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범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배지유를 향해 말했다.“제 아내가 방금 깨어났으니 두 분은 이쪽에서 잠시 쉬세요. 제가 배지유 씨를 데리고 아내에게 가겠습니다.”진범준은 배지유에게 안쪽 방으로 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도우미에게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라고 지시했다.배건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성대호는 다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구해준 사람의 오빠도 병문안 못 하게 하다니... 대체 누굴 경계하는 거야?”그러자 차를 내오던 도우미가 웃으며 설명했다.“저희 대표님께서는 사모님을 매우 아끼십니다. 사모님께서 방금 깨어나셔서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정돈되지 않았을까 봐 두 분이 보시고 놀라실까 봐요.”즉, 아내가 집에서의 편안한 모습이 외부 남자들에게 보여지기엔 부적절하다는 의미였다. 이건 확실한 보호욕이자 소유욕이었다.배건후는 성대호를 한 번 쓱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너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지.”“아니야!”성대호는 심장이 순간적으로 철렁했다.“내내 지유를 감싸고 있었잖아. 또 무슨 사고 친 거 아니야?”성대호는 깨달았다. 배건후는 차 안에서 아무것도 듣지 않은 게 아니라 그들의 대화를 일부러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아니야. 배지유는 아린 씨가 연회에 안 간 게 자기 때문이라고 네가 오해할까 봐 걱정한 거야. 사실은...”하지만 배건후가 피식 콧방귀를 뀌었고 성대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한편 병실 안.윤명희는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듯한 표정이었다.발소리가 병상 옆에서 멈추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여보, 배지유 씨가 당신 보러 왔어.”진범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윤명희의 침대 머리를 높여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그들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배지유는 더욱 자부심이 느껴졌다.자신이 우연히 윤명희를 구한 덕분에 배건후의 큰 사업을 성사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모님.”배지유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배지유라고 불러주세요.”윤
“사실 저는 부족한 게 없지만 진 대표님께서 성의로 주신다면 감사히 받을 순 있을 것 같아요.”배지유의 이 말은 모건 그룹과 협력을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으로 들렸다.하여 진범준은 살짝 미소 지으며 블랙 카드를 내밀었다.“이건 한도가 없는 블랙카드입니다. 배지유 씨의 은혜에 보답하는 작은 성의입니다.”그러자 눈빛이 반짝이더니 배지유는 얼른 카드를 받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그럼 사모님을 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두 사람이 방에서 나오자 성대호는 재빨리 일어섰다.배지유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것을 보고는 안심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혹시라도 배지유가 경솔하게 말을 잘못했을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사모님은 괜찮으셔?”“아주 좋았어.”배지유는 성대호에게 장난스럽게 윙크하며 말했다.“진 대표님,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조심해서 가세요. 배 대표님, 나중에 차 한잔하시죠.”“좋습니다. 또 뵙겠습니다.”그렇게 배건후는 진범준과 다시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건넸다.병실을 나선 후, 성대호가 웃으며 말했다.“칭찬받으니까 그렇게 기뻐?”“당연하지!”배지유는 배건후를 힐끔 보며 불만스럽게 말했다.“우리 오빠는 나 한번도 칭찬해준 적 없거든.”결국 성대호가 대신해 그녀의 편을 들며 말했다.“지유는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일 신경 써. 네가 한마디 칭찬해주면 남들이 열 번 말하는 것보다 효과가 클걸.”곧 배건후의 어두운 시선이 배지유의 얼굴에 떨어졌다.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배지유는 순간적으로 가방을 꽉 쥐었다.“나 피곤해. 먼저 병실로 돌아갈게.”그녀가 입원한 곳도 윤명희와 같은 병원이었다.배건후가 자신을 칭찬해주지 않으니 배지유는 주현정에게 가서 위로를 받으려고 했다.여전히 배건후는 손에 핸드폰을 꽉 쥔 채 있었다.육하경이 보낸 몇 장의 사진을 확인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도아린이 아니었다.도아린이 일부러 자신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그는 한
육하경은 도아린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이분이 내가 전에 말했던 아현 씨야.”“아현 씨?”배건후는 거의 이를 악물며 말했고 복도는 금세 싸늘해졌다.도아린은 얼굴을 돌리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했다. 그때 배건후의 차가운 비웃음이 들려왔다.“결혼해서도 남편 몰래 다른 이름을 사용하다니...”도아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성대호는 코를 만지며 침묵을 유지했다.마침내 육하경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건후야, 너 아현 씨랑 아는 사이였어?”배건후는 한 손을 뻗어 도아린의 허리를 감싸더니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도아린은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배건후는 오히려 더 세게 그녀를 붙잡았다.그는 도아린의 당혹스러운 얼굴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혹시 하경이한테 결혼했다는 말 안 했어?”눈빛이 흔들리며 육하경은 성대호에게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그러자 성대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건후야, 너 결혼할 때 하경이는 다른 지역에 출장 가 있어서 몰랐을 거야. 이분은 건후의 아내 도아린 씨야.”‘아현 씨가 도아린 씨라고?’육하경은 성대호의 고개 끄덕임을 보고 나서야 사실을 확인했다.순간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고 그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연회장에서 찾을 수 없었던 거구나.”배건후는 육하경의 말을 무시하고 도아린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그 귀걸이 안 하고 싶었나 보네? 옷도 바꿔 입고.”도아린은 그를 노려보았다.‘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게 병이라면 어디서 치료받아야 하지?’육하경은 어색하게 손가락을 꼬면서 말했다.“아현... 아니, 아린 씨는 귀걸이를 계속 끼고 있었어. 다만 귀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서 잠시 뺐을 뿐이야.”육하경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배건후는 더욱 차가운 분위기를 내뿜었다. 그는 도아린의 붉어진 귀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알레르기 있으면서 왜 말 안 했어?”“말한다고 해서 귀걸이 끼지 말라고 했을까요?”도아린은 그의 손을 떼려고 했
“내가 두렵긴 뭐가 두려워요!”성대호는 배건후를 빠르게 한 번 쳐다보고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외쳤다.“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쳐요. 하지만 사모님도 거짓말을 할 리는 없잖아요?”도아린은 여전히 냉소를 짓고 있었다.“스스로 거짓말한 거 인정하셨으니 이제 대호 씨 말은 신뢰할 수 없지 않겠어요?” 성대호는 도아린의 날카로운 반박에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주먹을 꽉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순간 도아린은 배건후가 감싸고 있던 팔을 억지로 떼어내며 말했다.“내가 거짓말을 했는지 아닌지는 안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하지만 배건후는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다시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경고했다.“진 대표님 앞에서 장난치지 마.”도아린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아가씨가 날 휴게실에 가둔 것도 장난이 아니고 내 핸드폰을 빼앗은 것도 장난이 아니라고요? 그런데 내가 사실을 말하려고 하면 그게 장난이라고요?”뒤이어 차갑게 덧붙였다.“건후 씨, 참 멋대로네요.”배건후는 냉랭한 얼굴로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육하경이 침착하게 말했다.“사모님께 응급조치를 한 건 분명 아린 씨였어.”그러자 성대호가 다시 맞섰다.“구급차는 지유가 불렀잖아. 병원에 기록도 있어!”바로 이때 육하경의 핸드폰이 울리며 그들의 대화를 가로막았다.“네, 진 대표님. 저는 바로 병실 밖에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육하경은 배건후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난 진 대표님을 뵈러 들어가야 해. 같이 들어갈래?”진범준은 배건후와 성대호가 다시 병실을 찾은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 놀라움은 도아린을 보자 더 커졌다.“이분은...?”“제 아내입니다.”배건후는 무심하게 말했다.“사모님의 사고 소식을 듣고 걱정돼서 함께 왔습니다.”도아린은 속으로 비웃었다.그는 도아린이 윤명희를 구했다는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이 모든 공이 배지유에게 돌아가길 원하고 있는 거겠지. 아니면 이미 사실을
“죄송해요. 제가 급한 마음에 팔찌를 한 상태로 응급처치했네요. 혹시 다치신 데 없을까요?”윤명희는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하경과는 달리 성대호는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몰래 배지유한테 문자를 보냈다.[네가 사모님을 구한 거 맞아?]배지유가 답장 없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배건후는 그만 주먹을 꽉 쥐었다.윤명희의 병실에 온 것이 이번이 두번째였다. 처음에는 동생과 함께, 두번째는 도아린과 함께 찾아왔다.아무리 그래도 모건 그룹의 대표인데 누가 윤명희를 구해줬는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떠돌면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 뻔했다.진범준은 쉰 살 가까이 되는 해남에서 유명한 사업가이자 피라미드 먹이사슬 중에서 가장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그가 육하경한테 연락했다는 것만 봐도 배지유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 뻔했다.도아린이 아니었다면 나중에 진범준과 손잡으려면 하늘의 별 따기였을 것이다.윤명희는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더니 도아린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이게 드세요...”과일 맛나는 캔디였다.윤명희 목에 걸렸던 캔디와 똑같은 것이었다.지금은 시중에서 보기 드문 귤 모양의 캔디였고, 도아린은 어렴풋이 캔디 이름이 기억났다.어릴때 명절만 되면 엄마랑 같이 장 볼 때 늘 이 캔디를 한 웅큼 샀던 기억이 있었다.“감사합니다.”도아린은 포장을 벗겨 입에 넣자마자 셔서 눈을 찡그리고 말았다.“어릴 때 저희 엄마도 이 사탕을 자주 사주셨거든요.”윤명희는 멈칫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도아린은 육하경한테서 윤명희가 아이를 잃어버린 뒤로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정신상태가 안 좋다는 사실이 떠올랐다.하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윤명희를 꽉 끌어안았다.“사모님께서는 좋은 분이셔서 꼭 따님분을 찾으실 거예요.”“네... 찾을 거예요.”윤형희는 울먹거리면서 도아린을 꽉 끌어안았다.그러다 너무 흥분해서인지 쓰러지고 말았다.진범준은 윤명희를 병실로 들여보내고는 뒤돌아 도아린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
“그 말 내가 믿어봤자 진 대표님께서 너를 믿어줄 것 같아? 너희 오빠는 믿어줄 것 같냐고.”배지유는 아무 말 없이 이를 깨물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왜 또 도아린이야! 왜 나랑 죽고 못 살아서 안달인데?’도아린이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구급차만 불렀다는 사실을 알 사람이 없었다.배지유가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다면 윤명희는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왜 도아린은 한것도 없이 칭찬받아야 하는데? 왜 나는 좋은 일을 하면서 욕을 먹어야 하는데?’성대호는 배지유의 악독스러운 표정을 보지 못한 채 부드럽게 위로했다.“오빠 말 들어. 내일 진 대표님께 잘 설명해 드려. 그래도 네가 구급차를 불러드렸잖아. 사모님 은인이나 다름없는 거지. 나이도 어린 네가 먼저 사과를 해야지. 나중에 모건 그룹이 진씨 가문과 손잡으려면 어색한 관계로 남지 말아야지. 아린 씨가 두 집안을 이어주는데 너도 큰 역할을 했어.”배지유는 전화를 끊고 한참 망설여서야 1층으로 내려갔다.속으로 내키진 않았지만 성대호가 한 말이 일리있다고 생각했다.윤명희를 위해 구급차를 불러준 것도 사실이고, 배지유가 들어갔을 때 도아린이 휴게실에 있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도아린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가 윤명희를 살려준 사실도 몰랐고, 일부러 그 공을 빼앗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그 카드를 진범준한테 돌려주면서 어쩌면 배건후와 손잡는 것을 한 번만 고려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되면 도아린이 윤명희의 생명 은인이라고 해도 자기가 모건 그룹의 귀인이 될수 있었다.배지유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윤명희의 병실로 향했다.문을 두드리려고 했을 때, 병실 안에서 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서희랑 닮지 않았어요? 우리 세은이 맞죠?”윤명희는 진범준의 옷깃을 잡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진범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조카가 고모를 많이 닮는다고 하는데 진세은은 어릴때 동생 진서희와 판박이와 다름없었다.최근 몇 년 동안 이목구비가 비슷
진범준은 배지유의 말뜻을 바로 알아차렸다.도아린을 위해 해명하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 도아린이 상식이 없다고 비웃고 있었다. 윤명희의 생명 은인은 자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저희 아내를 살려주셨기 때문에 이 카드를 가지셔도 됩니다.”배지유는 마음이 혹하긴 했지만 양심상 고개를 흔들었다.“아닙니다. 저희 오빠가 제가 새언니 공을 빼앗은 걸 알면 저를 욕할지도 몰라요.”윤명희가 나지막하게 물었다.“오빠가 새언니한테 잘해줘요?”“네. 새언니 어머님께서는 둘째를 낳는 도중에 돌아가셨고, 동생은 3살 되던 해 장애인이 되었고 10살 되던 해 건물에서 뛰어내리다 지금은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누워계세요. 의료비는 저희 오빠가 계속 지원해 주고 있고요. 아저씨 디저트 가게도 오빠가 차려준 거예요.”배지유는 말하면서 계속 테이블 위에 있는 블랙 카드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성대호의 말이 맞았다. 잘못을 인정하면 공을 빼앗았다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또 블랙 카드를 계속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배지유를 통해 도아린에게는 부모님도, 남동생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로써 친딸일 확률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진범준은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배지유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배지유 씨, 이런 걸 알려줘서 고마워요. 블랙 카드는 저희 성의니까 받아주세요.”배지유는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바로 블랙 카드를 챙겼다.“감사합니다. 진 대표님, 내일 저희 새언니랑 쇼핑하러 가려고요. 평소에 별로 꾸미지 않거든요.”배지유가 병실을 떠나려고 할때, 진범준이 담담하게 말했다.“그 카드는 임시로 쓰는 카드에요. 해남으로 돌아가면 없애버릴 거니까 배지유 씨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사세요.”배지유는 멈칫하고 말았다.임시 카드를 선물하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진씨 가문이 정말 통이 큰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야박할 줄 몰랐다.배지유는 얼른 명품백 사러 가고 싶었다.“감사합니다. 진 대표님, 사모님, 안녕히 주무세요.”배지유는 나가면서
육하경은 반응할 새도 없었다.피하는 건 불가능했고, 최대한 몸을 피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등에 맞고 말았다.목에서는 쇳내가 풍겨왔다.야구방망이가 또 한 번 날아오자, 육하경은 앞구르기로 공격을 피했다.상대방은 야구모자에 마스크까지 하고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그는 육하경의 손을 쳐다보더니 또 공격하려고 했다.육하경은 그래도 무술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두렵지는 않았다.다대일은 몰라도 일대일에는 자신이 있었다.육하경이 야구방망이를 빼앗고 발로 걷어차는 바람에 상대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이 드레스를 빼앗으려고?”육하경이 슬금슬금 다가가면서 물었다.“누가 보냈어.”상대는 고통스럽게 배를 끌어안고 있었다.육하경은 다가가 그의 목덜미를 잡은 채 야구모자와 마스크를 벗겼다.상대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이때, 코를 자극하는 냄새와 함께 육하경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마이바흐 한 대가 길에서 달리고 있었다.가로등 때문에 차 안은 밝아졌다, 우두워졌다하고 있었다.배건후는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다 동작을 멈췄다.“어떻게 나왔어.”도아린은 그제야 배건후가 어떻게 휴게실에서 나왔는지 묻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걸어서요.”“똑바로 말해.”“말해봤자 믿어줄 거예요?”“일단 말해봐.”도아린은 피식 웃고 말았다.“아가씨가 저를 의무실로 유인하려고 했어요. 제가 싫다고 하니까 핸드폰을 빼앗았고, 갖고 싶으면 휴게실로 따라오라고 했어요. 제가 방심하고 있을 때 휴게실 문을 밖에서 잠가버렸고요. 문을 한참 두드렸는데 열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다 어떤 아줌마가 바닥에 기절해 있는 것을 발견했고요.”배건후가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모르는 사람을 구해준 거야? 상대방이 심장병을 앓고 있거나 다른 병을 앓고 있었으면 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다고. 윤 사모님이 목에 캔디가 걸렸기 다행이지. 응급조치에 실패했으면 책임을 져야 했을 수도 있다고.”‘말하지 말 걸 그랬네. 어차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