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이 프레드를 자기의 실험 대상으로 삼으려고 했다고?”원철수가 말을 하자마자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불가능해. 내가 실험실에 있을 때 R10에 대해 어느 정도 들었어. 그 실험이 아직 테스트되지 않은 이유는 수용체에 대한 조건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야.” 적합한 수용체를 찾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치 장기 이식을 할 때 신체 조건이 완벽하게 일치해야 이식이 가능하듯이, 이 실험도 맞는 조건을 가진 수용체가 필요하다. 심지어 조건이 맞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다양한 거부 반응이 발생할 수 있어다. 그래서 설령 여왕이 프레드를 대상으로 삼고 싶어도, 그에게 맞는 적합한 수용체를 찾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너는 그게 없다고 생각해?” 서진이 반문하자 원철수는 순간 멍해졌다. “뭐라고?” 임상언도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수용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프레드 자신이 직접 찾아낸 거야.” 서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프레드에게 적합한 수용체가 없었다면, 여왕을 자신의 실험 대상으로 삼으려는 생각을 하겠어?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미 다 준비해 놨겠지.” 이제야 두 사람은 프레드가 이미 오래전부터 철저히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전에 미궁에 빠져 중요한 점을 놓쳤지만, 이제 서진의 말을 통해 그 퍼즐이 맞춰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여왕이 모든 걸 장악한 상태에서 상황이 뒤바뀐 거네. 여왕이 프레드를 실험 대상으로 먼저 삼고, 그 결과를 보고 자신에게 적용하려는 거군.’ 임상언은 잠시 생각한 후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 그래서 소은은 당분간 안전한 거야.” “그나마 다행이네.”임상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서 둘째 할아버지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신 거구나. 아직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어.” “아니,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하지만 서진은 뜻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도 이게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어...” 서진은 말을 삼키며,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듯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미 충분히 명확했으니까. 정보가 정확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이런 중대한 사실을 임상언에게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야 왜 놈들이 내 아들을 놓아주지 않았는지 알았어. 왜 내가 아무리 찾아도 임남의 행방을 알 수 없었는지도 이제야 분명해졌어. 놈들은 애초에 내 아들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어. 협박? 투자? 전부 거짓말이었어!” 임상언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겉으로는 차분한 듯했지만, 떨림이 가득했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누구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원철수는 비록 자식이 없었지만,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고통을 겪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는 것이 훨씬 더 아픈 법이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라면,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한 아이라면 그 아픔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정말 미친 놈들이네!” 원철수는 주먹을 꽉 쥐고 테이블을 세게 내리치며 분노를 터뜨렸다. “그래서 지금 소은은 당분간 안전하지만, 임남은 시간이 없다는 거지?” 임상언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물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기에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소식은 그를 무너뜨렸다. “그래, 맞아.” 서진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잔인한 진실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서진도 과거 소은과 관련된 일에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결국 받아들여야 했다. 이번에는 임상언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서진은 차분하게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봐. 임남이 필요하다는 건, 그 아이가 바로 그곳에 있다는 뜻이야.” 이 말은 거의 사라져가던 희망을 다시 붙잡는 것 같았다. 임상언은 갑자기 고개를
“하지만 실험이 시작되면 모든 게 늦어질 거야!”임상언은 이를 악물며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만약 실험이 시작되면, 그는 아들을 구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밀려왔다. 차가운 실험대 위에 누운 어린 몸이 기계적인 실험 대상이 되는 상상을 하니, 그의 가슴은 찢어질 듯이 아팠다. 어린아이에게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이 가해졌고, 이제 더 큰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현실을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직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을지 생각하니, 그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임상언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간다고 해서, 네 아들을 구할 수 있겠어?” 서진이 차분히 물었다. 임상언은 더 이상 그런 이성적인 질문에 대답할 상태가 아니었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그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었다. “난 상관없어. 내가 죽더라도, 내 아들을 구하러 갈 거야!” “좋아, 그럼 가! 가버려” 서진은 더 이상 그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소리쳤다. “원철수, 놔줘! 그냥 가게 놔둬!” “김서진, 진정해!” 원철수는 당황했다. 두 사람의 말다툼이 점점 격해졌고, 그는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상황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임상언을 붙잡은 손은 놓지 않았지만, 서진을 설득하려 하느라 진이 빠졌다. “난 침착해. 임상언이 가고 싶다면 막을 필요 없어. 놔둬!” 서진은 차가운 눈으로 임상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모든 말을 다 했어. 임상언이 정말 가고 싶다면,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어. 네가 지금은 그를 붙잡고 있겠지만,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있겠어?” “놔둬. 가게 해!”서진은 다시 한번 강한 어조로 말했다. “대사관 경비가 얼마나 삼엄한지 너도 봤잖아. 게다가 프레드와 여왕, 그들 둘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지 않나.
어두운 지하실은 습기차고,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아 문을 열자마자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문이 열리면서 휠체어가 천천히 굴러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자, 안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살짝 들어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왕 폐하, 드디어 저를 보러 오셨군요.” 프레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지만, 그 미소는 어색하고 초라했다. 한때 모든 것을 누리던 공작이 이제는 이렇게까지 몰락한 모습으로 여왕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휠체어가 멈추자, 여왕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수십 년간 자신의 곁을 지켰던 프레드를 여왕은 침묵 속에서 지켜보았다. “프레드, 후회하나?” 여왕은 담담하게 물었다. “후회요? 무엇을 후회한단 말입니까? 실험을 좀 더 빨리 시작하지 않은 걸? 아니면 망설이며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걸? 아니면 당신이 처음부터 나를 의심하고 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챈 걸?” 프레드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승자는 왕이 되고, 패자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뿐이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왕은 한동안 깊은 침묵에 빠졌다. 프레드의 말에는 후회의 흔적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그 말은 그의 결정에 대한 확신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날 배신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는 거군.” 여왕은 그가 자신의 배신에 대해 반성할 것이라 기대했었다. 그래도 몇 년을 함께한 신하였으니, 조금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후회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프레드의 태도는 여왕의 기대를 완전히 산산조각 냈다. 프레드는 몸을 살짝 일으키며 흐트러진 옷깃을 고쳐 잡았다. 그의 모습은 초라했지만, 자존심만큼은 여전히 굽히지 않고 있었다. “저의 사랑하는 여왕 폐하, 저는 한 번도 당신을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후회할 일도 없죠.” “네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고?” 여왕은 순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입니다. 제가 한 모든 일은 여왕 폐하의 명령에
“네가 나에게 그토록 충성스럽다면,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여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를 실험 대상으로 삼으시겠다는 건가요?” 프레드는 이미 이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이제 와서 제가 거부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다른 요구 사항은 없느냐?” 여왕은 프레드에게 물었다. 비록 프레드가 배신했지만, 그는 여왕에게 수십 년간 충실히 섬겨온 신하였다. 이제 그가 실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기에, 마지막으로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왕은 생각했다. 그러나 프레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이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미 아내와 이혼했고, 자식들은 저를 떠났습니다. 저는 오직 여왕 폐하께만 평생을 바쳐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만약 이 실험이 성공하여 제 생명이 아이를 통해 이어진다면, 다시 한번 폐하를 섬길 기회를 원합니다.” 프레드의 마지막 요청은 단순한 가정처럼 들렸지만, 여왕에게는 큰 유혹이었다. 프레드의 말은 다시금 여왕의 마음속에 실험의 성공과 영생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여왕은 최근 며칠 동안 원청현이 했던 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 말들이 여왕의 마음에 깊게 남아있었다. 여왕은 젊었던 시절과 아들 로사가 어릴 적 함께했던 시간들, 그리고 남편이 살아 있었던 아름다운 과거를 떠올렸다. 그 시절은 정말로 행복했다. 그러나 여왕은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자신의 젊음, 그리고 삶의 의미. 계속해서 살아남아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두려워졌다. 하지만 프레드의 말은 다시금 그녀의 영생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여왕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프레드, 넌 정말 이 실험이 성공할 거라 믿는 거냐?” 프레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요! 반
프레드는 여왕이 무슨 말을 하든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말재주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폐하를 위해서입니다. 여왕 폐하, 제가 오래전부터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H국 사람들은 교활하고 믿을 수 없는 자들이라고요! 그놈들이 분명히 이 실험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당신을 설득하려고 했을 겁니다. 절대 속지 마십시오.” 프레드는 격앙된 어조로 계속해서 말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오랜 세월 동안 노력해온 것이 무엇입니까? 이 순간에 포기한다면, 그동안 해온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겁니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 돈, 그리고 모든 에너지가 말입니다!” 프레드는 두 팔을 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은 그놈들의 음모입니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우리는 세상을 지배할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Y국 사람들만이 영생을 얻게 되면,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질 것이고, 당연히 그들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놈들은 우리가 성공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프레드는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굴리며 덧붙였다. “어쩌면 그놈들이 당신에게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동안, 뒤에서는 자신들도 몰래 같은 실험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여왕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정말 그럴까?” 프레드는 더욱 자신감에 차서 말했다. “물론입니다! 주효정, 그 여자를 기억하시지요? 그 여자는 이미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프레드는 잠시 말을 멈추고 조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주효정 같은 기회주의자는 언제나 이득이 있는 쪽으로만 움직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H국 사람들은 절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여왕은 잠시 말이 없었다. 프레드는 말을 이어갔다.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주효정은 투명약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투명약?” 여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녀는 주효정에게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릭은 프레드가 갇혀 있는 방 밖에서 여왕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휠체어를 안정적으로 잡고 말없이 여왕을 밀었다. 여왕도 마찬가지로 침묵 속에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며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고요함은 엘리베이터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왕자 폐하께서 여왕 폐하를 뵙고 싶어하십니다.” 릭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왕은 살짝 눈을 내리깔며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릭은 그 한숨에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층을 하나하나 올라가던 중, 여왕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로사를 데려와.” “여왕 폐하?” 릭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로사를 데려오라고.” 여왕이 명령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바로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했고, 여왕은 휠체어를 움직여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릭은 잠시 놀랐지만, 곧바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러 다시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릭은 로사를 데리고 여왕의 침실 앞에 도착했다. 그는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고, 문이 잠겨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살짝 힘을 주어 문을 열었다.“들어오라고 해.” 여왕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고, 그 말 속에서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릭은 몸을 비켜 로사가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었고,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로사는 다급한 표정으로 빠르게 방에 들어가며 외쳤다. “어머니...” “예의를 잊었느냐?” 여왕의 목소리가 차갑고 엄격하게 울렸다. 로사는 순간 망설였지만, 결국 고개를 숙이며 규칙대로 몸을 낮추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여왕 폐하!” “일어서라.” 여왕은 휠체어를 돌려 그를 마주 보며 명령했다.로사는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불과 며칠 만에 그녀가 더 늙어 보였다. 얼굴의 주름은 더 깊어졌고, 안색은 더욱 창백해져 있었다. “어머니...” 로사는 일어나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릭은 문 앞에서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기
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잠시 비웃었지만, 결국 로사는 자신의 아들이었다. 그가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을 보자, 여왕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던 화도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제가 잘못한 것을 뉘우쳤습니다.” 로사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제가 그런 말을 해서 어머니께 상처를 드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정말로 잘못을 뉘우친 것이냐?” 여왕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로사에게 물었다.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똑바로 보아라.”로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왕과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진 후, 여왕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로사, 너는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한 게 아니다. 네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구나. 너는 여전히 내 말에 불복하고 있지 않느냐?”자신의 아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여왕이 모를 리가 없었다. 로사의 눈빛에는 불만이 담겨 있었고, 그는 어머니를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겉으로만 순응하는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여왕은 더 이상 예전처럼 격렬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며칠 전의 다툼과 원청현, 프레드와의 대화 이후 여왕의 마음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로사, 네가 H국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그곳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렇기에 더는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여왕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혹시 놈들이 너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느냐?”로사는 놀란 듯 여왕을 쳐다보았다. “어머니, 저는 이제 어린아이도 아니고, 성급한 청년도 아닙니다. 제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로사는 차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어머니의 몸 상태를 고려해 최대한 말을 부드럽게 하려 했지만, 그 말 속에는 여전히 날카로움이 배어 있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나를 이렇게 볼 수 있지? 나를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는 건가?’ 로사는 어머니가 자신을 그렇게 판단력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사실에 자존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