났다.마침 주차할 자리를 찾고 있던 육하경은 도아린을 발견하고 경적을 울렸다. 도아린은 자신이 곧 차를 뺄 테니 자신의 자리에 주차하라고 손짓했다. 육하경은 도아린의 차 뒤에 잠시 차를 대고 와서 창문을 두드렸다.“아린 씨도 율이를 보러 왔어요?”도아린이 창문을 내렸다. “홍보 효과가 좋은가 봐요.”육하경은 온화한 미소 지으며 차 안을 가리켰다.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물론이죠.”“방금 천사 보육원에 갔다 왔는데, 사립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시설이 별로 좋지 않더라고요.” 육하경은 조수석에 앉으며 말했다. “보육원을 새로 리모델링하고 싶어요. 그 기간 아이들은 우리 호텔 뒤뜰에 묵게 하려고요.”“좋은 생각이에요.” 도아린은 간결하게 대답했다. 육하경은 점잖고 다소 쑥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아린 씨는 제가 이슈를 만들기 위해 이러는 거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최근에 세인트존스 CEO로 임명된 저로서는 뭔가를 해서 호텔의 인지도를 높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맞아요.”“의도가 좋다면 이 기회를 빌려 인지도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죠.”
도아린은 변슬기를 데리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배지유가 자신을 일부러 모욕하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이곳에 유명 스타들이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스크린에서만 보던 유명인들을 실제로 보니 변슬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두 눈으로는 전부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다소 어색하게 셔츠를 만지작거렸다.아버지가 친구를 만나러 가니 단정하게 차려입으라고 당부했지만, 변슬기는 또 소개팅 자리일 거로 생각하며 일부러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왔다.그녀는 상대가 아버지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한 모습을 좋아하길 바랐다.그러나 여기에서 음료를 나르는 여직원들조차 자신보다 더 격식 있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당황했다.“도 선생님, 저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볼품없는 거 아니에요?”도아린은 그녀의 셔츠 뒷면에 약간의 땀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제가 여분의 드레스를 준비해 놨어요. 갈아입어도 좋아요.”변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일단 아빠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각할게요.”멀리서 변우빈이 그녀를 보고 약간의 타박 섞인 눈빛을 보였지만, 곧 미안하다는 듯 설명했다.“우리 딸은 성격이 참 고집스러워.”그는 변슬기에게 손짓했고 딸이 곁에 앉자 말했다.“내가 단정하게 입고 오라고 했잖아. 그런데 일하는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하니.”변슬기는 당황스러워 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주현정이 보이자 긴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큰일 났다!’문 앞에서 배지유와 다툰 것도 모자라 이번엔 배지유의 엄마까지 만나게 됐다.지난번처럼 자신에게 온화하게 대해줄 리가 없을 것이다.“...네 딸이구나?”주현정은 마치 이해했다는 듯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지난번에 봤을 때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변슬기는 몰래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분 배지유 엄마예요.”변우빈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웃으며 소개했다.“이분은 주현정
배지유가 휠체어를 돌리자마자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배지유?”“변슬기?” 배지유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이 시간에 오다니, 연회가 거의 끝나가잖아.”변슬기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온몸에 땀범벅이었고 앞머리가 하얀 이마에 붙어 있었다.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며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감 있게 말했다.“아니야, 난 사람을 찾으러 온 거야.”이어지는 장면이 바로 도아린이 목격한 것이다.배지유는 휠체어를 움직여 변슬기의 주위를 맴돌면서 눈에 비웃음이 가득했다.“너희 집은 이번 생은 물론이고, 전생에도 이런 호화로운 사람들을 본 적 없을걸? 여기를 시장으로 착각한 거야? 아무나 데려와서 ‘내 삼촌, 내 이모’라고 하면 통할 것 같아? 여기는 모두 톱스타들이야! 너 콘서트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어?”배지유는 입을 가리며 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생활비 벌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주제에 무슨 돈으로 콘서트를 본다는 거야!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기숙사로 돌아가서 기다려. 누굴 보고 싶은지 댓글 남기면 내가 대신 사진 찍어줄게.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돈을 안 받아. 대신 너는 우리 기숙사의 1년 치 청소를 맡고 내 빨래도 다 해야 해. 속옷과 양말도 손빨래로!”변슬기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연예인 보러 온 게 아니야.”“올해 최고의 억지상은 바로 너네!” 배지유는 엄지를 세우며 비웃었다.“여긴 다 연예인들뿐이야. 네가 누굴 찾는다고 하면, 내가 직원한테 말해서 불러줄게.”변슬기는 그녀를 무시하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러자 배지유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해지며 휠체어를 몰아 변슬기에게 돌진했다.거의 부딪힐 뻔한 순간, 휠체어가 갑자기 멈췄다.화가 난 배지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도아린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네가 왜...” 도아린은 왜 자신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건가?
주현정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에 그저 화났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니 그녀의 기분만 풀어주면 도아린이 그 자리를 넘보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현정아, 사람은 성인이 아니니 누군들 실수하지 않겠어?” 배석준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내가 증명해 보일게. 나와 지유야말로 네 뒤를 든든히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그는 배지유를 찾아 그녀를 데리고 주현정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세 식구가 언론 앞에 함께 나타나기만 하면 이혼 소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배씨 가문의 재산에 끼어들 수 없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배지유가 사라진 후였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도아린이 다정하게 위로했다.“배 대표님은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못할 거예요.”“차라리 저 사람이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네.”주현정은 도아린과 함께 인파를 지나갔다.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다소 어색하게 무릎을 문지르며 이따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주현정을 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가 방해되지는 않았어?”“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내 연회에 와줘서 고마워.”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고 다가갔다. 세 사람은 원형 소파에 앉았다.“이쪽은 내 딸 도아린이야. 이분은 변우빈이라고 하고 내 가장 친한 친구야. 아저씨라고 불러.”“아저씨, 안녕하세요.” 도아린은 무심코 상대방을 살펴봤다.변우빈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배석준와 비슷한 체격이었지만 조금 말랐다. 그의 얼굴과 손에는 노동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진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변우빈은 계속 주현정의 눈을 바라봤고 주현정의 미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겨있었다.“네 딸도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주현정이 뒤를 돌아보며 묻
석 대표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앞에 휠체어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요란하게 치장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이분은...”그는 주현정이 이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첫 반응은 배석준이 다른 여자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배석준의 새로운 연인은 주현정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석 대표님, 짓궂으십니다. 방금까지도 저희 딸을 카메오로 요청한다고 하셨으면서...”배석준은 말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그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배지유를 보고 있었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배지유는 엄청 민감해서 의식적으로 치마를 잡았는데 그들이 자신의 얼굴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제야 천천히 손을 떼었다.“배 대표님 따님이 몇 명이세요?”석 대표가 물었다.“... 한 명입니다.”석 대표는 웃어 보이고는 볼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고 그가 떠나자 다른 사람들도 흩어졌다.“아빠! 저 사람들 무슨 뜻이에요?”“...”배석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영문을 알게 되었다.배지유는 휠체어에 앉아있어 시선이 막혔지만, 배석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도아린을 데리고 인사를 나누는 주현정을 보았다.그들이 칭찬하는 사람은 배지유가 아니라 도아린이었다.“지유야, 여기서 아빠를 기대려. 아빠가 가서 엄마를 찾아볼게.”그는 배지유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하고는 빠르게 걸어갔다.“주현정! 당신 지금 지유는 병원에 내버려 두고 도아린을 데리고 연회에 참가하고 있어? 당신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손님들은 배석준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자리를 피했고 주현정의 얼굴에 있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대답했다.“지유는 당신 같은 아빠만 있으면 돼요.”배석준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앞서 당신은 외부인 하나 때문에 나랑 이혼하려고 했고 이제는 이혼 얘기를 하지 않으니 각종 방법으로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고 있어. 당신이 다시 JS 픽처스를 운영하게 되었는데도 나한테 얘기
JS 픽처스의 고위인사는 배석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 또 해외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현정이의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머물다가 가려고 합니다.”배석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평소에 연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주현정이 JS 픽처스에서 지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각종 이유를 찾아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를 거부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카메라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그들은 모두 주현정 덕분에 잘 되었기에 체면은 반드시 살려주어야 했다.“크흠.”배지유는 배석준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헛기침을 했다.“아, 우리 딸이 마침 해남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배석준을 둘러싼 고위인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주현정은 배지유가 연예계의 나쁜 물을 먹을까 봐 현역일 적에 절대 배지유를 데리고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위인사들도 그저 주현정에게 딸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본 적은 없었다.반응이 빠른 누군가가 술잔을 들며 공손하게 말했다.“따님은 주 대표님과 배 대표님의 우수한 점을 다 닮으셔서 단정하고 청초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새로 영입한 신인보다 예쁘신 것 같습니다.”“맞아요. 해남대학교의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시니 예쁘시고 학식도 많으시네요. 지금 업계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인재를 제일 좋아합니다!”배지유는 칭찬을 듣고 얼굴이 발그레해졌고 그녀는 두 손으로 팔걸이를 잡고 살짝 몸을 앞으로 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삐끗해서 일어서서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네요.”“별말씀을요. 발을 삐끗하면 잘 치료해야 해요. 젊고 예쁘신데 후유증을 남기면 안 되죠.”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배지유의 마음속에서는 저주로 들렸다.그녀는 발 한쪽을 다친 게 아니라 다리 하나를 잃었다. 나머지 생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배석준은 배지유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가 난리를 피울까 봐 얼른 다른 곳으로
주현정은 말투가 가라앉았고 표정이 엄숙했다.“남자의 내연녀로 이십몇 년을 있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어른이 화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나. 도아린의 양아버지는 양어머니의 혼수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했어.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딸의 효도를 받을 자격 없어!”현장에는 여자 연예인들도 많았다.같은 딸의 마음으로 이렇게 심란한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그들은 도아린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아린이 양어머니를 위해 복수를 했다고 여겼다.강홍련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아린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방금 자신의 말이 강씨 가문에게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웠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도아린은 단호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강씨 어르신은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씨 어르신께서 좋은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주었는데 당신은 밖에서 어르신의 명성이나 흐리고 다니면 안 되죠. 농부와 뱀의 이야기를 재희 씨도 들어봤을 거로 생각해요.”도아린은 강씨 어르신의 편에 섰는데 강재희는 반박할 수 없었다.여론에서 아버지의 대회에 흑막이 있다는 일로 들끓던 것이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강홍련 저 멍청이 때문에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주현정은 도아린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제 딸이고 JS 픽처스의 후계자예요. 강씨 가문에서 이렇게 제 딸을 치욕스럽게 하다니, 저희 협력은 앞으로 계속하지 않을 생각입니까?”강재희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녀는 도아린이 연회에 참가한 것은 단지 주현정과 예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주현정이 도아린을 딸로 삼고 JS 픽처스의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만약 도아린과 모순이 격화된다면 앞으로의 협력에는 장애가 생길 것이다.“강홍련 씨, 사과해요!”강홍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재희는 지금 자신을
도아린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진열대에 있는 다이아몬드의 빛이 꺾이어 그녀의 눈동자를 비춰 유독 눈부셨다.강홍련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강홍련은 도아린보다 머리 하나쯤 작아서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바라보았는데 도도한 척하는 모습이 광대 같았다.“네가 JS 픽처스에게 ‘봉황의 시대’를 광고하도록 넘겼는데 강씨 가문의 고급 주얼리들은 모두 JS 픽처스의 연예인들이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어. ‘봉황의 시대’와 JS 픽처스의 연예인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봉황의 시대’가 강씨 가문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테지.”이게 바로 연예인을 찾아 광고하는 이유였다.예를 들어 어떤 톱스타가 운동화의 모델이 되었다면 그가 나타났을 때 팬들은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알게 된다. 따로 브랜드를 찾아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도아린은 도덕과 재능을 겸비한다는 말로 강씨 가문에게 치욕을 안겨주었지만 결국은 강씨 가문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강씨 가문에서 이득을 보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도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는 강씨 가문의 사촌이야!”강홍련은 불쑥 얘기했다.“강씨 가문에서 손보미를 밀어준다면 배건후와 결혼할 수 있어. 강씨 가문에서 안씨 가문을 지지한다면 내 아들은 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거야!”“그래서요.”강홍련은 도아린이 모른 척할 줄 몰랐고 그녀의 코에 대고 얘기했다.“그래서 나한테 잘하라고. 그러면 강씨 가문에서는 네가 해남에서 살아나갈 기회라도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대회 성적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너를 디자인 업계에서 쫓아내는 것도 일이 아니지. 내 삼촌 강태식은 이 바닥을 꽉 잡고 있어. 내 삼촌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야. 너의 ‘봉황의 시대’도 잘난 척할 거 없어. 언론에서 만들어준 것뿐이야. 만약 삼촌의 학생들이 다 그게 별로라고 얘기한다면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거야!”많은 손님이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강홍련의 지나친 말에 시선을 두
“아빠가 방법을 대서 가볼게. 너는 오지 마.”배석준은 배지유가 걱정되었다. 지난번에 배지유가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도 돌아와서 다리가 아파 잠이 들지 못했다.배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애원했다.“제 친구들은 제가 아직 안에 갇혀있는 줄 알아요! 아빠랑 제가 함께 엄마의 연회에 간다면 매체에서는 저희 세 식구의 화목한 모습을 찍게 될 것이고 소문들은 자연스레 사그라질 거예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딸의 명성은 도아린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돌이킬 방법을 계속 찾지 않는다면 배지유가 해남대학교로 돌아갔을 때 반드시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당할 것이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메이크업과 코디를 해줄게.”배석준이 데리고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지민이었다.김지민은 연예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 참석하는 연예인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알아냈다. 배지유는 똑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됐고 다리의 흉터를 가릴 수 있으면서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했다.이 부분에서 김지민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배지유는 만족스럽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그녀의 치마를 들지 않는 이상 그녀가 다리 하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발을 삐끗해서 휠체어를 탔다고 하면 될 것이다.이런 장소에 김지민은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므로 부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연회장의 중심에는 도아린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고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는 현장에 있는 연예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여자의 아름다움이 너무 지나쳤다.연예계의 스타들은 자주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에 참가하므로 어떻게 분위기를 휘어잡는지를 잘 알고 자신이 어느 각도에서 가장 예쁘게 찍히는지도 알고 있었다.도아린은 처음 보는 얼굴이고 업계에 대해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 자신감이 넘쳤다.그녀가 스크린 앞으로 가서 사인할 때 스크린에는 ‘봉황의 시대’의
도아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녀의 덤덤한 눈빛은 ‘라윤주’의 이름을 듣고 초점을 잃었다.“뭐라고요?”“...”육하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가 육하경이 말을 이었다.“향 주머니로 화를 면한 것은 우연이에요. 정말 저를 도왔던 것은 세인트존스 호텔의 책임자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죠.”육하경은 입꼬리를 올려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어르신들을 3일이나 괴롭혀서야 알아냈어요. LY에서 저를 후임자로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육하경의 학업은 각 부분에서 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육씨 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빽빽이 필요했다.육민재를 예로 들어보면 능력은 가장 뛰어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맏아들의 장손 혈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최고로 좋은 자원과 경험을 쌓을 기회들을 누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그는 육씨 가문의 후계자일 것이다.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려면 모든 게 알맞게 부합되어야 한다.육하경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었고 육씨 가문의 산업에 기대를 두지 않아 오랜 시간 밖에서 떠돌며 공부를 했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세인트존스 호텔의 관리 권한이 그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놀란 마음으로 육하경은 전임자를 찾아갔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야 LY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육씨 가문 뿐만 아니라 많은 명문가가 LY와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인재를 추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었기에 자연스레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육하경은 그때 손에 향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전임자가 이상해하며 무늬를 찍어서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추천서’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경 씨가 말하는 그 이야기에도 관심 없습니다.”도아린은 책을 육하경에게 돌려주고는 차 문을 열었다.“도아린 씨!”육하경은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손을 허공에 멈추고 결국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육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