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상언의 이 말이 맞았다.그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좀 일깨워주자 그 원인과 결과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저는 지금 한 가지 생각이 있어요.”임상언은 진지하게 생각한 후 말했다.“?”“자신이 이미 버림받았다는 것을 ‘사장’이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요?”그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입가에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그 웃음은 그에게 약간의 계략이 있는 간사함을 보여주었다.그러나 그의 이 생각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은 생각입니다.”임상언은 깊은숨을 들이쉬었다.“그럼 저는 지금 가서 처리할게요. 만약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저를 찾으세요!”김서진은 하루 종일 주택에 있었다. 생활의 흐름은 갑자기 느려진 것 같았고 이렇게 한가한 적이 없었다.비록 그의 전화는 여전히 끊이지 않았고, 컴퓨터로 원격 조작과 회의를 해야 했지만, 예전보다 업무량이 훨씬 많이 줄었다.어르신은 줄곧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가끔 깨어나 몇 마디 중얼거렸지만 의식이 여전히 뚜렷하지 않아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이런 상태는 하루 종일 지속되었고 한밤중이 되자 갑자기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원철수는 거의 눈을 붙이지 못하고 줄곧 침대 앞에서 시중을 들었다. 어르신이 위급할 때는 급히 달려와 진료를 봐주었고 별일이 없을 때는 그 한 무더기의 고대 의학 서적에 파고들었다.김준의 작은 이불을 살며시 위로 당겨주고 김서진은 맞은편 서재에 비친 불빛을 보며 탄식하였다.자신의 반평생도 혼자 한 셈이어서 한때는 자신이 못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 매우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는 무력감을 느꼈다.쿵덩!고요한 밤에 이런 소리는 유난히 분명했다. 김서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무의식적으로 아들을 보았다.김준은 이미 눈을 뜨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고 눈빛은 여전히 막막했다.분명히 그
“오지 마세요!”고개를 들어 김서진을 보자 원철수는 소리쳤다.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지만 한 손은 고집스럽게 뻗어 있었고 손에는 핏자국이 뚜렷하게 그어져 어르신의 손목에 닿았다. 두 사람의 손목은 모두 칼로 그었고 칼자국은 바짝 붙여 있었다.“당신…… 미쳤어요!”김서진은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그가 막 앞으로 가려고 하자, 원철수가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당신 오지 마세요!”목소리가 매우 크고 급한 데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까지 겹쳐 온몸이 약간 떨었다.원철수의 흥분된 정서를 보고 김서진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고 오히려 더 나아가지 않았다.“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원철수는 크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어쩔 수 없어요. 정말 어쩔 수 없어요.”원철수의 말은 김서진을 매우 놀라게 했고 무의식적으로 어르신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 장면을 쳐다보자 김서진은 비록 적지 않은 풍랑을 겪었지만 여전히 깜짝 놀랐다.어르신의 몸에는 어느새 커다란 혹이 잔뜩 부풀어 올랐고, 하나하나 부풀어 오른 혹은 작은 언덕처럼 보였으며 원래 쭈글쭈글하던 피부도 팽팽해졌다.어르신은 나이가 많고 피부가 늘어진 데다 사람이 비교적 말라서 피부가 모두 주름투성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매우 팽팽하고 윤기가 났다. 이 상태는 이전 원철수가 발작을 일으켰을 때의 상태와 비슷하지만 또 달랐다.원철수는 젊고 몸에는 힘과 근육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 당시에 근육이 배로 팽창하고 성장했다. 그러나 어르신의 몸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피부밑에 물을 주사한 것처럼 부풀어 올랐고 더 발전하면 찌르자마자 찢어질 것 같았다.“이건…….”김서진은 등줄기만 오싹했다.“이것은 독충 때문입니다. 독충이 몸속에서 발전하였거든요.”원철수는 심호흡을 하며 최대한 정신을 차렸다.“제가 자료에서 찾았는데 둘째 할아버지께서는 몸이 약하시고 나이도 있으셔서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할아버지께서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 지
더구나 밖에 감염된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설마 모두 그의 몸속으로 끌어들이려는 건 아니겠지?그러나 김서진은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경솔하게 그들을 방해하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대치하는 순간 줄곧 반 혼수상태였던 어르신은 정신을 차린 듯 비틀거리며 다른 한 손을 들려고 했다.어르신의 행동을 보고 원철수는 놀라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급히 말했다.“둘째 할아버지, 움직이지 마세요! 곧 나을 것입니다. 곧 제가 할아버지 몸의 고통을 덜어드릴 수 있을 것이고 할아버지께서는 곧 좋아질 것입니다!”원철수의 정서는 흥분되었지만, 어르신은 그보다 더 흥분되어 손을 떨며 갑자기 뺨을 툭 때렸다. 다만 몸이 허약해서 힘이 크지 않아 손바닥이 그의 볼을 스치는 것과 같았다.그러나 어르신의 이 동작은 이미 원철수를 기뻐하게 하기에 충분했다.“둘째 할아버지, 좀 괜찮으세요?”그는 어르신의 손을 잡고 말했다.“역시 제 추측이 맞았어요! 이 방법은 분명 쓸모가 있을 거에요!”“쓸모 있긴…… X뿔!”몸이 이렇게 허약하지만 어르신은 여전히 욕설을 퍼부을 수 있었다.어르신은 원철수에게서 벗어나려고 시도했지만, 그의 힘이 너무 세서 전혀 벗어날 수 없었다.“이놈의 자식, 놔…… 놔!”“둘째 할아버지, 손을 놓으시면 안 돼요. 지금 절반까지 진행됐어요. 제가 곧……”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이 다친 손목을 힘껏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머뭇거리며 심하게 몸부림치자 손의 피는 빠르게 흘렀고 검붉은 피가 침대 위에 떨어져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이 방법, 통하지 않아!”어르신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빨리 멈춰.”어르신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자 원철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어떻게 통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아니, 둘째 할아버지, 저는 많은 책과 자료를 찾아봤는데 이것은 이런 독충을 대처하는데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에요!”“저를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 몸
어르신의 몸에 원래 부풀어 있었던 혹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그러나 이것은 결코 기뻐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곧 피부 아래에서 미세한 것이 빠르게 헤엄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것의 속도는 매우 빨랐고 한두 개가 아닌 것 같았으며 마치…… 혈관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원철수는 어안이 벙벙하여 쳐다볼 수밖에 없었고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둘째 할아버지, 이건…….”어르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괴로워하셨다. 비록 아랫입술을 깨물며 애써 참으려 했지만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냈다.“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김서진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는 원철수가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를 탓할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 짧은 시간 동안 그가 본 것으로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이제 유일한 희망은 어르신 자신에게 있다.어쩌면 어르신 자신에게 방법이 있거나 혹은 시간을 끌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한소은 쪽의 일이 해결되어 달려온 후 다시 더 좋은 해결 방안이 있는지 의논해 볼 수 있을 것이다.어르신은 눈살을 찌푸리고 얼굴에 이미 굵은 땀방울이 맺혀 한 글자도 말하지 못했다.김서진은 모서리에 있는 거즈와 가위를 언뜻 보았는데, 아마도 원철수가 미리 준비한 것 같았다.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거즈로 재빨리 어르신의 손목 상처 부위를 몇 번 묶고 가위로 자른 후, 다시 어르신의 몸을 지탱하여 반쯤 기대고 앉게 했다.모든 것을 마친 후 원철수도 충격에서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자신의 손목의 상처를 묶은 후 몸을 돌려 작은 병에서 알약 하나를 부어 원 어르신의 입에 넣었다.“괜찮으세요?”김서진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이 물건은 그들의 지식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원철수가 방금 위험을 무릅쓰는 방법은 분명히 쓸모가 없었고 또 어르신께 무엇인지도 모르는 알약을 먹여서 김서진은 매우 걱정했다.“문제없어요.”원철수는 단호하게 대답했
“어떤 고대 의학 서적에 자신의 몸에 인도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네가 무협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이야, 아니면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것이야.”원철수를 흘겨보며 어르신은 천천히 말했다.“독충을 놓으려면 도입물이 필요하고 마찬가지로 독충을 풀려고 해도 도입물이 필요한 것이야.”“무슨 도입물이 필요한 것입니까? 제가 바로 찾으러 가겠습니다!”원철수는 급히 말했다.손을 약간 들어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고 어르신은 이어서 말했다.“아직은, 우리가 이것이 무슨 독충인지 몰라. 오직 정확히 알아야만 풀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이 독충은 네가 그것을 자극할수록 발작이 빨라질 것이야.”“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할아버지의 뜻은 제가 방금 한 방법이 그것들을 자극했다는 것입니까?”원철수는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을 미워했다.모두에게 이런 재앙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둘째 할아버지를 점점 더 힘들게 하고 있었다.“이번뿐만 아니라 지난번에 내가 약욕으로 끌어내려고 했던 것도 그들을 자극하여 가속하게 한 것 같아.”입꼬리를 잡아당겨 쓴웃음을 지으며 어르신이 말했다.“나도 잘못했는데 하물며 너까지. 그러니 자신을 탓하지 마. 모든 것이 운명이야!”원철수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둘째 할아버지, 언제부터 운명을 믿으셨습니까.”“어떤 때는 믿지 않을 수 없어!”어르신은 억지로 웃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김서진을 보며 말했다.“당신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제가 나가서 더 큰 확산을 일으키면 죄가 아니겠습니까.”김서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는 조롱하는 말투로 가능한 한 분위기를 가볍게 하여 했다. 어르신의 성격상 이런 묵직하고 숨 막히는 무거움을 분명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아니, 그럴 리가 없어!”손을 흔들자 어르신은 눈살을 찡그렸다.“독충은 전염병처럼 그렇게 쉽게 확산되지 않아. 만약 감염되려면 당신은 벌써 감염되었을 가야.”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어르신은 이 견해를 부정했다. 그러나 원철수는 인정하지 않았다“아니에요, 둘째 할아버
“바이러스일 수도 있고, 우리가 모르는 다른 것일 수도 있어.”원청현이 힘도 없이 아예 눈을 감고 입술만 달싹인 채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그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원철수와 김서진은 모두 몸을 앞으로 내밀고 귀를 쫑긋 세우고 원청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그러나 더 이상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원청현의 입만 살살 움직이는 모습만 보였다. 서로 마주친 두 사람의 눈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설마, 귀에 문제가 생겼단 말인가?“둘째 할아버지, 뭐라고요?”원철수가 다시 물었다.원청현은 여전히 입술을 움직였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어르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한참 지켜보던 김서진이 결론을 내렸다.바로 그때, 원청현의 입이 갑자기 닫히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다시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원철수는 그런 원청현을 한참 쳐다보더니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둘째 할아버지, 둘째 할아버지?”그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원청현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아마…….”원철수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원청현이 갑자기 눈을 다시 떴다. 그가 이렇게 갑자기 눈을 뜨자 원철수는 꽤 놀랐다.원철수는 흠칫 놀란 눈치였지만 곧 그에게 다가갔다.“둘째 할아버지?”원청현은 약간 멍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잠에서 갑자기 깨어난 듯 원철수를 바라보았다.“이…… 망할 자식아!”“네, 저예요!”원철수는 원청현의 몸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바삐 대답했다.“내가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떻게 해야 둘째 할아버지를 도울 수 있죠?”“…….”원청현은 말을 하지 않고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둘째 할아버지?”“아무것도…… 하지 마!!”이 말을 남기고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듯 머리를 옆으로 치우치더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둘째 할아버지!”원철수는 순간 원청현이 잘못된 줄 알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바삐 원청현의 손목을 들어 자세하게 맥을 짚었다.그의 얼굴은 굳었지만, 찌푸린 미간은 전보다 조금 펴졌다.“어때?
원철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모습은 유난히 우울해 보였다.“우리는 어르신의 말을 믿어야 해.”원철수의 우울한 기분을 알아차린 김서진은 그를 위로했다.“그리고 우리 자신도 믿어야지.”“난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그러나, 김서진의 말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지 원철수는 더욱 우울해 졌다.원철수는 몸을 돌려 일어서더니 곧장 창가로 갔다.그가 아래층을 바라보았다. 원래 비교적 고요했던 정원이 지금은 더욱 죽은 듯 고요했다.며칠 전 자신이 여기서 난동을 부리고 베란다를 뜯어버리고 많은 물건을 망가뜨렸다.그것을 생각하며 원청현은 말로는 그를 나무랐지만, 그를 대신해 뒷정리를 해주고 또 그를 치료해 줬다.원청현은 원철수를 위해 정말 많은 것을 했다.입으로는 한 번도 원철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가르쳐야 할 것은 모두 가르쳤다.이전에 원철수는 원청현이 자기에 대한 편견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나중에야 그는 자신이 너무 자신감이 넘쳐 자만했다는 것을 발견했다.분명히 자기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원청현은 진작에 간파하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지 않았다.그런 그의 마음도 몰라줬고 자신은 늘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잘난 체했다.지금 원청현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심지어 자기 때문에 그가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이렇게 생각하니, 원철수는 지금 당장 이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신의 목숨으로 사죄할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그러나 원철수는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이렇게 하면 자신은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양심의 가책을 피할 수 있다.하지만 원청현은? 자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자기가 벌인 그 난장판들은?원철수는 두 손으로 창문을 짚고 깊은 숨을 들이쉬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억지로 다시 삼키려 했다.어려서 부터 지금까지 그는 요즘처럼 자주 우는 일이 없었다.며칠간, 그는 마치 어렸을 때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다 흘린 것 같다. 그는 더 이상 이렇게
김서진의 확신에 찬 대답에 원철수는 조금 놀랐다.“그렇게 확신해?”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사실 자기와 한소은의 관계가 그렇게 좋지는 않더라도 그녀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더구나 자신이 그곳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으니, 자연히 그 안이 어떤 마굴인지 잘 안다.하지만 김서진은 가벼운 말투로 한소은이 괜찮을 거라고 대답했다.김서진이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정말 그녀를 믿어서인지, 아니면 사실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전혀 알지 모르는 것인지 원철수는 조금 헷갈렸다.“아니, 어쩌면 당신이 잘 모를지 몰라. 당신도 이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그 조직을 알게 되었지만, 그 조직이 얼마나 악독한지는 상상도 할 수 없어. 그들은 사람을 잡아먹는 악마야. 거기는 지옥이야. 아니, 지옥보다 더 한 곳이란 말이야!”원철수는 다급하게 말했다. 그는 김서진이 한소은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까 봐 조금 걱정이었다.“내 생각에는 한소은 씨가 빨리 그곳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리고…….”원철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서진이 그의 말을 끊었다.“소은 씨가 괜찮다고 말한 건 그녀가 확실히 괜찮아 서야. 적어도 현재로서는 안전해.”“하지만…….”원철수는 조금 멍해졌다. 계속 말하고 싶었지만, 김서진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나는 당신이 거기서 얼마나 무서운 일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어. 나를 믿어. 소은 씨는 당신 보다 그곳이 얼마나 무서운지 더 잘 알아.”결국, 한소은은 원철수보다 그 실험실에 더 일찍 들어갔었다.국내에서 이 실험을 시작하고 몰래 지하에 숨어 있을 때부터 한소은은 이미 그들과 접촉했었다.그때는 실험실의 실체를 몰랐지만 이렇게 오래 머물기도 했고 그곳은 지금 그녀가 매우 필요했다. 게다가 임상언, 그리고…….김서진은 한소은이 원철수보다 그 조직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그런 한소은을 자신이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걱정하고, 두렵다고 해서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