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기가 경계한다는 걸 눈치챈 김서진이 말했다.“당신도 아는 사람이에요.”이렇게 말하고 뭔가 떠오른 김서진이 진정기에게 말했다.“먼저 끊을게요. 일이 있으면 다시 전화할게요.”“그럼 의사는…….”“일단 필요 없을 거 같아요.”김서진이 잠시 생각해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전화를 끊고 원 철수에게 다가가 물었다.“왜 필요 없다는 거지?”“외부의 의사들은 소용이 없어. 이건 평범한 병이 아니라는 알잖아!”원철수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게다가 내가 의사란 걸 잊지 마.”그러다 원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의 말에 김서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난 원래 의사야. 명의였다는 거 너도 알잖아.”원철수는 재차 자기가 의사였고 그것도 이름이 자자한 의사였다는 걸 강조했다.다만, 그가 이 말을 할 때의 말투는 평소와 달랐다.이전에는 이렇게 말할 때마다 그는 교만하고 자신만만하고 심지어는 의기양양하기까지 했다.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올곧았고 차분했다.그는 또박또박하고 확고하게 자신이 의사라고 말했다.“요즘 너무 퇴폐적이었어. 그 마굴에서 나온 이후 나는 겁쟁이처럼 도피하고만 있었어. 둘째 할아버지가 나에게 잘해주셨고 모두가 나에게 베푸는 관심을 즐기고 있었던 거야. 둘째 할아버지와 모든 사람들이 쓰러진 이후 나는 혼란스러웠어. 내가 의사라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을 정도로.”“나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스스로를 부정했어. 나는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병을 치료 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러다 예전에 둘째 할아버지가 말했던 것을 잊어버렸지. 비록 의사라 할지라도 치료하면서 배운다는 그 한마디를 말이야.”원철수는 먼 곳을 바라보며 마치 예전에 원청현이 그에게 한 말이 생각이 난 듯 감개무량하게 말했다.그런 것들을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원청현이 그에게 얼버무리는 말을 했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고독에 대해서 잘 모르
시계의 바늘이 조금씩 움직이고, 시간은 1분 1초가 지나간다.초침이 지나가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방안은 조용했다.한소은은 침대 옆에 앉아 한 손으로는 자기 아랫배를 쓰다듬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핸드폰의 화면을 가볍게 쓰다듬고 있었다.긴장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자신이 이렇게 커서 지금처럼 긴장하는 것은 처음이었다.이전에는 어떤 어려움에 부딪혀도 그녀는 모두 극복할 수 있었고, 모두 직면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번에 그녀가 직면한 것은 단순한 성공과 실패가 아니며 그녀가 직면한 것은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것들이다.방 안에는 한소은만 있었다. 시간이 되면 임상언과 사무실 아래층서 만나기로 했다.비록 모든 것이 그들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지만 어쨌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정오, 바로 “보스”가 가장 허약하고 방비가 가장 느슨한 때이다. “보스” 곁에 항상 붙어있는 경호원은 임상언이 방법을 대서 끌어낼 것이다.남은 몇 명의 똘마니들은 한소은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지금 고민해야 하는 건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한소은 역시 확신이 서지 않아 내기할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여기서 그녀는 핸드폰 소리를 끄고 진동 모드로 전환했다. 손바닥에서 윙윙거리며 핸드폰이 손이 저릴 정도로 진동했다.김서진에게 무슨 안 좋은 소식이 있을까 싶어 순간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손가락이 움츠러들었다.실험실의 일로 바빠서 어쩔 수가 없었지만, 그쪽의 상황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한소은은 핸드폰을 쓱 보았다. 뜻밖에도 오이연의 전화였다.김서진이 아니어서 한숨 돌렸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오이연 쪽도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닐 거 같아 마음이 다시 가라앉았다.“여보세요?”전화를 받은 한소은은 약간 피곤함을 느꼈다.“소은 언니, 그게…….”오이연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한소은의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다시 멈추고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한소은은 정말 시간이 없다. 매일 이곳에 갇혀 있으니, 마치 우리에 갇혀 사는 것 같았다.그리고 어느 날 이곳을 떠난다 해도 바깥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이 일을 참가한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물러날 수 있을까?그래서, 향수 든 사업이든 모두 일단 제쳐 두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한소은의 말을 잘 듣던 오이연은 이 일에서 조금 주저했다.“그런데…… 상대는 Y 국 왕실 쪽 사람들이고 여기에 온다고 했어.”“곧 제경에 도착할 거야. 나는 언니가 그들과 다 말한 줄 알았지.”“내가 언제? 난…….”막 오이연의 말을 반박하려던 한소은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나서 말을 멈추었다.그러고는 감았던 눈을 뜨고 오이연에게 물었다.“방금 그들이 어디 사람이라고?”“Y 국.”“Y 국 어디?”한소은은 급하게 이어서 물었다.오이연은 그녀가 이런 걸 왜 묻는지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 하다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왕…… 왕실! 내가 전에 말했잖아.”“비록 우리가 사업을 하는 범위가 넓고, 고위층과 상류층의 주문을 받아본 적 없는 건 아니지만 왕실 사람들은 아무래도 다르지. 만약 우리가 그들의 미움을 산다면 우리의 작업실 뿐만 아니라 김서진 씨의 사업에도 영향을 끼칠까 봐 두려워.”상인은 절대 정치인에게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상대가 왕실 사람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정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일만 보 물러서서 말하자면, 설사 김씨 그룹의 사업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이런 일로 상대방에게 미움을 사는 건 멍청한 짓이다.그들은 단지 자기만의 향수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것일 뿐, 어떤 지나친 요구도 아니었다.비록 이 대목에서는 확실히 그들의 주문을 완성하기 힘들 긴 하지만 한소은의 능력으로 너무 무리인 일도 아니다.“알아, 나도 알아.”한소은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언제 만나자고 했지?”“그건…… 나도 모르겠어. 최근 언니에게 보낸 메일은 답장이 없고, 전화도 모두 끊겼다고 하더라고. 그쪽에서 좀
“다른 일 더 있어?”한소은은 오이연이 전화를 끊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직 할 말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오이연은 언제나 과감했다. 자기가 할 말이 끝나면 바로 전화를 끊었었다. 게다가 최근 들어 그녀의 기분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소은 언니, 요즘 많이 바빠? 김서진 씨도 그런 것 같고.”한소은은 잠시 생각하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서한 씨에 관해서 묻고 싶은 거야?”“서한 씨, 연락이 왔었어?”오이연은 곧 다급하게 물었다.한 마디로, 오이연이 마음속으로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한소은에게 모두 들통났다. 오이연이 전화를 끊지 않은 것도 서한에 대한 소식이 있었는지 물어보려고 했었다.“그날 뒤로 서한 씨와 연락하지 않았어?”한소은은 조금 의아해했다.비록 서한이 다른 사람에게 통제된 것 같지만, 그들이 서한을 찾아가기 전까지 오이연과 잘 지내고 있었다. 그가 아무도 모르게 국내로 돌아왔을 때 오이연과 계속 함께 했었다.그 후의 일들은 아마 서한을 통제하는 사람이 김서진을 겨냥하여 서한과 김서진의 관계를 이간질하고 분열시켰을 것으로 보인다.그 일이 들통나고 서한은 오이연과 이혼하겠다고 했다. 그다음 일은 한소은도 잘 모른다.“아니.”오이연의 목소리는 어두워졌고, 기분도 가라앉은 것 같았다.“나중에 서한 씨는 정말로 집을 나갔어. 나는 서한 씨를 말리지 못했고.”“아직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영원히 잃을 것 같아. 서한 씨는 이번처럼 이렇게 단호한 적이 없었어. 전에는 나에게 큰 소리도 한번 낸 적 없었는데, 지금은…… 정말 나를 버리려는 거 같아.”오이연은 울음을 참으며 겨우 목구멍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마 울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이다.그러나 겨우 울음소리를 참는 목소리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한소은은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아니, 너도 알다시피 그는 사실…….”“나도 알아, 난 서한 씨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래서, 내가 그를 잃을 것 같다는
“???”오이연은 한소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왜?!”“잠깐만, 바깥 상황이란 게 무슨 뜻이야? 언니 지금 어디에 있어? 갇혀 있는 거야?”오이연은 바로 어딘가 이상한 점을 찾아냈고 집요하게 꼬치꼬치 캐 물었다.한소은은 한숨을 쉬었다.“그렇게 많이 묻지 마. 한 두 마디도 다 설명할 수 없어. 아무튼, 내가 한 말 잘 들어.”한소은의 말에 오이연은 몇 초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한소은이 다시 설명하려고 할 때 그녀는 입을 열었다.“응, 알았어. 소은 언니가 하는 말은 꼭 들어야지.”전에 서한의 일로 한소은과 사이가 틀어진 적이 있는데, 하마터면 결별할 뻔했었다.나중에 생각해 보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고 나서 오이연은 정말 후회스러웠다.그 일이 있고 난 후 오이연은 한소은의 말을 굳게 믿었다.어떤 일들은 말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일들을 자기에게 알려주지 않는 건 자기를 위해서라는 걸 오이연은 잘 알고 있다.“이연아, 서한 씨의 일이 너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는 걸 알아. 하지만 곧 다 괜찮아질 거라는 거 믿을 수밖에 없어. 적어도 서한 씨의 본의는 이런 것이 아니니까 그냥 조금 아픈거라 생각해. 언젠가는 꼭 병이 나을 거니까.”한소은은 자신의 이런 말들이 사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런 일을 당했다면 아무도 당사자를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당사자와 슬픔을 나눌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소은은 오이연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오이연은 작게 대답했다.“나도 알아. 최근에 서한 씨의 행방을 알 수 없어서 걱정이야. 언니, 난 괜찮아. 정말이야!”“나도 그게 서한 씨의 본의가 아니었다는 거 알아. 서한 씨는 나에게 항상 친절하게 했어. 나는 서한 씨와 함께 난관을 극복하고 싶어.”오이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감정을 가라앉혔다.“됐어, 어쨌든 일은 지체할 수 없잖아. 내가 그 쪽한테 직접 언니에게 연락하라고 말할게. 언니가 요즘 그들을 만날 수 없다면 시간을 뒤로 미뤄도 될 거야. 내 생각엔
“작동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을 잠시 방해했을 뿐이에요.”한소은은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하지만 오래 가지 못해요. 분명 그쪽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되겠죠.”만약 이 방법이 오랫동안 발각되지 않을 수 있다면, 한소은은 진작에 이 방법을 썼을 것이다. 지금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상황이 특수해서 어쩔 수 없이 이 수법을 동원한 것이다.임상언은 마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듯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전에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을 모르는 거 같네요. 도대체 당신이 못하는 게 뭐에요?”한소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임상언에게 한 번 곁눈질하고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이런 것 밖에 할 줄 몰라요.”한소은은 겸손하게 말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아는 게 CCTV가 잠시 혼란이 오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잘하는 건 조향에 관한 것이고 무술에 관한 것들이다.그러나 한소은의 겸손한 발언은 임상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차게 했다.“내가 이런 것들을 할 줄 알았다면 내 사업은 지금 한 층 더 높게 올라갈 수 있었을 거예요. 만약 정말 그렇다면 우리 남이도 어쩌면…….”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임성언은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한소은은 그가 아들이 생각나 말을 잇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래는 임남을 구할 기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그에게 알려주려 했다.그러나 생각해 보니 이 일은 아직 확실한 게 없었다. 한소은은 아직 상대방을 만나지도 못했고 상대방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다.Y 국의 사람을 통해 임남을 구할 가능성이 클지 어떨지도 몰랐다.임상언에게 경솔하게 말해서 갑자기 희망이 생겼다가 임남을 성공적으로 구하지 못한다면 그는 아마 더욱 실망할 것이다.차라리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으면 실망도 없을 것이다.만약 모든 일이 순조로워 임남을 구해낸다면 그때 그에게 서프라이즈를 줘도 늦지 않는다.한소은은 이렇게 생각하며 임상언에게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소은은 먼저 눈으로 재빨리 네 명의 경호원을 훑어보았다. 누가 가장 약해 보이는지 어느 사람부터 손을 써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그런데 그녀가 공격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네 사람의 몸이 갑자기 비틀거리는 것을 보았다.“조심하세요!”임상언은 무의식적으로 한소은의 앞을 막아섰다. 자신도 긴장했지만, 한소은을 자기의 뒤로 당기며 그녀를 보호하려 했다.한소은은 그런 임상언을 힐끗 쳐다보고 쓰러진 경호원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네 사람은 이미 각기 다른 방향으로 쓰러져 있었다.“꽝!”“쿵 쿵쿵…….”네 명의 경호원은 마치 감각을 잃어버린 듯 모두 쓰러졌다.손을 쓰기도 전에 모두 쓰러지자, 한소은도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쓰러진 사람들이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을 보고도 1분가량 그 자리에 멈춰 서며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설마 죽은 건 아니겠죠?”임상언이 눈을 크게 뜨고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들을 까봐 그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었다.한소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확신이 서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느낌으로는 경호원들이 공격할 기세도 아니었고 죽은 척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그리고 그들은 죽은 척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이렇게 생각하자 한소은은 그들에게 다가가 상황을 확인하려 했다.“소은 씨…….”엉겁결에 임상언은 한소은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녀의 뒤돌아보는 눈빛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손을 떼었다.“그럼 조심해요.”한소은이 그들에게로 다가갔을 때 그 사람들은 여전히 땅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 모습을 보고 한소은은 몸을 웅크렸다.경호원들이 한소은을 갑자기 습격할까 봐 임상언도 급히 뒤따라왔다. 만에 하나 한소은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김서진에게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기절했어요.”한소은이 고개를 돌려 임상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쓰러진 경호원들은 죽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미 기절한 상태라는 것이다.한소은이 그들의 맥을 짚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동안은 깨지 못할 정
만약 처음부터 그들이 계획했던 것처럼 진행되었다면 이렇게 망설이지는 않았을 텐데 하필 네 명의 경호원들이 누군가에게 당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비록 경호원들이 쓰러져서 그들의 일이 쉽게 풀리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었다.게다가, 만약 경호원들이 갑자기 깨어난다면?“더 이상 망설이지 마요!”한소은은 손에 힘을 주면서 임상언을 유한성의 사무실로 밀어 넣었다.임상언은 그녀의 힘에 밀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문은 뜻밖에도 굳게 닫혀 있지 않았다. 심지어 살짝 열려 있었다. 임상언의 몸이 문에 부딪치자 그대로 문이 열려 그는 휘청이며 사무실로 들어갔다.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한성은 사무실에 없었다.이런 상황을 마주하니 임상언은 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왠지 그들이 들어오도록 유인하기 위해 공성계를 벌인 것 같았다.임상언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고개를 살짝 내밀며 사무실 안을 확인했다.“혹시 일부러 우리를 낚으려 하는 건 아닐까요?”“여기까지 왔는데 낚이든 기회를 잡든 결과는 같지 않을까요?”한소은이 조심스러워하는 임상언을 보고 어이없어하며 되물었다.한소은의 말투가 좋지 않았다. 그녀는 임상언을 노려보았다. 이 남자가 왜 이렇게 수다스러워졌나 싶었다.일이 이렇게 된 이상 함정이라도 이미 밟은 격이니 이럴 시간에 물건이나 잘 찾아보는 게 낫다.‘지금 이대로 돌아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한소은이 노려보자, 임상언은 목을 움츠렸다.“알았어요. 바로 찾아볼게요!”임상언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서 책상 옆에 있는 금고를 찾기 시작했다.다만, 이렇게 큰 방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정말 기괴한 일이다. 누군가 어느 구석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았다.한소은은 문밖에 서 있었고 쓰러진 네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때 그들이 단순하게 약으로 인해 쓰러진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약을 쓴 건 아마 손을 쓴 후 그들이 좀 더 기절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네 사람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