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뜨거운 액체가 흐른 후 한소은은 한순간 멍해졌다.‘망했다!’이건 아마 양수가 터졌을 것이다. 이 지경이 된다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될 것이다!“누구 없어요...”어쩔 수 없이 허약하게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대문을 보고 그녀는 혼자 문을 향해 갈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들은 한소은이 또 무슨 속임수를 써서 그들을 속이려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수 없었던 한소은은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문으로 옮기려고 했다. 그때 문이 갑자기 밖에서 열리더니 곧이어 몇 명의 전문 의사인 듯한 사람이 뛰어들어 들것을 가지고 그녀를 들 것으로 옮겼다.누군가 옆에서 H국어로 말했다.“심호흡해요!”한소은은 어리둥절해졌다.그들의 설비는 꽤 완벽했다. 전에는 줄곧 외국인들이었는데, 출산할 때 뜻밖에도 H국인이 있을 줄은 몰랐다.처음부터 준비가 다 돼 있었고 한소은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다.한소은은 하필이면 이때 출산하게 될 줄은 몰랐다. 허름한 방을 들여다보았지만, 그 사람들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마치 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재빠르게 그녀를 들것에 태우고는 문밖으로 걸어갔다.한 손으로 들것 한쪽을 꽉 잡은 한소은은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며 눈을 뜨고 밖을 관찰했다. 하지만 밖은 길지 않은 텅텅 빈 복도일 뿐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큰 소리를 냈지만 아무도 몰랐던 것이 이 복도에 그녀 혼자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넓은 이곳 입구에 경호원 두 명만 있었다. 겨우 그 정도였다.복도 끝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말은 아파트라는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그러면 여기는... 지하?!’황급히 몇 번을 흘끗 쳐다보며 한소은은 곧 이런 정보를 얻었지만 더 많은 것을 볼 겨를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갑자기 누군가가 검은 천으로 그녀의 눈을 가렸다.한소은은 울화가 터졌다.‘젠장!’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퍼부으려다 꾹 참고 입을 다물
사실, 정말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한소은은 원래 잘 생각했다.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고, 어쩌면 모든 유용한 소식을 볼 수도 있고, 어쩌면...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많은 가능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이를 낳다가 기절해버렸다.너무 아팠다. 밀려오는 통증 때문에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훨씬 더 아팠고 움직임도 컸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배가 평평한 채 병원 같은 곳에 누워있었다. 사방이 온통 하얀 벽으로 가득 차 있고,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자신은 링거를 맞고 있었다.눈앞의 검은 천은 이미 언제 벗겨져 앞을 볼 수 있지만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아무것도 없는 곳이고,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곳이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아이가 없다는 것이다!주변에는 아이가 없었고 하소은은 배를 만지며 제왕절개를 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배에 봉합한 상처가 있어서 당분간 크게 움직일 수 없었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전해졌다.‘그렇다면, 아이는?!’온 지 이렇게 오래되도록 그녀가 이렇게 당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누구 없어요!”그녀가 큰소리로 외쳤다.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에게 응답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말이다.하지만 그전에는 아이가 자신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냉정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뿐, 아이는 행방불명이고, 심지어 낳은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안전한지조차도 모른다.“누구 없어요!”한소은은 아픔도 돌볼 겨를이 없이는 힘껏 주삿바늘을 잡아당겼다.그녀는 상대방이 자신의 몸을, 건강한 몸을 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죽는 건 분명 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예전에는 죽음을 바라지 않았던 건 배 속에 아이가 있었기 떄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하소은은 뭐든 할 수 있었다.소란스러운 움직임이 마침내 상대방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상대방이 모두 알고 있다는 걸 하소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 아이를 봐야겠어요.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에요!”한소은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너희들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한소은 씨, 당신은 아들-딸 쌍둥이를 낳았고, 모두 평안합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한 발짝 더 나아가 그녀에게 소식을 전하던 의사가 말했다.“하지만 아이가 조산이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좀 부족합니다. 지금은 보육실에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상황이 좀 안정되면 자연히 한소은 씨에게 안겨드릴 겁니다.”그의 말을 들은 한소은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신반의하며 의사를 바라보았다.“정말이에요?”“정말이에요.”옆에 있던 다른 의사도 한마디 보탰다.“한소은 씨는 지금 몸을 잘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을 잘 돌봐야 아이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잖아요.”“난 믿지 않아. 내 아이를 봐야 안심이 돼!”목을 뻣뻣하게 세운 한소은은 설득당하지 않았고, 여전히 바늘로 자신을 향했다.“아이를 볼 수 없다면 나는 여기서 죽을 거야!”“이건...”두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민하다가 말했다.“한소은 씨, 위에 물어보겠습니다.”“가서 물어보세요, 기다릴게요!”한소은은 타협과 양보를 전혀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이 두 사람은 분명히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위협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그들에게 휘둘릴 것이고 계속 이끌려 다닐 것이다.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방을 나갔다. 그들이 나간 후 한소은은 이곳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이 방은 정말 너무 간단해서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에게 수액을 주입하는 데 필요한 선반과 감시 장비 외에 앉을 의자도 없었다.이곳은 분명 일반 병원이 아니라 특별히 한소은을 위해 준비한 병실이다. 한소은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지 일반 병원도 아닌데 전문 보육실이 있긴 한지 그들의 말을 의심했다.그리고 한소은은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있었다.조산이
“한소은 씨...”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병실 문이 다시 열리면서 남자가 목발을 짚고 나타나 물었다.“나 만나자는 거야?”그 사람을 본 두 의사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 그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힐끗 쳐다보던 한소은은 담담한 표정으로 누워 자세를 가다듬으며 말했다.“당신 아니야.”“그래? 하지만 방금...”눈살을 찌푸리던 남자가 자신의 귀를 후벼댔다.“내가 잘못 들었나 보다.”“네가 잘못 들은 것도 아니고, 나도 잘못 말한 것도 아니야. 나는 너희 주인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네가 아니야!”한소은은 눈을 꼿꼿이 세우고 천장을 쳐다보더니 꿈쩍도 하지 않았다.요즘 여기 있는 동안 몇 시간씩 천장을 꿈쩍도 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스킬'이 생긴 것 같았다.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 그중의 한 의사를 돌아보며 눈짓을 했다. 그 의사는 급히 앞으로 가서 재빨리 그녀의 핏자국을 닦아주고 주삿바늘을 다시 가져다가 찔러주며 이불을 들치고 그녀의 복부에 난 상처를 살펴보려고 했다.그러나 한소은은 이불을 꽉 누르고 덤덤하게 기계처럼 반복했다.“나는 당신들의, 주인을 만나고 싶어!”“한소은 씨, 좋은 말로 할 때 듣지?”프레드는 얼굴을 찌푸렸다.“내가 너를 만나러 온 것만으로도 너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다.”“그래?”차갑게 웃으며 한소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R10이 약효를 다 살려야 한다는 것을 나보다 더 잘 알 텐데. 가장 중요한 게 뭐지? 난 지금 상관없어, 너희 주인을 못 보면 난 지금 내 몸을 망칠 거야.”한소은이 말을 이었다.“어차피 여기서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지.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면 안 되니까. 뭐... 당신들의 계획을 망칠 수도 있고!”입꼬리를 씩 올리며 한소은의 얼굴에 계산적인 미소가 떠올랐다.눈빛이 어두워진 프레드가 입을 열었다.“잊지 마, 네 아이가 아직 우리 손에 있어. 네가 죽으면 아이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거야?”“물론 상관있지.”자신의 아이를 힐끗 보던 한소
프레드는 더는 반박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맞는 말이었다. 프레드의 사람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연구했지만 해내지 못했고, 한소은을 찾는 이유도 얻은 소식을 종합해 보면, 그녀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분명히, 결과가 나왔고 그녀가 해냈다. 그렇다면... 후유증이나 효과는?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우리 모두 알다시피 넌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없어. 그러니 네 주인에게 가서 얘기해야겠지만 내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어.”한소은은 눈을 감고 말을 이었다.“내가 내 몸을 파괴하는 건 아주 쉬워!”프레드는 할 말을 잃은 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한소은을 매섭게 노려보았지만, 지금은 확실히 한소은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의사에게 눈짓하고 프레드는 돌아서서 방을 나가며 한마디 던졌다.“아이를 데려가!”의사 중 한 명이 두 아이를 안고 떠났고, 한소은은 눈을 뜨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지금 보든 안 모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한소은은 자기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고 아이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남겨진 의사가 머뭇거리며 그녀의 이불을 건드리려 하자 한소은은 스스로 이불을 젖히고 말했다.“미안하지만, 상처 좀 봐주세요. 터진 것 같아요.”“한소은 씨...”의사는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피가 꽤 배어 나와 소독솜에 묻히고 다시 처리했다.“이렇게까지... 그럴 필요 있어요?”“선생님은 여기 있으니 내가 왜 이러는지 더 잘 알 거잖아요. 선생님도 의대생이고 의사니까 뭐 하는지 알겠죠?”한소은은 덤덤하게 말하며 배로 전해지는 따끔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마음속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밖에서는 무슨 상황인지 모르지만, 김서진이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에 온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정작 배후를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무력한 느낌이 들었다.무예를 익힌 자들은 싸울 때 묘수를 쓰지만,
한소은은 놀라서 의사를 쳐다보았지만, 그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듯 덤덤한 얼굴로 물건을 챙기고는 병실을 나갔다.다시 생각해보아도 환청이 난 것처럼 그 말들이 귓가에 맴돌았다.가장 중요한 것은 방금 남아서 상처를 치료하던 의사가 이전에 그녀에게 소식을 전한 의사가 아니라는 것이다.‘그렇다면... 이 의사도 같은 편인가, 아니면 그냥 양심의 가책인가, 아니면...함정?!’이해하지 못한 한소은은 잠시 혼란스러웠다....김서진은 주효영을 잡았지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이 여자는 극도로 위험한 사이코니 놓아줄 수 없었고 지금 이대로 경찰에 넘길 수도 없으니 잠시 가둘 수밖에 없었다.일찍이 두 번이나 물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주효영의 입에서는 전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주효영의 생각은 전혀 정상인의 패턴이 아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기가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차고 안의 밀실은 이미 여러 번 뒤졌지만 그곳에 없었다. 주효영이 발붙일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데 유일하게 생각나는 곳이 바로 백신 기지 센터였다.주효영은 집에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간을 그곳에 머물렀고, 지금은 백신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 곧 본격적으로 투입될 것이다. 하지만 실험실의 그런 지하 프로젝트는 두목이 사라졌기 때문에 혼란스러워져서 멈추었다.“기지에 가서 찾아볼게요!”서한이 조용히 말했다.그는 대표님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곳을 생각하게 됐는데 그쪽은 지금 위험인물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위험이 곳곳에 존재했다.저쪽의 실험자들이 몇 명이나 그 조직에 심겨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바이러스가 아직 방출되지 않았는지 아무도 모른다.너의 몸은...”서한을 보며 김서진이 망설였다. 예전 같았으면 진작 서한을 보냈을 텐데 지금은 달랐다.서한은 겉으로 보기엔 일반인과 다를 바 없고 예전과 달라진 것도 없지만, 한소은은 서한도 중독되었다고 말했다. 원철수와 다른 사람들의 몸과는 달리 그의 바이러스는
일반적인 일로 서진을 설득할 수 없었다. 아내와 자식만 서한의 마음을 걱정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김서진이었다.아니나 다를까 이연의 이름을 들은 서한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대답했다.“아니에요, 이럴 때 제가 해야 할 일은 더 중요한 일이에요. 그곳은 제가 잘 아니까 당연히 제가 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전에 제가 몰래 숨었던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겠어요?”“게다가, 지금 그 조직의 사람들은 거의 다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모두 일면식도 없는 졸개들뿐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전 사람을 찾으러 가는 거지 전쟁터에 나가는 게 아니잖아요!”평소 웃음이 적었던 서한은 웃음을 터뜨리며 홀가분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하지만 그런 말에 넘어갈 김서진이 아니었다. 김서진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됐어, 내 앞에서 연기하지 마! 우리 모두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어. 넌 원래 중독되었는데 또 다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죽을지도 몰라! 너...”“제가 바이러스에 감염됐으니 더 가야죠.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뭐가 무섭겠어요! 대표님, 대표님은 달라요. 아직 더 중요한 일이 많아요! 나의 이 천한 팔자로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오늘까지 살 수 없었고, 이렇게 좋은 날도 없었을 거예요.”잠시 머뭇거리던 서한이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다만 만약 제가... 저 대신 이연이와 아이를 돌봐줬으면 좋겠어요!”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뭐라고?”충격적인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이연은 하마터면 손에서 물건을 떨어뜨릴 뻔했지만, 반응이 빨라서 바로 잡았고 눈빛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다시 한번 말해 봐! 몸에 독이 있다고? 무슨 독?!”그녀는 달려들어 서한의 팔을 잡고 위아래로 그를 자세히 훑어보려 했다.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별로 달라 보이진 않았다.“무슨 독, 도대체 무슨 독에 중독됐는지 똑똑히 말해. 그리고 당신 뭐 하러 가는데,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해? 도대체 내가 당신한테 뭐야
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놀라 일제히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뭐라고요?!”“정말이야.”고개를 끄덕이며 김서진은 이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대표님, 저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전 그 실험실의 바이러스에 중독됐어요. 게다가 그때는 이미 제정신까지 통제했었어요. 제가 나중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저도 알고 있어요, 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요! 게다가 지난번에도 사모님이 맥을 짚어주셨는데, 사모님도 알고 계셨어요...”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 서한은 대표님이 자신에게 더는 거짓말을 하게 하고 싶지도 않고, 이연에게 거짓 희망을 주고 싶지도 않다.“한소은이 그랬어!”그의 말을 끊고 김서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사모님?!”“소은 언니?!”두 사람 모두 놀라 이구동성으로 말했다.고개를 끄덕이며 김서진이 말을 이었다.“한소은은 전에 네 몸의 독이 매우 심해서 네 오장육부를 갉아먹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긴 하나 고칠 수 없는 것은 아니야. 그녀가 돌아오면 치료해 주겠다고 했어. 다만...”잠시 후, 김서진이 천천히 말했다.“소은이가 돌아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해.”“그러니까, 너 함부로 하지 마, 이번에는 안 가도 돼. 너 아니면 안 되는 게 아니니 여기 남아서 몸조리 잘하고, 한소은이 돌아오면 해독해 줄게!”그에게 살아있다는 희망을 주어야만 거침없이 죽음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대표님, 절... 위로해 주려고 그러는 거죠? 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전...”서한이 또 무슨 말을 하려 하자 김서진은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너를 위로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위로가 필요해?”“남자 대장부로 태어났으니 살면 사는 거고 죽으면 죽는 거야. 하지만 네가 살 수 있다면 잘 살아야 해.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겨야지. 천한 팔자같은 건 없어. 사람의 팔자는 다 똑같아, 이연 씨에게도, 아이에게도, 너의 목숨은 중요한 거야, 알겠어?”김서진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마치 명령처럼 엄숙하게 말했다.서한의 눈시울이 점차 뜨거워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