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문을 두드리려 하자 갑자기 울리는 경적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고모도 참 남의 충고를 안 들으시네요."김서진이 창문에서 머리를 내밀며 차갑게 말했다."……."'방금 전만 해도 통화 중이었는데 언제 돌아온 거지? 그러니까 통화했을 때 이미 여기로 오는 길이었고 날 보면서 말했다 이거야? 아내를 끔찍이도 아끼네. 출근 중에도 이렇게 부리나케 돌아오다니.'그녀가 속으로 냉소하며 그를 반겼다."난 그저 조카며느리가 걱정돼서! 마침 잘 왔네. 같이 들어가자."'잘 왔어. 그럼 나도 같이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소은이가 불편해서 손님을 안 들린다고 했잖아요? 왜 자꾸 강요하세요?""……."김지영이 이마를 찌푸렸다."네 고모인데 집안에도 못 들어가?""네."그가 자신의 체면을 한치도 고려하지 않고 단호하게 거절할 줄 생각 못했다.김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단단히 화가 났다."뭐야?""그만 하세요, 고모! 서로 다 잘 알잖아요. 꼭 털어놓고 말해야 해요? 고모가 어른이라서 몇 번이나 좋게 말했어요. 몇 년 동안 서로 방해하지 않고 잘 살았잖아요. 무슨 속셈으로 오늘 갑자기 찾아왔는지 서로 다 알고 있으니까 더 이상 연기하지 마세요."원래 좋게 말하려고 했는데 김서진의 무례와 무정한 태도에 김지영의 웃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서진아, 똑똑히 기억해! 어쨌든 난 네 고모야. 네 할머니도 그렇고. 넌 어쩔 수 없는 김 씨의 후손이라고. 이 건 네가 아무리 부정해도 안 돼.""지금 컸다고 우리가 널 간섭 못하는 건 아니야. 마음대로 살고 싶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씀 기억하지. 효자인 네 아버지 말도 안 들을 거야?"그녀가 어른 행세를 하며 당당하게 서서 김서진에게 호통을 쳤다.그녀의 말을 들을수록 김서진의 표정은 점점 차가워졌고 주위의 공기마저 얼려 버릴 기세였다."말 다 하셨죠?""…….""다하셨으면 그만 꺼지세요!
"……."그의 이상을 눈치챈 한소은이 당황하더니 이내 힘을 풀고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옆에 있던 오이연도 너무 놀라서 얼어버렸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기가 여기 있으며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손을 뻗어 자기 물건을 가지고 한소은에게 가겠다는 손짓을 보냈다. 그리고 살금살금 밖으로 나갔다.방안에 둘만 남게 됐지만 한소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김서진이 자신을 안게 내버려 뒀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조금 진정된 듯했다.그가 천천히 손을 놓고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아팠어요?"아프진 않았지만, 그의 머리가 어깨를 누르고 있어서 조금 시큰했다."아니요."한소은이 어깨를 움직이면서 웃으며 말했다."왜 이 시간에 돌아온 거예요? 제가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문을 열지도 그렇다고 나가지도 않을 건데. 더구나 이연이 옆에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당신은 몰라요."그가 말했다."그들이 얼마나 비열한 사람인지, 당신은 몰라요.""……."확실히 잘 알지 못했다. 김서진이 말한 그들이 누구인지. 밖엔 그저 김지영밖에 없었는데 혹시 김씨 가문을 말하는 건가?"아무리 비겁해도 문만 닫으면 다 바깥사람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처리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한소은이 그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녀의 손은 크지 않았지만, 그에게 많은 힘을 줬다. 따듯한 온기가 그녀의 손에서 전해져 왔다. 전에는 그런 환경 속에서 혼자 몸부림치며 자라왔지만, 지금은 한소은이 곁에 있었다.그가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긴 숨을 내쉬었다."미안해요. 감정 통제가 안 됐어요."한소은이 얼굴을 그의 가슴에 붙였다."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감정을 억제할 필요도 없고요. 제 앞에선 숨기지 않아도 돼요. 하고 싶은 말 하고 울고 싶으면 우세요.""울긴 누가 울어요. 당신이나 울지!"그가 그녀의 코를 톡 쳤다. 한소은의 말에 김서진의 기분이 조금 풀렸다.그리고 그
두 사람은 잠시 장난치다가 결국엔 숨을 헐떡이며 떨어졌다. 한소은의 입술을 빨갛게 부어있었다. 그녀는 몸부림치며 김서진의 몸에서 일어난 후 구석에 앉았다.'더 이상 같이 앉으면 안 되겠어. 이 미친놈, 이러다간 날 잡아먹을 기세야.'"일로 와요!"그가 자기의 다리를 치며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욕구 불만으로 가득했다."싫어요! 좀 쉬게 해줘요!"그녀가 조금 구겨진 옷을 정리하며 말했다. 기분이 안 좋다는 핑계로 보상받으려는 게 아닌지 의심이 갔다."여기 와서 쉬어요!"그가 다시 자기 다리를 치며 견고하게 말했다."김서진!"그녀가 원망하는 말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김서진은 그녀가 올 기미가 없자 자리에서 일어났다."당신이 안 오면 제가 갈 거예요…….""스톱!"그녀가 그만하라는 손짓을 보내며 말을 돌렸다."근데 고모는 보낸 거예요?"역시 고모 얘기가 나오자, 그의 반응이 잠시 굳어버리더니 더 이상 장난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가 천천히 앉으며 대답했다."네.""사실 저번에 한번 봤어요. 사이가 안 좋다는 걸 느꼈지만 괴물처럼 절 잡아먹진 않을 거예요.""당신은 몰라요!"김서진이 말했다."괴물이 아니지만 괴물보다 더 무서운 존재예요!""……."그의 반응에 한소은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김씨 가문의 사람이 뭘 했길래 그가 이토록 혐오하는지."됐어요. 그들 얘기는 그만하자고요. 이젠 갔으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요."한소은이 몸을 일으키며 그에게 걸어갔다."모처럼 돌아왔는데 저랑 같이 나가요.""어디 갈 건데요?"김서진이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쇼핑하러요. 오랫동안 같이 쇼핑 안 했잖아요. 옷 몇 벌 사고 싶어요."그 말에 김서진이 눈썹을 한번 들어 올렸다. 그녀가 자발적으로 옷을 사자고 한 게 신기했다. 향료나 각종 재료만 사고 막는 것과 옷에는 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절 그렇게 보지 마세요. 저도 옷은 입어야죠."그의 눈빛을 읽은 한소은이 말했다."그래요? 사실 안 입어도 전 상관없는데!"
사진 속 두 사람은 서로를 기대며 아주 달콤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 사이는 아주 친밀해 보였고 그 누구도 둘 사이를 끼어들 수 없을 것만 같았다.그는 이런 느낌이 아주 좋았다. 자기가 그녀의 남자고 그녀는 자기 여자인 것 같았다. 둘을 서로의 것이고 제삼자는 둘 사이에 끼래도 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안되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김서진이 고개를 드니 계단에 이상한 차림을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큰 후드 외투에 아래는 헐렁한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얼굴을 반쯤이나 가리는 선글라스에 검은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다.'이렇게 가리면 알아보지는 못하겠지만 더 눈에 티는 게 아닌가?'거기에 이 더운 날 이렇게 가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위험인물이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됐었다."이렇게 나갈 거예요?"김서진이 물었다."괜찮아요. 연예인들도 다 이렇게 나가던데요. 파파라치 방지용으로!"그녀가 지퍼를 올리며 의기양양했다.조금 덥긴 하겠지만 방금 거울 속의 자신을 한참 보았다. 자기 자신도 못 알아보는 데 남이면 더욱 못 알아볼 것이다. 이러면 편하게 쇼핑할 수 있을 것 같았다.김서진이 고개를 흔들었지만, 기뻐하는 그녀를 보고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다만--한소은이 잊은 게 있었다. 요즘 그녀는 화제 인물이고 기자들이 그녀를 인터뷰하려고 밖에서 지키고 있지만 그녀보다 옆에 서 있는 김서진이 더 주목받는다는 것을!김서진은 자체 발광하는 체질이어서 그와 가까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세기의 스캔들일 것이다."가요!"그녀가 그와 팔짱을 끼며 흥미진진하게 말했다.그러자 김서진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자기 아내를 바라보았다.'정말 귀여워 죽겠어!'--"뭐야?!"김 씨 저택에서 김서진의 할머니가 울부짖었다."그 여자가 널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다고?!""네."김지영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불쌍한 척하며 손수건을 만지작거렸다."제가 선물까지 들고 갔어요. 서진이가 아무리 그래도 제 조카인데 고모로서 조카의 결혼을
"누가 알겠어요. 차 씨도 명문이어서 저희랑 맞먹는 줄 알았는데……."김지영이 한숨을 쉬며 순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척했다."차 씨가 무슨 명문이라고."체구가 마르고 얼굴에 옅은 흉터가 있는 남자가 콧방귀를 끼며 들어왔다."당시 차 씨네 집안의 명성이 자자했던 것도 고대 무술의 후계자들이라서 그랬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가문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온 걸 보셨어요? 전에는 괜찮았지만 차 씨 그 늙은이부터는 이미 몰락됐어요.""그 차 씨 늙은이도 겁쟁이일 뿐이에요. 제자는 많이 가르쳤지만, 맨날 숨어서 무슨 시비를 일으키지 않을 거라며, 그저 단련만 할 거라며 그러는데 분명 실력이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허세 부리기는. 지금은 더욱 볼 게 없고요."그가 의자 옆에 천천히 앉으며 말했다."그 차성재도 똑같아요. 다 겁쟁이죠. 차성호라도 뭔가 해낼 줄 알았는데 결국엔 그릇이 안 될 사람이었어요. 차 씨는 지금 망했다고 보시면 돼요. 그런 가문이 어떻게 우리 김 씨랑 비교되겠어요!""그래요. 맞는 말이에요. 전 처음부터 그 계집이 맘에 안 들었어요. 걔가 어릴 적 우리 집에 놀러 왔었던 걸 기억해요. 그때는 괜찮았지만, 기가 너무 세서 부모님도 오래 못 살고 죽었잖아요. 그 뒤로는 소식 못 들었는데요 몇 년에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왔어요."김서진의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소은에 대한 인상이 어렴풋이 있었다.지금 자기 손자와 만나고 있다지만 할머니는 그녀가 맘에 들지 않아 사진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소은에 대한 인상은 그저 어릴 적 그때의 기억뿐이었다."요 몇 년 정말 한바탕 소란을 피웠어요. 소송에도 얽매이고 또 무슨 삼각관계인가 뭔가 하면서. 서진이가 왜 이런 여자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저희 김씨 가문의 며느리라면 어떤 명문의 아가씨를 못 찾겠어요. 제가 미용실에 갔을 때 친구들이 묻는 데, 너무 부끄러워서 대답도 못 했어요.""뭘 말해? 우리 김 씨가 언제 걔를 받아들였어?"김서진의 할머니가 콧방귀를 끼며 언짢은 말
"취미든 뭐든 일단 잘 감춰놔. 우 씨와 결혼하게 된다면 너한테도 그리고 김 씨 가문한테도 다 좋은 거야. 서진은 그저 네 아버지가 쌓아온 것들을 믿고 이러는 거야. 네가 조금이나마 능력 있었다면 네 아버지가 가업을 그 녀석이 아닌 너에게 물려줬겠지.""그건 아버지가 편애해서 그런 거잖아요! 아버지는 늘 큰형을 더 좋아하셨어요. 덩달아 큰형의 아들도 편애하고요. 누가 회사를 자기 아들이 아닌 손자에게 물려줘요? 이 몇 년 동안 밖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것 때문에 절 비웃는지 아세요?"이 얘길 꺼낼 때마다 김승엽은 화가 났다.이 무리엔 거의 재벌 집 도련님들이었다. 다 가업을 물려받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형제간의 싸움이지 누가 자기처럼 조카와 다투겠는가?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다툴 기회조차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 이미 결단을 내리셨다. 그리고 회사와 모든 산업을 전부 김서진의 손에 넘겨주었다.그가 아무리 불만스럽다고 해도 감히 아버지에게 대들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원래 자기 것이 남의 것으로 되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이 일 때문에 남몰래 웃음거리가 된 적이 많았다."남이 널 비웃는 건 그들이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거야. 그것 때문에 화낼 필요 없어."김서진의 할머니가 곁눈질로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몇 번이나 그랬어. 사람은 굴복할 줄 알아야 한다고. 네가 고생을 해봐야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어. 인내심 있게 기다린 덕에 지금 좋은 기회가 왔잖아?""한낱 우 씨 아가씨가 정말 제 소원을 이뤄줄 수 있을 거라고 믿으세요?"김승엽이 코웃음을 쳤다. 그도 기대는 하지만 큰 희망은 품지 않았다."엄마는 김씨 가문의 어르신이에요. 할머니의 말조차 듣지 않는데 걔가 순순히 회사를 내놓겠어요?"김서진의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맞아. 걔가 포기하게 기다리는 거야. 우씨 가문을 얕보지 마. 이 우씨 가문이야말로 진정한 고대 무술 가문이야. 그들은 섬에서 은거하고 있지만 그들의 소문은 여전히 자자해.""우 씨
김서진은 아침 일찍 회사에 갔다. 오늘 중요한 회의가 몇 개 있어서 일정이 꽉 찬 상태였다. 그에 비해 한소은은 한가했다. 그녀는 며칠 쉬면서 결혼식을 준비할 예정이었다.이런 형식적인 것을 신경 쓰는 편은 아니지만 해야 할 바에 당연히 잘했으면 했다. 김서진이 바빠서 그녀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하기로 했다.웨딩드레스, 결혼식 식장, 필요한 준비물 등 이런 건 큰 문제가 없었지만, 그녀가 신경 쓰이는 건 초대장이었다.김서진은 아직 그녀를 가족에게 소개해 주지 않았고 김 씨 저택에 간 적도 없었다. 김서진도 이런 일을 거부해서 초대장을 보내야 할지, 보내면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 그게 문제였다.요즘 일도 없고 전화도 없어서 너무 한가해서 그런지 오히려 몸살이 났다.점심이 돼서야 일어난 한소은은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웠다. 침대에서 내려올 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시야도 흐릿하고 잘 보이지 않았다.억지로 세수하고 내려와 뭘 좀 먹으려 했는데 또 갑자기 기운이 빠지면서 입맛도 없어졌다. 열을 재보니 39도였다!'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한소은의 몸이 건강해서 지금까지 감기 걸리거나 열이 난 적이 너무나도 적었다. 한가하게 며칠 쉬었는데 오히려 열이 오른 게 뜻밖이었다.그녀는 물 한 잔 마시고 아예 드러눕고 말았다. 한잠 잘 생각이었는데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부인님, 부인님……."도우미가 조심스러우면서도 집요하게 그녀를 불렀다."일어나셨어요?""……."한소은이 이마를 찌푸리며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무슨 일이에요?"중요한 일이 아니면 깨우지 말라고 분부했다. 그래서 아침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도우미가 그녀를 깨우러 올라 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올라왔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밖에 부인님을 만나겠다는 사람이 있어요."도우미가 주춤하더니 소리 높여 말했다."사장님 할머니라고 하는데요."그리고 또 한 마디를 덧붙였다."참, 어제 오셨던 고모분도 계세요.""……."한소은은 소리 없이 두 눈
한소은은 이런 복잡한 관계에 대응하기 귀찮았지만 이미 그와 결혼한 이상 피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 매번 그를 부르는 것도 좀 그렇다고 생각했다.자기를 무척 아끼고 지켜주고 싶어서 그랬다는 걸 알기에 더욱더 그와 함께 서 있고 싶었다. 혼자서 대응할 수 있다면 그의 발목을 잡지 않아도 되고 그가 자신을 걱정할 일도 없을 것이다.약을 먹고 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좀 든 것 같았다."부인님, 괜찮으세요? 병원에 안 가셔도 되겠어요?"도우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한소은이 고개를 저었다."무슨 먹을 거라도 있나요?""호박죽을 끓여 놓은 게 있어요. 아직 따뜻한데 드실래요?""먼저 준비해 주세요. 금방 내려갈게요."그녀가 말했다."참, 죽을 뜬 다음에 그 사람들을 들여보내세요.""네."도우미가 대답하며 나갔다.다리에 힘이 없어서 한소은은 한 손으로 테이블을 짚으며 일어섰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조금 창백해서 생기 있어 보이려고 가볍게 화장했다.'오라고 해. 설마 날 물겠어? 호의로 왔으면 손님처럼 잘 대접하겠지만 악의를 품고 온 거라면 쫓아내겠어. 내 구역인데 행패를 부리게 놔둘 순 없지.'문밖의 김지영은 부채질하며 열을 식혔다.점심이라 햇빛이 쨍쨍했다. 이런 날씨에 밖에서 기다리니 견딜 수가 없었다. 김서진의 할머니는 이마를 찌푸리며 짜증 난 표정이었다."보셨죠? 어제 제가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했어요."김지영이 부채질을 하면서 말했다."거절 안 한 게 그나마 괜찮은 거예요. 근데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건지. 다른 사람이 저희 집안일을 들으면 얼마나 웃겠어요.""할머니가 손자 집에 왔는데 문도 안 열어주고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게 어디 있어요. 서진이도 예전엔 예의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 여자한테 홀려서 정말 갈수록 말이 아니에요!"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매우 불쾌해했다.어제부터 불만이 쌓여 왔다. 김서진의 할머니는 그녀의 말을 듣고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그만 해. 덥지도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