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언이 떠난 후, 한소은은 온 집안을 자세히 살펴보고서야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 알았다.이 방에서는 도청 시스템이 통풍용 배관에 설치돼 있다. 방 전체, 심지어 건물 전체를 도청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도청되고 있을 것이다.도청뿐만 아니라 온갖 감시 카메라가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감옥에서 사는 것보다 더 끔찍했다.그러나 이런 것에 대해 한소은은 일찍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소은은 조금의 대처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고 가방에서 작은 카드 하나, 가느다란 실, 그리고 작은 라이터 같은 물건을 꺼내어 조립한 후 핸드폰에 꽂아 김서진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이 물건들은 김서진이 준 것이다. 김씨 가문 내부에서 연구한 하이테크 제품이다. 아직 테스트 단계일 뿐 대량으로 시장에 투입된 것은 아니다. 이를 장착하면 각종 앱 추적과 도청 장치를 단절할 수 있다. 핸드폰에 도청 프로그램이 설치돼도 쉽게 파괴할 수 있다.처음에 한소은은 반신반의했으나 김서진에게 한번 시도해 본 결과 일반 도청 장치로는 그녀의 핸드폰을 도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믿고 가져왔다.비록 핸드폰은 도청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소은은 여기서 하는 말이 들릴 수도 있다 생각되어 전화는 하지 않고 메시지만 보냈다.김서진은 빠르게 답장을 주었다.-네, 꼭 조심해야 해요!문자는 짧지만, 김서진의 걱정이 가득 스며져 있었다.한소은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하고 긴장을 풀고는 누워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앞으로 한소은이 해야 할 일은 많았고 또 매우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한소은은 반드시 자기 몸과 배 속의 아이를 잘 지켜야 했다.자신이 잠이 잘 오는 체질인 것에 감사하며, 한소은은 금세 깊은 잠에 빠졌고, 설정한 알람에 잠이 깼을 때는 이미 두 시간 반이나 잤다.시간을 보니 임상언이 올 시간이었다. 한소은은
그러나 건물 안으로 들어간 후, 한소은은 이 건물이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첫째, 계단은 모두 특수 재질로 만들었고, 안에는 방음 패드를 많이 붙였을 뿐만 아니라, 보통의 건물보다 많은 통풍구를 설치했다.이곳의 채광은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걸어 들어가면 약간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 들었다.건물 전체의 방향을 보면 채광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그렇다면 그것은 오직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 인위적으로 일부러 해빛을 가린 것이다.복도에는 불이 켜져 있지만 생각보다 밝지는 않았다. 약간 어둑어둑한 곳으로 들어가니,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갑자기 뒤에서 문이 “탁”하고 닫히니 정말 이 건물 속에 고립된 느낌이었다.문이 닫히는 소리에 놀라 한소은은 흠칫 몸을 돌려 임상언을 쳐다보았다.그의 얼굴은 오히려 평온했다. 아마도 이런 소리에 습관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임상언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나중에 습관 될 거예요.”한소은은 조롱하듯 웃으며 말하지 않았다.아니, 그녀는 결코 이 소리에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더럽고 사악한 곳이라면, 그녀는 익숙해지지도, 또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복도의 가장 안쪽에 이르자 임상언은 우뚝 멈춰 서서 장갑을 벗고 검지로 눌러 지문을 인식했다. 그 다음 고개를 돌려 한쪽으로 향하고 눈을 크게 뜨고 홍채 인식을 진행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끝내서야 앞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한소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그렇게 간단하게 자기를 들여보내 주지는 않을 거라 진작 예상했었다.문을 들어서자, 누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온 사람이 임상언 인 것을 보고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여 확인했다는 눈짓을 하며 그들에게 방호복 두 벌을 건넸다.“입으세요.”한소은에게 한 세트를 건네주고 임상언은 돌아서서 방호복을 덮어씌웠다.그의 동작은 능숙했다. 분명히 처음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그가 방호복을 다 입고 잘 조절한 후에, 몸을 돌렸을 때 한소은은 벌
임상언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기도 잘 모른다고 표현했다.사실 한소은이 없었다면 임상언이 직접 이런 일에 관여하지는 않았다.여러 번 와봤지만 대부분 감독하러 왔을 뿐, 이 안의 자세한 절차나 이런 것들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아마도 그가 이런 것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유한성이 그를 많이 제한하지 않았을 것이다.게다가 그의 약점을 쥐고 있으니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안심할 수 있고 한소은 옆에 같은 나라 사람이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임상언의 손에는 연구 자금이 쥐어져 있었다. 그들은 임상언의 자금과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의 홍채와 지문을 입력하여 그가 이곳을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그러나 이 물건이 무엇이고 이것들은 무엇을 하는 것들이냐고 물어본다면, 임상언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하자, 한소은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서 유리 덮개를 사이에 두고 거대한 식물, 정확히는 독을 가진 식물을 자세히 관찰했다.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조심하세요!”순간 임상언이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소리를 질렀다.“이건 독이 있어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요!”임상언은 비록 이것이 무슨 독초인지는 모르지만, 독이 있는 물건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지금 하는 실험은 모두 이 물건 속에서 추출한 것이다.임상언에게 끌려 몇 걸음 뒤로 물러난 한소은은 안색이 침착했다.그녀의 눈빛은 앞에 있는 식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연히 이것이 독이라는 거 알아요. 게다가 엄청난 독이죠.”이건 뇌공등이지만 완전히 뇌공등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변이된 뇌공등이다.그들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식물에 무슨 짓을 해서 변이를 일으켰는지, 왜 이렇게 크고 이상하게 자랐는지 한소은은 무척이나 궁금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아마 독성이 더 강해졌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한소은은 왜 그들이 연구해 낸 온갖 기괴한 바이러스들이 그렇게 공략하기 어려운 것인지, 왜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던 바이러스들이
한소은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다. 한장 한장 뒤지면서 전에 자기의 작업실에서 했던 실험들과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는걸 깨달았다.애초에 약 성분이 완전히 발현되게 하면 향료의 향은 자연히 가려지게 되고, 향료의 정상적인 향기를 끌어올리려면 약 성분이 억눌려 최상의 상태가 되지 못한다.이 둘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한소은은 왜 굳이 이렇게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 줄곧 이해하지 못했다. 이 세상의 불완전한 것은 일상이며 결점을 포용할 수 있는 불완전함이 진정한 완벽이라 생각했다.특히 전에 연구한 것은 모두 병을 치료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면 향료의 향이 좀 덜 하더라도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환자들은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약 냄새에 집착하여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할 필요가 없다.한소은은 연구의 주된 방향이 약이 아니라 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이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고 자신도 모르게 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중독되게 만들고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생각해 보면 그들이 독을 먹이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중요한 인물이었다.상대방을 독살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장악하여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려는 것이다.이런 중요한 인물은 신변의 보호 조치가 모두 매우 치밀하기 마련인데, 직접 독을 투약하는 방식이 쉽지는 않으니, 바로 이런 향료에 손을 대는 것이 아닐까? 다만, 한소은은 그들의 목표물이 누구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모든 자료를 훑어본 후에, 한소은은 고개를 저었다.옆에 서 있던 임상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어떻습니까?”“이 자료는 완전한 자료가 아니에요.”한소은은 물건을 임상언의 손에 쥐여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가 분명히 말했잖아요. 내가 원하는 것은 모든 자료에요! 어떤 조금의 숨김도 없는 그런 자료 말이에요.”“이게 전부예요.”임상언이 어리둥절해 하며 대답했다.한소은이
불쾌함이 가득 섞인 상대방의 목소리에 임상언은 멍해졌다.이 사람이 어디서 그렇게 괴팍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지 몰랐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상대방의 짜증은 느낄 수 있었다. 임상언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기세등등하게 말했다.“이 자료들이 다 인가요?”“방금 다 줬잖아요.”상대방은 여전히 짜증이 섞인 말투로 되물었다.임상언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한소은 씨가 방금 이 자료들은 데이터가 완벽하지 않다고 했어요. 혹시 빠진 게 있는지 찾아봐 주시겠어요?”임상언은 다시 말하며 이번에는 보스를 내세워 그 사람을 압박했다.“이 실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들 알고 있겠죠? 지금 한소은 씨가 와서 전면적으로 실험을 책임지게 되었어요. 그러니 반드시 모든 자료와 데이터를 다 정리해서 한소은 씨에게 줘야 해요.”그 사람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임상언을 한번 쳐다보더니 곧바로 시선을 한소은에게로 향했다.“데이터는 그게 다예요. 한소은씨 께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한소은 씨 탓이겠죠.”이 말은 분명 한소은에게 한 말이다.이것은 한소은이 이 자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료의 미비를 탓하고 있다는 뜻이다.“이봐, 당신!”임상언이 체면이 깎여 화를 내었다.‘감히 누구 앞에서 이렇게 고고한 척 하는거지?’그러나 한소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가볍게 손을 들었다.“모든 데이터가 이게 다라면 이 실험이 왜 계속 실패했는지 알 것 같네요. 가장 중요한 기록은 하나도 하지 않았으니 계속 실패하는 거죠. 지금까지 어떻게 실험하고 있었는지 정말 알 수가 없네요.”한소은은 조금도 그들의 체면을 봐주지 않고 그들의 데이터가 잘 정리되지 않았다고 깎아내렸다. 그러자 실험하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한소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이 사람들은 모두 착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다들 각 분야의 엘리트들이었다. 실험에서 문제가 생기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모두 반복되는 실패에서 개선하고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시간은 급하고 임무가 막중하니 그렇게 빨리 성
다만, 이 조직에서 보스, 그리고 맨 위에 있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서로의 신분과 배경을 알지 못한다. 임상언과 주효영도 마찬가지다.임상언은 지금 이런 태도로 한소은을 대하는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상대방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이렇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좋은 일이 아니다 보니 임상언은 한 발 앞으로 나아가 말리려 했다.“한소은 씨는 당신에게 명령하려는 게 아니에요. 다만, 보스께서 이곳의 모든 건 한소은 씨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약속하셨어요. 그러니 한소은 씨가 내려놓으라면 그만 내려놓는 게 좋아요.”“내가 왜 그래야 하죠?”하지만 그 사람은 전혀 임상언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고, 목구멍에서 웃음소리까지 내며 말했다.“내가 가져가려는 것은 나의 실험 결과물이에요. 한소은 씨가 그렇게 대단하시다면 자기가 직접 실험해서 결과를 얻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자기가 왔으니 걱정할 거 없다고 하잖아요.”“물건은 이 실험실 안에 있던 것이니 가지고 나갈 수 없어요.”한소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놀리는 물었다.“왜요, 내가 이 실험이 실패되었다고 말할까 봐 두려운가요?”“그런 방법으로 날 위협하지 못해요.”그 사람은 뒤로 돌아 실험실을 나가려 했다.“난 당신과 여기서 말싸움할 시간이 없어요.”“당신 말대로 시간을 낭비하는 건지, 아니면 자기 물건이 또 다른 실패 사례가 될까 봐 두려워하는 건지 궁금하네요.”한소은은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임상언이 멈칫했다.한소은의 이 한마디는 그 사람을 화나게 했다.그 사람은 갑자기 몸을 돌려 날카롭게 변한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 이게 뭔지나 알고 실패 케이스라는 거에요?! 여기 서서 아무 말이나 하고, 몇 마디 한다고 자기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물론이죠!”한소은이 재빨리 말했다.“당신은 최고의 약재와 가장 비싼 향료를 썼죠. 서역 오두의 독성과 용연향
사무실 안은 놀랍도록 조용했다. 가운데에 한 사람이 서 있지 않았다면, 정말 여기 사람이 없는 줄 알았을 것이다.여자는 한쪽 손을 옆으로 늘어뜨리고 다른 한 손은 가슴에 움켜쥔 채 서 있었다.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 앞에 서 있는 사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날카로운 눈빛으로 가면을 뚫고 나와 그녀를 매섭게 쳐다보았다. 마치 눈빛만으로 그녀를 벽에 박을 수 있을 것 같았다.“보스…….”여자는 입을 열자마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잔이 그녀 앞에서 박살 났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그녀의 발등에 몇 조각이 튀었다. 다행히 신발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유리 조각에 베지 않았다.그녀는 거기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았다.그냥 그렇게 유한성이 화를 내도록 내버려두었다.“내가 너에게 너무 많은 자유를 주고 너무 방자하게 내버려두었나 봐? 이제 내 말도 안 들으려고? 주효영!”마지막에 그녀의 이름을 내뱉을 때 유한성은 그야말로 이를 갈며 이 틈에서 이 세 글자를 짜냈다.주효영은 등을 곧게 펴고 고개를 숙인 채 바닥에 있는 컵 조각들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아니요.”“아니라고!?”또 다른 컵이 그녀의 이마로 날아가자, 순간 피가 그녀의 뺨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따뜻한 피가 그녀의 하얀 뺨을 따라 흘러내려 오자 빨강과 하얀색이 기괴한 색 차이를 이루었다. 언뜻 보기엔 요염한 빨간색 장미처럼 보였지만 이윽고 피비린내가 방안을 채웠다.“너는 네가 지금 ‘죽은 사람'인 걸 잊은 거야? 너는 이미 ‘죽었어'! ‘죽은 사람'이 이렇게 대범하게 실험실로 달려가고, 한소은과 임상언의 앞에서 알짱거려? 너는 그들이 너를 알아보지 못할까 봐 그러는 거야? 왜? 네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가서 말하지 그래?!”유한성은 CCTV를 통해 이 모든 것을 보았을 때 거의 화가 나서 까무러칠 뻔했다.주효영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것이 화가 났을 뿐만 아니라, 그
주효영은 손가락을 움켜쥐었다가 느릿느릿 풀더니 앞으로 두 걸음 걸어가 유한성에게 물건을 내밀었다.주효영의 손바닥 안에는 가만히 누워있는 반투명한 작은 병이 있었다. 유한성은 그 작은 병을 보면서 갑자기 내밀던 손을 멈추었고 조금 망설이는 것 같았다.주효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손을 내밀고 그를 쳐다보았다.유한성은 허공에 멈칫했던 손을 거두고 두 팔로 팔짱을 꼈다. 그는 그곳에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주효영에게 말했다.“열어!”그는 원래 키가 작았다. 지금은 두 팔을 교차하여 감싸 안고 있어 사람이 더욱 야위고 작아 보였다.하필이면 높은 곳에 서서 남을 능멸하는 모습을 보이려 하니 얼마나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지 말할 필요도 없다.주효영은 입술을 씩 치켜 올리고는 다른 말 없이 뚜껑을 비틀었다.“뽁” 하는 아주 가벼운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렸다.곧 그윽한 냄새가 방안에 흩어졌고 아주 섬세하고 달콤한 향기가 한 가닥 한 가닥 나부끼며 느릿느릿 공기 속으로 퍼졌다.유한성은 미간을 찌푸린 채 얼른 감싼 손을 풀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과 코를 가렸다.“누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열라고 했어? 저리 치워.”그의 목소리는 우렁우렁 울렸고 눈빛에서는 약간의 긴장감이 흘렀다.“보스, 이 ‘향수’의 묘미는 반드시 피부에 닿아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단지 냄새만 퍼졌을 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세요.”주효영은 자기의 말을 확인해 주려는 듯 병 입구에 가까이 가서 깊게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이윽고 그녀는 눈을 감고 마치 향기에 도취한 듯 말했다.“정말 향기롭지 않나요!”유한성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여전히 경계심을 놓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 긴장하지 않고 코를 움켜쥐며 물었다.“확실해? 이번에는 성공한 거야?”“보스, 한소은의 말을 그렇게 믿으세요?”주효영은 느릿느릿하게 병뚜껑을 닫았지만, 유한성은 여전히 코를 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는 것을 보고 계속 말했다.“나는 정말 이해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