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건 그가 예상했던 대답이었다.그러나 그의 미소는 원철수가 거짓말이 들킨 그런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자신이 원 어르신의 마지막 제자라고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소문을 퍼뜨렸고 자기 자신도 일부러 부인하지 않았다. 지금 이 교수의 눈빛은 마치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몇 년 전부터 어르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외부 손님을 만나지 않으려 하십니다. 하지만 이 교수께서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제가 대신 물어볼 봐 드릴게요."원철수가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이 말의 의미는 그와 원 어르신의 친밀한 관계가 이례적이며, 그를 만나게 해줄 수는 없지만 한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정말?"예상대로 이 교수는 이 말을 듣고 조금 놀란 눈치였다."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야. 마침 해결하지 못한 두 가지 문제가 있었거든, 철수야, 시간 있으면 원 어르신에게 조언을 구해줘.""당연하죠."원철수는 허리를 곧게 펴고 미소를 지으며 이제야 체면을 되찾은 것 같다고 느꼈다.가볍게 몇 마디 더 나누고 이 교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원철수는 밤을 새운 뒤라 휴식을 취하러 가려고 했다.옷을 갈아입고 주 부인의 조카?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원래 이런 종류의 문제에 대해 그는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충 상황을 전해 들었고, 그 사람의 얼굴도 보았다. 그냥 단순한 비만 문제라고 확신했다. 이런 상황까지 이른 것은 본인이 식탐이 많거나 게으르게 주요 원인이다. 기껏해야 내분비 장애가 있을 뿐이다.그런 사소한 문제에 대해 그는 한마디라도 더 하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하지만 이번에는 한소은이 개입했다는 점이 달랐다.그 뚱뚱한 소녀는 한소은의 말을 곧잘 들었다. 반면 자신을 완전히 불신하고, 그가 사기꾼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한소은이 그녀 앞에서 무언가를 말했을 수도 있다. 이럴수록 그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여자는 그의 분노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재밌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나도 당신을 잘 몰라요. 하지만…….""말했으니 이제 아는 사이라고 쳐요."그녀의 말에 원철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세상이 바뀌었구나! 언제부터 여자가 이렇게 대담하고 미치게 된 거지?’앞서 매번 그와 맞서 싸우고, 그와 경쟁하려던 한소은이 있는가 하면, 이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여자가 나타났다. 게다가 이 여자도 연구소에 속한 사람이다.‘연구소의 모든 여성이 다 이렇게 미친 사람인 건가?’그 여자도 연구소 소속이고 이 교수도 그녀가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람이라고 한 말이 떠올라 원철수는 즉시 마음을 진정시켰다."네, 하지만 여긴 얘기를 하기 좋은 곳이 아닌 것 같은데 다른 데로 갈까요?"그는 흘끗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여기 근처에…….""그럴 필요 없어요."여자는 원철수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여기서 해요.”"여기서요?"원철수는 주차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실험실 건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고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출근 시간이 임박했으므로 사람들이 드나들 것이 분명했다.여자는 몸을 돌려 차 문에 기대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래요, 바로 여기서 얘기해요! 대낮에 넓은 곳에서 얘기해요. 말이 끝나면 바로 갈 거고 당신 시간을 오래 빼앗지 않을 거예요." "……."‘꽤 쿨한 사람이네!’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원철수는 손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당신이 정말 원 어르신의 마지막 제자인가요?"그녀가 한발 다가서며 직설적으로 물었다."아니라면요?"원철수가 웃으며 대답했다."아니라면 당신은 여기저기서 사기를 치고 다녔다는 말이군요!""……."원철수는 큰 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아니라는데 왜 사기를 쳤다는 거죠? 이보세요, 당신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당신이 아니라면 왜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그렇게 말하죠?"여자의 말 한
여자의 눈은 날카롭게 그를 응시했고, 얇은 입술이 움직이며 "주효영"라는 단어를 뱉어냈다."주……효영 ……."원철수는 이름을 따라 읽으며 머릿속으로 이런 사람을 아는지 확인해 보았다. 결론은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었다."당신도 연구소 출신인가요? 이 교수님이 다른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프로젝트인가요?"주효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내 사촌 동생을 치료하고 싶다고요?""누구요?!"원철수는 바로 반응하지 못하고 멈칫했다."진가연."주효영이 이어서 말했다,"우리 엄마랑 약속하지 않았어요?"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원철수가 순간 기억해 냈다."그 뚱뚱한 …….”이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려 했을 때 그는 부적절하다고 느껴져 말을 바꾸었다,"아 ,주 부인의 딸이었군요.""치료할 방법이 있어요?"주효영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퉁명스럽게 물었다."물론 방법이 있죠. 비만 증후군은 치료하기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병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협조가 필요해요."원철수는 애매모호하게 대답하는 데는 도가 텄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은 아무도 트집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완벽했다,주효영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서 있던 자세가 조금 지쳤는지 자세를 바꾸고, 여전히 가슴에 손을 감싸고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간단하다고요?""맥을 짚어보고, 한약을 처방해서 몸조리하면 될 거예요. 그녀의 증상은 자신의 통제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내분비 장애, 신진대사를 조절해야만 천천히 체중이 감소할 거예요."원철수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이 끝나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아니지, 내가 왜 이 여자가 묻는 것에 고분고분하게 대답하고 있는 거야? 이러면 이 여자가 주도권을 갖는 거잖아.’이렇게 생각하니 원철수는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말에 대답하다니, 마치 말 잘 듣는 학생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 같았다.정신을 차린 원철수는 서둘러
겉으로 들었을 때 그가 지금 한소은이 매우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는 눈앞의 여자가 대단한 사람들을 쉽게 존경하고 숭배할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자신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놓고 보면, 다른 사람들은 그가 원 어르신의 마지막 제자라는 것을 알고 있고,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대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어머니가 자기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 대한 존경심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심지어 자만함이 느껴지기도 했다.수년 동안 그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봐왔었다. 어쩌면 주효영도 그와 같은 자만한 사람일 것이다.이 연구소에 머물 수 있고 이 교수와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이라면 분명 유능한 사람일 것이다. 특히 능력이 있는 젊은 사람은 모두 자만하기 마련이다. 만약 한소은이 이 연구소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았는지 알게 된다면 주효영은 분명 질투에 눈이 멀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주효영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아주 유능하다고요?”"같은 프로젝트팀에 속해 있지 않아서 아쉽네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텐데요."원철수는 웃으며 불에 기름을 부었다.주효영이 대수롭지 않은 듯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당신은 그 여자랑 같은 프로젝트팀이죠? 그 여자에게서 많이 배웠을 거 같네요."그녀의 말에 원현철의 얼굴은 파리를 삼킨 것처럼 역겨워 얼굴에 걸렸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원래는 불을 붙이려 했지만, 주효영의 담담한 한마디가 순식간에 그의 심장을 조일 줄은 몰랐다."허허……."그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서로에게 배우는 거죠!”그는 한소은에게 배우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한소은이 그럴 가치가 없는 여자라고 생각했다!주효영은 몸을 바로 세우고 원철수의 차에서 손을 뗐다. 아마 하고 싶은 말이 다 끝난 듯 두 걸음을 앞으로 내딛다가 갑자기 돌아서며 말했다.“그런데 내 사촌의 병은 그 얼마나 많은 유명한 의사도 해결하지 못했어요. 당신의 명성을
날카로운 소리는 마치 그녀의 심장에 떨어진 것처럼 그녀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녀는 더 이상 정신을 가다듬을 힘이 없는지 멍하니 부서진 파편만 바라보았다.무의식적으로 쪼그리고 앉아 파편을 집으려던 순간 오이연이 그녀를 말렸다."움직이지 마, 내가 할게!""미안해 ……"한소은은 정신을 차릴 수 없어 그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미안하긴, 언니 작업실인데."오이연은 웃으며 농담을 건네며 그녀의 우울한 기분을 풀려고 노력했다.오늘 하루 종일 한소은은 정신이 어디에 팔렸는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오이연의 눈에 담겼지만, 그녀가 입을 열지 않았기에 오이연은 캐묻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지금 이런 모습을 보이니 더 이상 일을 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나가서 쉬어, 내가 알아서 할게!"한소은을 반쯤 밀쳐낸 오이연은 바닥에 남은 잔해들을 치우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향수를 만드는 향료가 모두 옆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깨지거나 흘려도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이다.정리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소파에 앉아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는 한소은의 모습이 보였다."김 대표님이 아직 답장 안 왔어?"오이연은 한소은에게 다가가 보온병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전기 포트에 물을 끓여 놓고 그녀 옆으로 갔다.김서진이 출장한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오이연도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서한도 김서진을 따라갔다. 그러니 그녀는 한소은의 걱정을 이해했다."서한 씨한테서 연락해 왔어?"한소은은 고개를 돌아 오이연을 바라보며 물었다.오이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괜찮을 거야, 출장이 처음도 아니잖아. 그 사람들한테는 비행기 타고 해외에 가는 게 출출퇴근하는 비슷하잖아.”과거에는 큰일이 없으면 당일 아침에 가서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번 출장은 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이번에는 이틀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오이연이 말한 것은 한소은도 다 이해한다. 다만, 왠지
"그런 셈이라니?"오이연은 조금 궁금했다.‘맞으면 맞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런 셈은 뭐야?’"체중 감량을 돕는다기보단 병을 치료해 주고 있다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이야."찻잔 겉면에는 화상 방지 커버가 있어 그리 뜨겁지 않았지만, 가까이 갖다 대니 뜨거운 김에 꽃차의 향기가 섞여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병을 치료한다고?"처음에는 어리둥절했던 오이연이 문득 알아차렸다."일부 비만은 질병이었지. 내분비 장애였던가?"하지만 한소은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다시 침묵을 지키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수면 위에 떠 있는 꽃차를 부드럽게 불었다.오이연도 그녀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잠시 후 한소은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아직 모르겠어, 그냥 추측일 뿐이야,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그래."오이연이 차를 마시려 자신의 컵에 손을 뻗었다가 그녀의 손가락이 컵에 닿자마자 한소은이 갑자기 물컵을 내려놓고 일어서며 말했다."나 잠깐 나갔다 올게.”"어디 가려고?"오이연은 깜짝 놀라 컵을 만지던 손이 뒤로 움츠러들었다."누굴 만나서 물어볼 게 있어.""나 기다릴 필요 없어, 오늘은 아마 안 돌아올 거야. 너도 여기 있지 말고 먼저 돌아가!"오이연은 그녀의 다급한 모습을 보고 멍하니 서있다 대답했다.“알았어.”그러고는 마음이 불안했는지 한소은을 쫓아가며 한마디 덧붙였다."언니, 운전해서 가지 말고 택시 타. 지금 언니 마음이 안정적이지 않아서 위험해. 알았지?”"알아, 택시 타고 갈게!"한소은은 재킷과 가방을 들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너도 조심해서 택시 타고 돌아가! 다른 생각은 하지 마, 알았지?"그녀의 말에 오이연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이런 상태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걱정하는 그녀에게 고개를 힘껏 끄덕이며 그녀를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그녀가 여전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본 오이연은 어쩔 수
"환영하지 않아요?"한소은이 걸어 들어오면서 말했다."당연히 환영하지, 내가 어떻게 환영하지 않을 수 있겠어!"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지금……."노인이 음식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자 한소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최근 의사가 매운 음식은 적게 먹어야 한다고 했어요.""그럼 넌 못 먹겠네, 고추를 많이 넣었거든, 아이고, 아쉽다!"입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 노인은 젓가락질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열심히 먹어댔다.한소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할 말을 잃었다.세계적으로 유명한 신의의 가장 큰 취미가 먹는 것이었고, 더욱 기이한 것은 그가 다른 사람이 자기의 음식을 빼앗을까 봐 경계한다는 것이다!매번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음식을 빼앗아 갈까 봐 두려워했고, 한소은이 관심 없다고 분명히 말해도 그는 여전히 음식을 입으로 넣으면서 경계를 낮추지 않았다.식사를 하던 중 노인이 문득 물었다."참, 네 실험이 성공했다고 들었어! 나쁘지 않네! 내 제자 더워!"노인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밖의 사람들은 한소은이 자신의 마지막 제자라는 사실을 몰랐지만, 제자가 성취를 이룰 때마다 자기가 바로 그녀의 스승이라는 사실이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 것 같았다."어떻게 알았어요?"이 말을 한 순간, 한소은은 문득 생각이 났다."그 친척인 손자가 알려줬어요?""그런 소리 하지도 마. 그는 내 손자가 아니야!"원철수가 손자라는 것이 무슨 불운인 것처럼 몇 번이나 침을 뱉은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녀석은 재능이 좀 있지만……."그러면서 입에 고기를 한 조각 더 넣었다.그러다 다시 고개를 흔들며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다시 말을 삼켜버린 듯한 느낌이었다.한소은은 이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노인은 원래 괴짜였다. 당시 그녀가 재능이 있고 약초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며 그녀를 제자로 받으려고 했다. 다만 그때 그녀의 마음은 오직 향료에 집중되어 있었고 몇 번 거절하다 보니 그가 더욱
"그게 아니라, 너희 연구소에 쓸데없는 일이 너무 많잖아! 걔네는 도대체 뭘 하는 거야?""이번에는 연구소가 아닙니다."고개를 저으며 한소은은 말했다."다른 일입니다. 저는 단지 이런 발견이 있다는 거지, 정말 가능한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가능성은 존재하지만,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아요! 약초의 흡수 정도를 연구한 데이터가 많기는 하지만 지금 휘발 흡수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고 서로 융합을 해야 하는데 위험성도 매우 높아요! "어르신은 물을 들고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이런 실험을 하려면 어떤 물건으로 실험 대상을 만들어야 더 직관적이고 정확한 데이터를 가져올 수 있을까?""원숭이……로?" 그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원숭이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생리적인 불편함, 통증 등등 알아볼 수가 없었고 다른 동물이라면 더욱 불가능해."그는 고개를 저으며 물을 한 잔 더 마셨다."만약……사람이라면요?""실험이 성공하면 당연히 사람에게 응용해야지, 내 말은……."말하다가 어르신은 갑자기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네 말은, 사람으로 실험을 한다고?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한다고?!"그의 목소리는 약간 떨림이 있었다.결과가 확실하지 알지 못한 상황에서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하면 그건 살인과 다름이 없다. 그는 얼굴색이 변하여 한소은을 보면서 말했다"넌 무엇을 발견했니?”"단지 추측일 뿐,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그녀가 말했다."하지만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이해했어요!"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고 가려고 했다."맞다, 그 뇌공등은......""응?" 눈을 깜박거리며 어르신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셨다.‘내가 무슨 말을 했길래 알겠다는 거야?’"저한테 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다음에 제가 가져갈게요!"한소은은 웃으며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야, 뭐를 약속해! 누가 너랑 약속했어!" 정신을 차린 어르신은 소리를 지르며 황급히 일어섰다."그리고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