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린은 눈을 깜박였다. 손보미 같은 사람이 이런 귀여운 팬을 가지고 있다니 놀라웠다. 자신의 우상을 언급하자 여자아이는 금세 말문이 트였다. 손보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보육원 출신이었다며, 그녀는 선하고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운명에 굴복하지 않으며 온갖 고난을 헤치고 지금의 성공을 이뤘다고 했다. 힘든 날들을 버틸 때마다 여자아이는 손보미가 출연한 드라마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 그녀도 손보미처럼 되고 싶다며, 손보미에게 응원과 축복을 받고 싶다고 했다. “손보미를 모르는 거예요? 저 사진 있어요.” 여자아이는 주머니에서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옷은 더러워졌지만 그 사진만은 깔끔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손보미가 그녀의 마음속에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도아린은 사진을 받아들었다. 그 사진은 손보미가 청호상 시상식에 참석했을 때의 인터뷰 장면이었다. 사진 속 손보미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비록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었다. 배건후의 편애를 받는다는 건 세상을 가진 것과 다름없으니까. “나 이 사람 알아.” 도아린은 사진을 여자아이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근데 지금 여기에 없어.” “있어요!” 여자아이는 목소리를 높였다. “스케줄에 오늘 여기서 촬영한다고 나와 있었어요!” 도아린은 여자아이가 스케줄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차분하게 설명해 주기로 했다. “맞아, 오늘 여기서 촬영했어. 그런데 반 시간 전에 보육원에서 누가 보고 싶다고 해서 먼저 갔어.” 여자아이는 잠시 멍하니 서 있더니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희망의 집 맞죠? 저를 빨리 희망의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도아린은 그녀의 간절한 부탁에 못 이겨, 결국 그녀를 희망의 집 보육원으로 데려갔다. 여자아이는 연락처를 남길 새도 없이 차 문을 열고 대문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문을 지키던 경비 아저씨는 여자아이를 알아본 듯 문을 열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도아린은 네 대역을 하지 않을 거야.” “아린 씨가 내 대역을 안 한다면, 왜 일부러 날 찾아와서 소란을 피운 거야? 대중 앞에서 나랑 자수를 비교하겠다고 나서더니...” 남자의 눈빛이 점점 더 차가워지자 손보미는 점차 말을 잃고 입을 닫았다. 차 안의 공기는 점점 더 무겁게 가라앉았고 담배 연기가 짙게 퍼져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결국 우정윤이 나서서 말했다. “손보미 씨, 이제 들어가셔야 합니다. 저기 율이라는 소녀가 아직 기다리고 있는데 그 아이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손보미는 마스크를 쓰고 눈에 눈물을 매단 채 안쓰럽고 가엾은 모습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녀가 내리자마자 우정윤은 참다못해 투덜거렸다. “대표님께서 서둘러 촬영장에 간 건 사모님께서 공개적으로 망신당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는데, 마치 손보미 씨를 응원하러 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배건후는 한숨을 내쉬며 담배 연기를 뿜어냈지만, 속에 쌓인 답답함은 털어낼 수 없었다. “우 비서가 보기엔 내가 손보미를 두둔하는 것 같나?” “사모님께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묻지도 않고 그저 그분께 일이 생명보다 중요한지 따지셨잖아요. 사모님뿐만 아니라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물어봤는데.” 그가 묻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도아린이었다. 하지만 도아린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비웃듯 바라봤을 뿐이었다. 손보미가 그 순간 말을 잇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대로 얼어붙었을 것이다. 우정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보스는 사업에선 천재지만 감정 문제에서는 정말 어설프다고. “예전에 사모님께서 좋아하시던 야생 인삼을 손보미 씨에게 준 것도 그렇고, 아가씨께서 선물한 귀걸이를 억지로 사모님에게 착용하게 해서 알레르기를 일으킨 것도 그렇습니다. 사실 사모님이 원한 건 선물이 아니라 대표님의 태도였을 겁니다.” 배건후는 미간을 찌푸렸는데 그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태도라...? 태도가 실질적으로 유용한가? 도아린은 너무 좋은 환경에서 지내
“...”성대호는 속으로 불안했지만, 보호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물러설 수 없었다. 배지유는 오빠가 이렇게 엄격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오빠가 진실을 말할까 봐 두려웠고 성대호가 더 이상 자신을 감싸주지 않을까 봐 불안했다. “오빠, 내가 정말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제발...” 배지유는 간절한 눈빛으로 배건후를 바라보며 애원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흔들며 후회하는 기색을 보였다. 배건후는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등을 돌려 걸어갔다. “대호 오빠...” 배지유는 성대호의 허리를 뒤에서 꼭 안으며, 그 틈을 타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성대호는 그녀를 품에 안고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달래주었다. “이제 그만 울어, 오빠가 있잖아. 걱정 마.” 배지유는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호 오빠, 만약 내가 앞으로 또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때도 이렇게 나를 감싸줄 거야?” “네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내가 잘 이끌어줄 거야.” 배지유는 고개를 숙이며 눈 속에 깊은 분노를 담았다. 분명 자신도 윤 여사님을 구하는 데 참여했는데, 왜 여사님은 오직 도아린에게만 감사를 표하고 양녀로 삼겠다는 말까지 한 거지? 심지어 몰래 혈액을 채취해 친자 확인까지 하다니! 다행히 어젯밤 혈액을 채취한 간호사가 자신의 친구였기에, 이 멋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도아린이 진씨 가문의 친딸일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자신이 이미 검사 자료를 바꿔치기한 걸 생각하며 배지유는 속으로 쾌감을 느꼈다. 배건후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준비하던 중, 빠르게 병원 밖으로 나가는 김지민과 그녀를 뒤따르는 손보미를 보았다. “갔는지 확인해 봐.” “병문안 다 끝났어?” “아!” 손보미는 깜짝 놀라며 헛기침을 했다. 그녀는 억지로 침을 삼키며 어색하게 해명했다. “지민이가 착각했어. 율이는 병원에 있는 게 아니라 보육원에 있어. 지금 바로 그쪽으로 갈 거
“너무 서두르지 마.” 진범준의 눈에는 가득한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아들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말고, 나중에 깜짝선물처럼 알려주자고.” “혈연관계라는 건 참 신기해요. 난 확신해요, 아린이가 바로 우리 딸이에요!” 윤명희는 기쁨 뒤에 약간의 걱정을 드러냈다. “여보, 아린이는 가족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만약 자신이 도정국의 친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많이 상처받지 않을까요?” “상처는 무슨, 오히려 사랑해 주는 사람이 네 명이나 더 생기는데 기뻐해야지!” 진범준은 윤명희의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 “여보, 이제 거의 나으니 더 예뻐졌어. 난 지금...” “바보 같아.” 윤명희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진범준은 그녀의 턱을 살며시 잡고 몸을 숙여 가까이 다가갔다. 윤명희가 정신적인 문제를 겪은 이후로, 그들은 한동안 부부로서의 친밀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문 두드리는 소리에 윤명희는 깜짝 놀라며 진범준을 밀어냈다. 진범준은 소파에서 굴러떨어지며 허리를 삐끗했고 기분도 망쳐버렸다. “누구예요?” “저예요, 도아린.” 윤명희는 급하게 머리와 옷을 정리하며 그를 째려보았다. “딸이 볼 텐데 부끄럽지도 않아요?” 진범준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가 부끄러워. 우리 부부가 사이가 좋은 걸 보면 딸도 기뻐할 거야.” 그는 문을 열었다. “넌 엄마랑 먼저 얘기 좀 해. 난 담배 좀 피우고 올게.” 도아린은 그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가지고 온 닭고기 수프를 식탁 위에 놓고 물었다. “아빠, 허리를 삐셨어요?” 윤명희는 그 질문을 넘기고 도아린의 손을 잡았다. “앉아봐. 우리 가족에 대해 얘기 좀 해줄게.” 도아린은 양딸인 자신에게 진씨 집안 이야기를 굳이 많이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진범준 부부가 해남으로 돌아가면, 자신들과의 교류도 점차 줄어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윤명희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진씨 가문이 해남에서 하는 사업부터
도아린은 주현정의 상태가 나빠진 것을 보고 급히 의사를 불렀다. 내일 퇴원하기로 했던 주현정은 다시 며칠 더 입원해야 했다. 배지유는 병실 문 앞에서 도아린을 가로막고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우리 엄마 네가 화나게 해서 쓰러진 거야. 넌 도대체 왜 들어오려는 거야? 엄마를 아예 죽이려고?” 의사도 옆에서 환자를 자극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도아린은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다음 날,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다시 주현정을 보러 갔고 복도를 걷던 중 배건후와 마주쳤다. 배건후는 병실 반대쪽에서 다가와 우정윤에게 가방 하나를 건넸다. “같은 사이즈로 한 켤레 더 사 와.” 우정윤이 가방을 제대로 받지 못해, 그 안에 있던 하이힐 한 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날렵한 6인치 힐에, 신발 끝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장식이 박혀 있었다. 누가 봐도 주현정이 신을 스타일은 아니었다. 도아린은 그 장면을 피하려다 돌아서자마자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도아린.” 도아린은 걸음을 멈추었다. 배건후가 그녀 옆으로 다가오더니 그녀가 들고 있던 보온병을 힐끗 바라보았다. “얼음물을 뿌리고 나서 이제는 닭고기 수프를 가져다 위로해? 네가 연기를 잘하는 줄은 몰랐네, 도아린.” 도아린은 미소를 지으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배건후 씨, 나도 당신이 이렇게 위선적인 줄은 몰랐어요.” “무슨 소리야.” “손보미 씨를 그렇게 애지중지하면서도, 나랑 이혼하고 손보미 씨한테 정식 명분을 주는 건 원하지 않잖아요.” 도아린은 냉정한 눈빛으로 보온병을 배건후에게 내밀며 말했다. “연기를 하려면 착하고 현명한 며느리 역할을 할 거예요. 대단한 효자시니까, 직접 가져다드려요.” 배건후는 얼굴을 찡그렸다. 도아린은 보온병을 그의 품에 던지듯이 넘기고 뒤돌아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의 손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넌 왜 안 가는데.” “배건후 씨가 애지중지하는 사람의 드레스 찾으
배지유는 상황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지만, 주현정이 말을 꺼내지 않으니 자신도 먼저 도아린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었다. “닭고기 수프를 데울게요.” 도아린은 보온병을 들고 병실 밖에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주현정은 배건후를 손짓해 부르며 말했다. “앞으로는 아린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정을 쌓아. 그 엉망진창인 사람들과는 깔끔하게 끝내고.” 배건후는 여전히 보온병에 담긴 죽에 신경이 쓰였다. 도아린은 손보미를 보러 간 것도 아니었고 아마 그녀가 입원한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우정윤이 그에게 미리 도아린의 생각을 물어보라고 제안했지만, 배건후는 또다시 도아린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보미 언니는 제 친구예요.” 배지유는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제가 해외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언니가 저를 돌봐줬잖아요.” 주현정은 그녀를 눈으로 흘기며 말했다. “네 친구는 네가 알아서 만나. 네 오빠를 끌어들이지 말고.” 주현정은 다시 배건후를 바라보며 신신당부했다. “진씨 부부는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을 굉장히 신경 써. 그룹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너는 조심해야 한다. 며칠 후 네 아빠가 돌아왔을 때 네가 진씨 집안과의 협상을 잘 마무리한 걸 알면 굉장히 기뻐할 거다. 이 기간 동안 아린이에게 잘해.” 도아린은 주현정의 말이 끝난 걸 듣고 나서야 문을 두드리고 병실로 들어갔다. “어머니, 닭고기 수프를 데워 왔어요.” 도아린의 발걸음과 함께 병실 안에 풍겨온 것은 진한 닭고기의 향기와 은은한 버섯 향이었다. 배지유는 침을 삼키며 눈치를 살폈지만 먼저 마시고 싶다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도아린도 그녀에게 수프를 권할 생각은 없는 듯, 고기 한 점을 건져내어 반 그릇의 수프와 함께 주현정에게 내밀었다. “천천히 드세요, 뜨거우니까요.” “역시 닭고기 수프가 죽보다 맛있어.” 주현정은 어린아이처럼 만족스럽게 두 그릇을 후루룩 마셨다. 도아린과 배건후는 눈을 마주치며 무언가
“오빠...” 배지유는 겁먹은 듯이 손을 놓으며 말했다. “엄마가 좀 이상해요.” 어제는 주현정이 화가 나서 쓰러졌었는데 오늘은 그 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주현정이 자신을 배려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도아린과 배건후가 떠난 후에 자신을 꾸짖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떠난 후 주현정은 오히려 퇴원 후 생일 파티 준비에 대해 얘기했다. 어젯밤의 불쾌한 일은 전혀 기억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배건후의 날카로운 눈빛이 배지유의 속내를 꿰뚫어 보듯이 바라봤다. 그 순간 배지유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손가락을 꼬며 억지로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다. 병실에는 CCTV가 있었으니 숨길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어제 도아린이 윤 여사님을 먼저 뵙고 나서 엄마를 보러 올라왔잖아요, 그래서 엄마가 좀 기분이 안 좋았던 거예요.” 배지유는 잠시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돌아와 말을 이었다.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셨을 때 내가 너무 놀라서 도아린을 살짝 밀었어요.” 배건후가 화낼까 봐 그녀는 서둘러 덧붙였다. “정말 살짝 밀었을 뿐이에요. 오늘 보니까 도아린도 멀쩡하잖아요!” 배건후는 냉정하게 물었다. “어머니가 왜 이상하다고 생각해?” 배지유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겨우 입을 뗐다. “엄마가 아까 닭고기 수프를 마실 때 좀 이상했어요... 혹시 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건후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전화를 확인한 후 받았다. “방우진을 찾았어. 바로 그 사람이 날 공격했어. 경찰이 지금 체포하러 가는 중이래.” “어디야? 위치 보내.” 배지유는 육하경의 목소리에 민감했고 방우진이라는 이름에도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녀는 서둘러 배건후를 따라나서며 말했다. “나도 갈래요!” “엄마를 돌봐.” “엄마는 유 아주머니가 돌보고 있어요. 난 꼭 그놈이 어떻게 생긴 놈인지 직접 보고 싶어요! 하경 오빠를 그렇게 다치게 한 놈 말이에요.” 배지유가 끝까
배지유는 결단을 내린 듯이 성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갑자기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끝났다. 방우진이 돌아온 것이다. 그 불량배가 분명히 자신을 폭로할 거다! 오빠가 자신이 자료를 훔쳐 그에게 넘겼다는 사실과, 손보미와 공모해 상가를 속여 넘긴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자신을 벌할까? 단지 도아린을 휴게실에 가뒀다는 이유만으로 서재에서 무릎을 꿇게 했던 오빠였다. 만약 이번 일을 알게 되면 관례 상 자신을 때릴지도 모른다.배지유는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가워졌고, 휴대폰을 꽉 쥔 채 어쩔 수 없이 온몸을 떨었다. 파란색과 빨간색 경찰차 불빛이 눈앞에 다가오자 두 명의 경찰이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다가왔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육하경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배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경찰은 육하경의 손을 잡고 잠시 침묵한 뒤에 말했다. “죄송합니다.” “놓쳤다는 겁니까?” 육하경이 놀란 듯 물었다. 그중 한 명의 경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희가 방심했습니다. 방우진을 골목에서 데리고 나오던 중, 갑자기 건물 옥상에서 난간이 떨어졌습니다. 그 난간에 동료 한 명이 맞아서 다쳤고 그 틈에 방우진이 도망쳤습니다.” “도망갔다고요?” 배지유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거의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녀의 표정은 묘하게 일그러졌고 한참 동안 입술만 떨다가 마침내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도망쳤다니... 도망쳤어...” 경찰은 그녀가 너무 충격을 받은 줄 알고 몇 마디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좋은 소식 하나를 전해주었다. 방우진이 도망치긴 했지만 난간에 달린 창살에 다리가 찔려 상처를 입었고, 경찰이 주변의 작은 병원들을 모두 수색하고 있으니 곧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배건후는 육하경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사건의 추가 정보를 물었다. 배지유는 차에 앉아 있었지만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난
도아린은 변슬기를 데리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배지유가 자신을 일부러 모욕하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이곳에 유명 스타들이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스크린에서만 보던 유명인들을 실제로 보니 변슬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두 눈으로는 전부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다소 어색하게 셔츠를 만지작거렸다.아버지가 친구를 만나러 가니 단정하게 차려입으라고 당부했지만, 변슬기는 또 소개팅 자리일 거로 생각하며 일부러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왔다.그녀는 상대가 아버지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한 모습을 좋아하길 바랐다.그러나 여기에서 음료를 나르는 여직원들조차 자신보다 더 격식 있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당황했다.“도 선생님, 저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볼품없는 거 아니에요?”도아린은 그녀의 셔츠 뒷면에 약간의 땀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제가 여분의 드레스를 준비해 놨어요. 갈아입어도 좋아요.”변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일단 아빠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각할게요.”멀리서 변우빈이 그녀를 보고 약간의 타박 섞인 눈빛을 보였지만, 곧 미안하다는 듯 설명했다.“우리 딸은 성격이 참 고집스러워.”그는 변슬기에게 손짓했고 딸이 곁에 앉자 말했다.“내가 단정하게 입고 오라고 했잖아. 그런데 일하는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하니.”변슬기는 당황스러워 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주현정이 보이자 긴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큰일 났다!’문 앞에서 배지유와 다툰 것도 모자라 이번엔 배지유의 엄마까지 만나게 됐다.지난번처럼 자신에게 온화하게 대해줄 리가 없을 것이다.“...네 딸이구나?”주현정은 마치 이해했다는 듯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지난번에 봤을 때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변슬기는 몰래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분 배지유 엄마예요.”변우빈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웃으며 소개했다.“이분은 주현정
배지유가 휠체어를 돌리자마자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배지유?”“변슬기?” 배지유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이 시간에 오다니, 연회가 거의 끝나가잖아.”변슬기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온몸에 땀범벅이었고 앞머리가 하얀 이마에 붙어 있었다.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며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감 있게 말했다.“아니야, 난 사람을 찾으러 온 거야.”이어지는 장면이 바로 도아린이 목격한 것이다.배지유는 휠체어를 움직여 변슬기의 주위를 맴돌면서 눈에 비웃음이 가득했다.“너희 집은 이번 생은 물론이고, 전생에도 이런 호화로운 사람들을 본 적 없을걸? 여기를 시장으로 착각한 거야? 아무나 데려와서 ‘내 삼촌, 내 이모’라고 하면 통할 것 같아? 여기는 모두 톱스타들이야! 너 콘서트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어?”배지유는 입을 가리며 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생활비 벌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주제에 무슨 돈으로 콘서트를 본다는 거야!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기숙사로 돌아가서 기다려. 누굴 보고 싶은지 댓글 남기면 내가 대신 사진 찍어줄게.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돈을 안 받아. 대신 너는 우리 기숙사의 1년 치 청소를 맡고 내 빨래도 다 해야 해. 속옷과 양말도 손빨래로!”변슬기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연예인 보러 온 게 아니야.”“올해 최고의 억지상은 바로 너네!” 배지유는 엄지를 세우며 비웃었다.“여긴 다 연예인들뿐이야. 네가 누굴 찾는다고 하면, 내가 직원한테 말해서 불러줄게.”변슬기는 그녀를 무시하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러자 배지유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해지며 휠체어를 몰아 변슬기에게 돌진했다.거의 부딪힐 뻔한 순간, 휠체어가 갑자기 멈췄다.화가 난 배지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도아린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네가 왜...” 도아린은 왜 자신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건가?
주현정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에 그저 화났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니 그녀의 기분만 풀어주면 도아린이 그 자리를 넘보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현정아, 사람은 성인이 아니니 누군들 실수하지 않겠어?” 배석준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내가 증명해 보일게. 나와 지유야말로 네 뒤를 든든히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그는 배지유를 찾아 그녀를 데리고 주현정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세 식구가 언론 앞에 함께 나타나기만 하면 이혼 소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배씨 가문의 재산에 끼어들 수 없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배지유가 사라진 후였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도아린이 다정하게 위로했다.“배 대표님은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못할 거예요.”“차라리 저 사람이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네.”주현정은 도아린과 함께 인파를 지나갔다.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다소 어색하게 무릎을 문지르며 이따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주현정을 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가 방해되지는 않았어?”“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내 연회에 와줘서 고마워.”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고 다가갔다. 세 사람은 원형 소파에 앉았다.“이쪽은 내 딸 도아린이야. 이분은 변우빈이라고 하고 내 가장 친한 친구야. 아저씨라고 불러.”“아저씨, 안녕하세요.” 도아린은 무심코 상대방을 살펴봤다.변우빈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배석준와 비슷한 체격이었지만 조금 말랐다. 그의 얼굴과 손에는 노동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진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변우빈은 계속 주현정의 눈을 바라봤고 주현정의 미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겨있었다.“네 딸도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주현정이 뒤를 돌아보며 묻
석 대표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앞에 휠체어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요란하게 치장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이분은...”그는 주현정이 이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첫 반응은 배석준이 다른 여자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배석준의 새로운 연인은 주현정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석 대표님, 짓궂으십니다. 방금까지도 저희 딸을 카메오로 요청한다고 하셨으면서...”배석준은 말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그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배지유를 보고 있었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배지유는 엄청 민감해서 의식적으로 치마를 잡았는데 그들이 자신의 얼굴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제야 천천히 손을 떼었다.“배 대표님 따님이 몇 명이세요?”석 대표가 물었다.“... 한 명입니다.”석 대표는 웃어 보이고는 볼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고 그가 떠나자 다른 사람들도 흩어졌다.“아빠! 저 사람들 무슨 뜻이에요?”“...”배석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영문을 알게 되었다.배지유는 휠체어에 앉아있어 시선이 막혔지만, 배석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도아린을 데리고 인사를 나누는 주현정을 보았다.그들이 칭찬하는 사람은 배지유가 아니라 도아린이었다.“지유야, 여기서 아빠를 기대려. 아빠가 가서 엄마를 찾아볼게.”그는 배지유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하고는 빠르게 걸어갔다.“주현정! 당신 지금 지유는 병원에 내버려 두고 도아린을 데리고 연회에 참가하고 있어? 당신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손님들은 배석준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자리를 피했고 주현정의 얼굴에 있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대답했다.“지유는 당신 같은 아빠만 있으면 돼요.”배석준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앞서 당신은 외부인 하나 때문에 나랑 이혼하려고 했고 이제는 이혼 얘기를 하지 않으니 각종 방법으로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고 있어. 당신이 다시 JS 픽처스를 운영하게 되었는데도 나한테 얘기
JS 픽처스의 고위인사는 배석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 또 해외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현정이의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머물다가 가려고 합니다.”배석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평소에 연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주현정이 JS 픽처스에서 지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각종 이유를 찾아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를 거부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카메라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그들은 모두 주현정 덕분에 잘 되었기에 체면은 반드시 살려주어야 했다.“크흠.”배지유는 배석준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헛기침을 했다.“아, 우리 딸이 마침 해남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배석준을 둘러싼 고위인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주현정은 배지유가 연예계의 나쁜 물을 먹을까 봐 현역일 적에 절대 배지유를 데리고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위인사들도 그저 주현정에게 딸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본 적은 없었다.반응이 빠른 누군가가 술잔을 들며 공손하게 말했다.“따님은 주 대표님과 배 대표님의 우수한 점을 다 닮으셔서 단정하고 청초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새로 영입한 신인보다 예쁘신 것 같습니다.”“맞아요. 해남대학교의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시니 예쁘시고 학식도 많으시네요. 지금 업계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인재를 제일 좋아합니다!”배지유는 칭찬을 듣고 얼굴이 발그레해졌고 그녀는 두 손으로 팔걸이를 잡고 살짝 몸을 앞으로 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삐끗해서 일어서서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네요.”“별말씀을요. 발을 삐끗하면 잘 치료해야 해요. 젊고 예쁘신데 후유증을 남기면 안 되죠.”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배지유의 마음속에서는 저주로 들렸다.그녀는 발 한쪽을 다친 게 아니라 다리 하나를 잃었다. 나머지 생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배석준은 배지유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가 난리를 피울까 봐 얼른 다른 곳으로
주현정은 말투가 가라앉았고 표정이 엄숙했다.“남자의 내연녀로 이십몇 년을 있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어른이 화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나. 도아린의 양아버지는 양어머니의 혼수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했어.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딸의 효도를 받을 자격 없어!”현장에는 여자 연예인들도 많았다.같은 딸의 마음으로 이렇게 심란한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그들은 도아린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아린이 양어머니를 위해 복수를 했다고 여겼다.강홍련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아린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방금 자신의 말이 강씨 가문에게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웠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도아린은 단호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강씨 어르신은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씨 어르신께서 좋은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주었는데 당신은 밖에서 어르신의 명성이나 흐리고 다니면 안 되죠. 농부와 뱀의 이야기를 재희 씨도 들어봤을 거로 생각해요.”도아린은 강씨 어르신의 편에 섰는데 강재희는 반박할 수 없었다.여론에서 아버지의 대회에 흑막이 있다는 일로 들끓던 것이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강홍련 저 멍청이 때문에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주현정은 도아린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제 딸이고 JS 픽처스의 후계자예요. 강씨 가문에서 이렇게 제 딸을 치욕스럽게 하다니, 저희 협력은 앞으로 계속하지 않을 생각입니까?”강재희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녀는 도아린이 연회에 참가한 것은 단지 주현정과 예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주현정이 도아린을 딸로 삼고 JS 픽처스의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만약 도아린과 모순이 격화된다면 앞으로의 협력에는 장애가 생길 것이다.“강홍련 씨, 사과해요!”강홍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재희는 지금 자신을
도아린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진열대에 있는 다이아몬드의 빛이 꺾이어 그녀의 눈동자를 비춰 유독 눈부셨다.강홍련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강홍련은 도아린보다 머리 하나쯤 작아서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바라보았는데 도도한 척하는 모습이 광대 같았다.“네가 JS 픽처스에게 ‘봉황의 시대’를 광고하도록 넘겼는데 강씨 가문의 고급 주얼리들은 모두 JS 픽처스의 연예인들이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어. ‘봉황의 시대’와 JS 픽처스의 연예인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봉황의 시대’가 강씨 가문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테지.”이게 바로 연예인을 찾아 광고하는 이유였다.예를 들어 어떤 톱스타가 운동화의 모델이 되었다면 그가 나타났을 때 팬들은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알게 된다. 따로 브랜드를 찾아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도아린은 도덕과 재능을 겸비한다는 말로 강씨 가문에게 치욕을 안겨주었지만 결국은 강씨 가문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강씨 가문에서 이득을 보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도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는 강씨 가문의 사촌이야!”강홍련은 불쑥 얘기했다.“강씨 가문에서 손보미를 밀어준다면 배건후와 결혼할 수 있어. 강씨 가문에서 안씨 가문을 지지한다면 내 아들은 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거야!”“그래서요.”강홍련은 도아린이 모른 척할 줄 몰랐고 그녀의 코에 대고 얘기했다.“그래서 나한테 잘하라고. 그러면 강씨 가문에서는 네가 해남에서 살아나갈 기회라도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대회 성적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너를 디자인 업계에서 쫓아내는 것도 일이 아니지. 내 삼촌 강태식은 이 바닥을 꽉 잡고 있어. 내 삼촌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야. 너의 ‘봉황의 시대’도 잘난 척할 거 없어. 언론에서 만들어준 것뿐이야. 만약 삼촌의 학생들이 다 그게 별로라고 얘기한다면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거야!”많은 손님이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강홍련의 지나친 말에 시선을 두
“아빠가 방법을 대서 가볼게. 너는 오지 마.”배석준은 배지유가 걱정되었다. 지난번에 배지유가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도 돌아와서 다리가 아파 잠이 들지 못했다.배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애원했다.“제 친구들은 제가 아직 안에 갇혀있는 줄 알아요! 아빠랑 제가 함께 엄마의 연회에 간다면 매체에서는 저희 세 식구의 화목한 모습을 찍게 될 것이고 소문들은 자연스레 사그라질 거예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딸의 명성은 도아린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돌이킬 방법을 계속 찾지 않는다면 배지유가 해남대학교로 돌아갔을 때 반드시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당할 것이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메이크업과 코디를 해줄게.”배석준이 데리고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지민이었다.김지민은 연예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 참석하는 연예인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알아냈다. 배지유는 똑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됐고 다리의 흉터를 가릴 수 있으면서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했다.이 부분에서 김지민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배지유는 만족스럽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그녀의 치마를 들지 않는 이상 그녀가 다리 하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발을 삐끗해서 휠체어를 탔다고 하면 될 것이다.이런 장소에 김지민은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므로 부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연회장의 중심에는 도아린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고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는 현장에 있는 연예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여자의 아름다움이 너무 지나쳤다.연예계의 스타들은 자주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에 참가하므로 어떻게 분위기를 휘어잡는지를 잘 알고 자신이 어느 각도에서 가장 예쁘게 찍히는지도 알고 있었다.도아린은 처음 보는 얼굴이고 업계에 대해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 자신감이 넘쳤다.그녀가 스크린 앞으로 가서 사인할 때 스크린에는 ‘봉황의 시대’의
도아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녀의 덤덤한 눈빛은 ‘라윤주’의 이름을 듣고 초점을 잃었다.“뭐라고요?”“...”육하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가 육하경이 말을 이었다.“향 주머니로 화를 면한 것은 우연이에요. 정말 저를 도왔던 것은 세인트존스 호텔의 책임자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죠.”육하경은 입꼬리를 올려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어르신들을 3일이나 괴롭혀서야 알아냈어요. LY에서 저를 후임자로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육하경의 학업은 각 부분에서 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육씨 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빽빽이 필요했다.육민재를 예로 들어보면 능력은 가장 뛰어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맏아들의 장손 혈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최고로 좋은 자원과 경험을 쌓을 기회들을 누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그는 육씨 가문의 후계자일 것이다.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려면 모든 게 알맞게 부합되어야 한다.육하경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었고 육씨 가문의 산업에 기대를 두지 않아 오랜 시간 밖에서 떠돌며 공부를 했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세인트존스 호텔의 관리 권한이 그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놀란 마음으로 육하경은 전임자를 찾아갔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야 LY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육씨 가문 뿐만 아니라 많은 명문가가 LY와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인재를 추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었기에 자연스레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육하경은 그때 손에 향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전임자가 이상해하며 무늬를 찍어서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추천서’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경 씨가 말하는 그 이야기에도 관심 없습니다.”도아린은 책을 육하경에게 돌려주고는 차 문을 열었다.“도아린 씨!”육하경은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손을 허공에 멈추고 결국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육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