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들었을 때 그가 지금 한소은이 매우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는 눈앞의 여자가 대단한 사람들을 쉽게 존경하고 숭배할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자신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놓고 보면, 다른 사람들은 그가 원 어르신의 마지막 제자라는 것을 알고 있고,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대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어머니가 자기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 대한 존경심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심지어 자만함이 느껴지기도 했다.수년 동안 그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봐왔었다. 어쩌면 주효영도 그와 같은 자만한 사람일 것이다.이 연구소에 머물 수 있고 이 교수와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이라면 분명 유능한 사람일 것이다. 특히 능력이 있는 젊은 사람은 모두 자만하기 마련이다. 만약 한소은이 이 연구소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았는지 알게 된다면 주효영은 분명 질투에 눈이 멀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주효영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아주 유능하다고요?”"같은 프로젝트팀에 속해 있지 않아서 아쉽네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텐데요."원철수는 웃으며 불에 기름을 부었다.주효영이 대수롭지 않은 듯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당신은 그 여자랑 같은 프로젝트팀이죠? 그 여자에게서 많이 배웠을 거 같네요."그녀의 말에 원현철의 얼굴은 파리를 삼킨 것처럼 역겨워 얼굴에 걸렸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원래는 불을 붙이려 했지만, 주효영의 담담한 한마디가 순식간에 그의 심장을 조일 줄은 몰랐다."허허……."그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서로에게 배우는 거죠!”그는 한소은에게 배우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한소은이 그럴 가치가 없는 여자라고 생각했다!주효영은 몸을 바로 세우고 원철수의 차에서 손을 뗐다. 아마 하고 싶은 말이 다 끝난 듯 두 걸음을 앞으로 내딛다가 갑자기 돌아서며 말했다.“그런데 내 사촌의 병은 그 얼마나 많은 유명한 의사도 해결하지 못했어요. 당신의 명성을
날카로운 소리는 마치 그녀의 심장에 떨어진 것처럼 그녀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녀는 더 이상 정신을 가다듬을 힘이 없는지 멍하니 부서진 파편만 바라보았다.무의식적으로 쪼그리고 앉아 파편을 집으려던 순간 오이연이 그녀를 말렸다."움직이지 마, 내가 할게!""미안해 ……"한소은은 정신을 차릴 수 없어 그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미안하긴, 언니 작업실인데."오이연은 웃으며 농담을 건네며 그녀의 우울한 기분을 풀려고 노력했다.오늘 하루 종일 한소은은 정신이 어디에 팔렸는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오이연의 눈에 담겼지만, 그녀가 입을 열지 않았기에 오이연은 캐묻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지금 이런 모습을 보이니 더 이상 일을 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나가서 쉬어, 내가 알아서 할게!"한소은을 반쯤 밀쳐낸 오이연은 바닥에 남은 잔해들을 치우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향수를 만드는 향료가 모두 옆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깨지거나 흘려도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이다.정리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소파에 앉아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는 한소은의 모습이 보였다."김 대표님이 아직 답장 안 왔어?"오이연은 한소은에게 다가가 보온병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전기 포트에 물을 끓여 놓고 그녀 옆으로 갔다.김서진이 출장한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오이연도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서한도 김서진을 따라갔다. 그러니 그녀는 한소은의 걱정을 이해했다."서한 씨한테서 연락해 왔어?"한소은은 고개를 돌아 오이연을 바라보며 물었다.오이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괜찮을 거야, 출장이 처음도 아니잖아. 그 사람들한테는 비행기 타고 해외에 가는 게 출출퇴근하는 비슷하잖아.”과거에는 큰일이 없으면 당일 아침에 가서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번 출장은 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이번에는 이틀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오이연이 말한 것은 한소은도 다 이해한다. 다만, 왠지
"그런 셈이라니?"오이연은 조금 궁금했다.‘맞으면 맞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런 셈은 뭐야?’"체중 감량을 돕는다기보단 병을 치료해 주고 있다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이야."찻잔 겉면에는 화상 방지 커버가 있어 그리 뜨겁지 않았지만, 가까이 갖다 대니 뜨거운 김에 꽃차의 향기가 섞여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병을 치료한다고?"처음에는 어리둥절했던 오이연이 문득 알아차렸다."일부 비만은 질병이었지. 내분비 장애였던가?"하지만 한소은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다시 침묵을 지키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수면 위에 떠 있는 꽃차를 부드럽게 불었다.오이연도 그녀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잠시 후 한소은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아직 모르겠어, 그냥 추측일 뿐이야,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그래."오이연이 차를 마시려 자신의 컵에 손을 뻗었다가 그녀의 손가락이 컵에 닿자마자 한소은이 갑자기 물컵을 내려놓고 일어서며 말했다."나 잠깐 나갔다 올게.”"어디 가려고?"오이연은 깜짝 놀라 컵을 만지던 손이 뒤로 움츠러들었다."누굴 만나서 물어볼 게 있어.""나 기다릴 필요 없어, 오늘은 아마 안 돌아올 거야. 너도 여기 있지 말고 먼저 돌아가!"오이연은 그녀의 다급한 모습을 보고 멍하니 서있다 대답했다.“알았어.”그러고는 마음이 불안했는지 한소은을 쫓아가며 한마디 덧붙였다."언니, 운전해서 가지 말고 택시 타. 지금 언니 마음이 안정적이지 않아서 위험해. 알았지?”"알아, 택시 타고 갈게!"한소은은 재킷과 가방을 들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너도 조심해서 택시 타고 돌아가! 다른 생각은 하지 마, 알았지?"그녀의 말에 오이연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이런 상태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걱정하는 그녀에게 고개를 힘껏 끄덕이며 그녀를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그녀가 여전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본 오이연은 어쩔 수
"환영하지 않아요?"한소은이 걸어 들어오면서 말했다."당연히 환영하지, 내가 어떻게 환영하지 않을 수 있겠어!"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지금……."노인이 음식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자 한소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최근 의사가 매운 음식은 적게 먹어야 한다고 했어요.""그럼 넌 못 먹겠네, 고추를 많이 넣었거든, 아이고, 아쉽다!"입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 노인은 젓가락질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열심히 먹어댔다.한소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할 말을 잃었다.세계적으로 유명한 신의의 가장 큰 취미가 먹는 것이었고, 더욱 기이한 것은 그가 다른 사람이 자기의 음식을 빼앗을까 봐 경계한다는 것이다!매번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음식을 빼앗아 갈까 봐 두려워했고, 한소은이 관심 없다고 분명히 말해도 그는 여전히 음식을 입으로 넣으면서 경계를 낮추지 않았다.식사를 하던 중 노인이 문득 물었다."참, 네 실험이 성공했다고 들었어! 나쁘지 않네! 내 제자 더워!"노인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밖의 사람들은 한소은이 자신의 마지막 제자라는 사실을 몰랐지만, 제자가 성취를 이룰 때마다 자기가 바로 그녀의 스승이라는 사실이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 것 같았다."어떻게 알았어요?"이 말을 한 순간, 한소은은 문득 생각이 났다."그 친척인 손자가 알려줬어요?""그런 소리 하지도 마. 그는 내 손자가 아니야!"원철수가 손자라는 것이 무슨 불운인 것처럼 몇 번이나 침을 뱉은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녀석은 재능이 좀 있지만……."그러면서 입에 고기를 한 조각 더 넣었다.그러다 다시 고개를 흔들며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다시 말을 삼켜버린 듯한 느낌이었다.한소은은 이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노인은 원래 괴짜였다. 당시 그녀가 재능이 있고 약초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며 그녀를 제자로 받으려고 했다. 다만 그때 그녀의 마음은 오직 향료에 집중되어 있었고 몇 번 거절하다 보니 그가 더욱
"그게 아니라, 너희 연구소에 쓸데없는 일이 너무 많잖아! 걔네는 도대체 뭘 하는 거야?""이번에는 연구소가 아닙니다."고개를 저으며 한소은은 말했다."다른 일입니다. 저는 단지 이런 발견이 있다는 거지, 정말 가능한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가능성은 존재하지만,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아요! 약초의 흡수 정도를 연구한 데이터가 많기는 하지만 지금 휘발 흡수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고 서로 융합을 해야 하는데 위험성도 매우 높아요! "어르신은 물을 들고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이런 실험을 하려면 어떤 물건으로 실험 대상을 만들어야 더 직관적이고 정확한 데이터를 가져올 수 있을까?""원숭이……로?" 그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원숭이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생리적인 불편함, 통증 등등 알아볼 수가 없었고 다른 동물이라면 더욱 불가능해."그는 고개를 저으며 물을 한 잔 더 마셨다."만약……사람이라면요?""실험이 성공하면 당연히 사람에게 응용해야지, 내 말은……."말하다가 어르신은 갑자기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네 말은, 사람으로 실험을 한다고?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한다고?!"그의 목소리는 약간 떨림이 있었다.결과가 확실하지 알지 못한 상황에서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하면 그건 살인과 다름이 없다. 그는 얼굴색이 변하여 한소은을 보면서 말했다"넌 무엇을 발견했니?”"단지 추측일 뿐,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그녀가 말했다."하지만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이해했어요!"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고 가려고 했다."맞다, 그 뇌공등은......""응?" 눈을 깜박거리며 어르신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셨다.‘내가 무슨 말을 했길래 알겠다는 거야?’"저한테 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다음에 제가 가져갈게요!"한소은은 웃으며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야, 뭐를 약속해! 누가 너랑 약속했어!" 정신을 차린 어르신은 소리를 지르며 황급히 일어섰다."그리고
진가연은 기쁘게 집에 돌아와 주 부인이 오는 것을 보았다.이번에 그 의사도 있었다. 분명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가연은 갑자기 좀 짜증이 났다.‘필요 없다고 했잖아, 다음부터 오지 말라고 해야 되겠네.’진가연은 기분이 좀 별로지만 그래도 입을 열었다 ‘외숙모, 안녕하세요.’"가연아, 돌아왔구나, 너 요즘 늦게까지 돌아다니고 너희 아버지가 걱정하지도 않니!""저도 성인인데 이상한 곳도 가지 않았는데 뭘 걱정해요. 근데 요즘 외숙모는 아주 심심하시나 봐요. 맨날 우리 집에 오시네요."그녀는 옆에 있는 원철수를 바라보고 계속 말했다."그리고, 곁에 정체불명의 남자가 자꾸 따라다니는데 우리 외삼촌이 알면 질투하지 않아요?"그녀는 일부러 농담처럼 말했고, 주 부인은 멍하니 있다가 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애가 또 무슨 헛소리야! 이분은 의사 선생님이시고, 너도 본 적이 있잖아! 그리고, 네 외삼촌도 알고 있거든. 농담 좀 그만해라!"말하다가 한 걸음 물러서서 그녀는 계속 말했다.“의사 선생님이 아주 바쁘신데도 와서 너를 치료해 주시는데 감사할 줄 알아야지. 병이 나으면 너도 건강해지고 네 아버지도 기뻐하실 거잖아."그녀는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원철수를 바라보았다. 진가연의 태도가 의사 선생님 기분을 나쁘게 할까 봐 두려웠다.주 부인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의사 선생님이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녀에게 찾아와서 지금 시간이 있느냐고 물었다.주 부인은 원철수의 말을 듣고 바로 차를 몰고 진씨 가문으로 왔다.진가연이 또 한소은한테 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주 부인은 진가연이 일부러 돌아오지 않을까 봐 그녀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서 계속 기다렸고, 하인에게도 알려주지 못하게 했다.원래 원철수가 귀찮아할까 봐 걱정했는데, 뜻밖에도 그는 이상하게 인내심이 있어서 거기에 앉아 차를 마시고 핸드폰을 가지고 놀았는데, 조금도 초조하고 답답한 모습이 없었다.주 부인은 한숨을 돌리는 동시에 약간 궁금함도 있었다.
"원 선생님……."주 부인은 그가 화낼까 봐 걱정되어 해명하려고 했다.그러나 원철수는 그녀를 무시하고 계속 진가연을 바라보았다.진가연은 몸을 돌려 그를 마주하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선생님의 알 바가 아니잖아요?"원철수는 웃고 계속 말했다."그리고 합리적인 음식만 먹으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살까지 뺄 수 있다고 했었죠?”진가연은 의심스럽게 그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주 부인이 갑자기 말했다."저게 말이야 방구야. 다이어트를 하면 어떻게 배부르게 먹어? 배부르게 먹으면 어떻게 살을 빼? 가연아 너 믿지 마라.""아니요, 그녀의 말이 맞아요." 뜻밖에도 원철수는 이렇게 말했다."???"주 부인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당신도 그녀가 한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어느덧 진가연은 그에 대한 태도가 좋아졌다."어느 정도요." 원철수가 담담하게 말했다.사실 다이어트를 해보면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방이나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 비타민 석이섬유가 많이 든 음식을 먹으면 천천히 살을 뺄 수가 있다.하지만 진가연의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이렇게 간단하게 살을 뺄 수가 없다."무슨 뜻이죠?"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고 궁금한 듯 물었다."진맥 한번 해보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원철수는 그녀를 바라보고 말했다.진가연은 망설이다가 자기 손목을 보고, 또 고개를 들어 원철수를 보았다.옆에 있던 주 부인은 얼른 말했다."가연아, 진맥 한 번 해봐!"말하면서 주 부인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러나 진가연은 갑자기 뒷짐을 지고 말했다."싫어요!""아이고, 이 애가 참……."그녀의 손을 잡지 못해서 주 부인은 화가 났다.원철수는 오히려 담담하게 웃었다."싫은 것보다 두려운 것 같은데요?""참나, 제가 무서울 게 뭐 있어요!"웃으면서 진가연이 말했다."약 올리지 마시죠!""한소은과 친구니까 그녀가 한 말이 틀렸나 봐 두려운 거겠죠?""가연아, 말 좀 들어라! 한소은은 그냥 제향
원철수는 진맥하면서 매우 엄숙해 보였다.진가연의 마음이 여전히 불안했다.그녀는 예전에 병원 많이 가봤지만 병인을 찾지 못했다.그 후에 한약을 한동안 먹어봤는데, 너무 써서 울고 싶었다. 결국엔 효과도 별로 없었고 천천히 포기했다.헬스장도 가 본 적이 있다. 그녀가 너무 뚱뚱해서 격렬한 운동을 하지 못해서 천천히 걸을 수만 있었다. 하지만 끝나고 더욱 배고파져 오히려 역효과가 생겼다.노력해도 소용이 없으니까 그녀도 천천히 포기했다.요 며칠 동안 진가연은 한소은의 집에서 아주 즐거웠다. 다이어트 생각을 하지 않고 마치 방학과 같았다.그러나 지금 또다시 진료를 받아서 진가연은 아주 불안했다.그녀도 치료받고 싶지만 한소은의 말을 더 믿고 싶었다.그녀가 생각하고 있을 때 진맥이 끝났다."어때요?" 주 부인은 긴장해서 바로 물었다.그러나 원철수는 입을 열지 않고 진가연만 쳐다보았다.진가연은 좀 불편해서, 고개를 숙이고, 또 고개를 들었지만, 왜 자기를 쳐다보는지 이해 못 했다."뭘 보세요?""항상 졸음이 오지 않나요? 앉아서도 잠을 잘 수 있죠? 때때로 자신의 식욕을 억제할 수 없다고 느끼지 않나요? 많이 먹어도 전혀 배부르지 않고 심지어 토할 때까지 먹을 때도 있었죠?”그는 한꺼번에 여러 개 질문을 했다.진가연은 멍하니 있다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옆에 있던 주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역시 선생님이 대단하시네요."주 부인은 매우 알랑거렸다.하찮게 비웃자 진가연이 말했다."뭐가 신기해요. 뚱뚱한 사람은 다 이래요. 이전 의사들도 말한 적이 있어요.""가연아, 함부로 말하지 마!"주 부인은 작은 소리로 질책하자 계속 물었다."그럼 어떻게 치료해야 되나요? 한약을 먹어야 되나요?""네, 맞습니다." 원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의 이 말을 듣고 진가연은 말했다."역시!"그녀는 이전에도 한약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의사에 대해 신뢰감도 다 사라졌다."아니요, 필요 없어요."진가연은 담담하게 말했다."약은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