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처음부터 그들이 계획했던 것처럼 진행되었다면 이렇게 망설이지는 않았을 텐데 하필 네 명의 경호원들이 누군가에게 당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비록 경호원들이 쓰러져서 그들의 일이 쉽게 풀리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었다.게다가, 만약 경호원들이 갑자기 깨어난다면?“더 이상 망설이지 마요!”한소은은 손에 힘을 주면서 임상언을 유한성의 사무실로 밀어 넣었다.임상언은 그녀의 힘에 밀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문은 뜻밖에도 굳게 닫혀 있지 않았다. 심지어 살짝 열려 있었다. 임상언의 몸이 문에 부딪치자 그대로 문이 열려 그는 휘청이며 사무실로 들어갔다.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한성은 사무실에 없었다.이런 상황을 마주하니 임상언은 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왠지 그들이 들어오도록 유인하기 위해 공성계를 벌인 것 같았다.임상언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고개를 살짝 내밀며 사무실 안을 확인했다.“혹시 일부러 우리를 낚으려 하는 건 아닐까요?”“여기까지 왔는데 낚이든 기회를 잡든 결과는 같지 않을까요?”한소은이 조심스러워하는 임상언을 보고 어이없어하며 되물었다.한소은의 말투가 좋지 않았다. 그녀는 임상언을 노려보았다. 이 남자가 왜 이렇게 수다스러워졌나 싶었다.일이 이렇게 된 이상 함정이라도 이미 밟은 격이니 이럴 시간에 물건이나 잘 찾아보는 게 낫다.‘지금 이대로 돌아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한소은이 노려보자, 임상언은 목을 움츠렸다.“알았어요. 바로 찾아볼게요!”임상언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서 책상 옆에 있는 금고를 찾기 시작했다.다만, 이렇게 큰 방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정말 기괴한 일이다. 누군가 어느 구석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았다.한소은은 문밖에 서 있었고 쓰러진 네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때 그들이 단순하게 약으로 인해 쓰러진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약을 쓴 건 아마 손을 쓴 후 그들이 좀 더 기절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네 사람
사무실 안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물건을 숨길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서류조차도 모두 겉면에 놓아두었다.“이상해!”임상언은 난데없이 혼잣말했다.그의 목소리에 한소은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뭐가 이상하다는 거예요?”한소은은 임상언의 시선을 따라 확인해 보니 이상한 부분을 알아차렸다.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이 사무실 전체가 이상한 기운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우리 혹시 낚인 거 아닐까요?”임상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다시 금고를 바라봤다.“내 생각에 금고 안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없을 거 같아요.”한소은은 천천히 손을 거두며 다시 금고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아니, 당신이 생각한 것과 정반대예요. 우리가 원하는 물건은 바로 이 금고 안에 있어요.”한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어리둥절했다.“그렇다면 빨리 열지 않고 뭐 해요?”‘아니면 소은 씨도 이 금고를 열 수 없다는 말인가?’“인제 그만 나오죠!”한소은이 일어서며 담담하게 말했다.지금, 이 순간 임상언은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그는 경계하며 사방을 바라보았지만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비록 상대방이 일부러 그들이 들어오게 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한소은의 말을 듣고 이리저리 둘러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한소은의 모습을 보면 마치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매우 확신하는 것 같다.“숨지 말고 그만 나오죠.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도 뭔가를 찾으려는 것 아닌가요? 게다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죠?”한소은은 이어서 말했다.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없었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임상언은 사방을 계속 살펴보았으나 사람은커녕 소리하나 나지 않았다. 그는 약간 의심스러운 눈길로 한소은을 바라보았다.“진짜 사람 있는 거 맞아요? 아니면 일부러…….”임상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소은이 갑자기 손을 들더니 날렵하게 손에 들었던 물건을 어디론가 날려 버렸다.순간 임상언은 차가운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이
“서한?!”임상언도 자연히 서한이 누군지 안다.그는 오랫동안 김서진의 곁을 지켜온 사람이고 김서진이 어디를 가나 다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다. 임상언과 서한은 여러 번 얼굴을 본 적 있었다.다만 임상언은 설마 서한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한소은이 이렇게 말하고 다시 그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눈썹 사이로 보니 과연 어느 정도 닮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몸매조차도 비슷한 느낌이었다.“다행히 우리 사람이었군!”임상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웃으며 말했다.긴장이 풀리자, 임상언은 방금처럼 경계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당신, 왜 여기 있어? 밖에 있는 사람들 당신이 때려눕힌 거야? 정말 잘했어! 그런데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혹시 김서진이 오라고 한 건가?”임상언은 그 사람이 서한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이것저것 질문했다. 다만 서한과 한소은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한소은의 물음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았다.다만 그곳에 서 있는 서한의 눈빛은 우울해 보였다.“왜 아직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거죠?”한소은은 다시 물었다.“얼굴을 보이기가 겁나는 건가요? 아니면 면목이 없다 생각 든 거예요?”한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어리둥절했다. 자기가 기억한 게 맞는다면 서한은 분명 김서진의 개인 비서다. 그에게 있어서 한소은은 사모님인데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이렇게 차가울 리가 없다.한소은의 말투도 친절하지 않았다. 이것은 한소은이 자기의 사람을 대하는 말투가 아니다.“왜 그래요?”임상언은 머뭇거리다 고개를 돌려 한소은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는 누군가에게 통제되었어요.”한소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녀는 여전히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서한을 바라보았다.“혹은 처음부터 통제된 게 아니었을 수도?”한소은은 어리둥절해하는 임상언에게 설명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일부러 서한이 들으라고 하는 말 같기도 했다.“무슨 말이에요?”임상언은 들으면 들을 수록 혼란스러워졌다
“역시 당신은 통제되지 않았군요.”한소은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서한을 쳐다보고 있다. 그녀는 서한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서한은 눈만 드러냈지만, 그 눈은 피곤해 보였고 두 사람에게 경계심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나 악의는 없었다. 게다가 눈은 반짝 빛났다. 누군가에 의해 통제된 사람의 눈빛은 흐려지지만, 그의 두 눈은 흐려지지 않았다.그래서 한소은은 서한이 절대 통제된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하지만 마인드 컨트롤을 당하지 않았다면 왜 이연에게 그런 말을 하고, 왜 서진 씨와 사이가 틀어졌을까?’가장 중요한 것은 서한이 언제부터 여기에 잠복해 있었는지였다. 처음부터 이곳에 신분을 숨기며 잠복했는지 아니면 최근에 왔는지, 김서진의 계획인지 아니면 그의 자작극인지 등등 물음은 한소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음…….”서한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네.”“잠깐만, 두 사람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왜 내가 알아듣지 못하겠지?”임상언은 미간을 찌푸리며 두 사람의 말을 끊었다. 지금 두 사람이 자기가 알아듣지 못하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자기는 마치 이 상황과 조금도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전에 임상언은 자기에게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었다. 말할 수 없는 사정이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자기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그제야 서한은 고개를 돌려 임상언을 힐끗 쳐다보았다.“임상언 씨, 당신이 여기서 죽더라도 그들은 당신의 아들을 놓아주지 않을 겁니다.”이 말은 듣기에 매우 잔인하지만, 임상언은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교활하고 잔인한 유한성은 처음부터 임남으로 자기를 조종하려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런 곳에 굴복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임상언은 아들을 찾는 것을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그는 줄곧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그들의 말을 잘 들어왔다.하지만 그들이 주동적으로 임남을 풀어
한소은이 이렇게 말 하자 임상언도 크게 놀라 고개를 돌려 서한을 바라보았다.그도 서한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서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한소은의 물음을 묵인하는 것 같았다.“당신 정말 미쳤군요.”서한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한소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차분했고, 감정의 기복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마치 완전히 객관적인 묘사인 것 같았다.실제로 임상언도 한소은의 말에 공감하며 한마디 덧붙였다.“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넌 정말 미친 거야! 여기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그들이 얼마나 많은 방어 수단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여기에 바이러스가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이 곳에서 모든 것을 없애고 같이 죽겠다고?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게다가, 여긴 백신 기지 센터라는 이름을 걸고 있어. 아무리 너라 해도 여기를 파괴하고도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거 같아?”‘아차, 서한은 이 곳과 함께 사라지겠다는 뜻이지!’임상언은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헷갈렸다.“설령 정말 이 곳을 파괴하고 너도 함께 이 곳에 묻히게 된다면 네 악명은 길이 남게 될 거야!”“나도 알아요.”서한의 표정은 평온했다. 심지어 조금은 덤덤해서 마치 남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그런 거 상관 없어요.”임상언은 어이없어할 말을 잃었다. 그저 속으로 아우성을 할 수 밖에 없었다.‘넌 신경 쓰지 않아도 우린 신경 쓴단 말이야!’‘이제 알겠어. 김씨 가문의 사람들, 그 가문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은 모두 미치광이야!’임상언은 줄곧 서한이 일 처리에 능숙한 비서라고만 생각했다. 이렇게 고집이 세고 다른 사람의 말을 조금도 듣지 않는 놈이라는 건 처음 알았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떻게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변할 수가 있어?’임상언이 다시 입을 열어 서한을 설득하기 전에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서 여길 떠나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여긴 금방 발각될 거예요
한소은의 손에 힘이 들어가 아픔이 전해왔는지 서한의 얼굴색이 변했다.임상언을 붙잡고 있던 다른 한 손도 힘이 조금 풀렸다.이 기회를 놓지 않고 임상언은 바로 빠져나와 한쪽으로 섰다.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몇 걸음 뒤로 더 물러섰다.임상언이 빠져나가자 서한은 다시 그를 쫓아가지 않았다.다만 한소은에게 잡힌 자신의 손목을 빼려 노력했다.그런데 이상했다. 한소은의 힘은 분명 전혀 자신보다 세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는 한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았을 뿐인데, 뜻밖에도 그 손을 뿌리 칠 수 없었다.물론, 한소은에게 강하게 밀어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서한은 이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내가 이연 씨한테 많이 미안해요. 그건 다음 생에 갚을 수밖에 없겠네요.”서한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고 눈꺼풀을 드리우며 세상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사실 서한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 선택을 했을 때 가장 미안한 사람은 바로 오이연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본의 아니게 여기에 빠져들었고 여기에 접하게 되었고, 또 이곳의 죄악을 알게 되었으니 그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더군다나 그의 몸에는 최악의 바이러스가 남아 있다.이제 서한의 목숨은 끝을 다해 간다. 뭐라도 해서 이 곳을 완전히 제거하고 싶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한소은은 노여워하며 욕했다.그녀를 알고 지내면서 임상언은 처음으로 한소은이 이렇게 노여워하는 모습을 보았다.애초에 자신이 그녀를 속을 때도 그녀는 아주 차분하게 자신과 연을 끊었다.지금까지 이렇게 그녀를 화내게 한 일이 없었다.한소은이 이어서 말했다.“다음 생?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나 지껄일 거면 이연이한테 가서 다 말해요! 가서 다음 생에 다 갚을 테니 이번 생은 당신을 잊어 달라 이연이한테 말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번 생에 진 빚은 이번 생에 갚던가!”“아직 멀쩡하잖아요. 움직일 수 있고 말 할 수 있는데 왜 이런 더러운 곳과 함께 생을 마감하려 해요?”“
한소은은 서한의 대답에 어리둥절했다.“지금은 이런 말을 할 시간이 없어요. 정말이에요.”서한은 한숨을 푹 내쉬며 애원하는 표정을 지었다.“제발, 내 말 믿고 어서 이곳을 떠나요.”“혹시 여기에 폭탄을 설치하셨나요?”서한이 계속 그들을 이곳에서 내쫓는 말을 들으며 한소은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임상언은 한소은의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폭탄?!”아주 잠깐 정신이 멍해져있다 임상언은 즉시 사방을 둘러보며 폭탄을 찾기 시작했다.‘서한 이 자식이 정말 미친 건가? 폭탄을 설치했다고?’“아니에요.”한숨을 내쉬며 서한이 말했다.“그런데, 여기에 더 이상 머물면 안 돼요. 제가…….”서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소리의 근원은 책장 방향이었고, 한소은은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한 번 쳐다보았다.서한은 더욱 조급해졌다.“사모님, 이번엔 내 말 들어요!”“내 말 좀 들어봐요. 일단 유한성을 만나게 해줘요!”한소은 목소리를 낮게 낮추며 말했다.서한은 잠시 망설이다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조금 내키지 않았지만, 여전히 한소은의 말을 들었다.한소은은 그제야 천천히 서한의 손을 풀어주었다.서한은 자기 손목을 조금씩 움직였다. 손목이 한동안 겪어 있어 아팠지만, 겉으로 보기엔 상처 하나 없었고 심지어는 겪어 있던 흔적도 없었다.전부터 한소은이 무술 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겨루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자신이 직접 체험해 보니 자신도 모르게 크게 감탄했다.서한은 손목을 한 번 더 움직이더니 책장 앞으로 다가갔다.책꽂이 앞에 서서 서한은 손을 올리고 몸을 웅크리며 밑바닥에 있는 꽃병을 돌렸으나, 책꽂이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이에 한소은과 임상언은 어리둥절했다.서한은 그들이 어리둥절해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저 고개를 돌려 그들을 한번 쓱 보기만 할 뿐,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그러고는 다른 책장 앞으로 다가가 반대편에 서서 팔을 약간 움직이고 허리를 굽히며 그 안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고
밀실 안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침대와 소파, 탁자, 커피머신 등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그 외에 가장 이상한 것은 왼쪽에 늘어선 탁자 위에 길게 늘어진 투명한 캔들이었다.캔 안의 색깔은 좀 탁했고, 안에 무언가 담겨 있었다.그것들은 뭔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모양과 색깔은 모두 그들이 소름 돋게 했다.그리고 우측 바닥에는, 그들에게 온갖 수작을 부리던 유한성이 지금 보따리처럼 꽁꽁 묶여서 던져져 있었다.유한성은 잠든 것 같기도 했고 기절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방금 분명히 여기서 큰 소리가 났다.“설마 죽은 건가요?”한소은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서한이 고개를 저었다.임상언은 가까이서 살펴보려고 앞으로 한발 다가가 고개를 숙여 유한성을 유심히 지켜보았다.“아직은 아닐 거예요.”이어서 고개를 들어 서한을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어떻게 잡은 거야? 밖에 있는 그 경호원들도 네가 때려눕힌 거야?”서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밖의 경호원들은 확실히 좀 까다롭긴 했지만, 아직 그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임상언은 서한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다만 바닥에 던져진 유한성을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솔직히 말하면, 임상언은 유한성을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는다. 그는 자기의 아들을 납치해 갔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그를 묶어두는 것도 방법은 아니다.만약 이 방법이 쓸모가 있었다면, 임상언은 진작에 이렇게 했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이 변태적인 남자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는 죽을지언정 남이의 행방을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이제 어떡하죠?”임상언은 고개를 돌려 한소은을 바라보고 물었다.일이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다른 방법도 없다.서한이 유한성에게 손을 댄 이상, 지금 그를 죽이든 말든 유한성과 협력하는 척할 수 없다. 계속 그의 말을 들으며 임남을 구할 기회를 찾는 것도 불가능해진다.“얘기를 좀 할 수밖에 없겠죠.”한소은은 의자 하나를 잡아당겨 유한성 앞에 앉았다.그녀는 임산부이기 때문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