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이 언제 장유나에게서 자물쇠 따는 일을 배웠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한소은은 자기의 아들이 절대로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김준이 작은 머리로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장유나,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야?’--새벽 5시, 주효영은 드물게 연구실에서 집으로 돌아갔다.주효영은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위층으로 올라갔다.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외에 집은 조용했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그녀가 위층으로 올라가 방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배가 고파서 일어난 주 부인이 조용히 들어가는 주효영을 보고 깜짝 놀랐다."효영이니?!"주 부인의 말에 놀란 주효영이 고개를 돌리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주 부인을 응시했다.눈을 비비고 진짜 딸인 것을 확인한 주 부인은 극도로 흥분하며 말했다."효영아, 집에 왔었구나! 왔으면 엄마한테 말하지. 왜 이렇게 일찍……. 아니지, 이제야 돌아온 거야?"밖에서 막 돌아온 것 같은 그녀의 몸에 이슬 냄새가 배어 있는 옷을 보며 주 부인은 가슴이 아팠다.한 손을 주효영의 팔에 대고 다른 한 손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불쌍한 우리 딸, 눈 밑에 다크서클이 다 생겼네."주효영은 피곤한 듯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그녀의 손을 피하면서 말했다."자러 갈게."주효영의 뜻은 명백했다. 피곤해서 눈 밑에 다크 서클까지 생겼으니 귀찮게 하지 말고 자게 내버려 두라는 뜻이다.그러자 주 부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서 자. 편하게 자. 방해하지 말라고 할게!""응."주효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닫힌 문을 바라보며 주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뻐했다. 딸이 돌아온 것을 보고는 졸음이 싹 사라졌다.딸이 돌아왔기 때문에 오늘은 외출하지 않고 딸과 함께 집에 있을 예정이다.주효영이 아직 어렸을 때, 주 부인의 모든 관심은 진가연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당시 가족 사업은 지금처럼 번창하지 못했고, 높은 지위에 있는 진가연의 아
주효영은 작은 나무 박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잠시 생각하다 다시 연필꽂이를 앞으로 가져왔다.뒤돌아서 몇 걸음 걷다 다시 돌아와서 나무 박스를 연필꽂이에 넣었다. 기다란 나무 박스는 연필꽂이 딱 들어갔다. 그런 것도 모자라 연필을 몇 개 더 빼내고 나서야 주혀영이 한숨을 돌렸다.그녀는 잠옷과 타올을 들고 욕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했다.최근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연구소에도 샤워실과 휴게실이 있지만 편하지는 않았다. 그저 간단하게 샤워하고 잠깐 잘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었다.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니 온몸의 피로가 풀려 잠이 들 정도였다.한참이나 지나서야 주효영이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언제 잠든 거지?’주효영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순간 정신이 번쩍 든 주효영은 욕조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곧바로 목욕가운을 입고 문 앞으로 갔다. 밖의 발소리는 이미 멈추었지만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 같았다.주효영은 경계하며 문을 확 열어젖혔다.“끼익!”“에구머니나!”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주 부인의 비명이 들려 왔다. 그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주 부인은 원래부터 걸음걸이가 조용조용했다. 욕실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불은 켜져 있어서 딸이 샤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효영을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문이 열리는 바람에 주 부인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여기서 뭐 하는 거야?”주효영이 안잖은 표정으로 주 부인에게 물었다.“아니, 네가 이 시간의 집에 돌아왔으니 아직 밥을 안 먹었겠다 싶어서. 아주머니 시켜서 아침 차려왔지.”주 부인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아침을 가리키며 억울한 듯 말했다.공교롭게도 아침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니 원래 테이블 위에 있던 물건들이 옆으로 밀렸다.그것을 본 주효영이 흠칫 놀라며 빠르게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주효영은 연필꽂이를 자세히 보며 나무 박스가 아직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조금 놓인듯했다.그
“효영아, 또 그런 말 한다. 엄마가 전에도 그랬잖아. 그 말들은 모두 가연이를 달래려고 한 말이라고. 엄마가 이렇게 하는 이유도 수도 없이 말해 줬고. 만약 네 고모부가 아니었다면 우리 집은…….““진정기가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은 지금처럼 호의호식하면서 살수 없다고.”주효영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런 말을 귀에 딱지가 지도록 들었었다.“이런 거 듣고 싶지 않아. 이미 많이 들었단 말이야. 엄마와 아빠가 고모부에게 잘 보이려 하는 거지 난 아니야! 난 고모부의 덕을 볼 생각도 한 적 없고 고모부에게 빌붙어 살 생각도 없어. 그건 모두 엄마와 아빠의 일이지, 나 주효영은 그런 거 필요 없어!”“효영아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주 부인은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주효영의 짜증이 가득한 얼굴을 보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알았어. 그만 말하면 되잖아! 더 말하지 않을게! 넌 이제 다 컸으니, 엄마와 아빠의 고충을 이해해 줄 거라고 믿어. 그렇지? 더 이상 아이처럼 떼쓰지 마!”주 부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효영을 타일렀다. 그녀는 있는 힘껏 자기와 딸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주효영은 아무 말도 없이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연필꽂이를 이리저리 만지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그런 주효영의 모습을 보면서 주 부인은 할 말을 잃었다. 주 부인은 이렇게 자기에게 무심하고 차가운 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다. 그녀는 어떻게 딸과 소통하고 어떻게 두 사람 사이를 조금 더 가깝게 할 수 있을지 몰랐다.“효영아,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 일단 뭐 좀 먹어. 네 입맛에 맞지 않다면 주방 아주머니보고 다시 하라고 할게. 먹고 자는 게 더 편할 거야.”주 부인은 다시 부드러운 소리로 주효영을 타일렀다.시선을 연필꽂이에 고정한 주효영이 담담하게 말했다.“다른 일 더 없지?”그 말인즉 다른 일 없으면 나가라는 말이다.“…….”주 부인은 입술을 깨물며 게면쩍어
주효영의 경멸하는 듯한 말투에 주 부인이 급하게 말했다.“효영아, 네가 그 신의를 못 뵈어서 그래. 그 분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 다른 건 몰라도 이렇게 많은 의사들 중 그 사람만이 가연이가 독에 중독되었다는 걸 알아차렸어.”“보통 비만이라고 말하지 않은 게 벌써 대단한 거야. 게다가 그 분이 준 처방 약을 먹고 가연이가 정말 좋아졌어.”“그래? 얼마나 좋아졌는데?”주효영은 주 부인의 말이 가소롭다 느껴져 보일 듯 말 듯 한웃음을 지었다.주 부인은 이런 주효영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주효영이 진가연을 걱정하는 게 드물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주효영이 자기와 말을 몇 마디 더하는게 좋아서 이 화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설이 조금 빠진 거 같긴 한데, 원래부터 뚱뚱했으니 살이 빠지는 게 한눈에 알아봤을 거야. 하지만 얼마나 살을 뺄 수 있느냐가 관건이지. 전에는 기력이 딸려 보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고.”“다만, 요즘 가연이네 집에 갈 때마다 얼마나 낯선지 몰라. 그 곳에 갈 때마다 다른 사라짐에 가는 것 같다니까.”주 부인은 자기가 진가연의 집에 갔을 때의 텅 빈 모습을 보고 도둑이 들었다고 생각했던 게 웃긴다고 생각했다.자기의 엄마가 난데없이 미소를 짓자 주효영이 궁금함에 물어보았다.“왜 낯설어? 어디가 달라졌는데?”“크게 달라진 건 아니고 전에 네가 가져다 놓으라고 했던 꽃이고 풀이고 다 없어졌더라고.”주 부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그게 다 없어졌다고?!”주효영은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 그 모습에 주 부인도 놀라 펄쩍 뛰었다.딸의 반응이 이렇게 클 줄 몰랐던 주 부인은 무의식적으로 딸이 꽃과 풀을 아까워한다고 생각했다.“그렇게 놀라지 마. 누가 훔쳐 간 게 아니고, 잠시……다른 사람한테 빌려준 거야. 나중에 다시 가져온댔어.”“빌려줬다고?! 누구한테?”주효영은 그 자리에서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 방금까지의 차가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아니…… 걱정할 거 없어
엄마의 성격을 잘 아는 주효영이 다시 한번 강조하며 말했다.“정말 필요 없어서 그래. 또 마음대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만약 가져오면 내가 다 버릴 거야. 알겠어?”“알았어, 알았어!”주 부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저기의 딸이 한다면 하는 성격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참 나, 필요 없다면 좋게 좋게 말할 것이지 화를 내긴!’주효영은 핸드크림을 꺼내 느릿느릿하게 손에 바르며 물었다.“그러니까 한소은이라는 그 여자가 모든 약초를 가져갔다고?”“아마도? 아무튼 지금 네 고모부 집에는 풀 한 포기도 보기 힘들 정도야.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가져갔더라고. 집이 썰렁할 정도라니까!”주 부인은 두 팔을 잡으며 오들오들 떠는 듯한 시늉을 했다.“그 한소은이라는 여자, 의학을 배운 적 있어?”주효영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주 부인의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고 한마디 덧붙였다.“전에 한소은이 진가연에게 무슨 식이요법으로 몸조리해 준다고 하지 않았어?”“에이~”주 부인은 무슨 말을 하냐며 손을 저었다.“그 여자는 의학을 배운 적도 없으면서 막 하는 거야. 그 여자가 뭘 안다고! 이런저런 얘기 둘러대면서 네 동생에게 거짓말을 했겠지! 그런 말은 가연이 그 바보만 믿지 누가 믿어?”“그게 정말이야?”주효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주 부인의 말을 믿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주 효영은 자기의 어머니를 너무도 잘 알았다. 그녀는 항상 저기의 주관대로만 한 사람을 판단하곤 했다.신의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원철수와 한소은도 이러했다.전에도 진가연에게 수도 없이 많은 의사를 찾아준 적이 있다. 심지어 의사가 아닌 사람도 찾았었다. 주 부인은 그 사람들에게도 신의라 불렀다.하지만 주 부인은 자기의 딸 주효영이 진짜 신의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렇기 때문에 주효영은 항상 주 부인이 한 말 중에서 쓸모 있는 말만 구분해서 듣는다.“그렇다니까!”이렇게 말하고 주 부인은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주효영이 차가운 얼굴을 하고
진가연이 약을 꿀꺽꿀꺽 마시는 모습을 보고 한소은이 그녀에게 휴지를 건넸다.“마실만 해?”진가연은 입가의 약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맛 괜찮은데?”“맛이 괜찮다고?”한소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옆에서 냄새만 맡아도 코를 찌르는데 진가연은 맛이 괜찮다고 하니 한소은은 어리둥절했다.한소은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자 진가연이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던 물잔을 들어 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전에 이상한 약을 하도 먹어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전에 마셨던 약은 쓴 것도 모자라서 맛이 구역질 날 정도였거든. 그때는 정말……”진가연은 손을 저으며 더 말하지 않으려 했다. 한마디라도 더 하면 금방이라도 토할 거 같았다.“살 때문에?”한소은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과연, 진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거 말고는 없잖아. 아무튼 예전에 정말 고생 많이 했어.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그 많은 약을 먹고 의사에게 진료받았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는데.”“차라리 마음껏 먹기라도 했으면 즐겁게 지냈을 텐데 말이지. 정말 그랬다면 지금쯤 600군이 나가는 뚱보가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금 몸무게를 유지 했을지도 모르지. 적어도 이렇게 많은 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거야.”그동안 고생했던 것들, 몸이 겪은 고통과 다른 사람의 이상한 눈빛…… 모두 다 참아 냈지만, 받았던 상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한소은은 그런 그녀가 마음이 아팠다.“이제 다 괜찮아 질 거야. 다 괜찮아 질 거야.”“응! 나도 그럴 거라 믿어!”진가연은 한소은과 알고 지낸 후부터 모든 걸 다 내려놓은 듯이 해탈해졌다.몸이 점점 더 편해지는 건 물론이고 마음도 예전처럼 답답하지 않았다. 진가연은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마치 자기가 아닌 것처럼, 아니, 새로운 자기가 된 것 같았다.“참, 소은 언니. 방금 내가 마신 거 뭐야?”진가연은 방금 자기가 무엇을 마셨는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마셨다.그러자 한소은이 웃으며 대답
“아줌마가 안 된대……”김준은 되돌아서서 작은 손으로 위층을 가리켰다.“엄마와 누나가 할 얘기가 있다고 했어.”나이가 아직 어린 김준은 간단한 말만 할 줄 알았다. 말이 아직 문장을 우리지 못했다.그녀는 아이가 언어 표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해 한동안 걱정했었다. 나중에 문의하고 조사해 본 결과 김준이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언어 표현 능력이 더 뛰어나가는 걸 발견해 한시름 놓았다.이 나이의 아이들은 완벽한 문구를 말해내는 것이 아직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정확한 표현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일이다.김준의 말을 듣고 한소은과 진가연은 거의 동시에 위로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은 곧바로 위층 계단 쪽에 있던 장유나에게로 쏠렸다.장유나는 두 사람의 시선을 확인하고는 게면 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도련님께서 방해할까 봐 내려가지 못하게 했어요. 방금 갈아입을 옷 가지러 간 사이에 이렇게 도망 나왔네요.”“알았어. 준이는 내가 잠시 돌보고 있을 테니 넌 가서 일해.”한소은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러자 장유나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진가연은 김준을 품에 안고 걸어와 소파에 앉았다.“소은 언니, 베이비 시터가 생각보다 젊은데?”“아마 이제 서른 조금 넘었을 거야. 젊긴 하지.”한소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보기엔 서른 살도 안 된 거 ? 이제 스무 살 남짓한 거 같아. 생긴 것도 예쁘장하던데. 이런 보모를 집에 두는 게 걱정되지 않아? 만일이라도……”진가연은 더 말하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뒷말을 흐렸다.“왜, 혹시라도 서진 씨가 베이비 시터와 바람피울까 봐? ”한소은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그녀가 이렇게 바로 말하니 진가연은 조금 게면적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이 여자가 아무리 예뻐도 소은 언니보다는 안 이뻐! 언니는 일도 잘하고 그렇게 대단한데 내가 남자라도 언니를 좋아할 거야!”“나도 엄마가 좋아!”옆에 있던 김준도 배시시
진가연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한소은은 그녀가 약을 마신 후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일부러 늦게 집에 가게 했다.오후 내내 총 5번 화장실에 갔고 복통이 세지는 않았지만 배가 계속 꾸르륵거리고 방귀가 많이 나와 진가연은 부끄러워했다. 몇 번이고 당장 집에 가고 싶었지만, 한소은에게 제지당했다.한소은은 이것이 약의 효과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며 당황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주었다. 다음번의 약 성분을 조정하기 전에 이번의 약이 문제가 없는지 직접 관찰해야 한다고 말해서야 진가연이 고분고분 그녀의 말을 들었다.전에 진가연은 원철수가 처방한 약을 써보는 건 어떨지 물어보았지만, 한소은은 두 처방이 서로 충돌할 수 있으니 정말 써보고 싶다면 자기가 처방한 약을 먹어본 후 원철수가 처방한 약을 먹어도 늦지 않는다며 허락하지 않았다.이제 진가연은 한소은을 100% 신뢰하게 되었고,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포기했다.마지막으로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진가연은 몸에 힘이 별로 없고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갔다 나온 것처럼 땀에 흠뻑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날씨에는 이렇게 많은 땀의 힐링을 리가 없었다. 진가연은 자기가 너무 피곤해서 이런다고 생각했다."이러다…… 탈수증상이 오는 건 아니지?"진가연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배를 만졌다.전에도 이런저런 다이어트약을 먹었을 때 설사를 한 적이 있었다. 결국 탈수증까지 와서 병원에 실려 가 식염수를 맞고 의사에게 호되게 혼난 적이 있다.이번에도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아니, 넌 체질이 약하고 가래가 많아서 이건 정상적인 반응이야. 배에 통증이 많이 느껴져?" 한소은이 진지하게 물었다.잠시 배의 통증을 느껴보고 진가연이 고개를 저었다. 배에서 계속 꼬르륵하는 소리를 제외하면 정말 저번에 배탈이 났을 때와 달랐다."그러면 괜찮아, 돌아가서 물을 더 마시고 좀 쉬어. 하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더 이상 마시지 마. 부종이 생길 수 있으니까. 내일도 와. 이 처방을5일 동안 먹으면 큰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