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한소은은 손을 들어 그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마치 그에게 따뜻함을 전달해 주는 것 같았다.김서진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말했다. “저 괜찮아요.”“괜찮은 거 알아요. 전 단지 당신 손을 잡고 싶었어요.” 그녀는 살짝 웃으며 애교 부렸다.그녀의 손을 잡자 김서진은 한결 편안해진 듯 머리를 의자에 기댄 채 한참을 묵묵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그 사람들이 당신 다치게 할 일 없을 거예요.”“그 사람들이요?” 한소은은 생각한 뒤 그가 말하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믿어요.”김 씨 가문의 일에 대해서는 그녀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론이나 밖에서도 김 씨 가문에 대한 보도는 상세하지 않았다. 이렇게 큰 집안은 뭔가에 둘러싸인 것처럼 바람도 통하지 않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한소은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형제 서열에서 4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우연이 그에게 “넷째 오빠”라고 불렀고, 비록 그는 4위지만 지금은 그 혼자만 남았다. 왜냐하면 그의 형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어떻게 죽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은 김서진 혼자만 남았다. 듣기로 김서진도 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떤 유명한 의사의 진찰 이후로는 점점 나아졌고, 가업을 물려받아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그 속사정을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오늘 할머니와 고모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면 그의 집안이 화목하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다.차 씨 가문은 외할아버지가 계서서 화목한 편이지만 차성호라는 인물이 나왔다. 김 씨 가문을 비롯해서 다른 가문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명문가, 가업이 커지게 되면 각종 이익 다툼도 생길 것이고 그러다 보면 온갖 음모와 사기가 발생한다. 인간의 마음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법이다.“근데 방금 제가 듣기로는 누가 약혼을 한다고 했어요.” 혹시 그들과 결혼 시기가 겹치지는 않을까?“아마 김승엽을 말하는 거일 거예요.” 김서진이 담담하게
“...” 그는 마치 김 씨 가문의 사람들을 전혀 마음에 두고 있지 않은 듯했다.그가 이렇게 말한 이상 그녀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그럼 저희 둘이 결정하도록 해요.”그녀의 반응을 보고 김서진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저는 당신이 저한테 그래도 가족이니 집과 껄끄럽게 지내지 말라고 할 줄 알았어요.”그는 예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권유를 너무 많이 받아왔다. 어릴 때부터 소위 친척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를 설득했고, 피가 물보다 진하다며, 가문과 화해하고 어른들과 가족들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결혼식이나 가족의 축복에 대한 한소은의 충고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한소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제가 왜 그래야 하죠?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전 당신이 아니에요. 왜 당신이 집안에서 그렇게 소란스러운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전 당신 편이에요.”“저는 당신의 결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어요. 전 당신의 판단을 믿어요. 당신이 죽을 때까지 그 사람들과 왕래가 없다고 하더라도 당신만의 이유가 있겠죠.”소위 말하기를 남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자는 친절을 권하지 말라고 했다. 바늘이 자신의 몸에 박히지 않고서는 그것이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게다가 이 세상의 일은 때로는 말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다. 그녀가 가장 힘들었을 때 김서진이 그녀를 도와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해결해 주었다. 그녀는 혈연관계인 차성호에 의해 온갖 누명을 썼었고, 차성재도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심지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되지 않아 이런 큰 소동이 있었다.혈연? 가족?어떤 사람들에게 그것들은 눈앞의 이익보다도 중요하지 않다.한소은의 말은 그를 감동시켰고 김서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앞에 있는 그녀가 바로 그가 사랑하는 여자다. 일찍부터 마음에 둔 여자였다. 과연 그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그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김 씨 가문
“윤 부장님, 내일 고위급 회의가 있으니, 축하회는 좀 늦추는 게 어떨까요? 내일 회의 후에...”이 비서는 윤소겸이 인턴 중에서 직접 고른 사람이며, 윤설아에게 말했더니, 곧바로 사람을 파견해 주었다.그에게는 자신만의 생각이 있었다. 인턴 중에서 몇 명을 골라 자기 옆에 두면, 한 손으로 길러낸 것과 마찬가지고, 만약 회사에 인사문제가 생기면, 천천히 이들을 중요한 직위에 안배하려고 계획한 거였다.윗사람이 바뀌면 아랫사람도 바뀐다고, 일찍이 준비해, 심복을 만들어 구시대의 사람들을 모두 바꾸어야 한다.그래서 이 비서 말고도 인텅 중에서 사람을 물색해 조그마한 상담을 했고, 축하회가 열리자, 그들을 모두 부르라고 했다.“뭘 기다려? 이미 손에 넣은 트로피가 날아갈까 두려운가?”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은 윤소겸.“지금이 좋은 시기야! 계속한다면, 우리 부서는 곧 회사의 핵심이 될 거니까!”“주눅 들지 말고, 내가 전에 너를 고른 것은 나와 같은 젊은이기 때문이야. 우리 같은 젊은이는 용감하게 도전하고, 막 나가야 해. 요즘 모두가 힘들었으니, 오늘 밤에 편히 쉬다 가자고, 그리고 계산은 내가 할게!”“그럼...”비서는 그의 생각을 빠꿀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챘고, 망설이다 물었다.“윤 부사장님과 노 부장님도 부르실까요?”그들 둘은 프로젝트의 책임자였고, 윤소경이 윤설아 손에서 이 프로젝트를 가질 때, 노형원도 주책임자, 프로젝트 매지너의 직위에서 부책임자로 되었다.이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축하회에 그들도 초대해야 하지 않을까?윤소겸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불시에 그의 목을 갑자기 걸고, 다른 손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자식이! 기분 망치는 소리 그만하고!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책임졌잖아? 그들과 무슨 관계가 있지? 노형원 그 자식이 공장에 가 본 적도 몇 번 안 되잖아? 그러니 축하회에 참가할 자격이 없어!”그는 잠시 생각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윤 부사장님은 여자잖아. 우리와 함께 놀 사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아의 매서운 눈빛을 보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그는 승리를 이미 확신하고 있다고 생각한 거야." "그를 비웃지 마, 너도 승리를 확신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설아는 대화를 다시 끌고, 말을 이었다."후에 경고하지 않았다고, 날 원망하지 마. 매체와 파파라치에 잘 연락하고, 어떤 경로든 꼼꼼하게 조사해. 마지막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깔끔하게 처리해야 해. 알겠어?"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노형원."걱정하지 마, 이 정도 일은 문제없어." 대충 다 먹었는지, 그는 손을 치며 포크를 버리고 말했다. "그 어리석은 놈은 회사에서 몇신입들을 승진시켜 자기 세력을 확장하려 한다니, 참으로 순진하고 가소롭네.""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꽤 대단해. 그는 회사의 고참은 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은, 제 손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배양하는 것이지."손에 있는 자료를 뒤적거리며, 그녀는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비록 어리석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단지 그가 아직 덜됐다고 할 수는 있었다.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어른들 곁에서 암투에 대한 것을 자주 보아 왔지만, 그들에 비하면 아직도 모자랐으니까.그의 꼼수는 설아가 보기에 마치 소꿉놀이에 불과했다.예를 들면 향수를 개발할 때, 그가 만약 노형원에게 프로젝트에 참가하라 하고, 문제가 생겼다 하면, 정말 골치 아프게 되겠지만, 그는 노형원을 빼고 홀로 공로를 따려고 했기에, 아까운 기회만 낭비했다. 만약 성공하면 공로를 모두 딸 수 있고, 실패하면 책임도 져야 하니까.당연히 설아도 역시 그에게 이 문제점을 알려주지 않았다.“그럼, 내일 끝장을 보지!”노형원은 말하며 끝내 그녀의 책상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다시 말하려던 참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윤 부사장님.”그녀의 비서였던 것이다.“들어와.”노형원을 쳐다보며 말을 꺼낸 설아.비서가 문에 들어서자, 노형원도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살
밤, 낙성 클럽.이 도시에서 가장 큰 클럽으로 최고급의 룸, 최상의 시설, 최고의 서비스 및... 가장 비싼 가격이 있다.그러나 가격은 윤소겸에게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큰 룸 하나를 예약하고, 그는 "심복"들을 모두 불렀으며, 테이블에는 여러 종류의 술병이 가득 차 있었고, 분명히 술에 취할 때까지 마시고 돌아갈 생각인 것 같았다."오늘 여러분을 파티에 초대한 것은 잘 쉬고, 동시에 여러분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무한한 미래가 있을 것이며, 우리의 제품은 모두 히트 상품으로 품절될 것입니다!"손에 든 컵을 들며, 윤소겸은 호기롭게 말을 이었다.“최근 몇 주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자, 제가 한잔 올리죠.”“감사합니다, 윤 부장님!”모두가 함께 말하며 술을 마셨다.이때 옆에서 누군가 “아, 왜 윤 부장님이라 부르지? 부장님께서 얼마 안 돼 부사장님이 되실 건데. 하하하...”라고 말했다.모두가 따라 웃기 시작했고, 비록 윤소겸은 속으로 기뻐했지만, 여전히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아직 이르지. 확실하게 결정된 일이 아니니까.”“아이고, 참! 제 생각에는 이미 확실한 일입니다.”또 한 사람이 아부하며 말을 이었다.“윤 부장님께서 프로젝트를 맡자마자 멋진 성과를 거두셨습니다. 회사에서 윤 부장님만큼 우수하신 능력자가 없죠. 그리고 부장님은 부사장님의 유일한 아들이니, 미래에 꼭 그분의 자리를 계승할 겁니다!”이 말을 듣고 윤소겸은 기분이 매우 좋았고, 그는 웃으며 말없이 술잔을 들면서 사람들의 아첨을 받아들였다.하지만 이때 누군가 눈치가 없게 한마디 했다.“그러나 윤 사장님은 아들이 하나 더 있지 않습니까?”“야!”옆 사람이 그녀를 치며 말을 끊었다.“네가 뭘 않다고? 윤 사장님께서 건강이 안 좋아 요즘에는 회사에 안 나오신다더라? 그분이 아니였다면, 큰일이 일어날 수 있어. 그리고 큰 도련님은 장사할 재목이 아니셔, 어떻게 우리 윤 부장과 비교할 수 있지?”“그래, 넌 벌 받아야 해.
“아... 알겠습니다.”그의 말을 듣고, 비서는 다시 연락을 시도했다.윤소겸은 그저 스타들이 허세를 부리는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냥 돈만 많이 주면, 누구든 모두 무릎을 꿇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앉아서 술을 마시다가, 또 몇 분 후 비서가 다시 들어오며 핸드폰을 꺼내고 말했다.“부장님, 핑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하신 것을 다 전해드렸는데, 그녀가 이것을 보내더라고요...”그리고 말하면서, 핸드폰을 윤소겸에게 들이대는 비서.힐끗 쳐다보던 윤소겸은 하마터면 손에 든 술잔을 던질 뻔했다.“야... 이게 뭐야?”“알레르기라고 하네요. 그녀는 지금 병원에 있는데, 부장님께서 믿지 못할까 봐 얼굴의 반만 찍어 보냈습니다.”사진은 비록 반쪽의 얼굴만 보였지만, 붉은 반점에 빽빽하게 자란 뾰루지는 매우 흉했고, 윤소겸이 하마터면 순잔을 던질 번 한것도 당연했다.“됐어! 재수 없어, 진짜! 이런 걸 왜 나한테 보여줘?”그는 노발대발하며 말을 이었다.“안 오면 말고!”“내일 사람을 시켜 과일바구니를 보내. 내 뜻이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말고, 협력하는 관계인데, 다른 사람이 흠을 잡게 해서는 안 되지!”생각해 본 후, 그는 병을 들고 술을 부어 마시며 다시 말했다.“가만. 비싼 거 더 사주고, 언론사를 불러와 사진을 찍어. 우리 회사가 인문적 배려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이러면 꽤 제대로 한 셈이지.비서가 돌아서자, 사람들은 또 아부하기 시작했고, 그가 탁월한 리더심이 있다고 말했으며, 이번이 회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까지 했다. 윤소겸은 오늘 밤이 20여년래 가장 즐거운 날이었고, 과거의 굴욕스럽고 빛을 보지 못한 시절이 묻혔으며, 밝고 거대한 미래가 막 시작되었다고 느꼈다.——한편, 병원에서.양미나는 천천히 클렌징 티슈로 얼굴을 닦고, 거울을 보며 얼굴을 좌우로 확인했다.얼굴에 약간의 홍진이 있었지만, 윤소겸에게 보낸 사진처럼 심각하지는 않았고, 그녀는 손가락으로 살짝 홍진을 누르다가 눈을 부라렸다.“
사실이다.그녀를 쓰기로 했던 건 우연의 일치이었다.윤소겸은 일류의 모델이나 스타만 찾아 광고를 찍으려했으니.사실 그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다.일류는 확실히 판매량을 이끌 수 있었으니까.그러나 그는 전반 예산을 홀시했다.만약 모든 일이 다 그렇게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면 그가 있을 필요도 없었겠지.회사의 어느 한 사람을 끌어냈어도 이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으니까.한편으로는 제한된 예산 지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이든 국제 일류급으로 하려고 하는 아이디어고.그러니 제일 직접적인 해결책이 바로 여러방면에서 축소、압축하고 모델료도 최대한 적게 제공하는 것이었다.그는 이 사회에서 인간관계가 제밀 중요하다고 그가 사귄 "친구"들은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체면이 있고 인맥도 있는 이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그래서 친구가 소개해 준 사람에 대해 그냥 대충 이력서를 찾아보고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그는 일반 시장가보다 가격이 더 낮으면 무슨 문제가 생길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양미나와 요영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건 더더욱 몰랐고.그녀가 다소 암울해진 모습을 보며 양미나는 잠깐의 침묵을 지켰다.그러고는 물었다."하지만 저의 이 알레르기가 진짜 그쪽을 도와드릴 수 있다고요?""그럼요."요영이 그녀의 한 손을 잡고 말했다."우리가 전에 어떻게 말했는지 기억나세요?"양미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어렵지는 않아요.병원의 검사 보고서는 내일에 나올 수 있어요.향수 알레르기래요.""하지만 제가 기자들에게 알려서 찍으러 오게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그리고 언론 앞에서 울며불며 하소연까지 하면 반드시 큰 영향을 미치겠지?명문가의 싸움에 대해서 양미나는 직접 접촉한 적은 없지만 꽤나 들어보긴 했었다.다만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자기 집의 장사까지 망칠 줄은 몰랐다.비록 그 프로젝트는 윤소겸이 책임지고 있다지만 필경 윤씨 가문의 산업이고 윤씨 회사의 프로젝트이니까.이 일이 만약 커지면 윤소겸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윤씨 가문 전체에 큰 영향을 가져다 줄 것
그는 눈쌀을 찌푸렸다. 하지만 노형원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였다. 그는 확실히 양미나를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적지 않은 친분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여러해가 지났는데도 이 관계를 이용할줄은 몰랐다.“어머니, 제가 어머니의 감정을 이용하려는것이 아니라 이 일을 어머니도 알고 계셔야 할것 같아서 말씀 드리는 겁니다. 이 일에는 우리 모자 세사람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 배를 타고 있는거나 마찬가지에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지 않겠습니까?”노형원은 운전하면서 말했다.요영은 그림자쪽으로 몸을 옮기더니 곧바로 어둠속에 몸을 철저히 숨겼다. 요영은 한숨을 내쉬였다.요영은 자신이 자신의 두 자녀와 손잡아 자신의 남편과 남편이 밖에서 놀아난 여자의 아이와 대치하게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그는 그저 명문가의 부인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딸아이에게 좋은 남편감을 찾아주고는 만년을 보낼수 있었다.하지만 이 소소한 소망 마저도 윤중성은 모두 앗아가야 했다. 그는 집안의 모든 것을 그 모자한테 양보하기로 했으니, 요영이 어찌 가만히 있을수 있겠는가.“양미나 일은 내가 처리할게. 다른 일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는거 맞니?”요영은 내심 불안한지 또 다시 물었다,운전하고 있던 노형원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어머니, 어쩜 동생이랑 같은 말을 하세요? 안심하셔도 되세요. 내가 이미 판을 다 짜놓았어요. 내일 주주총회에서 득의양양해 있을때 제가 무너뜨려 줄거에요.”“그리 많은 주주들 앞에서 그런 사고를 냈는데 그가 무슨 수로 수습하겠어요? 설령 수습이 가능하다고 해도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건 망상이에요.”그는 그래도 상업권에서 몇년 자리지킴하고 있었던 몸이라 몸소 체험한 교훈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이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침을 줘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정말 자신이 자기 머리 꼭대기에 있기라도 한듯이 자신에게 호령을 내렸었다. 내일부터 그에게 높은 곳에 서있던 사람일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