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민은 침묵했다. 이강현이 한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도 반박할 수 없었다. 최순은 고건민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망설이다 말했다. “이강현, 넌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그 땅이 우리 집의 것이라고 생각해. 우리 건데 왜 공짜로 그 사람들한테 줘야 하는데? 우리한테 득이 될 게 뭐가 있다고?” “당신.” 고건민은 최순을 쳐다보면서 그가 한 말에 대해 다소 불만스러워했다. “내가 뭐? 내가 이러는 것도 다 우리 집을 위해서잖아.” 최순은 당당하게 말했다. “이 땅은 가문에서 필요한 땅이야. 우리가 숨기고 내놓지 않으면 남들이 손가락질할 거라고.” 고건민은 초조한 말투로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리 해명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아. 거기다 만약 고민국 그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어서 뿌리면, 나 고건민의 체면은 어떡하라고?” 자신의 체면을 위해 고건민은 차라리 토지를 가문에 넘겨줄지언정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다. 최순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손가락질할 게 뭐가 있어? 지금은 모두 가난한 사람을 비웃지 누가 이런 거로 사람을 비웃어? 이 땅을 주고, 앞으로 유산도 상속받지 못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거지가 되는 거야.” “그래도 손가락질당할 수는 없잖아.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리 가족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될 거야. 이 일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어. 난 이미 결정했어, 반드시 가문으로 넘겨야 해.” 고건민은 가장의 위엄을 내세워 최순이 사리사욕으로 자신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최순은 화가 나서 고건민을 바라보면서 정신 차릴 수 있게 고건민을 세게 꼬집고 싶었다. “당신 왜 그렇게 멍청해? 명성이 돈이 돼? 당신이 정말 그렇게 하면 당신 큰형이 좋다고 배 그러안고 웃겠네.” “아버지, 어머니, 이강현의 의견도 좀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무리 그래도 이 땅이 이강현 건데.” 고운란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순은 눈이 밝아지며 이강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크루프는 차를 몰고 서울 교외로 가서 강변에 차를 세웠다. 강변의 굽이길에서 한 사람이 앉아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모습은 꽤 수척해 보였다. 반쯤 하예진 머리는 뒤통수에 꽁쳐있었고 강변에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바짝 마른 뒷모습을 본 크루프는 침을 꿀꺽 삼키고 눈빛에는 두려운 기색이 스쳤다. 크루프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그룹의 최고경영자이긴 하지만 자신의 생사를 좌우지할 수 있는 눈앞의 늙은이에 대해 끝없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마른 노인의 신분에 대해 크루프는 잘 모른다. 단지 이 노인이 자기 사장의 사장의 사장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원래 크루프는 마른 노인을 만날 자격이 없었지만, 고씨와 합작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계층의 장벽을 허물고 자신의 지위보다 몇 층이나 높은 인물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크루프는 옷을 정돈하고 순례하는 심정으로 마른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노인 뒤의 반 미터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몸을 굽혀 말했다. “팔어르신, 안녕하세요, 저는 크루프입니다.” “음.” 팔어르신은 비강으로 소리를 내 크루프의 말에 대답했다. 크루프는 허리를 좀 더 굽혀 황송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고씨가문과 연락을 취해서 고운란과 보충협의를 체결했어요.” “음.”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팔어르신께서 지시를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이강현은 만났냐?” 팔어르신은 여전히 눈을 감고 말했다. “네 만나긴 했지만 이강현과 직접적인 교류는 하지 않았습니다. 보아하니 왕래하기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씨가문에서 조금 난감한 위치에 처해있는 듯합니다.” 크루프는 이강현을 만났을 때의 장면을 회상하면서 자신이 묘사한 것이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난감한 것뿐이겠는가? 고씨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병신취급받았으면 병신처럼 살 것이지 왜 이 난리를 쳐가지고.” 크루프는 팔어르신이 한 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이 말은 팔어르신만이 알 수 있었다. 이강현이 용후와 싸
크루프는 팔어르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은 집행만 하고 다른 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반드시 최선을 다해 고운란과 이강현의 신뢰를 얻겠습니다.” “아니, 내 말은 네가 그들에게 비위를 맞추라는 게 아니고 그들이 너를 믿고 따르게 하라고. 알아들었니?” 팔어르신이 느릿느릿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그들의 신뢰를 얻겠습니다.” 크루프가 공손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넌 일단 돌아가. 분수에 맞게 행동하고.” “알겠습니다.” 크루프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 비록 몇 마디밖에 대화를 안 했지만 팔어르신의 카리스마는 살얼음판을 걷게 하는 기분이었다. 차에 돌아온 크루프는 다시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좌석에 앉아 숨을 몰아쉬였다. “그들의 신뢰를 얻으라고? 듣기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정말 어려운 건데.” 크루프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군가의 신뢰를 얻는다는 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건데 크루프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개인적인 매력으로 얻어야 하나?’ 하지만 크루프는 자신이 그렇게 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뿐이야.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 고운란과 이강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그들의 신뢰를 얻는 거지.’ 크루프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아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크루프는 눈을 뜨고 핸드폰을 꺼내 비서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룹의 명의로 한성에서 술파티를 열어서 한성의 명사들을 모두 초대해. 아니, 한성의 명사들은 자격이 별로 없는 것 같으니까 주로 서울의 명사들과 재벌 2세들을 초대해. 한성의 명사들은 몇 명만 초대해서 구색만만 맞춰주면 돼.” 크루프는 또 비서에게 일부 주의사항을 당부한 후 말했다. “고운란 씨와 이강현 선생에게도 초청장을 발송해. 그들 회사로 발송해.”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실행하겠습니다.”비서는 집행력이 강해 전화를 끊은 후 크루프의 분부에 따라 자격 있는
‘가문에서 너무 약한 게 문제야. 누구나 와서 괴롭히려고 하니.’ 답답한 최순은 이강현에게 화풀이를 했다. “이건 우리가 가문에서 너무 지위가 없기 때문이 아니야! 다 이강현 이 병신 사위 때문이야. 만약 권력이 있고 세력이 있는 사위였다면 누가 감히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겠어?” “병신! 우리 가족까지 괴롭힘을 당하게 하는 병신! 다른 사람이 손에까지 쥐여준 물건도 지킬 수 없는데 무슨 면목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 최순은 말을 할수록 화가 나서 결국 젓가락을 던지고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고건민은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바라보았다. “다르게 생각하지 마, 네 장모가 원래 이런 성격이잖니.” “괜찮아요, 아버지. 우리 빨리 먹고 회사로 가죠.” 이강현은 전혀 상관없는 듯 말했다. 이강현은 이미 만전의 준비를 마쳤다. 앞으로 무슨 불리한 일이 일어날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이 땅은 오히려 독이 있는 미끼였다. 이강현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계약 중의 독환조항으로 모든 꿍꿍이를 품은 사람들이 피를 토하게 할 수 있었다. 고건민도 밥맛이 뚝 떨어져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 이강현과 고운란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세 사람은 집을 떠나 곧장 회사로 향했다. 회사의 회의실엔 고씨어르신이 이미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고민국과 고건강은 고씨 어르신의 좌우에 앉았고 고흥윤과 고청아는 고씨어르신의 뒤에 서서 어르신의 어깨를 주물렀다. “아버지, 이번 합작은 우리 고씨가문에게 아주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 그쪽에서 너무 급하게 재촉해서 마침 이강현의 손에 노는 땅도 있고 해서 아무래도 우리 가문에서 사용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거고요.” “응, 네 생각이 맞아. 그 병신이 땅을 가지고 있으면 뭐 하겠어. 새 공장의 건설 용지로 삼는 것이 가장 좋지. 근데 왜? 그 병신이 동의하지 않니?” 고씨어르신은 눈을 감고 말했다. 고건강은 냉소하며 말했다.“아버지, 어제 그 병신의 광기를 못 보셔서 그래요. 얼마나 사람을 화나
크루프가 고운란과 이강현을 파티에 초대했다고?’고민국은 질투가 났다.‘왜 고운란과 이강현만 초청한 건데? 내가 고씨 집안의 기둥인데! 앞으로 고씨 집안은 내것이 될텐데.’고민국은 마음속으로 아우성쳤다. 고민국은 크루프의 행동에 불만이 가득했다.“월리스 선생님, 크루프 선생님께서 고운란과 이강현만 초대한 건가요?”고민국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네, 파티에는 서울 상류 사람들과 재벌들만 초대받았어요, 한성에서 초대받은 사람은 몇 명이 안되요, 고운란 아가씨와 이강현 성생님은 대표님과 파트너이신지라 이번 파티에 참석하게 되셨어요.”월리스는 초대장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전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네요, 초대장 고운란 아가씨한테 전해주세요.”월리스가 떠나려고 하자 고민국이 다급하게 물었다.“저 뭐 좀 여쭤보고 싶은데 우린 왜 초대장을 받지 못한건가요? 우리도 크루프 선생님과 합작파트너잖아요.”“아니죠, 아니죠, 당신들은 대표님 파트너 가족분들이죠, 저는 제가 알아듣게 잘 전달했다고 보는데…….”말을 마친 월리스는 자리를 떠나고 고민국만이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언제부터 내가 고운란과 이강현의 가족이 된 거야?’고민국은 화가 치밀어올랐다.고청아는 여러 재벌들이 모여있는 파티장을 상상하면서 자신이 그 파티에 참석했더라면 파티의 주인공은 틀림없이 자기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 속 고청아는 파티에 참석할 자격조차 없었다.“에헴.”고 어르신이 기침하며 말했다.“그깟 파티 갖고 다들 왜 그래, 다 허무한 것들이야, 땅을 손에 넣는 것이야말로 급선무야, 파티는 둘이 참석하라고 해.”“할아버지, 이건 평범한 파티 자리가 아니잖아요, 인맥을 쌓을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요, 저도 참석하고 싶어요.”고청아가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인맥보다 실력으로 성과를 보여줘야 다른 사람들이 널 존경하는 거야, 넌 이강현이랑 고운란이 파티에 참가하는게 좋은 일일 것만 같니?”고 어르신의 말에 고민국은 생각에 잠겼다.이때 고
고 어르신의 시선이 고건민을 스치더니 이강현 몸에 멈춰 섰다.고 어르신의 시선이 이강현의 시선과 부딪치자 어르신은 용맹한 호랑이마냥 이강현을 보고 으르렁거렸다.고 어르신께서 저런 사나운 눈빛으로 사람은 대한 적은 살아생전 딱 두 번이었다. 고씨 가문의 사업이 위기를 맞았을때 고 어르신께서 저런 눈빛으로 상대방과 담판을 지었었다.이번에는 다름 아닌 고씨 가문의 번창한 앞날을 위해 고 어르신께서 다시금 심기일전 하신 모양이었다.고건민은 몸을 덜덜 떨었다. 고건민은 땅을 내놓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절부절했다.고운란도 고 어르신의 눈빛에 겁먹어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고운란은 어르신께서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만 같았다.이강현은 침착한 태도로 고 어르신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 어르신은 이강현의 태연한 자태에 흠칫 놀랐다.고 어르신은 마치 자신의 주먹이 솜에 닿은 것마냥 무력감이 들었다.“너 나한테 할 말 없니?”고 어르신이 물었다.이강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으면서 계약서를 고 어르신 앞에 가져갔다.“어르신. 땅은 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와 계약서를 체결하셔야 할겁니다, 이 계약서만 체결하시면 땅은 사용하시고 싶은 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고민국은 이강현이 너무 말을 잘 듣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모든 상황을 돌이켜보면 이강현은 순순히 자신의 의지를 굽힐 사람이 아니었다.뭇 사람들의 시선이 의강현의 얼굴에서 테이블에 있는 계약서로 옮겨졌다.“그냥 순순히 내놓으면 될 것이지 계약서는 무슨 계약서야, 너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고흥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고 어르신이 계약서를 들어 훑어보자 고민국과 고건강도 같이 계약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그냥 평범한 양도 계약서였으며 모든 소유권은 고씨 집안 새로운 회사에 있다고 적혀져 있었다.“별 문제 없어 보이는데, 흥윤아, 법무부 사람 불러봐.”고민국이 신중하게 말했다.고흥윤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법무부 사람한테 연락하여 계약서에 함정이 있는지
고민국은 말로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의심이 들었다.이강현이 이렇게 순순히 말을 듣는 것이 뭔가 의심쩍었다. 이강현이 일을 크게 만들 경우를 대비해 어르신까지 모셔 앉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 몰랐다.법무팀에서도 계약서를 확인했고 고건민도 계약서를 깐깐하게 훑어보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탑 클라스의 변호사들이 파놓은 함정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법무팀 인원이 아니고서는 보아낼 수가 없었다.고씨 집안에서 모셔 온 법무팀 인원은 그중에서도 제일 평범한 직원이었기에 보아낼 리가 없었다.고민국은 계약서를 내려놓고는 이강현과 고운란을 번갈아 보더니 고건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이 모든 것이 고건민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민국은 웃으며 말했다.“건민아, 이번엔 좋은 일 제대로 하네? 어제만 해도 너의 집 사위가 나한테 그 땅 절대로 내줄수 없다고 하더니 네가 잘 타일렀나 봐?”고건민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고건민은 자신의 얼굴을 사람들한테 알릴수 있는 기회를 그냥 지나칠 사람이 아니었다.“이강현이 고집은 세도 잘만 타이르면 다 이해하더라구요, 제가 몇 마디 좀 했더니 알겠다고 하더라구요.”고건민의 말에 의심이 사라진 고민국은 웃으며 펜을 들었다.“그래, 그래야 우리 집안이 더 잘 될 거야.”“형님 말씀이 맞아요, 제가 앞으로 더 잘 가르칠게요, 우리 고씨 집안이 강대해져야 저희 집안도 덕을 보지 않겠어요?”고건민은 틈틈히 고 어르신의 눈치를 살폈다. 고 어르신은 입이 귀에 걸려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계약서 체결은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났다. 이강현은 고운란한테 땅문서를 꺼내 고민국한테 넘기라고 했다.고운란이 문서를 꺼내 고민국한테 넘겼다.고민국은 문서를 보며 연신 손벽을 마주쳤다.“우리 고씨 집안 일이 이제야 제대로 풀리는 것 같구나, 운란아 네가 저녁 연회 자리에서 크루프 선생님께 연락해보렴, 그쪽에 생산구역 건설 방안을 제시해달라고 부탁하렴.”“비록 네가 크루프 선생님이 짚으신 책임자이긴 하지만 네가 이 많
고 어르신의 칭찬에 고건민은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고민국과 고건강도 샘이 났다. 하지만 멀지 않아 고건민 집안을 내쫓을 생각을 하니 이 정도쯤이야 참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중요한 건 그 땅이었다.고민국과 고건강은 나오지도 않는 웃음을 억지로 지어 보이며 고 어르신을 배웅한다는 핑계로 자리를 떠났다. 그 후로 고건민도 회사를 떠났다.고청아가 투덜대며 말했다.“얼른 네 남편 데리고 샵에나 갔다와, 차도 좀 빌리고, 우리 집안 망신 주지 않게 너희들 신경 좀 써.”심기가 불편했던 고청아가 드디어 이강현과 고운란을 향해 불만을 털어놓았다.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고흥윤은 앞으로를 생각해서라도 고청아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청아야, 그만 좀 해, 운란이랑 이강현이 우리 집안을 위해 이렇게 많은 희생을 하는데 좀 존경하는 마음이라도 있어야지 않겠니?”“가련한 척 연기 하는 천한 년에 가난에 찌든 거지한테 내가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그 마음 개한테나 주라고 그래.”고청아가 씩씩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고흥윤이 어색한 듯 웃으며 말했다.“신경 쓰지 마, 내가 잘 말해볼게.”고흥윤은 핑계거리를 찾아 회의실을 나갔다. 커다란 회의실에 이강현과 고운란 두 사람만 남아있었다.고운란이 초대장을 이강현한테 건네며 말했다.“난 왜 이렇게 걱정이 되지? 크루프가 왜 큰아버지들은 초대 안 하시고 우리 둘만 초대했을까? 마치 큰아버지랑 우리들을 싸움 붙이려는 것처럼 보이잖아.”크루프의 의도는 알 수가 없었지만 고운란은 이런 모순을 만드는 크루프가 좋은 의도는 아닌 것만 같았다.이강현이 초대장을 꼼꼼하게 훑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대립관계를 만드려는 게 맞는 것 같아, 모순이 생겨야 우리를 지지할 핑곗거리가 만들어지니까, 내 생각이 맞다면 연회장에서 서울 재벌2세들로 우리를 누를 거야.”“그럴리는 없지 않을까? 서울 재벌 2세들이 우릴 아는것도 아닌데 우릴 어떻게 누른다는 거지?”고운란이 믿기 어려운 듯 물었다.서울의 상류사회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