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엽은 두 손으로 우해영의 어깨를 주무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자리에서 밑으로 내려보면 그녀의 쇄골과 부드러운 피부가 보인다. 하지만 그 아래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우해영은 자기의 몸을 잘 보호하고 있었다. 샤워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빈틈없이 자기를 꽁꽁 감추었다.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던 김승엽의 손에 탄탄한 피부의 촉감이 전해져 왔다. 이건 늘 무술을 연습하는 사람의 그런 탄탄함이다. 다른 여자에게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말랑한 느낌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때 키스를 했을 때 와도 다른 느낌이다.저번에 두 사람이 키스를 나누었을 때 자기의 품에 기대었던 그녀의 허리는 말랑하고 부드러웠다. 지금 생각해도 몸이 후끈해질 만큼 그의 마음을 흔들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동일하게 스킨십을 하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두려움이 느껴지고 있다.‘내가 잘못 느낀 것일 거야! 지금 두 사람이 멀리 떨어져서 그럴 거야.’김승엽은 그때의 그 키스가 다시 떠올랐다. 그녀의 말랑한 입술을 생각하니 마음이 간질거렸다. 그는 그때의 느낌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해영 씨...”김승엽이 허리를 굽혀 우해영의 귓가에 입김을 불었다. 그녀의 앙증맞은 귓불에는 다이아몬드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저번에 선물해 준 귀걸이를 하지 않은 게 조금 실망스러웠다.“왜 내가 선물해 준 귀걸이 안했어요?”“...”우해영은 무의식적으로 김승엽을 한 대 칠 뻔했다. 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집에 잘 챙겨 두었어요. 중요한 건 잘 보관해 둬야죠. 당신네 집처럼 귀중한 물건은 잘 챙겨 두어야 좀도둑이 들었을 때 쉽게 훔쳐 가지 못할 거 아니에요?”우해영은 김승엽을 떠볼 생각이었다. 김승엽은 그녀의 말에 다른 뜻이 있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자기가 선물 해 준 귀걸이가 중요하다는 말만 귀에 들어왔다.‘역시, 마음속에 내가 있으면서 일부러 고고한 척하는 거구나.’‘이렇다는 건 내가 뭘 더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닐까?’이렇
지금 이 정도는 우해영이 김승엽을 많이 봐준 것이다.그녀는 남자와 접촉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 하지만 아직 큰일이 남아 있기에 지금 당장 김승엽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작게 혼내는 것뿐이다.무방비 상태였던 김승엽은 그녀에게 입술을 물려 버렸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아파서 이를 악물다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 소리를 질러 버렸다.“미쳤어요? 정말 정신이 이상한 거예요?”그냥 가볍게 혼내고 지나가려 했던 우해영은 그가 욕을 하자 얼굴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녀의 눈빛도 서리가 어려있는 듯 한층 더 차가워졌다.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참지 못하고 욕을 했지만, 그녀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치자 김승엽은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두려움에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그녀의 눈을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사람도 잡아먹을 듯 소름 끼쳤다.“아니, 정말... 아프다고요!”김승엽은 자기도 모르게 기세가 약해졌다. 그녀를 마주 보고 있으니 약간 위축되는 것도 같았다.씁 하고 숨을 들이마시고는 손으로 입술을 만지려다 아플까 봐 만지지 못하고 이내 손을 내리며 엄살을 부렸다.우해영의 살기는 그를 남자답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살기 대신 한심한 느낌이 마음속에 가득했다.‘정말 못났어.’만약 김씨 가문에서 고서를 그렇게 꼭꼭 숨기지만 않았어도 자기 이렇게 직접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우해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찬물 한 컵을 받아 그에게 전해 주었다.“그래요.”“???”마치 다음 순간 그녀가 자기 얼굴에 물을 뿌리기라도 할 듯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물로 좀 헹궈봐요. 그럼 덜 아플 거예요.”우해영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여전히 차가운 태도였지만 조금 전까지 사람을 죽일 듯한 눈빛보다는 훨씬 나았다.그녀에게서 물을 받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입을 헹구려던 순간 문득 무언가 떠올라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소금을... 넣은건 아니죠?”우해영은 어이가 없었다.“내 방에 그런거 없는 거 당신이 누구보다
김승엽이 김씨 가문을 이어받은 사람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노부인이 가장 아끼는 막내아들이다. 김서진과 비교하면 조금 어리석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가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을 확률도 높고 그에게서 비밀을 캐내기도 더욱 쉬울 것이다.화장실에서 입을 헹구고 있는 김승엽은 그녀가 이런 마음을 가졌는지 절대 모를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만나왔던 여자에 비해 우해영은 정말 마음을 얻기 힘들다고 생각했다.얼굴을 들어 거울을 보며 찢어진 입술을 연신 찬물로 헹궈 내니 이제는 덜 아팠다. 하지만 아직 붓기가 가시지 않아 입술이 도톰하게 부어올랐다.두 개의 선명한 이빨 자국이 그의 입술에 박혀있다. 말하지 않아도 그의 입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김승엽은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문지르며 더 이상 이렇게 피동적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수돗물을 닫고 그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문 앞에 서 있는 우해영을 발견하고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갔다.우해영은 단번에 그가 다가오는 걸 느꼈다. 고개를 돌렸을 때 그가 바로 자기의 코앞까지 다가온 걸 보고 조금 당황했다. 김승엽은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그녀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 나섰다.‘이게 뭐 하는 짓이지?!’우해영은 곁눈으로 그의 팔을 한번 보고는 발로 그를 차버릴까 생각하다 이내 그 마음을 접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치켜올려 한 번씩 웃고는 김승엽을 바라보았다.“왜요. 입술이 덜 아파서 한 번 더 물리고 싶은 거예요?”“뭐 하는 짓이에요?”김승엽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에게 되물었다.그의 물음에 우해영은 잠시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웃었다.“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김승엽 씨,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우해영은 가만히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은 것 같았지만 그녀는 무릎을 조금 구부리고 있었다. 만에 하나 그가 쓸데없는 말을 지껄인다면 당장이라도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고통을 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차라리 이 결혼 파혼하는 건 어때요?”잠시 머뭇거리다 김승엽이 입을 열었다.
김승엽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은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잖아요. 나와 있는 게 싫잖아요? 그런 거면 차라리 파혼해요. 무리하게 결혼할 거 없어요.”“내가 언제 싫다고 했어요?”우해영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누가 이렇게 가까이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솔직히 그녀는 정말 그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싫다거나 그와 결혼하기 싫다는 말을 한 적 없었다.“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싫다고 말해주고 있어요. 사실 당신은 내가 마음에 들지도 않고 이 결혼이 기대되지도 않은 거죠?”김승엽은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그녀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 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나도 알고 있어요. 당신 같은 미모에 집안까지 갖춘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는 걸. 그래서 당신이 날 선택했을 때 정말 기뻤어요.”“난 당신이 날 좋아해서 선택한 줄 알았어요. 적어도 호감은 가지고 있을 줄 알았죠. 전에 데이트할 때도 즐거웠고... 그래서 당신이 내게 조금이라도 감정이 있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오늘 당신이 하는 걸 봐서는 내가 잘못 생각했나 봐요. 사실 난 강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당신이 정말 싫다면 이 결혼 없던 걸로 해요.”“파혼했다고 해도 우리 두 가문 사이의 거래는 계속 진행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필요한 게 있다면 말만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도울 테니까. 그저 난 당신이 행복했으면 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말을 마치고 김승엽은 벽을 짚고 있던 팔을 천천히 내가 그녀의 어깨로 가져갔다. 하지만 끝내 그녀의 어깨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멈추었다. 그녀와 닿고 싶지만 주저하다 이내 팔을 내리고 한숨을 푹 쉬면서 밖으로 나갔다.“...”홀로 남겨진 우해영은 그 자리에서 멍해져 버렸다.지금껏 살면서 그녀는 단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다.우해영 주변에 있는 인간관계는 다소 간단했
우해영의 눈빛이 부드러워진 것을 발견하자 김승엽은 말을 덧붙였다.“혹시 다른 사람이 파혼한 걸로 뭐라 할까 봐 그러는 거면 안그래도...”“그 입 닥치라고요!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누가 감히 그런 거로 나 우해영에게 뭐라 할 사람 없어요!”그러고 나서 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당신도 마찬가지예요!”김승엽은 뭐라 더 말하고 싶었지만, 그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자, 자기의 몸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앞으로 당겨져 갔다. 곧이어 그녀의 입술이 자기의 입술에 닿았다.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에 김승엽은 정신이 멍해졌다.‘이 여자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지금 우해영의 행동은 완전히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아까까지만 해도 지극히 그를 혐오하며 입술에 상처까지 냈다. 그런데 지금 왜 갑자기... 그에게 키스하는 걸까?김승엽은 그녀를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키스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우해영은 분명 키스 경험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무작정 두 입술을 세게 비비고 있다. 김승엽의 입술에는 아까 그녀가 낸 상처에서 다시 피가 스며 나오며 쓰라린 느낌에 피 맛까지 섞여 있었다.그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이상하게 느껴졌다.김승엽은 그녀를 밀어내야 할지, 아니면 고통을 참고 스킨십을 더 나아가야 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우해영의 행동에 흠칫 놀랐다.피 맛을 느낀 건지 우해영이 혀를 살짝 내밀고 그의 피를 핥았다.핥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는 김승엽의 입술을 한번 세게 빨았다. 그 행동에 김승엽의 입술에 난 상처가 더 찢어졌다.이런 젠장!‘이 여자 변태 아니야?’지금 김승엽의 머릿속에는 이 생각밖에 없었다. 순간 그녀가 했던 모든 행동이 납득이 갔다. 아무래도 그녀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걸 즐기는가 보다.만약 정말 그렇다면 이 여자와 결혼하고 나서 자기는 분명 매일 매일이 지옥이지 않을까 싶었다.이렇게 생각하니 김승엽은 조금 공황 상태에 빠졌다. 두려움에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밀어냈다.“해, 해영 씨, 이러지 마
김승엽은 밤새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에 들지 못했다. 이튿날 어떤 태도로 우해영을 대해야 할지 고민하며 한참을 몸부림치다가 옷을 가다듬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그의 어머니와 누나 말고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조용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해영 씨는?”김승엽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그러자 김지영이 괴상한 말투로 대답했다.“고귀한 아가씨께서 우리 집의 음식이 입에 맞겠어?”사실 어제 우해영이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김지영은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한소은 그 여자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김서진과 밖에서 살면서 고택에 오지 않으니, 평소에 마주칠 일이 없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해영은 달랐다. 결혼을 하기도 전에 김씨 고택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어제 그녀가 고고한 척 지시하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얼마나 더 행패를 부릴지 생각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그래도 지금은 김씨 가문의 어르신인 어머니가 계시니 심한 짓은 못하겠지만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 여자가 김승엽을 꼬드겨서 이 못난 동생이 자기를 집에서 쫓아버릴까 봐서 걱정이었다.생각해 보니 집에서 쫓겨나기 전에 미리 대비해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믿는 거 보다 자기를 믿는 게 낫겠다고 확신했다.“그만 해.”노 부인이 김지영을 꾸짖으며 아들에게 고개를 돌렸다.“해영이가 일이 있다고 아침 일찍 갔어. 그 아이 혼자서 큰 가문을 관리하려고 하니 바쁘겠지. 너희 둘 결혼하고 나서 네가 해영을 많이 도와줘야 해.”“당연하죠.”김승엽은 어머니의 말에 대답하며 내려왔다.방금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노부인이 발견하지 못했지만, 김승엽이 가까이 다가오니 그의 입술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노부인이 깜짝 놀라며 그에게 물었다.“네 입술 왜 그래?!”김승엽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입술을 만져 보았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그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물들었다. 어제 뜨거운 물에 뎄다고 말하려던 순간 김지영
검은색의 차가 한소은이 타고 있는 차 앞에 턱 하고 가로막았다.운전기사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푸념했다.“남의 집 앞에 차 세운 거 모르나? 정말 예의 없는 사람이네요.”그러고는 빵빵 하고 두 번 경적을 울리며 빨리 차 빼라고 경고했다.하지만 상대방은 차를 빼줄 생각이 조금도 없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차 안에는 분명 누군가가 타고 있었다.‘일부러 막고 있단 말이지?’운전기사가 신경질이 나 경적을 한 번 더 울리자, 한소은을 보호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모두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검은색의 차가 움직이지 않는 건 누가 봐도 고의적이었다.모든 사람이 긴장감이 넘치게 경계하고 있을 때 검은색의 차가 갑자기 움직였다. 차를 조금 뒤로 빼더니 차 머리를 돌려 가버렸다.이 상황은 모두를 당황하게 했다. 예상대로라면 검은색의 차에서 사람이 내려와 그들과 따지는 게 맞을 텐데 뜻밖에도 아무런 소동 없이 이렇게 가버렸다.하지만 운전기사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2분 정도 그 자리에서 대기 하다 검은색의 차가 멀리 간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어이없는 사람이네요!”그러고는 다시 차에 시동을 걸어 별장으로 향했다.한소은은 차가 사라지는 방향을 한번 보았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지금, 이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방금 그 검은 차가 차 옆을 지나가면서 한소은은 차 안의 사람이 자기를 훑어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검은색의 차 유리창이 가리고 있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한소은은 문득 불안함이 마음속에서 솟아올랐다.다행히 집에 도착해서는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 김서진이 오늘 늦게 온다며 전화가 왔다.연말이 되어 회사 일이 얼마나 바쁜지 한소은은 잘 알고 있다. 국내의 업무는 물론 한소은이 거절한 해외의 업무도 그가 모두 대신 처리해 주고 있었다.김서진이 전화 왔을 때 아까 봤던 그 검은색의 차에 대해 한소은은 입을 열지 않았다.첫째는 이 일이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고 상대방이 자기에게 무슨 짓을 한 것도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한소은은 자기를 향해 오는 강한 바람을 느꼈다.그녀는 빠른 속도로 뒤로 몸을 기대고 허리를 굽혀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장풍을 피했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이어서 공격해 오는 주먹을 받아쳤다.그 사람이 공격하는 속도는 놀라울 만큼 빨랐고 공세도 매우 독했다. 절대 보통의 도둑이나 납치범이 아니다. 몇 번 상대하고 나서 한소은은 이 사람이 프랑스에서 자기를 납치했던 사람들보다 더욱 상대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상대방은 분명 만단의 준비하고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녀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몇 년 동안 무술을 배우지 않았다면 벌써 상대방에게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펑! 쾅!두 사람의 손목이 서로 부딪치며 막상막하의 상황에 이르렀다.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는 순간 별장의 불이 확 켜졌다.“갑자기 전기가 나간 거 같아요. 지금은 비상 전원을 사용하고 사람을 불러 수리하면...”일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방안에서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멈칫하더니 이윽고 비명을 질렀다.불이 켜지고 어둠에 익숙해졌던 눈이 서서히 밝은 방 안에 익숙해지자, 한소은은 자기를 기습한 사람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이 사람은 검은 복장에 가면까지 쓰고 있어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공격하는 동작과 체형을 보았을 때 여자임이 분명했다.“당신 누구야?”당황함과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고용인과 달리 한소은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한소은이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훑어볼 때 검은 옷을 입은 사람도 한소은을 훑어보았다.“무술은 그럭저럭하네.”역시 이 사람은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한소은에 대한 혐오가 가득 묻어 있었다.그녀가 내뱉은 ‘그럭저럭’이라는 단어는 한소은의 무술 실력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한소은은 그녀의 말에 납득이 갔다. 김서진의 개인 별장인 데다가 보안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을 아무렇지 않게 잠입한 것도 모자라 자기를 기습할 수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