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준이 다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설아와 그녀의 어머니는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진수미는 강해숙이 친정에서 데려온 하인으로 유 씨 가문에서 수십 년 동안 일해 왔다. 그래서 당시 유 씨 가문의 어른들은 진수미를 전적으로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다른 하인들이 진수미와 진설아가 도둑질뿐만 아니라 주인을 배신하는 일도 저질렀다고 강하게 주장하자 결국 강해숙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진수미는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진설아도 유민준에게 접근해 상류층으로 올라서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소식은 강해숙의 분노를 일으켰다. 강해숙은 가문의 명예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고 하인이 주인 자리를 노리거나 불륜을 저지르는 일을 가장 혐오했다. 진설아가 주인의 침대를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해숙은 크게 화를 내며 진설아가 다시는 유 씨 가문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진설아가 뱃속에 유 씨 가문의 아이를 품고 있든 없든 그녀는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한이준은 유강후의 시선이 계속 진설아의 배에 머물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그 시선 속에 담긴 깊은 의미가 그를 소름 돋게 했다. 한이준은 얼굴을 찌푸리며 유강후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강후야, 정신 차려.” 유강후는 시선을 거두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차갑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의자에 앉으며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유민준이 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 진설아는 유강후가 자신을 계속 쳐다보는 것을 느꼈고 아까 얼굴을 닦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비록 눈부신 미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연약하고 애처로운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유강후가 연약한 여성을 좋아한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나은별도 그런 유형이었고 그가 거둬들인 온다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처럼 지저분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좋은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었다. 그녀
진설아는 황급히 말했다. “어떤 존건이든 상관없어요. 제발 아이만 낳게 해주세요.” 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넌 이 아이가 유 씨 가문의 아이라는 말을 절대 해서는 안 돼. 이 아이는 유민준과 아무 상관도 없어.” 진설아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분명히...” 유강후는 그녀의 말을 끊고 냉정하게 말했다. “넌 아이만 낳고 떠나면 돼. 그리고 영원히 경원시에 다시 돌아오면 안 돼.” 진설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유강후가 무슨 뜻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내가 너에게 큰돈을 줄게. 앞으로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거야.” 진설아는 얼떨떨했다. “셋째 도련님...” 유강후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100억!” 진설아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100억! 그녀는 유강후가 이렇게 후하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 씨 가문은 분명히 부유한 가문이지만 가장 큰 장점은 권력에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최고 수준의 가문은 아니었다. 유하령과 그들이 평소에 사용하는 것들은 대부분 유강후가 관리하는 자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진설아는 유 씨 가문에서 자라며 많은 고위 인물들을 보아왔지만 그녀는 하인의 딸일 뿐이었다. 물질적으로는 그다지 풍족하지 않았고 대개는 유하령이 쓰다 버린 물건들을 쓰곤 했다. 그런데 지금 제시한 100억이라면 남은 생애를 충분히 호화롭게 보낼 수 있는 돈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멍해졌다. 유강후는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눈에 싫증 난 기색이 스쳤다. “200억!” 진설아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유강후를 믿기지 않는 눈으로 바라봤다. 이건 그녀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유하령조차도 이렇게 많은 돈을 손에 쥐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유강후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를 낳으면 바로 경원시를 떠나. 다시는
유강후는 자리에 앉았고 눈에 피로감이 가득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다 신경 쓸 수 없어. 온다연이 아이가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되면 견디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돼.” 한이준이 분노하며 말했다. “그래도 아무 아이나 데려다줄 수는 없잖아!” 유강후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담배를 하나 피웠다. 담배 한 개비가 다 탈 때까지 침묵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내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어. 이건 충동적인 결정만은 아니야.” 그는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짓눌렀고 한이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유민준은 형이 이미 망쳐 놓았어. 유민준은 유 씨 가문을 지탱할 능력이 없어. 유 씨 가문의 사업도 그 사람의 손에 맡길 수 없어.” 한이준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네가 이 아이를 키우겠다는 거야?”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 씨 가문은 한 명의 책임자가 필요해. 아버지도 이미 60세가 넘으셨고 형은 별 능력이 없어. 유민준은 더 말할 것도 없지. 내가 유 씨 가문을 떠나려면 뭔가 책임질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야 해.”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고통과 불안함을 억눌렀다. “나와 온다연이 언제 아이를 가질지 알 수 없고 설사 아이가 생긴다고 해도 우리의 아이는 유 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을 거야. 그들은 강 씨 가문에서 교육받고 자라고 나와 강 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거야. 그 사업은 매우 커서 유 씨 가문의 것 따위는 신경 쓸 필요 없어.” 한이준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경원시를 떠나려는 거야?” “경원시는 온다연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줬어. 난 다연이를 데리고 여길 떠나려 해. 강 씨 가문으로 가서 앞으로는 자주 돌아오지 않을 거야.” 한이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쳤어?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미래 그룹은 엄청난 그룹이고 주된 사업도 아시아에 있는데 네가 북아메리카로 돌아가겠다고?” “정말 미쳤어. 완전히 미친 거야!
이틀 동안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먼저 주한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다음으로는 온다연이 유산했고 이제 아이까지 죽고 말았다. 이 정도 일들이 보통 사람에게 일어났다면 이미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유강후는 낮게 외쳤다. “넌 몰라. 꺼져! 나가! 더 이상 너를 보고 싶지 않아!” 한이준은 달려들어 그의 옷깃을 잡고 격렬하게 외쳤다. “네가 여자를 위해 무너진다면 내가 먼저 너를 부숴버릴 거야!” 유강후는 그를 강하게 밀쳐내며 말했다. “만약 임혜린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는데 그 사람이 네가 아니고 너희 아이가 이렇게 죽었다면 너는 나보다 더 미쳤을 거야!” 한이준은 지금 오직 유강후의 생각을 바로잡고 싶어서 말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소리쳤다. “헛소리 마! 나는 누구 때문에 내가 이룬 것들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누구도! 임혜린은 더더욱 아니지. 임혜린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저 장난일 뿐이야!” 그때 문밖에서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이준은 급히 뒤돌아보았다. 임혜린이 언제 문밖에 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발밑에는 깨진 유리잔이 있었다. 그녀는 한이준을 무섭게 바라보고 있었고 그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한이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왔어?” 임혜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방금 왔어. 계속 이야기해.” 그 말을 마치고 그녀는 재빨리 돌아서서 떠나버렸다.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서 빨리 설명해!” 한이준은 잠시 찡그리다가 그녀를 따라갔다. 한이준이 떠난 후 유강후는 의자에 오래도록 침묵하며 앉아 있었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려 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 채 그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는 추운 날씨에도 차가운 물을 틀어놓고 얼음장 같은 물로 자신의 신경을 계속 자극했다. 유강후는 자신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놓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온다연과의 관계도 절벽 끝에
유강후는 손이 얼어붙었다.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처음 느껴보는 분노가 솟아올랐다.유강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노려보며 그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았다.그녀의 마음속에 들어선 누군가가 있다.하지만 그게 본인이 아니라는 걸 유강후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어쩌면 그 사람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곁을 지켜주었던 주한일지도 모른다.유강후는 미칠 것만 같았다.그녀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눈길만 돌려도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유강후는 순간 본인의 마음속에 악마가 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에는 온갖 피비린내 나는 생각들뿐이었고 그 생각을 곱씹어볼수록 저도 모르게 겁이 났다.유강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유강후는 목을 졸라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이렇게 하면 적어도 그녀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갈 일도 없고, 평생 옆에 둘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유강후는 비틀거리며 사무실로 향했다.문을 들어서자 테이블 위에는 온갖 사진이 무더기로 놓여있었다.은행 레스토랑에서 주희가 온다연에게 집어던졌던 그 사진들로 추정된다.유강후는 사진들을 한참 쳐다보다가 제일 위에 있는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사진 속의 온다연은 열네다섯 살쯤 된 모습이었는데 말끔한 교복을 입고 앞머리를 내린 채 까만 눈망울로 활짝 웃고 있었다.온다연은 머리를 살짝 옆으로 기울여 옆에 있는 남자아이를 보고 있었다.그 남자는 역시나 주한이다.주희와 매우 닮아있었는데 깨끗하고 해맑은 모습은 소년미가 가득했다.그는 새끼 고양이를 품에 안고 온다연과 서로 눈을 마주 본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사진 속의 두 사람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단어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풍겼다.유강후는 손발이 시리고 가슴에 피가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그는 죽어라 사진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손을 뻗더니 사진을 여러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었다.그러고선 또 다른 사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진 두 장조차 복구시키지 못했다.날이 저물어갈 무렵에 장화연이 들어왔다.문을 열자 유강후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작업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의 발 밑에는 갈기갈기 찢긴 사진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장화연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서 사진 한 조각을 주었는데 교복의 치맛자락만 조금 보였다.유강후가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장화연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가 유강후와 유연서를 돌보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겨우 몇 살이었다.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어릴 때부터 과묵한 유강후는 가끔 유연서가 있을 때만이 수다를 떨며 웃곤 했다.유연서가 죽고 난 이후 그의 말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감정 기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반응이 전혀 없었다.게다가 어린 시절 유씨 가문과 강씨 가문의 후계자로 키워져 일반인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훈련을 받았다.지식수준과 체력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과 짧은 시간에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훈련을 수없이 반복했다.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매우 훌륭하고 빛나는 후계자가 되었다.결단력 있는 행동과 뛰어난 능력은 유씨 가문과 강씨 가문을 또 다른 정상으로 이끌었다.후계자 유강후는 모두의 칭찬을 받았지만 평범한 인간 유강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그 누구도 유강후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조차도 몰랐다.원하는 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이 유강후에게 가르쳐준 인생의 철학이다.일적으로는 대체불가한 능력자가 맞지만 사랑이나 감정관련해서는 백지상태나 다름없다.현시점 가장 큰 문제는 일적으로 사용한 수법을 온다연에게 적용했다는 것이다.장화연은 자신이 어릴 적부터 키운 대단한 아이가 초라한 모습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게 몹시 마음이 쓰라렸다.이 상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안 섰을 수도 있다.그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건 너무 기뻐할 일이지만, 그 감정으로
1층 병동. 검사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진설아는 몸을 씻기 위해 다시 욕실로 향했다. 곧 손에 넣을 200억만 생각해도 기분이 좋은지 시도 때도 없이 입에 귀에 걸렸다. 목소리는 전보다 훨씬 커졌고 프런트 간호사에게 립스틱을 빌려 가볍게 화장하기도 했다. 그녀는 수소문 끝에 이 병원이 유강후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애인을 위해 특별히 지은 병원이라고 한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진설아는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얼마 전 유강후에게 애인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저 루머일 뿐이라고 생각해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러다가 병원 간호사들이 수다 떠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고 비로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유강후가 애인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말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왜냐하면 뱃속의 아이를 유강후가 키우는 한, 그에게 다가갈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진설아는 자신감이 생긴 듯 거울을 들여다보고는 어느 정도 외모가 회복된 것 같아 만족스럽게 병원을 돌아다녔다. 3층과 4층은 마음대로 드나드는 것이 엄격히 금기된 곳이지만 진설아는 프런트 간호사들이 한눈판 틈을 타 몰래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이 얼마나 좋은지 구경하는 것보다 유강후의 애인이 누구인지 더 궁금했다. ‘나은별이랑 많이 닮았으려나?’ 사실 조금 겁도 났지만 뱃속의 아이가 유강후에게 선택됐다는 생각만으로 의지할 곳이 있다고 느꼈다. 위층으로 올라가서야 그곳이 아래층과 사뭇 다르다는 걸 몸소 느꼈다. 여긴 병원이라기보단 정원에 가까웠다. 고급스럽고 우아하며, 복도에는 푹신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었다. 진설아는 질투심이 불타올랐다. ‘역시 듣던 대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네?’ 이제 막 돌아다니려고 두 걸음을 떼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간호사들을 보고 황급히 구석으로 숨었다. 간호사들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오후 내내 자다가 이제 막 깨셨는데 왜 아무것도 안 드시지? 배 안고픈 가? 참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랫배를 만졌고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진설아는 충격으로 인해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질투할 정도로 아름답고 눈부신 이 얼굴은 온다연이 아니면 누구겠는가. “네가 왜 여기 있어?” 온다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진설아를 바라봤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불과 1초 만에 진설아는 깨달았다. 온다연과 유강후가 서로 만나고 있다는 것을. 비록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결국 유강후는 온다연의 아저씨다. “너랑 유 대표님 설마...” 온다연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뚫어져라 그녀의 배를 바라봤다. “민준 오빠 아이야?” 유민준이라는 이름을 언급한 순간 진설아의 분노 발작 버튼이 눌렸다. “그 사람이랑 상관없거든?” 진설아는 곧 손에 넣을 200억을 생각하며 의기양양했다. “이거 유...” 말하려던 순간 유강후의 명령이 떠오른 듯 재빨리 말을 거두었다. “아니야. 이건 말 못 해.”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온다연은 목소리마저 바뀌었다. “유강후 아이야?” 진설아는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온다연. 난 네가 유 대표님한테 꼬리 칠 줄은 정말 몰랐어.” 진설아는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고씨 가문의 멸망, 이씨 가문의 몰락, 유하령의 실패, 심지어 유민준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된 것도 전부 온다 연때문이었다. 진설아는 온다연이 그녀에게 선물해 준 팔찌가 떠올랐다. 그 2억짜리의 팔찌로 인해 어머니는 감옥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부잣집 사모님이 되려던 그녀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 모든 게 유강후가 온다연을 위해 한 일이다. 진설아는 생각하면 할수록 증오심과 질투심이 불타올랐다. ‘내가 왜 미친 X 때문에 이런 꼴을 당해야 돼?’ 외모는 비슷하지만 집안 출신은 온다연보다 나았기에 본인이 유강후 같은 남자를 얻지 못한 게 너무 한스러웠다. 그녀는 억제할 수 없는 증오의 눈빛으로 온다연을 바라봤다. “유 대표가 그때 널 괴롭혔던 사람들을 모조리 처리했어. 감옥 들어간 사람도 있고
술이 준비된 곳으로 걸음을 옮기니, 사람이 조금 뜸했다.진시현은 유강후의 팔을 조심스럽게 놓으며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우리가 이렇게 있으면 사모님께서 보시고 오해하시는 건 아닐까요?”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지금까지 잘 해왔어.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오늘 맡은 역할만 제대로 해.”그는 방금 전 험담을 늘어놓던 사람들 쪽을 아주 잠깐 바라보더니 차가운 말투로 덧붙였다.“아까 수군거리던 사람들 찍어서 이권에게 보내서 처리하게 해.”진시현은 즉시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녀가 살짝 고개를 들며 긴장된 표정을 띠었다.“김원도가 왔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다시 유강후의 팔을 친밀하게 잡고, 그의 몸에 기댔다.애교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강후 씨, 저 조금 추워요.”유강후는 손짓하자마자 누군가 부드러운 캐시미어 숄을 가져왔다.그는 직접 숄을 집어 들고 진시현의 어깨에 다정하게 걸쳐주었다.그리고 숄을 걸쳐주며 살짝 몸을 기울여, 마치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조심해. 저 근처에도 몇 명이 있어.”진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때 김원도가 다가왔다.그는 진시현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유 대표, 이분은 누구지?”유강후는 진시현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김씨 집안 사람이라면 강씨 집안의 휘장을 모를 리가 없겠지. 내 약혼녀야.”김원도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쓰다듬으며 낮게 웃었다.“유 대표는 정말 복이 많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곁에 있으니 오늘 밤에도 많은 여성분들이 마음 아파하겠어.”유강후는 김원도의 말을 무시한 채, 시선을 그에게서 돌려 방금 막 들어온 다른 남자를 바라보았다.그 남자는 김원도와 닮았지만, 그의 음험한 기운은 전혀 없었다.그는 유강후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원도에게 다가갔다.“형, 형도 여기 있었어?”김원도는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다.“김원혁, 네가 왜
비밀스럽게 진행되었지만, 결국 소문은 새어 나갔고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해 질 무렵, 유강후와 진시현이 뉴월드 호텔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그 자리는 단숨에 술렁거렸다.유강후는 말할 것도 없이 경원시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빛나는 존재였다.그는 권력자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인물로, 그의 출현은 곧바로 주목을 끌었다. 연회 주최자인 주경한은 유강후를 보자마자 반갑게 달려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유 대표님,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요즘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제 연회에 참석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그가 한 발짝 더 다가서며 유강후의 옆에 서 있는 진시현에게 눈길을 돌렸다.그리고 단번에 그녀의 가슴 위에 달린 블루 사파이어 브로치를 알아차렸다.조명 아래에서, 브로치 가장자리의 Y 모양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주경한은 이 바닥에서 감각이 빠르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그는 한눈에 이것이 강씨 집안의 여주인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임을 알아차리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 이분이 바로 사모님이시군요!”그러나 유강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단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주경한은 이미 소문으로 유강후가 요즘 한 아가씨를 매우 애지중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그녀가 강씨 집안 여주인의 물건을 사용할 정도라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혹시 유 대표님, 곧 결혼이라도 하시려는 건가요?”유강후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곧 합니다.”주경한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그럼 제가 빨리 축의금을 준비해야겠네요.”그는 진시현을 보며 말을 이었다.“온다연 씨 되시죠? 대표님께서 아주 각별히 아끼신다고 들었습니다...”진시현은 유강후를 살짝 바라보았다.그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진시현입니다.”주경한은 순간 멈칫했지만, 곧 웃음을 터뜨렸다.“아, 맞다, 진시현 씨. 제가 착각했네요. 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장화연의 얼굴에는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사모님, 도련님을 믿으셔야 합니다.”그 말은 온다연의 추측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온다연의 심장은 순간적으로 꽉 조여들었고, 마치 뒤틀려버린 밧줄처럼 고통스러워 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그래서, 정말로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는 거네요.”장화연은 말했다.“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모님과 우림 도련님의 안전과도 관련이 있는 일이에요. 도련님께서는 사모님께서 걱정하실까 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셨지만, 저는 사모님께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이 점점 더 무서워질 만큼 하얗게 질려가는 것을 본 장화연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누군가 사모님의 안전을 담보로 도련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 며칠 동안 도련님은 밖에 나가 사모님처럼 보이는 사람을 일부러 꾸며냈어요. 그렇게라도 설명해 드리면 조금은 나아지실까요?”장화연은 유강후 곁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그의 모든 행적을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었다.그렇기에 그녀의 말은 묵직한 신뢰를 주었고, 때로는 유강후를 대신해 발언하는 권위도 있었다.온다연은 그런 그녀의 말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그 전화.그녀가 그렇게 오래 들었던 그 전화가 정말 거짓일 수 있을까?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강후 씨의 휴대폰을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나요?”장화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조용히 말했다.“사모님,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모든 건 도련님께서 돌아오신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워낙 복잡하니, 타인들의 이간질에 넘어가지 마세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제가 우림 도련님을 데려오겠습니다. 오늘 밤은 사모님께서 아이와 함께 주무세요.”곧 예쁜 아기가 방으로 안겨 들어왔다.아이가 들어오는 순간, 온다연은 조금이나마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느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아이의 곤히 잠든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마에 부드럽게
그는 수년 동안 유강후의 곁에서 그의 냉혹한 수완을 지켜보며 살아왔다.하지만 이번만큼은 유난히 매섭고 강렬했다.김씨 집안은 동양국에서 가장 유명한 재벌 중 하나로 손꼽혔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몰락했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고 말았다.이 과정에서 소요된 막대한 자금과 수단, 그리고 상업계에 불어닥친 폭풍우 같은 소란은 평범한 이들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이번 사건은 그가 유강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그리고 또 한 가지 확실히 깨닫게 했다.앞으로는 정말로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면, 온다연을 선택하는 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사실을.온다연의 방.장화연은 따뜻한 우유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온다연이 침대 모서리에 웅크린 채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방 안의 부드러운 조명 아래, 온다연의 빨갛게 부은 눈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녀는 분명 울고 있었다.장화연은 우유를 내려놓고 그녀 옆에 조용히 앉았다.“사모님, 도련님이 보고 싶으신 거예요?”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후 씨가 왜 오늘 오지 않는 거죠? 정말 회사에서 회의 중인 걸까요?”장화연은 따뜻한 우유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악몽을 꾸셨죠? 이거 마시면 좀 나아질 거예요.”온다연은 우유를 받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후 씨 오늘 너무 심했어요. 저한테 한 달간 휴학하라고 했어요. 이유는 단지 염지훈이 제 선생님이라는 것뿐인데, 저랑 상의도 없이 제 수업을 멋대로 중단시켰어요.”“원래는 그 사람과 크게 싸우려고 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결혼도 했고, 아기까지 있으니 앞으로는 모든 일을 잘 상의하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참았어요. 그런데 강후 씨는...”온다연은 침대 시트를 움켜쥐며 낮게 속삭였다.“혹시 다른 여자가 생긴 걸까요? 강후 씨는 다를 거라고 믿었는데, 결국 다른 재벌 자제들과 다를 게 없었네요
유강후는 온다연이 악몽에 시달린 줄 알고 가슴 아파하며 물었다.“다연아, 악몽 꿨어?”온다연은 가볍게 답하고선 말을 이었다.“다른 여자랑 같이 있는 꿈을 꿨어요.”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던 유강후는 온다연의 목소리를 듣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다른 여자랑 있을까 봐 걱정됐어? 꿈에서도 내 생각뿐이네?”온다연이 물었다.“어디에 있는지 왜 대답 안 해요?”“회사에서 미팅 중이었어. 아마 이틀 동안 바빠서 못 갈 거야. 아이랑 같이 잘 지낼...”“강후 씨.”온다연은 그의 말을 끊었고 곧바로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거짓말하고 있잖아요. 옆에 다른 여자 있죠?”유강후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온다연의 흐느끼는 목소리에서는 그녀의 기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아까 전화했을 때 다 들었어요. 다른 여자랑...”온다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유강후는 그녀가 또 악몽을 꾼 줄 알고 걱정된 마음으로 장화연에게 전화를 걸었다.곧이어 핸드폰 너머로 장화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유강후는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지금 당장 다연이가 있는 방으로 가봐. 방금 통화했는데 악몽을 꿨는지 울고 있었어.”장화연이 답했다.“지금 바로 가볼게요.”“일이 복잡해져서 당분간은 못갈지도 몰라. 다연이랑 우림이 잘 돌봐줘. 절대 밖에 나가게 해서는 안 돼.”“알겠습니다.”“차라리 우림이를 옆에 데려다줘. 아이랑 같이 자면 마음이 편해질 거야.”“그럴게요.”장화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어제 경호원을 통해서 들었는데 다연 씨가 나은별 씨를 만났다고 합니다. 아마 그때 안 좋은 얘기를 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다연 씨는 힘든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분입니다. 도련님께 대한 오해가 생겼다면 그 마음을 달래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모릅니다. 두 분 어렵게 여기까지 온 만큼 서로에게 그 어떤 오해도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도련님, 나은별 씨가 무슨
부검 결과 여자는 죽기 직전에 성폭행을 당했고 체내에서 5개의 DNA가 검출되었다.대역은 온다연처럼 보이기 위해 평소 그녀가 입는 것과 똑같은 옷을 입었다.유강후는 온다연과 매우 닮은 그 얼굴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멘탈이 무너졌다.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는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공포과 패닉을 느꼈다.만약 죽은 사람이 정말 온다연이라면 유강후는 자신이 어떤 미친 행동을 저지를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전례 없는 살인 충동이 밀려왔고 그는 김원도와 김씨 가문의 뼈까지 가루로 만들리라 다짐했다.위험하고 불안함 밤이 시작되었다. 수십 대의 헬기와 수많은 경찰이 동시에 파견되어 한옥 주변의 모든 곳을 샅샅이 수사했다.하지만 효과는 미미했고 전문 킬러라서 그런지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유강후는 한옥에 들어온 이후로 밖에 나가지 않았다.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 그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내왔다.사진에 찍힌 사람은 그와 진시현인데 얼굴 정면이 아주 선명하게 찍혔다.실리콘 가면을 쓴 진시현의 얼굴은 온다연과 똑같았다.이건 과시가 아니라 경고다.말할 것도 없이 유강후는 단번에 사진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아챘다.김원도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으니 사진 속의 여자를 잘 지키라고 선포하는 거나 다름없다.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 유강후는 외투를 옆으로 던져놓고 다시 소파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이권은 진시현에게 차 한 잔 타오라고 시켰다.“도련님,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다연 씨는 안전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그쪽으로 이동하는 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그는 홍차를 유강후에게 건넸다.“며칠 동안은 외출을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통화도 줄이시고요. 현재로서는 모두가 안전하는게 가장 중요합니다.”이권의 말이 매우 일리가 있고 사실이지만 유강후는 귀에 거슬렸다.한편으로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기도 했다. 김원도 한 명으로도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똑같은 인간이 여러 명이 나타났다면 온다연을 지켜줄 수 있을까?걱정은 자
온다연과 매우 흡사해 보이는 여자가 그들에게 공순하게 인사하며 말을 건넸다.“대표님, 방금 전화가 여러 통 왔는데 이 비서님이랑 안에서 회의 중이셔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유강후는 곧바로 핸드폰을 확인했고 그곳에는 온다연이 걸어온 부재중전화가 찍혀있었다.한 시간 전에 걸려 온 전화였다.유강후는 시간을 확인했고 지금은 새벽 3시 45분이다.이때 이권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다연 씨가 도련님이 보고 싶은가 봐요.”줄곧 정색하던 유강후는 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렸고 곧바로 온다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핸드폰은 꺼져있었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옷걸이에서 코트를 빼내더니 곧장 밖으로 걸어갔다.이때 이권이 말렸다.“도련님, 안 됩니다. 저희를 지켜보는 시선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지 않습니까. 다연 씨 쪽은 안전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 집사도 옆을 지키고 있으니 안심하세요.”“우림 도련님도 그쪽으로 보냈습니다. 도련님이 옆에 계시니 다연 씨의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을 겁니다.”유강후는 입술을 깨물었고 눈빛에 드러난 분노와 원망은 점점 더 짙어졌다.‘김원도, 내 손으로 널 죽여버릴 거야.’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도 유강후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고 결코 발을 빼거나 물러선 적이 없었다.그런데 이제는 김원도 때문에 피하는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아내와 아이의 목숨으로 위협하고 있으니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죽여버릴 거야.’물론 김원도도 좋은 날만 보낸 건 아니다.불과 한 달 만에 미래그룹은 김씨 가문의 시장 점유율 70%를 먹어 치웠고 김신 그룹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인지도가 조금이라도 있는 기업이라면 미래 그룹과 김신 그룹이 대치 상황이라는 걸 눈치챘기에 아무도 섣불리 김신 그룹의 손을 잡지 않았다.김신 그룹의 주가는 한순간에 폭락하였고 보름도 채 안 되어 시가총액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그뿐만 아니라 동양국의 다른 가문에서는 김씨 가문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더불어 김원도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혼외 자식이 두
두 경호원은 온다연의 신분을 알고 있었고 더욱이 그녀가 유강후의 목숨과도 다름없다는 사람인 걸 알기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사모님.”집에 돌아와 보니 장화연도 있었다.게다가 아이를 데리고 함께 이곳으로 왔다.온다연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최근에 공부하느라 바쁜 데다가 저녁에는 유강후와 함께 시간을 보냈으니 며칠 동안 아이에게 다가갈 틈이 없었다.온다연은 유강후가 왜 그녀와 아이를 이곳에 데려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장화연은 한옥의 인테리어를 바꾸려고 하는데 페인트 냄새가 아이한테 안 좋을 것 같아 이곳에 잠깐 머무는 거라고 설명해 줬다.비록 의심이 들었지만 별생각은 하지 않았다.사실 아이가 옆에 있다면 어디에서 지내던 그녀에게는 똑같았다.온다연은 아이가 잠들 때까지 놀아줬고 늦은 시간이 되었지만 유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한편으로는 유강후가 제멋대로 휴학 신청을 한 게 너무 화가 났다.염지훈이 교수로 온 게 온다연의 잘못도 아닌데 왜 갑자기 수업을 못 듣게 하냐는 말이다.생각하면 할수록 터무니없고 불합리한 결정이다.그러다가 잠이 든 온다연은 잠결에 옆을 만졌고 텅 비어 있는 느낌에 공허함이 밀려와 괴로웠다.온다연은 핸드폰을 꺼내 유강후와의 카톡 대화창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진지하게 얘기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고민 끝에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여러 번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네 번째 시도를 했을 땐 통화가 연결됐으나 들려오는 건 여자의 목소리였다.온다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환청이 들리는 건가 싶어 귀를 의심했다.“누구세요?”그러자 전화가 바로 끊겼다.온다연은 굴하지 않고 다시 걸었지만 유강후는 받지 않았다.숨이 막혀온 온다연은 잘못 들은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다시 한번 걸었을 때 통화가 연결됐고 이상한 기계음이 흘렀다.그러고선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선명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희미한 남자의 목소리는 유강후가 틀림없다.그들이 나눴던 사랑처럼 핸드폰 너머로는 서로에게 엉켜있는
온다연은 나은별의 손을 뿌리치고 뒤돌아 그녀의 얼굴을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다면 기뻐해야 하지 않나요? 왜 은별 씨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죠?”온다연은 유강후가 설명해 줬던 당시의 상황과 더불어 문득 이상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평소 안전하기로 소문난 바다였는데 왜 갑자기 상어가 나타나 인간을 공격했을까?온다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나은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 사람이 살아있는 걸 원하지 않나 봐요? 아니면 그 죽음이 은별 씨와 연관이 있는 건가?”사실 모든 건 온다연의 추측에 불과했는데 나은별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이더니 손을 들어 그녀를 때리려고 했다.온다연은 단번에 팔을 뻗어 나은별의 손목을 잡았고 동시에 따귀를 날렸다.뺨 때리는 소리가 울리자 룸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나은별은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로 사악한 눈빛을 드러냈다.“재민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어떻게 그 죽음이 저랑 연결됐다고 얘기할 수가 있죠? 심보가 고약하니까 이런 터무니없는 추측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예요. 마음 좀 곱게 먹으세요.”온다연은 피식 보고선 태연하게 말했다.“사랑하는 사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면 그 타이밍에 강후 씨와 결혼하려고 발악했을까요?”“처음부터 은별 씨는 한재민을 좋아한 게 아니잖아요. 단지 뱃속에 있는 아이한테 그럴듯한 아빠를 찾아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온다연은 말하면서 무심코 소이섭을 쳐다봤다.그런데 뜻밖에도 소이섭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온다연, 또 헛소리하면 내가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소이섭이 화를 내며 온다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다행히 경호원이 다가와 소이섭의 손목을 잡으며 경고했다.“미리 충고드리는데 그쪽은 저한테 상대가 안 됩니다. 정말 사모님을 때리실 겁니까?”유강후의 경호원은 하나같이 특전사에 버금갔기에 소이섭은 본인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할 수 없이 그저 온다연을 째려보며 말했다.“은별이는 지금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