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난 후 온다연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설명서엔 똑똑히 적혀 있었다. 임신테스트기가 두 줄을 가리킨다면 임신한 것이라고.그러니까 지금 그녀의 배 속에 작은 아이가 있다는 말이었다.아니, 지금은 아마 작은 콩알만 한 형태일 것이다.당황한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여러 감정이 휩싸이며 그녀는 제자리에 조각상처럼 우뚝 서서 멍하니 있었다.장화연이 노크하는 소리에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황급히 대답을 하곤 전부 갈기갈기 찢어 변기에 버렸다.그녀는 두 줄을 나타내고 있는 그 종이를 한참을 보다가 물을 내렸다.머릿속이 복잡했다. 꼭 모든 계획이 망쳐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게다가 그녀는 자기가 사 온 임신테스트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그렇게 한참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그제야 화장실에서 나왔다.꼭 넋을 잃은 사람처럼 장화연이 물을 건네자 바로 마시고, 밥 먹으라고 하면 바로 얌전히 식탁으로 갔다.심지어 자신이 뭘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밥을 먹은 후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역시나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었다.장화연이 따듯한 우유를 가지고 들어왔을 때 혈색이라고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안색과 그녀의 멍한 눈빛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손을 뻗어 온다연의 이마에 올리며 열이 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이내 온다연에게 말을 걸었지만, 온다연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천장만 보았다.장화연은 하는 수 없이 유강후에게 연락했다.“도련님, 온다연 씨가 이상합니다. 혹시 바쁘신 게 아니라면 일찍 돌아오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유강후는 아주 중요한 회의를 열고 있었다. 그런데 장화연의 연락에 바로 회의를 중단했다.그가 급히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침 몽유병 환자처럼 거실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있는 온다연을 발견했다.그녀의 안색은 아주 창백했고 걸음걸이마저 다소 비틀거렸다.그를 발견한 온다연은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든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오셨어요?”유강후는 코
온다연의 몸이 경직되었다.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그녀는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정말로 싫어하는 거예요?”유강후는 혈색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녀의 안색을 보았다. 표정도 이상했다.손을 뻗어 다시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어디 아파?”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냥 조금 피곤해서 자고 싶어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장화연을 보았다.장화연이 말했다.“오후에 한 번 외출하신 뒤로 쭉 이런 상태였습니다. 따라간 경호원에게 물었는데, 구월이가 뛰쳐나간 바람에 다연 씨가 찾으러 나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근처 약국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멀리 나간 것은 아니니 아마 다른 사람은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유강후의 두 눈에 분노가 점차 드리워졌다.“따라간 놈들은 대체 뭐 하고 있었기에 고양이 한 마리도 제대로 지켜보지 못하는 거지?”장화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차갑게 말했다.“행동이 빠른 놈으로 골라 당장 찾아오라고 해.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장화연은 그저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네, 알겠습니다.”며칠 전 화분 사건 이후로 유강후는 전보다 더 온다연을 감시하고 있었다.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전부 유강후에게 자세하게 보고해야 했고 무슨 일이 생겨서도 안 되었다.예전에는 온다연이 혼자 집 근처쯤은 돌아다니게 했었다. 비록 그때는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자유로웠다.하지만 최근 며칠 동안 동네 산책하고 싶다고 해도 허락해주지 않았다.만약 나가고 싶다면 반드시 장화연이나 몇몇 경호원과 함께 나가야 했다.장화연은 여전히 넋을 잃은 상태인 온다연을 보며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도련님, 다연 씨는 이미 많이 얌전해졌습니다. 하루종일 집안에만 있다면 오히려 더 문제가 생길 겁니다.”유강후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안 돼. 지난번에 친구 사귀고 싶다고 해서 허락해줬더니 무슨 사달이 일어났는지 몰라서 그래? 장화연, 왜 점점 예전 모습 잃어가고 있는 거지?”이
온다연은 본능적으로 유강후를 보았다.유강후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그저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그의 눈빛에 놀란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두어 걸음 뒷걸음질 쳤다.“전, 전 잘못한 게 없어요. 의사한테 검사받기 싫다고 전 이미 말했어요. 약도 먹지 않을 거예요. 전 아프지 않아요. 다 아저씨가 억지로 먹이니까 먹은 거라고요!”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반드시 여기서 도망쳐야 해!'‘여긴 너무 숨 막혀!'‘저 사람이랑 함께 있는 1분 1초가 숨 막혀서 살 수가 없어!'입구까지 뛰쳐나온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옷걸이에 있던 겉옷을 입었다.밖에 있던 경호원은 무슨 상황인지 몰랐던지라 온다연이 나오자 막지도 않고 그저 따라갈 뿐이다.온다연은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도착했을 때 갑자기 몸을 돌려 뒤에 있는 경호원을 노려보았다.“따라오지 마세요!”두 사람은 유강후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고 있었기에 그녀의 곁에서 한 시도 떨어질 수 없었다.하지만 눈앞에 있는 온다연이 유강후가 애지중지하고 있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고, 매번 온다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분위기부터 싸늘해졌기에 두 사람은 온다연에게 미움을 살 용기도 나지 않았다.연약한 온다연이 갑자기 노려보자 두 사람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대체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이때 유강후가 나와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온다연을 보았다.“지금은 밤이야. 밖에 눈도 내리는데 어디를 가겠다고 그러는 거지?”온다연은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얼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문이 곧 닫히자 유강후는 차갑게 말했다.“따라가. 멍하니 서서 뭐해?”두 경호원은 얼른 따라가려고 했다.그러나 엘리베이터 문은 이미 닫혀 버렸다. 두 사람은 얼른 계단으로 내려갔다.로비에 도착했을 때 온다연은 이미 밖으로 나가버렸다.두 사람은 깜짝 놀라 얼른 따라갔다.만약 온다연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두 사람의 밥줄도 끊기게 될 것이니까.
두 경호원은 차가 떠나가는 것을 보자마자 따라갔다.그러나 택시 기사는 영원 토박이였고, 또 택시 운전을 몇십 년 하고 있었던지라 빠르게 뒤따라오는 경호원의 차를 따돌렸다.곧 영원을 벗어날 것으로 보이자 기사는 다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아가씨, 아까 그 사람들은 누구예요? 덩치가 참 크던데, 아가씨가 나온 그 호텔에 경원에서 온 엄청난 인물이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온다연은 담담하게 답했다.“전 잘 몰라요. 제가 저 사람들 돈 좀 빌렸거든요. 그래서 도망치고 있었던 거예요.”기사는 더는 묻지 않았다.한참 지나자 온다연이 갑자기 물었다.“기사님은 아이가 있으세요?”기사는 웃으며 답했다.“당연히 있죠. 자식이 둘이에요. 큰아이는 경원에서 대학교 다니고 있고, 작은 아이는 아직 중학교 다니고 있어요. 주머니 사정이 빠듯하지 않았다면 이런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온다연은 손을 배에 올리며 작게 말했다.“아이가 있다는 기분은 어떤 기분이에요?”기사는 백미러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혹시 임신했어요?”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기사는 눈치챈 듯 한숨을 내쉬었다.“임신한 거라면 낳아요. 아이가 있는 생활도 나쁘지 않으니까. 아이는 아가씨를 더 오래 살게 해줄 수 있는 버팀목 같은 존재예요. 아이가 있음에 삶에 동력이 생기고 희망도 생기게 되는 거죠. 어쨌든 나는 그랬어요.”그의 말에 온다연은 다소 경직되었다. 평평한 배를 만지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다만 유강후는 분명 이 아이를 원치 않을 것이다.환영받지 못하는 아이였던지라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아마 그녀를 제외하고 누구도 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길 바라지 않을 거다.그녀는 순간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자신보다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자신의 배 속에 있는 시간만큼은 기대를 받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만약 누군가 그녀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억지로
“절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만약 다시 붙잡힌다면 아이는커녕 제 목숨도 지켜낼 수 없을 거예요!”택시 기사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얇은 옷차림이었던지라 확실히 어딘가 불쌍하게 보여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이 차는 이미 들켰어요. 지금 우리 기사들만 있는 단톡방에서도 모든 게이트가 막혔다고 문자가 올라오고 있어요. 이 차 색깔만 골라 전부 검사한다고 하더군요. 어휴, 한번 마음 쓴 김에 끝까지 써보죠. 내가 다른 차를 불러줄게요.”말을 마친 그는 누군가에게 연락했다.5분 정도 지났을까, 자가용 한 대가 그들이 탄 차 옆에 멈춰 섰다.기사가 말했다.“얼른 타요. 저걸 타면 안전할 거예요.”온다연은 머뭇거리다가 택시 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곤 승용차로 올라탔다.안전하든 아니든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이곳에만 있다가 유강후에게 붙잡혀 돌아가는 것보단 나았다.가는 길은 아주 순조로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원으로 돌아왔다.차에서 내리자마자 검은색 승합차가 그녀를 향해 빵빵 소리를 냈다.그녀는 빠르게 승합차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그 안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임정아가 앉아 있었다.임정아의 어깨는 훤히 드러나 있었고 목에는 비싼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눈썹을 꿈틀거렸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병원에 같이 가 달라니요. 전 연예인이에요. 그런데 저한테 그런 부탁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온다연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뒤 생수를 꺼내 마셨다.“이렇게 하면 돼요.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 써요. 그러면 아무도 정아 씨인 걸 모를 거예요.”임정아는 말문이 막혔다.“만약 파파라치한테 사진이라도 찍혀 내일 아침 대문짝만한 기사라도 나면 저더러 어떻게 하라고요!”온다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따가 신분증도 빌려줘요.”임정아가 말했다.“안 돼요!”온다연은 멈칫했다.“그럼 정아 씨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을 거예요.”임정아는 혀를 하며 눈을 가늘게 접었다.“전에는 연약하고 만만한 상대인 줄 알았
온다연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지고 눈앞에 있는 차를 노려보았다.자세히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안도할 수 있었다.하지만 임정아의 안색이 변했다.그녀는 그 차를 빤히 보다가 기사한테 말했다.“그냥 들이박아요!”기사는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럴 수 없습니다. 저 차는 송 시장님 차에요. 전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아요.”임정아의 표정은 한껏 일그러졌다.“그냥 박으라면 박아요. 대체 뭘 두려워하는 거죠?”기사는 여전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임정아는 차에서 내린 뒤 기사를 운전석에서 끌어냈다.“정말 쓸모없네요. 꺼져요!”그러고 난 후 시동을 걸었다.두 사람이 탄 차는 그대로 앞차로 달리고 있었다.앞에 있던 차는 승합차가 정면으로 달려오자 바로 핸들을 꺾어 피해버렸다.임정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속도를 끝까지 올리며 빠르게 병원으로 달렸다.온다연은 뒤를 보다가 작게 말했다.“따라오고 있어요.”임정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다연은 송지원을 만난 적 있었다. 경원에서 아주 젊은 나이로 부시장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고 집안 배경도 빵빵했다.게다가 송지원은 유강후와도 깊은 사이였다. 온다연은 유강후가 마련한 식사 자리에 여러 번이나 송지원을 봤었다.만약 송지원이 임정아의 차에 자신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모든 것이 들통나게 될 것이다.그렇게 생각한 온다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송지원 씨는 아저씨 친구에요. 만약 제가 여기에 있다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끝장날 거예요.”임정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그럼 이따가 연기 좀 해줘요. 제 매니저인 척하면 못 알아볼 거예요.”온다연이 또 물었다.“송지원 씨랑은 무슨 사이에요? 왜 따라오는 거죠?”임정아는 입꼬리를 픽 올리며 말했다.“전 약혼자예요. 그리고 지금은 원수지간이죠. 딱히 무슨 사이라고 할 건 없죠.”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빠르게 병원에 도착했다.내리기 전 온다연은 마스크를 착용한 뒤 모자를 푹 눌러
임정아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나은별 그 여자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에요. 저도 상대하기 버거운 사람이라고요. 교활하고도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나은별 같은 타입이 취향이죠.”온다연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말을 하려던 순간 고개를 드니 차 앞에 누군가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그 사람은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고 아주 점잖아 보였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임정아에게 고정되었다.송지원이다.온다연은 황급히 마스크를 착용하며 작게 말했다.“앞에 사람 있어요.”임정아도 고개를 들어 보았다. 안색이 바로 굳어지며 빈정댔다.“언제부터 송지원 씨에게 사람을 미행하는 취미가 생긴 거죠? 전 아주 대단하신 송지원 씨가 절대 이런 볼썽사나운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송지원의 시선이 온다연이 들고 있던 진단서로 옮겨졌다.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매니저랑 이 밤에 병원에 왜 온 거지?”온다연은 안도했다.송지원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임정아의 비서로 오해하고 있었다.임정아는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송지원 씨랑 무슨 상관이죠?”송지원은 그녀를 빤히 보았다.“아픈 거야? 어디가 아픈 건데?”임정아는 그를 무시하며 온다연에게 말했다.“타요.”이때 송지원이 갑자기 다가오며 온다연 손에 들고 있던 진단서를 확 빼앗아 갔다.훑어보던 그는 안색이 변했다.“임수아, 임신했어?”임정아의 본명은 임수아였다. 임정아는 예명일 뿐이다. 방금 온다연은 그녀의 신분증으로 검사를 받았다.임정아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그래요, 뭐가 문제 있어요?”송지원은 진단서를 꽉 잡았다. 온다연은 송지원 손등으로 튀어나온 퍼런 핏줄을 보았다.갑자기 고개를 들던 그는 임정아를 무섭게 보았다.“누구 애야.”임정아는 픽 웃었다.“어차피 송지원 씨 아이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 결혼은 이미 없던 일이 되었잖아요. 제가 누구 아이를 배든 무슨 상관인데요. 계속 이러시면 저한테 마음이 있는 거로 간주할 거예요.
누군지 떠올리기도 전에 송지원의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달려왔다.그는 힘겹게 송지원을 임정아에게서 떼어냈다.그리곤 힘을 써 빨개진 얼굴로 임정아를 향해 소리 질렀다.“얼른 가요. 멍하니 서 있지 말고 가세요!”임정아는 기침을 했다. 손발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그녀는 송지원이 정말로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순간 느꼈다.‘정말 미쳤어!'그녀는 기침해대며 말했다.“타요, 얼른!”차는 빠르게 주차장을 벗어났다. 운전기사는 여전히 이성을 잃은 남자를 붙잡고 있었다.온다연은 조수석에 앉아 임정아를 힐끗 보았다.임정아의 목엔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 있었고 여전히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온다연이 작게 말했다.“조금 쉬다가 다시 운전할래요? 지금쯤이면 아마 못 쫓아 올 거예요.”임정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길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웠다.차에서 내린 그녀는 담배를 꺼내 피우다가 전화를 받았다.한참 지나서야 다시 차로 돌아왔다.임정아는 진정을 되찾은 듯 담담하게 말했다.“유강후 씨가 지금 다연 씨를 못 찾아서 이성을 잃은 상태라고 하네요. 영원 전체를 지금 다 막아버렸다고 해요. 당시 다연 씨를 태워줬던 택시 기사님도 찾았대요. 대체 무슨 수단을 쓴 건지 모르겠지만 기사님은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유강후 그 미친놈과 지금 경원으로 오는 중이라고 해요.”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는 유강후가 자신을 빨리 찾을 줄은 예상하였지만 운전기사까지 난처하게 할 줄은 몰랐다.핸드폰을 꺼낸 뒤 미리 빼버린 유심 카드를 다시 넣었다.그리고 전화를 걸었다.몇 번의 신호음 끝에 유강후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디야.”온다연은 핸드폰을 꽉 잡았다.“기사님을 어떻게 하신 거예요?”그는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말해, 어디야.”온다연은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웠다.“얼른 기사님 풀어줘요!”유강후의 목소리는 아주 싸늘했다.“온다연, 내가 지난번에도 말했지? 또다시 말도 없이 사라지면 그땐 벌을 내려줄 거라고!”온다연은 갑자기 소리를 질렀
유자성이 차가운 얼굴로 문 앞에 나타나더니 경호원들을 향해 손짓했다.“유씨 저택으로 데려가요.”경호원이 망설였다.“문 앞의 경호원이 검문하면 어떡합니까?”유자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아버지의 지시라고 말해요. 그 사람들이 감히 아버지 명령을 거역하지 못해요.”“네!”이때 밖에서 누군가가 말했다.“유자성 씨,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유자성은 혼수상태에 빠진 유강후를 힐끗 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얼른 데려가요. 그 다음 일은 할머님이 지시하실 거예요.”말하고 나서 그는 유재성의 병실에 들어갔다.유재성은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고, 병색을 띠었지만 전반적으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그는 유자성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정색하며 말했다.“또 강후에게 전화했어? 그냥 잔병이고 고질병이야. 2-3일 지나면 퇴원할 수 있어. 강후가 바쁠 텐데 방해하지 마.”유자성은 뜨거운 물을 따라서 그에게 건네주며 웃었다.“아버지, 걔가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방금 전화했더니 비서가 받더라고요. 지금 국내에 없고 며칠 후에야 돌아온대요. 강씨 집안에 볼일이 있나 봐요.”유재성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이더니 한참 후에야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너희 두 형제가 얼마 전 마찰이 있었다던데, 강후가 돌아오면 내가 화해시켜 줄게. 친형제 사이에 분란이 생기면 안 돼야. 계속 이대로 나가면 유씨 집안에 조만간 큰 문제가 생길 거야.”유자성은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걔가 남을 위해...”“그건 강후의 선택이야.”유재성은 언짢은 얼굴로 유자성의 말을 잘랐다.“누구와 결혼하는지는 강후 자신의 선택이야. 형이라는 사람이 축하는 못 할망정 방해하다니. 그게 말이 돼?”유자성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걔는 이제 우리 집안일을 전혀 상관하지 않고 하령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하령이 어렸을 때 그 고아와 약간의 마찰이 있었는데, 무슨 엉뚱한 소리를 들었는지 모든 잘못을 하령에게 돌리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하령이
온다연은 그의 손을 반대로 잡았다.“혼인신고는 하루 이틀 늦출 수 있어요. 아버님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그분은 다른 유씨 집안 사람들과 달라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유씨 가문이 무너지든 말든 그녀는 관심이 없다.하지만 유재성은 유강후의 친아버지다. 게다가 집에 있는 시간이 극히 적어 그녀와 마주칠 기회도 거의 없었으니 유하령이 그녀를 괴롭히게 방임한 유자성과 달랐다.유강후의 눈빛은 유난히 어두웠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차에서 이권이 입을 열었다.“셋째 도련님, 강 대표님께 알릴까요?”유강후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저었다.“아니, 어머니는 아버지 소식을 듣고 싶지 않으실 거야.”이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생각에 잠겨 창밖을 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아버지 사무실에 전화해서 정말 귀국했는지 확인해 봐. 너무 공교로운 것 같아.”이권은 즉시 전화를 걸었고, 연결된 후 몇 마디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사무실에서 회장님이 어제 귀국하셨고, 아파서 지금 병원에 있다고 합니다.”유강후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이권이 또 입을 열었다.“참, 영상을 올린 사람을 찾았는데, 자기가 아무 생각 없이 올렸고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줄은 몰랐다고 잡아떼고 있어요.”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간단해. 지금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뒤에 있는 사람이 두려워서야. 우리가 그쪽보다 더 무섭고 더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말하지 않을 수 없어.”이권이 고개를 끄덕였다.“각 플랫폼에서 인기 댓글과 동영상을 삭제하면서 이미 열기가 식었어요. 댓글 알바들도 우리 쪽의 맹렬한 반격에 꼼짝달싹 못 하고 있고, 일부는 신상까지 털려 아우성이에요.”“주희가 올린 영상도 한몫했어요. 열광적 팬들이 물고 놓지 않아 악성 댓글 작성자들이 뭇매를 맞았나 봐요.”유강후는 표정이 극히 차가웠다.“배후에 있는 자는 잘 숨는 게 좋을 거야. 누군지 알게 되면 내가 죽고
유강후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오늘 휴대폰을 안 쓰기로 했잖아.”온다연이 잠시 머뭇거렸다.“아직 외출하지 않았으니 한번만 볼게요. 중요한 사람이 아니면 받지 않으면 되죠.”유강후는 성큼성큼 방에 들어가 온다연의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안색이 흐려졌다.“왜 염지훈에게 네 전화번호가 있어?”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이 휴대폰 번호는 그녀가 퇴원한 후 유강후가 특별히 새로 개통한 것이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염지훈이 어떻게 아는 거지?온다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강후가 수신 버튼을 눌렀다.염지훈의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연아, 괜찮아? 인터넷에서...”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유강후가 쌀쌀하게 잘라버렸다.“염지훈, 참 낯짝이 두껍구나. 우리 곧 결혼해. 나를 자극하지 마. 매번 네 형의 체면을 봐서 넘어가 줄 수는 없어.”염지훈이 코웃음을 쳤다.“유강후 씨, 낯짝이 두꺼운 건 당신이에요. 아저씨라는 명분으로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숨겼잖아요. 왜 그렇게 친절하게 온다연을 곁에 두는가 했더니 그런 더러운 마음을 숨기고 있었네요. 당신이 강요한 거죠?”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렇더라도 너하고는 상관없어. 다시는 우리 앞에 얼쩡대지 마.”그는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온다연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는 휴대폰 전원을 끄고 침대에 던져버렸다.아침을 먹을 때, 온다연은 혼인신고 후 기념사진을 찍을 생각에 약간 뒤숭숭했다.그래서 대충 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우유와 계란찜을 그녀 앞으로 밀었다.“조금 더 먹어.”이때 장화연이 휴대폰을 들고 들어왔다.그녀는 다급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셋째 도련님, 본가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버님이 갑자기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대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디가 편찮으시대요? 해외 방문 중이었는데, 귀국하셨어요?”장화연이 대답했다.“뇌경색인데, 지금 병원에 계시다고 합니다.”유강후는 손을 멈추었다.“심각하시대요?”
게다가 방금 뜨거운 사랑을 나눈 까닭에 얼굴에 옅은 홍조가 올라와 천진하고 아리따워 보였다.유강후는 한참 지켜보다가 또다시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꼬맹이는 그런 것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 자그마한 양지옥 열쇠를 만지작거렸다.“진짜 예쁘네요. 언제 산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을 잡고 그 열쇠를 만지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산 것이 아니야.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거지.”온다연이 깜짝 놀랐다.“그렇게 비싸요?”유강후는 열쇠에 새겨진 정교한 무늬를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옛날에 왕이 쓰던 옥인데, 큰돈을 들여 낙찰받은 후 최고의 수공예 장인을 모셔다 3년에 걸쳐 완성한 거야.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물건이지.”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뽀뽀하더니 정색하며 말했다.“이건 강씨 집안 여주인의 물건이라 강씨 집안 여주인만 사용할 수 있어.”“이 열쇠는 강씨 집안 금고 열쇠야.”온다연이 화들짝 놀랐다.“이건 너무 귀중한 물건이라 받을 수 없어요.”그녀는 말하면서 목걸이를 풀려고 했다.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고했다.“네가 감히 풀면 그 손을 분질러버릴 거야.”온다연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건 너무 귀중한 물건이에요, 아저씨...”그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우주그룹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재벌 그룹 중 하나이며 경제력이 탄탄해 한 나라의 경제를 어느 정도 조종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그런 우주그룹의 금고 열쇠를 그녀가 어찌 감히 받겠는가.“풀어서 넣어두는 게 좋겠어요.”유강후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안 돼. 적어도 오늘은 꼭 착용해야 해. 오늘은 우리가 혼인신고 하는 날이잖아. 오늘부터 너는 내 아내야. 즉 강씨 집안의 여주인이 되는 거지. 앞으로 매일 재무에 관한 지식을 가르쳐 줄 거야. 덩치가 큰 강씨 가문을 관리하려면 장부를 보는 법과 자산관리를 배워야 해.”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키스했다.“
유강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참을 수 없어도 참아야 해.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온다연은 지려 하지 않았다.“고쳐야죠. 계속 이러면 제가 어느 날 정말 견딜 수 없어 아기를 데리고 떠날 수도 있어요.”그녀의 허리를 잡은 큰손에 갑자기 힘이 실리고, 몸이 앞으로 확 끌려가 유강후의 다부진 몸에 찰싹 붙었다.그의 목소리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온다연, 다시 또 이런 말을 하면 정말 화낼 거야.”온다연은 수그러들지 않았다.“화를 내면 어쩔 건데요?”유강후는 실눈을 짓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나지막이 말했다.“이렇게 벌을 내릴 거야.”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깨물었다.곧 가쁜 숨소리가 전체 공간을 채웠다.온다연은 뒤에 있는 서랍장 때문에 옴짝달싹 못 했다.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의 강력한 공세를 견뎠다.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저번에 서재에서 관계를 가진 이후로 유강후는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듯 그녀가 만족할 수 있게 힘 조절과 수위 조절을 완벽히 해냈다.그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켰다.그는 그녀의 귓불을 가볍게 깨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이래도 떠날 거야?”온다연은 모든 신경이 그의 몸에 집중돼 사고력을 잃은 듯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아니, 떠나지 않을 거예요...”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에게 더 큰 보상을 해주었다.온다연은 거의 통제력을 잃고 또 그의 옷을 더럽혔다.다 끝나고 그의 옷이 얼룩덜룩해진 것을 본 그녀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의 몸에서 내려올 힘조차 없었다.유강후는 그녀의 몸이 달아올라 옅은 분홍색을 띠는 것이 좋고, 그녀가 자기 손에서 피어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수줍어하거나, 참지 못하거나, 약간 요염한 모든 것이 그의 것이다.그는 땀에 젖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넌 이런 게 좋아?”온다연은 방금 방탕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니 부끄러워 감히 대답하
온다연은 불만스러운 듯 볼에 바람을 넣고 눈살을 찌푸렸다.“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왜 아저씨는 휴대폰을 쓸 수 있는데, 저는 안 돼요?”너무 귀여운 모습에, 유강후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알았어. 오늘은 업무용 휴대폰만 쓸게, 됐지?”몇 개 대기업을 관리하는 그에게 휴대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다연은 당연히 잘 알고 있다.중요한 일이 있을 때, 유강후의 전화가 연결이 안 되면 금융시장에 꽤 큰 파문이 일 수도 있다.온다연은 조금 걱정됐지만 기쁘기도 했다.그녀는 살짝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오늘 하루 종일 같이 있을 거예요?”그동안 유강후는 아침과 저녁에만 집에 있었고, 낮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그래서 하루 종일 같이 있는다니 약간 기대가 됐다.유강후는 그녀에게 뽀뽀했다.“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고 싶어?”온다연은 귀 끝이 빨개졌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기도 함께했으면 더 좋을 텐데.”아기도 곧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니 그녀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가족은 원래 같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그녀는 그런 가슴 쓰린 아픔을 알기에 자기 아이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아이가 커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볼 것이며, 모든 고요한 밤과 희망찬 아침을 함께할 것이다.유강후도 이 아이를 몹시 아끼는 것 같고, 그녀가 지금까지 잃은 것들을 여기서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그런 걸 간절히 원해?”온다연은 그의 가슴에 기댄 채, 기대 어린 눈빛으로 중얼거렸다.“이건 저의 모든 희망이에요. 아저씨,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해요. 아기도 있고 아저씨도 있는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저 같은 사람도 이런 걸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아저씨, 고마워요. 아저씨도 아기를 위해 큰 노력을 했어요. 아기를 지켜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주혜성이고 오늘 실검에 오른 온다연의 죽마고우입니다. 우리 둘은 같이 자랐고, 거의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온다연은 마음이 고운 사람이었고 상간녀가 될 리 없습니다.”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온다연과 그 남자들의 이야기는 모두 누군가가 지어낸 헛소문입니다.”수줍게 웃는 그의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제가 오랫동안 쫓아다녔는데도 온다연은 저를 받아주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늙은 남자에게 반할 수 있겠습니까?”“제가 그 남자들보다 못생겼을까요? 그래서 그 남자들을 선택하고 저를 선택하지 않았을까요?”“온다연과 그 아가씨가 실랑이를 벌인 데는 뭔가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게다가 그 영상은 편집된 것입니다. 영상을 올린 분께서 전체 영상을 공개하시길 바랍니다. 일부만 공개해서 오해를 유발하지 마시고요.”“조금만 생각해 보면 헛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여러분, 법을 지키는 좋은 시민이 되십시오.”말을 마친 그는 카메라를 향해 천천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 모습은 성에서 걸어 나온 왕자처럼 우아했다.유강후는 동영상을 꺼버렸다. 그는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이 자식이 이런 방식으로 온다연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하다니.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모르겠다.주씨네 형제는 둘 다 정말 성가시다.이때 온다연이 침실에서 나왔다.그녀는 천천히 걸어와 뒤에서 유강후를 끌어안더니 맹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아침부터 뉴스를 봐요?”유강후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돌아섰다.그는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잘 잤어? 점심까지 자겠다고 하지 않았어?”온다연은 얼굴을 그의 손에 비비며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또 악몽을 꿨어요.”“무슨 꿈인데?”“꿈에 아기가...”그녀는 말을 멈추었다.왠지 모르지만 그녀는 자꾸 아이가 없어지는 꿈을 꾼다. 게다가 꿈속의 아이는 유강후와 똑 닮았다. 그녀는 꿈속에서 너무
나은별은 전화기 너머에서 울기 시작했다.“강후 씨, 내가 한 게 아니야.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렇게 뻔한 짓을 왜 하겠어?”“믿어줘. 정말 아니야. 강후 씨,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나에게 이 정도의 믿음도 없어?”유강후가 침묵을 지키자, 나은별이 울면서 말했다.“온다연 씨가 나를 오해하고 때렸어도 나는 온다연 씨한테 화풀이하지 않았어. 어쨌든 강후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강후 씨 체면을 봐서라도 온다연 씨에게 손을 대지는 않아.”“내가 당장 해명 영상을 올려서 온다연 씨의 누명을 벗겨줄 테니 의심하지 마.”유강후는 휴대폰을 꽉 쥔 채 쌀쌀하게 말했다.“나은별, 이 일이 너랑 상관없기를 바랄게.”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다.이권이 가자마자 한이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어떻게 된 거야? 지금 일이 너무 크게 번졌어. 여론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서 악성 댓글을 아무리 삭제해도 계속 올라와.”“실시간 검색어를 최대한 삭제하고 있지만 이미 널리 퍼져서 덮기는 어려울 것 같다.”“뒤에서 누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빨리 퍼질 수 없어.”유강후는 휴대폰을 잡은 채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덮어야 해. 악성 댓글 작성자 아이디를 전부 기록해. 헛소문을 퍼뜨렸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그는 전화를 끊고 즉시 몇몇 대형 SNS와 동영상 사이트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들 중 몇 명은 평소에도 미래그룹과 사업상 접촉이 많은 터라 전화를 받은 뒤 곧바로 실시간 검색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다른 몇 명은 유강후와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미래그룹처럼 덩치가 큰 거대기업이 먼저 손을 내미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어쨌든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은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 점점 밀려나다가 점차 실시간 검색어에서 사라졌다.하지만 유강후는 방심하지 않고 동향을 예의 주시하라고 부하에게 시켰다.잠시 후 이권이 누군가가 댓글 알바를 고용해 인터넷에서 온다연의 과거를 캐기 시
집에 들어선 후, 유강후는 시원한 연고를 가져와 온다연에게 발라주었다.그런데 장화연이 어쩌다 이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온다연은 한순간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밥도 먹지 않고 숨어 있었다.유강후도 너무 후회되어 그녀를 끌어안고 한참을 달랬다.저녁에 아기 보러 병원에 갈 때까지 이 상황은 계속됐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진 것을 보고 온다연은 그제야 겨우 화를 풀었다.이튿날 아침 유강후가 침실에서 나오니 이권이 벌써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셋째 도련님, 인터넷을 좀 보세요. 온다연 씨가 인터넷 스타가 됐어요.”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인터넷 스타라니, 무슨 소리야?”이권은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건넸다.“일단 보세요. 제가 처리하고 있긴 하지만, 실검을 세 번이나 눌렀는데도 상황이 정리가 안 돼요.”‘상간녀가 보석 가게에서 본처를 때렸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가 있었고, 그 아래에 비슷한 댓글이 가득 달렸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동영상을 열었다.어제 온다연이 보석 가게에서 나은별과 싸우는 장면이었다.동영상만 보면, 확실히 온다연이 먼저 때렸다. 게다가 온다연은 날뛰고 있고, 나은별은 한 번도 반격하지 않은 채 처참하게 맞는 모습이었다.동영상은 온다연이 나은별을 때리는 데서부터 시작돼 조아영이 그녀를 끌어낼 때까지 1분여 동안 지속됐다.중간에 편집 흔적이 전혀 없어 딱 봐도 원본 영상이었다.‘좋아요’가 600만 개 이상, 리트윗이 300만 개 이상에 달하고, 댓글 창은 온통 욕하는 말들로 도배됐다.[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상간녀가 이렇게 대놓고 날뛰어도 되는 거야?][이건 너무 심하잖아. 상간녀가 누군지 신상 털어!][진짜 뻔뻔스럽군. 유부남을 꼬신 주제에 감히 이렇게 날뛰다니. 이 여자와 부모의 신상을 털어 온 가족이 고개를 쳐들고 다니지 못하게 해야 해.][본처가 진짜 나약하네. 내가 저 여자라면 그 자리에서 상간녀 머리를 부숴버렸을 거야.][상간녀가 어려 보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