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건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말도 안 돼.”“뭐가 말도 안 돼요!”배지유의 눈가가 붉어졌다.“오자마자 새언니가 어딨냐만 물어보고... 오빤 왜 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해요?”“또 무슨 사고 쳤냐고 물어볼까, 그럼?”“오빠 눈엔 내가 항상 사고만 치는 애로 보여요?”배지유는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냈다.“아까 난 휴게실에서 사람도 구했다고요!”그러자 배건후는 피식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사람을 구했다고?”“그래요! 됐어요! 난 못해요! 난 새언니 화나게 할 줄만 알지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됐어요?”배건후는 배지유의 눈을 몇 분 동안 응시하더니 몸을 돌려 걸어갔다.그가 떠나자마자 배지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번엔 운이 좋았다.도아린에게 문을 열어주러 갔을 때 안에 기력이 약해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원래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 여자가 계속해서 감사 인사를 하길래 어쩔 수 없이 좋은 일을 하는 척 받아들였다.덕분에 배지유는 다행히 배건후의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그때 재벌가 여성들이 다시 다가왔다.“대표님이 칭찬해 주셨죠? 이제 갓 졸업했는데 모건 그룹의 이미지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셨잖아요.”“어디서 들었는데 진 대표님께서 연성에서 프로젝트를 준비한대요. 모건 그룹이랑 협력하게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이 말에 배지유는 마음이 동했다.“진 대표님께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에요?”“그럼요. 해남의 스카이 빌딩도 진 대표님을 끌어들이려 했대요. 진 대표님께서 연성에 온 건 협력자를 찾으려는 게 틀림없어요.”“지유 씨가 진 대표님의 아내분을 구했으니 무슨 요구를 해도 지나치지 않을걸요?!”“맞아요. 게다가 하임리히법까지 할 줄 알았다니! 진짜 대단해요.”배지유는 속으로 흐뭇해졌다.‘만약 진 대표님과 협력할 수 있다면 내가 서류를 유출한 일도 오빠에게 말할 수 있을 거야. 공이 있으니 오빠가 크게 나무라지 않겠지.’“먼저 이야기 나누세요. 저 전화 한 통만 걸고 올게요.”배지유는 고개를
여자는 반응할 새도 없이 머리카락이 잡혔다.그 힘이 너무 세서 두피가 벗겨질 뻔했다.“너 한 번 더 하경 오빠 귀찮게 하면 내가 제대로 혼내줄 테니까 두고 봐!”“배지유 씨?”배지유의 눈은 질투로 붉게 물들어 더 이상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여자의 얼굴을 향해 또다시 손을 휘둘렀다.“내가 누군지 알긴 알아?!”“지유 씨, 저예요!”여자는 배지유의 손을 붙잡고 얼굴을 들어 보였다.“아까 지유 씨 대신 도아린을 혼내준...”“닥쳐!”배지유는 그녀를 알아보았다.얼굴이 좀 부어 있었지만 여전히 아첨하는 표정이었다.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백 번을 도와준다 해도 육하경을 탐내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네가 무슨 일을 했든지 상관없어. 너가 은하계를 구했더라도 하경 오빠를 귀찮게 할 수는 없어. 하경 오빠는 내 거니까!”“배지유.”육하경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그만해.”“난 장난이 아니에요!”창백했던 얼굴이 다시 붉어지며 배지유는 화를 냈다.“하경 오빠, 내가 겨우 우리 오빠한테 부탁해서 여기 온 건데 어떻게 다른 여자랑 춤을 출 수가 있어요?”육하경은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이분이 나한테 옷을 준 건 아까 실수로 나한테 과일 주스를 쏟아서 그런 거야. 오해하지 마.”육하경의 말에 여자는 속으로 생각했다.‘지금 나 변호해주는 거야? 아니, 이건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잖아!’배지유의 눈은 금세 커졌다.“이런 교활한 수작을 부릴 줄이야!”곧 배지유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아 테이블에 박으며 외쳤다.“네가 감히 발칙하게 굴어? 제대로 혼내줄게!”“아!”테이블 위에 있던 술병이 땅에 떨어져 깨지며 요란한 소리가 났고 연회장은 엉망진창이 되었다.주변의 손님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피했고 어떤 이들은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떤 이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했다.“배지유!”성대호가 다급히 달려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어서 그만둬!”그는 배지유에게 눈짓을 보내며 진정하라고 했다. 그러나 배지유
“안 돼!”배지유는 미친 듯이 달려와 육하경의 명함을 빼앗아 두 동강 내며 외쳤다.“어떻게 저 여자한테 개인 번호를 줄 수 있어요?!”결국 배건후는 배지유의 손목을 붙잡고 강제로 연회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책임자.”책임자를 부르는 육하경의 눈빛에는 평소의 부드러움이 사라진 상태였다.“이분을 병원에 모셔다드리세요. 치료비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육 팀장님...”“이쪽으로 가시죠...”그렇게 연회 책임자는 여자를 데리고 뒷문으로 나갔다.성대호는 육하경에게 뭔가 말하려다 배지유가 또 혼날까 봐 입을 다물고 뒤따라 나갔다.“건후야, 너 지유 너무 겁주는 거 아니야?”성대호는 배지유를 뒤로 숨기며 말했다.“지유가 잘못한 건 맞지만 제대로 타이르고 말해줘야지.”그는 한숨을 쉬며 배지유를 보고 답답한 듯 말했다.“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때리면 안 돼. 그 사람도 연회장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면 분명 신분이 보통이 아닐 텐데 네가 공개적으로 창피를 주면 건후가 회사 관리하기 어렵잖아.”“...”하지만 배지유는 억울한 듯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그 여자가 먼저 하경 오빠를 꼬셨잖아...”“하경이는 뛰어나니까 세인트존스 호텔 총괄 팀장 자리에 오른 거야. 정말 하경이랑 함께하고 싶은 거라면 하경이의 좋은 조력자가 되어야지 발목을 잡는 사람이 되면 안 돼.”배지유는 만약 배건후가 성대호처럼 자신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더라면 자기 말을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배건후는 조금 전 너무 무섭게 혼내며 소리쳤다. 그래서 배지유는 더욱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배지유는 배건후와 대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그 주위에 감도는 차가운 기운이 가까이 다가가기를 망설이게 했다.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자신에게 이렇게 화가 난 이유가 너무 큰 실수를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도아린을 배건후에게 넘기지 않아서 화풀이를 하는 건지 말이다.그때 핸드폰이 울렸고 배지유는 화면을 보고 눈이 번쩍였다.그녀는 웃으며 전화를
“굳이 만나지 않아도 돼요.”도아린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그저 작은 도움을 드린 것뿐이에요.”“생명보다 중요한 건 없죠.”육하경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분께도 참 안타까운 사연이 있더라고요.”진 대표의 아내라는 윤명희는 두 아들을 낳고 셋째 아이로 어렵게 딸을 얻었지만 첫돌 잔치에서 딸을 당했다고 한다.그 사건 이후로 윤명희는 우울증에 걸려 정신 상태가 오락가락했다. 진씨 가문은 막대한 돈을 들여 딸을 찾았지만 20년이 넘도록 찾지 못했다.일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했지만 윤명희는 언젠가 딸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딸이 좋아했던 사탕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딸을 찾으면 그 사탕을 주고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싶어 했다.도아린은 자신의 어머니도 양수 색전증으로 돌아가신 일을 떠올리며 윤명희의 슬픔이 깊이 마음에 와닿는 듯했다.그녀는 가슴이 아파져 윤명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알겠어요. 만나러 갈게요.”...“빨리 말해봐. 어떻게 사람을 구한 거야?”차 안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조수석에 앉은 성대호가 먼저 배지유에게 말을 걸었다.그러자 배지유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그때 좀 다쳐서 휴게실에서 상처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소파에 누군가가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하임리히법으로 그 사람을 구했지.”성대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린 나이에 하임리히법도 할 줄 알아? 나도 못 하는데.”“우리 학교에서 가르쳐줬어. 게다가 TV에서도 많이 봤잖아.”배지유는 인터넷에서 배운 방법을 흉내 내며 말했다.“이렇게, 힘을 줘서 확 눌러.”성대호는 뒤를 돌아 배건후를 봤지만 배건후는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 아무 말도 듣지 않는 듯했다.“아린 씨가 그리 쉽게 사라지겠어? 지유가 사람 목숨을 구했는데 넌 칭찬도 안 해?”성대호가 배건후에게 말했다.하지만 배건후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무슨 소식 있어?”“객실에
진범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배지유를 향해 말했다.“제 아내가 방금 깨어났으니 두 분은 이쪽에서 잠시 쉬세요. 제가 배지유 씨를 데리고 아내에게 가겠습니다.”진범준은 배지유에게 안쪽 방으로 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도우미에게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라고 지시했다.배건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성대호는 다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구해준 사람의 오빠도 병문안 못 하게 하다니... 대체 누굴 경계하는 거야?”그러자 차를 내오던 도우미가 웃으며 설명했다.“저희 대표님께서는 사모님을 매우 아끼십니다. 사모님께서 방금 깨어나셔서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정돈되지 않았을까 봐 두 분이 보시고 놀라실까 봐요.”즉, 아내가 집에서의 편안한 모습이 외부 남자들에게 보여지기엔 부적절하다는 의미였다. 이건 확실한 보호욕이자 소유욕이었다.배건후는 성대호를 한 번 쓱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너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지.”“아니야!”성대호는 심장이 순간적으로 철렁했다.“내내 지유를 감싸고 있었잖아. 또 무슨 사고 친 거 아니야?”성대호는 깨달았다. 배건후는 차 안에서 아무것도 듣지 않은 게 아니라 그들의 대화를 일부러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아니야. 배지유는 아린 씨가 연회에 안 간 게 자기 때문이라고 네가 오해할까 봐 걱정한 거야. 사실은...”하지만 배건후가 피식 콧방귀를 뀌었고 성대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한편 병실 안.윤명희는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듯한 표정이었다.발소리가 병상 옆에서 멈추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여보, 배지유 씨가 당신 보러 왔어.”진범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윤명희의 침대 머리를 높여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그들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배지유는 더욱 자부심이 느껴졌다.자신이 우연히 윤명희를 구한 덕분에 배건후의 큰 사업을 성사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모님.”배지유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배지유라고 불러주세요.”윤
“사실 저는 부족한 게 없지만 진 대표님께서 성의로 주신다면 감사히 받을 순 있을 것 같아요.”배지유의 이 말은 모건 그룹과 협력을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으로 들렸다.하여 진범준은 살짝 미소 지으며 블랙 카드를 내밀었다.“이건 한도가 없는 블랙카드입니다. 배지유 씨의 은혜에 보답하는 작은 성의입니다.”그러자 눈빛이 반짝이더니 배지유는 얼른 카드를 받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그럼 사모님을 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두 사람이 방에서 나오자 성대호는 재빨리 일어섰다.배지유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것을 보고는 안심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혹시라도 배지유가 경솔하게 말을 잘못했을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사모님은 괜찮으셔?”“아주 좋았어.”배지유는 성대호에게 장난스럽게 윙크하며 말했다.“진 대표님,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조심해서 가세요. 배 대표님, 나중에 차 한잔하시죠.”“좋습니다. 또 뵙겠습니다.”그렇게 배건후는 진범준과 다시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건넸다.병실을 나선 후, 성대호가 웃으며 말했다.“칭찬받으니까 그렇게 기뻐?”“당연하지!”배지유는 배건후를 힐끔 보며 불만스럽게 말했다.“우리 오빠는 나 한번도 칭찬해준 적 없거든.”결국 성대호가 대신해 그녀의 편을 들며 말했다.“지유는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일 신경 써. 네가 한마디 칭찬해주면 남들이 열 번 말하는 것보다 효과가 클걸.”곧 배건후의 어두운 시선이 배지유의 얼굴에 떨어졌다.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배지유는 순간적으로 가방을 꽉 쥐었다.“나 피곤해. 먼저 병실로 돌아갈게.”그녀가 입원한 곳도 윤명희와 같은 병원이었다.배건후가 자신을 칭찬해주지 않으니 배지유는 주현정에게 가서 위로를 받으려고 했다.여전히 배건후는 손에 핸드폰을 꽉 쥔 채 있었다.육하경이 보낸 몇 장의 사진을 확인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도아린이 아니었다.도아린이 일부러 자신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그는 한
육하경은 도아린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이분이 내가 전에 말했던 아현 씨야.”“아현 씨?”배건후는 거의 이를 악물며 말했고 복도는 금세 싸늘해졌다.도아린은 얼굴을 돌리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했다. 그때 배건후의 차가운 비웃음이 들려왔다.“결혼해서도 남편 몰래 다른 이름을 사용하다니...”도아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성대호는 코를 만지며 침묵을 유지했다.마침내 육하경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건후야, 너 아현 씨랑 아는 사이였어?”배건후는 한 손을 뻗어 도아린의 허리를 감싸더니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도아린은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배건후는 오히려 더 세게 그녀를 붙잡았다.그는 도아린의 당혹스러운 얼굴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혹시 하경이한테 결혼했다는 말 안 했어?”눈빛이 흔들리며 육하경은 성대호에게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그러자 성대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건후야, 너 결혼할 때 하경이는 다른 지역에 출장 가 있어서 몰랐을 거야. 이분은 건후의 아내 도아린 씨야.”‘아현 씨가 도아린 씨라고?’육하경은 성대호의 고개 끄덕임을 보고 나서야 사실을 확인했다.순간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고 그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연회장에서 찾을 수 없었던 거구나.”배건후는 육하경의 말을 무시하고 도아린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그 귀걸이 안 하고 싶었나 보네? 옷도 바꿔 입고.”도아린은 그를 노려보았다.‘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게 병이라면 어디서 치료받아야 하지?’육하경은 어색하게 손가락을 꼬면서 말했다.“아현... 아니, 아린 씨는 귀걸이를 계속 끼고 있었어. 다만 귀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서 잠시 뺐을 뿐이야.”육하경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배건후는 더욱 차가운 분위기를 내뿜었다. 그는 도아린의 붉어진 귀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알레르기 있으면서 왜 말 안 했어?”“말한다고 해서 귀걸이 끼지 말라고 했을까요?”도아린은 그의 손을 떼려고 했
“내가 두렵긴 뭐가 두려워요!”성대호는 배건후를 빠르게 한 번 쳐다보고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외쳤다.“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쳐요. 하지만 사모님도 거짓말을 할 리는 없잖아요?”도아린은 여전히 냉소를 짓고 있었다.“스스로 거짓말한 거 인정하셨으니 이제 대호 씨 말은 신뢰할 수 없지 않겠어요?” 성대호는 도아린의 날카로운 반박에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주먹을 꽉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순간 도아린은 배건후가 감싸고 있던 팔을 억지로 떼어내며 말했다.“내가 거짓말을 했는지 아닌지는 안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하지만 배건후는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다시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경고했다.“진 대표님 앞에서 장난치지 마.”도아린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아가씨가 날 휴게실에 가둔 것도 장난이 아니고 내 핸드폰을 빼앗은 것도 장난이 아니라고요? 그런데 내가 사실을 말하려고 하면 그게 장난이라고요?”뒤이어 차갑게 덧붙였다.“건후 씨, 참 멋대로네요.”배건후는 냉랭한 얼굴로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육하경이 침착하게 말했다.“사모님께 응급조치를 한 건 분명 아린 씨였어.”그러자 성대호가 다시 맞섰다.“구급차는 지유가 불렀잖아. 병원에 기록도 있어!”바로 이때 육하경의 핸드폰이 울리며 그들의 대화를 가로막았다.“네, 진 대표님. 저는 바로 병실 밖에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육하경은 배건후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난 진 대표님을 뵈러 들어가야 해. 같이 들어갈래?”진범준은 배건후와 성대호가 다시 병실을 찾은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 놀라움은 도아린을 보자 더 커졌다.“이분은...?”“제 아내입니다.”배건후는 무심하게 말했다.“사모님의 사고 소식을 듣고 걱정돼서 함께 왔습니다.”도아린은 속으로 비웃었다.그는 도아린이 윤명희를 구했다는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이 모든 공이 배지유에게 돌아가길 원하고 있는 거겠지. 아니면 이미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