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유준의 이마엔 땀이 맺혔다. 그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나윤아...” “쓸모없는 놈!” 이나윤은 힘껏 발을 내디뎠고 신발은 억지로 들어갔다. “아!” 도유준의 손가락이 뾰족한 굽에 깔려 아파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나윤은 신발이 맞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도아린 앞에서 일부러 발을 꾹꾹 굴렀다. “정말 편하네요. 미안해요, 아끼던 걸 뺏어서.” 이나윤은 도유준의 팔을 끌고 의기양양하게 자리를 떠났다.“너 간 줄 알았어.” 소유정이 전화를 걸어 도아린을 찾았고 그녀는 벨 소리를 따라왔다. 도아린은 2000만 원짜리 상품권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작은 돈 좀 벌었어. 너 옷 사줄게.” “정말?” 소유정은 도아린의 목에 팔을 감고 눈웃음을 지었다. “역시 너는 사업 수완이 있어.” 도아린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도정국에게서 책임을 묻는 전화가 걸려 왔다. 도유준이 집에 돌아가서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도아린이 억지로 여자 친구에게 신발을 사게 했고 일부러 가격을 올렸다고. 결국 그는 베이커리 창업 자금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유준이가 네가 그 매장의 VIP 회원이라고 하던데, 그 신발을 어떻게든 반품해 봐.” “그 신발은 이미 도유준 여자 친구가 신고 쇼핑했어요. 재판매 불가라서 환불은 어려워요.” 도아린은 문을 열며 머리로 휴대폰을 고정시킨 채 신발장을 뒤졌다. 집안은 불이 꺼져 있었다. 배건후는 아마 오늘도 집에 오지 않았나 보다. 집에 없는 게 차라리 좋았다. 그녀는 이 조용함이 마음에 들었다. “도대체 어떤 신발이 2억이 하냐? 다이아라도 박혔어? 네 동생이 겨우 여자 친구를 사귄 건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를 해? 도아린,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야!” 도아린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 신발 내가 먼저 본 거고, 그 여자가 높은 가격을 불러서 뺏어간 거예요. 도유준은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자기 돈을 다 썼죠. 제가 뭐 어쩌겠어요?” “유준이 여자 친
좋은 마음으로 그를 도와서 유럽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손보미와도 잘 되게 했지만, 어찌 그는 자신의 이런 마음도 몰라주고 이상한 말만 하고 있다.“말해봐요. 이혼한다고 하면 제가 어떻게 도와줄까요.”병원에서 손보미의 곁을 지키지도 않고 회사에서 야근도 하지 않고 배건후가 지금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그녀에게 요구를 제시하고 싶은 게 뻔했다.분명 본인이 먼저 부탁할 사안이 있으면서도 저렇게 도도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남자의 자존심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배건후는 그녀의 손에 들린 백 팩을 보고 차갑게 웃었다.“짐은 아직도 갖고 오지 않고 옷만 몇 견지 들고 와서 자고 가고, 여기가 호텔인 줄 알아?”도아린은 그를 흘겨보았다. 3년 동안 그녀는 집을 자주 나갔었다. 배건후는 한 번도 잡은 적이 없었고 항상 도아린 스스로가 견디지 못해서 돌아오곤 했다. 언제부터 그는 그녀가 짐을 갖고 들어와서 머무는지 짧게 머물다 가는지를 신경 썼는지 모를 일이다.이렇게 쓸데없는 말들을 하는 건 도아린에게 그녀가 을이라는 것을 깨우쳐주면서 배건후의 말을 순순히 따르라는 의미였다.도아린은 가방을 소파에 던지고는 한숨을 쉬었다.“건후 씨, 우리 오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눠봅시다. 어때요?”배건후는 위를 꾹 누르면서 귀찮다는 표정이었다,“위가 쓰려. 말할 기분 아니야.”“...”도아린은 배건후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그녀는 주먹을 쥐고는 타협하듯 말했다.“뭘 좀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요?”“한번 시도해봐.”배건후가 뜨뜻미지근하게 말했다.‘시도는 무슨!’영양 밥상 같은 건 절대 다시 만드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면 배건후는 화를 낼 게 분명했다.하지만 배건후는 얘기를 할 마음이 없고 얘기를 하려면 반드시 자신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도도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도아린은 열심히 감정을 조절했다. 배건후가 순순히 합의이혼을 해준다면 더 참을 수 있다.도아린은 뒤돌아 주방으로 갔다. 지난 이틀간 그녀는 집에서 식사하
배건후는 도아린의 손에서 열쇠를 갖고 먼저 운전석에 올라탔다.도아린이 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는 경적을 울렸다.“왜, 내 말에 속이 뜨끔했어?”도아린은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라타서 안전띠를 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배건후의 눈빛이 부드러워졌고 핸들을 돌리는 손짓조차 음악에 따라 움직인다고 느꼈다.맨션의 부근에 마트가 있지만, 배건후는 도아린을 데리고 멀리 있는 큰 백화점으로 갔다.도아린은 카트를 밀며 앞에서 걷고 있었고 배건후는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느릿느릿 뒤따라오고 있었다. 백화점 안의 마트는 최근에 다시 리모델링해서 상품의 종류가 많았고 도아린은 한참을 돌아다녀도 채소와 과일을 파는 구역을 찾지 못했다.뒤에서는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는 거야? 내가 네 남자라고 자랑하고 싶어?”“건후 씨,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다른 곳에 돌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린은 가소롭다는 듯 입을 삐죽거리며 채소 구역으로 갔다.감자, 당근, 버섯, 새우...배건후는 카트에 담긴 채소들이 모두 그가 주문한 음식 재료들이 아닌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도아린, 귀가 먹은 거야 아니면 일부러 나 골탕 먹이는 거야? 네가 나한테 부탁할 입장이라는 거 잊지 마. 이런 식으로 하면 나는 절대 사인 안 해.”도아린은 뒤돌아 그를 보았다.“나는 귀가 먹지도 멍청하지도 않아요. 더 투정 부린다면 음식에 독을 풀어서 벙어리로 만들어 버릴 거예요.”“...”배건후는 화가 나서 위가 뒤틀렸다.이런 소리를 하다니, 도아린은 겁을 상실한 게 분명했다. 배건후는 위를 어루만지다가 뒤돌았는데 도아린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는 진열대의 끝에 멈춰 섰다. 작은 스크린에서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는 손보미가 보육원의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아이들의 심리 건강에 신경을 써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전에 도아린이 부딪혔던 여자아이는 손보미의 곁에 딱 붙어있었다. 자신의 보고
도아린은 건들거리며 자리에 앉아 일부러 면치기를 요란하게 했다.가지 못하게 한다면 그의 비위를 상하게 할 속셈이었다.배건후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불쾌한 게 확실했지만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고 우아하게 식사를 했다.도아린은 면치기도 하고 쩝쩝거리기도 하면서 식사를 마쳤지만, 배건후는 화를 내지 않았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도아린은 먼저 식사를 마치고 포크로 달걀을 건져서 먹었다.“식사는 괜찮아요? 이제 얘기를 나눌 수 있겠어요?”배건후는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검은 눈동자와 긴 속눈썹은 정말 수려했다.껍데기는 이렇게 잘생겼는데 차라리 벙어리였으면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다. 그녀의 시선이 너무 뚫어지게 그에게로 향한 탓인지 저녁 식사가 맛있었던 덕분인지 배건후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우아하게 입을 닦았다.“다 봤어?”도아린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진씨 가문이랑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거예요?”배건후는 시선을 내리고 한참 지나서야 대답했다.“이혼 빼고 다른 요구는 아무거나 해도 돼.”도아린은 손이 떨리며 포크로 집었던 고기 부스러기가 다시 육수로 떨어졌다.“건후 씨, 당신 마음속에는 손보미뿐이잖아요. 왜 나를 당신 사모님 자리에 두지 못해서 안달인 거예요?”“4000억을 갖기 싫은 거야?”배건후가 차갑게 웃었다.“돈을 제일 좋아하는 거 아니야? 지금은 돈이 별로 아쉽지 않은 게 진씨 가문이 있어서 그래? 진씨 가문의 수양딸이 된다고 해서 그 가문의 재산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어서 나와의 관계를 공개하고 이 기회를 빌려 손보미를 망가뜨려 다시는 복귀 못 하게 할 생각인 거야?”도아린은 포크를 그릇에 떨어뜨리고는 비웃으며 말했다.“배건후, 내가 당신과 비밀결혼이라고 해도 이 바닥에서 아는 사람이 있어. 당신과 손보미의 스캔들에 대한 소문이 자자한데 그 사람들이 다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들이 당신을 가지고 뭐라 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손보미 씨한테 태클을 걸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
도아린이 담담하게 말했다.“손보미에게 새 사람이 생겼죠? 그래서 지금 나한테서 당신의 자리를 찾으려는 거죠?”3년 전, 감정과 알코올의 힘에 그녀는 방을 잘못 들었었다.하지만 배건후는 정신이 또렷했다. 그는 분명 오해가 있는 걸 알면서도 강제로 그녀와 관계를 맺었다.그러니 이 남자의 진심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첫사랑한테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와중에 다른 여자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쓰레기 같은 자식!’배건후는 차갑게 웃었다.“내 자리를 찾는다고? 내가 네 생활의 전부잖아? 너는 내가 입고 먹고 이동하는 모든 것을 다 참견하는 데 욕구도 해결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도아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붙어오는 단단한 가슴팍을 느끼며 도아린은 상대방의 눈빛 속에서 이게 농담인 건지 벌을 내리는 건지 분별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두려운 기분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도아린은 빠르게 뒤로 물러서면서 등이 문에 세게 부딪혔다. 그 바람에 문이 갑자기 열렸고 배건후가 그녀의 허리를 잡아준 덕분에 뒤로 넘어지지 않았다.배건후는 그녀를 끌어안고 침대로 다가갔다.“입으로는 싫다고 하면서 몸은 아주 순종적이네.”도아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격렬하게 발버둥을 쳤다.두 사람은 함께 침대에 쓰러졌고 배건후는 그녀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도아린은 무척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배건후의 손을 잡았다.“배건후, 이혼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내가 좋아져서야?”배건후는 행동을 멈추고 비웃듯 대답했다.“진씨 가문과의 합작을 위해서 그런다는 거 너 알고 있잖아. 진씨 가문에서는 부부 사이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 힘을 들여서 스캔들을 무마하는 것보다는 부부 금실이 좋다는 허상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지.”도아린은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배건후를 자극하려는 의도였지만 그의 해명을 들었을 때는 그래도 마음이 아팠다.“진씨 가문은 금방 연성에 왔어. 진씨 가문 이전에는 조씨 가문이 있었어... 명문가에서는 모두 부부 사이가 화목하지 못한
배건후는 또 위통이 시작됐다.도아린은 차갑고 평온한 표정으로 자신의 옷을 정리했다.“손보미가 욕먹은 걸 내 탓으로 돌리고 싶다면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진씨 가문과의 협력은 제가 돕지도 막지도 않을 테니 당신에게 달렸어요. 어머님의 상태는 보셨죠? 언젠가는 약속대로 저에게 20억을 주는 게 좋을 거예요. ”배건후는 거울을 통해 그녀를 보며 차가운 웃음을 띠고 말했다.“아무것도 안 하면서 20억을 원한다고?”“...”도아린은 마음의 파도가 완전히 가라앉은 후에야 말을 이었다.“당신이 진씨 가문과의 합작에 성공했다고 했을 때 설마 나한테 금실 좋은 부부 연기를 계속하게 할 생각은 아니죠?”그렇게 된다면 끝이 없고 이혼은 기약 없이 먼 얘기가 될 것이다.침실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배건후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점점 어두워졌다.한참 후, 그는 턱을 만지며 말했다.“아니.”그날 저녁, 배건후는 또 서재에서 야근했다.도아린은 하는 일마다 순조롭지 못했던 3년 전의 꿈을 꿨다.그녀는 폭설 속에서 몇 시간 동안 서 있었고 두 발은 얼어서 감각을 잃었다.목표물이 나타나자 그녀는 황급히 다가가려고 했지만, 다리가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바람에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 장면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그녀의 목적을 알게 된 남자는 따분한 표정이었다. 마치 그녀의 말을 한마디라도 더 들으면 그녀의 불운이 자신에게 옮겨지기라도 하는 듯 얼른 사람들에게 그녀를 쫓아내라고 명령했다.도아린은 사람들에게 끌려가서 눈더미에 버려졌고 간신히 일어섰다.펑펑 쏟아지는 눈은 그녀의 남은 희망까지 파묻었다. 이토록 절망하고 있을 때, 따뜻한 체온이 남아있는 코트가 그녀의 어깨에 걸쳐졌다.도아린은 고개를 들었고 내리는 눈 속에서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을 보았다.꿈에서 깨어나 도아린은 핸드폰 알람을 껐다. 배건후에 모든 기대를 걸었던 탓에 진실을 알게 된 이후 실망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컸다.만약 처음부터 배건후와 돈으로만 맺어진
도아린은 병원에서 율이를 만날 줄 몰랐다. 율이의 가녀린 몸에는 커다란 병원복을 입고 있었고 듬성듬성했던 긴 머리카락도 짧게 변해있었다.“네가 왜...”율이는 다급하게 그녀의 입을 막고 당황해서 뒤돌아보았다.벽에 붙은 1미터 남짓한 타일에는 사람의 실루엣 두 개가 희미하게 비쳤고 그들의 걸음은 멈추었다가 점점 멀어졌다.율이는 자신을 싫어하던 손보미가 문득 떠올라 빠르게 손을 떼고 어색하게 옷에 손을 문질렀다.“죄송해요.”도아린은 쪼그리고 앉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어제 율이를 데리고 와서 검사해야 했는데 세게 부딪힌 것인지 아닌지 걱정되었다.“아니야. 내가 사과해야지. 네 병원비는 내가 책임질게.”“아니에요.”율이가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사실 저는...”“율이야!”보육원의 선생님이 찾으러 나왔다가 율이를 보고 빠르게 다가오더니 율이의 뒤통수를 때렸다.“너 왜 함부로 돌아다니는 거야.”율이의 가녀린 몸이 휘청거렸지만, 여전히 도아린을 보며 웃고 있었다.“살살 해요. 아직 어린 애잖아요.”도아린이 쌀쌀하게 말했다.유은서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누구세요?”“저는...”“제 친구예요. 저를 보러 왔어요.”율이는 도아린의 말을 끊고 그녀의 손을 잡고는 곁에 있는 사람을 소개했다.“이분은 보육원의 유은서 선생님이세요.”유은서는 도아린의 손에 들린 정교한 상자를 보고 율이한테 주는 선물인 줄 알고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아이고, 진작에 말씀하시지. 무거우실 텐데 제게 주세요.”도아린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급하게 오느라 선물을 준비 못 했네요.”유은서는 표정이 확 굳더니 율이를 힐끔 보고 병실 쪽으로 돌아갔다.“이따가 율이가 인터뷰가 있으니 잠깐 보고 가세요.”율이는 도아린의 손을 꼭 잡았고 눈빛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서려 있었다.보육원에 위문을 오는 사람은 많지만 거의 다들 생활용품을 주고 사진을 찍고 나서는 거의 오지 않았다.율이는 도아린을 한 번만 보았지만, 이 예쁜 언니를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율이야, 이리로 와. 모두 보미 언니가 너한테 사준 간식이야. 뭐 먹고 싶은지 한번 봐봐.”도아린은 그것을 훑어보았다. 과자, 쿠키, 보기에는 예쁘지만, 맛은 없는 간식들, 그리고 간편 밀크티도 있었다.손보미는 전화를 끊고 과자를 하나 꺼냈다.“토마토 맛이야. 좋아해?”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해요.”손보미는 과자 봉투를 뜯어서 아이에게 건넸다.율이는 하나를 꺼내서 손보미와 눈을 마주쳤다.‘절대 주지 마. 네 손이 닿은 걸 먹고 싶지 않아.’율이는 거부하는 손보미의 시선을 읽었고 손에 들린 과자는 천근 무게처럼 느껴졌다.율이는 그 자리에 굳어서 불안하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이는 뒤돌아 도아린을 보았고 그녀는 봄날의 햇살처럼 아이에게 힘을 주었다.“아린 언니, 먹어요.”율이는 도아린에게 주었다. 도아린은 허리를 숙여 절반을 물었다.“너도 먹어.”율이는 남은 절반을 입에 넣었고 환하게 웃었다.아린 언니는 예쁘고 자신을 싫어하지 않았다.손보미의 시선이 점점 차가워졌다. 도아린이 율이의 병실까지 찾아온 걸 보면 절대 좋은 마음이 아니었다.“도아린, 나 율이랑 동영상을 찍어야 해.”율이는 도아린이 떠나는 게 서운했지만 뭐라고 요구할 수 없어 그저 그녀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도아린은 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잘 찍고 있어. 또 보러 올게.”병원을 나와 도아린은 부근의 마트로 가서 율이가 먹고 싶어 하는 과자를 찾았다. 짝퉁 브랜드의 몇천 원도 안 되는 과자도 유은서는 율이에게 주기 아까워했다. 보육원에서 율이는 더 먹지 못할 것이다.도아린은 짝퉁이 아닌 제대로 된 브랜드의 과자와 우유 시리얼을 사서 손보미가 떠난 후 다시 율이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도아린은 두 시간 정도 기다렸지만, 손보미가 가지 않을 줄 몰랐고 심지어 배건후도 왔다.율이는 부담감이 너무 커서 몇 번을 찍었지만, 요구를 만족하지 못했다. 손보미는 부드러운 말투로 아이를 위로하면서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주었고 드디어 율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