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어, 그래 할아버지 탓이야, 할아버지 탓이야!"원 어르신은 자신의 입을 가볍게 때리며 사람을 시켜 아이를 방 안의 침대 위에 눕히게 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작은 이불을 덮어 주었다. 아이가 몸을 뒤척이며 편안한 자세로 다시 단잠에 빠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손을 흔들어 모두 나가게 한 후 자기도 조심조심 방안을 빠져나왔다.조심스럽게 까치발까지 하며 걸어 나왔지만 그가 신은 슬리퍼가 불편하여 아예 발로 차버리고 맨발로 걸어 나와 거실에 이르러서야 한숨을 돌렸다.거실에 나와 유유자적하게 앉아 차를 마시는 한소은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말해 봐, 너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스승님께 부탁을 좀 하려고요!"한소은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정중하게 말했다."내게 부탁을……"한소은이 정중한 모습을 보이자 원 어르신은 방금까지 치밀었던 화가 사르르 녹았다.그녀가 이렇게 정중하게 스승님이라 부르는 게 오랜만이라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헤헤, 헤헤헤……"한소은은 어이가 없어서 원 어르신을 한번 쓱 보았다. 평소에 그를 웃어른으로 존경하고 모시고 싶지 않은 건 아니지만, 원 어르신이 기어코 친구처럼 지내자 하여 다른 사람이 보기엔 버릇없이 대한 것이었다.원 어르신도 한소은이 스스럼없이 자기를 대하는 게 마음에 들어 했다.지금 한소은이 정중하게 말하니, 그는 도리어 온몸이 불편해졌다."내가 뭘 도우면 되는 거야?"원 어르신도 정중하게 물었다.이 표정을 원철수가 보게 된다면 가슴이 아플 것이다.원철수가 도움을 요청할 때는 무슨 방법을 다 동원해도 냉대를 받았었다. 원 어르신이 이렇게…… 당장이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표정을 절대로 본 적 없을 것이다.한소은은 찻잔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말했다."당분간 준이를 돌봐주세요.""돌봐달라니……"원래 활짝 웃는 얼굴이었던 원 어르신의 얼굴이 순식간에 검게 변하며 굳었다.앞으로 살짝 기울였던 몸도 멈칫하다 뒤로 제치며 소파에 몸을 묻고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뭘 돌봐 달
"준이의 할머니는 산속에 살면서 부처님을 모시고 있고 차씨 가문은 닿을 수 없이 먼 곳에 있어요…….”말이 여기까지 나오자, 한소은은 말을 멈추고 원 어르신만 쳐다보았다.원 어르신은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그래서 나더러 이 똥강아지를 맡으라는 말이야?""내가 데려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죠."그녀가 다시 한번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한소은은 원 어르신이 차마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 어르신은 이번에야말로 강경하게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했다.‘내 아이도 아닌데 어디로 데려가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죽든 살든 남 걱정을 왜 해! 이 애가 많은 물건을 망가뜨린 것도 모자라 내 수염까지 잡아당기니, 밖에서 고생해도 싸다!’이렇게 생각하고 원 어르신은 마음을 정한 듯이 주먹을 쥐고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마음을 다졌다."그래! 그럼……""내게 맡기렴!"말이 입가에 맴돌더니 곧바로 다른 말로 변했다.순간 원 어르신은 김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결국에는 마음이 약해져 한소은을 거절할 수 없었다.아이가 말 안 듣고 물건을 망가뜨릴 때는 정말 사람을 화나게 하지만, 달콤한 말을 할 때는 정말 사랑스러웠다.원 어르신은 이두 모자에게 무엇을 빚진 것인지 이 두 사람만 보면 독하게 먹었든 마음도 약해지기 마련이다.‘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어!’"스승님께서는 마음이 선하시고 복이 많으십니다!"한소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원 어르신을 달래듯 말했다."우리 준이가 스승님 곁에 있을 수 있는 건 준이의 복이에요. 스승님 옆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 믿어요.""복이 많기는 무슨!"원 어르신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더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껄껄 웃었다.‘이 계집애는 분명히 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 이것 봐, 아이의 물건을 모두 가져왔잖아. 이렇게 많은 음식과 장난감을 가지고 왔으니, 아주 여기에 눌러살 생각인가 보군.’"정말 남아시아로 가는 거야?"원 어르신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원 어르신이 신비롭게 웃으며 일어서서 말했다."따라와 봐!"한소은은 그의 뒤를 따라 뒤뜰을 지나 긴 복도를 돌고 돌아 뒤쪽 모퉁이까지 걸어갔다.그곳은 원래 황무지였다. 언제 개발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많은 집이 지어져 있었다.그중 한 집의 문을 열자, 안에서 "구구……구구……"하는 소리가 났다."비둘기?!"한소은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이 영감탱이가 언제 이렇게 많은 비둘기를 키운 거지?’"그냥 비둘기가 아니라 전서구다!"원 어르신은 의기양양해하며 한소은의 말을 바로잡았다."여기에 있는 모든 비둘기는 모두 전문적으로 훈련된 전서구야. 요놈들의 체구가 크지 않다고 얕보지 마. 아주 정확하게 목표 위치까지 날아갈 수 있어."“……”한소은은 눈살을 찌푸렸다."얼마나 멀게 날 수 있나요? 남아시아까지 날 수 있다는 말이세요?""할 수 있어!"노인은 매우 긍정적으로 말했다."어느 곳이든 태평양을 건너는 것만 아니면 내 전서구가 다 갈 수 있지!""시도해 봤어요?"한소은은 조금 의심스러웠다."시험은 무슨! 내가 매일 집에 앉아서 답답하지 않을 거로 생각해? 바깥일은 정말 조금도 관심이 없는 줄 알아?"그는 손에 든 부채를 들고 그녀의 머리를 한 번 두드렸다."너는 정말 내가 매일 여기서 빈둥거리며 죽기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는 거야?"“……”노인의 말에 한소은은 할 말을 잃었다.‘그래, 내가 천박한 생각을 했어!’그녀는 정말 원 어르신이 여기서 지내면서, 바깥의 소식은 모두 일하는 사람들이 전달한 것으로 생각했다.뜻밖에도 이런 수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과연 구관이 명관이다. 나이 든 사람은 그들만의 노하우가 따로 있었다.한소은이 한껏 놀란 표정을 지으며 믿지 않는 모습을 보고, 원 어르신은 고개를 저으며 입맛을 다셨다.그러고는 그녀의 옆으로 걸어가서 손으로 비둘기를 가리켰다."이 줄을 봐, 이쪽은 북쪽으로 가는 거고 이 줄은 남쪽으로 가는 거야. 그리고 저 줄은……서쪽..."그의 소개를 들으면서 서로 다른
한소은과 원 어르신은 나란히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한소은은 조금 감동했다.그녀가 말하지 않았음에도 원 어르신이 주동적으로 김서진의 소식을 알아봐 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결과가 있든 없든 원 어르신의 마음은 정말 그녀를 감동하게 했다.“스승님……”한소은은 그 자리에 서서 작게 원 어르신을 불렀다.그러자 원 어르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정말 감사해요!!!!!!”원 어르신은 뒤로 한 발 물러서며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두 손으로 팔을 문질렀다.“아이고,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닭살 돋는다니까!”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한소은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스승님, 고마워요!”“그 정도만 하라니까!”원 어르신은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나는 네가 나에게 편하게 말하는 것이 더 익숙해. 우리 둘 사이에 이 정도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지!"그의 모습을 보고 한소은은 웃기만 할 뿐 예전처럼 조롱하지 않았다."네가 걱정하는 거 이해해. 소식이 없을수록 사람이 가장 걱정하고 조급해하지. 이럴 때일수록 결정을 잘못해서 사고가 나기 쉬우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해 봐. 너는 총명한 사람이잖아.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돼."원 어르신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네!"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원 어르신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최근에 확실히 이런저런 감정에 심하게 영향을 받긴 했다.입으로는 조급해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자기도 모르게 걱정했다. 늘 놀라 잠에서 깨거나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핸드폰을 살펴보았다. 행여나 그의 전화를 놓쳤을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매일 오이연과 통화도 해야 했다. 그녀도 서한의 소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를 위로해야 했다. 사실 가장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것은 그녀 자신이다.다만 한소은은 그녀를 도발하는 사람이 알아차리게 할 수 없었다. 억지로 버티고 억지로
"무겁기는! 깃털처럼 가벼워!"원 어르신은 일부러 두 번 흔들어 아이가 조금도 무겁지 않다는 것을 표시했다.한소은은 걱정이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허리를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요.”"내 허리는 괜찮아, 너희 젊은이들보다 튼튼해!"원 어르신은 매우 즐겁게 웃었다. 그는 매번 김준이 귀찮다고 중얼거렸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김준을 엄청나게 아끼고 있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매번 그를 감싸지 않았을 것이다.한소은은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두 사람이 이렇게 장난치는 것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원 어르신은 그녀의 상태가 괜찮아진 것을 보고 더 이상 묻지 않고 김준을 안아 들고 방안을 빙빙 돌다가 다시 뒤쪽 정원으로 갔다.한소은은 그가 허리를 다칠까 봐 얼른 뒤를 따랐다.뒤편 정원은 넓고 끝없이 펼쳐진 각종 약초밭이었다. 이곳은 그야말로 백초원이따로 없었다. 공기 중에는 심지어 은은한 약초 향기까지 풍긴다."며칠 전에 나한테서 가져간 물건들, 다 썼어?"먼 곳을 바라보며 원 어르신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한소은은 그를 한 번 보고 짧게 대답했다."네.""약효는 어땠어?"“효과는 대단했어요. 며칠만 더 있으면 대부분의 독소를 배출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병을 치료하는 것은 실을 뽑는 것과 같잖아요. 깨끗이 낫게 하려면 장기적인 과정이 필요해요. 천천히 몸조리할 수 밖에 없어요."한소은은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덧붙였다."적어도 근원적인 것은 먼저 해결했어요."그녀를 중독시킨 약초들은 이미 다 옮겨 가게 했고, 방 전체에 청소와 정화를 했다.한소은은 청소가 끝났을 즘에 일부러 가서 확인도 했다. 공기 중에는 더 이상 이상한 냄새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안심되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도대체 누가 진가연에게 독을 탄 것인지, 이렇게 길고 치명적이지 않은 독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내야 한다.다만 한소은이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이것을 조사할 여력이 없었다."그럼, 그 실험실은...
"모든 일……?"원 어르신은 멍해져서 아직도 그녀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이때 어깨에 올라타고 있던 김준이 내려오려고 발버둥 치자 원 어르신은 옆에 있는 의자에서 천천히 허리를 굽혀 앉았다. 한소은은 손을 뻗어 아이를 내려놓았다. 원 어르신이 의자 뒤로 눕는 것을 보니 분명히 피곤한 모습이었다."이런 허리로 버티고 있었으면서, 아직도 자기가 젊은 사람인 줄 알아요?"한소은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늙었다고 얕보지 말라, 어쩌면 젊은 사람들보다 더 정정해!"원 어르신은 한소은이 늙었다고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허리를 삐끗했는지 아파서 꽥꽥 소리를 질렀다."아직도 잘난 척하세요?!"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한소은은 김준을 끌고 몸을 돌려 방으로 걸어갔다."이봐, 너희 두 사람. 날 여기에 홀로 남겨 두고 어디 가는 거야? 이봐, 날 좀 봐달라고!"그의 목소리는 곧 일하는 사람을 불러왔다."어르신, 어르신, 왜 그러십니까?""가가가, 너희는 상관하지 말어!"원 어르신은 손을 흔들며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 말하면서 허리가 아픈 것을 견디지 못하고, 또 말을 바꾸었다."가서 허리 아픈데 바르는 약을 가져와!"일하는 사람이 가려던 순간 한소은이 다시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허리 아픈데 바르는 약이 들려 있었다."헤헤, 역시 나의 착한 제자가 나를 알아!"노인은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고는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정정하다면서요?"한소은은 원 어르신을 한번 흘겨보더니 약을 열어 그의 허리에 살살 발라 주었다."어이구, 어이구……살살해!"한소은의 손길이 아팠는지 숨을 들이마시며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일이 있다잖아. 이제 그만 비웃어. 참, 방금 내가 한 말, 뭐가 우연의 일치라는 거야?""아무것도 아니에요."원 어르신이 말을 끊은 데다가 약을 가지러 가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자기가 너무 예민해 허튼 생각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내가 이 방면의 연
한소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예요?""나는 네가 왜 갑자기 이런 일들이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해. 어느 부분에서 이 일들이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든 거야?"논리도 이치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원 어르신의 말이 갑자기 그녀를 일깨웠다.‘그래, 왜 이 일들이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 거지? 틀림없이 어떤 곳에 공통점이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내가 아직 생각하지 못한 거지.’"연구소에서 무엇 때문에 맹렬한 독성이 있는 약초를 향료에 융합시키는 연구를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조금도 눈치채지 않고 약을 흡입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한소은은 생각하면서 분석하기 시작했다."그리고 남아시아의 전염병도 아무런 느낌도 없이 감염되었다고 들었어요. 계속 바이러스의 발원지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고 있어서 아주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죠.”"그리고 진가연은……."한소은이 잠시 멈칫하다 말을 이어 했다."이 두 가지 일과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그 애는 자신도 모르게 장기적으로 만성 독을 흡입하고 있었어요. 다만 그녀의 독은 흔적을 찾을 수 있었어요. 각종 약초의 약 성분이 섞여 있었고, 장시간 동안 섭취해 비교적 느리게 독성이 발현된 거죠."원 어르신은 열심히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중독되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이냐?""맞아요!"한소은은 허벅지를 탁 두드렸다.그래서 그녀는 너무 우연의 일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들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또 서로 갈라놓을 수 없는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그럼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해?"원 어르신이 이어서 물었다."연구소."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한소은의 눈빛은 확신에 가득 찼다.원 어르신은 눈썹을 높이 치켜올렸다."근원은 너의 그 친구가 아닐까? 너의 말에 의하면, 그 아이가 중독된 지 오래되었다고 했잖아. 시작은 그
"아니…… 준이는 내가 보살펴 주기로 했잖아? 왜……왜 갑자기 데려가려는 거야?"원 어르신은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집안으로 쫓아가 참지 못하고 한소은에게 물었다."당분간 가지 않을 거잖아요. 가기 전에 다시 여기로 데려올게요."한소은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아까는 준이를 보고 싶지 않지 않다고 했잖아요?""할아버지가 날 싫어해요?"어린 준이는 그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뜨며 마음의 상처를 입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장난감 차는 모두 땅에 떨어졌다.그런 아이의 모습을 본 원 어르신은 마음이 아팠다."그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어떻게 너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할아버지가 널 얼마나 예뻐하는데!"원 어르신은 말하면서 입을 삐죽 내밀어 김준의 작은 얼굴에 다가갔다. 그러나 김준은 얼굴을 돌려 뽀뽀하지 못하게 하면서 물었다."예뻐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그냥 널 좋아한다는 말이야! 할아버지는 우리 준이를 제일 좋아해!"원 어르신은 이 작은 아이를 마주할 때만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다만, 원 어르신이 김준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는 모습에 한소은은 한숨을 쉬며 얼굴을 돌렸다.자기의 아들이 늘 원 어르신의 수염을 잡아당기고 그의 물건을 망가뜨리는 것도 탓하지 않았다. 지금 김준의 작은 얼굴도 원 어르신의 수염에 비참하게 유린당하고 있다.——원철수는 실험실에서 며칠 밤을 새워 마침내 그가 원하는 결과를 보았다.‘성공했다!’이번 성공은 이전과 다르다. 이번에는 완전히 원철수가 홀로 노력해 얻은 것이다. 새로운 약초인 데다가 그의 약 성분을 향료에 융합시켜 흡입한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편안해지고 초조하고 컨트롤 할수 없는 정서가 평온해지게 하는 효과를 준다.효과를 보장하기 위해 그는 일부러 흥분제를 투여한 실험용 흰쥐에게 몇 번이나 실험한 적이 있는 데 확실히 성공한다. 이번 약효의 효과가 아주 좋았다. 이는 그를 비할 데 없이 흥분시켰다.원철수는 자기가 꼭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