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유강후는 마치 그 단어를 듣고 암살이라도 당한 것 같았다.현진화가 온다연을 데려갔다는걸 알았을 때 그는 조금 안심했다.현진화의 능력이라면 아이 하나 지켜내는 건 쉬운 일이니까 말이다.하지만 유강후에게 돌아온 것이 온다연의 유산 소식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현진화는 일부로 목소리를 높였다, “네가 나한별 옆에서 얼쩡거릴 때 네 애가 없어졌다고, 못 알아듣겠어?”유강후는 누구한테 세게 맞은 것처럼 비틀거리면서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거위 털 같은 함박눈이 그의 몸에 떨어졌다. 빽빽한 바늘 같기도 하고 날카로운 검 같기도 했다.온 하늘과 땅을 덮을 듯한 눈이 그를 찔러와서 아파서 몸을 가누지 못했다.아이는 지키지 못했을 거란 걸 예상하긴 했지만 그는 두 사람의 아이를 여러 번 상상했었다.그는 온다연처럼 유일무이하고 하얗고, 얌전하고 귀여운, 작은 치마를 입은 아이가 그를 따라다니면서 말랑한 목소리로 그를 “아빠”라고 부르는 화면을 상상했었다.하지만 이렇게나 빨리 그 환상은 깨져버렸다.게다가 무려 그가 직접 깨부순 거였다.온다연이 과연 그를 용서할까?유강후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아니, 용서하지 않더라도 그녀는 그의 옆에 있어야 했다!온다연은 오직 그의 것이었다. 이번 생에도, 다음 생에도, 그다음 생에도 그녀는 오로지 그에게만 있어야 했다!현진화가 더 뭐라 말을 하기는 했지만 유강후는 거의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그가 손짓하자 가드들이 재빠르게 달려가서 현진화와 집사를 한쪽으로 밀어버렸다.그리고는 매 방마다 수색했다.그리고 마침내 바깥쪽 객실에서 온다연을 찾아냈다.그녀는 커다란 흰 스웨터를 입고 침대에 앉아있었다. 다리에는 담요를 덮고 있었는데 굉장히 얇고 허약해 보였다.그녀의 눈에 더이상 예전 같은 온순함은 없고 오로지 차가움만 있었다.유강후는 한 걸음씩 그녀에게 다가갔다.아이만 생각하면 심장에 만 개의 화살이 박히는 기분이었다.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칼날 위를 걷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마침내 그녀의 앞에
온다연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감히 그래요.”유강후는 제자리에 서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온다연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두 사람의 침묵 속에서 분위기는 우울함의 정점을 찍어버렸다.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때쯤 유강후는 허리를 숙여 온다연을 안아 올렸다.온다연은 반항하지 않았다. 어차피 도망치지도 못하니까 말이다.여기서 며칠 쉬었고 현진화의 보살핌을 받은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행운을 누린 거였다. 그녀는 더이상 현진화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유강후는 두툼한 담요로 그녀를 둘러싸고 그녀를 안은 채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우리 집에 가자.”온다연은 낮게 비웃으며 말했다. “유강후 씨, 저한테는 집이 없어요. 엄마는 죽었고, 아빠도 없고, 이모는 나 버렸고, 유씨 가문 사람들은 저를 개처럼 취급하는데. 저는 진작에 집 같은 건 없었어요.”주한이 있을 때만 해도 그녀는 갈 곳이 있었는데 주한이 죽고 나서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유강후는 굳어버린 채 손을 달달 떨었다.그러고 나서 한참이 지나서야 말했다.“집 있어. 내가 있는 데가 네 집이야.”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면서 명확하게 말했다. “아뇨. 당신이 있는 곳은 감옥이에요. 나를 죽을 때까지 가둬둘 감옥! 당신은 유씨 가문 사람이죠. 그 사람들이랑 한집 식구죠.”유강후의 마음이 이미 갈가리 찢어진 듯했다. 그는 눈을 감으면서 억지로 가슴의 고통을 참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연아, 그런 말은 하지 마.”온다연이 낮게 말했다. “유강후 씨. 사실 그날 밤 병원에서, 당신이 은별 씨 안고 수술실에서 나오는 거 봤어요. 그때 저도 응급실에서 갓 나왔거든요.”온다연은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매 순간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선명했다.그녀는 가슴이 아픈 걸 참으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아끼는 사람 챙겨요. 저한테 그걸 말릴 권리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왜 제가 병원에 가지 못하게 막은 거예요? 유강후 씨, 나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두세 시간 되는 거리였지만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량 내부는 밖 온도보다 더욱 낮은 것만 같았다.집에 도착했을 때, 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온다연이 차갑게 그를 밀어내면서 얘기했다.“나도 걸을 줄 알아요.”유강후는 그런 온다연의 고집을 꺾고 온다연을 안은 채 침실에 들어갔다.그리고 조심스레 그녀를 침대에 내려주고 그녀가 입는 잠옷으로 갈아입혀 주었다.온다연은 반항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그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이 남자가 얼마나 강압적인지, 독점욕이 얼마나 강한지, 온다연은 상상도 할 수 없다.그와 같이 산다는 건 개인 시간이나 공간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옷이나 신발부터 바디 워시, 화장품까지 다 그가 직접 골라주는 것이다.심지어는 그녀의 속옷까지도 유강우가 직접 고른 것이다.처음에는 그저 유강후가 플레이를 좋아하는 타입인 줄 알았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강후의 집착은 더욱더 강해졌다. 결국 온다연이 참을 수 없는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마치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 같았다.반항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로즈향의 바디로션을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몰래 인터넷에서 다른 향의 바디로션을 샀었다.하지만 한번 발랐을 뿐인데 유강후가 그걸 발견해 버렸다.그는 조용히 다시 바디로션을 바꿔놓았다. 온다연이 그 바디 로션을 다시 사려고 봤을 때, 그 매장은 이미 사라졌다.게다가 그 제품의 원료 중에 유해물질이 있다면서 영원히 판매 정지가 되었다.또 한번은 온다연이 타 먹는 밀크티를 두 번 정도 샀었다. 세 번째로 구매하려고 했을 때, 그 매장은 또 사라졌다.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시간이 지나니 이제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게다가 유강호는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는 지금도 온다연의 옷을 갈아입혀 주면서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거기서 이상한 거 먹은 거 아니지? 약은 먹었어? 위는 괜찮아?”결국
유강후는 큰 충격에 빠져버렸다. 반항하는 온다연을 잡고 그녀를 침대에 눕힌 채 격정적인 키스를 퍼부었다.약간 이성을 잃은 그는 입술을 부딪쳐가면서 몰아붙였다. 온다연은 아픈 나머지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었다. 하지만 유강후는 밀리지 않았다. 이 행동은 유강후의 독점욕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이었다.그는 한 손으로 온다연의 손을 묶어놓은 후 다른 손으로 그녀의 배를 매만지면서 온기를 느끼려고 했다.이성을 잃은 탓에 손에 들어가는 힘이 조금 더 세졌다.온다연의 눈물과 반항은 아무 작용도 하지 못했다.어느새 이 키스는 다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유강후의 호흡도 점점 거칠어졌다.온다연은 유강후의 신체 반응을 느꼈다.놀라고 두려웠던 온다연은 미친 듯이 유강후를 밀면서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날 놔요! 놓으라고요! 미친 새끼...”유강후는 며칠 동안이나 온다연을 보지 못했다. 지금 그에게 있어 온다연은 마약과도 같았다.온다연의 입술을 약간 씹은 유강후는 천천히 그녀의 몸을 만졌다.유강후의 손이 점점 아래로 향하자 온다연은 미칠 것만 같았다.어디서 나온 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결국 유강후를 밀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때렸다.짝.소리와 함께 공간이 갑자기 조용해졌다.두 사람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유강후가 몸을 일으켰다.그는 맞은 뺨을 매만지더니 차가운 시선으로 온다연을 쳐다보았다.온다연은 그 시선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아서 그녀는 몸을 옹송그렸다.유강후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온다연, 이 세상에서 날 때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그의 차가운 말투에 공기마저 차가워진 것 같았다. 온다연은 약간 두려워서 저도 모르게 배를 그러안았다. 그리고 바로 침대에서 내려가 도망치려고 했다.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유강후한테 붙잡혔다.온다연은 무섭고 또 두려웠다.유강후는 강압적인 사람이다. 게다가 생각도 깊고 총명한 사람이다. 그래
온다연은 그가 뭘하려는지 몰랐다. 벌을 주려는 줄 알고 그저 도망칠 뿐이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발길질에 몇 번 차였다. 그래서 그녀의 발을 묶어둘 수밖에 없었다.그는 다시 온다연을 침대에 눕힌 후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내가 널 때릴 것 같아?”온다연은 그가 정말 때릴 줄 알았다. 게다가 배를 때릴 줄 알고 무서워서 뒤로 몸을 내뺐다.유강후는 두려워하는 그녀의 눈빛을 보고 가슴이 아파왔다.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그를 두려워해도 온다연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그가 손을 뻗어 온다연을 만지려고 하자 온다연은 더욱 세게 반항했다.온다연이 반항할수록, 유강후의 심정은 처절해져만 갔다. 반항심이 불거져 꼭 그녀를 만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다가 온다연이 이마를 침대 끄트머리에 박았다.세게 부딪혔는지, 온다연의 머리에 커다란 혹이 생겼다.온다연은 아픈 것도 모르고 유강후가 정신을 판 사이에 또 도망치려고 했다.하지만 유강후는 그녀의 하얀 이마에 혹이 부어오른 것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또 화가 났다.그는 온다연을 잡은 후 전화를 걸어 장화연에게 구급상자를 가져오라고 했다.알콜이 온다연의 피부에 닿자 온다연은 그제야 진정했다.하지만 여전히 배를 보호한 상태로 경계심 가득한 채 유강후를 쳐다보고 있었다.유강후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유강후는 그 시선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안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그는 조심스레 온다연의 이마를 소독해주면서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그렇게 보지 마. 안 때릴 거니까.”온다연은 여전히 경계심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가 이마에 연고를 발라줄 때, 온다연이 입을 열었다.“안 믿어요.”유강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약을 발라준 후 유강후는 구급상자를 정리하고 바닥에 떨어진 옷을 정리하면서 말했다.“너 이 옷을 좋아하던 거 아니었어? 자주 입던 거 같은데.”온다연이 차갑게 그를 보면서 대답했다.“당신이 골라준 옷은 다 싫어해요. 다 쓰레기예요!”
“정말 웃기기도 하지. 당신은 내가 이런 꽃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 꽃을 보면 바람피우는 남자가 생각나요. 그날의 당신처럼요! 내가 아픈 걸 알면서, 내가 그렇게 빌었는데 다른 여자를 보러 갔잖아요.”그녀는 고개를 들고 차가운 시선으로 유강후를 바라보았다.“그때 내 눈에 당신이나 우리 아빠가 똑같았어요.”유강후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다시 천천히 풀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안 좋아한다는 거 왜 안 알려준 거야?”온다연이 풉하고 웃었다.“알려주면 어쩔 건데요?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옷을 입게 하고, 싫어하는 옷을 입게 하고 그런 화장품들을 쓰게 하잖아요.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요. 나도 반항해봤지만, 당신이 그때마다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나요? 제품의 회사를 망하게 하고 결국 당신의 뜻을 따르게 만들었잖아요!”그녀는 한번 한숨을 내쉬고 이어서 얘기했다.“유강후 씨, 당신은 정말 최악의 남자예요.”그 말을 끝으로 방에는 다시 정적만 남았다.이 싸움에 승자는 없다.두 사람 다 많은 상처를 입었다.한참 있다가 유강후가 입을 열었다.“마음에 안 드는 물건은 버려. 꽃도 뽑고 네가 좋아하는 거로 심을게.”얼마나 주먹을 꽉 쥐어서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였다. 그의 감정을 억제하느라 노력 중인 것 같았다.그리고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려고 애썼다.“네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를 심자. 응?”“싫어요!”온다연은 차갑게 얘기했다.“이런 누추한 곳에 해바라기를 심을 생각 절대 하지 말아요!”말을 마친 온다연은 침대에 기대서 벌을 기다리듯 눈을 감았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벌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저 유강후가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온다연은 눈을 뜨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이곳을 떠나야 한다. 무조건 떠나야 한다.조금만 버티면...그 일만 처리되면 바로 떠날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강후가 다시 돌아왔다.그는 손에 작은 그릇을 들고 있었는데 안에 담긴 건 계화탕이었다. 위에는 계
금방 만든 국이라서 아주 뜨거웠다. 유강후의 손등은 어느새 빨갛게 되어있었다. 온다연은 약간 멍해있다가 얼굴을 돌려 그를 등져버렸다.유강후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온다연은 배를 보호하고 있었는데 마치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 같았다.그는 가슴이 아려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다연아, 그렇게 날 자꾸만 경계하지 마. 그건 우리의 아이야.”온다연은 여전히 그를 등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부서진 조각들을 주우면서 낮은 소리로 얘기했다.“그 옷들이 싫으면 입지 마. 사람을 시켜 다른 옷을 가져오라고 할게. 네 마음대로 골라.”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온다연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듯한 태도가 엿보였다.평소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고고하고 강압적인 유강후가 이런 말투로 얘기하다니.다른 사람들이 보면 놀랄 일이었다.하지만 온다연의 마음은 이미 굳어버렸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대답하지도 않았다.유강후는 조각과 흘린 국을 처리하고 온다연을 안았다.“다른 방에서 자. 여기는 더러워졌어.”온다연은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반항하지 않고 그에게 몸을 맡겼다.저녁이 될 때, 갑자기 사람들이 와서 각종 옷과 가방과 신발을 가져와 거실을 거의 꽉 채웠다.그중 몇 명은 저번에 왔었던 사람들이라 이곳의 규칙을 잘 알고 그 자리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렸다.주인공은 아주 늦게 등장했다.유강후가 품에 온다연을 안고 이쪽으로 걸어왔다.하지만 온다연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몇 번이나 돌아가려고 하는 걸, 유강후가 다시 잡아 올 정도였다.하지만 결국 유강후가 다시 온다연을 안고 위로 올라갔다.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들지도 못했다. 그저 옷을 보여주러 온 모델들만 호기심에 기웃거리고 있었다.입장 전에 함부로 시선을 돌리지 말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호기심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그들은 유강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미래 그룹 대표이자 유
그 안에는 엄숙함과 경고의 뜻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놀라서 순식간에 고개를 숙였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내려다 주고 얼굴에 붙은 자잘한 머리카락들을 떼어주면서 달랬다.“그 옷들은 다 버리자. 여기는 다 새로운 옷 들이야. 네가 직접 골라. 난 간섭하지 않을게.”온다연은 몇 번이고 거절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억지로 끌려 나오고 말았다.어차피 오늘 고르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여기서 서서 밤을 새워야 할 수도 있다.이때 구월이가 나와서 그녀의 바지를 물고 놔주지 않았다.온다연은 구월이를 품에 안고 앞에 있는 것들을 가리키면서 차갑게 말했다.“이거로 해요.”유강후는 대충 고르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른 것도 많은데 더 골라봐.”온다연이 입을 열기 전에 한 사람이 먼저 말했다.“우리는 모델도 데려왔어요. 모델의 시착 한번 보실래요?”그러자 유강후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누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래? 난 옷만 보겠다고 했지 모델을 데려오라고 한 적이 없어! 나가!”그 사람이 연망 해명했다.“저희는 고르기 편하시게 모델을 준비했어요. 온다연 님과 체형이 비슷한...”유강후가 차갑게 그를 쳐다보았다.“나가. 몇 번 얘기해야 해?”그러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모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이때 그중 한 모델이 갑자기 돌아서더니 유강후를 보면서 살짝 겁을 먹은 채 말했다.“유 대표님, 혹시 저 기억하세요? 전 임청하라고 합니다. 대표님이 후원해 주셔서…수능 때 직접 후원금을 주시기도 했는데...”멈칫하던 그녀는 이어서 얘기했다.“저번에 영원시에서 다치셨을 때 급하게 수혈해야 한다고...”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 모델을 보더니 눈빛을 반짝였다.이때 온다연이 일어나서 차갑게 얘기했다.“알아서 골라요. 난 흥미 없으니까.”말을 마친 온다연은 구월이를 데리고 갔다.그녀의 기억대로라면 영원시에서 유강후에게 수혈해 준 여자는 확실히 이 모델과 비슷하게 생겼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차갑
겉보기로만 보면 유민준은 유강후의 저렴한 복사본 같았다.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는 감추지 못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고 온다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깊고 무거웠다.그는 더 이상 다가서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미안해. 내가 예전에 정말 많은 잘못을 했어. 하령이랑 같이 널 괴롭히기도 했고... 근데 난 그냥 장난인 줄로만 알았지. 그렇게 더럽고 비열한 짓까지 할 줄은 몰랐어.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좀 더 일찍 알아차렸더라면... 너 그런 고통 안 겪었을 텐데...”온다연은 한치의 감정도 없이 단칼에 잘랐다.“이제 와서 그런 말 해서 뭐해요? 원래는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어요. 근데 오빠가 날 한 번 살려줬으니 그걸로 끝내고 싶어요. 이제부터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니 다시는 제 눈앞에 나타나지 마세요.”그 차디찬 말 한마디가 유민준 마음속 마지막 환상마저 산산이 부숴버렸다. 그는 손에 쥔 서류를 꼭 움켜쥐며 고개를 떨군 채 중얼거렸다.“처음... 네가 본가에 들어온 그날... 내가 널 지켜줬다면... 지금 이 결말은 달라졌을까? 네 곁에 있는 사람이 나였을 수도 있었을까?”온다연은 냉정하게 쏘아붙였다.“오빠는 유강후의 발톱 하나만큼도 못 해요. 그러니 오빠 손에 쥔 그 주식 들고 지금 당장 꺼지세요. 그게 오빠가 살길이에요.”유민준은 말없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자신이 완전히 끝났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손에 든 서류를 이권에게 건넸다.“이권 씨, 이 서류를... 작은아버지께 전해주세요. 본가의 재산은 이젠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아요. 다만... 아버지 유골만이라도 묘지에 모시게 해주세요. 명절마다 인사드릴 수 있게만 해주시면 돼요.”그러자 이권은 냉정하게 답했다.“서류는 전달하겠습니다. 다만 대표님께서 받아들이실지는 모르겠고 부탁을 들어주실지도 장담 못 드립니다.”유민준은 고개를 숙였다.“알아요. 부탁드릴게요.”그와 말하는 동안 온다연은 이미 차에 올라탔다.“이권 씨, 출발해요.”차는 곧 조
“다연이가 전에 겪은 고통... 똑같이... 아니 그보다 수천 배로 돌려줘야 해.”“안 돼요. 그러면 안 돼요!”유하령이 비명을 질렀다.“아빠가 죽었어요! 아빠가 모든 죄를 짊어졌잖아요. 제발... 저를 그렇게 만들지 마요!”하지만 유강후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 사람이 죄를 씻고 싶어 했다고 해서 내가 용서해 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그때 너희가 법을 피해 가며 사람을 괴롭혔지. 좋아. 지금 잘됐네. 정신병자들은 사람을 때리고 죽여도 법의 심판을 안 받아. 그러니까 네가 그런 벌을 받는 것도... 네 업보지.”유하령은 울부짖으며 욕을 퍼부었지만 유강후는 단 한 번의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데리고 가. 하지만 일단 죽이지는 마. 죽어버리면 재미가 없잖아.”“네! 대표님!”그는 더는 뒤 돌아보지 않고 다시 식사하던 곳으로 돌아갔다.온다연은 그가 돌아오자마자 미리 까둔 귤 한 조각을 그의 입가에 가져갔다.“얼른 먹어요. 입술이 다 터졌잖아요. 아무리 바빠도 물은 마셔야죠.”그녀는 다시 뜨거운 물을 따라 그의 손에 건넸다.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귤 한 조각을 조용히 입에 넣었다. 그리고 덤덤하게 말했다.“유하령... 정신병원으로 보냈어.”온다연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 정도면 오히려 관대한 거네요. 하지만 제가 더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아저씨가 알아서 하세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하루 종일 나랑 같이 있었는데... 피곤하지 않아?”온다연은 그의 손바닥에 볼을 비비며 속삭였다.“아니요. 아저씨가 있으니까 하나도 안 피곤해요. 오히려 제가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요?”유강후는 그녀를 들어 올려 무릎 위에 앉히고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에게서 나는 은은한 향이 가슴 가득 퍼지며 왠지 모르게 조금은 덜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다연아... 유민준 걔는...”“전 걔랑은 끝났어요.”온다연이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유민준이
온다연은 처음부터 유하령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유씨 집안이 다 무너지든 모두가 죽든 솔직히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유강후가 저렇게 무너져 있는 걸 보니... 그녀는 가슴이 죄여들 듯 아팠다.그건 말로 다할 수 없는 통증이었다.그가 아무리 강해 보여도 결국은 사람이니 상처도 받고 아프고 지치고 힘들어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는 알았기에 그래서 그녀는 그를 위해 조금씩 물러서기로 했다.후회가 되고 아프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를 위해서라면 감수할 수 있었다.그 순간 유강후가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다연아, 다시는 네가 상처 안 받게 할게. 여기 바람이 좀 세네. 안으로 들어가자.”얼마 지나지 않아 장 비서가 따뜻한 팥죽과 집밥 느낌의 반찬들을 함께 보냈다. 팥죽이 양이 많지 않아서 온다연은 근처 음식점에 연락해 직접 빚은 만두를 더 주문했고 따뜻한 반찬도 한 상 가득 더 보냈다. 그리고 따라온 경호원들과 비서진도 함께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었다.밥을 먹던 도중 누군가 조용히 병실 안으로 들어와 유강후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유강후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그는 온다연을 향해 말했다.“잠깐 나갔다 올게. 너희끼리 먼저 먹고 있어.”온다연도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그는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눌러 앉히며 말했다.“넌 여기 있어. 잠깐이면 돼. 금방 올게.”그러더니 탁자 위에 있던 귤 하나를 들고는 그녀에게 내밀었다.“이거 까놔. 돌아와서 같이 먹자.”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아버님 괜찮으실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유강후는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병실 문을 나서자 이권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하령의 상태가 좀 이상합니다. 완전히 미쳐버린 것 같아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만 하고... 대표님, 정말 그냥 놔두실 겁니까? 설마... 진짜 용서해 줄 생각은 아니시죠?”유강후의 목
그때 유하령이 옆에서 갑자기 소리쳤다. “피... 피가 너무 많아. 아빠가 죽었어. 우리 아빠가 죽었다고요!”그 소리에 유재성이 갑자기 격하게 기침하더니 급기야 피를 토해냈다.유강후가 급히 그를 부축하며 외쳤다. “유하령 당장 끌어내. 간호사, 의사 불러요. 빨리!”유재성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 네 큰형… 가서... 빨리 가서 봐...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어서...”그러자 유강후는 어쩔 수 없이 현장으로 향했다.그리고 그곳엔 이미 숨이 멎은 유자성이 들것에 실려 있었다. 의료진이 마지막 조치를 하고 있었지만 이미 모든 게 늦은 상태였다.유민준은 그 곁에 무릎 꿇고 앉아 피투성이가 된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복도와 방 안 바닥엔 핏물이 고여 있었다.유강후가 다가서자 의료진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유자성 씨는 휴게실에서 스스로 목을 그었습니다. 경동맥을 절단한 상태였고 발견 당시엔 이미 호흡이 없는 상태였습니다.”유강후는 멍하니 굳은 채 그 말을 듣고만 있었다. 유강후라고 왜 마음이 아프지 않았으랴.어찌 됐든 자기 형이었고 어릴 땐 정말 서로 우애가 좋았다.진짜 틀어지기 시작한 건 유하령을 감싸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그 뒤로 천천히 멀어졌고 결국엔 남이 되어버렸다.유강후는 온다연을 해친 사람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하지만 유자성이 이런 방식으로 끝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는 어떻게 그 자리에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그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의료진이 유자성의 시신 위에 흰 천을 덮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그때 유민준이 그의 옷깃을 잡고 울부짖었다.“작은아빠... 이게 진짜예요? 아빠 진짜... 진짜 죽은 거예요? 작은아빠, 아빠 아직 숨 쉬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유자성이 들것에 실려 나간 뒤에야 유강후는 고개를 돌렸고 차갑게 말했다.“민준아, 네가 아직 남자로 살고 싶다면... 아버지 장례 제대로 치러. 네가 맡은 회사 두
유재성은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유자성을 보지 않았다.유자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자식의 손을 끌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하지만 병실 문 앞에 이르자 그는 유하령과 유민준을 멈춰 세우고 단호하게 말했다.“문 앞에 무릎 꿇고 있어. 절대 일어서지 마. 그래야 할아버지가 마음을 돌리실 수 있어. 이 집에서 쫓겨나면... 너희는 진짜 끝장이야. 예전에 너희가 적으로 돌린 사람들은 다 너희를 죽도록 밟고도 남을 사람들이야.”유하령이 뭔가 말하려 하자 유자성이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특히 너, 유하령. 또 사고 치면... 바로 해외로 보내버릴 거야. 다시는 돌아오지 마. 오늘 이 사단... 절반은 네가 만든 거야.”유하령은 울먹이며 애원했다.“아빠... 잘못했어요. 정말이에요. 제발... 할아버지께 잘 말씀드려 주세요. 쫓겨나는 건 싫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유자성은 그런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네 엄마가 너무 일찍 떠났지. 그게 늘 마음에 걸렸어. 그래서 내가 너희한테 너무 오냐오냐했나 봐. 무슨 짓을 해도 내가 다 감췄고... 결국 오늘 이런 꼴이 났네. 다 내 책임이니 내가 다 짊어지고 갈게. 하령아, 성질 좀 고쳐. 앞으로 사람 대할 땐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 나쁜 생각 갖지 말고 받은 호의엔 반드시 보답해야 해. 부모 말고는 조건 없이 널 사랑해 주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유하령과 유민준은 아버지의 말에 충격과 절망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들의 눈앞에서 유자성은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말했다.“여기 그대로 있어. 할아버지가 용서 안 하신다고 해도... 일어나지 마라. 난 짐 좀 챙기고 금방 올게.”그는 마지막으로 두 자식을 깊게 바라보고는 병원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나갔다....30분쯤 지났을까.복도 저편에서 갑작스러운 비명이 터졌다.“사람이 자살했어요!”“피가... 피가 너무 많아!”“빨리 응급실로!”“늦었어요... 이미 숨이...”“유 회장님 장남이라잖아! 큰일 났어!”...유하령과 유
“제발... 제발 우리를 본가에서 쫓아내지만 말아 주세요. 재산은 하나도 원하지 않아요. 단 한 푼도 바라지 않아요. 그냥... 그냥 본가에 남게 해 주세요. 아버지의 아들로 남게만 해 주세요...”하지만 유재성은 눈을 감은 채 싸늘하게 말했다.“그만 가. 네 자식들 데리고 이 집을 나가. 네 호적은 이미 본가에서 정리하라고 지시했어. 앞으로 넌 유씨 가문의 자손이 아니야. 너희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나 유재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유자성은 긴 침묵 끝에 고개를 깊이 숙여 유재성을 향해 세 번 힘껏 머리를 조아렸다.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전 평생 아버지의 아들이라 믿어왔습니다. 그게 제 자랑이었어요... 제가 유씨 가문 사람이 아니었다니... 본가에서 쫓겨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럴 만큼 제가 큰 죄를 지은 거겠죠. 용서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겠죠. 아버지,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하령이랑 민준이... 애들까지 함께 쫓아내진 말아 주세요. 애들은 아직 젊고 앞길이 먼 아이들이에요. 본가에서 내쳐진다는 건 그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이 될 겁니다. 사람들 눈에 짓밟히고 손가락질당하며 살아야 해요.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 전부 다 제 책임이에요. 제가 잘못 키웠습니다. 전부 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하지만 유재성은 싸늘하게 대답했다.“너랑 나... 부자지간 인연은 여기까지야.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그만하고 그냥 가.”그제야 유하령의 표정이 무너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거짓말이죠? 우리 속이시는 거죠?”유민준도 조용히 무릎을 꿇었지만 아무 말 없이 유재성을 향해 조심스럽게 머리를 숙이며 절을 올렸다.“할아버지... 전 그동안 많은 잘못을 했습니다. 벌받는 것도 당연합니다. 전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제발... 본가에서 쫓아내지만 말아 주세요. 앞으로는 제대로 살겠습니다.”그는 진심이었다.지난 몇 년 동안 그는 성격도 많이 누그러졌고 철도 들었으며 맡은 두 회사 역
유자성은 입술을 달달 떨며 중얼거렸다.“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전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영원히 아버지의 아들이에요. 저 재산 같은 거 원하지 않아요. 한 푼도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저를 본가에서 쫓아내지 말아 주세요...”그러나 유재성은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이젠 됐어. 나는 너한테 줄 것도 빚진 것도 없어. 나도 오래 못 살아. 죽기 전까진... 더 이상 너희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유자성의 얼굴은 점점 잿빛으로 변해갔고 그는 입술을 떨며 되뇌었다.“아버지... 제발, 절 쫓아내지 마세요...”그의 마음 깊은 곳에선 이미 진실을 인정하고 있었다.그 친자확인서는 진짜였고 유재성의 말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는 어릴 적부터 유재성 곁에서 자라났다.젓가락을 처음 쥐는 법, 글씨를 쓰는 법, 첫 출근 날의 마음가짐까지... 모든 것을 유재성이 직접 가르쳐줬다.그는 누구보다 유재성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거짓말을 할 리 없었다.그래서 그는 마침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친자확인서는 진짜였어. 아버지가 나를 본가에서 내치려는 것도 진심이네. 그렇다면 나는 진짜... 본가 사람이 아니겠네.’그가 평생 자랑스러워했던 그 성씨와 신처럼 떠받들었던 아버지... 그토록 자부심을 가졌던 본가의 명예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모든 것과 그가 수없이 입 밖으로 칭찬했던 동생 유강후조차... 결국 단 한 번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그 모든 건 그의 친부모가 목숨으로 대신한 빚이었고 남이 던져준 은혜에 불과했다.오만하고 자존심 강했던 유자성... 태어나서 한 번도 고개 숙여본 적 없는 본가의 장남이 알고 보니 그저 남의 집에서 얹혀살던 양자에 불과했다.그 진실은 마치 뾰족한 바늘처럼 그의 모든 꿈과 자존심을 찢어버렸다.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멍해졌다. 세상이 전부 거짓처럼 느껴졌고 지금 이 순간조차 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그는 손을 들어 자기 뺨을 두 번이나 사정
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호복을 가다듬은 뒤 안으로 들어가 손에 쥔 약을 유강후에게 건넸다.“아버님께 이 약을 드려요.”유강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다연아...”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고 싶은 말은 집에 가서 해요. 난 원래 그렇게 대인배 아닌 사람이에요. 날 해쳤던 사람은 절대 쉽게 용서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분은 당신 아버지잖아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한 번쯤은 물러서 줄 수 있어요. 아저씨, 제 마음 저버리지 마요.”그 말에 유강후는 코끝이 시큰해지며 눈가까지 붉어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감춘 채 약 하나를 꺼내 유재성의 입에 넣어주었다.약을 삼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재성은 숨이 한결 편해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강후야, 이게 무슨 약이냐?”유강후가 답했다.“곽 박사님이 다연이 몸조리하라고 주신 거예요. 다 먹지 않고 열 알 남겨뒀는데 혹시 몰라서요. 솔직히 저도 효과가 있는지는 몰라요. 그래도 해가 되진 않으니까요.”유재성의 눈빛이 반짝였다.“곽혜진? 그 여의사 말이야?”유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그때 유하령은 온다연을 노려보며 독설을 퍼부었다.“너 지금 내 할아버지한테 무슨 약 먹인 거야? 우리 할아버지 몸은 아무나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야. 네 따위가 내놓은 천한 약 따위 함부로 먹이면 안 된다고!”온다연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친자확인서를 집어 들었다. 대충 읽어본 그녀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유하령, 너... 너희 아버지가 유 회장님 친아들이 아니야?”유하령이 반박하기도 전에 온다연은 박장대소하며 말했다.“와, 오늘 진짜 운수 대통이네. 어쩜 이렇게 좋은 일만 생기지?”유하령은 절규하듯 외쳤다.“그건 거짓말이야. 전부 조작이야. 우리 아빠가 본가 사람이 아니라니 말도 안 돼! 이건 다 네 계략이야. 온다연, 왜 날 이렇게까지 망치려고 해?”온다연은 비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유하령, 넌 늘 자기보다 낮은 사람들 무
“네 아들 유민준... 그동안 무슨 사고들을 쳐왔는지 너도 잘 알겠지. 그나마 요 몇 년 좀 나아졌다 싶어서 내가 본가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두 회사를 맡긴 거야. 그 애 실력으로 그 두 회사 꾸려나가는 것도 벅찰 거야.”“그리고 네 딸 유하령은 어떤 인간인지 너 스스로 모르겠어? 예전 그 일들을 진짜 네 능력으로 덮은 줄 알아? 내가 평생 가장 미안한 사람은 현미와 강후야. 그 은혜 때문에 내 결혼을 망쳤고 내 딸을 희생시켰어. 다른 누구든 나를 원망해도 돼. 다 괜찮아.하지만 너, 유자성. 너만은 나한테 그럴 자격 없어.”유자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아버지, 아버지가 결혼생활 망친 걸 제 탓으로 돌리실 순 없죠. 그리고 제 어머니도 죄 없는 분이었어요.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강현미도 그 자리에 있었을 리 없었겠죠.”그 말에 유재성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오랫동안 침묵하던 그는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네 진심이었구나. 내가 평생 키워온 놈이 고작 이런 배은망덕한 놈이었다니...”그는 분노 섞인 시선으로 유자성, 유민준, 유하령을 차례로 훑어보며 낮고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그럼 지금 여기서 내가 이유를 설명해 주지.”“강후야, 책상 위에 있는 다른 서류봉투를 저놈한테 줘라.”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그 서류봉투를 유자성에게 던졌다.유자성은 그 안에 또 다른 유언장이 들어 있을 줄 알고 펼쳤지만 그 안엔 뜻밖에도 친자 확인서가 들어 있었다.그는 확인서의 이름과 결과를 보자 믿을 수 없다는 듯 절규하듯 외쳤다. “아니야. 말도 안 돼. 이럴 리가 없어!”옆에 있던 유하령도 깜짝 놀라 확인서를 낚아채더니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아니에요. 이건 조작이에요. 전부 다 우리를 본가에서 쫓아내려고 짠 계략이잖아요!”“분명 온다연이야! 그 여자... 분명 삼촌한테 뭔가 시킨 거야. 나를 망하게 하려고 다 내 모든 걸 빼앗으려고 한 거라고!”“닥쳐!”유강후가 이를 악물고 그녀를 노려보며 쏘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