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현은 두 눈을 감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김서진이 한 말이 일리가 있다고 표시했다.원청현이 그런 반응을 보이니 원철수도 두말하지 않았다.사실, 원철수는 그저 마음이 급한 것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빨리 알아내고 싶었다.이 일은 결국 자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니, 마음속 깊이 죄책감이 있었다.“네 탓이 아니야.”원청현은 원철수가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챘다. 그러고는 힘겹게 손을 들어 어디를 가리키며 원철수에게 말했다.“너…… 저기 가서 내 은침 가져와.”원청현이 시키자 원철수는 즉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바로 가져올게요!”원철수는 지금 원청현의 말을 모두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그가 가서 죽으라고 말하면 가서 죽는시늉이라도 할 기세다. 원청현이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해도 다 따를 생각이었다.원청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원철수는 기분이 좋은 아이처럼 총총걸음으로 달려 나갔다.원철수가 방문을 나서자 원청현은 그제야 얼굴을 김서진에게 돌렸다.김서진은 원청현이 할 말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나…….”원청현은 힘겹게 한 글자 내뱉고 자기 팔을 들어 올렸다.김서진은 단번에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었다.“조사해 봤는데 아무런 흔적도 없었어요. 전에 내게 보여줬던 자국도 사라졌고요. 양쪽 팔 모두 없었어요. 원철수의 몸에 흔적이나 자국이 있는지도 확인해 보았는데, 없어요. 그게 도대체 뭔가요?”김서진은 원청 현이 지금 말하기 힘들다는 걸 알고 단숨에 자기가 지금까지 관찰해서 발견한 것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그제야 원청현의 얼굴에 만족한 표정이 나타나며 고개를 끄덕였다.김서진이 자기의 심정을 알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 점이 원청현의 마음에 쏙 들었다.“물…….”원청현은 살짝 눈을 돌려 옆의 물잔을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김서진은 두말하지 않고 물을 한 잔 따라 원청현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천천히 마시게 했다.물을 조금 마시고 기력이 조금 회복되었는지 원청
“우당탕!”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원철수의 모습이 보였다.원청현은 원철수가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몰랐다. 평소에 무슨 일을 시켜도 꾸물거리더니 오늘은 난데없이 그가 말한 대로 은침만 가지고 돌아왔다.문 앞에 멍하니 있는 원철수의 모습을 보니 아마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다 들은 것 같다.“둘째 할아버지, 내가 모체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원철수의 목소리는 이상했다. 그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비록 마음속으로 진작부터 자기가 1호라고 의심했지만 자기 때문에 집안사람들이 이렇게 되었다는 말을 직접 들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다른 건 둘째라 쳐도 “모체” 라는 단어 만으로도 꾀나 괴상했다.“네가 모체가 아니라 네 몸속의 그것이 모체라는 말이야.”원청현은 기침을 한번 하고 원철수에게 설명해 주었다.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원철수는 더욱 이상한 것 같았다.“내 몸속의 그것이요?”원철수는 고개를 숙여 자기의 몸을 보았다. 옷을 입고 있어 어디가 이상한지 알 수 없자 그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단추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원철수의 앙상한 몸이 드러났다. 전에는 그나마 잔근육이 자리를 잡고 있어 보기 좋았지만, 여러 일을 겪고 나니 몸이 앙상하게 마를 수밖에 없었다.“크흠…….”원철수가 옷을 다 벗고 바지마저 벗으려 하자 원청현이 한숨을 쉬며 그를 말렸다.“사람 눈에 보이는 게 아니야. 빨리 옷이나 다시 입어!”“그러니까 그 물건이 아직 내 몸에 있다는 건가요? 하지만 내 몸속의 독소는 모두 배출되었다고 말하셨잖아요. 이제 괜찮다고 하셨는데 왜 내 몸에 아직도 그런 게 있는 거죠?”원철수는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져 나오지 못한 것 같았다.자기는 이미 회복되어 괜찮아졌고, 그 바이러스도 이미 극복했다고 여겼다.그의 둘째 할아버지이자 그의 스승님인 원청현이 못 하는게 없고 어떤 난치병도 다 고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원청현은 물론이고 집에서 일하는 가사 도우미 아줌마들도 한 둘씩 쓰러
그 신비한 조직은 해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그들은 줄곧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나중에 약초와 독초에 대해 연구했다 하더라도 그건 지금 이 나라에 들어와서 부터 시작한 것이다.‘설마 그 조직에 고독을 사용할 줄 아는 민족이 있는 걸까?’“그건 나도 잘 몰라.”원청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하지만 네 말대로 해결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야.”“그건 나도 알아요.”배 속에 있던 걸 거의 다 게워 낸 원철수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다시 들어왔다.“아래층에 있는 고서에서 봤어요. 하지만 고독을 풀려면 우선 어떤 벌레로 만들어진 고독인지 알아내야 해요.”벌레라는 단어에 원철수는 또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방에 남겨진 원청현과 김서진은 그런 원철수의 보습을 보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원청현은 입꼬리를 살짝 삐죽이다 고개를 돌려 김서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철수의 말이 맞아.”‘이 녀석 보아하니 책을 헛되이 본 것은 아니구나. 그래도 무언가를 배우긴 배웠어. 하긴, 내가 확실히 철수를 낮잡아 보긴 했지.’“그럼, 무슨 고독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김서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내가 뭘 도와줄 수 있을까요?”김서진은 이런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만약 지금 한소은이 옆에 있었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았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김서진이 잘 아는 분야가 아니었다.사업계에서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었던 김서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거의 없다. 이전에는 김서진도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느꼈지만, 지금 여기에 서니 자신도 이렇게 무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되었다.아들을 어떻게 달래고 위로해야 할지 김서진은 조금의 경험도 없었고, 이런 난치병 앞에서도 속수무책이다. 김서진은 심지어 화장실에서 토하는 원철수보다도 아는 게 없었다.그 어떤 사람도 만능은 아니다.“고독을 빼낼 보조약이 필요하지만 아직 그럴 때가 아니야. 그리고 고독의 피해를 본 사람은
원철수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아는 원청현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아마 그 정도는 아닐 거야.”“아마?”원철수는 어리둥절했다. 이 확실하지 않은 단어는 그를 약간 뜨끔하게 만들었다.“고독에 대해서는 별로 연구한 바가 없어. 지금 내가 아는 것도 모두 고서에 나온 것들이야. 나도 실제로 접해본 적이 없어. 그래서 모든 건 다 추측일 뿐이지.”이런 일에 관련된 것은 조금 신중히 하는 것이 좋다. 원청현도 뭐가 어떻다고 아주 확신할 수 없었다.원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원청현이 왜 이렇게 신중하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러면…… 정확히 어떤 경로로 전파됐을까요?”원철수는 잠시 고민하다 다시 물었다.이 말을 하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김서진을 쳐다보았다.어쨌거나 김서진도 자기와 접촉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 보고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 전염될 수 있다면 감염될 수 있는 사람은 너무 많았다.“내 생각에 혈액으로 전파되는 거 같아.”원청현은 한참이나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결론을 얻었다.“혈액??”원철수는 흠칫 놀랐다. 침대에 기대어 앉은 원청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한번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네가 돌아온 후 접촉한 사람은 절대 적지 않아. 그러나 현재 고독에 감염된 사람은 나와 집안의 가사 도우미뿐이야. 최근 넌 여기서 지냈고 만약 접촉만으로 전파되는 것이라면 감염된 사람은 우리뿐만이 아닐 거야. 그러나 지금은 우리뿐이잖아요.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공통점은 오직 하나란 말이지.”원청현은 의미심장하게 원철수를 바라보며 말했다.“공통점은 우리 모두 너의 피를 접촉했다는 거야.”“우리 모두??”원철수는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요!”“둘째 할아버지께서 내 피를 접촉한 것은 맞지만, 집안의 가사 도우미들이 내 피를 접촉했을 리가 없잖아요.”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확률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이건 말이 안 돼!’“접촉했어!”“직접적 으로든 간접적 으로든 접촉 했었어!”
원철수의 말에 원청현은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한참이나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고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준이는 네 피를 접촉한 적이 없을 거야.”김준 그 녀석은 비록 장난이 심했지만, 원청현은 줄곧 그를 잘 보살펴 주었다. 그 아이가 다칠까 봐 위험한 일은 하지 못하게 했고, 혹시 위험할 수 있는 물건은 모두 치웠다.지금 기억을 되짚어 보면 김준은 원철수의 혈액을 접해보지 않았을 것이고, 접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아들이 접촉하지 않았다는 말에 김서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생각되어 원청현에게 물었다.“그런데…… 준이가 열이 나고 있어요.”“열이 난다고?!”원청현은 깜짝 놀라 물었다.“다른 증상은 없었어?”그는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고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김서진에게 물었다.“아니요. 열이 나는 것 말고는 다른 증상은 없었어요. 입맛도 좋고요. 죽과 옥수수 주스를 먹고 잠들었어요. 방금 다시 열을 재보니 열도 거의 내렸고요.”열도 내렸고 다른 불편함이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원청현은 숨을 돌렸다.“그럼,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그러니까, 준이는 전염되지 않았을 거예요.”사실 김서진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그는 마음속으로 당연히 이 결과가 되기를 바랐지만 아주 확신하지는 않았다.“그럼. 당연히 감염될 리가 없어!”원청현도 사실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런 결과를 생각하고 싶지 않아 연신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신 같은 걸 절대 믿지 않은 원청현은 지금, 이 순간 그러지 않기를 기도하기까지 했다.“부모님께 먼저 전화할게요.”핸드폰을 쥐고 원철수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하며 방을 나갔다.원철수가 방에서 나가자, 김서진은 원청현을 쳐다보며 물었다.“방금 약에 몸을 담그신 건 고독을 빼내기 위해서였나요?”원청현은 눈을 뜨고, 그를 쓱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 작은 고독을 너무 가볍게 보았어. 그 고독은 인내력이 강하고 스스로를 숨길 줄 알아. 세 시간 동안 약에 몸을 담갔는데도…
아무리 자신을 설득한다 해도 김서진은 한소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은 마치 큰 돌에 억눌려 있는 것 같이 무거웠다.김서진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만약 한소은이 정말로 감염되었다면, 만약 그녀가 정말로 이런 고독에 감염되었다면 임신 중인 그녀가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전화를 여러 번 해도 받지 않았다. 예전 같았다면 여러 번 해도 받지 않으면 한소은이 바쁘다는 걸 알고 조금 지나고 다시 전화를 했을 텐데 지금 김서진은 조금도 기다릴 수 없었다.그 순간.마침내 전화를 받았다. 익숙한 목소리가 전해져 오자 김서진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던 돌이 와르르 무너졌다.“여보세요?”한소은의 나른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조금 의아한 목소리였다.“무슨 일이에요?”한소은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이 끝도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김서진이 걸려 온 전화인 것을 보고 이상하다 생각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 재촉하듯 연속으로 전화를 걸지 않을 사람이다.“당신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요?”김서진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지금 걱정되어서 죽을 것 같았지만 너무 긴장한 티를 낼 수도 없었다. 괜히 한소은도 따라 걱정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없는데요?”한소은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왜요?”“…….”한소은의 대답을 듣고 김서진은 잠시 침묵했다. 고민 끝에 지금 이 곳의 상황을 간단하게 한소은에게 말해줘야 할 것 같아 입을 열었다.원청현의 몸에서 고독의 중독 증상이 나타났다는 건 생략하고 그의 추측만 간단히 알려 주었다.김서진의 말이 끝났는데도 한참이나 한소은은 대답이 없었다.몇 초 기다리다 전화가 끊긴 게 아닌지 의심이 들어 김서진은 핸드폰을 한번 확인했다.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김서진은 조심스럽게 한소은을 불렀다.“당신 듣고 있어요?”“네.”정신을 차린 한소은이 말했다.“알겠어요. 지금…… 어르신은 어때요?”“잠시나마 안정된 것 같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니에요.”지금 김서진은 모두 한소은의 말에 따르고 있었다. 원철수의 일
“하…….”한소은의 긍정적인 대답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일지라도 김서진의 마음은 많이 내려앉았다.그의 얼굴에는 살짝 미소가 걸렸고 마음도 이전처럼 그렇게 무겁지 않은 것 같았다.김서진은 장난 섞인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따라 했다.“내 몸은 내가 알아요.”“그나저나 그쪽은 어떻게 됐어요?”한소은이 어이없어하며 침묵하자 김서진이 빠르게 화제를 바꾸었다.“그럭저럭 잘 되고 있어요.”한소은은 묶었던 머리카락을 풀고 뻣뻣해진 목을 풀기 위해 좌우로 두 번 흔들었다. 한 손으로 자기 목을 짚고 고개를 세게 젖히며 눈을 두어 번 돌려 눈의 피로를 풀었다.“이쪽 임무가 완수되면 돌아갈 수 있어요. 당신은 거기서 꼭 조심해야 해요.”김서진은 그녀의 말속에 숨겨져 있는 뜻을 알아차렸다. 한소은의 모든 말과 행동이 모두 감시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때는 말하기 불편한 걸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이쪽은 내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그리고 불편한 게 있으면 나 한테 꼭 말해줘야 해요.”잠시 후 그는 갑자기 말투가 한결 가벼워졌다.“하지만 내 생각에는 당신은 분명 감염되지 않았을 거 같아요.”“만약 당신이 감염되었다면, 거기 있는 실험실 사람들 전체가 감염되었다는 거잖아요. 이 바이러스는 그들이 만들어 낸 것인데 어리석게 자기가 감염되게 하지 않겠죠.”“맞아요.”한소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일단 지켜보는 게 좋겠어요.”“네.”전화를 끊고 김서진의 마음은 조금 더 내려앉았다.그가 방금 한 말은 비록 의도적으로 ‘어떤 사람’ 에게 들려준 말이지만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이 물건은 그곳에서 흘러나왔다. 당연히 그들이 이 물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한소은이 정말 감염되었다면, 그들도 틀림없이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안심이 되었다.돌아서서 방으로 돌아가려던 때 방문 앞에서 원철수와 부딪칠 뻔했다.그가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
“그럴 순 없어!”김서진은 힘을 주어 원철수를 잡아당겼다. 원철수는 관성 때문에 바로 서지 못하고 비틀거렸다.김서진이 크게 호통을 쳐서야 원철수는 멍해져 더 이상 그의 손을 뿌리치려 하지 않았다.그를 지켜보던 김서진은 엄숙한 얼굴로 원철수를 타일렀다.“지금 상황이 완전히 정리된 게 아니야. 이 고독이 도대체 뭔지 어르신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어. 네가 이렇게 경솔하게 행동하면 위험만 더 키울 뿐이야.”“특히 너는 밖으로 나가면 안 돼. 너의 몸속의 것이 1호니까. 게다가 네 가족과 가사도우미 들은 100% 너에게 감염되었다 확신할 수 없어.”“어쩌면 다른 원인으로 인해 그런 증상이 나온 거일 수 있다고. 이런 상황에서 직접 운전해서 그들을 데리러 간다면 이로 인해 감염이 될 수 있다는 말이야. 그렇게 되면 마침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거야.”김서진의 이 말에 원철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마치 차디찬 물을 그의 머리 위에 퍼부은 것처럼 진정되었다.원철수가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그럼…… 이제 어떡하지?”원철수는 마음이 너무 급했다.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자기가 겪었던 고통을 겪는다는 생각과 이 모든 것이 자신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고 생각에 마음은 너무 괴로웠다.그는 자신을 더욱 증오했다. 차라리 그 마굴 같은 실험실에서 죽었다면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지금 김서진이 이렇게 분석해 주니 원철수는 매우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이럴 때는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아야 한다. 더 큰 손해를 끼칠지 아무도 확답할 수 없다.지금 원철수는 자신이 마치 거대한 감염체처럼, 걸어 다니는 재앙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어디를 가던 누군가에게 결과를 알 수 없는 재앙을 가져다줄 수 있다.“이 정원은 당분간 신경 쓸 필요 없어. 진작부터 모든 사람이 외출을 금지하고 있었어. 내 사람들도 바깥을 지키고 있고. 네 부모님 쪽은…….”김서진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내가 먼저 사람을 보내 아무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