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 내가 믿어봤자 진 대표님께서 너를 믿어줄 것 같아? 너희 오빠는 믿어줄 것 같냐고.”배지유는 아무 말 없이 이를 깨물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왜 또 도아린이야! 왜 나랑 죽고 못 살아서 안달인데?’도아린이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구급차만 불렀다는 사실을 알 사람이 없었다.배지유가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다면 윤명희는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왜 도아린은 한것도 없이 칭찬받아야 하는데? 왜 나는 좋은 일을 하면서 욕을 먹어야 하는데?’성대호는 배지유의 악독스러운 표정을 보지 못한 채 부드럽게 위로했다.“오빠 말 들어. 내일 진 대표님께 잘 설명해 드려. 그래도 네가 구급차를 불러드렸잖아. 사모님 은인이나 다름없는 거지. 나이도 어린 네가 먼저 사과를 해야지. 나중에 모건 그룹이 진씨 가문과 손잡으려면 어색한 관계로 남지 말아야지. 아린 씨가 두 집안을 이어주는데 너도 큰 역할을 했어.”배지유는 전화를 끊고 한참 망설여서야 1층으로 내려갔다.속으로 내키진 않았지만 성대호가 한 말이 일리있다고 생각했다.윤명희를 위해 구급차를 불러준 것도 사실이고, 배지유가 들어갔을 때 도아린이 휴게실에 있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도아린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가 윤명희를 살려준 사실도 몰랐고, 일부러 그 공을 빼앗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그 카드를 진범준한테 돌려주면서 어쩌면 배건후와 손잡는 것을 한 번만 고려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되면 도아린이 윤명희의 생명 은인이라고 해도 자기가 모건 그룹의 귀인이 될수 있었다.배지유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윤명희의 병실로 향했다.문을 두드리려고 했을 때, 병실 안에서 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서희랑 닮지 않았어요? 우리 세은이 맞죠?”윤명희는 진범준의 옷깃을 잡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진범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조카가 고모를 많이 닮는다고 하는데 진세은은 어릴때 동생 진서희와 판박이와 다름없었다.최근 몇 년 동안 이목구비가 비슷
진범준은 배지유의 말뜻을 바로 알아차렸다.도아린을 위해 해명하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 도아린이 상식이 없다고 비웃고 있었다. 윤명희의 생명 은인은 자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저희 아내를 살려주셨기 때문에 이 카드를 가지셔도 됩니다.”배지유는 마음이 혹하긴 했지만 양심상 고개를 흔들었다.“아닙니다. 저희 오빠가 제가 새언니 공을 빼앗은 걸 알면 저를 욕할지도 몰라요.”윤명희가 나지막하게 물었다.“오빠가 새언니한테 잘해줘요?”“네. 새언니 어머님께서는 둘째를 낳는 도중에 돌아가셨고, 동생은 3살 되던 해 장애인이 되었고 10살 되던 해 건물에서 뛰어내리다 지금은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누워계세요. 의료비는 저희 오빠가 계속 지원해 주고 있고요. 아저씨 디저트 가게도 오빠가 차려준 거예요.”배지유는 말하면서 계속 테이블 위에 있는 블랙 카드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성대호의 말이 맞았다. 잘못을 인정하면 공을 빼앗았다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또 블랙 카드를 계속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배지유를 통해 도아린에게는 부모님도, 남동생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로써 친딸일 확률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진범준은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배지유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배지유 씨, 이런 걸 알려줘서 고마워요. 블랙 카드는 저희 성의니까 받아주세요.”배지유는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바로 블랙 카드를 챙겼다.“감사합니다. 진 대표님, 내일 저희 새언니랑 쇼핑하러 가려고요. 평소에 별로 꾸미지 않거든요.”배지유가 병실을 떠나려고 할때, 진범준이 담담하게 말했다.“그 카드는 임시로 쓰는 카드에요. 해남으로 돌아가면 없애버릴 거니까 배지유 씨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사세요.”배지유는 멈칫하고 말았다.임시 카드를 선물하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진씨 가문이 정말 통이 큰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야박할 줄 몰랐다.배지유는 얼른 명품백 사러 가고 싶었다.“감사합니다. 진 대표님, 사모님, 안녕히 주무세요.”배지유는 나가면서
육하경은 반응할 새도 없었다.피하는 건 불가능했고, 최대한 몸을 피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등에 맞고 말았다.목에서는 쇳내가 풍겨왔다.야구방망이가 또 한 번 날아오자, 육하경은 앞구르기로 공격을 피했다.상대방은 야구모자에 마스크까지 하고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그는 육하경의 손을 쳐다보더니 또 공격하려고 했다.육하경은 그래도 무술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두렵지는 않았다.다대일은 몰라도 일대일에는 자신이 있었다.육하경이 야구방망이를 빼앗고 발로 걷어차는 바람에 상대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이 드레스를 빼앗으려고?”육하경이 슬금슬금 다가가면서 물었다.“누가 보냈어.”상대는 고통스럽게 배를 끌어안고 있었다.육하경은 다가가 그의 목덜미를 잡은 채 야구모자와 마스크를 벗겼다.상대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이때, 코를 자극하는 냄새와 함께 육하경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마이바흐 한 대가 길에서 달리고 있었다.가로등 때문에 차 안은 밝아졌다, 우두워졌다하고 있었다.배건후는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다 동작을 멈췄다.“어떻게 나왔어.”도아린은 그제야 배건후가 어떻게 휴게실에서 나왔는지 묻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걸어서요.”“똑바로 말해.”“말해봤자 믿어줄 거예요?”“일단 말해봐.”도아린은 피식 웃고 말았다.“아가씨가 저를 의무실로 유인하려고 했어요. 제가 싫다고 하니까 핸드폰을 빼앗았고, 갖고 싶으면 휴게실로 따라오라고 했어요. 제가 방심하고 있을 때 휴게실 문을 밖에서 잠가버렸고요. 문을 한참 두드렸는데 열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다 어떤 아줌마가 바닥에 기절해 있는 것을 발견했고요.”배건후가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모르는 사람을 구해준 거야? 상대방이 심장병을 앓고 있거나 다른 병을 앓고 있었으면 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다고. 윤 사모님이 목에 캔디가 걸렸기 다행이지. 응급조치에 실패했으면 책임을 져야 했을 수도 있다고.”‘말하지 말 걸 그랬네. 어차피
조수현이 후시경으로 보면서 말했다.“대표님 핫스팟을 연결하면 되잖아요.”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배건후와 말 섞기 싫어서였다.배건후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핫스팟을 켜주려고 할때, 성대호한테서 연락이 왔다.“하경이한테 일이 터졌어. 지금 나리 병원에 있는데 와봐야 할 것 같아.”...육하경은 혼미한 상태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뒤통수가 계단에 부딪혀 아직 의식불명의 상태였다.이제 막 위임을 받았는데 육하경의 부모님은 애가 탔다.육하경의 부모님은 육하경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고 회사 고위층들이 질투 나서 일부러 복수하는 줄 알고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다.경찰은 CCTV를 조회하다 상대방이 육하경의 지갑을 훔쳐 간 것도 모자라 여성용 드레스까지 훔쳐 간 것도 확인했다.“대호야, 아저씨한테 솔직하게 말해봐. 하경이 여자친구 있어?”육영수는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단순한 도둑질이 아니라 육하경의 여자친구가 방탕하여 누구를 잘못 건드렸다고 생각했다.성대호는 뻘쭘해하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아저씨, 하경이 오빠 여자친구 없어요.”배지유는 연락받고 급히 달려오는 바람에 콧등에 땀이 맺혀있었다.“있어요.”육하경의 엄마인 황은숙이 옆에서 흐느끼면서 말했다.“저번에 장례식장을 갔을 때 향낭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어요. 하경이가 어떤 귀여운 여자한테서 선물 받은 거라고 했어요. 계속 그 향낭을 보면서 멍때리고 있더라고요.”“향낭이요? 누가 선물한 향낭인데요?”배지유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물었다.이때 성대호가 조용히 하라면서 그녀를 말렸다.“아저씨, 아줌마. 걱정하지 마세요. 하경이가 괴롭힘 받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거예요. 건후도 지금 오는 길이에요. 경찰분들이 하루빨리 범인을 잡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거예요.”몇 분 뒤, 응급실 문이 열리면서 의사 선생님이 걸어 나오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어떻게 되었어요?”“환자분 두개골에 피가 고여있긴 하지만 출혈은 많지 않아서 생명의 위험은 없는 상태입
육하경은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있을 때, 배지유가 뒤에 서 있던 도아린을 잡으면서 불쾌하게 말했다.“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을거야.”도아린이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배지유는 병실 문이 닫히기까지 기다렸다가 계속해서 말했다.“도아린. 엄마를 죽이고 동생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버린 것도 모자라 우리 집에 시집와서 우리 엄마 건강까지 악화시켰잖아.”배지유는 냉랭한 눈빛으로 도아린을 쳐다보았다.“하경이 오빠도 너를 잠깐 도와줬다는 이유로 저렇게 누워있잖아. 넌 정말 팔자가 사나운 여자야.”도아린이 배지유의 눈을 쳐다보면서 한마디 한마디 내뱉었다.“하경 씨가 너때문에 다친 거라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배지유는 멈칫하고 말았다.그녀는 도아린이 자신과 방우진의 관계를 모를 줄 알고 고개를 뻣뻣하게 쳐들면서 말했다.“누가 누구를 가만두지 않을지 두고봐!”이때 배건후와 성대호가 멀리서 걸어오는 것을 보고 배지유는 냉큼 달려가면서 말했다.“오빠, 그 깡패 새끼 얼굴을 봤어요?”“깡패 새끼인지 어떻게 알아.”배건후의 눈빛은 어두워지고 말았다.“내가 아까 지유한테 알려줬어.”성대호가 핑계를 대줬다.“나도 짐작만 했을 뿐이야. 아무리 그래도 회사 고위층 사람들이 대놓고 하경이를 해쳤겠어?”배지유는 침을 삼키고 말았다. 성대호가 무언의 눈빛을 보내오자 더는 뭐라 할수 없었다.배건후는 병실 앞에 서있는 도아린을 발견하고 다가갔다.“날 기다리고 있었어?”도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지유가 불안해하는 표정을 보고 무조건 이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배건후는 자연스럽게 도아린의 허리를 감싸고 함께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간호사분은 육하경에게 환자복을 갈아입혀 주고는 그의 옷을 들고 나가려고 했다.바로 이때, 주머니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굴러서 배건후의 발 옆에 떨어졌다.자수가 새겨진 향낭이었다. 중간이 조금 벌어져 안에 있는 향이 드러났다.도아린은 몸이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아무렇지 않게 준 선물을 육하경이 계속 가지고
“얼마나 큰 사고를 쳤는지 알아?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고! 경찰이 날 잡아가면 모든 걸 불어버릴 거야.”방우진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시계 괜찮더라고. 이걸로 나한테 빚진 이자를 없던 걸로 쳐줄게. 가게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터넷에 폭로해 버릴 거야.”“안돼. 조금만 더 시간 줘. 내가 꼭...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 새끼가!”배지유는 화가 나서 핸드폰을 박살 내려다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창문을 통해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는데 다름아닌 성대호가 실망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다.성대호는 자기가 잘못 본 거라고 믿고 싶었다.그런데 아까 통화한 내용을 듣고 모든 기대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배지유는 뒤돌아 떠나가려는 성대호를 뒤에서 꽉 끌어안았다.“오빠, 난 그저 드레스만 갖고 싶었을 뿐이야... 그런데 하경이 오빠를 저렇게 만들어 버릴 줄 몰랐어.”성대호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뒤돌아섰다.“그 드레스는 왜 필요한데?”“그게...”배지유는 고개를 숙인 채 눈알을 굴리면서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드레스 고르러 갔을 때 마침 그 드레스를 입고 싶었거든. 그런데 새언니가 보라색 원피스가 이쁘다면서 일부러 스타일리스트한테 못생기고 올드한 스타일로 해달라고 부탁했더라고.”배지유는 나름대로 괜찮은 이유라고 생각했는지 자신감 붙은 얼굴로 고개를 쳐들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성대호를 쳐다보았다.“연회장에서 사람들이 새언니만 예쁘다고 칭찬하더라고. 나한테는 나이도 어린것이 더 올드해보인다고 했고.”배지유는 계속해서 말했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캐물었더니 그제야 인정하더라고. 그리고 나한테 멍청하다면서, 보는 눈이 없다고 했어.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여자분이 새언니를 나무랐고... 새언니는 이 일을 또 오빠한테 이를 거라는 생각에... 어차피 욕먹을 바에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오빠한테 보여주고 싶었어. 누구한테 더 잘 어울리는지. 그런데 방우진이 사람을 다치게 할 줄 몰랐어.”성대호는 들을수록 미간을 찌푸렸다.여자를 많이 만
“배지유! 멈춰!”성대호가 달려갔을 땐 배지유는 이미 한쪽 발을 창문 위에 올려놓은 상태였다.이에 성대호는 발걸음을 멈추고 두 팔 들어 항복했다.“너희 오빠랑 내가 있는데 육씨 가문에서는 너를 괴롭히지 못할거야. 하경이도 너를 용서해 줄 거고.”한쪽 다리가 밖에 걸쳐있는 배지유는 차마 밖을 내다볼 수 없었다.바람이 불어오자 떨어질까 봐 창문틀을 꽉 잡았다.사실 두려웠지만 어떻게든 참아보기로 했다.그녀는 성대호가 마음이 약해져서 양보해 줄 줄 알았다.“오빠, 부잣집 며느리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약점이 잡히면 언제 어디서든 비웃음당할 수 있다고. 남은 평생 손가락질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성대호가 천천히 접근하면서 말했다.“일단 내려와. 거기 너무 위험해.”“오빠가 나한테 잘 대해 준다는 거 알아. 다음 생에는 될수 있으면 오빠 여동생이 되었으면 좋겠어. 오빠는 겉으론 착해 보여도 속은 악독한 새언니를 찾지 않겠지.”성대호는 배지유가 밖을 내다보는 틈을 타 급히 달려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이번 생에도 난 네 오빠야!”“이거 놔. 난 오빠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 않아... 차라리 날 죽게 내버려 둬. 내가 죽어버리면 다들 나한테 뭐라고 하지 못하겠지.”“네가 살아있는 동안은 내가 꼭 옆에서 잘 보호해 줄게.”배지유는 그윽한 눈빛으로 성대호를 쳐다보았다.“그러면 비밀로 해줄 수 있어?”성대호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성대호는 그녀를 창문에서 내려다 주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배지유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한참 동안 제대로 서 있지 못했다....도아린은 계속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병원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배건후의 차가운 기운 때문인지 우울하기만 했다.이번 사건이 배지유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말했다간 모함한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었다.육하경과 서로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몇번 도움받았기 때문에 그가 이렇
아파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도아린은 일부러 고개를 돌렸다.“건후 씨의 산삼과 비교하면 향낭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한테 요구하기 전에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부터 되돌려 보세요!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하루빨리 이혼해요. 서로한테 피해주지 말고요.”“서로한테 피해를 주지 말자고?”배건후가 피식 웃고 말았다.마음속에서는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다.배건후는 시시때때로 중저음에 그윽한 눈빛을 보내오면서 매력 발산하고 있었다.배건후가 지퍼를 열고 셔츠 단추를 여는 순간 복근이 드러났다. 완벽한 치골 라인까지 보여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난 도전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야. 순종적인 사람은 보기만 해도 질려. 오히려 너같이 화끈한 사람이 좋아.”배건후는 빨개진 도아린의 귀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과연 무슨 맛일까.”도아린은 옷깃을 여몄다.배건후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자니 더럽다기보다 매력이 넘쳤다.하지만 이혼은 필수였기 때문에 도아린은 그의 매력에 넘어가지 않았다.귀가 빨개진 것은 그저 화가 나서였다.“건후 씨, 보미 씨가 최근에 입었던 옷들이 많이 노골적이던데 그 욕구를 참지 못하고 여기서 발산하는 거예요?”배건후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의 허리를 꽉 잡고는 그녀의 배꼽을 어루만졌다.도아린은 그만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배건후를 자극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가 홧김에 정말 덮칠까 봐 두려웠다.도아린은 급히 그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보미 씨는 건후 씨만 바라보고 있는데 지금 이러는 거, 너무하지 않아요?”차는 가로등 밑에 세워져 있었다.배건후가 몸으로 불빛을 막는 바람에 차 안의 분위기는 더욱 야릇해졌다.그는 허리를 숙여 도아린의 귓불을 깨물었다.이때 비웃음이 가득한 말투가 들려왔다.“보미 씨는 몸매를 유지해야 해서 쌀 한 톨도 세어가면서 먹는 사람이야. 너같이 거친 사람이랑은 달라. 너는 거칠게 대하기 딱 좋아.”‘하긴. 한번 하면 7날이나 입원해야 하고 3년이나 휴식해야 하잖아. 보미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