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유는 결단을 내린 듯이 성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갑자기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끝났다. 방우진이 돌아온 것이다. 그 불량배가 분명히 자신을 폭로할 거다! 오빠가 자신이 자료를 훔쳐 그에게 넘겼다는 사실과, 손보미와 공모해 상가를 속여 넘긴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자신을 벌할까? 단지 도아린을 휴게실에 가뒀다는 이유만으로 서재에서 무릎을 꿇게 했던 오빠였다. 만약 이번 일을 알게 되면 관례 상 자신을 때릴지도 모른다.배지유는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가워졌고, 휴대폰을 꽉 쥔 채 어쩔 수 없이 온몸을 떨었다. 파란색과 빨간색 경찰차 불빛이 눈앞에 다가오자 두 명의 경찰이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다가왔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육하경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배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경찰은 육하경의 손을 잡고 잠시 침묵한 뒤에 말했다. “죄송합니다.” “놓쳤다는 겁니까?” 육하경이 놀란 듯 물었다. 그중 한 명의 경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희가 방심했습니다. 방우진을 골목에서 데리고 나오던 중, 갑자기 건물 옥상에서 난간이 떨어졌습니다. 그 난간에 동료 한 명이 맞아서 다쳤고 그 틈에 방우진이 도망쳤습니다.” “도망갔다고요?” 배지유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거의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녀의 표정은 묘하게 일그러졌고 한참 동안 입술만 떨다가 마침내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도망쳤다니... 도망쳤어...” 경찰은 그녀가 너무 충격을 받은 줄 알고 몇 마디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좋은 소식 하나를 전해주었다. 방우진이 도망치긴 했지만 난간에 달린 창살에 다리가 찔려 상처를 입었고, 경찰이 주변의 작은 병원들을 모두 수색하고 있으니 곧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배건후는 육하경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사건의 추가 정보를 물었다. 배지유는 차에 앉아 있었지만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난
여자는 도유준을 끌고 도아린에게 다가가더니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저 여자가 신은 신발을 신어보고 싶어요.”도아린이 뒤를 돌아보며 무심한 시선으로 도유준을 한번 훑고, 곧바로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저번 경마에서 돈을 딴 후 두 배로 돌려준 그 김영실이 자신의 딸이 얼마나 우수한지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도아린은 그때 봤던 사진 속의 이마에 난 점을 떠올렸다.“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죠. 이 신발은 제가 먼저 고른 거예요.” 도아린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먼저 봤다 한들, 살 수 있어요?” 이나윤은 명품 가게에서 신발만 신어보고 사진 찍어 SNS에 올리며 허세를 부리는 가짜 상류층들을 제일 싫어했다. 도유준이 말하길, 그의 누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3년 동안 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의 옷차림을 봐서는 평범한 사람과 결혼했을 게 분명하니, 방금 사진을 찍은 것도 그저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도아린은 의자에 앉아 발을 올리고 신발을 감상하며 말했다. “이렇게 비싼 신발, 당연히 신어보고 편하면 살지 말지 결정해야죠.” 이나윤이 비웃으며 말했다. “이건 한정판이에요. 돈 있다고 누구나 살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녀는 판매원 쪽을 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내 기억에 한정판은 경매로 살 수 있죠? 두 배로 부를게요.”도아린은 도유준을 쳐다보며 말했다. “계산하는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도유준은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정국이 준 카드는 대부분 이나윤을 위해 썼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를 부모님께 소개하지 않았다. 오늘도 겨우 상가로 그녀를 달랬는데 도아린이 또 상황을 망치려 하고 있었다. 도유준은 가격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6000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는데 카드에 남은 돈이 부족했다.“그만해, 나윤아. 저쪽에 더 좋은 것도 있어.” 도유준은 이나윤의 어깨를 감싸려 했지만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이나윤은 도아린을 비웃으
만약 여기가 공공장소가 아니었다면 이나윤은 당장 도아린을 죽여버리고 싶었다.판매원은 더욱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이나윤에게 신발을 내밀었다.“앉으세요, 제가 직접 신겨드릴게요.” “필요 없어요! 집에 가서 소독한 다음에 신을 거예요. 저 여자가 무좀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이 사이즈 맞으시나요? 경매로 구입한 한정판은 교환이나 환불이 안 됩니다.” 판매원이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이나윤은 이미 도아린에게 크게 화가 나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짜증스럽게 카운터를 두드리며 말했다. “산다고 했으니 당연히 맞죠. 더 말 많으면 고객센터에 의견 제기할 테니까 알아서 해요!” 이나윤은 화를 내더니 도유준을 노려보았다. “이 신발 사주면 부모님께 널 소개해 줄 생각은 해볼게.” 이나윤은 절대 바보가 아니었다. 단순히 도아린과의 감정싸움 때문에 2억을 쓰는 일은 없었다. 이 일이 도유준 때문에 시작됐으니 당연히 그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유준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그는 도아린이 몹시 미웠다. 그저 신발 한 켤레일 뿐인데 이나윤에게 양보했더라면 2억을 쓰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다. 문제는 그에게 그만한 돈이 없다는 것이다.도아린은 카운터 옆에 기대어 앉아 손가락으로 리듬을 타며 도유준이 당황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도유준은 마음을 굳히고 도정국이 준 4억 원의 창업 자금을 꺼냈다. “나윤아, 한 번 신어 보는 게 어때?”혹시라도 맞지 않으면 돈을 아낄 수 있으니까.이나윤은 그의 손에서 카드를 빼앗아 판매원에게 건네며 말했다. “내 발 사이즈는 내가 제일 잘 알아.” 판매원은 이번 달의 보너스를 벌게 되어 기쁜 나머지, 즉시 결제를 하고는 매장 매니저까지 불러 와 함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신상품이 들어왔을 때 우선적으로 연락드릴 수 있습니다.” 이나윤은 씩씩거리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빠르게 적어 판매원에게 건넸다.
도유준의 이마엔 땀이 맺혔다. 그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나윤아...” “쓸모없는 놈!” 이나윤은 힘껏 발을 내디뎠고 신발은 억지로 들어갔다. “아!” 도유준의 손가락이 뾰족한 굽에 깔려 아파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나윤은 신발이 맞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도아린 앞에서 일부러 발을 꾹꾹 굴렀다. “정말 편하네요. 미안해요, 아끼던 걸 뺏어서.” 이나윤은 도유준의 팔을 끌고 의기양양하게 자리를 떠났다.“너 간 줄 알았어.” 소유정이 전화를 걸어 도아린을 찾았고 그녀는 벨 소리를 따라왔다. 도아린은 2000만 원짜리 상품권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작은 돈 좀 벌었어. 너 옷 사줄게.” “정말?” 소유정은 도아린의 목에 팔을 감고 눈웃음을 지었다. “역시 너는 사업 수완이 있어.” 도아린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도정국에게서 책임을 묻는 전화가 걸려 왔다. 도유준이 집에 돌아가서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도아린이 억지로 여자 친구에게 신발을 사게 했고 일부러 가격을 올렸다고. 결국 그는 베이커리 창업 자금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유준이가 네가 그 매장의 VIP 회원이라고 하던데, 그 신발을 어떻게든 반품해 봐.” “그 신발은 이미 도유준 여자 친구가 신고 쇼핑했어요. 재판매 불가라서 환불은 어려워요.” 도아린은 문을 열며 머리로 휴대폰을 고정시킨 채 신발장을 뒤졌다. 집안은 불이 꺼져 있었다. 배건후는 아마 오늘도 집에 오지 않았나 보다. 집에 없는 게 차라리 좋았다. 그녀는 이 조용함이 마음에 들었다. “도대체 어떤 신발이 2억이 하냐? 다이아라도 박혔어? 네 동생이 겨우 여자 친구를 사귄 건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를 해? 도아린,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야!” 도아린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 신발 내가 먼저 본 거고, 그 여자가 높은 가격을 불러서 뺏어간 거예요. 도유준은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자기 돈을 다 썼죠. 제가 뭐 어쩌겠어요?” “유준이 여자 친
좋은 마음으로 그를 도와서 유럽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손보미와도 잘 되게 했지만, 어찌 그는 자신의 이런 마음도 몰라주고 이상한 말만 하고 있다.“말해봐요. 이혼한다고 하면 제가 어떻게 도와줄까요.”병원에서 손보미의 곁을 지키지도 않고 회사에서 야근도 하지 않고 배건후가 지금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그녀에게 요구를 제시하고 싶은 게 뻔했다.분명 본인이 먼저 부탁할 사안이 있으면서도 저렇게 도도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남자의 자존심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배건후는 그녀의 손에 들린 백 팩을 보고 차갑게 웃었다.“짐은 아직도 갖고 오지 않고 옷만 몇 견지 들고 와서 자고 가고, 여기가 호텔인 줄 알아?”도아린은 그를 흘겨보았다. 3년 동안 그녀는 집을 자주 나갔었다. 배건후는 한 번도 잡은 적이 없었고 항상 도아린 스스로가 견디지 못해서 돌아오곤 했다. 언제부터 그는 그녀가 짐을 갖고 들어와서 머무는지 짧게 머물다 가는지를 신경 썼는지 모를 일이다.이렇게 쓸데없는 말들을 하는 건 도아린에게 그녀가 을이라는 것을 깨우쳐주면서 배건후의 말을 순순히 따르라는 의미였다.도아린은 가방을 소파에 던지고는 한숨을 쉬었다.“건후 씨, 우리 오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눠봅시다. 어때요?”배건후는 위를 꾹 누르면서 귀찮다는 표정이었다,“위가 쓰려. 말할 기분 아니야.”“...”도아린은 배건후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그녀는 주먹을 쥐고는 타협하듯 말했다.“뭘 좀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요?”“한번 시도해봐.”배건후가 뜨뜻미지근하게 말했다.‘시도는 무슨!’영양 밥상 같은 건 절대 다시 만드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면 배건후는 화를 낼 게 분명했다.하지만 배건후는 얘기를 할 마음이 없고 얘기를 하려면 반드시 자신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도도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도아린은 열심히 감정을 조절했다. 배건후가 순순히 합의이혼을 해준다면 더 참을 수 있다.도아린은 뒤돌아 주방으로 갔다. 지난 이틀간 그녀는 집에서 식사하
배건후는 도아린의 손에서 열쇠를 갖고 먼저 운전석에 올라탔다.도아린이 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는 경적을 울렸다.“왜, 내 말에 속이 뜨끔했어?”도아린은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라타서 안전띠를 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배건후의 눈빛이 부드러워졌고 핸들을 돌리는 손짓조차 음악에 따라 움직인다고 느꼈다.맨션의 부근에 마트가 있지만, 배건후는 도아린을 데리고 멀리 있는 큰 백화점으로 갔다.도아린은 카트를 밀며 앞에서 걷고 있었고 배건후는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느릿느릿 뒤따라오고 있었다. 백화점 안의 마트는 최근에 다시 리모델링해서 상품의 종류가 많았고 도아린은 한참을 돌아다녀도 채소와 과일을 파는 구역을 찾지 못했다.뒤에서는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는 거야? 내가 네 남자라고 자랑하고 싶어?”“건후 씨,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다른 곳에 돌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린은 가소롭다는 듯 입을 삐죽거리며 채소 구역으로 갔다.감자, 당근, 버섯, 새우...배건후는 카트에 담긴 채소들이 모두 그가 주문한 음식 재료들이 아닌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도아린, 귀가 먹은 거야 아니면 일부러 나 골탕 먹이는 거야? 네가 나한테 부탁할 입장이라는 거 잊지 마. 이런 식으로 하면 나는 절대 사인 안 해.”도아린은 뒤돌아 그를 보았다.“나는 귀가 먹지도 멍청하지도 않아요. 더 투정 부린다면 음식에 독을 풀어서 벙어리로 만들어 버릴 거예요.”“...”배건후는 화가 나서 위가 뒤틀렸다.이런 소리를 하다니, 도아린은 겁을 상실한 게 분명했다. 배건후는 위를 어루만지다가 뒤돌았는데 도아린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는 진열대의 끝에 멈춰 섰다. 작은 스크린에서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는 손보미가 보육원의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아이들의 심리 건강에 신경을 써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전에 도아린이 부딪혔던 여자아이는 손보미의 곁에 딱 붙어있었다. 자신의 보고
도아린은 건들거리며 자리에 앉아 일부러 면치기를 요란하게 했다.가지 못하게 한다면 그의 비위를 상하게 할 속셈이었다.배건후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불쾌한 게 확실했지만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고 우아하게 식사를 했다.도아린은 면치기도 하고 쩝쩝거리기도 하면서 식사를 마쳤지만, 배건후는 화를 내지 않았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도아린은 먼저 식사를 마치고 포크로 달걀을 건져서 먹었다.“식사는 괜찮아요? 이제 얘기를 나눌 수 있겠어요?”배건후는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검은 눈동자와 긴 속눈썹은 정말 수려했다.껍데기는 이렇게 잘생겼는데 차라리 벙어리였으면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다. 그녀의 시선이 너무 뚫어지게 그에게로 향한 탓인지 저녁 식사가 맛있었던 덕분인지 배건후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우아하게 입을 닦았다.“다 봤어?”도아린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진씨 가문이랑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거예요?”배건후는 시선을 내리고 한참 지나서야 대답했다.“이혼 빼고 다른 요구는 아무거나 해도 돼.”도아린은 손이 떨리며 포크로 집었던 고기 부스러기가 다시 육수로 떨어졌다.“건후 씨, 당신 마음속에는 손보미뿐이잖아요. 왜 나를 당신 사모님 자리에 두지 못해서 안달인 거예요?”“4000억을 갖기 싫은 거야?”배건후가 차갑게 웃었다.“돈을 제일 좋아하는 거 아니야? 지금은 돈이 별로 아쉽지 않은 게 진씨 가문이 있어서 그래? 진씨 가문의 수양딸이 된다고 해서 그 가문의 재산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어서 나와의 관계를 공개하고 이 기회를 빌려 손보미를 망가뜨려 다시는 복귀 못 하게 할 생각인 거야?”도아린은 포크를 그릇에 떨어뜨리고는 비웃으며 말했다.“배건후, 내가 당신과 비밀결혼이라고 해도 이 바닥에서 아는 사람이 있어. 당신과 손보미의 스캔들에 대한 소문이 자자한데 그 사람들이 다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들이 당신을 가지고 뭐라 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손보미 씨한테 태클을 걸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
도아린이 담담하게 말했다.“손보미에게 새 사람이 생겼죠? 그래서 지금 나한테서 당신의 자리를 찾으려는 거죠?”3년 전, 감정과 알코올의 힘에 그녀는 방을 잘못 들었었다.하지만 배건후는 정신이 또렷했다. 그는 분명 오해가 있는 걸 알면서도 강제로 그녀와 관계를 맺었다.그러니 이 남자의 진심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첫사랑한테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와중에 다른 여자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쓰레기 같은 자식!’배건후는 차갑게 웃었다.“내 자리를 찾는다고? 내가 네 생활의 전부잖아? 너는 내가 입고 먹고 이동하는 모든 것을 다 참견하는 데 욕구도 해결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도아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붙어오는 단단한 가슴팍을 느끼며 도아린은 상대방의 눈빛 속에서 이게 농담인 건지 벌을 내리는 건지 분별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두려운 기분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도아린은 빠르게 뒤로 물러서면서 등이 문에 세게 부딪혔다. 그 바람에 문이 갑자기 열렸고 배건후가 그녀의 허리를 잡아준 덕분에 뒤로 넘어지지 않았다.배건후는 그녀를 끌어안고 침대로 다가갔다.“입으로는 싫다고 하면서 몸은 아주 순종적이네.”도아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격렬하게 발버둥을 쳤다.두 사람은 함께 침대에 쓰러졌고 배건후는 그녀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도아린은 무척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배건후의 손을 잡았다.“배건후, 이혼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내가 좋아져서야?”배건후는 행동을 멈추고 비웃듯 대답했다.“진씨 가문과의 합작을 위해서 그런다는 거 너 알고 있잖아. 진씨 가문에서는 부부 사이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 힘을 들여서 스캔들을 무마하는 것보다는 부부 금실이 좋다는 허상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지.”도아린은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배건후를 자극하려는 의도였지만 그의 해명을 들었을 때는 그래도 마음이 아팠다.“진씨 가문은 금방 연성에 왔어. 진씨 가문 이전에는 조씨 가문이 있었어... 명문가에서는 모두 부부 사이가 화목하지 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