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실험이 시작되면 모든 게 늦어질 거야!”임상언은 이를 악물며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만약 실험이 시작되면, 그는 아들을 구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밀려왔다. 차가운 실험대 위에 누운 어린 몸이 기계적인 실험 대상이 되는 상상을 하니, 그의 가슴은 찢어질 듯이 아팠다. 어린아이에게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이 가해졌고, 이제 더 큰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현실을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직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을지 생각하니, 그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임상언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간다고 해서, 네 아들을 구할 수 있겠어?” 서진이 차분히 물었다. 임상언은 더 이상 그런 이성적인 질문에 대답할 상태가 아니었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그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었다. “난 상관없어. 내가 죽더라도, 내 아들을 구하러 갈 거야!” “좋아, 그럼 가! 가버려” 서진은 더 이상 그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소리쳤다. “원철수, 놔줘! 그냥 가게 놔둬!” “김서진, 진정해!” 원철수는 당황했다. 두 사람의 말다툼이 점점 격해졌고, 그는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상황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임상언을 붙잡은 손은 놓지 않았지만, 서진을 설득하려 하느라 진이 빠졌다. “난 침착해. 임상언이 가고 싶다면 막을 필요 없어. 놔둬!” 서진은 차가운 눈으로 임상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모든 말을 다 했어. 임상언이 정말 가고 싶다면,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어. 네가 지금은 그를 붙잡고 있겠지만,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있겠어?” “놔둬. 가게 해!”서진은 다시 한번 강한 어조로 말했다. “대사관 경비가 얼마나 삼엄한지 너도 봤잖아. 게다가 프레드와 여왕, 그들 둘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지 않나.
어두운 지하실은 습기차고,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아 문을 열자마자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문이 열리면서 휠체어가 천천히 굴러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자, 안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살짝 들어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왕 폐하, 드디어 저를 보러 오셨군요.” 프레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지만, 그 미소는 어색하고 초라했다. 한때 모든 것을 누리던 공작이 이제는 이렇게까지 몰락한 모습으로 여왕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휠체어가 멈추자, 여왕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수십 년간 자신의 곁을 지켰던 프레드를 여왕은 침묵 속에서 지켜보았다. “프레드, 후회하나?” 여왕은 담담하게 물었다. “후회요? 무엇을 후회한단 말입니까? 실험을 좀 더 빨리 시작하지 않은 걸? 아니면 망설이며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걸? 아니면 당신이 처음부터 나를 의심하고 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챈 걸?” 프레드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승자는 왕이 되고, 패자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뿐이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왕은 한동안 깊은 침묵에 빠졌다. 프레드의 말에는 후회의 흔적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그 말은 그의 결정에 대한 확신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날 배신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는 거군.” 여왕은 그가 자신의 배신에 대해 반성할 것이라 기대했었다. 그래도 몇 년을 함께한 신하였으니, 조금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후회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프레드의 태도는 여왕의 기대를 완전히 산산조각 냈다. 프레드는 몸을 살짝 일으키며 흐트러진 옷깃을 고쳐 잡았다. 그의 모습은 초라했지만, 자존심만큼은 여전히 굽히지 않고 있었다. “저의 사랑하는 여왕 폐하, 저는 한 번도 당신을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후회할 일도 없죠.” “네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고?” 여왕은 순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입니다. 제가 한 모든 일은 여왕 폐하의 명령에
“네가 나에게 그토록 충성스럽다면,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여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를 실험 대상으로 삼으시겠다는 건가요?” 프레드는 이미 이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이제 와서 제가 거부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다른 요구 사항은 없느냐?” 여왕은 프레드에게 물었다. 비록 프레드가 배신했지만, 그는 여왕에게 수십 년간 충실히 섬겨온 신하였다. 이제 그가 실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기에, 마지막으로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왕은 생각했다. 그러나 프레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이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미 아내와 이혼했고, 자식들은 저를 떠났습니다. 저는 오직 여왕 폐하께만 평생을 바쳐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만약 이 실험이 성공하여 제 생명이 아이를 통해 이어진다면, 다시 한번 폐하를 섬길 기회를 원합니다.” 프레드의 마지막 요청은 단순한 가정처럼 들렸지만, 여왕에게는 큰 유혹이었다. 프레드의 말은 다시금 여왕의 마음속에 실험의 성공과 영생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여왕은 최근 며칠 동안 원청현이 했던 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 말들이 여왕의 마음에 깊게 남아있었다. 여왕은 젊었던 시절과 아들 로사가 어릴 적 함께했던 시간들, 그리고 남편이 살아 있었던 아름다운 과거를 떠올렸다. 그 시절은 정말로 행복했다. 그러나 여왕은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자신의 젊음, 그리고 삶의 의미. 계속해서 살아남아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두려워졌다. 하지만 프레드의 말은 다시금 그녀의 영생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여왕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프레드, 넌 정말 이 실험이 성공할 거라 믿는 거냐?” 프레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요! 반
프레드는 여왕이 무슨 말을 하든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말재주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폐하를 위해서입니다. 여왕 폐하, 제가 오래전부터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H국 사람들은 교활하고 믿을 수 없는 자들이라고요! 그놈들이 분명히 이 실험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당신을 설득하려고 했을 겁니다. 절대 속지 마십시오.” 프레드는 격앙된 어조로 계속해서 말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오랜 세월 동안 노력해온 것이 무엇입니까? 이 순간에 포기한다면, 그동안 해온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겁니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 돈, 그리고 모든 에너지가 말입니다!” 프레드는 두 팔을 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은 그놈들의 음모입니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우리는 세상을 지배할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Y국 사람들만이 영생을 얻게 되면,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질 것이고, 당연히 그들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놈들은 우리가 성공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프레드는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굴리며 덧붙였다. “어쩌면 그놈들이 당신에게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동안, 뒤에서는 자신들도 몰래 같은 실험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여왕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정말 그럴까?” 프레드는 더욱 자신감에 차서 말했다. “물론입니다! 주효정, 그 여자를 기억하시지요? 그 여자는 이미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프레드는 잠시 말을 멈추고 조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주효정 같은 기회주의자는 언제나 이득이 있는 쪽으로만 움직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H국 사람들은 절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여왕은 잠시 말이 없었다. 프레드는 말을 이어갔다.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주효정은 투명약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투명약?” 여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녀는 주효정에게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릭은 프레드가 갇혀 있는 방 밖에서 여왕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휠체어를 안정적으로 잡고 말없이 여왕을 밀었다. 여왕도 마찬가지로 침묵 속에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며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고요함은 엘리베이터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왕자 폐하께서 여왕 폐하를 뵙고 싶어하십니다.” 릭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왕은 살짝 눈을 내리깔며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릭은 그 한숨에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층을 하나하나 올라가던 중, 여왕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로사를 데려와.” “여왕 폐하?” 릭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로사를 데려오라고.” 여왕이 명령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바로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했고, 여왕은 휠체어를 움직여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릭은 잠시 놀랐지만, 곧바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러 다시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릭은 로사를 데리고 여왕의 침실 앞에 도착했다. 그는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고, 문이 잠겨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살짝 힘을 주어 문을 열었다.“들어오라고 해.” 여왕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고, 그 말 속에서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릭은 몸을 비켜 로사가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었고,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로사는 다급한 표정으로 빠르게 방에 들어가며 외쳤다. “어머니...” “예의를 잊었느냐?” 여왕의 목소리가 차갑고 엄격하게 울렸다. 로사는 순간 망설였지만, 결국 고개를 숙이며 규칙대로 몸을 낮추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여왕 폐하!” “일어서라.” 여왕은 휠체어를 돌려 그를 마주 보며 명령했다.로사는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불과 며칠 만에 그녀가 더 늙어 보였다. 얼굴의 주름은 더 깊어졌고, 안색은 더욱 창백해져 있었다. “어머니...” 로사는 일어나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릭은 문 앞에서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기
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잠시 비웃었지만, 결국 로사는 자신의 아들이었다. 그가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을 보자, 여왕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던 화도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제가 잘못한 것을 뉘우쳤습니다.” 로사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제가 그런 말을 해서 어머니께 상처를 드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정말로 잘못을 뉘우친 것이냐?” 여왕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로사에게 물었다.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똑바로 보아라.”로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왕과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진 후, 여왕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로사, 너는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한 게 아니다. 네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구나. 너는 여전히 내 말에 불복하고 있지 않느냐?”자신의 아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여왕이 모를 리가 없었다. 로사의 눈빛에는 불만이 담겨 있었고, 그는 어머니를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겉으로만 순응하는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여왕은 더 이상 예전처럼 격렬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며칠 전의 다툼과 원청현, 프레드와의 대화 이후 여왕의 마음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로사, 네가 H국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그곳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렇기에 더는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여왕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혹시 놈들이 너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느냐?”로사는 놀란 듯 여왕을 쳐다보았다. “어머니, 저는 이제 어린아이도 아니고, 성급한 청년도 아닙니다. 제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로사는 차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어머니의 몸 상태를 고려해 최대한 말을 부드럽게 하려 했지만, 그 말 속에는 여전히 날카로움이 배어 있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나를 이렇게 볼 수 있지? 나를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는 건가?’ 로사는 어머니가 자신을 그렇게 판단력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로사는 의외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여왕은 약간 비웃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당연히 들어본 적 없겠지. 이런 비밀 사항을 네가 어떻게 알겠느냐.”로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천천히 반문했다.“그렇다면 어머니는 어떻게 아셨습니까?”여왕은 시선을 돌리며 살짝 기침을 했다.“나는 나만의 정보 경로와 방법이 있다. 네가 믿지 않겠지만, 이건 모두 사실이다.”“저는 믿지 않는 게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제가 믿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것이겠지요.”로사는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중요한 기밀 사항이라면 당연히 최고 수준의 보안이 유지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어머니께서 이 정보를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입니다.”로사는 여왕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어갔다.“물론 어머니께서 나름대로의 정보원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이 실험을 얼마나 오랫동안 연구해 왔습니까? 그리고 이번에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이 실험에 대해 누가 알았겠습니까?”잠시 말을 멈춘 로사는 차분하게 덧붙였다.“어머니는 혹시 Y국의 보안이 H국보다 더 철저하다고 생각하십니까?”로사의 차분하고 논리적인 질문들은 여왕을 잠시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로사, 너...”여왕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로사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존경하는 어머니, 여왕 폐하. 먼저 화내지 마십시오. 어머니께서 화가 나신 것은 제 태도 때문입니까? 아니면 제가 말씀드린 내용에 반박할 수 없어서입니까? 혹시 어머니께서도 제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로사는 이틀 동안 여왕과의 대화를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자신은 분명히 여왕의 말을 완전히 수긍하지 않았고, 내심 반항심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깨달았다. 여왕과 계속해서 감정적인 논쟁을 이어간다면, 어떤 결과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오랜 세월 동안 여왕은 명령을 내리는 데 익숙해졌고, 사람들의 순종을 당연하게 여겼다. 반박하는 목
로사의 진심 어린 말을 듣고 있던 여왕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는 아들이 이렇게 성숙한 모습으로 자신을 마주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말없이 로사의 얼굴을 바라보던 여왕은 그의 말에 깊이 빠져들었다.“사실, 어머니도 두려워하신다는 걸 알고 있어요. 늙는 것이, 죽는 것이, 그리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이 있다는 것이 두렵지 않으시겠어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이 실험을 단순히 오래 살기 위한 목적으로 하시는 게 아니란 것도 알아요. 어머니는 여전히 이루고 싶은 일이 많으시니까요.”로사의 진심 어린 말에 여왕의 눈가에 약간의 눈물이 맺히려 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어머니께서 정말 많이 지치셨다는 것도 알아요. 겉으로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저는 알고 있었어요. 가끔 제가 늦게 귀가할 때, 어머니 방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곤 했죠.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셨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셨죠. 저는 어머니를 돕고 싶었지만...”로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왕자로서 그의 위치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늘 복잡했다. 사실 로사는 단순히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두려웠다. 로사가 정치에 참여하는 모든 행동이 권력을 탐하는 것으로 비칠까봐 걱정했던 것이다.“저는 더 이상 어머니께서 이렇게 고생하시기를 바라지 않아요.”로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여왕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어머니는 이미 충분히 애쓰셨고, 수십 년 동안 이 나라를 이끌어 오셨어요.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고생하지 않으셔도 되잖아요.”여왕은 그 말을 듣고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고, 그녀의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로사야, 넌... 왕위를 계승하고 싶니?”이 질문은 여왕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이었다. 그동안 이 문제를 꺼내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녀는 더 이상 숨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