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생신잔치 시작할 시간입니다.” 차성재가 시간을 본 뒤 말했다.“그래.”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한소은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묻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한소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할아버지, 저는 안 갈게요. 아시다시피 전 이런 시끄러운 곳 좋아하지 않아요.”“알겠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김서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즉시 한소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도 안 갈게요. 제가 그녀와 함께 하겠습니다.”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은 뒤 말했다. “그럼 여기 남아있어도 괜찮아! 방 두 칸을 비우라고 말을 해놓을게. 이틀 뒤 간다고?”마지막 말은 한소은에게 묻고 그녀에게 의견을 구하는 듯했다.할아버지가 조언을 구하다니 한소은은 분명 그의 총애를 받고 있을 것이다. “네, 그렇게 할게요.”그의 말을 들은 뒤 노인은 만족해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성재야, 가자.”차성재는 즉시 반응한 뒤 휠체어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며 한소은을 보았다. “좀 이따 동진 씨가 당신 방으로 갈겁니다.”“알겠어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그들을 따라 같이 밖으로 나가 그들을 건물 밖까지 바래다주었다.잠시 후 과연 동진이 찾아왔다. “소은 님, 괜찮으시다면 저 따라와 주세요.”동진은 두 사람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 두 칸을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그 두 방은 동쪽과 서쪽 즉 양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한소은: “...” 김서진은 평온한 채 아무 의견이 없어 보였다.“소은 씨, 힘드실 테니 먼저 쉬세요.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저를 불러주세요. 이따 음식 가져다 드릴게요.” 동진이 말했다.이 방 배정은 좀 믿기 힘들었다.“동진 씨, 이 두 방이 너무 멀리 위치한 것 같아요.” 양옆을 둘러봤지만 역시 멀어 보였다. 동진은 고개를 숙였다. “이건 성재 님이 지시하신 사항입니다. 서진님은 외부 손님이었기에 손님방으로 안배해 드렸습니다.”그의 말은 공손했지만 그의 말 뜻은 김서진은 외부인이라는 뜻이었다. 바꿔 말하면 그가
“네, 섭섭해요!”그녀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두 팔을 그의 목에 건 채 말했다. “섭섭하면 뭐요?”“모든 일에는 해결책이 있어요!”그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일단 방부터 보죠.”방은 예전에 그녀가 차 씨 집안에서 살던 방이었는데 한소은이 방을 여는 순간 그녀는 감동을 받았다.방은 그녀가 떠날 때 그대로의 모습이었고 안에 물건들은 손도 대지 않았지만 방은 깨끗했다. 자주 청소하는 듯했지만 안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그대로였다.침대 위에 있는 이불만 새것이었고 건조를 한 듯 따뜻해 보였다.하지만 방에 온기가 없었고 김서진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히터가 설치돼있지 않아 점점 더 으슬으슬 해지는 느낌이었다.“방에 히터가 없네요?”그는 다시 한번 둘러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정말 없는 것임을 확신했다.그가 이렇게 말하자 한소은은 갑자기 생각났다. “아 이 말 하는 거 잊었네요. 여기 집은 전부 히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고 라디에이터도 없어요. 그러니...밤에 좀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정말 히터가 없나요?”정말 믿기 어려웠다.요즘같이 전자제품이 보급화된 시기에 일반 가정에서 히터가 없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차 씨 집안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었다.당연히 차 씨 집안이 히터를 설치하지 않은 이유는 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설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밖에서 떠도는 전설을 아시나요? 차 씨 집안은 예전에 무술을 배웠다는 거?” 침대에 앉으니 조금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본 적 있어요.”“그건 사실이에요.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술을 배워야 했어요. 차 씨 집안의 아이로서 좋든 싫든 무술을 배우는 것은 밥 먹고 자는 것과 같았어요. 외할아버지는 무술을 익힌 사람은 배고픔과 추위를 견딜 수 있고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 씨 집안에는 히터와 라디에이터를 설치하지 않았어요.”“겨울
이렇게 추운 날 방에 히터가 없어서 냉동고처럼 추웠다.“손님 방에도 히터 없나요?” 그렇다면 차 씨 집안에 잠시 머물러 온 손님도 똑같이 단련해야 하나요?” 김서진은 궁금해서 물었다.축하하러 온 사람은 엄청나게 많았고 그날 바로 가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당분간 머무르는 사람도 있을 텐데 똑같이 단련해야 하는 건가?한소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앞에 있는 건물이야말로 손님 방입니다. 거기에 몇 개 방은 히터가 있긴 합니다.”자기 집안사람들은 누리면 안되지만 외부인은 가능했다.김서진은 어디가 잘못됐는지 생각해 본 뒤 말했다. “그럼 저도 여기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건가요?”그래서 뒤에 에어컨이 없는 건물로 배정한 건가?이렇게 생각하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맞아요, 이론상으로는 그 뜻이 맞아요.” 그녀는 뜻밖에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서진은 울먹였다. “그렇다면 정말 영광이에요!”두 사람은 몇 마디 농담을 했다. 하지만 좀 누워있으니 몹시 추웠다.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기에 아예 일어났다. “아래층 좀 둘러봐요. 전 이제 두 번째 방문하는 거라 아직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어요.”당시는 비즈니스 일로 잠시 왔기에 잠시 돌아다닌 뒤 바로 떠났다. 어떻게 남의 집에서 목적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겠는가?하지만 오늘은 신분도 달랐고 마음도 달랐다.잠시 머뭇거렸지만 한소은도 거절하지 않았고 두 사람 모두 외투를 입고 마당으로 나갔다.앞에 연회장은 매우 시끄러웠다. 차 씨 집안의 지위로 봤을 때 방문객들은 적지 않을 것이고 생일을 축하하러 온 사람 외에도 차 씨 집안 아래의 제자들도 많이 찾아왔을 것이다.모두 앞에서 손님들을 접대했기에 정원은 유난히 조용했다.눈은 어느새 그쳤고 하얗게 쌓인 눈이 독특한 분위기를 내뿜었다.강성에는 눈이 많이 내려 밟으면 더욱 단단해졌고 “우두둑” 하는 소리만 들렸다. 눈밭에는 발자국이 이어졌다.둘이 손을 잡고 조금 걸었을 무렵, 한소은이 고개를 돌려 발자국이 길게
지금은 눈이 많이 내려 정원이 모두 눈으로 뒤덮였고 그가 옆에 있었기에 그녀는 마침내 그에게 의지할 수 있다.이 정원은 더 이상 예전의 정원이 아니면서도 여전히 예전의 그 정원이 맞다.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달라졌다.“춥지 않아요? 이제 그만 돌아갈까요?” 그는 그녀가 추울까 봐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한소은은 웃으며 말했다. “돌아가도 따뜻하지 않아요. 여긴 뛰어다니면 덜 춥잖아요!”이것은 사실이었다 방 안도 똑같이 춥게 느껴졌고 특히 지금은 사람도 별로 없어서 더욱 춥게 느껴졌다.“만약 불편하면 여기 머물지 말고 바로 돌아갈까요?” 그는 생각한 뒤 그녀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상상을 해봐도 그녀가 몇 년 동안 여기서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없었다.예전에 사업할 때 차 씨 집안사람들과 두 번 만났을 때는 그렇게 고지식하고 낡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어차피 예전에 살았던 곳이긴 한데 당신이 익숙하지 않을까 봐서요.” 사실 그녀는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돌아왔기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사람이 편한 환경에 오래 있다 보면 다시 그런 힘들 나날들을 보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당신만 익숙해진다면 전 괜찮아요.” 김서진은 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한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녀의 눈은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니 희미하게 사람이 보였다.정원에는 화초와 나무가 많았고 앞에는 과수처럼 보이는 나무도 있었다. 눈이 내려서 모두 눈에 덮여 있었고 나뭇잎도 모두 떨어져 벌거벗은 듯한 모습이었다.그 나무들 사이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았지만 옆모습일 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아는 사람이에요?”김서진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니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자신의 집 정원에서 지인이나 옛 친구를 마주치는 것은 흔한 일이었기에 별생각 없이 있었다.하지만 한소은이 갑자기 말했다. “제가 찾고 있던 사람 같아요. 잠시만요!”그녀는 손을 흔들며 그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그녀는
한소은은 그렇게 오랫동안 찾던 소년을 자신의 집 정원에서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그의 모습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이 예전과 같이 빛나지 않았고 연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오늘 여기 온 사람들, 다 같은 이유겠죠.” 그는 앞에 있는 연회 건물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렇다. 오늘은 모두 외할아버지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도?“그렇다면 당신은 왜 여기 있어요?”최웅은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당신도 여기 있잖아요.” “......”그래, 기운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의 말투를 보니 그녀가 알고 있던 그 소년이 맞았다.“아직 설명도 안 했는데 갑자기 왜 안 하겠다고 하신 거예요. 애초에 약속했었잖아요. 전화도 안 받고 문자 답장도 안 해주고.” 한소은은 어렵게 그를 만나 그녀의 마음속에 있던 질문을 마침내 물어볼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이 말을 하자 그의 눈빛은 어두워졌고 설명을 하지 않은 채 말을 얼버무렸다. “그럴 사정이 있었어요.”“더군다나 제가 잘 만들어서 당신에게 보냈고 돈도 받지 않았으니 비긴 거죠.” 그는 두 손을 아무렇게나 하늘색 패딩에 꽂았다. 옅은 파란색은 그의 소년 같은 분위기에 잘 어울렸고 눈밭에 서있는 그의 모습은 매우 청량했다.한소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기기는 무슨! 제 목재는요?”그녀는 말을 하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시 그녀는 작은 목재가 필요했는데 그가 목재를 가지고 있었다. 한소은은 작은 조각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 특별한 향은 그녀를 사로잡았다.“없어요.” 그의 대답은 매우 시원시원했다.“당신...”그녀는 더 말하고 싶었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발소리가 들렸고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최웅.”최웅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자 눈에 띄게 달라진 얼굴로 긴장하고 조바심을 보였다.“최...”그를 발견하고 다시 부르려 했지만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입을 다물고 가까이 다가왔다.먼저 남자아이를 본 뒤 한소은을 보았다.이 사람은
그 눈빛은 마치 두 줄기의 레이저 같았고 그녀를 위아래로 훓어보았다. 그는 그녀의 행동에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솔직히 말해서 그가 그녀를 바라본 순간 한소은은 등골이 서늘했지만 그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누구든 간에 그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이렇게 생각하자 힘이 생겼고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이 여인이 이렇게 담력이 센 줄은 몰랐을 거다. 그의 눈은 의아한 듯했고 눈썹을 찡그리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한발 앞서 끊겼다.“윤 씨 어르신.”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던 김서진이 입을 열고 한소은의 옆에 섰다.그를 바라보자 윤 씨라는 그 남자는 어리둥절해졌다. “김서진?”“아까는 뵙지 못해서 올해는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신 줄 알았습니다. 여기서 어르신을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는 능숙하게 말했다.“올해는 눈이 많이 와서 좀 늦었다.” 그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고 김서진에게는 매우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소은에 대한 무시에 비하면 이 정도는 정말 정중한 태도이다.김서진은 가볍게 웃으며 시선을 돌려 소년을 바라보았다. “이분은...”윤백건은 몸을 돌려 소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이 자식은 윤최웅, 최웅, 이 분은 환아의 대표님이시고 큰형이라고 불러야 할 거야.”두 사람의 말에 한소은의 눈이 커졌다.최웅? 윤최웅? 윤 씨 집안?설마 해성의 그 윤 씨 집안?하지만 그와 김서진의 친한 정도, 말투와 태도, 그리고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러 올 수 있는 것을 보니 그 윤 씨 집안은 도망가지 않은 것 같았다.정말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녀는 좀 거칠지만 목재를 좋아하는 이 귀여운 소년이 해성의 윤 씨 가문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세상이 이렇게 좁단 말인가?!윤최웅은 김서진을 보고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 “김 대표님.”“큰형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한 게 분명했다.그의 호칭에 대해 김서진은 아무렇지 않은 채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윤백건은 기분이 좋지 않
윤백건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비록 사생활이지만 그들 같은 신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와 사귄다든지, 결혼이라든지, 어떤 소식이라도 퍼지기 마련이다.김서진은 여자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독신남으로 일반인은 물론 지역 내의 모든 유명인들도 그를 이상적인 결혼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거의 스캔들을 퍼뜨리지 않고 사업에만 몰두하여 김 씨 집안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에게 약혼녀가 있다니. 중요한 것은 본인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너무 충격적이었다.“약혼녀?!” 윤최웅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한소은을 바라보았다.윤백건은 호통을 쳤다. “최웅, 예의 없게 뭐 하는 거야!”그는 놀란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는 한소은에 대한 태도를 한껏 높였다.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 그러면 제가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어르신, 안녕하세요. 저는 한소은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예의를 갖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윗사람이니 인사를 다시 해야 한다.윤백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름이 낯익은 것 같아 그녀에게 물었다. “어르신의 손녀인가요?”한소은은 그보다 더 놀랐다.차 씨 집안의 행동 방식은 매우 절제되어 있었고 협력 가문도 많고 제자도 많았지만 직계 자손과 친척이 누구인지는 바깥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사항이었다.그래서 오랫동안 그녀와 차 씨 집안의 관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없었다.하지만 윤백건은 입을 열자마자 그녀가 외할아버지의 손녀인 것을 말했고 차 씨 가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그의 말이 맞았기에 한소은도 부인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외손녀가 당신이었군요.” 그의 이 말은 의미심장했다.한소은은 무슨 뜻인지 몰라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대표님, 좋은 안목을 지니셨군요.” 그는 시선을 김서진에게 옮기며 한마디 덧붙였다.“감사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김서진은 미소를 지으며 한소은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투와 표정은 의기양양했다.한소은: “...”“어르신, 저는 최웅과 친구입니다. 아
그녀는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뻗은 채 방금 전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 목재는요?” 윤최웅: “...”“없어요. 다 썼습니다.” 그는 아무렇게나 말했다.그가 그런 반응을 보이니 한소은은 그가 귀신이 들렸다고 생각했다. “상관없어요! 약속했으니 다 썼으면 그 씨앗이라도 주세요. 사람은 신용이 중요합니다!”윤최웅은 그녀가 정색을 하고 계속 추궁하는 탓에 고개를 돌려 김서진을 바라보았다. “당신도 신경 쓰지 마요!”김서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혼자 고립되자 윤최웅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그 목재를 가지고 뭘 하려고 그래요? 생일 선물 원해서 당신 도와서 같이 완성했잖아요. 왜 나무토막 한 조각 가지고 그래요?”그녀는 원래 그에게 설명하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았지만 누가 그녀의 태도를 불량하게 만들었는지 한소은도 대충 대답했다. “무슨 상관이에요! 어쨌든 동의했잖아요.”소년의 하얀 얼굴이 빨개진 것을 보고 그제야 김서진은 입을 열었다. “만약 보내주기 불편하면 저희가 직접 찾으러 갈 수도 있습니다. 돈이 문제라면 가격을 제시하세요. 만약...”잠시 후 그가 말을 이었다. “만약 난처한 일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저희가 도울만한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한소은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의 말에 인정했다.“어려운 건 아니지만 이 물건은 아무 때나 가지고 다니지 않아요.” 그는 입술을 오므린 채 한소은을 바라보았다. “만약 정말 필요하다면 다음 주에 제가 당신에게 직접 보내드릴게요.”한소은은 마침내 눈썹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정말요?”“쳇...”이 말이 그에게 수모를 주는 듯 그는 속삭였다. “제가 당신 속여서 뭐해요.”“그럼 알겠어요. 다음 주까지 기다릴게요.” 한소은은 그제야 손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한 듯한 모습이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어딘가 잘못된 것 같았다. “당신 핸드폰 번호 바꾼 거 아니에요? 그때 가서 또 사라지고 전화 안받으면 어떡해요?”그가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