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이 이 말을 할 때, 여왕의 표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꺼풀을 살짝 내려 그 안의 빛을 가릴 뿐이었다. 사실, 이 실험은 처음부터 모든 이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여왕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실험은 분명 모두에게 비난받을 실험이었다. 여왕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영생을 추구하는 것이 다른 생명을 희생하는 대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만약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여왕은 틀림없이 온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을 것이었다. 하지만 여왕은 절대로 이 실험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포기할 마음조차 없었다. 그래서 연구를 진행할 때도, 각 부문에 조제법만 전달하고, 그들이 그 지침을 철저히 따르도록 했다. 물론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또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무의미한 조제법도 함께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인력과 자원, 그리고 재정이 낭비되었지만, 실험의 안전성과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조제법에는 몇 가지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어요. 그 부분을 수정해보고 싶어요.” 소은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수정할 생각이지?” 여왕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몇 가지 약재의 양과 투입 순서를 바꾸고 싶어요. 이전의 연구는 주로 이식과 대체, 그리고 연장에 초점을 맞췄다면, 저는 인간 자체의 세포를 활성화시켜 재생과 재조합을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복잡하고 위험한 수술 없이도 당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정말 그게 가능하다는 말이야?” 여왕은 놀란 듯 고개를 들어 소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불길처럼 뜨거운 기대감이 번졌다. 마치 소은의 말만으로도 여왕의 마음이 크게 흔들린 듯했다. 사실, 처음에 프레드가 이 실험을 제안했을 때조차 여왕은 이렇게까지 기대하거나 흥분
소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여왕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여왕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소은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그때는 원래 계획대로 다시 진행하면 그만이었다. 사실 이 R10 계획은 애초부터 여러 장애물에 부딪혀왔다. 가장 먼저 로사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었고, 만약 이 실험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회적 비난과 압박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지금 여왕 자신조차도 이 실험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겉으로는 단호하게 말하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끊임없는 갈등이 일고 있었다. 만약 진정한 확신이 있었다면, 그날 실험을 강행했을 것이고, 기다리자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시간을 끌게 되면서, 여왕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필요한 게 뭐지?” 여왕은 잠시 고민한 뒤 소은에게 물었다. 소은이 일부러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은 무언가를 요구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찾아올 필요 없이 바로 실험을 시작했을 테니까. “여왕 폐하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실험실 사용 권한과 모든 실험 약품이 필요합니다.” 소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또한, 제 스승님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그분은 스스로 떠나려 하지 않잖아.” 여왕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이 문제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원청현은 소은을 위해 남겠다고 결심했으며, 소은은 그가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맞습니다, 스승님은 떠나지 않으려 하세요. 하지만 제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스승님을 놓아주실 마음이 있으신가요?” 소은의 질문에 여왕은 잠시 말이 없었다. 사실, 여왕은 원청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원청현은 여왕에게 H국의 전
이 계획은 소은이 예전에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얻은 영감을 즉흥적으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그저 시간을 벌고, 상황을 전환시키려는 하나의 계략에 불과했다. 소은은 임남이 실험체로 사용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약 이 구상이 받아들여져 성공한 척만 하게 된다면, 이전의 R10 계획은 자연스럽게 포기될 것이고, 임남 역시 안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은의 예상일 뿐,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첫 번째 단계로 스승 원청현을 이곳에서 떠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진전을 이룬 셈이었다. 예상대로 원청현은 고집이 세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갈 거면, 우리 둘이 같이 가야지!” 원청현은 화난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말했다. “스승님, 왜 이러세요!” 소은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은 고집부릴 때가 아니잖아요. 저도 떠나고 싶지만, 지금 상황에서 제가 떠날 수 없다는 걸 잘 아시잖아요.” “네가 못 가면 나도 안 가! 여기서 너랑 같이 있을 거다. 내가 이렇게 오래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목숨이 뭐 대수라고. 네가 네 목숨을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내가 뭘 더 아껴야겠니?” 원청현은 손을 내저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그러나 소은은 그가 말은 이렇게 해도, 얼굴에 드러나는 불만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원청현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그가 소은의 안전을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르신...” 오랜만에 원청현을 이렇게 불러보며, 소은은 그의 곁에 조용히 앉았다. 소은은 두 손을 침대 양옆에 짚고, 발을 침대 밖으로 매달린 채, 마치 어린 시절 그의 곁에 앉아 있던 것처럼 앉아 있었다. “제가 정말 죽고 싶어서 이러는 것 같나요? 아니면, 제가 여기서 그냥 있고 싶어서 이러는 것 같아요?” 소은은 차분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제가 얼마나 이곳을
다음 날, 원청현은 소은의 설득을 받아들인 후 곧장 떠났다. 혹시라도 일이 틀어질까 걱정되어 오래 머무르지 않고 서둘러 나갔다. 그는 새벽이 밝기도 전, 대사관 후문을 통해 조용히 빠져나갔다. 이 모든 일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소은은 발코니에 서서 원청현이 탄 차가 후문을 통해 천천히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소은은 그제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왕은 한 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터였다. 그녀가 한 번 허락한 일이면 중간에 바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프레드였다면,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소은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이제 자신의 할 일을 처리하러 나섰다. 그녀는 곧장 실험실로 향했다. 이제 이 경로는 너무 익숙해져서 망설임 없이 실험실로 들어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원래는 비어 있어야 할 실험실이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소은이 실험실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주효정 혼자 있었다. 주효정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실험 장비들이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얼굴을 괴고 잠시 잠에 빠진 듯 보였다. 소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다가가 그녀의 뒤에서 실험 장비 안의 물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주효정이 하고 있는 실험이 사람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는 의심은 떨칠 수 없었다. 소은의 얼굴에는 점점 냉기가 감돌기 시작했다.그때, 주효정이 무언가를 느낀 듯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가 일어나 실험 장비를 확인했다. 시간이 지났지만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뒤에서 소은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홱 돌리며 깜짝 놀라 외쳤다.“네가 왜 여기에 있어?”주효정은 화난 목소리로 외치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노력 끝에 자신만의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겨우 얻었고,
주효정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소은은 무심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 “말 다 했어?” 주효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소은을 쳐다보았다. “다 했으면 비켜줄래?” 소은은 손을 들어 주효정을 가볍게 옆으로 밀어내고는 그대로 지나쳐갔다. 주효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소은과 싸워도 이길 자신이 없었고, 설령 지금 총을 손에 쥔다 해도 차마 그녀에게 쏠 수는 없었다. 정말로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소은은 원래 실험체로서 실험대 위에 묶여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오히려 자신을 화나게 만들고 있었다. 주효정은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화를 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소은은 결국 죽을 운명이니, 지금 굳이 그녀와 다투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차라리 실험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했다. 주효정은 여러 번의 연구 끝에 조제법에 분명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아직 오류가 남아 있었고, 비율을 조금 더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현재 컴퓨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 조제법이 생물의 유전자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다. 이러한 가능성을 생각할 때마다 주효정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소은은 조용한 실험실 하나를 선택했다. 그녀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의 출입구가 있는 구조 덕분이었다. 실험실에 들어서면 출입구가 바로 눈에 들어왔고, 비록 실험실 안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사각지대도 존재했다. 각 실험실을 둘러본 후, 소은은 이곳이 최적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실험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녀가 제시한 개념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고, 여왕조차도 그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설령 다른 전문가들이 와서 본다고 해도, 그녀의 연구를 쉽게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실험은 전적으로 소은 자신의 방식대로
“서진은 요즘 정말 바쁘지.” 임상언이 갑자기 아무 맥락 없이 말을 꺼냈다. 원철수는 그의 말을 받아 물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야. 며칠 동안 얼굴 한 번 보기 힘들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던데, 도대체 뭐 하고 다니는 걸까...”원철수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임상언을 바라보았다. “혹시 서진을 보고 있었던 거야?” 임상언은 고개를 들어 원철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서진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임상언의 얼굴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했고, 의심과 망설임이 섞인 눈빛으로 원철수를 바라보았다. 원철수는 그 의문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당연히 우리 구출 작전을 준비하고 있겠지. 그 외에 뭘 할 수 있겠어? 그래도 회사 일을 완전히 놓을 순 없으니까 가끔은 신경 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임상언의 표정에서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설마 서진을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왜? 서진을 의심하면 안 되나?”임상언은 차분하게 반문했다. 원철수는 당황한 듯 본능적으로 임상언의 이마에 손을 대려 했지만, 임상언은 몸을 살짝 피하며 그 손길을 피해갔다. “너 지금 열이라도 나는 거 아니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서진이가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이 뛰어다녔는지 알잖아. 네가 임남이 걱정돼서 초조한 건 이해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괜한 생각하지 말라고.” 원철수는 살짝 나무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깊은 눈빛으로 원철수를 바라보다가, 다시금 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괜한 생각하는 게 아니야.”“괜한 생각이 아니면 뭐겠어? 네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 지금 말이 되는 소리야?”원철수는 답답한 듯 말했다. “지금 상황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잖아. 상대의 세력이 워낙 막강하니까...” 원철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상언이 갑자기 물었다. “왕자하고 통화한 적 있어
“둘째 할아버지!” 원철수는 바람처럼 달려가 두 손으로 원청현의 팔을 꼭 붙잡았다. “둘째 할아버지, 진짜 둘째 할아버지 맞으시죠?”“그럼 내가 가짜겠냐?”원청현은 코웃음을 치며 원철수를 흘겨보았다. 원철수는 활짝 웃으며, 기쁨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갑자기 옆에서 바람처럼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곧장 방금 도착한 차로 향하는 임상언이었다. 그는 차창에 얼굴을 바짝 대고 안을 들여다보더니, 심지어 창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임남아, 임남아!” 서진과 원철수, 그리고 원청현은 그의 행동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침내 서진이 다가가 임상언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으며 차분히 말했다. “임남이는 차 안에 없어.”“거짓말하지 마!”임상언은 서진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그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어르신은 돌아왔는데 왜 내 아들은 돌아오지 못하는 거야!” 임상언은 손가락으로 원청현을 가리키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서진은 그를 깊이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너도 알잖아. 상황이 다르다는 걸.” “뭐가 다르다는 거야! 내 아들은 아직 어린아이야!” 임상언은 울음이 터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감정은 이미 극도로 불안정했고, 원청현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은 그의 마음을 더더욱 뒤흔들었다. 자신의 아들이 여전히 그곳에 잡혀 있다는 생각에 그의 마음은 마치 짓눌린 듯 아파왔다. 서진은 조용히 설명했다. “네 아들은 실험체로 여겨지고 있어. 소은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이 사실을 네가 모를 리 없잖아.” 사실 임상언도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진실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는 차라리 자신이 실험체가 되어 아들을 대신할 수 있기를 바랄 정도였다. 임상언은 여전히 차창에 손을 얹고, 차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본 원청현이 다가갔고, 원철수도 그 뒤를 따랐다. “난 그곳에서 네 아들을 봤었지.”
임상언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맞아요. 어르신 말씀대로예요. 제 아들이 저보다 훨씬 강해요, 정말 강해요!” “그런데 네 아들이 어느 면에서 너보다 강한지 아니?”원청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임상언은 물론 서진과 원철수까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셋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모두 같은 의문을 품은 듯 상대방의 얼굴을 살폈다. 임상언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 애는 모든 면에서 저보다 강해요.”“내가 말하는 건 마음가짐이야.”원청현은 고개를 저으며 임상언의 말을 정정하고, 진지한 어조로 설명했다. “네 아들의 마음가짐이 너보다 훨씬 더 강해!”원청현은 한숨을 내쉬며 이어 말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었지만, 이렇게 어린아이가 이 정도로 강한 마음을 가진 건 정말 드문 일이야. 그 환경은 어른도 버티기 힘들 텐데, 어린아이인 임남이는 정말 침착하고 당황하지 않았어. 얌전하면서도 성숙한 모습이 정말 대단한 아이더군.” 원청현의 진심 어린 칭찬에 임상언은 한층 더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고, 이내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임남이는 어릴 때부터 성숙하고 얌전했어요.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 애가 너무 어른스럽다고 말했죠.”임상언은 아들의 이야기를 하며 미소를 짓다가, 그 미소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가끔은 그 아이가 그렇게 성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단순하고 평범한 아이로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많이 곁에 있어주지 못했어요.”임상언의 목소리엔 깊은 후회가 묻어났다. 그에게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면, 아들과의 관계를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만, 그런 쓸모없는 후회는 하지 마라.”원청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지금 네 아들은 앞으로 나아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넌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거냐?”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