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도아린은 일부러 고개를 돌렸다.“건후 씨의 산삼과 비교하면 향낭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한테 요구하기 전에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부터 되돌려 보세요!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하루빨리 이혼해요. 서로한테 피해주지 말고요.”“서로한테 피해를 주지 말자고?”배건후가 피식 웃고 말았다.마음속에서는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다.배건후는 시시때때로 중저음에 그윽한 눈빛을 보내오면서 매력 발산하고 있었다.배건후가 지퍼를 열고 셔츠 단추를 여는 순간 복근이 드러났다. 완벽한 치골 라인까지 보여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난 도전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야. 순종적인 사람은 보기만 해도 질려. 오히려 너같이 화끈한 사람이 좋아.”배건후는 빨개진 도아린의 귀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과연 무슨 맛일까.”도아린은 옷깃을 여몄다.배건후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자니 더럽다기보다 매력이 넘쳤다.하지만 이혼은 필수였기 때문에 도아린은 그의 매력에 넘어가지 않았다.귀가 빨개진 것은 그저 화가 나서였다.“건후 씨, 보미 씨가 최근에 입었던 옷들이 많이 노골적이던데 그 욕구를 참지 못하고 여기서 발산하는 거예요?”배건후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의 허리를 꽉 잡고는 그녀의 배꼽을 어루만졌다.도아린은 그만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배건후를 자극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가 홧김에 정말 덮칠까 봐 두려웠다.도아린은 급히 그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보미 씨는 건후 씨만 바라보고 있는데 지금 이러는 거, 너무하지 않아요?”차는 가로등 밑에 세워져 있었다.배건후가 몸으로 불빛을 막는 바람에 차 안의 분위기는 더욱 야릇해졌다.그는 허리를 숙여 도아린의 귓불을 깨물었다.이때 비웃음이 가득한 말투가 들려왔다.“보미 씨는 몸매를 유지해야 해서 쌀 한 톨도 세어가면서 먹는 사람이야. 너같이 거친 사람이랑은 달라. 너는 거칠게 대하기 딱 좋아.”‘하긴. 한번 하면 7날이나 입원해야 하고 3년이나 휴식해야 하잖아. 보미 씨
익숙한 목소리에 도아린은 표정이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민재 씨? 민재 씨도 하경 씨 보러 왔나 보네...’도아린은 고개를 들어 창문에 기댔다.배건후 다리 위에 앉아있던 도아린은 그의 신체적 변화를 느낄 수 있었고, 그녀의 정서도 경직된 근육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어두운 곳에 서있는 육민재는 훤칠한 것이 분위기가 넘쳤다.육민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도아린은 마침 가로등 때문에 더욱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도아린은 급히 옷깃을 여미고 건조한 목으로 힘겹게 인사했다.“민재 씨... 씁.”또 한 번 가슴을 꽉 쥐길래 도아린은 욕할뻔하다가 배건후를 힘껏 꼬집었다.‘일부러 망신 주려고 하고 있네.’육민재는 차 안까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아린 씨 목소리 같긴 한데 확신이 서지 않더라고.”육민재가 웃으면서 다가왔다.가로등이 비추는 공간에 도착한 그는 차와 떨어진 거리가 3미터도 되지 않았다.온몸이 굳어져 버린 도아린은 무의식적으로 배건후의 팔을 꼬집었다.“거, 거기서 말해요.”도아린이 급한 마음에 소리쳤다.이때 배건후가 그녀의 단추를 풀어 코끝으로 등을 느끼고 있었다.입술은 차가웠지만 뿜어내는 뜨거운 콧김에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시력이 안 좋은 육민재는 눈을 찡그렸다.아까는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도아린의 헝클어진 머리, 삐뚤어진 옷깃, 감출 수 없는 당혹스러움을 발견하고 더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할머니 생신날, 도아린이 배건후랑 결혼한 이후로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육민재는 도아린이 배건후한테 버림받고 혼자 있는 모습을 들키기 싫어 이러는 줄 알고 온화하게 웃었다.“저번에는 그냥 우연히 도와준 것뿐이야. 그런데 밥 사겠다는 말 진심으로 받아들였으니까 내일 시간 되면...”도아린은 듣자마자 그가 동영상 일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육민재가 우연히 도와줬다고 말했지만 도아린에게는 친구의 믿음을 얻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없었다.사실 육민재가 엄청
도아린은 상대방의 이름을 까먹을 정도로 뻘쭘했다.배건후가 도아린의 허리를 마음대로 만질 수 있었던 건 지퍼가 열려서였다.도아린은 스타킹도, 치마도 고장 난 상태로 차마 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그래서 고개를 돌려 배건후를 힘껏 째려볼 뿐이다.하지만 육민재 눈에는 앙탈처럼 보였다.“먼저 하경이 보러 갈게. 하던 거 마저 해.”육하경은 병원으로 들어가면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도아린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그녀는 배건후를 힘껏 밀쳐내고 한쪽으로 가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건후 씨, 이제 만족해요?”등받이에 기대어 있던 배건후가 냉랭하게 말했다.“민재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것도 모자라 하경이한테 향낭까지 선물하고. 내가 없었으면 진작에 차에 태웠을 거야.“배건후의 눈빛은 이글거리고 있었다.도아린은 그에게 눈빛도 주지않고 머리에 있던 핀으로 치마를 고정시켰다.이런 정신병자 같은 사람과는 말도 섞기 싫었다.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배건후가 또 품에 안더니 지긋이 쳐다보았다.“쟤가 뭘 도와줬는데?“도아린은 발버둥 치다 고개들어 그를 쳐다보았다.“알 필요 없어요.”배건후는 피식 웃더니 표정이 차가워졌다.“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도아린은 배건후한테 그 동영상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핸드폰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나영옥 할머니 생신날, 보미 씨가 혼자서 넘어지고 저한테 죄를 뒤집어씌운 영상을 찍은 사람이 있었어요.”배건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도아린은 피식 웃고 말았다.“건후 씨가 조사해 보고 알려주겠다고 했잖아요. 민재 씨도 확보할 수 있는 동영상을 건후 씨는 확보하지 못했을까요? 제가 만약 정말 보미 씨를 밀었다면 절대로 저를 용서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이와 반대라면 그냥 없었던 일로 했겠죠.“배건후는 동공이 흔들렸다.“보미 씨가 그러는데 네가 밀친 거 아니라고 했어.”도아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그렇다. 손보미는 도아린이 밀었다고 하지 않았지만 태도나 말투를 들어보면 분명
도아린은 아파서 울먹이다 배건후의 머리끄덩이를 잡으려고 했고, 배건후는 막으려다 한 손으로 도아린의 가슴을 치고 말았다.도아린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움츠렸다.그녀가 몸을 부들부들 떨자 배건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녀를 품에 안았다.괜찮은지 확인하려고 했지만 도아린은 만지게도 못하게 했다.티격태격하다 또 상처를 건드려 도아린은 화가 나서 눈시울이 붉어졌다.“건후 씨, 그렇게 보미 씨를 도와주고 싶어요?”도아린은 부들부들 떨다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협박했다.“저를 절대 만만하게 보지 마세요. 계속 이렇게 찝쩍거리면 신분을 폭로해 버리고 보미 씨가 내연녀라는 걸 공개해 버릴 거예요! 네티즌들에게 온갖 욕을 먹게 해서 앞날을 망쳐버릴 거라고요!”배건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네가 이혼하고 싶어 했잖아.”“저는 이대로 눈뜨고 지켜볼 수 없어요!”배건후는 그녀의 옷을 정리해 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보미 씨한테 함부로 대했다간 평생 이혼하지 못할 줄 알아.”이 정도로 염치없는 사람은 처음이었다.‘자기는 내연녀랑 신나게 놀면서 나는 남사친도 만나면 안 돼? 분명 자기가 귀책자면서 피해자더러 가만히 참고 있으라고? 돈 많으면 다야? 이기적인 놈!’“마침 병원 앞인데 의사 선생님께 보이는 거 어때?”배건후는 고통스러워하는 도아린을 보면서 물었다.“머리를 보이라고요? 필요 없어요!”도아린은 그를 밀쳐내고 상처를 어루만졌다.가슴이 너무나도 아팠다.배건후는 핸드폰을 꺼내 조수현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도아린에게 경고했다.“다른 남자한테 또 함부로 선물을 주면 두 사람 모두 죽여버릴거야.”도아린은 그를 힘껏 째려보았다.“미친 새끼!”...온종일 피곤했는지 도아린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잠들어버렸다.한밤중에 몸에 이상이 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상처가 난 부위가 무언가에 덮인 것처럼, 혹은 누군가가 어루만지고 있는 것처럼 점점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저항하고 싶었지만 손발이 묶여있는 느낌이었다.그러다 아까보다는 그렇게 아프지 않은
도아린은 고개를 흔들었다. 최근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때문에 오디션을 까먹은 것이다.“그 음악 프로그램 멘토가 예진 이모인 것 같던데?”도아린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내일 말해볼게. 너도 출연할 수 있는지.”“특수상황이 아니면 예진 이모한테...”소유정은 갑자기 입을 막더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해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예진 이모 우리 시어머니랑 친한 친구셔.”“그런 관계였구나...”소유정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다시 모자와 마스크를 했다.“우리 룸으로 들어가자.”마침 누군가 예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최저 소비가 15만 원인 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레스토랑 직원이 메뉴판을 건넬 때 도아린은 옆으로 지나가는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그중의 한명인 성대호는 왠지 모르게 잔뜩 짜증이 나 있는 것 같았다.그의 뒤를 따르던 남자는 구멍 난 청바지를 입고 껄렁거리면서 지나갔고, 또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도아린이 직원에게 물었다.“옆방에 다른 손님이 있어요?”“죄송하지만 개인정보라 말씀드릴 수 없어요.”“저 성대호 씨랑 아는 사이에요.”도아린은 말하면서 테이블 위에 5만 원을 올려놓았다.“저 두 분만 계신다면 됐고, 여자 손님도 계시면 가서 인사 좀 하려고요.”직원은 메뉴판을 회수하는 김에 5만 원까지 챙겼다.“다음에 인사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암묵적인 대답이었다.“고마워요.”직원이 떠나고, 도아린은 특별히 옆방 움직임을 지켜보았다.이 시각, 성대호는 어두운 표정으로 옆방에 앉았다.“이 카드에 2,000만 원이 있어. 이거 챙기고 연성에서 꺼져.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 절대 돌아오지 마.”어제저녁부터 금은방에 사람을 붙여 경찰보다 더 빨리 골드 시계를 팔려는 방우진을 잡은 것이다.“2,000만 원으로 나를 보내려고?”방우진은 카드를 힐끔 쳐다볼 뿐 챙기지 않았다.“누구를 거지 취급하나.”“내 친구는 아직 의식불명의 상태로 병원에 누워있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면 감옥에 처넣을
“아린 씨, 저를 미행한 거예요?”성대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배건후와 하는 말이 똑같았다.도아린은 그를 무시하고 방우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이 사람이 하경 씨를 다치게 한 사람이죠? 경찰에 이미 신고했어요.”방우진은 눈빛이 확 변하더니 테이블 위에 있던 주전자로 도아린의 머리를 부수려고 했다.“그만해!”성대호는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뒤돌아 창문을 열었다.이곳에서 밥을 먹자고 했던 이유도 도망가기 편하기 위함이었다.방우진은 그의 뜻을 바로 알아차리고 할 수 없이 주전자를 내려놓고는 의자를 밟고 창문을 넘었다.그러고서 지붕을 지나 후다닥 도망쳤다.도아린이 앞으로 다가가려고 했지만 성대호가 말렸다.“아린 씨, 저희 친구 사이의 일은 상관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하경 씨는 당신 같은 친구가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성대호는 표정이 창백해지고 말았다.친구를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했던 그였다. 심지어 육하경이 전남시를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게 고가로 식품과 약품을 운송하다가 현지 보스를 건드려 세 날 동안 갇힌 적이 있었다.만약 육하경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무조건 감옥에 처넣고 죽기보다 못한 생활을 하게 했을 것이다.그런데 배지유의 행복이 더욱 중요했다.성대호는 이내 미안함이 말끔히 사라지고 예리한 눈빛으로 도아린을 쳐다보았다.“아린 씨, 저희는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에요. 제가 한 일은 제가 직접 하경이한테 설명할 거예요.”“만약 하경 씨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면요?”“그럴 리가 없어요!”성대호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가장 좋은 의사 선생님을 붙여서 꼭 깨어나게 할 거예요.”“하경 씨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면 대호 씨가 하경 씨 부모님 남은 생을 책임지실 거죠? 아가씨도 챙겨줄 거고요?”성대호는 첫 질문을 듣고 본능적으로 대답했다.“당연하죠.”그런데 두번째 질문을 듣고는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았다.“아린 씨,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저는 지유를 그저 동생
도아린의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자 성대호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오늘은 아무것도 못 본 거로 해주세요. 가게를 내놓는 사람이 없는지 잘 알아봐 드릴게요. 그리고 제가 인테리어도 해주기로 약속했잖아요. 저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에요.”성대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도아린은 그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가버렸다.문 앞에서 녹음하고 있던 소유정은 도아린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고 녹음을 끄고 따라서 룸으로 돌아갔다.“건후 씨가 네 가게를 손보미한테 준 거야?”“내 거 아니야.”도아린은 메뉴판을 보면서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내 물건은 아무도 뺏어가지 못해.’도아린은 가게를 원한 적도 없었다. 그저 욕심많은 도정국이 동생의 치료를 핑계로 협박했기 때문이다.도아린은 진수성찬에 맥주까지 세 병 마시게 되었다.술을 마실 수 없는 소유정은 옆에서 도아린의 기분을 맞춰주기로 했다.맥주 한잔을 마실 때마다 옆에서 생수를 따라 마셨다.똑같은 속도로 생수를 마시자니 메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워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했다.“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돌아와서 계속 마셔.”속을 비우고 돌아왔을 때, 도아린은 룸에 없었다.어질어질한 상태로 택시를 타고 에이트 맨션으로 돌아간 것이다.요 며칠 도아린이 운전해서 들락날락하자 경비 아저씨는 그녀가 로또에 당첨된 줄 알고 대놓고 비웃지 못했다.그런데 오늘 택시 타고 돌아온 것을 보고 또 참지 못하고 비아냥거렸다.“왜요. 대표님이 차를 몰수하셨나 봐요? 대표님 성격을 좀 맞춰주시지 그러셨어요.”도아린은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걸어 들어갔다.3년이나 바쳐서 배건후의 곁을 지켰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도아린은 잔디 위에 세워져있는 그레이색 마이바흐를 보고 발로 걷어찼다.“제기랄! 나쁜 자식!”차 경적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도아린, 미쳤어?”배건후는 비틀거리면서 술 냄새를 풍기고 있는 도아린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도아린은 뒤돌아 차에 기대어 앉
“보미 씨는 손님인데 맨발로 집에 들어올 순 없잖아.”배건후는 도아린이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지 몰랐다.“집에 손님용 슬리퍼가 따로 있어요.”“보미 씨가 발을 상해서 딱딱한 슬리퍼를 신지 못해.”배건후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이런 사소한 일까지 따져야겠어?”손보미는 배건후가 보지 않는 틈을 타 무언의 협박을 보내고 있었다.오늘 주동적으로 배건후한테 잘못을 인정하러 온 것이다.계약서를 잠깐 빌리기로 했는데 성대호와 계약할 때 일부러 모호하게 말했고, 성대호도 배건후와 확인해 보지 않은 바람에 손보미가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었다.손보미는 모든 책임을 철없는 부모님께 넘겼고, 부모님이 돌아가면 무조건 도아린에게 명의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사과하는 의미로 인테리어 비용을 대겠다고 했고, 또 도울 디저트더러 먼저 입주하라고 했다.그러면서 급히 달려오느라 발을 삐끗하여 딱딱한 슬리퍼를 신지 못하겠다고 했다.배건후는 도아린이 이렇게 일찍 돌아올지 모르고 그냥 도아린의 슬리퍼를 신으라고 했다.그런데 도아린이 고작 슬리퍼 하나로 난동 부릴 정도로 밴댕이 소갈딱지일 줄 몰랐다.“건후 씨는 저한테 가게를 줄 마음이 없었잖아요.”도아린은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웃고 있었다.이와 반대로 배건후는 전혀 상냥하지 않은 눈빛에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네가 무능해서 드레스를 해결하지 못한 거잖아.”“제가 무능한 거예요. 아니면 어떤 사람이 멍청해서 드레스를 망가뜨린 거예요?”“건후 씨, 그런 말 하지 마. 다 내 잘못이야…“손보미는 이 복잡한 상황에서 끼어들려고 했다.“아린 씨, 저는 사실 그 드레스를 구매하고 싶었는데 판매하지 않는다길래요. 여자는 누구나 다 예뻐지기를 원하잖아요. 저는 그저 생일날 예뻐 보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폭죽이 전부 다 안 터졌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손보미는 도아린이 인기 검색어를 봤다는 거에 한 표를 던졌다.배건후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생일날 몇억 원에 달하는 폭죽을 터뜨렸다는 기사가 인기 검색어에 6
도아린은 변슬기를 데리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배지유가 자신을 일부러 모욕하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이곳에 유명 스타들이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스크린에서만 보던 유명인들을 실제로 보니 변슬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두 눈으로는 전부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다소 어색하게 셔츠를 만지작거렸다.아버지가 친구를 만나러 가니 단정하게 차려입으라고 당부했지만, 변슬기는 또 소개팅 자리일 거로 생각하며 일부러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왔다.그녀는 상대가 아버지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한 모습을 좋아하길 바랐다.그러나 여기에서 음료를 나르는 여직원들조차 자신보다 더 격식 있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당황했다.“도 선생님, 저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볼품없는 거 아니에요?”도아린은 그녀의 셔츠 뒷면에 약간의 땀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제가 여분의 드레스를 준비해 놨어요. 갈아입어도 좋아요.”변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일단 아빠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각할게요.”멀리서 변우빈이 그녀를 보고 약간의 타박 섞인 눈빛을 보였지만, 곧 미안하다는 듯 설명했다.“우리 딸은 성격이 참 고집스러워.”그는 변슬기에게 손짓했고 딸이 곁에 앉자 말했다.“내가 단정하게 입고 오라고 했잖아. 그런데 일하는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하니.”변슬기는 당황스러워 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주현정이 보이자 긴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큰일 났다!’문 앞에서 배지유와 다툰 것도 모자라 이번엔 배지유의 엄마까지 만나게 됐다.지난번처럼 자신에게 온화하게 대해줄 리가 없을 것이다.“...네 딸이구나?”주현정은 마치 이해했다는 듯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지난번에 봤을 때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변슬기는 몰래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분 배지유 엄마예요.”변우빈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웃으며 소개했다.“이분은 주현정
배지유가 휠체어를 돌리자마자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배지유?”“변슬기?” 배지유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이 시간에 오다니, 연회가 거의 끝나가잖아.”변슬기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온몸에 땀범벅이었고 앞머리가 하얀 이마에 붙어 있었다.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며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감 있게 말했다.“아니야, 난 사람을 찾으러 온 거야.”이어지는 장면이 바로 도아린이 목격한 것이다.배지유는 휠체어를 움직여 변슬기의 주위를 맴돌면서 눈에 비웃음이 가득했다.“너희 집은 이번 생은 물론이고, 전생에도 이런 호화로운 사람들을 본 적 없을걸? 여기를 시장으로 착각한 거야? 아무나 데려와서 ‘내 삼촌, 내 이모’라고 하면 통할 것 같아? 여기는 모두 톱스타들이야! 너 콘서트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어?”배지유는 입을 가리며 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생활비 벌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주제에 무슨 돈으로 콘서트를 본다는 거야!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기숙사로 돌아가서 기다려. 누굴 보고 싶은지 댓글 남기면 내가 대신 사진 찍어줄게.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돈을 안 받아. 대신 너는 우리 기숙사의 1년 치 청소를 맡고 내 빨래도 다 해야 해. 속옷과 양말도 손빨래로!”변슬기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연예인 보러 온 게 아니야.”“올해 최고의 억지상은 바로 너네!” 배지유는 엄지를 세우며 비웃었다.“여긴 다 연예인들뿐이야. 네가 누굴 찾는다고 하면, 내가 직원한테 말해서 불러줄게.”변슬기는 그녀를 무시하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러자 배지유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해지며 휠체어를 몰아 변슬기에게 돌진했다.거의 부딪힐 뻔한 순간, 휠체어가 갑자기 멈췄다.화가 난 배지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도아린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네가 왜...” 도아린은 왜 자신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건가?
주현정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에 그저 화났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니 그녀의 기분만 풀어주면 도아린이 그 자리를 넘보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현정아, 사람은 성인이 아니니 누군들 실수하지 않겠어?” 배석준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내가 증명해 보일게. 나와 지유야말로 네 뒤를 든든히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그는 배지유를 찾아 그녀를 데리고 주현정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세 식구가 언론 앞에 함께 나타나기만 하면 이혼 소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배씨 가문의 재산에 끼어들 수 없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배지유가 사라진 후였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도아린이 다정하게 위로했다.“배 대표님은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못할 거예요.”“차라리 저 사람이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네.”주현정은 도아린과 함께 인파를 지나갔다.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다소 어색하게 무릎을 문지르며 이따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주현정을 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가 방해되지는 않았어?”“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내 연회에 와줘서 고마워.”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고 다가갔다. 세 사람은 원형 소파에 앉았다.“이쪽은 내 딸 도아린이야. 이분은 변우빈이라고 하고 내 가장 친한 친구야. 아저씨라고 불러.”“아저씨, 안녕하세요.” 도아린은 무심코 상대방을 살펴봤다.변우빈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배석준와 비슷한 체격이었지만 조금 말랐다. 그의 얼굴과 손에는 노동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진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변우빈은 계속 주현정의 눈을 바라봤고 주현정의 미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겨있었다.“네 딸도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주현정이 뒤를 돌아보며 묻
석 대표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앞에 휠체어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요란하게 치장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이분은...”그는 주현정이 이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첫 반응은 배석준이 다른 여자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배석준의 새로운 연인은 주현정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석 대표님, 짓궂으십니다. 방금까지도 저희 딸을 카메오로 요청한다고 하셨으면서...”배석준은 말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그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배지유를 보고 있었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배지유는 엄청 민감해서 의식적으로 치마를 잡았는데 그들이 자신의 얼굴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제야 천천히 손을 떼었다.“배 대표님 따님이 몇 명이세요?”석 대표가 물었다.“... 한 명입니다.”석 대표는 웃어 보이고는 볼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고 그가 떠나자 다른 사람들도 흩어졌다.“아빠! 저 사람들 무슨 뜻이에요?”“...”배석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영문을 알게 되었다.배지유는 휠체어에 앉아있어 시선이 막혔지만, 배석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도아린을 데리고 인사를 나누는 주현정을 보았다.그들이 칭찬하는 사람은 배지유가 아니라 도아린이었다.“지유야, 여기서 아빠를 기대려. 아빠가 가서 엄마를 찾아볼게.”그는 배지유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하고는 빠르게 걸어갔다.“주현정! 당신 지금 지유는 병원에 내버려 두고 도아린을 데리고 연회에 참가하고 있어? 당신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손님들은 배석준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자리를 피했고 주현정의 얼굴에 있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대답했다.“지유는 당신 같은 아빠만 있으면 돼요.”배석준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앞서 당신은 외부인 하나 때문에 나랑 이혼하려고 했고 이제는 이혼 얘기를 하지 않으니 각종 방법으로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고 있어. 당신이 다시 JS 픽처스를 운영하게 되었는데도 나한테 얘기
JS 픽처스의 고위인사는 배석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 또 해외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현정이의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머물다가 가려고 합니다.”배석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평소에 연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주현정이 JS 픽처스에서 지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각종 이유를 찾아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를 거부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카메라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그들은 모두 주현정 덕분에 잘 되었기에 체면은 반드시 살려주어야 했다.“크흠.”배지유는 배석준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헛기침을 했다.“아, 우리 딸이 마침 해남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배석준을 둘러싼 고위인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주현정은 배지유가 연예계의 나쁜 물을 먹을까 봐 현역일 적에 절대 배지유를 데리고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위인사들도 그저 주현정에게 딸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본 적은 없었다.반응이 빠른 누군가가 술잔을 들며 공손하게 말했다.“따님은 주 대표님과 배 대표님의 우수한 점을 다 닮으셔서 단정하고 청초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새로 영입한 신인보다 예쁘신 것 같습니다.”“맞아요. 해남대학교의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시니 예쁘시고 학식도 많으시네요. 지금 업계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인재를 제일 좋아합니다!”배지유는 칭찬을 듣고 얼굴이 발그레해졌고 그녀는 두 손으로 팔걸이를 잡고 살짝 몸을 앞으로 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삐끗해서 일어서서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네요.”“별말씀을요. 발을 삐끗하면 잘 치료해야 해요. 젊고 예쁘신데 후유증을 남기면 안 되죠.”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배지유의 마음속에서는 저주로 들렸다.그녀는 발 한쪽을 다친 게 아니라 다리 하나를 잃었다. 나머지 생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배석준은 배지유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가 난리를 피울까 봐 얼른 다른 곳으로
주현정은 말투가 가라앉았고 표정이 엄숙했다.“남자의 내연녀로 이십몇 년을 있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어른이 화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나. 도아린의 양아버지는 양어머니의 혼수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했어.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딸의 효도를 받을 자격 없어!”현장에는 여자 연예인들도 많았다.같은 딸의 마음으로 이렇게 심란한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그들은 도아린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아린이 양어머니를 위해 복수를 했다고 여겼다.강홍련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아린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방금 자신의 말이 강씨 가문에게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웠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도아린은 단호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강씨 어르신은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씨 어르신께서 좋은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주었는데 당신은 밖에서 어르신의 명성이나 흐리고 다니면 안 되죠. 농부와 뱀의 이야기를 재희 씨도 들어봤을 거로 생각해요.”도아린은 강씨 어르신의 편에 섰는데 강재희는 반박할 수 없었다.여론에서 아버지의 대회에 흑막이 있다는 일로 들끓던 것이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강홍련 저 멍청이 때문에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주현정은 도아린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제 딸이고 JS 픽처스의 후계자예요. 강씨 가문에서 이렇게 제 딸을 치욕스럽게 하다니, 저희 협력은 앞으로 계속하지 않을 생각입니까?”강재희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녀는 도아린이 연회에 참가한 것은 단지 주현정과 예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주현정이 도아린을 딸로 삼고 JS 픽처스의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만약 도아린과 모순이 격화된다면 앞으로의 협력에는 장애가 생길 것이다.“강홍련 씨, 사과해요!”강홍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재희는 지금 자신을
도아린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진열대에 있는 다이아몬드의 빛이 꺾이어 그녀의 눈동자를 비춰 유독 눈부셨다.강홍련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강홍련은 도아린보다 머리 하나쯤 작아서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바라보았는데 도도한 척하는 모습이 광대 같았다.“네가 JS 픽처스에게 ‘봉황의 시대’를 광고하도록 넘겼는데 강씨 가문의 고급 주얼리들은 모두 JS 픽처스의 연예인들이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어. ‘봉황의 시대’와 JS 픽처스의 연예인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봉황의 시대’가 강씨 가문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테지.”이게 바로 연예인을 찾아 광고하는 이유였다.예를 들어 어떤 톱스타가 운동화의 모델이 되었다면 그가 나타났을 때 팬들은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알게 된다. 따로 브랜드를 찾아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도아린은 도덕과 재능을 겸비한다는 말로 강씨 가문에게 치욕을 안겨주었지만 결국은 강씨 가문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강씨 가문에서 이득을 보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도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는 강씨 가문의 사촌이야!”강홍련은 불쑥 얘기했다.“강씨 가문에서 손보미를 밀어준다면 배건후와 결혼할 수 있어. 강씨 가문에서 안씨 가문을 지지한다면 내 아들은 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거야!”“그래서요.”강홍련은 도아린이 모른 척할 줄 몰랐고 그녀의 코에 대고 얘기했다.“그래서 나한테 잘하라고. 그러면 강씨 가문에서는 네가 해남에서 살아나갈 기회라도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대회 성적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너를 디자인 업계에서 쫓아내는 것도 일이 아니지. 내 삼촌 강태식은 이 바닥을 꽉 잡고 있어. 내 삼촌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야. 너의 ‘봉황의 시대’도 잘난 척할 거 없어. 언론에서 만들어준 것뿐이야. 만약 삼촌의 학생들이 다 그게 별로라고 얘기한다면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거야!”많은 손님이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강홍련의 지나친 말에 시선을 두
“아빠가 방법을 대서 가볼게. 너는 오지 마.”배석준은 배지유가 걱정되었다. 지난번에 배지유가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도 돌아와서 다리가 아파 잠이 들지 못했다.배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애원했다.“제 친구들은 제가 아직 안에 갇혀있는 줄 알아요! 아빠랑 제가 함께 엄마의 연회에 간다면 매체에서는 저희 세 식구의 화목한 모습을 찍게 될 것이고 소문들은 자연스레 사그라질 거예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딸의 명성은 도아린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돌이킬 방법을 계속 찾지 않는다면 배지유가 해남대학교로 돌아갔을 때 반드시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당할 것이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메이크업과 코디를 해줄게.”배석준이 데리고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지민이었다.김지민은 연예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 참석하는 연예인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알아냈다. 배지유는 똑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됐고 다리의 흉터를 가릴 수 있으면서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했다.이 부분에서 김지민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배지유는 만족스럽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그녀의 치마를 들지 않는 이상 그녀가 다리 하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발을 삐끗해서 휠체어를 탔다고 하면 될 것이다.이런 장소에 김지민은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므로 부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연회장의 중심에는 도아린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고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는 현장에 있는 연예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여자의 아름다움이 너무 지나쳤다.연예계의 스타들은 자주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에 참가하므로 어떻게 분위기를 휘어잡는지를 잘 알고 자신이 어느 각도에서 가장 예쁘게 찍히는지도 알고 있었다.도아린은 처음 보는 얼굴이고 업계에 대해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 자신감이 넘쳤다.그녀가 스크린 앞으로 가서 사인할 때 스크린에는 ‘봉황의 시대’의
도아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녀의 덤덤한 눈빛은 ‘라윤주’의 이름을 듣고 초점을 잃었다.“뭐라고요?”“...”육하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가 육하경이 말을 이었다.“향 주머니로 화를 면한 것은 우연이에요. 정말 저를 도왔던 것은 세인트존스 호텔의 책임자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죠.”육하경은 입꼬리를 올려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어르신들을 3일이나 괴롭혀서야 알아냈어요. LY에서 저를 후임자로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육하경의 학업은 각 부분에서 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육씨 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빽빽이 필요했다.육민재를 예로 들어보면 능력은 가장 뛰어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맏아들의 장손 혈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최고로 좋은 자원과 경험을 쌓을 기회들을 누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그는 육씨 가문의 후계자일 것이다.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려면 모든 게 알맞게 부합되어야 한다.육하경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었고 육씨 가문의 산업에 기대를 두지 않아 오랜 시간 밖에서 떠돌며 공부를 했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세인트존스 호텔의 관리 권한이 그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놀란 마음으로 육하경은 전임자를 찾아갔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야 LY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육씨 가문 뿐만 아니라 많은 명문가가 LY와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인재를 추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었기에 자연스레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육하경은 그때 손에 향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전임자가 이상해하며 무늬를 찍어서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추천서’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경 씨가 말하는 그 이야기에도 관심 없습니다.”도아린은 책을 육하경에게 돌려주고는 차 문을 열었다.“도아린 씨!”육하경은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손을 허공에 멈추고 결국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육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