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배지유는 미친 듯이 달려와 육하경의 명함을 빼앗아 두 동강 내며 외쳤다.“어떻게 저 여자한테 개인 번호를 줄 수 있어요?!”결국 배건후는 배지유의 손목을 붙잡고 강제로 연회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책임자.”책임자를 부르는 육하경의 눈빛에는 평소의 부드러움이 사라진 상태였다.“이분을 병원에 모셔다드리세요. 치료비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육 팀장님...”“이쪽으로 가시죠...”그렇게 연회 책임자는 여자를 데리고 뒷문으로 나갔다.성대호는 육하경에게 뭔가 말하려다 배지유가 또 혼날까 봐 입을 다물고 뒤따라 나갔다.“건후야, 너 지유 너무 겁주는 거 아니야?”성대호는 배지유를 뒤로 숨기며 말했다.“지유가 잘못한 건 맞지만 제대로 타이르고 말해줘야지.”그는 한숨을 쉬며 배지유를 보고 답답한 듯 말했다.“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때리면 안 돼. 그 사람도 연회장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면 분명 신분이 보통이 아닐 텐데 네가 공개적으로 창피를 주면 건후가 회사 관리하기 어렵잖아.”“...”하지만 배지유는 억울한 듯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그 여자가 먼저 하경 오빠를 꼬셨잖아...”“하경이는 뛰어나니까 세인트존스 호텔 총괄 팀장 자리에 오른 거야. 정말 하경이랑 함께하고 싶은 거라면 하경이의 좋은 조력자가 되어야지 발목을 잡는 사람이 되면 안 돼.”배지유는 만약 배건후가 성대호처럼 자신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더라면 자기 말을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배건후는 조금 전 너무 무섭게 혼내며 소리쳤다. 그래서 배지유는 더욱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배지유는 배건후와 대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그 주위에 감도는 차가운 기운이 가까이 다가가기를 망설이게 했다.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자신에게 이렇게 화가 난 이유가 너무 큰 실수를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도아린을 배건후에게 넘기지 않아서 화풀이를 하는 건지 말이다.그때 핸드폰이 울렸고 배지유는 화면을 보고 눈이 번쩍였다.그녀는 웃으며 전화를
“굳이 만나지 않아도 돼요.”도아린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그저 작은 도움을 드린 것뿐이에요.”“생명보다 중요한 건 없죠.”육하경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분께도 참 안타까운 사연이 있더라고요.”진 대표의 아내라는 윤명희는 두 아들을 낳고 셋째 아이로 어렵게 딸을 얻었지만 첫돌 잔치에서 딸을 당했다고 한다.그 사건 이후로 윤명희는 우울증에 걸려 정신 상태가 오락가락했다. 진씨 가문은 막대한 돈을 들여 딸을 찾았지만 20년이 넘도록 찾지 못했다.일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했지만 윤명희는 언젠가 딸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딸이 좋아했던 사탕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딸을 찾으면 그 사탕을 주고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싶어 했다.도아린은 자신의 어머니도 양수 색전증으로 돌아가신 일을 떠올리며 윤명희의 슬픔이 깊이 마음에 와닿는 듯했다.그녀는 가슴이 아파져 윤명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알겠어요. 만나러 갈게요.”...“빨리 말해봐. 어떻게 사람을 구한 거야?”차 안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조수석에 앉은 성대호가 먼저 배지유에게 말을 걸었다.그러자 배지유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그때 좀 다쳐서 휴게실에서 상처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소파에 누군가가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하임리히법으로 그 사람을 구했지.”성대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린 나이에 하임리히법도 할 줄 알아? 나도 못 하는데.”“우리 학교에서 가르쳐줬어. 게다가 TV에서도 많이 봤잖아.”배지유는 인터넷에서 배운 방법을 흉내 내며 말했다.“이렇게, 힘을 줘서 확 눌러.”성대호는 뒤를 돌아 배건후를 봤지만 배건후는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 아무 말도 듣지 않는 듯했다.“아린 씨가 그리 쉽게 사라지겠어? 지유가 사람 목숨을 구했는데 넌 칭찬도 안 해?”성대호가 배건후에게 말했다.하지만 배건후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무슨 소식 있어?”“객실에
진범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배지유를 향해 말했다.“제 아내가 방금 깨어났으니 두 분은 이쪽에서 잠시 쉬세요. 제가 배지유 씨를 데리고 아내에게 가겠습니다.”진범준은 배지유에게 안쪽 방으로 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도우미에게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라고 지시했다.배건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성대호는 다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구해준 사람의 오빠도 병문안 못 하게 하다니... 대체 누굴 경계하는 거야?”그러자 차를 내오던 도우미가 웃으며 설명했다.“저희 대표님께서는 사모님을 매우 아끼십니다. 사모님께서 방금 깨어나셔서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정돈되지 않았을까 봐 두 분이 보시고 놀라실까 봐요.”즉, 아내가 집에서의 편안한 모습이 외부 남자들에게 보여지기엔 부적절하다는 의미였다. 이건 확실한 보호욕이자 소유욕이었다.배건후는 성대호를 한 번 쓱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너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지.”“아니야!”성대호는 심장이 순간적으로 철렁했다.“내내 지유를 감싸고 있었잖아. 또 무슨 사고 친 거 아니야?”성대호는 깨달았다. 배건후는 차 안에서 아무것도 듣지 않은 게 아니라 그들의 대화를 일부러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아니야. 배지유는 아린 씨가 연회에 안 간 게 자기 때문이라고 네가 오해할까 봐 걱정한 거야. 사실은...”하지만 배건후가 피식 콧방귀를 뀌었고 성대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한편 병실 안.윤명희는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듯한 표정이었다.발소리가 병상 옆에서 멈추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여보, 배지유 씨가 당신 보러 왔어.”진범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윤명희의 침대 머리를 높여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그들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배지유는 더욱 자부심이 느껴졌다.자신이 우연히 윤명희를 구한 덕분에 배건후의 큰 사업을 성사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모님.”배지유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배지유라고 불러주세요.”윤
“사실 저는 부족한 게 없지만 진 대표님께서 성의로 주신다면 감사히 받을 순 있을 것 같아요.”배지유의 이 말은 모건 그룹과 협력을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으로 들렸다.하여 진범준은 살짝 미소 지으며 블랙 카드를 내밀었다.“이건 한도가 없는 블랙카드입니다. 배지유 씨의 은혜에 보답하는 작은 성의입니다.”그러자 눈빛이 반짝이더니 배지유는 얼른 카드를 받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그럼 사모님을 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두 사람이 방에서 나오자 성대호는 재빨리 일어섰다.배지유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것을 보고는 안심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혹시라도 배지유가 경솔하게 말을 잘못했을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사모님은 괜찮으셔?”“아주 좋았어.”배지유는 성대호에게 장난스럽게 윙크하며 말했다.“진 대표님,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조심해서 가세요. 배 대표님, 나중에 차 한잔하시죠.”“좋습니다. 또 뵙겠습니다.”그렇게 배건후는 진범준과 다시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건넸다.병실을 나선 후, 성대호가 웃으며 말했다.“칭찬받으니까 그렇게 기뻐?”“당연하지!”배지유는 배건후를 힐끔 보며 불만스럽게 말했다.“우리 오빠는 나 한번도 칭찬해준 적 없거든.”결국 성대호가 대신해 그녀의 편을 들며 말했다.“지유는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일 신경 써. 네가 한마디 칭찬해주면 남들이 열 번 말하는 것보다 효과가 클걸.”곧 배건후의 어두운 시선이 배지유의 얼굴에 떨어졌다.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배지유는 순간적으로 가방을 꽉 쥐었다.“나 피곤해. 먼저 병실로 돌아갈게.”그녀가 입원한 곳도 윤명희와 같은 병원이었다.배건후가 자신을 칭찬해주지 않으니 배지유는 주현정에게 가서 위로를 받으려고 했다.여전히 배건후는 손에 핸드폰을 꽉 쥔 채 있었다.육하경이 보낸 몇 장의 사진을 확인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도아린이 아니었다.도아린이 일부러 자신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그는 한
육하경은 도아린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이분이 내가 전에 말했던 아현 씨야.”“아현 씨?”배건후는 거의 이를 악물며 말했고 복도는 금세 싸늘해졌다.도아린은 얼굴을 돌리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했다. 그때 배건후의 차가운 비웃음이 들려왔다.“결혼해서도 남편 몰래 다른 이름을 사용하다니...”도아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성대호는 코를 만지며 침묵을 유지했다.마침내 육하경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건후야, 너 아현 씨랑 아는 사이였어?”배건후는 한 손을 뻗어 도아린의 허리를 감싸더니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도아린은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배건후는 오히려 더 세게 그녀를 붙잡았다.그는 도아린의 당혹스러운 얼굴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혹시 하경이한테 결혼했다는 말 안 했어?”눈빛이 흔들리며 육하경은 성대호에게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그러자 성대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건후야, 너 결혼할 때 하경이는 다른 지역에 출장 가 있어서 몰랐을 거야. 이분은 건후의 아내 도아린 씨야.”‘아현 씨가 도아린 씨라고?’육하경은 성대호의 고개 끄덕임을 보고 나서야 사실을 확인했다.순간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고 그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연회장에서 찾을 수 없었던 거구나.”배건후는 육하경의 말을 무시하고 도아린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그 귀걸이 안 하고 싶었나 보네? 옷도 바꿔 입고.”도아린은 그를 노려보았다.‘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게 병이라면 어디서 치료받아야 하지?’육하경은 어색하게 손가락을 꼬면서 말했다.“아현... 아니, 아린 씨는 귀걸이를 계속 끼고 있었어. 다만 귀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서 잠시 뺐을 뿐이야.”육하경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배건후는 더욱 차가운 분위기를 내뿜었다. 그는 도아린의 붉어진 귀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알레르기 있으면서 왜 말 안 했어?”“말한다고 해서 귀걸이 끼지 말라고 했을까요?”도아린은 그의 손을 떼려고 했
“내가 두렵긴 뭐가 두려워요!”성대호는 배건후를 빠르게 한 번 쳐다보고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외쳤다.“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쳐요. 하지만 사모님도 거짓말을 할 리는 없잖아요?”도아린은 여전히 냉소를 짓고 있었다.“스스로 거짓말한 거 인정하셨으니 이제 대호 씨 말은 신뢰할 수 없지 않겠어요?” 성대호는 도아린의 날카로운 반박에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주먹을 꽉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순간 도아린은 배건후가 감싸고 있던 팔을 억지로 떼어내며 말했다.“내가 거짓말을 했는지 아닌지는 안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하지만 배건후는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다시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경고했다.“진 대표님 앞에서 장난치지 마.”도아린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아가씨가 날 휴게실에 가둔 것도 장난이 아니고 내 핸드폰을 빼앗은 것도 장난이 아니라고요? 그런데 내가 사실을 말하려고 하면 그게 장난이라고요?”뒤이어 차갑게 덧붙였다.“건후 씨, 참 멋대로네요.”배건후는 냉랭한 얼굴로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육하경이 침착하게 말했다.“사모님께 응급조치를 한 건 분명 아린 씨였어.”그러자 성대호가 다시 맞섰다.“구급차는 지유가 불렀잖아. 병원에 기록도 있어!”바로 이때 육하경의 핸드폰이 울리며 그들의 대화를 가로막았다.“네, 진 대표님. 저는 바로 병실 밖에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육하경은 배건후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난 진 대표님을 뵈러 들어가야 해. 같이 들어갈래?”진범준은 배건후와 성대호가 다시 병실을 찾은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 놀라움은 도아린을 보자 더 커졌다.“이분은...?”“제 아내입니다.”배건후는 무심하게 말했다.“사모님의 사고 소식을 듣고 걱정돼서 함께 왔습니다.”도아린은 속으로 비웃었다.그는 도아린이 윤명희를 구했다는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이 모든 공이 배지유에게 돌아가길 원하고 있는 거겠지. 아니면 이미 사실을
“죄송해요. 제가 급한 마음에 팔찌를 한 상태로 응급처치했네요. 혹시 다치신 데 없을까요?”윤명희는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하경과는 달리 성대호는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몰래 배지유한테 문자를 보냈다.[네가 사모님을 구한 거 맞아?]배지유가 답장 없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배건후는 그만 주먹을 꽉 쥐었다.윤명희의 병실에 온 것이 이번이 두번째였다. 처음에는 동생과 함께, 두번째는 도아린과 함께 찾아왔다.아무리 그래도 모건 그룹의 대표인데 누가 윤명희를 구해줬는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떠돌면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 뻔했다.진범준은 쉰 살 가까이 되는 해남에서 유명한 사업가이자 피라미드 먹이사슬 중에서 가장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그가 육하경한테 연락했다는 것만 봐도 배지유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 뻔했다.도아린이 아니었다면 나중에 진범준과 손잡으려면 하늘의 별 따기였을 것이다.윤명희는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더니 도아린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이게 드세요...”과일 맛나는 캔디였다.윤명희 목에 걸렸던 캔디와 똑같은 것이었다.지금은 시중에서 보기 드문 귤 모양의 캔디였고, 도아린은 어렴풋이 캔디 이름이 기억났다.어릴때 명절만 되면 엄마랑 같이 장 볼 때 늘 이 캔디를 한 웅큼 샀던 기억이 있었다.“감사합니다.”도아린은 포장을 벗겨 입에 넣자마자 셔서 눈을 찡그리고 말았다.“어릴 때 저희 엄마도 이 사탕을 자주 사주셨거든요.”윤명희는 멈칫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도아린은 육하경한테서 윤명희가 아이를 잃어버린 뒤로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정신상태가 안 좋다는 사실이 떠올랐다.하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윤명희를 꽉 끌어안았다.“사모님께서는 좋은 분이셔서 꼭 따님분을 찾으실 거예요.”“네... 찾을 거예요.”윤형희는 울먹거리면서 도아린을 꽉 끌어안았다.그러다 너무 흥분해서인지 쓰러지고 말았다.진범준은 윤명희를 병실로 들여보내고는 뒤돌아 도아린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
“그 말 내가 믿어봤자 진 대표님께서 너를 믿어줄 것 같아? 너희 오빠는 믿어줄 것 같냐고.”배지유는 아무 말 없이 이를 깨물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왜 또 도아린이야! 왜 나랑 죽고 못 살아서 안달인데?’도아린이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구급차만 불렀다는 사실을 알 사람이 없었다.배지유가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다면 윤명희는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왜 도아린은 한것도 없이 칭찬받아야 하는데? 왜 나는 좋은 일을 하면서 욕을 먹어야 하는데?’성대호는 배지유의 악독스러운 표정을 보지 못한 채 부드럽게 위로했다.“오빠 말 들어. 내일 진 대표님께 잘 설명해 드려. 그래도 네가 구급차를 불러드렸잖아. 사모님 은인이나 다름없는 거지. 나이도 어린 네가 먼저 사과를 해야지. 나중에 모건 그룹이 진씨 가문과 손잡으려면 어색한 관계로 남지 말아야지. 아린 씨가 두 집안을 이어주는데 너도 큰 역할을 했어.”배지유는 전화를 끊고 한참 망설여서야 1층으로 내려갔다.속으로 내키진 않았지만 성대호가 한 말이 일리있다고 생각했다.윤명희를 위해 구급차를 불러준 것도 사실이고, 배지유가 들어갔을 때 도아린이 휴게실에 있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도아린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가 윤명희를 살려준 사실도 몰랐고, 일부러 그 공을 빼앗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그 카드를 진범준한테 돌려주면서 어쩌면 배건후와 손잡는 것을 한 번만 고려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되면 도아린이 윤명희의 생명 은인이라고 해도 자기가 모건 그룹의 귀인이 될수 있었다.배지유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윤명희의 병실로 향했다.문을 두드리려고 했을 때, 병실 안에서 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서희랑 닮지 않았어요? 우리 세은이 맞죠?”윤명희는 진범준의 옷깃을 잡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진범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조카가 고모를 많이 닮는다고 하는데 진세은은 어릴때 동생 진서희와 판박이와 다름없었다.최근 몇 년 동안 이목구비가 비슷
도아린은 변슬기를 데리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배지유가 자신을 일부러 모욕하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이곳에 유명 스타들이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스크린에서만 보던 유명인들을 실제로 보니 변슬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두 눈으로는 전부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다소 어색하게 셔츠를 만지작거렸다.아버지가 친구를 만나러 가니 단정하게 차려입으라고 당부했지만, 변슬기는 또 소개팅 자리일 거로 생각하며 일부러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왔다.그녀는 상대가 아버지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한 모습을 좋아하길 바랐다.그러나 여기에서 음료를 나르는 여직원들조차 자신보다 더 격식 있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당황했다.“도 선생님, 저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볼품없는 거 아니에요?”도아린은 그녀의 셔츠 뒷면에 약간의 땀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제가 여분의 드레스를 준비해 놨어요. 갈아입어도 좋아요.”변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일단 아빠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각할게요.”멀리서 변우빈이 그녀를 보고 약간의 타박 섞인 눈빛을 보였지만, 곧 미안하다는 듯 설명했다.“우리 딸은 성격이 참 고집스러워.”그는 변슬기에게 손짓했고 딸이 곁에 앉자 말했다.“내가 단정하게 입고 오라고 했잖아. 그런데 일하는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하니.”변슬기는 당황스러워 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주현정이 보이자 긴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큰일 났다!’문 앞에서 배지유와 다툰 것도 모자라 이번엔 배지유의 엄마까지 만나게 됐다.지난번처럼 자신에게 온화하게 대해줄 리가 없을 것이다.“...네 딸이구나?”주현정은 마치 이해했다는 듯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지난번에 봤을 때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변슬기는 몰래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분 배지유 엄마예요.”변우빈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웃으며 소개했다.“이분은 주현정
배지유가 휠체어를 돌리자마자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배지유?”“변슬기?” 배지유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이 시간에 오다니, 연회가 거의 끝나가잖아.”변슬기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온몸에 땀범벅이었고 앞머리가 하얀 이마에 붙어 있었다.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며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감 있게 말했다.“아니야, 난 사람을 찾으러 온 거야.”이어지는 장면이 바로 도아린이 목격한 것이다.배지유는 휠체어를 움직여 변슬기의 주위를 맴돌면서 눈에 비웃음이 가득했다.“너희 집은 이번 생은 물론이고, 전생에도 이런 호화로운 사람들을 본 적 없을걸? 여기를 시장으로 착각한 거야? 아무나 데려와서 ‘내 삼촌, 내 이모’라고 하면 통할 것 같아? 여기는 모두 톱스타들이야! 너 콘서트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어?”배지유는 입을 가리며 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생활비 벌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주제에 무슨 돈으로 콘서트를 본다는 거야!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기숙사로 돌아가서 기다려. 누굴 보고 싶은지 댓글 남기면 내가 대신 사진 찍어줄게.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돈을 안 받아. 대신 너는 우리 기숙사의 1년 치 청소를 맡고 내 빨래도 다 해야 해. 속옷과 양말도 손빨래로!”변슬기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연예인 보러 온 게 아니야.”“올해 최고의 억지상은 바로 너네!” 배지유는 엄지를 세우며 비웃었다.“여긴 다 연예인들뿐이야. 네가 누굴 찾는다고 하면, 내가 직원한테 말해서 불러줄게.”변슬기는 그녀를 무시하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러자 배지유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해지며 휠체어를 몰아 변슬기에게 돌진했다.거의 부딪힐 뻔한 순간, 휠체어가 갑자기 멈췄다.화가 난 배지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도아린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네가 왜...” 도아린은 왜 자신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건가?
주현정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에 그저 화났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니 그녀의 기분만 풀어주면 도아린이 그 자리를 넘보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현정아, 사람은 성인이 아니니 누군들 실수하지 않겠어?” 배석준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내가 증명해 보일게. 나와 지유야말로 네 뒤를 든든히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그는 배지유를 찾아 그녀를 데리고 주현정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세 식구가 언론 앞에 함께 나타나기만 하면 이혼 소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배씨 가문의 재산에 끼어들 수 없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배지유가 사라진 후였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도아린이 다정하게 위로했다.“배 대표님은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못할 거예요.”“차라리 저 사람이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네.”주현정은 도아린과 함께 인파를 지나갔다.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다소 어색하게 무릎을 문지르며 이따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주현정을 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가 방해되지는 않았어?”“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내 연회에 와줘서 고마워.”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고 다가갔다. 세 사람은 원형 소파에 앉았다.“이쪽은 내 딸 도아린이야. 이분은 변우빈이라고 하고 내 가장 친한 친구야. 아저씨라고 불러.”“아저씨, 안녕하세요.” 도아린은 무심코 상대방을 살펴봤다.변우빈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배석준와 비슷한 체격이었지만 조금 말랐다. 그의 얼굴과 손에는 노동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진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변우빈은 계속 주현정의 눈을 바라봤고 주현정의 미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겨있었다.“네 딸도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주현정이 뒤를 돌아보며 묻
석 대표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앞에 휠체어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요란하게 치장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이분은...”그는 주현정이 이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첫 반응은 배석준이 다른 여자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배석준의 새로운 연인은 주현정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석 대표님, 짓궂으십니다. 방금까지도 저희 딸을 카메오로 요청한다고 하셨으면서...”배석준은 말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그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배지유를 보고 있었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배지유는 엄청 민감해서 의식적으로 치마를 잡았는데 그들이 자신의 얼굴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제야 천천히 손을 떼었다.“배 대표님 따님이 몇 명이세요?”석 대표가 물었다.“... 한 명입니다.”석 대표는 웃어 보이고는 볼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고 그가 떠나자 다른 사람들도 흩어졌다.“아빠! 저 사람들 무슨 뜻이에요?”“...”배석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영문을 알게 되었다.배지유는 휠체어에 앉아있어 시선이 막혔지만, 배석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도아린을 데리고 인사를 나누는 주현정을 보았다.그들이 칭찬하는 사람은 배지유가 아니라 도아린이었다.“지유야, 여기서 아빠를 기대려. 아빠가 가서 엄마를 찾아볼게.”그는 배지유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하고는 빠르게 걸어갔다.“주현정! 당신 지금 지유는 병원에 내버려 두고 도아린을 데리고 연회에 참가하고 있어? 당신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손님들은 배석준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자리를 피했고 주현정의 얼굴에 있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대답했다.“지유는 당신 같은 아빠만 있으면 돼요.”배석준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앞서 당신은 외부인 하나 때문에 나랑 이혼하려고 했고 이제는 이혼 얘기를 하지 않으니 각종 방법으로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고 있어. 당신이 다시 JS 픽처스를 운영하게 되었는데도 나한테 얘기
JS 픽처스의 고위인사는 배석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 또 해외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현정이의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머물다가 가려고 합니다.”배석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평소에 연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주현정이 JS 픽처스에서 지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각종 이유를 찾아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를 거부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카메라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그들은 모두 주현정 덕분에 잘 되었기에 체면은 반드시 살려주어야 했다.“크흠.”배지유는 배석준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헛기침을 했다.“아, 우리 딸이 마침 해남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배석준을 둘러싼 고위인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주현정은 배지유가 연예계의 나쁜 물을 먹을까 봐 현역일 적에 절대 배지유를 데리고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위인사들도 그저 주현정에게 딸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본 적은 없었다.반응이 빠른 누군가가 술잔을 들며 공손하게 말했다.“따님은 주 대표님과 배 대표님의 우수한 점을 다 닮으셔서 단정하고 청초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새로 영입한 신인보다 예쁘신 것 같습니다.”“맞아요. 해남대학교의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시니 예쁘시고 학식도 많으시네요. 지금 업계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인재를 제일 좋아합니다!”배지유는 칭찬을 듣고 얼굴이 발그레해졌고 그녀는 두 손으로 팔걸이를 잡고 살짝 몸을 앞으로 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삐끗해서 일어서서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네요.”“별말씀을요. 발을 삐끗하면 잘 치료해야 해요. 젊고 예쁘신데 후유증을 남기면 안 되죠.”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배지유의 마음속에서는 저주로 들렸다.그녀는 발 한쪽을 다친 게 아니라 다리 하나를 잃었다. 나머지 생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배석준은 배지유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가 난리를 피울까 봐 얼른 다른 곳으로
주현정은 말투가 가라앉았고 표정이 엄숙했다.“남자의 내연녀로 이십몇 년을 있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어른이 화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나. 도아린의 양아버지는 양어머니의 혼수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했어.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딸의 효도를 받을 자격 없어!”현장에는 여자 연예인들도 많았다.같은 딸의 마음으로 이렇게 심란한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그들은 도아린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아린이 양어머니를 위해 복수를 했다고 여겼다.강홍련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아린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방금 자신의 말이 강씨 가문에게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웠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도아린은 단호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강씨 어르신은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씨 어르신께서 좋은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주었는데 당신은 밖에서 어르신의 명성이나 흐리고 다니면 안 되죠. 농부와 뱀의 이야기를 재희 씨도 들어봤을 거로 생각해요.”도아린은 강씨 어르신의 편에 섰는데 강재희는 반박할 수 없었다.여론에서 아버지의 대회에 흑막이 있다는 일로 들끓던 것이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강홍련 저 멍청이 때문에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주현정은 도아린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제 딸이고 JS 픽처스의 후계자예요. 강씨 가문에서 이렇게 제 딸을 치욕스럽게 하다니, 저희 협력은 앞으로 계속하지 않을 생각입니까?”강재희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녀는 도아린이 연회에 참가한 것은 단지 주현정과 예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주현정이 도아린을 딸로 삼고 JS 픽처스의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만약 도아린과 모순이 격화된다면 앞으로의 협력에는 장애가 생길 것이다.“강홍련 씨, 사과해요!”강홍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재희는 지금 자신을
도아린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진열대에 있는 다이아몬드의 빛이 꺾이어 그녀의 눈동자를 비춰 유독 눈부셨다.강홍련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강홍련은 도아린보다 머리 하나쯤 작아서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바라보았는데 도도한 척하는 모습이 광대 같았다.“네가 JS 픽처스에게 ‘봉황의 시대’를 광고하도록 넘겼는데 강씨 가문의 고급 주얼리들은 모두 JS 픽처스의 연예인들이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어. ‘봉황의 시대’와 JS 픽처스의 연예인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봉황의 시대’가 강씨 가문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테지.”이게 바로 연예인을 찾아 광고하는 이유였다.예를 들어 어떤 톱스타가 운동화의 모델이 되었다면 그가 나타났을 때 팬들은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알게 된다. 따로 브랜드를 찾아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도아린은 도덕과 재능을 겸비한다는 말로 강씨 가문에게 치욕을 안겨주었지만 결국은 강씨 가문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강씨 가문에서 이득을 보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도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는 강씨 가문의 사촌이야!”강홍련은 불쑥 얘기했다.“강씨 가문에서 손보미를 밀어준다면 배건후와 결혼할 수 있어. 강씨 가문에서 안씨 가문을 지지한다면 내 아들은 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거야!”“그래서요.”강홍련은 도아린이 모른 척할 줄 몰랐고 그녀의 코에 대고 얘기했다.“그래서 나한테 잘하라고. 그러면 강씨 가문에서는 네가 해남에서 살아나갈 기회라도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대회 성적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너를 디자인 업계에서 쫓아내는 것도 일이 아니지. 내 삼촌 강태식은 이 바닥을 꽉 잡고 있어. 내 삼촌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야. 너의 ‘봉황의 시대’도 잘난 척할 거 없어. 언론에서 만들어준 것뿐이야. 만약 삼촌의 학생들이 다 그게 별로라고 얘기한다면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거야!”많은 손님이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강홍련의 지나친 말에 시선을 두
“아빠가 방법을 대서 가볼게. 너는 오지 마.”배석준은 배지유가 걱정되었다. 지난번에 배지유가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도 돌아와서 다리가 아파 잠이 들지 못했다.배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애원했다.“제 친구들은 제가 아직 안에 갇혀있는 줄 알아요! 아빠랑 제가 함께 엄마의 연회에 간다면 매체에서는 저희 세 식구의 화목한 모습을 찍게 될 것이고 소문들은 자연스레 사그라질 거예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딸의 명성은 도아린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돌이킬 방법을 계속 찾지 않는다면 배지유가 해남대학교로 돌아갔을 때 반드시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당할 것이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메이크업과 코디를 해줄게.”배석준이 데리고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지민이었다.김지민은 연예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 참석하는 연예인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알아냈다. 배지유는 똑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됐고 다리의 흉터를 가릴 수 있으면서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했다.이 부분에서 김지민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배지유는 만족스럽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그녀의 치마를 들지 않는 이상 그녀가 다리 하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발을 삐끗해서 휠체어를 탔다고 하면 될 것이다.이런 장소에 김지민은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므로 부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연회장의 중심에는 도아린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고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는 현장에 있는 연예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여자의 아름다움이 너무 지나쳤다.연예계의 스타들은 자주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에 참가하므로 어떻게 분위기를 휘어잡는지를 잘 알고 자신이 어느 각도에서 가장 예쁘게 찍히는지도 알고 있었다.도아린은 처음 보는 얼굴이고 업계에 대해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 자신감이 넘쳤다.그녀가 스크린 앞으로 가서 사인할 때 스크린에는 ‘봉황의 시대’의
도아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녀의 덤덤한 눈빛은 ‘라윤주’의 이름을 듣고 초점을 잃었다.“뭐라고요?”“...”육하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가 육하경이 말을 이었다.“향 주머니로 화를 면한 것은 우연이에요. 정말 저를 도왔던 것은 세인트존스 호텔의 책임자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죠.”육하경은 입꼬리를 올려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어르신들을 3일이나 괴롭혀서야 알아냈어요. LY에서 저를 후임자로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육하경의 학업은 각 부분에서 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육씨 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빽빽이 필요했다.육민재를 예로 들어보면 능력은 가장 뛰어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맏아들의 장손 혈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최고로 좋은 자원과 경험을 쌓을 기회들을 누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그는 육씨 가문의 후계자일 것이다.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려면 모든 게 알맞게 부합되어야 한다.육하경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었고 육씨 가문의 산업에 기대를 두지 않아 오랜 시간 밖에서 떠돌며 공부를 했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세인트존스 호텔의 관리 권한이 그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놀란 마음으로 육하경은 전임자를 찾아갔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야 LY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육씨 가문 뿐만 아니라 많은 명문가가 LY와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인재를 추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었기에 자연스레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육하경은 그때 손에 향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전임자가 이상해하며 무늬를 찍어서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추천서’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경 씨가 말하는 그 이야기에도 관심 없습니다.”도아린은 책을 육하경에게 돌려주고는 차 문을 열었다.“도아린 씨!”육하경은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손을 허공에 멈추고 결국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육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