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다시 차단 풀라고 하는 거예요?”“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하지만 그녀의 입은 쉬지 않았다. “대대로 집안끼리 친하면 앞으로 아예 안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그녀를 차단했다고 해서 앞으로 만날 일이 없겠어요? 그녀의 가족도 만나야 할 테고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얘기만 해주세요. 차단하는 것보다는...”“보다는?” 그의 목소리가 점점 차가워지고 몸을 일으켜 그녀의 뒤로 걸어갔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손가락으로 마르세유 비누를 건드리자 섬세하고 매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웃었다. “그냥 좀 유치한 것 같아요.”그 여자는 그를 직접 찾아왔었고 그는 그녀의 연락처를 바로 차단했다. 말 그대로 앞으로 만나지도 않고 연락도 끊으려고 한 건가? 그건 불가능해!어차피 그녀도 차 씨 집안에 몇 년간 있었고 가문끼리 이러한 왕래와 관계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었다. 절대 개인의 욕심대로 왕래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왕래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건 이해관계도 없는 일이었기에 그냥 한소은이 심술을 부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그녀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말했지만 김서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은 보지 못했다. “제가 유치하다고요?!”“???” 마침내 그녀는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바로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었다.몸을 세우고 뒤를 돌아보자 그는 뒤에 서서 좋지 않은 안색을 하고 있었다.아... 기분이 좋지 않은 건가?“아, 당신이 유치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 그 여자애가...”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하며 그녀의 다음 말을 막았다.지금 이 순산, 그는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한 마디도 듣고 싶지 않았다.“읍...”한소은은 눈을 크게 뜬 채 상황을 파악했다. 방금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던 것 아닌가? 갑자기 키스
한소은도 궁금해서 그에게 다가갔다. 핸드폰 화면에는 허강민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다시 김서진을 보자 그는 참을 수 없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는 끝내 전화를 받았다. “말씀하세요.”“…” 얼굴빛이 차가운 건지, 목소리가 차가운 건지, 허강민은 불평을 늘어놓으려다가 눈만 부릅 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풉...” 한소은은 참지 못하고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화면 속 남자의 표정이 너무 웃겼다.중요한 건, 그 사람은 정말 좋지 않은 타이밍에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분명 지금 김서진의 기분은 매우 좋지 않은데도 그의 전화 때문에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소은은 묵묵히 그를 동정하고 있었다.“옆에 여자가 있어?!” 허강민은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를 포착했다. 한순간에 혈이 뚫린 듯 혀도 굳지 않았고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는 방금 억눌렸던 감정을 표출한 채 그를 비난하였다. “김서진, 너 정말 옆에 여자가 있구나. 우연이가 말한 게 틀리지 않았어. 정말 여우 같은 여자가 너를 꼬셨구나!” 한소은: “...”김서진은 침울한 표정을 하며 물었다. “너 뭐라고 했어?”“크흠...” 허강민은 다시 놀라 무의식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의 행동은 매우 찌질해보였다. 그는 여동생을 위해 전화를 걸었는데 이렇게 꼬리를 내리다니!”그는 다시 용기를 내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틀린 말 했어? 설마 네 옆에 여자 없어? 그러면 방 한 바퀴 돌면서 나한테 보여줄 수 있어? 그리고 왜 말도 없이 프랑스로 간 거야?”“!” 한소은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였다. 누가 봐도 그럴 것이다.방금 몇마디 짧은 대화로 그녀도 알 수 있었다. 이름으로 보면 허강민과 허우연은 십중팔구 한집안 식구인데 정말 오빠일까? 아니면 동생 대신 따지러 온 건가?“허강민...” 김서진은 더 차가운 표정을 하며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화면 너머로 그의 한기가 느껴지는 듯햇다.허강민은 무의식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왜?”
“하지만...”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서진은 그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허강민...” 허강민: “...왜?”이렇게 성까지 붙여서 부르니 더 무서운 느낌이었다. 그다음에는 사람을 잡아먹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앞으로 영상통화 걸지 마.” 그가 말했다.“...왜?” 그는 좋지 않은 질문인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왔다.“못생겼어.” 그는 한 마디를 내뱉은 채 깔끔하게 끊어버렸다. 허강민: ... 한소은은 웃겨서 배꼽이 빠질 뻔했다.이렇게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좋은가? 그의 입은 매우 독해서 많은 적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적은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그의 전화통화하는 모습은 마치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웃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방금 조심하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가 튀어나왔고 허강민의 예민한 귀에 들키고 말았다.맞다, 그녀가 뒤늦게 생각해 보니 허강민이 말하기를 여우 같은 여자가 그를 꼬셨다고 했다. 이 원수는 적어두었다가 나중에 갚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기분 좋아요?” 그녀를 힐끗 쳐다보자 소파에 쓰러져서 웃고, 베개로 얼굴을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괜찮아요.” 그녀는 몸을 일으키면서도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단지 당신의 가문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꼈을 뿐이에요!”어찌 됐든 가문끼리 알고 지내는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험한 말로 공격을 해댔다. 만약 친구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험한 말로 공격을 했을까! 그는 정말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이다.“어렵나요?” 그는 몸을 기울인 채 두 손을 소파 위에 두었다. “괜찮아요. 당신은 저희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되고 그냥 저의 가족이기만 하면 돼요.”한소은: “...” 갑자기 이렇게 다정하게 말을 한다고! 아까 그 독설은?!“그...”“허우연 말이에요.” 그는 그녀를 깊게 바라보았다. “정말 질투 안 해요?”한소은: ???왜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한소은은 그가 그녀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보았고 심지어 아주 오랫동안 화를 냈다. 밤새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화를 표출하지 않고 다른 일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매우 기분이 나빴다.질투해도 기분 안 좋고 질투 안 해도 기분이 안 좋아?그녀는 연애 경험이 많지 않았다. 예전 노형원과 함께 있을 때도 질투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그들이 함께 미래를 위해 애쓰고 노력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도 강시유를 공통적인 친구라고 생각했지 그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나중에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후 그녀도 배신당하고 이용당했다고 생각해서 화가 나고 슬펐다.돌이켜보면 화가 나고 맘이 아프긴 했지만 질투 같은 것은 아니었다.그래서 김서진은 그녀가 질투하길 바라는 건가 아니면 그녀가 질투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가? 하지만 그는 허우연과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왜 질투를 해야 하는 거지?그녀가 이런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리사에게 전화가 왔다. “이미 귀국한 거야?”“아직, 내일 비행기야.” 그녀는 방금 씻고 나와 누군가가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잠옷을 걸친 뒤 거실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그럼 다행이네. 오늘 시간 있어? 같이 밥 먹을래?”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지난번 나 때문에 네가 납치당한 게 마음에 걸려서 사과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네. 이번에 기회를 줘.”한소은은 그녀를 위로했다. “너와 상관없는 일인데 뭐. 납치범이 너를 사칭한 거지 네가 한 거 아니니까 미안해하지 마. 밥은...”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방 쪽을 쳐다보았다. 그가 무슨 일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꼭 와야 해, 오후에 시간 안되면 저녁이라도. 나 계속 너 기다릴 거야.”그녀는 빠르게 말한 뒤 또 무슨 생각이 났는지 말을 이었다. “맞다! 임상언 씨도 올 거야.”“너도 그분을 알아?” 한소은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어제 마르세유 비누가 떠올랐다. 리사도 아는 거였어? 이런 우연이?리사는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알아!그녀가 눈을 치켜뜨는 모습이 매우 귀여웠다. 김서진은 웃어 보였고 그의 눈 밑에서부터 기쁨이 솟아오르며 얼굴 전체에 퍼졌다.“됐어요.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에요. 더 이상 얘기하지 마요!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문질렀다. “누가 전화했어요?”입을 삐죽 내밀고 자신의 머리를 문질렀다. 뭐가 지나간 일이야. 어제 화났던 사람은 그녀인 것처럼 그는 이미 기분이 좋아졌고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녀는 더 어리둥절했다.하지만 그의 기분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좋은 일이었고 한소은은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리사에요. 오늘 밥 사주겠다고 무조건 오래요.”“그렇군요...”“오늘 무슨 일정 있어요? 없으면 그녀 만나러 갈게요.”“없어요. 갔다 오세요.” 그는 웃어 보였다.이곳에 두 명의 고객을 만나야 했다. 그랬기에 원래 상관이 없었고 프랑스에 온 김에 업무를 처리했다.“참, 아까 임상언 씨 얘기도 들었어요?”한소은도 웃었다. “그 어제 임상언 씨 얘기하는 거 맞죠? 아까 리사 씨가 얘기할 때 어제 일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저번에 제가 우연히 그분의 아들을 구해준 적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감사하고 싶대요.”“정말 우연이 아닐까요? 여기서 임 씨 성을 가진 한국인을 몇 명 본 적이 없는데 그 가문 전부가 이사 온 건가?”말을 내뱉는 사람은 무심했지만 김서진은 무엇인가 생각이 있는 듯했다.프랑스의 한인사회에서 임 씨라는 성이 유명한 건가? 아니면 그가 예민한 건가, 그냥 우연인가?“언제 그의 아들을 구해줬어요?” 하지만 그가 더 관심 있는 것은 성씨보다 그의 아내가 무슨 능력이 있는 것인지. 며칠 동안 그녀 곁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 정말 놀람의 연속이었다.“공교롭게도 그날 식당에서 만났던 아이는 음식 알레르기가 있었어요. 우연히도 저도 이 방면에 대해 알고 있어서 구해줬을 뿐이에요. 별일 없었어요. 그녀는 확실히 이 일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는 머리를 숙이고 그녀
한소은은 장소에 도착한 후 그곳이 고급스러운 개인 클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은 세심하게 안내해 주었고 이름을 알려주니 누군가가 그녀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룸이 아니라 2층 전체가 비어 있었고 전부가 유리로 되어있는 레스토랑은 특색 있고 로맨틱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와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소은아!” 리사가 손을 흔들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사실 부르지 않아도 그녀는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층에는 웨이터를 제외하고는 그녀만 있었다.“리사!”다가가 그녀와 포옹을 하고 손을 놓자 리사는 웃으며 그녀에게 설명했다. “임상언 씨는 일이 있어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전해달래.”“괜찮아요.” 한소은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하지 않고 감사하다고만 하면 되는데. 그날 감사하다고 한 것도 들었고.”“마땅히 해야 하는 거지.” 리사는 고개를 저었다. 넌 한인 사회에서 임상언 씨의 지위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의 아들을 구했잖아. 만약 그가 너한테 아무런 감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전해지면 그에게도 매우 창피한 일일 거야.”“...”이럴 때는 체면이 어떤 것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맞다, 아이는 괜찮은 거지?”아마 괜찮을 것이지만 물어보는 것이 더 안심이 됐다.리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 덕분에 나도 당황했어. 당시에 남윤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몰랐는데 만약 무슨 일이 생겼더라면 임상언 씨는 나를 미워했을 거야.”“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한소은은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설마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을 네가 시킨 거야?”리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모두 해준이 시킨거야.”“그 아이 엄마 말하는 거지?” 그날의 그 여인을 떠올렸다. 날을 떠올렸을 때 부부의 관계는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남의 집안일이었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맞아.”리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해준은 아이를 이용해서 관계를 개선하려 했어. 나도 이해해. 좋은 쪽으로
하지만 리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혼도 안 했는데 이혼을 어떻게 해.”“아...” 한소은은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다. 외국은 정말 개방적이구나. 결혼을 안 했는데도 이렇게 큰 아이가 있다니?“사실 남윤이는 해준이 설계한 거야.” 리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녀의 시선은 마치 추억에 잠긴 듯 창 밖을 내다보았다. 사실 그녀가 이런 일들을 알게 된 것은 해준을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이고 심지어 그녀를 조금은 동정하고 있었다.“설계? 원래 그녀의 아이가 아니야?”“아니, 그녀의 아이 맞아! 해준은 계속 임상언을 좋아했었어. 미치도록 그를 사랑했고 그와 반드시 결혼하겠다고 맹세했어. 하지만 임상언은 그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결국 해준이 어떤 수단을 써서 아이를 임신했어. 해준은 아이를 가지면 무조건 자기와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임상언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어.”“해준은 지우려 하지 않고 자기가 낳은 뒤 아이를 데리고 임상언을 찾아갔어. 결국 아이는 남겨졌고 임상언은 그녀에게 돈을 주었지만 여전히 그녀와 결혼하려 하지는 않았어. 그렇게 몇 년을 매달리다 보니 남윤이도 컸고 해준은 아이를 이용하여 임상언의 마음에 드려고 노력했지.리사는 잠시 멈춘 뒤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계속해서 얘기했기에 목이 말랐을 것이다. “소은아, 누군가를 그렇게 집요하게 사랑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나는 그녀를 돕고 싶었고 그들을 중재해 주고 싶었어. 어쨌든 아이도 온전한 가정이 필요하잖아. 그런데 해준의 성격이 이렇게 좋지 않을 줄은 몰랐어. 그날 병원에 있어 보니까 왜 임상언이 오랫동안 해준을 받아주지 않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더라.”“...” 한소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밥을 먹으러 와서 막장 드라마 한 편을 들었다. 다 듣고 나니 해준이 왜 아이의 건강 상태를 전혀 몰랐는지 알 수 있었다.제대로 키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신경 쓰지 않고 아이를 이용하려 한 남자에게 다가가려 했어. 지금까지 자신을
임상언은 올라오자마자 대화를 듣고 바로 말을 이어받았다.“임 선생님.” 그를 보자 한소은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그녀들에게 모두 앉으라고 손짓을 했고 다른 손에는 어린아이가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이모, 안녕하세요.”남윤은 매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의 어린 목소리가 매우 귀여우면서 유쾌하게 들렸다.“남윤이 안녕.” 리사는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그녀는 그와 조금은 친해졌을 것이다.한소은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안녕.”아이는 포장이 된 상자를 안고 있었다. 아빠의 손을 풀고 바로 한소은에게 다가가 상자를 건네주었다. “소은 이모, 아빠가 이모가 저를 구해줬대요.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지만 작은 선물이니 받아주세요.”그는 나이는 어렸지만 또박또박 말했다.만약 임상원이 줬다면 거절했겠지만 아이가 준 선물이가 그리 비싼 선물도 아닐 것 같았다. 더군다나 상자도 크지 않아 아이의 성의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고마워!”그녀가 선물을 받아든 것을 보자 남윤은 그제야 아빠 곁으로 돌아갔다. 말을 매우 잘 듣는 아이의 모습 같았다.한소은은 마음속으로 아이에게 약간의 호감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민감한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앉은 뒤 임상언이 말했다. “아직 주문 안 하셨어요?”“아직 오시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희 먼저 먹겠어요.”리사는 농담을 건넸다.임상언도 웃으며 말했다. “사실 먼저 주문하셔도 되는데 제가 너무 늦었네요. 미안합니다!”그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웨이터를 불러 능숙하게 몇 가지 요리를 주문했다. 그는 한소은을 특별히 신경 쓰며 물었다. “혹시 기피하거나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나요?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여기 한식, 양식 다 있어요.”“저 다 괜찮아요.” 그녀는 밖에서는 까다로운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먹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사람끼리의 왕래를 위해 온 것이었다.“감자튀김 괜찮아?” 임상언은 고개를 숙인 뒤 가벼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