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고서, 그녀는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웃었지만, 김서진은 전혀 목적을 달성한 쾌락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꽃다발을 받고 기뻐서 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웃는 것 같은데?얼굴이 어두워지면서 그는 그녀의 허리를 덥석 끌어안았다. "꽃이 안 예뻐요?""예뻐요."그녀는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나 안 예뻐요?"그는 또 물었다."예뻐요."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네?""그럼 왜 웃어요?"그가 이렇게 묻자 한소은은 더욱 밝게 웃었다."그만 웃어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입맞춤으로 입을 막고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녀의 비웃음을 막았다.마음속에서 약간의 고민이 생겼는데 첫 시작이 이렇게 되어서 좀 망친 것 같은데?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계속해야 하나?후회했다. 서한 그 여자 마음도 제대로 모르는 남자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 경험 없는 두 남자가 토론한 결과 인터넷 검색으로 많은 방안을 골랐고, 게다가 그 자신의 생각까지 더해서 원래 낭만적이고 감미로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긴 입맞춤에 몸의 온도도 덩달아 높아졌고, 물론 그녀의 웃음을 멈추는 데 성공했다."꽃을 선물해줘서 고마워요. 마음에 들어요."그녀는 품에 일부 구겨진 꽃을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이 말을 듣고 이것이 올바른 대본이라고 김서진은 만족감을 표시했다."우리 돌아가도 되죠? 밖이 너무 추워요." 한소은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차 쪽으로 걸어갔다."잠깐만요."정신을 차린 김서진은 그녀를 덥석 잡아당겼다. "보여줄 게 있어요.”“???”한소은은 그가 오늘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놓고 외투 옷자락을 열고 품에서 무언가 두 대를 꺼냈다.어...보기에 불꽃놀이 막대기 같았다?!보기에 같다는 이유는 원래 길쭉한 두 대의 불꽃 막대기가 중간에서 부러져서 양쪽 방향으로 쓰러져 원래 매우 꼿꼿하던 두 개의 막대기가 지금은 고개를 떨
몰라!김서진도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는데, 그의 체면을 살려주려는 건지 불꽃에 불이 붙었다. 비록 절반 짧았지만 손에 쥐면 적어도 분위기는 있었다.그가 처음 그렇게 어설프게 보이면서도 정색을 하는 모습을 보고, 한소은은 매우 협조적으로 웃음을 거두고 다가가서 그의 손에서 불꽃 막대기 하나를 받았다. "그 다음은요?"그녀를 바라보면서 김서진은 입을 열지 않았으며, 곧이어 ‘펑’하는 소리에 한소은은 놀랐고 이어서 주변의 불이 켜졌다.한 개씩 순서 있게 원을 형성했고 그 두 사람은 원 한가운데 서 있었다.분명히 이것은 오래전부터 꾸민 것이지만, 그녀는 그가 언제 꾸몄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주변의 숲에 그 램프들을 걸어 놓았는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은 마치 거대한 무대인 것 같았고, 그들은 무대 한가운데 서 있는다."이거 또 뭐예요?"고개를 돌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만든 사람을 보고 웃으면서 물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한소은의 웃음이 멈추었고,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그 자랑스러운 남자가 그녀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어느새 손에 작은 박스가 하나 더 생겼고, 열린 박스 안에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당신이 일할 때 끼면 불편하다는 것을 알지만, 세리머니는 있어야 해요."그는 진지하게 말하다가 멈추고 또 다시 말했다. "한소은, 나랑 결혼해줘요!"“......”이 순간 한소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오므리고 웃고 싶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이미 결혼했어요.”혼인신고도 마쳤는데 청혼할 필요가 있을까?"그럼 재혼해요!"그는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당신이 내 것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릴 거예요."여전히 그 패기 넘친 남자. 한소은은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다시 돌려 약간 간사하게 웃었다. "싫다고 말해도 돼요?"김서진은 일어서서 다짜고짜 그녀의 한 손을 꽉 잡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한번 해봐요!"한소은은 웃음을 참지 못했
"왜요?"그녀는 아래 경치를 내려다보며 불빛을 가리켰다. "이 불빛 모양은 누가 디자인했나요?""문제 있어요?"듣자하니 마음에 안 드는 건가?"아니요.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는지 궁금해서요."김서진도 따라 보았지만 어딘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서한이요.""아..." 어쩐지 여자들의 취향을 잘 모르는 남자의 미적 감각,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김서진은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나!"아내 앞에서 공을 요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물론 그 안에 그의 아이디어도 있었다. 어쨌든 자신의 청혼식인데 전부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그 안에 반드시 그의 아이디어를 덧붙여야 가장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한소은은 어이없었다. 당신을 칭찬해야 하나 혼내줘야 하나?"저기 양쪽의 H와 K는 한소은의 한과 김서진의 김, 바로 당신과 나예요. 중간에 그거는..." 그는 갑자기 멈추어 눈을 가늘게 뜨고, 특히 헬리콥터의 움직임에 따라 더욱 괴이하게 느껴졌다. "저게......O?""당신도 알아봤죠?"한소은이 바로 말했다.그거 봐. 당신이 말한 것이지, 내가 말한 것이 아니야! 그러니까 나 혼자 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모양에 문제가 있는 거다."저게 하트예요."김서진은 강조하며 말했다.지금의 각도에서 봤을 때는 그도 자신을 납득하기 어려웠다.아무리 봐도 'O' 같았다.물론 그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 가장 치명적인 건 양쪽에 붙어 있는 알파벳까지 연결시키면 'HOK'가 된다."누군가 혹이라도 생기면 곤란하지 않겠어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김서진을 바라보며 농담 삼아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마자 김서진은 서한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서한.""대표님?"지금쯤이면 위에서 낭만을 즐기고 있을 텐데, 지상 작업은 다 끝났는데 말이다.“불 다 꺼요.” 그가 말했다."?" 서한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원래 한 시간 동안 점등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벌써 끄라고? 그러나 그도 지시대로 말을 듣고 소등을
지상의 불이 꺼지고 서한과 다른 몇몇 조수들의 차가 떠난 후 여기는 죽은 듯이 고요했다.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 숲의 어느 나무 아래 차 한 대가 서 있었다.차 안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표정이다.운전대를 잡은 허우연의 눈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아무리 자제하려 해도 기복이 심한 가슴은 지금 그녀의 기분을 드러냈다.그녀는 이 장면을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다.그래. 그녀는 알고 있다. 그가 그 여자에게 항상 특별하고 그 여자를 매우 총애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총애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방금 그런 장면은 그녀가 몇 년 동안 수없이 환상해온 것이다. 다만 여주인공은 그녀가 되어야지 다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장미꽃, 반지, 조명, 심지어 헬리콥터까지! 김서진은 왜 그녀에게 그렇게 잘해주는 거지, 도대체 그녀가 자신보다 어디가 더 나은 거지?!이에 비해 조수석에 앉은 윤설아는 침착했고 심지어 헤드라이트를 켜고 손거울을 들고 화장을 고치며 말했다. "정말 로맨틱하네! 김서진은 냉혈하고 무정하며 로맨스도 없는 남자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지금 보니 역시 소문은 믿으면 안 되는 거야!""그만해!"고개를 돌리자 허우연이 분노하면서 말했다.립스틱 바르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한 윤설아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너를 좀 봐. 이렇게까지 화낼 가치가 있어? 남들은 위에서 알콩달콩 하는데, 너는 여기서 찬바람 맞고 질투하고. 무슨 소용이 있어?""신경 꺼!"손을 뿌리치며 그녀의 말이 허우연의 가슴을 찔렀다."너를 신경 쓰는 게 아니라 도우려는 거야."윤설아는 자신의 화장품을 거두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말하는데 너 그게 자학이야. 완전히 내려놓든지, 아니면 덤비든지. 이렇게 우물쭈물하고 망설이다가 애까지 낳으면 너는 울 곳도 없어!"그녀의 애까지 낳는다는 소리에 허우연은 크게 자극받았다. "그 여자가 임신했어?!""어……" 윤설아는 어리둥절했다. "그건 나도 모르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계속 이러면 저 사람들이 애 생기는 건
"그건 그 여자가 신분도 능력도 없어서 그런 거지. 나는 안 믿어. 우리 집안, 나의 신분과 지위에 만약 내가 아이를 가진다면 오빠가 나를 버릴 수가 있겠어?”"네 말도 일리가 있어."윤설아는 생각에 잠겼다. "다만… 네가 아이를 갖고 싶다면 기회가 있어야 되잖아."“기회는 사람이 만드는 거야.”허우연은 그동안 망설였지만, 이 로맨틱한 프러포즈 장면을 직접 보고 질투를 안 할 수 없었다.가슴이 짓밟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했던 남자가 다른 여자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했을까.착하게 말을 잘 들어도 그의 사랑을 가질 수 없다면, 그녀는 마땅히 비상 수단을 이용해야 했다!——한소은은 자신이 그렇게 많은 향수를 만들었는데, 하필이면 가장 뛰어난 향수가 리사에게 만들어 준 향수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그 제품은 사실 리사 혼자만 써봤고, 특별히 맞춤 제작한 거라 분량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 향수의 향을 맡아본 사람은 자신과 리사를 제외하고 아마 인터뷰한 여기자일 거다.물론 리사 주변 사람들은 제외했지만 인터넷에서 촉발된 열풍은 대단했다.신비할수록 호기심이 많고, 호기심이 많을수록 더 알아보고 싶어지기 때문일 수 있으며 이 향수의 검색 열기는 급상승하여 많은 국제 유명 브랜드를 능가했으며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벌써 동일한 모델이 등장했다.물론 똑 같은 모델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모두 브랜드를 내세워 돈을 버는 것뿐이다.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여기에서 기회를 보고 신생에게 구매 주문을 보내왔고, 순식간에 신생 영업부의 전화가 폭주할 뻔했다.이것 때문에 차석진은 어쩔 수 없이 직접 그녀를 불러 논의했다."한소은 씨, 이 주문서들을 다 봤을 텐데 어떻게 생각해요?"차석진은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회사에 들어 온 주문과 협력 관계를 맺고 싶다는 서신들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말로는 의견을 구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녀가 받아주기를 원했다.그러나 한소은은 단호하게 거절
누가 전화했는지 모르지만, 차석진은 전화를 받을 때 가끔 그녀를 쳐다보고 마지막에 말했다. "알았어요. 제가 물어볼 게요."한소은은 직감적으로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무슨 일인지 몰랐다."아마 당신이 옳을 거예요."차석진은 그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어쨌든 그녀의 배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차석진도 그녀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바로 주문을 받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방금 그 전화가 그의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이다. 어쩌면 정말 전용 맞춤형의 길을 선택할지도 모른다.“?”한소은은 이해하지 못했다."방금 전화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손을 문지르자 차석진은 흥분해서 말했다. "탑 여배우 요영을 들어봤는지 모르겠네요. 한 때 엄청 잘 나가다가 재벌가 윤씨 가문으로 시집갔어요.”한소은은 어리둥절했다.”들어봤어요.”들어봤을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 그녀와 노형원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전화는 그녀가 한 것이라고?"맞아요. 그분이예요."차석진은 계속 말했다. "그분이 당신에게 그녀만의 전용 맞춤형 향수를 주문 제작해 달라고 부탁했고, 오늘 저녁에 바로 당신을 만나고 싶다는데 당신은 어때요?"2초간 침묵이 흐른 후, 한소은은 입을 열었다.”이건 제가 못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라고 하세요.”원래 이 일은 무조건 문제없을 줄 알았는데, 그녀가 한마디로 거절하자 차석진은 의외였다. "왜요? 방금 전용 맞춤 제작을 하겠다고 그 협력 주문을 받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나도 당신의 의견을 존중해서 동의했어요. 그런데 지금 누군가가 먼저 찾아와 전용 맞춤 제작을 부탁했는데 그것도 유명하고 지위 있는 사람이잖아요. 이 주문을 잘하면 조향계에서 당신의 위상도 한 단계 올라갈 거예요. 당신이 거절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네요.""나도 알아요. 당신이 지금 돈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여기는 회사이고 당신은 회사 소속이예요. 우리는 회사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지 당신
잠시 망설이다가 차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자 문이 열렸고, 그녀는 차에 타고 요영에게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그녀는 노형원의 이 극도로 은밀한 존재의 어머니가 그들 사이를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어쨌든 이미 지나간 일이고 한때 '예비 시어머니'가 될 뻔했던 사람을 마주하면서 그녀의 마음은 더없이 평온했다.요영은 그녀를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젊은 여자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청춘의 향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은은한 향기는 느낌이 매우 좋았다. 진한 향도 아니고, 소녀들이 좋아하는 담백하고 달콤한 향도 아니다. 매우 자연스러운 체향이지만, 또 말할 수 없는 좋은 향기가 섞여 있었다. 어쨌든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을 맡으면 들뜬 마음이 많이 안정되고, 사람도 그렇게 초조하지 않는다."여사님께서 할 말이 있으시면 사실 지금 말하셔도 돼요. 굳이 얘기할 곳을 따로 찾을 필요가 없어요. 사실 여사님에게는 이곳이 제일 충분해요."한소은은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요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기 시작했다.”한소은 씨는 정말 똑똑하네요.”어쨌든 한때 탑 여배우, 은퇴했지만 재벌가에 시집갔으니 나타나는 장소마다 몰래 카메라를 찍는 파파라치가 있을 거다.몇 년 동안 나이도 들고 대비도 잘해서 그나마 괜찮은 편이어서 스캔들이 터지지 않았지만, 파파라치는 어디나 다 있으니까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을지 모른다.그리고 오늘 그녀와 나눈 대화는 정말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차 좀 천천히 몰아요."그녀가 분부를 하고 버튼을 누르자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의 가림막이 서서히 올라갔고 뒷좌석은 은밀한 공간이 되었다.이 차는 알파드인데, 차 안이 넓고 승차감이 아주 편안했다. 요영은 작은 냉장고에서 음료수 두 캔을 꺼내 그녀에게 한 캔을 건넸다."고맙습니다. 괜찮습니다.”한소은은 고개를 저었다."나도 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당신들이 코를 아끼고 평소에 관리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이건 술이 아니라 에이드예요.
"혹시 나와 노형원 사이 때문에 나를 거절한 거 아닌가요?"웃는 듯 말 듯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 그 말이 그녀의 입에서 쉽게 흘러나왔다.한소은은 의아해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고, 눈빛은 놀라움을 자아냈다.그녀는 줄곧 온갖 궁리를 다하여 비밀을 줄곧 조심스럽게 숨겼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그런 눈빛으로 나를 볼 필요 없어요. 이미 알고 있다는 걸 알아요.”요영은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오늘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예요. 어떤 말은 사람이 많을 때 하기 불편해요. 지금은 당신과 나 두 사람뿐인데 못할 말이 없잖아요.""말하기 편하거나 불편하거나 상관없어요. 제가 거절한 이유는 단지 제가 이 주문을 받을수 없을 것 같아서 예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한소은이 말했다."정말요?"앞으로 몸을 기울이자 요영은 그녀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물었다. "그럼 물어볼 게요. 노형원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 한소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왜 몰라요? 그는 오로지 당신 생각뿐이고, 그 후에 한 모든 일은 당신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예요. 그가 실종되기 전, 나 말고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당신이잖아요. 당신 아니면 또 누가 있어요. 설마 이렇게 오랫동안 당신에게 연락하지 않았단 말이예요?""노형원이 실종됐어요?"어쩐지 오랫동안 그가 날뛰는 게 안 보인다고 생각했다. 망한 후에 실패의 충격을 받아들이려고 어디 가서 치유할 줄 알았는데 실종될 줄은 몰랐다.그런데 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실종될 수 있지? 설마 파산 때문인가?"몰랐어요?"그녀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마치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를 간파하고 싶은 것 같았다."죄송하지만 정말 몰랐어요. 저와 그 사람이 예전에 어떤 관계인지를 아셨으니, 제가 그 사람과 오래전에 헤어졌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그 사람의 일은 저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 그의 실종 소식을 알고 잠시 놀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