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했어?”오이연이 대답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한소은은 다시 재빨리 말했다.“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소은 언니…….”“됐어, 언니라고 불렀으니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자책할 게 뭐 있어, 그때 그 상황에 나였어도 화가 났을 것이야. 너는 단지 정상적인 반응을 했을 뿐이야. 그리고 그때의 너도 분명히 괴로웠을 것이야!”한소은은 오이연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김서진과 서한이라면 자신도 반드시 김서진의 편에 설 것이다.모두가 친구라 하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경중이 있고 친소가 있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 할 경우 당연히 자신이 가장 가깝고 가장 중요한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난…….”오이연의 두 손을 잡고 한소은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정색했다.“자! 더 이상 나, 나 하지 마. 언제부터 말더듬기 시작했어? 나한테 꾸물대지 마. 너의 마음과 너의 난처함을 나는 다 알고 있어!”“우리는 파트너일 뿐만 아니라 좋은 친구야!”한소은은 오이연을 향해 웃으며 홀가분한 모습을 보였다.“친구인 이상 그렇게 따질 필요가 없어. 나는 따지지 않을 것이야. 너도 따지지 마? 응?”말이 여기까지 왔는데 오이연이 더 이상 고민하다가는 오히려 스스로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눈물을 흘리며 한소은과 두 손을 잡고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이연을 보낼 때 그녀에게 이 실험에 대해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오이연도 그 속의 이해관계를 알고 있었고 게다가 그 안에 서한도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일을 마치고 한소은은 소파에 기대 누워 허리 뒤에 쿠션을 깔고 몸을 풀었다.갑자기 계단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을 듣고 눈을 뜨자 김준이 계단의 모퉁이에 서서 한소은을 내려다볼 뿐 계속 내려가지 않은 것을 보았다.한소은은 미소를 지으며 김준에게 손을 흔들어 내려오라는 신호를 보냈고 몸을 일으키고 그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김준은 약간 망설였지만 자기의 엄마가 두 손을 계속 벌리고 있는 것을 보고 심지어 일어나서 그
아이가 아직 어려서 이해력이 그리 강하지 않기에 오해를 하는 것도 정상이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다시 임신했기 때문에 김준의 느낌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마음이 아파서 김준을 품에 안고 손으로 그의 부드러운 단발머리를 문질렀다.“장난이 많다는 것은 꾸짖는 것이 아니야. 모든 어린이는 모두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어. 어떤 어린이는 조용하고 어떤 어린이는 활발하거든.”“그런데 이것은 모두 단점은 아니야. 모두들 똑같이 매우 귀여운 어린이거든!”한소은의 말은 김준에게는 좀 심오했지만 엄마의 품은 따뜻해서 녀석의 서운한 마음을 많이 완화시켰다.김준은 알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며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마치 나는 매우 활발하고 남윤 형아는 매우 조용한데 우리는 모두 좋은 아이에요!”“맞아!”한마디 대답하자 한소은의 얼굴에 웃음이 굳어졌다.남윤…….“엄마, 저 오랫동안 남윤 형아를 못 봤어요. 형아는 우리 집에 안 놀러 와요?”김준과 남윤은 친한 친구였고 얼마 전에 줄곧 어르신 댁에서 지냈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 돌아와서 오랫동안 그가 염려하는 형아를 보지 못했다.김준에게는 놀 친구도 별로 없었고 장유나를 해고한 후 아직 새로운 전임 보모를 찾지 못했는데 아이는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엄마?”한소은의 소매를 잡아당기자 녀석은 미간을 찌푸리고 이해하지 못했다.“남윤 형아는 요즘 너무 바빠서 아직 외국에서 돌아오지 않았어. 돌아온 후에 너와 함께 놀게 해 줄게.”작은 소리로 아이를 달래고 한소은의 마음도 불편했다.이전에 두 집안은 매우 가까웠다. 한소은도 남윤을 어렸을 때부터 지켜봐왔다. 게다가 자신이 남윤을 한 번 구한 적이 있었기에 인연이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의 생사는 알 수 없었기에 임상언이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당연했다.만약 자신이 이런 선택에 직면했다면 임상언과 같은 결정을 내렸을지 모르겠다.아들의 귀여운 얼굴을 내려다보는 순간 임상언을 문득 이해할 수 있었다.“참, 우리 집에는 최근에 귀여운 누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얼굴에서 스쳐 지나가고 가느다란 부드러움이 매우 쾌적하고 편안하며 귓가에는 새들의 즐거운 노랫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보글보글 소리와 함께 익숙한 약초 냄새를 어렴풋이 맡으며 눈앞의 빛은 약간 흐릿하고 몽롱했다.어렴풋이 원철수는 마치 풀밭에 온 것 같았다. 여기에는 꽃이 만발하고 각종 진귀한 약초도 있었다. 그는 그 안을 누비며 열심히 의서에 있는 약초를 찾아 하나하나 식별하고 조심스럽게 따서 바구니에 넣었다.그리고 막 몸을 돌리려다가 발을 헛디뎌서 온 몸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추락했다. 마치 밑바닥이 끝없는 심연인 것 같았다.“아-”비명과 함께 원철수는 소리를 질렀다. 다만 그렇게 큰 소리로 지르지 않았고 목구멍에서 아주 가벼운 소리가 났을 뿐이다.“아!”하지만 사람은 깨어났고 눈을 번쩍 뜨고 땀을 뻘뻘 흘렸다.양손은 옆을 꼭 잡고 눈을 크게 뜬 것이 마치 깊은 못에서 막 올라온 듯했다. 온몸은 물에 젖어 있었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신선한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고 있었다.약 냄새가 섞인 공기가 폐로 들어가자 조금씩 사고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깼어?”익숙한 목소리는 매우 평온했고 원철수의 비명에 대해 조금도 의아해하지 않았다. 한마디도 더 묻지 않고 부채질하는 손을 멈추고 말했다.“마침 잘 깨어났네!”말하면서 부들부채를 내려놓고 수건으로 손잡이를 잡고 약을 끓이는 주전자를 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한 그릇을 부어 찌꺼기를 걸러내고 서야 원철수의 앞에 와서 말했다.“뜨거울 때 마셔!”약 냄새가 사방으로 흩어져서 그는 이미 이런 냄새에 익숙해졌지만 너무 뜨거워서 오히려 한동안 입에 넣기 어려웠다.조심스럽게 들어 올렸을 뿐 입으로 넣지 않았다.“꿈꿨어?”어르신은 그제야 한쪽에 앉으시고 옆모습을 보며 말했다.“악몽?”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되새기면서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니에요!”“허허, 꿈을 꾸는 것은 좋은 일이야. 오히려 꿈을 꾸지 않을까 봐 걱정했는데. 눈을 뜨고 감는
지금은 비록 허약하지만 많이 단단해졌다. 그 정도의 약성은 은색 바늘로 끌어내어 방출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약초의 조리를 가하여 신체의 허약함은 나중에 천천히 조리할 수 있어서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니었다.“응!”손을 거두고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괜찮아졌네.”이어 원철수를 향해 턱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옷 벗어.”“…….”비록 처음은 아니었고 또 자신의 할아버지 시지만 여전히 부끄러워서 손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옷의 단추를 천천히 벗었다.“쯧쯧!”어르신은 입맛을 다시셨다.‘이 자식이 부끄러워하다니!’단추가 풀리자 가슴속 피부가 드러났다. 요즘은 방에 틀어박혀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아 피부가 건강하지 않은 흰색을 띠었지만 다행히도 이전 근육 결이 흐려지기 시작했다.살갗이 찢어질 듯 흉악하고 무서웠던 그 근육은 점점 사라지고 피부는 늘어져 가는 것 같았다.“둘째 할아버지, 저…….”원철수는 약간 놀라서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의 피부를 쥐어뜯었다. 구겨진 덩어리를 집어 들고 다시 또 늘어뜨렸다. 정말 보기 흉했다.“정상이야!”원철수가 크게 놀란 표정을 보고 어르신은 담담하게 말했다.“너도 의학을 배우는 사람인데 살이 쪘다가 다시 빠지면 피부가 푸석푸석해지는 거 몰라? 같은 일리야!”“그런데 전 약물에 영향을 받은 것이잖아요!”원철수는 참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대해 정말 볼 수가 없다고 느꼈다.이전의 자신은 얼마나 잘생기고 멋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점잖고 걸출했으며 몸매도 반듯하고 꼿꼿했다. 그러나 지금의 이 피부는 자신도 매우 싫어했다.“어떤 영향이든 원리는 같아!”어르신은 일어나서 빈 그릇을 들고 갔다.“지금은 이것에 신경을 쓰고 있네. 왜, 아내를 찾지 못할까 봐!”원철수는 얼굴이 뜨거워지자 한쪽으로 돌렸다.“저는 아내를 얻지 않을 것입니다!”“그래, 네 녀석 입이 무겁네. 이 말은 이따가 네 부모님께 들려드려!”어르신은 눈살을 찌푸리며 좋은 연극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이었다.원철수는 멍하니
잠시 묵묵히 앉아 있다가 원철수는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방은 유난히 조용했다. 그는 뒷마당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홀을 지나 뒷마당으로 갔다.막 들어서자마자 약초의 특유한 냄새가 났다. 여러 가지 냄새가 뒤섞여 매우 특별했다. 둘째 할아버지는 그 속에서 손을 집고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원철수는 말을 하지 않고 잠시 묵묵히 서 있다가 막 몸을 돌려 떠나려 하자 어르신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기왕 힘이 좀 났으니 와서 약초 몇 가지 따주는 건 어때?”원철수는 멍하니 있다가 발을 들어 앞으로 다가가서 어르신이 가장자리에 놓은 대바구니를 집어 들었다“필요한 것은 모두 안에 쓰여 있는데 네가 아직 알아볼 수 있을까?”어르신은 턱으로 앞으로 가리키며 원철수를 보지 않았다.원철수는 고개를 숙이고 한번 보았다. 대바구니엔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고 위에는 몇 가지 약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다지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를 어렵게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원철수는 미소를 지으며 대바구니를 메고 앞으로 걸어갔다.비록 어렵지 않지만 어르신 이곳의 약초 종류는 정말 다양하고 좀 지저분했다. 원철수는 한참 동안 누비다가 가까스로 필요한 약초를 찾았는데 벌써 숨을 헐떡이며 땀을 뻘뻘 흘렸다.그도 최근에 큰 병이 막 나았고 심지어 자신이 이미 완치되었는지도 몰랐다. 다만 이전의 고통이 더 이상 발작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렇게 고생을 하다 보니 사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고, 몸속에 숨결이 차오르는 것 같았으며 숨쉬기까지 튼튼해진 것 같았다.“둘째 할아버지, 원하시는 것들을 모두 찾아왔습니다!”원철수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볼에 땀까지 흘리며 고개를 들어 웃으며 대바구니를 건네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보물을 바치는 것 같았다.문득 어렸을 때 둘째 할아버지도 이렇게 대바구니를 들고 약초를 찾으라고 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자신이 에너지가 넘쳤지만
원 부인은 나는 듯이 달려오다가 가까운 곳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실태를 대충 알아차리고 발걸음을 조금 늦추었다. 하지만 그래도 빨리 다가가서 먼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둘째 삼촌.”이어 지체 없이 휴지를 꺼내 원철수에게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넌 아직 낫지 않았는데 왜 밖에 나와서 바람 쐬고 땀까지 흘리고 있는 거야. 병이 심해지면 어떡해!”“저는 괜찮아요. 이미 많이 좋아졌어요!”원철수는 웃으며 어머니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휴지를 받아 스스로 땀을 닦았다.다른 한 손에는 여전히 대바구니를 들고 있었다.“둘째 할아버지, 이거 어디에 놔요?”“방으로 가져가면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것을 찾으러 올 것이야.”어르신은 담담하게 말하면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그럼 할아버지께서는…….”원 어르신은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서성거리며 그들을 등지고 말했다.“나는 혼자 좀 조용히 있을 것이야. 너희 모자 둘이서 마음대로 해!”언외의 뜻은 바로 사람을 여기서 쫓아내는 것이었다.“그럼 우리 먼저 현관으로 갈게요. 둘째 할아버지께서도 너무 오래 있지 마세요. 바람이 차갑습니다!”원철수는 관심을 가지고 몇 마디 하고는 어머니를 데리고 현관으로 돌아갔다.원 부인은 마음이 아파서 그를 도와 대바구니를 들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에게 거절당했다.현관에 도착해서 대바구니를 내려 좋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하인이 와서 가져갔다. 원 부인은 조급하게 원철수의 손을 잡고 앉았고 그제야 위아래로 자세히 살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다행이다. 안색이 좀 좋아졌네.”비록 거의 이틀에 한 번씩 왔지만 매번 불안해서 꼼꼼히 훑어봐야 마음이 놓였다.“저는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더 이상 발작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원철수는 어머니의 관심을 이해할 수 있지만 때로는 너무 관심이 많으면 오히려 부담이기도 했다.사실 원철수가 성인이 되었을 때부터 부모는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그도 자신이 동분서주하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당연히 관계가 있지! 만약 네가 이것을 배우지 않았다면 그 어떤 실험소에 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 여자 악마를 만나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런 고생을 할 수 있겠어!”원 부인은 이 모든 것을 원철수가 배운 전공에 탓했다.만약 그가 이것을 배우지 않았다면 거기에 가지 않았을 것이고 더더욱 이런 것들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후회가 됐다. 애초에 그가 아버지의 뒤를 따라 한의학을 배우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어머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원철수도 약간 화가 났다.“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애초에 저를 낳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너…….”원 부인은 화가 나서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너 지금 나를 탓하는 거야?”“저는 엄마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제가 한의학을 배운 것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잘못한 것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지 우리가 아닙니다.”두 손으로 어머니의 어깨를 짚고 원철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다.“엄마, 저는 엄마가 저를 아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제 운명의 재난 이어서 도망갈 수 없는 것입니다!”“…….”원 부인은 조금 놀라서 원철수를 바라보고 매우 의아해했다.그녀의 아들은 비록 한의학을 공부했지만 하루 종일 고대 의학 서적과 약학 서적을 연구했을 뿐 운명에 대한 이론과 믿음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엄마, 우선 그건 말하지 마세요. 제가 묻고 싶은 건 주효영이 진짜 죽었어요?”원철수는 다급하게 물었다.만약 어머니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가 방금 묻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그럼!”눈가의 눈물 얼룩을 닦고 원 부인은 콧바람을 내쉬며 말했다.“정말 싸게 해줬어! 그녀를 이렇게 쉽게 죽게 한 것이! 나는 너의 아버지와 안심할 수 없어서 특별히 관계를 맺어서 법의학 쪽은 절대 손을 쓸 가능성이 없어.”“그 DN
만약 조직에서 주효영이 이용할 가치가 없는 것을 보고 일을 감출 수 없어서 고의로 그녀를 죽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하지만…….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해고 지금 천천히 모든 디테일을 떠올려 보니 심지어 자신이 빠져나오는 것조차 너무 쉽다고 생각했다.이전에 그는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도망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 쉬워서 그는 거의 진실이 아닌 줄 알았고 심지어 몇 번이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했다.최근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서야 자신이 탈출했다는 사실을 점차 받아들이게 되었다.‘그 임상언이 자신을 놓아주었는데 설마 그 조직의 사람에게 발각되지 않을까? 만약 그들이 알아차렸다면 임상언은 어떻게 될 것인가?’‘그리고 그는 왜 자신을 도와줬을까? 만약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도와주려고 한다면 왜 처음부터 도와주지 않고 이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일까?’생각하면 할수록 의심스러운 점이 많지만 잠시도 답을 찾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의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이 정원조차도 나갈 수 없는데 무슨 다른 이야기를 하겠는가.“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원철수의 손을 가볍게 두드렸고 원 부인은 아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그의 얼굴색이 매우 굳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 주효영은 죽은 게 틀림없어. 주씨 집안 사람들은 요즘 장례를 치르고 묘지까지 장만했어.”“우리가 감시하러 보낸 사람이 보고하기를 그 주씨 부인은 몇 번이나 울다가 기절했고 지금은 병이 나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했어, 이렇게 보면 가짜는 아닐 것이야.”원 부인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덧붙였다.“물론 그들이 연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하지만 우리 사람들은 계속 지켜보고 있어. 그들의 여우꼬리가 드러나기만 하면 반드시 놓치지 않을 것이야!”원철수는 억지로 웃음을 터뜨리자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아빠랑 너무 고생하지 마세요. 제 일 때문에 너무 걱정을 드렸어요.”“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손을 들어 원철수의 얼굴을 만져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