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은 손가락으로 위의 글자를 살짝 눌렀다.“봐봐, 비록 시간 간격이 짧지만 확실히 도움이 돼. 맥 상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차이가 있어. 이 아침과 저녁, 그리고 점심시간대는 뚜렷한 파동이 있었어. 그리고 여기, 여기... 어...?”말하면서 어르신은 마치 무슨 큰일을 발견한 것처럼 의아한 소리를 냈다.“왜 그러세요. 둘째 할아버지?”원철수는 긴장해서 얼른 물었다....원 어르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눈을 가늘게 뜨고 진지하게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었다.“내 안경 가져와.”어르신은 노안이 좀 있어서 집에 돋보기 하나가 있었지만 자주 쓰지 않았다. 돋보기를 끼면 자신이 늙었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게다가 평소에 약을 달이고 약초를 재배하는데 모두 영향이 없어서 별로 쓰지 않았다.모처럼 어르신이 스스로 쓰겠다고 하자 원철수는 재빨리 돋보기를 찾아 어르신에게 건네주었다.어르신은 돋보기를 받아쓴 후, 마치 무슨 대단한 일을 발견한 것처럼 원철수의 메모를 한 줄 한 줄 다시 한번 자세히 보았다.원철수는 궁금해서 뒤따라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어르신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몰랐다.비록 이 메모들은 원철수가 기록한 것이지만, 그는 어떤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고, 모두 매우 평범한 맥상 기록이라고 느꼈다.“왜 이럴 수 있지?”고개를 기울이며 어르신은 생각에 잠겼다.비록 궁금증이 가득했지만 원철수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는 둘째 할아버지께서 분명 진지하게 사고하고 있으실 것이고, 무슨 단서를 발견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원철수가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것은 어르신에게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잠시 후, 원 어르신은 다시 반듯이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르신이 넋을 잃고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고 원철수는 곧장 일어나 한쪽에 묵묵히 서있었다.원철수는 노트를 들고 스스로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맥 상이 매시간마
잠시 숨을 돌린 후, 어르신이 담담하게 말했다.“이 바이러스에 규칙이 하나 있는데, 너 발견했어?”“낮엔 활동하고 밤엔 잠복하는 거 말씀하신 건가요?”원철수는 잠시 생각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어르신은 칭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계속 말했다.“일반적인 바이러스, 질병은 대부분 밤에 활동하지만, 이것은 정반대야. 낮에는 특히 활동적이지만 밤이 되면 오히려 많이 조용해져. 이것이 바로 내가 밤에는 편안하게 잘 수 있지만 낮이 되면 오히려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이유야...”“바이러스는 확실히 특수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그들이 연구할 때의 특성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파 방식이 무엇인지 저는 끝내 생각해 내지 못했습니다. 왜 김서진과 김준은 아무 일도 없고, 저도 괜찮을까요?”원철수는 자신의 몸을 두드렸다. 그는 이틀 동안 자신의 상황도 시시각각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아무 일도 없었고, 맥 상도 줄곧 정상적이고 평온했다.“만약 제가 전파원이기 때문에 제 몸에 면역과 항체가 생겼다면 그 부자는요? 말이 안 통하잖아요!”원철수는 계속 말을 이었다.“물론 저는 그 부자가 나빠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냥 무슨 이유 때문인지 궁금한 것뿐입니다.”어르신은 당연히 그가 고의로 사람을 나쁘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문제는 그들이 줄곧 궁금해 온 것이었다.만약 전염성이 없다면, 왜 집안의 하인들, 심지어 원철수의 부모님까지 전염될 수 있을까? 만약 전염성이 있다면, 그 부자는... 정말 기적이고 예외일 것이다.“아직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나는 곧 알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이 바이러스는 비록 창궐하고 활발하지만 위해성은 그리 강하지 않아.”어르신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눈빛으로 원철수를 안정시키며 말했다.“물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아직 말하기 어려워. 몸에 어떤 장기적인 손상이 있을지는 아직 검증할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현재로서는 사람을 빨리 죽게 할 정도는 아니야.”“하지만 몸에 대한
병원에서 김서진은 방호복과 장갑을 차려 입고 무장한 채 병실로 들어갔다.진가연은 병원에 실려온 후 바로 긴급 치료를 받았다. 그녀는 아무래도 진정기의 딸이어서 특수 통로로 모든 것을 진행했다.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게다가 그녀의 문제는 심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병원에서 진단한 결과는 그렇다.다만 몸이 허약하고 만성적인 비만으로 인해 여러 가지 합병증을 일으켰다.비록 최근 다이어트로 성과가 조금 있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정상 범위로 돌아가지 않은 데다 감기 몸살, 저항력 면역력 저하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들이 굉장히 심각해 보였다.린거를 맞은 후 진가연은 바로 VIP 병실로 옮겨졌다.지금 병실은 조용하고 아무도 없었다.물론 이것도 김서진이 특별히 사람을 배치하여 그의 출입을 편리하게 하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 속의 내막을 알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진가연은 침대에 누워 한 손에는 링거를 꽂고 있었고, 눈을 꼭 감은 채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김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대 앞에 서서 진가연의 안색을 보았다.진가연의 안색은 여전히 약간 창백했고, 온 몸에는 건강하지 못한 기운이 돌았다. 얼굴에는 아무런 혈색도 없었고 입도 매우 건조했다. 마치... 거의 다 타버린 상태처럼 물이 부족해 보였고 피부에는 붉은 점이 조금씩 보였다.병원에서는 붉은 점은 발열로 인한 신체 거부 반응이라고 했지만, 김서진의 직감으로는 아닌 것 같았다.비록 김서진은 의사가 아니지만, 이 기간 동안 바이러스와 싸움한 횟수가 너무 많아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고, 심지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진가연이 현재 보이는 것은 일반적인 감기로 인한 열 같지 않았다.감각이 있었는지, 아니면 약효가 있었는지, 진가연은 눈썹을 찡그리고 머리를 가볍게 돌린 후 천천히 눈을 떴다.분명히 그녀는 아직 좀 막막해서 눈을 뜨고 몽롱하게 힐끗 보았지만 아마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다시 눈을 감았다.그리고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눈을 뜨
“너 열났어.”김서진이 말했다.“그리고 피까지 토했어. 기억 안 나?”진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생각났어요. 이번 감기가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어요.”“내 말 좀 들어봐, 너는 보통 감기로 인해 열이 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어.”김서진은 진가연을 보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진가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들어 김서진을 바라보았고,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옷차림과 주변의 환경을 다시 보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한 손을 들고 중얼거렸다.“설마, 무슨 전염병인가?”그렇지 않으면 왜 이렇게 됐을까. 게다가 김서진이 입고 있는 것이 보호복처럼 보였고, 남아시아의 그 역병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진가연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맞긴 한데 아니기도 해.”김서진의 말은 모순적으로 들렸다.“그게 무슨 뜻이에요?”진가연은 이해하지 못하여 물었다.‘맞으면 맞는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왜 듣기에 이렇게 이상할까?’“간단히 말해서, 아직 확실히 말할 수 없어. 왜냐하면 이것이 정확히 무슨 바이러스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거든.”김서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분명히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자신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이 모든 일은 너무 빠르고 갑작스러워서 그들에게 전혀 반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게다가 남아시아의 일부터 시작해서 그야말로 일파만파로 마치 줄줄이 이어진 폭탄과 같았다.비록 크기는 작고 위력도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빈번하고 밀집되어 있는 데다 이런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널리 퍼지고 공황을 일으키지 않게 해야 해서 그들은 왠지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바이러스요?!”이 단어를 들으면 여전히 좀 두려웠다.진가연은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지만, 자신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힘겹게 몸을 지탱하려다 결국 포기했다.“그럼 저는... 곧 죽나요?”“아니!”김서진이 대답했다. 그러자 진가연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서진 오빠, 저를 속일
“어...”진가연은 들을수록 어리둥절해졌다.‘왜 이상한 느낌이 들지? 보균자인데 감염되지 않았다고?’“나는 아직 너한테 분명하게 말할 수 없어. 솔직히 말해서 나도 아직 이 일을 정리하지 못했거든.”김서진은 고개를 저으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난 결코 너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너는 정말 죽지 않을 거야. 그냥 요 며칠 동안 안심하고 병을 치료해. 그리고...”주위를 둘러본 후 김서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여기에만 있어. 알겠지?”진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당연히 이 속의 이치를 알고 있었다.“저는 알고 있어요. 전염될 가능성이 있는 이상 저는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예요.”말을 마친 후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나서 또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틀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랑 접촉했는데, 괜찮을까요?”사실 진가연이 말한 것은 김서진도 이미 생각하고 가능성을 고려했다. 하지만 어떨지 누가 알겠는가?현재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해결책도 아직 찾지 못했으며, 전파 경로와 전염 강도에 대해서는 더욱 아무것도 몰랐다.“이건... 더 지켜봐야 돼. 아무도 확신할 수 없어. 그냥 전염성이 그리 강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김서진은 그냥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은 그의 통제 범위 내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참, 아버님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이미 찾았어.”진가연을 안심시키기 위해 김서진은 여전히 이 일을 그녀에게 말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말할 수 없었다.“아버님은 지금 안전하셔. 그냥 잠시 돌아올 수 없을 뿐이야.”진가연은 미처 기뻐할 겨를도 없이, 김서진의 뒷말을 듣고 갑자기 의심하기 시작했다.“정말인가요? 그럼 우리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왜 돌아올 수 없는 거예요? 아버지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진가연의 질문에 김서진은 이미 준비가
밤은 소리 없이 찾아왔고 만물이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주택 전체는 어둠에 휩싸였다. 이곳에서 ‘특수한’ 상황이 발생한 후부터 모두가 더 잘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불은 꺼져 있었다. 밤이 되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뒷마당의 방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을 뿐만 아니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했다.오후부터 원철수는 뜨거운 물 한 통을 끓인 후 자신이 미리 끓인 약초 즙을 부었다. 약초도 꼼꼼하게 준비한 후 오랜 시간 동안 끓여서 만든 것이었다. 원철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모든 일을 조금씩 준비하여 지금 사실 몸이 좀 피곤했다.하지만 이것은 모두 괜찮았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는 미리 준비한 침구 세트를 꺼내어 어르신 뒤에 섰다. 어르신은 커다란 욕조에 몸을 담그고 등을 드러내어 있었다.어르신은 안에 앉아서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사실 어르신은 비몽사몽의 상태로 완전히 깨어있지 않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고 있었다.수온이 좀 높아서 그런지 호흡이 약간 가빠지고 얼굴에도 홍조를 띠고 있었다. 물에 담근 시간이 좀 길어서 피부는 느슨해지고 주름살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았다.“둘째 할아버지, 시작하겠습니다.”은색 바늘 하나를 들고 원철수는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어르신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욕조의 물만 보글보글 끊임없이 거품이 솟아올랐다.그 은색 바늘 옆에 그릇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그릇 안에는 시커먼 약즙이 들어있었다. 이것도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원철수는 먼저 은색 바늘을 약즙에 담근 다음, 그중 하나를 집어 들어 어르신의 등에 있는 혈자리를 정확히 찾아 느리지만 확고하게 찔렀다.은색 바늘을 천천히 돌렸지만 어르신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마치 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원철수는 첫 바늘을 찌른 후 바로 고개를 돌려 어르신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그는 동작을 멈추고 잠시 관찰하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두 번
원철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자신의 정신을 가다듬은 후 계속 어르신께 침을 놓았다.다만 이번이 지나면 어르신의 체내의 바이러스를 철저히 제거하여 빨리 회복하고, 더 이상 고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마지막 세 개의 바늘이 남았을 때, 원철수는 또 망설였다. 왜냐하면 마지막 이 세 개의 바늘은 가장 아프고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둘째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원철수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 옆에 있는 수건을 들어 어르신의 땀을 닦아주었다. 어르신 몸에서 흘리는 땀과 욕조의 물이 뒤섞여 어느 것이 땀이고 어느 것이 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어르신은 양팔을 욕조 양쪽에 걸쳐 손가락으로 꽉 잡고 있었고, 팔뚝의 핏줄이 불룩 튀어나와 극심한 고통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둘째 할아버지?”대답이 없자 원철수는 긴장해서 다시 한번 소리쳤다.“계속해!”어르신의 목소리는 거의 이빨 사이로 비집고 나왔고 목소리도 거의 찢어질 것 같았지만 여전히 그렇게 버티고 있었다.원철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참고 말했다.“둘째 할아버지, 다음 세 바늘은 비교적 아플 거예요. 제발 버텨야 합니다!”“허허...”어르신은 웃음을 자아내며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입술만 움직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어르신의 체력은 사실 이미 극한에 이르렀다.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의사 노릇을 하면서 어느 혈자리가 얼마나 아픈지, 이 한 바늘을 찌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미 이 단계에 이르렀으니 절대 멈출 수 없었고 계속 진행해야 했다.“계속해!”숨을 크게 들이쉬고 어르신은 여전히 그 한마디를 말했다.어르신은 눈을 감았고 얼굴색은 침착하고 평온했다. 비록 얼굴의 땀은 줄곧 멈추지 않았고, 팔과 목에는 여전히 핏줄이 불룩했지만 어르신은 여전히 그렇게 버텼다.원철수도 자신이 아무리 마음이 아프고 차마 할 수 없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에는 절대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어르신의 팔에 때때로
어르신의 고함소리와 함께 욕조의 물도 끓어오르는 듯 보글보글 거품이 솟아올랐다.원철수는 두 손으로 어르신의 어깨를 눌렀고, 어르신이 너무 크게 움직이지 않도록 통제했다. 하지만 곧 놀랍게도 어르신의 팔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발견했다.먼저 독충과 같은 물건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치 피부를 찢고 나올 것 같았지만 도무지 출구를 찾지 못하여 어르신의 피부는 끊임없이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만약 일반인이 이 광경을 본다면 분명 놀랄 것이다.그러고 나서 그 독충 같은 물건은 계속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결국 은색 바늘을 찌른 자리에 이르렀다. 그들은 마치 돌파구를 찾은 듯 은색 바늘 쪽에서 여러 번 움직이다가 결국 검은 핏물이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그 광경은 매우 끔찍해 보였다. 어르신의 등은 원래 은색 바늘로 가득 찼지만, 지금은 그 바늘을 따라 끊임없이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처음에는 몇 개에만 흘러나왔지만 나중에는 점차 모든 바늘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그 바이러스들이 드디어 출구를 찾은 듯 미친 듯이 앞다투어 그곳에서 비집고 나왔다.검은 핏물은 욕조 안으로 흘러들었고 안에 있는 약물과 뒤섞여 금세 스며들었다.욕조 안의 물은 점차 시커멓게 변했고 몹시 끔찍해 보였다. 이런 변화에 따라 어르신의 몸도 크게 변하고 있었다.어르신의 외침 소리는 서서히 작아지고, 마침내 멈추었으며, 몸은 더 이상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지 않았다.마치, 몸의 모든 힘을 한꺼번에 비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듯 걷잡을 수 없이 아래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어르신의 몸이 욕조 안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보로 깜짝 놀란 원철수는 곧 손의 방향을 바꾸어 아래에서 어르신을 받쳤다.아래로 처진 어르신의 몸을 건져내니 많이 묵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안색은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원래 어슴푸레하고 어두워 보였던 안색이 많이 좋아졌고, 비록 얼굴은 아직 창백했지만 옅은 혈색이 돌았으며, 입술 색깔마저 정상으로 돌아왔다.“둘째 할아버지, 소용이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