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의 노호 소리를 듣고 김서진은 멍해졌지만 바로 자신이 어르신을 얕보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어르신은 한소은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화가 나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르신께서도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김서진은 묵묵히 있다가 거의 들을 수 없는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소은이의 성질을 어르신께서 모르신 것은 아니잖아요.”“…….”한마디로 어르신을 목이 메게 하였지만 어르신은 승복하지 않고 소리쳤다.“그의 성질은 성질이고 너는 성질이 없어? 소은이는 너의 아내인데 너는 보호하고 사랑하고 돌봐야 하지 않아?”“전에는 네가 없었으니 말하지 않겠는데 지금은 네가 있는데 어떻게 소은이더러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게 할 수 있어? 너는 설마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거야? 그곳은 용담호혈이야!”‘원철수 그 녀석도 거기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고 아직도 목숨이 반쯤 걸려 있는데 소은이까지 안으로 뛰어들려고 하다니?’‘애초에 그 무슨 실험실에서 소은이는 위험천만하게 그곳을 떠났고 지금은 이미 떠났는데 또다시 돌아가려고 하다니? 미친 거 아니야!’‘소연이가 미쳤고 이 김서준도 미쳤어?! 부부가 같이 미친 거야?!’여기까지 생각하자 갑자기 화가 나서 어르신은 직접 김준을 김서진의 품으로 보내려 했다.“가가가, 아이를 데리고 가. 나는 너희 부부를 도와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을 것이고 너희들이랑 같이 미치지 않을 것이야! 소은이한테 얘기해. 아이를 직접 돌보든가 아니면…….”아니면 아이를 버리든지라고 말하려다 깜빡이는 녀석의 눈망울을 보고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어르신은 그저 손만 흔들며 말했다.“어차피 나는 너희들의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을 것이야!”김서진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말했다.“원 어르신, 소은이는 오늘 아침에 이미 떠났습니다. 지금 소은이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잠시 멈추었다가 김서진은 어르신을 보고 말했다.“어르신께서는 비록 은거하신지 몇 년이 되셨지만 바깥세상을 모르시
원래 그들을 잡는 것은 쉬웠지만 그들 배후의 이 선을 잡아내지 않으면 후환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김서진이 말한 것처럼 만약 그들이 이미 어떤 바이러스를 퍼뜨렸거나 다른 것을 퍼뜨리고 있다면…….지난번의 전염병은 이미 사람들로 하여금 엎치락뒤치락하게 만들었고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지나가지 않았다. 그러니 만약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등줄기까지 한기가 올라왔지만 어르신은 한숨만 쉬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르신은 그래도 한소은이 이번에 가는 것은 너무 모험적이고 위험하다고 생각했다.“걱정 마세요. 저는 반드시 전력을 다해 이 재난의 발생을 막을 것입니다!”어르신의 근심스러운 모습을 보고 김서진은 어르신을 위로하고 싶어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어르신은 오히려 고개를 들어 그를 노려보았다.“누가 그것을 걱정해! 너희들은 단지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고 자신에게 아직 돌봐야 할 아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자신을 구세주로 여기지 않으면 돼!”김서진은 빙그레 웃었다. 이것은 또한 그가 한소은에게 한 말이었다.위험 앞에서 반드시 자신이 혼자가 아니고 가족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했다. 사람의 마음속에 일단 걱정과 기반이 생기면 일을 하는 것도 다소 망설이게 될 것이다.“그럼 어르신께 폐를 끼치겠습니다.”어르신이 이 말을 한 것은 변칙적으로 승낙한 셈이라는 것을 알고 김서진은 일어나서 답례하고 허리를 굽혀 존경을 표했다.어르신은 앉아 있었고 일어나지 않았다. 이 큰 절을 그는 여전히 감당할 수 있었고 단지 고개를 들어 김서진을 바라보았다.“나는 네가 아무리 허황된 말을 해도 기껏해야 보름만 줄 수 있어. 보름 후에 아이를 데리러 와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를 고아원으로 보낼 것이야! 아니…… 나는 그를 가난한 시골로 팔아버릴 것이야!”어르신은 흉악하게 말하면서 마음속의 노여움과 불만을 털어놓았다.김서진이 막 입을 열어 당신은 분명 마음이 내키질 않을 것이라고 어르신께 대답하려고 했을 때 김준이
김서진이 떠난 후 어르신은 다시 꼬마와 놀다가 그가 하품을 연발하며 작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곧 잠이 들 것 같아서 그제야 그를 방으로 돌려보냈다. 아이가 눈을 감고 푹 자는 것을 보고 비로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는 줄곧 한소은이 타고난 자질이 있고 이 업종을 배우기에 좋은 후계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자신도 조금도 남김없이 지식을 모두 그녀에게 전수해 주었다.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들을 알고 이런 것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지경에 처해졌으니 정말 자신이 한 일이 잘못한 것인지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고개를 돌려 방을 나가자 가사 도우미가 맞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어르신, 손자님께서 되셨냐고 여쭤보시는데요?”“뭐가 돼?”어르신은 눈살을 찌푸리고 가사 도우미가 대답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곧 반응했다. “아이고! 잊어버렸네!”어르신은 몇 걸음 뛰어 아래층으로 내려가 뒷마당 방향으로 곧장 달려갔다. 원철수는 여전히 거기에 엎드려 웃통을 벗고 등에는 은색 바늘을 꽂고 있었다.그는 몸이 차가워졌지만 감히 일어나지 못했다.‘둘째 할아버지께서 왜 이렇게 오래가셨지? 설마 자신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지?’‘그럴 리가 없잖아, 이 바늘을 반쯤 찌르고. 게다가 한소은이 왔는데 무슨 말을 이렇게 오래 하는 거야?’생각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원철수는 그제야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가사 도우미를 불러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보게 했다.역시나 어르신은 정말 그를 철저히 잊어버렸다. 지금 그를 보니 얼굴엔 미안한 생각이 스쳤으나 고집이 세서 인정하려 하지 않고 기침을 두어 번 하며 말했다. “급하긴 뭐가 급해. 나는 너의 정력을 시험하고 있었어! 이런 환경에서 너의 몸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보고 있었어!”“사실로 증명되었듯이 너는 회복이 꽤 잘 되었고 체내의 독도 거의 다 제거되었어. 봐봐, 네가 이렇게 긴 시간을 모두 버텼고 발작도 하지 않았잖아.”“…….”어르신은 진지한
어르신이 마침내 자신을 보는 것을 보고 원철수는 기뻐하며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말했다.“둘째 할아버지, 헛수고하지 마세요! 이 고대 의서들은 모두 수백 년, 수천 년이 넘었어요. 과거의 물건은 아무리 좋아도 지금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새로운 사회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게다가 이 바이러스들은 모두 서양 사람들이 연구해낸 것입니다. 신형이고 변이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고대 의서에 어떻게 정복할 방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원철수는 어르신이 순전히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비록 자신도 한의학을 공부했지만 한의학이 아무리 대단해도 모두 기초적인 것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하지만 이 새로 개발된 바이러스는 이전에 출현한 적이 없었고 자신이 주사를 맞았을 때 스스로 맥을 짚어봤지만 맥상에서도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즉 그들이 배운 한의학 지식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누가 안 된다고 했어!”어르신은 콧바람을 내쉬며 원철수를 노려보았다.“네가 이렇게 오랫동안 나에게 배운 것을 모두 개의 뱃속으로 배웠구나!”“…….”“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선인들의 지혜와 축적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아무리 변해도 모두 그 취지가 있어. 이른바 아무리 변해도 그 근본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야.”“바이러스? 과거의 역병도 어찌 두렵지 않겠어.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정복당하지 않았어? 이 바이러스는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람의 방법으로 제거할 수 있을 것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책자를 말아 원철수의 머리를 한 번 두드렸다.“움직이지 마!”호통을 받자 원철수는 얌전히 엎드려 다시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다만 입으로는 여전히 불복하여 중얼거렸다.“말은 맞지만 그 과정은 매우 깁니다. 과거의 역병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또 몇 년이 지나서야 정복할 방법을 연구해 내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이 사람들이 연구한 바이러스는 한 가지뿐만이 아닙니다. 설령 정복한다고 해도 일시적인 일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원철수는
한소은은 임상언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했다.처음부터 한소은은 임상언이 자기를 데리고 가려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다만 정문이 아니라 옆의 작은 문으로 차가 천천히 들어갈 줄은 몰랐다.언뜻 보기엔 보잘것없는 옆문인 것 같지만 위에는 감시 카메라가 있었고, 적외선 카메라도 달려 있었다. 자기 집에도 이러한 보안 시스템이 있었던 지라 한소은은 이곳의 보안 조치가 특히 엄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조직은 정말 대단하네요. 이런 곳까지 잠입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한소은은 꽤 감개무량하게 말했다.임상언은 입술을 살짝 움직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는 곧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를 세웠다.임상언은 한소은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출입 카드를 찍은 후 맨 위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한소은은 이 엘리베이터가 상하 두 층, 즉 꼭대기 층과 아래층만 있고, 가운데 버튼은 숫자조차 없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사실 실험기지에 있을 때도 맨 위층의 몇 층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다. 그때 한소은은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가장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세미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조직의 보스가 그곳에 있었던 것 같다.비록 보스를 본 적이 없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한번 대면한 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한소은은 이전에 실험기지에 있을 때 얼굴을 본 적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다만 자신은 모를 뿐이다.배후가 도대체 누군지 몰랐는데 갑자기 만나게 되니 한소은은 불안감이 솟아올랐다.엘리베이터 안에서 한소은의 한 손은 습관적으로 허리를 받치고, 다른 손은 자기 아랫배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다시 천천히 내뱉었다.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평범한 임산부가 거리를 구경하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긴장하지 마요.”임상언이 곁눈으로 한소은을 힐끗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입술을 살짝 열었다 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한소은
“잘했어!”이어 임상언의 말에 응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한소은은 여전히 사람을 보지 못했다. 임상언의 시선 향하는 자리에는 커다란 보스 의자만 있을 뿐이다.하지만 뒤에서 보니 누군가 앉아 있는 거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한소은 씨, 반갑습니다!”보스의자가 돌아가면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한소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침내 의자에 앉은 남자의 모습을 확인하자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임상언을 통제하고 굴복시키며 이렇게 많은 나쁜 짓을 하면서 전염병같은 인위적인 재난을 만들어낸 사람이 이렇게 왜소한 몸집을 가진 사람 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한소은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앞에 있는 작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남자가 일어서면 자기 아들 김준보다도 키가 작을 것 같았다.왜소한 몸매에 복면을 쓰고 있었고 복면 밖으로 드러난 부분에는 흉악한 흉터가 보였다. 그의 눈동자는 음산하고 기이한 빛을 내비치고 있으며 한소은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손을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채 손가락을 살짝 짚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눈빛은 한소은을 불편하게 했다.“당신이었군요!”한소은은 놀란 얼굴을 했지만 목소리는 담담하게 말했다.“응? 날 알아요?”남자는 다소 놀란 듯 한 표정이었지만 흥미로운 듯 자기를 아는 한소은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한소은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곧장 뒤에 있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허리에 받친 쿠션을 잡아당겨 편안하게 앉은 후에야 그를 보면서 느릿느릿하게 입을 떼었다.“물론 알죠! 남아시아의 전염병, 원철수의 세포를 가속하는 바이러스, 그리고 진정기를 컨트롤하는 침술, 모두 유한성 당신이 저지른 짓이잖아요.”“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도 있겠죠. 예를 들면, 지금 이 건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해요.”한소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유한성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한소은이 자기 앞에서 조금도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그의 흥미를 더
“보스.”한참이 지나서야 임상언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는 한소은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이 여자가 정말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죽으려고 작정한 건가?’누가 봐도 유한성의 모습은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한소은은 그 점을 피해 가지 않을 망정 그의 앞에서 대놓고 말을 꺼냈다.유한성은 외적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많이 뒤틀린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반 인류적인 것들을 연구하려 하는 거다.“한소은 씨, 지금 이러는 거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거 모르나요?”유한성은 차가운 목소리로 한소은에게 물었다. 가면에 가려지지 않은 두 눈은 유난히 날카로워 보였다.한소은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유한성 씨는 날 죽이지는 않을 거잖아요. 적어도 지금은 죽이지 않겠죠?”“그렇게 자신만만 한가요?”유한성은 몸을 돌려 의자에 앉았다. 다리를 여유롭게 흔들며 한소은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평온해 보였다.지금의 그는 포악함이 조금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임상언은 문득 유한성의 뜻을 알아차렸다. 지금은 아직 한소은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녀가 그렇게 말해도 유한성이 그녀를 어떻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한소은은 너무 모험적이었다. 일이 성사되면 그녀가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유한성이 도대체 얼마나 왜곡된 사람인지 상상을 초월한다. 그가 얼마나 뒤끝이 있고 어떻게 그녀를 괴롭힐지 아무도 모른다.“유한성 씨가 이렇게 온갖 방법을 다 써서 임상언 씨에게 나를 데려오라고 했으니, 틀림없이 내가 없어서는 안 되는 거겠죠? 내가 필요한 이상 당연히 그렇게 쉽게 나를 죽이지 못할 거예요.”한소은은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유한성은 웃으며 물었다.“그럼, 일이 성사되고 나서 내가 당신과 결판을 낼 수 있다는 건 두렵지 않나요?”한소은은 더 빨리 대답했다.“그건 일이 성사된 후에 할 얘기인 거 같네요. 일이 아직 그 단계까
한소은의 이런 직설적인 도발은 물론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다.얼굴은 침착하고, 한 손은 자기 아랫배를 가볍게 덮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경계심을 높이고 있었다. 언제 자기에게 독을 먹이거나 함정에 제 발로 들어갈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임상언은 침을 살짝 삼키고 곁눈으로 유한성의 표정 변화를 흘겨보고 있었다.유한성의 입술 끝은 위로 올라갔지만, 두 눈은 실눈을 뜨고 한소은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몇 초 후에 유한성은 다시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내었다.“하하하하하…….”임상언은 어리둥절했다.한소은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다시 한번 귀를 후볐다.“그래, 한소은 씨 말이 맞아요!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꼭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죠.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요!”유한성은 한소은의 말에 찬성하는 듯 말했다.“하지만 이건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요. 만약 당신이 나에게 어떤 속임수를 쓰려고 한다면 나는 한소은 씨 당신의 가족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내가 죽더라도 반드시 같이 저승으로 갈 사람을 데려갈 거란 말이죠!”그는 말을 마치고는 다시 고개를 젖히고 머리를 흔들며 웃기 시작했다.한소은은 그런 유한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꽉 쥔 두 손의 손톱이 손바닥의 살을 파고들어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만약 할 수 있다면, 한소은은 지금 당장 달려들어 유한성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혹은 평생 배워온 무술로 그를 괴롭혀 죽게 하고 싶었다.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임상언이 전에 이 조직은 유한성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그의 배후에 틀림없이 다른 사람이 더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비밀 병기가 많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장악하지 않으면 어떤 후환이 있을지 가늠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그리고…….임남도 아직 그들의 손에 있다. 만약 유한성을 지금 목 졸라 죽인다면 그 아이의 행방은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된다.한소은은 이를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